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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가 밥이다]놀이 수준·환경 100점 만점에 절반도 못 미쳐 ‘위험 수준’

ㆍ(10) 교육감·지자체장이 말하는 놀이

교육감 16명과 인구 50만 이상 대도시 시장 21명, 서울 구청장 23명이 내놓은 한국 아이들의 놀이 평점은 100점 만점에 47.6점이었다. 아이들의 놀이 행정에 직접 관여된 60명이 박하게 매긴 점수에는 진보·보수 성향을 가릴 게 없었다. ‘놀이밥’을 앗아가는 요인으로는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벌어지는 입시경쟁’과 ‘공동체문화 악화’가 많이 꼽혔고, 안전 우려와 놀이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지목됐다.

▲ 외형적 놀이시설 늘었지만 접근성·이용률은 떨어져
‘놀이의 주인 되기’보다 혼자 휴대폰·컴퓨터 게임
아이가 주도, 함께 노는 놀이 하루 평균 2.6~3시간 돼야


■ 놀이시설은 좋아졌지만, 관계맺음 등 놀이 수준은 나빠

놀이 수준과 환경에 대한 평점은 교육감(49.3점), 시장(48.2점), 서울 구청장(44.6점) 순으로 모두 40점대에 그쳤다.

교육감 중 최고점(80점)을 준 전우홍 세종시교육감 권한대행은 “하드웨어적 환경은 80점이지만, 실제 아이들의 접근성과 이용률은 떨어진다”고 답했다. 

가장 낮은 30점을 준 민병희 강원도교육감은 “환경으로 치면 50점쯤 될 수 있지만, 아이가 놀이의 주인이 되는 온전한 놀이로 친다면 30점”이라며 “떠들지 말라, 뛰지 말라, 어지럽히지 말라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게임기와 스마트폰을 친구 삼아 쭈그려 앉아 놀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역시 30점을 매긴 고경모 경기도교육감 권한대행은 “놀 때 마음이 편안한 정도, 놀이에 참여하는 아이들의 수나 놀이의 개방성 면에서는 과거보다 나빠졌다”고 했다. 

20점을 준 자치단체장 중 최성 경기 고양시장은 “맞벌이 학부모가 다수이고, 방과후 사교육은 과다하며, 학교에서의 놀이문화도 적다”고, 유종필 서울 관악구청장은 “핵가족화로 가정에서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고 야외활동도 부족해졌다”고 평했다.


■ 하루 평균 2.6~3시간은 놀아야

교육감들은 하루 3시간은 놀아야 한다고 말했다. 6시간을 제시한 장휘국(광주)·김신호(대전) 교육감은 “하루 24시간 중 수면(8시간), 학업(6~7시간), 식사(3시간)를 제외한 6시간은 모두 놀이시간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용린 서울시교육감도 “적어도 하루 4~6시간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자유 놀이시간을 제공해줘야 한다”고 밝혔다. 가장 적은 1시간을 제시한 전우홍 세종시교육감 권한대행과 문석진 서울 서대문구청장도 “놀이는 인지발달에 가장 중요하며, 아이에게 놀이라는 행복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교육감 8명과 시장 7명, 서울 구청장 10명이 “최소한의 놀이시간, PC게임 등 혼자 노는 것이 아닌 ‘함께 노는’ 놀이시간”으로 가장 많이 제시한 것은 2시간이었다.


■ 저학년부터 시작된 입시경쟁과 안전 우려가 발목

교육감·시장·구청장 60명은 모두 “아이들의 놀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봤다. “충분하다” “교육현실을 감안해 적절하다”고 답한 사람은 없었다.

놀이 결핍 이유로는 입시경쟁에 따른 과도한 사교육을 가장 많이 꼽았다. 김영종 서울 종로구청장은 “학원을 3~4개씩 다니는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일과가 더 빡빡하다”고 했다. 전우홍 세종시교육감 권한대행은 “학부모들이 빈틈없이 아이들의 일정을 조정하고, 아이들은 이 계획대로 움직여야 하므로 놀이를 즐길 여유가 없다”고 진단했다.

이러한 현실은 놀이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이어진다. 민병희 강원도교육감은 “학원에 가지 않고 노는 아이를 ‘부모가 방치한 아이’로 보는 실정”이라고, 김만수 경기 부천시장은 “우리 사회에서 놀이는 공부의 반대말로 인식된다. ‘노는 것이 바로 공부’라는 인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성장현 서울 용산구청장은 “최근 아동 유괴나 성범죄가 늘고 있는 것도 놀이터에 아이가 없는 이유”라며 “안전에 대한 우려 때문에 밖에 나가 놀 수 없다”고 말했다. 

■ 아이들이 주도하는 놀이엔 공감

놀이시설보다 놀이시간에, 어른 중심이 아니라 아이 중심의 놀이가 이뤄져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은 “아이들은 천부적으로 놀잇감을 창조해 놀 줄 아는 능력이 있다”며 “놀이기구 제공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자유롭게 놀 수 있는 시간을 정해줘야 한다”고 했다. 염홍철 대전시장은 “문화센터나 유아교육기관에 비용을 지불하고 이뤄지는 놀이는 일방적고, 상하관계적인 형태로 진행되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은 “아이들 생일 파티조차 이벤트 업체의 레크리에이션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며 “놀이가 아이들이 스스로 즐기는 시간이 아닌, 부모의 만족을 위한 시간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병희 강원도교육감은 “교과활동 시간에 놀이가 포함돼 있다고는 하지만, 대개 승패를 겨루는 게임 위주이고, 교사나 어른들이 주도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곽희양·김지원 기자 hui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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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가 밥이다]국제기준 안 맞고 제각각… 한국, 부실한 ‘아동 통계’

ㆍ건강·놀이터·장난감 등 전담기관 없이 부처별로
ㆍ유엔 “시스템 구축하라” 3번 권고에도 개선 안돼

한국은 아동 정책의 출발점이 될 통계조차 걸음마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국제기준에 맞는 아동 통계를 내라는 권고를 3번 연속 지적받고서도 개선하지 않아 국제 비교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아동 업무는 전담 행정부처나 기관 없이 거의 모든 부처에 뿔뿔이 흩어져 있다. 교육 관련 일은 교육부, 청소년 정책은 여성가족부, 건강·보건은 보건복지부가 담당한다. 아동인구당 놀이터 통계를 찾으려면 안전행정부를, 장난감 통계는 산업통상자원부를 찾아야 한다. 각 부처가 필요할 때 외부기관이나 연구자에게 연구를 위탁하는 바람에 아동 관련 데이터는 통합적인 관리 없이 방치되고 있다.

통계청의 아동 관련 통계체제도 허술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간 아동 실태 비교 기준인 만 18세까지의 통계가 없어 국가 간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한국의 통계청 통계는 5년 단위로 잘려 15~18살의 통계를 내지 못한다.

한국은 1991년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후 5년마다 협약 이행상황을 유엔아동권리위원회에 보고하고 있다. 1996년(1차 보고), 2003년(2차 보고), 2011년(3·4차 합동보고) 보고 때 3차례 연속 유엔으로부터 ‘효과적 통계시스템 구축(18세 미만 아동에 대한 통계 수집체계가 미비함)’ ‘일관성 있는 자료 수집체계 확립’ 등의 권고를 받았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황옥경 서울신학대 보육학과 교수는 “부처에 따라 통계 기준도, 숫자도 다 다르고 자료도 분산돼 있어 데이터 관리가 매우 허술하다”며 “통계가 부실하니 아동 현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도 어렵고 정책이 중복되기도 쉽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참교육학부모회·서울 노원·도봉구청 공동기획>

<송현숙 기자 s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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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가 밥이다]기고 - ‘교육권’과 동등한 아동기의 ‘놀 권리’

아이들의 놀이가 위협받고 있다. 대부분 아이들은 놀이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영·유아들의 조기교육 과열과 지나친 방과후 사교육 등으로 아동의 놀이 기회가 원천적으로 차단되고 있다. 하루종일 유아기관에 다니는 영·유아는 일과계획에 묶여 자신이 원할 때 놀이를 할 수 없다. 개인이 원할 때 자유롭게 선택하는 놀이 본래의 성격과 어긋난다. 과도한 학습부담으로 초·중·고 학령기 놀이기회의 제한은 더욱 심각하다.

놀이공간의 부족 역시 놀이를 옥죄고 있다. 안전하고 즐겁고 창의적인 놀이가 가능하며 모든 세대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놀이공간을 주변에서 찾기 어렵다. 산업화 과정에서 아동들의 놀이 장소는 각종 빌딩과 공장으로 잠식되었다.

놀이기회의 제한과 놀이공간의 박탈은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의 발달과 더불어 우리나라 아동의 놀이 양상을 근본적으로 왜곡시켰다. 아이들은 여가시간의 대부분을 온라인과 모바일게임, TV와 DVD를 시청하는데 보낸다. 그러나 선진국은 인터넷 등 ICT 기술의 발달로 인해 아동놀이가 위축·왜곡되는 것을 우려하고 국가 차원의 놀이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이 국가들은 건강하고 안전한 놀이 환경을 제공해 주는 것을 아동권리 보장의 일환으로 인식한다.


아동의 놀 권리에 관한 최초의 국제규정은 1922년 발표된 ‘세계아동헌장’이다. 헌장 제25조는 “모든 학교는 놀이터를 갖추어 모든 아동이 방과후에 놀 수 있는 놀이터를 제공할 것”을 명시했다. 이후에도 아동과 관련한 많은 국제기구에서 아동의 놀 권리는 교육받을 권리 못지않게 불가침의 권리라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강조해 왔다. 1959년 ‘아동권리선언’ 제7조는 “놀이 및 레크리에이션은 교육과 동일하게 다루어져야 하며 사회 및 공공기관은 아동의 놀 권리 향유를 추진하기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이후 결성된 ‘아동 놀이를 위한 국제 협회’(IPA; International Playground Association)는 1977년 11월 얄타회의에서 ‘아동의 놀 권리 선언’을 했다. 1989년 발효된 유엔아동권리협약 제31조 역시 협약 당사국이 휴식과 여가를 즐기고, 연령에 적합한 놀이와 오락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아동의 권리를 인정할 것을 촉구하며, 적절하고 균등한 놀이기회를 제공할 것을 규정했다.

더 나아가 세계 각국은 아이들의 놀이권 보장을 위해 적극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 영국 정부는 ‘교육기회’와 마찬가지로 아동기의 ‘놀이기회’ 역시 모든 아동에게 공평하게 제공돼야 한다는 인식 하에 국가적인 놀이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2008년부터 시행된 영국의 놀이정책은 2020년까지 장기계획을 수립하였다. 이를 위해 영국 정부는 2008년부터 2011년까지 1차 기간에 2억3500만파운드(4200여억원)가량의 정부 예산을 투입하였다.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에 대한 예산 지원뿐만 아니라 ‘놀이터 조성위원회’ 등과 같은 실행기구를 설립하기도 하고 초등학교 평가기준에 놀이영역을 포함하기도 했다. 덴마크·스위스·독일 등 대부분의 유럽국가들도 자연환경에서 아동의 바깥놀이를 중요시하고 세대가 함께 놀이할 수 있는 바깥놀이터를 조성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영국의 아동놀이 지원단체인 플레이 잉글랜드(Play England)의 조사에 따르면 아동들은 자연환경에서 놀이할 때 더욱 큰 즐거움을 느꼈다. 영국의 내셔널트러스트는 12세가 되기 전에 해야 하는 50가지 자연생태놀이를 발표하기도 했다. 

모든 아동들은 놀 권리를 가지고 있다. 아동들은 매일 즐겁게 놀 수 있는 자유를 향유해야 한다. 아이들의 건강한 놀이가 사라지면 우리 사회의 미래도 어둡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선진국들처럼 아동놀이에 장애가 되는 문제를 진단하며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장기적 안목으로 국가 차원의 놀이 정책을 수립하길 바란다.

<황옥경 | 서울신학대학교 보육학과 교수· 한국아동권리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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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가 밥이다]저학년도 공부 스트레스… 내 아이 한국에서 키우고 싶지 않아

ㆍ(9) 외국인이 본 놀이현실

외국인의 눈에는 한국 아이들의 놀이가 어떻게 비치고 있을까.

지난달 26일과 27일, 서울 미아동 화계초등학교에서 5·6학년을 가르치고 있는 일본계 미국인 카나코 아라이(23·여)와 광장동 광남초등학교에서 8년 동안 원어민 강사로 일하고 있는 아일랜드인 던컨 스미스(37)를 차례로 만나 한국 학생의 생활과 놀이에 대해 들어봤다. 이들은 “믿을 수 없이 바쁜 한국 아이들의 현실은 우리가 자라면서 경험하고, 다른 나라에서도 봐왔던 일반적인 아이들의 삶이 아니다”라며 “우리 아이들을 한국에서 키우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빗줄기가 오락가락한 지난 12일 오후 서울 대치동에서 영어학원을 마친 아이들이 집에 가기 위해 학원버스에 줄지어 오르고 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 초등학교 원어민 강사 6개월 일본계 미국인 카나코 아라이(23)
“하루 학원 3개 이상… 뛰놀 시간 없는 생활에 아이들 어릴 때부터 적응”


▲ 초등학교 원어민 강사 8년 아일랜드인 던컨 스미스(37)
“주말에 온통 숙제·공부… 아이들 노는 게 당연한데 한국은 아닌 것 같아”


- 한국 아이들의 생활과 놀이 현실을 어떻게 보나. 

아라이 = 아이들이 수업 끝나면 다들 피아노, 태권도, 영어 학원에 간다고 한다. 한국에 온 지 6개월 됐다. 한국 아이들이 학원을 많이 다닌다고는 늘 생각했지만 하나만 하고 집에 가는 줄 알았다. 경향신문 놀이기획에 나온 조사를 보면 하루에 3개 이상 학원을 다니는 아이가 가장 많다는 건데(경향신문 2월26일자 1·9면 보도), 이게 정말인가. 

스미스 = 2004년부터 초등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 아이들 대부분이 어릴 때부터 정말 바쁜 것 같다. 그래도 아이들은 에너지가 넘친다. 다른 나라 아이들 상황을 알면 우울할 텐데, 자기들이 시간이 없다는 걸 잘 모른다. 자투리 시간에 어떻게든 노는 것 같다. 영어일기 숙제에는 주말에 온통 공부했다는 얘기뿐이다. 참 안됐다.

아라이 = 가끔 수업시간에 졸려 보이는 아이들이 있다. 주말에 뭘 했느냐고 물어보면 남학생들은 PC방 갔다고 하고 여학생들은 텔레비전 봤다, 아이돌 쇼를 봤다는 대답이 많다. 정말 친구들과 같이 뛰노는 시간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생각보다 밝다. 어려서부터 이 생활에 적응이 된 것 같다.

스미스 = 2개월 전에 아이가 태어났는데 아이가 학교 입학하기 전까진 아일랜드에 돌아가기로 아내와 결정했다. 한국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좋고, 다른 생활에도 불만이 없다. 단지 애 교육 때문이다. 한국적인 압박하에선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없다. 일반적인 아이들의 삶이 아니다.

- 본인들은 어떻게 자랐나. 

아라이 = 캘리포니아 교외 지역에서 자랐다. 스쿨버스를 타거나 부모님이 픽업해서 오후 3시쯤엔 집에 왔다. 일주일에 한 번 피아노 레슨을 받는 것 외엔 숙제도 없었고, 정말 초등학교 내내 노는 것밖에(nothing but play) 한 일이 없다. 학교에서도 20~30분씩의 리세스 타임(운동장에서 노는 시간)이 있었고 중학교에서도 15분간의 휴식시간이 있었다. 학교에서도 저학년 때는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거의 없었다. 노는 듯 공부했다. 주로 3명의 형제나 친구들과 집 근처 공원, 수영장, 놀이터에서 놀다가 늦어도 저녁 9시에는 잤다. 공원엔 늘 지켜보는 엄마들이 몇 명은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자랄 때의 모습은 경향신문 조사대로라면 부모님 세대에 가까운 것 같다.

스미스 = 아일랜드의 더블린 교외에서 자랐다. 오후 2시30분쯤 집에 오면 모두 자유시간이었다. 계속 놀다가 저녁을 먹고도 나와서 놀았다. 부모님은 아이들이 어디 있는지 걱정하지 않았다. 모두 공원에서 놀고 있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도 초등학교 땐 15분, 30분 두 번의 플레이 타임이 있었다.

- 놀이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아라이 = 아이들은 에너지가 많다. 이 에너지를 발산해야 하는데 놀이가 바로 자연스러운 통로다. 놀이에 대한 긍정적인 보고서는 정말 많고, 놀이가 가진 큰 힘을 나는 믿는다. 적당히 놀면 집중도 훨씬 잘되는 것 같다. 지금 화계초등학교에서는 함께 수업을 하는 한국인 교사와 협의해 수업 전 잠깐 춤을 추는 시간을 갖고 있다. 비디오를 아이들과 같이 보면서 5분 정도 따라서 춤을 추는데, 에너지를 발산하고 수업 집중도도 높이기 위해서다.

스미스 = 내가 어렸을 때를 생각하면 놀면서 즐거웠던 기억만 난다. 아일랜드에선 아이들이 노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한국은 아닌 것 같다.

- 놀이에 대해 한국의 부모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아라이 = 한국의 부모들은 어렸을 때부터 공부 잘해서 자신감을 길러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공부를 오래, 많이 한다고 잘한다는 것은 신화인 것 같다. 자신감은 놀 때도 기를 수 있다. 놀면서 리더십, 사회성도 길러진다.

스미스 = 부모들에게 묻고 싶다. 돈 많이 들여 학원 보내면 아이들이 행복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같은 것을 해도 강요하면 잘 기억 못하고 하기 싫어한다. 최소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고를 수 있게 해야 한다. 즐겁게 하지 않는 공부가 비효율적이라는 것은 이미 교육학적으로 수없이 증명된 학설이다.

아라이 = 외국처럼 학교에서 리세스 시간을 마련하면 어떨까. 리세스 땐 교사들이 아이들을 지켜본다. 방과 후 한두 시간이라도 안심하고 놀 수 있도록 부모가 지켜봐주는 시스템도 참 좋은 것 같다.

스미스 = 모두가 일찍부터 공부하는 문화 속에서 부모들의 생각, 아이들의 생활이 쉽게 바뀌진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어렸을 때부터 공부시키는 것이 다른 나라들과는 정말 다르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학교가 좀 더 놀이에 문을 열어놓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학교들이 사고를 막기 위해 문을 걸어 잠가놓고 안심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overkill’(지나쳐서 비효율적인 것)이다.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에는 놀이가 꼭 필요하다.

<송현숙 기자 s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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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가 밥이다]기고 - 놀이도 때가 있다

아이들에게 중요하고 급한 일이 무엇일까. 지금 그런 일을 시키고 있는가. “그렇다”고 답해놓고 뭔가 찜찜한 느낌이 든다면 그 불편한 느낌에 귀 기울여야 한다.

무한경쟁시대에, 공부를 잘해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지상목표인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어린이와 청소년의 행복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 23개국 중에 꼴찌라는 사실, 20대 여성의 47%가 요즘같이 살기 힘든 사회에서 아이를 낳기 싫다고 말한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어린 시절을 불행하게 보낸 결과, 2010년 자살한 청소년의 수는 교통사고·암·심장질환으로 사망한 수를 더한 것보다 많다는 통계청의 자료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우리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자. 친구들과 목청껏 노래하면서 뛰어넘던 고무줄 놀이, 쳐들어오는 상대를 온몸으로 막았던 오징어 놀이, 손이 더러워지는 것도 상관없이 땅바닥에 앉아 작은 돌을 튀기던 땅따먹기를 비롯하여 숨바꼭질, 말뚝박기, 깡통차기에 하루 해가 짧았던 때를 말이다. 그때는 먹을 것, 입는 것, 부모의 보살핌이 요즘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지만 그래도 지금보다는 행복했었다. 그때의 행복은 단지 어린 시절의 추억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함께 어울릴 친구가 있었고, 나름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할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현재진행형이며 미래지향적이다. 그래서 아이들을 볼 때 현재의 모습과 그런 모습이 이어져 장래의 모습이 된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어른들의 하루와 아이들의 하루가 다른 이유는 절대시간은 같지만 변화 가능성이 많고 적음 때문이다. 그 변화 가능성은 어른에 의해 강제되는 경우와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경우로 나뉜다. 영·유아기에는 어른에 의존한 변화가 중심이 되지만 학령기가 되면 스스로 변화 가능성을 열어 나가는 것이 지속가능한 방식이다. 그럼 이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대한 적극적인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인류는 오랫동안 놀이라는 문화 형식으로 살아가면서 필요한 제반 능력을 스스로 배워 익힐 수 있도록 했다. 거의 대부분의 놀이를 들여다보면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능력’(놀면서 오가는 많은 이야기), ‘자신을 돌아보고 제어하는 능력’(딱지치기나 승패놀이에서 졌을 때 인정하는 경우), ‘긍정적 태도’, ‘협동’, ‘창의성 배양’(호기심의 구현) 등이 잘 갈무리되어 있다. 아이들은 놀면서 자신도 모르게 이 같은 능력이 몸에 배게 되었기에 어른이 되었을 때 여럿이 어울릴 수 있었고 자신을 긍정하면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벌써 평균수명이 80세를 넘기고 있고 조만간 100세 시대가 온다고 한다. 또한 매일 새로운 지식과 정보가 쏟아지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평생교육이 강조되고 있다. 평생교육이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이 되면서 ‘공부는 때가 있다’는 말이 설득력을 잃었다. 오히려 공부는 평생 해야 하지만 놀이는 때(어린 시절)가 있는 것이다. 이가 빠지고 콧물을 손으로 훔치던 개구쟁이들이 놀면서 맑게 웃는 표정, 소꿉놀이에서 아빠 모습을 진지하게 흉내 낼 때의 몰입, 기분 좋아 내는 달뜬 목소리는 어른이 결코 재현할 수 없다.

중요하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은 것은 놀이가 아니고 그 반대다. 아이들에게 놀이는 너무나 시급해서 때를 놓치면 할 수 없는 일이고 살아가는 기본을 배우고 익히는 데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이상호 | (사)놀이하는사람들 대표·충주 대미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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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가 밥이다]학교 입학과 동시에 놀이터 발길 끊고 못 노는 것 당연시 여겨

ㆍ(8) 엄마가 본 놀이현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엄마들은 아이의 놀이 현실에 대해 답답함부터 토로했다. 뭔가 바뀌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경쟁적인 사회분위기, 부모들의 막연한 불안심리가 아이들의 놀이를 막는다고 봤다.

엄마들은 경향신문의 ‘놀이가 밥이다’ 기획에서 곧잘 나오는 “적어도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친구들과 놀게 하자”는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의 놀이 결핍 상황이 속히 개선될 전기가 있기를 바랐고, 제도적 대안도 기대했다. 그 말끝에는 그렇지 못한 현실, 노는 게 어느덧 용기가 된 현실을 보는 답답함이 다시 더해졌다. 다섯 엄마의 좌담은 지난 5일 서울 중구 정동길의 한 카페에서 이뤄졌다.

황미선·오현경·성청미·조정옥·장은주씨(왼쪽부터) | 박민규 기자


-아이들의 놀이 현실을 어떻게 봅니까.

장은주 = 아이들이 너무 바쁘고 같이 놀 친구들을 정말 찾기 어려워졌어요. 경쟁적인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아주 어릴 때부터 맘껏 못 노는 것이 당연해진 것 같아요.

성청미 = 학원을 별로 안 다니는 우리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친구 찾으러 동네를 몇 바퀴 돌곤하는데요. 엄마들이 마치 불량청소년 얘기하듯 “지금 배회하고 있는 애는 언니 애밖에 없다”고 ‘신고전화’를 해요(웃음).

장은주 = 이사 오기 전 수도권 신도시에 살 때 우리애 별명이 하이에나였어요. 친구들 학원 시간표, 학원 비는 일정까지 다 갖고 다니면서 같이 놀 친구를 찾아 다녔거든요.

황미선 = 놀이가 좋다고 생각하던 부모님들도 초등학교 입학 후엔 분위기에 휩쓸려 학원 뺑뺑이에 동참하더라구요. 1학년 때부터 논술, 영어, 수학을 보내고 최근엔 방과후 수업까지도 학습 위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놀이에 대한 좌담회까지 해야 하는 현실이 참 씁쓸하네요.

성청미 = 최근에 줄넘기, 오재미, 비석치기 같은 것을 실내에서 돈 내고 배운다는 생활체육 프로그램 선전을 보고, 자연스럽게 하던 놀이를 지금은 돈 들여서 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 답답하더라구요.

오현경 = 놀 시간이 생겨도 뭘 하고 놀지 모르고 친구들과 무슨 말을 해야 할지조차 모르는 아이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작은 애는 혁신학교에 보냈는데, 80분 수업에 노는 시간이 30분 있어요. 놀아본 아이들이 훨씬 잘 노는 것 같아요. 충분히 노니까 공부 집중도 잘하고 수업도 즐겁고 아이들끼리도 친하고, 또 방학도 주말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로 학교를 좋아해요.

조정옥 = 저도 큰 아이가 어릴 땐 강남 사는 지인들의 얘길 듣고 5살 때부터 매일 영어학원에 보내던 보통 엄마였어요. 그런데 둘째가 너무 소심하고 자신감이 없어 미술치료까지 받고, 놀이터를 찾아 놀이터 바로 옆으로 이사 오면서 정말 놀이의 힘이 크다는 것을 믿게 됐죠. 매일 놀이터에서 놀다 보니 아이가 정말 많이 밝아졌어요. 놀이의 힘은 정말 센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교 입학과 동시에 놀이터 발길을 끊는 걸 보면 안타깝죠. 


-사회 곳곳에 있을 놀이 방해자들은 뭐라고 봅니까. 

황미선 = 놀 공간, 놀 시간, 친구들만 있어서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학부모들 사이도 너무 각박해졌어요. 놀이도 같은 수준, 같은 생각을 가진 그룹을 짜서 같이 놀게 하는 분위기죠. 아이들이 논다고 하면 어떤 엄마들은 “누구랑 놀 건데?” “어디서 뭘 할 건데?” 꼬치꼬치 묻고 누구누구가 있으면 가지말라고까지 합니다. 순수한 놀이집단, 순수한 놀이는 사라졌다고 봅니다.

장은주 = 아이들의 놀이를 보는 사회적인 시선이 확 달라졌어요. 옛날엔 아이들이 놀러간다는 말에 시간을 허비한다는 생각을 하는 부모들은 없었잖아요. 지금은 놀이에 빠지면 공부 안 한다는 생각에 불안해하는 엄마들이 많아요.

오현경 = 솔직히 걱정은 좀 돼요. 주변에서 “언니 그만 놀려. 지금도 늦었어”라고 자꾸만 말하거든요. 그래서 애들한테 너희들 놀린 거 후회하지 않도록 알아서 좀 잘해 달라고 말해요. 놀이가 좋은 걸 다 알지만 그런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힘든 게 아닐까요.

장은주 = 애들이 마땅히 갈 곳이 없는 것도 문제에요. 동네 놀이터는 유아들이 갈 만한 고만고만한 놀이터죠.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동네놀이터 가면 질 나쁜 언니 오빠 취급을 받아요. 

조정옥 = 무조건 안전제일주의인 학교 얘기도 하고 싶어요. 몇 년 전에 아이가 담임선생님이 쉬는 시간에 화장실만 갔다 오고 엎드려 있게 한다는 얘기를 하더라구요. 담임선생님께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얘기해 봤지만 사고가 일어났던 얘기만 하시면서 안전만을 강조하시는 거예요.

성청미 = 우리 아이는 몇 년 전에 쉬는 시간에 담임선생님이 조용히 하라고 했는데 허밍을 했다가 교실 뒤에서 벌을 섰다고 일기에 썼더라구요. 

-놀이의 복원을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황미선 = 놀아서 잘 큰 아이들에 대한 추적조사가 좀 나왔으면 좋겠어요. 놀이 결핍의 부작용, 놀이의 힘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들이 계속 나오면 사회적인 인식이 많이 바뀌리라 생각합니다.

조정옥 = 우선 저학년은 각종 평가를 없애고 학교에서 너무 경쟁을 조장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초등학교(저학년)만이라도 학교는 자유롭게 놀면서 배움의 즐거움을 알려주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학교에서 줄넘기 몇개, 달리기 몇분을 했는지, 무슨 책 읽고 어떤 느낌인지 등 날짜를 기록하고 본인이 했던 것을 틀에 맞게 쭉 쓰는 생활본을 하도록 시키는데 그걸로 학기말에 상을 주는 것 자체가 경쟁을 조장하는 것 같아요. 

장은주 =학교가 놀이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며 놀이시간을 확보해 주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해요. 놀이시간을 혁신학교처럼 20~30분 확보하거나, 녹색어머니회, 도서실 봉사처럼 방과후에 아이들의 놀이를 지원하는 학부모 모임을 활성화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죠. 

조정옥 = 그런데 학교와 교사들이 하나같이 하는 걱정은 아이들의 안전 문제예요. 

오현경 = 전, 그 점에선 학교와 학부모가 비겁하게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생각해요. 학부모들도 생각을 바꿔야죠. 학교 놀이터가 아닌 동네 놀이터나 집에서도 똑같이 사고가 날 수 있는 건데, 학부모들이 학교에서 생긴 일은 무조건 학교에서 책임지라고 나오니까 학교나 교사 입장에선 굳이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 놀게 하고 싶지 않은 거죠. 

성청미 = 맞아요. 죽고 사는 게 아니면 다치고 싸우면서 크는 게 애들이잖아요. 정말 아이들을 위한다면 놀이 기회를 많이 확보해 주되 안전하게 지킬 방법을 생각해 봐야죠.

조정옥 = 전 놀이터 정책이 수요자 중심으로 좀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저는 경험이 있어요. 어린이집과 놀이터 사이의 경사가 급하고 그 사이에 잡고 올라가는 밧줄이 3개 정도 있었는데 아이들이 몇 번이나 다쳤어요. 어느날 놀이터 리모델링을 한다고 하길래, 우리 엄마들이 그 경사지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서대문 자연사박물관 공룡미끄럼틀처럼 아주 높은 미끄럼틀을 만들어달라고 제안했어요. 이 미끄럼틀이 만들어지니까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고, 다치지도 않았고, 멀리까지 소문이 나 아이들이 일부러 찾아오는 놀이터가 됐어요.

황미선 = 우린 고학년 자녀들이 있으니까 어렸을 때 공부 조금 더 했다고 나중에 큰 효과가 없다는 걸 잘 알죠. 그렇지만 이런 목소리가 저학년 부모들에겐 안 들리나 봐요. 더 이상 혼자만의 벽을 쌓지 말고 어릴 때부터 다양한 친구들과 어울려 놀면서 마음을 열고 세상을 경험하자는 이런 캠페인이 빨리 확산됐으면 좋겠어요. 


<경향신문·참교육학부모회·서울 노원·도봉구청 공동기획>

<송현숙 기자 s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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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가 밥이다]“겨울 끝, 친구들아 놀러 가자” 유현초 와글와글 놀이터 재개

겨울 휴지기를 끝내고 지난 10일 재개된 서울 유현초등학교의 방과후 ‘와글와글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암벽타기 놀이를 하고 있다. |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아이들이 줄에 매달려 벽을 타고, 사방치기를 하고, 철봉에 거꾸로 매달리고, 갑자기 모래를 서로 뿌려대며 놀았다. 지난 10일 서울 강북구 유현초등학교의 ‘와글와글 놀이터’가 석 달의 겨울 휴지기를 끝내고 문을 열었다. 지난해 시작된 놀이터가 ‘시즌2’를 맞은 것이다.

놀기 위해 모인 1~4학년 아이들의 아우성은 컸다. 2학년 다은이는 “아이스크림 실컷 먹는 것처럼 놀이터가 좋다. 너무 기다렸던 시간”이라고 말했다. 아직 쌀쌀한 날씨에 양볼이 빨갛게 트고 콧물이 흘러도 아이들은 뛰어다녔다. “느낌 아니까요.” 놀이터 이모는 오랜만에 신이 난 아이들을 그렇게 표현했다. 개학 후 와글와글 놀이터를 찾은 아이는 50여명이다. 놀이터에 따로 신청하지 않아도 몇 분이고 몇 시간이고 마음대로 놀다 갈 수 있다. 매일 낮 12시부터 오후 2시30분까지 2~3명의 ‘놀이터 이모’가 함께하며 아이들의 놀이와 안전을 살핀다.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는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오는 14일 노원구청에서 ‘놀이의 실제- 놀이, 지금 당장 사랑하기’ 강좌를 열고 사방치기, 여우닭잡기 등 아이들과 할 수 있는 놀이를 배우는 시간을 갖는다. 도봉구에서도 4월3~4일 ‘놀이터는 힘이 세다’ 강좌가 열린다. (02)902-9246

<김지원 기자 deepdeep@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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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가 밥이다]쉬는 시간 5분 주고 떠들면 벌점… 점심시간에도 운동장서 못 놀아

ㆍ(7) 못 놀게 하는 학교

서울 송파구의 ㄱ초등학교 6학년 형석이(13·가명)는 학교 입학 후 지금까지 점심시간에 운동장에서 노는 게 허락된 것은 3년뿐이었다고 했다. 담임교사가 정한 원칙에 따라 2학년 때는 점심시간에 영어를 공부했고, 5학년 때는 점심시간에 모두가 청소하고 시간이 남으면 교실에서 보드게임을 했다. 6학년이 된 올해도 담임이 “운동장에 아이들이 너무 많다”며 점심시간에 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경기 양주의 ㄴ초등학교 1학년 교사는 지난해 아이들을 운동장에 나가지 못하게 하고, 점심시간에도 바로 교실에 들어와서 조용히 교실 안에서 텔레비전을 보게 했다.

아이들을 놀지 못하게 하는 학교가 곧잘 눈에 띈다. 쉬는 시간에 떠들지 말고 책상에만 가만히 앉아 있으라거나, 점심시간에 운동장에 나가지 못하게 하고, 방과 후 운동장에서 노는 아이들을 빨리 내보내는 교사나 교직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안전제일주의에 빠져 아이들의 휴식권과 놀 권리를 제한하고 빼앗는 학교들이다.

▲ 점심시간에 학습 지도 독서·TV 시청 하게 해
친구들과 노는 시간 없어


▲ 방과후 운동장서 놀 땐 “사고 우려” 귀가 종용
“방과후 문제, 부모 책임” 가정통신문 보내기도


대전 유성구에 있는 ㄷ초등학교 5학년 민준이(12·가명)는 쉬는 시간이 사실상 5분밖에 없다. 학교에서 정한 쉬는 시간은 10분이지만 담임이 수업시간 5분 전부터는 수업준비를 하고 책상에 앉아 있으라고 했기 때문이다. 규칙에 맞지 않게 행동하면 바닥에 무릎을 끓고 앉아서 수업을 받아야 한다. 서울 용산구 ㄹ초등학교 1학년 교사는 지난해 쉬는 시간에 화장실만 다녀오게 하고 친구들과 떠들거나 돌아다니면 벌점을 줘 학부모들에게 원성을 사기도 했다.

방과 후 학교 운동장에서 놀면서도 학교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5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이모씨(서울 도봉구)는 3년 전 ‘교내 안전사고 예방을 위하여 방과 후에는 아동들이 바로 귀가할 수 있도록 각 가정에서 지도를 바란다’는 가정통신문을 받았다. 이씨는 “방과 후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부모들이 책임지라는 느낌, 또 하나는 수업이 끝나면 빨리 학교에서 떠나주길 바라는 느낌을 받아 씁쓸했다”며 “이 통신문을 받고는 방과 후 운동장에서 노는 아이들은 가정에서 돌보지 않는 아이라는 인식이 퍼져 학교에서 놀던 아이들이 급속히 없어졌다”고 말했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강남의 ㅁ초등학교 운동장은 초록색 펜스가 가로막고 있고, 운동장에서 노는 아이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학교 보안관은 “운동부 때문에 운동장 통제가 어쩔 수 없다”며 “일반 아이들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고 학부모들도 불만이 많다”고 말했다.

서울의 ㅂ초등학교 교사는 “학교에선 공공연히 ‘아이들이 가방 멘 상태에서 사고가 나면 학교 책임이니, 바로 하교할 수 있도록 지도하라’는 말을 전달한다”며 “아이들이 방과 후에 학교에서 놀고 있으면 학교가 안심하지 못하고 귀가를 종용하곤 한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에서 초등학교 6년간 3년밖에 점심시간에 운동장을 나가보지 못한 형석이 엄마 손모씨(40)는 “3, 4학년 때 밥만 빨리 먹으면 나가서 놀 수 있게 됐다고 아이가 정말 좋아했다”며 “그런데 자꾸 학교에서 안전을 염려해 놀지 못하게 하니 고학년이 되면서 아이 스스로 밖에 나가 노는 것을 자포자기하는 것 같아 안쓰럽다”고 말했다. 손씨는 “제일 편하고 안전한 것이 독서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요즘엔 쉬는 시간 화장실 갔다 와서도, 점심 때도 너무 책만 읽으라고 강조하고 있다고 했다”면서 “일률적으로 막지 말고 아이들의 심신이 고루 성장하는 데 학교가 좀 더 신경을 써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오랜 미국 생활 끝에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한국으로 돌아온 김모씨(39)도 “오전·오후 20분씩 운동장에서 노는 ‘리세스(Recess·휴식) 타임’이 있던 미국 학교에 다니다 한국에 오니 쉴 틈 없는 학교 생활에 아이가 한동안 적응을 못했다”며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를 그렇게 시킬 필요는 없지 않느냐. 학교에서 아이들이 놀면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시간을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송현숙 기자 s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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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가 밥이다]놀이는 폭력 ‘방관자’였던 아이, ‘방어자’로 만드는 기반

ㆍ관계·공동체 요소 가져… 친구가 괴롭힘 당하면 고통 느껴, 적극적 대항

경기도의 한 중학교 2학년인 수경(이하 모두 가명)이는 ‘일진’이다. 수경이는 같은 반 슬기의 필기구나 노트를 숨겨놓고는 슬기가 당황해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친한 은수와 함께 깔깔댄다. 학교에서 학교폭력에 대한 경계심을 높여 요즘엔 괴롭힘의 형태가 바뀌었다. ‘단체 카톡방(온라인 모임)’에 슬기를 초대한 뒤 “돼지(슬기의 별명) 정말 못생기지 않았냐”며 욕을 한다. 은수도 맞장구를 친다. 두 사람은 슬기를 괴롭혔다는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카톡방에선 이름 대신 별명을 부른다. 

단체 카톡방 안에는 지원이와 현수, 은경이도 있지만 슬기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지원이는 직접 괴롭히진 않지만, 슬기가 놀림 당하는 걸 보며 함께 웃는다. 현수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 “찌질이(슬기)와 놀면 나도 찌질해진다”며 슬기를 피한다. 수경이의 눈밖에 나면, 다음 괴롭힘의 대상이 자신이 될 것 같아 두렵기도 하다. 은경이는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며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다.

괴롭힘을 당하는 슬기와 함께 노는 친구는 아무도 없다. 슬기는 엄마나 선생님께 말씀드릴까도 했지만, 더 큰 따돌림을 받을까봐 조용히 ‘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이 교실에서 폭력은 수경(가해자)이와 슬기(피해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경이와 동조한 은수, 괴롭힘을 방관한 지원·현수·은경이도 이 폭력에 가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현 마을공동체교육연구소장은 “가해자와 피해자만을 바라보는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학교폭력을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만약 방관자나 조력자 역할에 머물렀던 지원·현수·은경이가 목소리를 합쳐 “슬기 좀 그만 괴롭혀”라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 이들이 함께 수경이를 제재한다면, 수경이는 슬기를 괴롭히는 행동을 지속하기 힘들다. 반대로 은수·지원·현수·은경이가 수경이처럼 슬기를 함께 괴롭히게 되면, 슬기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문 소장은 “폭력을 방관하거나 소극적으로 도왔던 아이들을 ‘방어자 역할’이 되도록 만드느냐, 아니면 ‘가해자 역할’이 되도록 만드느냐가 관건”이라며 “방어자 역할을 하는 아이들이 늘어날수록 학교폭력은 사라진다”고 단언했다.

그는 “방관자에 머물렀던 아이들이 방어자로 바뀔 수 있도록 하는 기반이 놀이”라고 말했다. 평소 놀이를 통해 친밀감과 공감대를 쌓아둔 아이들은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의 고통을 함께 느끼게 되고, 이는 누군가의 괴롭힘을 막는 적극적인 행동으로 이어진다. 문 소장은 “학교폭력을 막기 위해 놀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의 놀이가 자연스럽게 학교폭력을 막는 마법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소장이 이끌고 있는 ‘평화샘 프로젝트’에 참여한 학교와 교실은 놀이로 올해 새학기를 시작했다. 개학 후 첫 일주일을 ‘아이들과 친해지는 시간’으로 정해 하루에 한두 시간씩 아이들의 자유놀이, 선생님이 참여하는 대동놀이 등을 진행한 것이다. 학기 초 놀이를 통해 친구들과 평등한 관계가 만들어지고, 이를 통해 안정감을 느낀 아이들은 이후 1년 동안 평화롭게 지낸다.

한국에서 ‘왕따’ 문화가 생겨난 것은 1990년대 중반이다. 이 시기는 아이들의 놀이문화가 급격하게 사라진 때이기도 하다. 문 소장은 “아이들의 놀이문화가 사라진 것은 사회구조적인 문제인 까닭에 부모나 아이의 변화만을 강조하는 개인적인 접근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 ‘한 사람이라도 놀이에 끼지 않으면 재미가 없다. 힘이 약한 아이는 깍두기나 왔다리갔다리 몫으로 끼어주면 된다’는 공동체적 놀이문화를 갖고 자란 30대 중반 이후 세대가 요즘 아이들의 놀이와 관계에 대해 이해 못하는 것 역시 사회의 공동체적 요소가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단지 아이들에게 놀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제공한다고 해서, 놀이문화가 생겨나고 학교폭력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기대한다고 단언할 수만은 없다. 요즘 아이들은 누군가와의 관계를 통한 놀이를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다. 유치원 때부터 ‘누가 더 센가’ ‘누가 힘이 약한가’ 등의 서열관계를 정하고, 힘이 센 아이에게는 친한 척을, 그렇지 않은 아이에게는 무시를 해 온 상황에 물들어 있다. 이 때문에 ‘따돌림 놀이’ ‘무시하기 놀이’ 등 놀이 속에서 힘이 약한 아이를 괴롭히는 형태도 나타나고 있다.

문 소장은 “요즘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장난감 놀이 등 무엇인가를 일방적으로 지배하는 놀이에 익숙하거나 사람과 상호작용을 한 경험이 없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라며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학교와 교실에서 ‘평화를 위한 규칙’을 세워두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문 소장이 정한 평화를 위한 규칙은 ‘우리는 친구들이 괴롭힘을 당할 때 도울 것이다’ ‘괴롭힘을 당하는 누군가가 홀로 있을 때 함께할 것이다’ ‘선생님은 평화의 본보기가 될 것이다’ 등이다.

문 소장은 “우리 사회가 아이들을 보살피지 못하고 경쟁으로 떠밀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이미 권력질서와 그로 인한 폭력에 물들어 있다”며 “단순히 ‘아이들끼리 놀아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와 학부모, 지역사회가 함께 평등하고 민주적인 관계를 만들어가야 학교폭력 해결은 물론 평화적인 사회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참교육학부모회·서울 노원·도봉구청 공동기획>

<곽희양 기자 hui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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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가 밥이다]놀이 없이 공부만 한 아이들, 아는 건 많지만 생활 부적응도 많아

ㆍ(5) 상담창구에 비친 놀이

# 초등학교 3학년인 희성(10·가명)이는 4세 때부터 영재교육을 받았다. 엄마는 희성이가 이미 중학교 수준의 지식 수준을 갖췄다고 자랑했다. 희성이는 또래 아이들이 읽지 못하는 영어책을 모두 읽어내고, 그 내용도 완벽하게 파악한다. 하지만 정작 “책 속에 있는 아이가 왜 슬펐을까? 왜 화가 났을까?”라는 질문에는 답을 하지 못한다. 희성이는 또래들이 즐겨하는 훌라후프도 잘 안다. 누가 처음 만들었고 그 재질이 뭔지, 어떤 원리로 회전하는지 알고 있다. 

희성이는 그러나 훌라후프를 돌리지 못한다. 체스게임도 마찬가지다. ‘퀸’이나 ‘룩’ 등의 장기말이 어떤 규칙으로 움직이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막상 체스판 앞에 앉은 희성이는 멀뚱히 바라만 볼 뿐, 체스를 두지 못한다. 희성이는 훌라후프나 체스를 통해 한번도 놀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희성이의 지능은 또래 아이와 비슷한 수준이다. 지능검사에서 언어성은 만점에 가깝지만, 동작성은 평균 이하로 나왔다. 책에서 본 내용을 자신의 행동으로 나타낼 수 없는 것이다. 


#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재석(8·가명)이는 자신을 “한자를 많이 아는 아이”라고 소개한다. 또래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는 스케치북에 재석이는 한자를 적는다. 또래들과 달리 변신로봇을 합체하거나 장난감 팽이를 조립하는 것을 재석이는 할 줄 모른다. 유치원을 함께 다녔던 아이들은 재석이가 한자를 잘 아는 것에 대해 관심이 없다. 다른 아이들에게 재석이는 변신로봇이나 팽이로 함께 놀 수 없는 아이일 뿐이다. 아이들과 벽이 생긴 재석이는 다른 아이의 스케치북을 찢는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나홀로 왕따’가 된 재석이가 아이들 사이에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택한 행동이었다.


▲ 충분히 놀지 못한 아이, 아는 것 행동에 못 옮기는
‘사이보그형’ 될 위험


▲ ‘놀이 학습’은 학습일 뿐 갈등 해결 능력 깨치는
관계성 지닌 ‘놀이’ 아냐


▲ 엄마들 슈퍼맘 되려 말고 쉬어야 아이와 놀 수 있어

또래들의 놀이와 격리되거나 친구들에게 공격적인 행동을 하다 상담창구를 두드리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놀이 시간을 공부로 채우고, 놀이도 머리로만 하다 ‘아파하는’ 아이들이다. 머리는 큰데 손과 발은 아주 조그마한, ‘ET’와 같은 모습이 돼가고 있는 것이다. 아이에게 책만 쥐여주려는 조기교육 열풍의 그림자일 수도 있다.

2002년부터 아동상담을 진행해온 선우현 명지대 아동심리치료학 교수는 “과거에는 발달장애 등 선천적인 원인으로 상담하러 온 아이들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정서·행동 장애로 찾아오는 아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지적인 수준은 높지만, 아는 것을 실행으로 옮길 수 없는 ‘사이보그형 아이’ ‘백과사전형 아이’가 정서·행동 장애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실제 놀이가 없는 아이들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세상을 배울 기회를 잃어가고 있다. 세탁기를 돌리거나 전화를 받는 소꿉놀이를 해보지 못한 아이는 ‘나도 어른처럼 세탁기를 돌리고, 전화를 받을 수 있어’라고 유능감을 익힐 기회를 갖지 못한다. 역할놀이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마트 판매원이나 물건을 사는 손님인 것처럼 놀면서 마트라는 작은 세상에서 이뤄지는 언어를 배우고 그에 따른 행동을 배운다. 의사놀이, 선생님놀이, 아빠놀이, 전쟁놀이 등도 마찬가지다. 

김명순 연세대 교수는 “아이에게 놀이를 뺏는 것은 세상을 배우는 기회를 앗아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초등학교 2학년 나정(9·가명)이는 늘 ‘착하고 올바른 사람’이 되라고 가르침을 받았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엄마는 나정이에게 “이런 행동은 옳지 않으니 그렇게 하면 안돼” “네가 잘못을 했을 때는 반드시 네가 사과를 해야 해”라고 가르쳤다. 그러다 최근 네 살배기 동생을 무섭게 훈계하는 나정이를 보고 엄마는 놀랐다. 나정이가 얼굴을 잔뜩 붉힌 채로 동생에게 “네가 잘못했으니까 네가 나에게 사과를 해야 해”라고 다그친 것이다. 딱딱하게 굳은 훈계조의 나정이 얼굴은 학교생활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나정이는 친구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시시비비만 따지며 ‘그 친구가 나쁜 행동을 하고도 사과를 하지 않았으니, 나쁜 아이야’라고 생각한다. 나정이는 동생과 친구가 어떤 상황에서 그런 행동을 하게 됐는지 이해하려 하거나 문제를 화해로 풀려는 생각이 없다. 그렇게 할 줄도 모른다. 나정이가 친구들과 멀어지고 단절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정이는 제대로 놀지 못하고 자란 또 다른 피해자다. 친구들과 함께 몸으로 놀아보지 못한 아이는 사회성을 키우지 못하거나 더디다. 놀이는 상상과 그에 따른 규칙 안에서 이뤄진다. 가령 전쟁놀이를 하는 아이들은, ‘탕탕탕’ 하는 목소리와 함께 실제 총알이 발사됐다고 상상하며 논다. 이 상상에 동의한 아이들끼리 함께 놀이가 이뤄진다. 그러다 놀이에 참여하는 아이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면, 자연스레 새로운 상상과 규칙이 생겨난다. 아이들은 이 과정에서 수많은 갈등 상황을 만난다. 이때 아이들은 상대방을 이해하고,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며, 타협하는 방법과 내성을 기른다.


사실 상담창구를 찾은 나정이 엄마도 유년 시절 행복하게 놀아본 경험이 없다. 그는 부유하고 엄격한 환경에서 많은 것을 누렸지만, 오빠나 친구들과 정신없이 놀아본 경험은 거의 없다고 했다. 나정이 엄마는 “요즘 나정이 모습을 보며 ‘나도 어렸을 때 사람들과 충분히 놀지 못했구나’라고 느끼게 된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아이들에게 놀이를 허락하지 않는 부모들은 대개 ‘슈퍼맘 콤플렉스’에 빠져 있거나 자신이 놀아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놀아본 경험이 없거나, 놀 때 느낀 행복에 대한 기억이 흐릿한 부모에게 놀이는 ‘쓸데없는 짓’ ‘왜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시간 낭비’로 보인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쓸데없는 짓을 그만두도록 유도하는 것을 의무라고 생각한다. 이향숙 한국아동청소년심리상담센터 원장은 “아이들에게 ‘언제 사랑받는다고 느끼느냐’고 물으면 ‘엄마가 나랑 놀아줄 때’라고 답한다”며 “부모들과 아이들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것이 놀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부모에게 원죄를 씌우는 것은 최악의 처방이다. 전문가들은 상담창구에 아이를 데려온 엄마에게는 ‘친정이 가까이 있느냐’는 질문을 제일 먼저 던진다고 한다. 최상철 디딤소아정신과클리닉 원장은 “모든 성인 부모가 ‘유아교육과를 나온 것이 아니다. 부모라고 완벽할 순 없다’고 생각하면 ‘엄친아의 엄마’라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아이들과 놀고 싶어도 놀 시간이 없다고 항변하는 부모들도 많다. 하지만 ‘놀이는 사소한 것’이라는 생각을 갖는다면, 달라질 수 있다. 김지훈 부산대 어린이병원 정신건강클리닉 교수는 “ ‘엄마가 퇴근 후에 하루 30분 동안 너와 꼭 놀 거야’라는 식으로 아이가 놀이 시간을 예측하도록 하고, 이 시간에는 완전히 집중해서 노는 것이 중요하다”며 “다만 부모는 아이보다 한발자국 뒤에서 따라간다는 느낌으로, 아이에게 놀이의 주도권을 주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한익 서울우리아이마음클리닉 원장도 “아이와 노는 것이 재미있어지려면 부모가 아이의 나이로 퇴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참교육학부모회·서울 노원·도봉구청 공동기획>

<곽희양 기자 huiyang@kyunghyang.com>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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