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님이 쓰신 글을 퍼왔다.

새겨둘 만한 글이라 담아두고 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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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열 살까지 얼마나 실컷 놀았느냐에 따라 아이의 상상력이 좌우된다



“나는 앞으로 일본에서는 신분이나 권력이나 돈에 의한 ‘계급사회’가 아니라, 독서 습관이 있는 사람과 독서 습관이 없는 사람으로 양분되는 ‘계층 사회’가 생겨날 것으로 보고 있다. ”

 

『책을 읽는 사람만이 손에 넣는 것』(비즈니스북스)의 저자인 후지하라 가즈히로는 이렇게 주장한다. 그는 대학생 6명에게 도서관에 있는 서적이나 인터넷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조건으로 리포트를 작성하게 만들었다. 하루 독서 시간이 제로인 학생이 네 명, 30분인 학생이 한 명, 두 시간인 학생이 한 명이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인터넷 검색만으로 완성한 리포트는 논리적 전개가 부족하고 여러 갈래로 퍼진 주제를 제대로 편집하지 못했다. 정보를 있는 대로 죄다 끌어 모아 나열했을 뿐,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게다가 자신만의 의견도 거의 없었다. 반대로 도서관에서 책을 빌린 학생은 주제를 잘 뽑아냈다. 스스로 가설을 세워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었다. 이 학생은 책을 접함으로써 논리적인 사고를 하는 것은 물론, 나름의 논지를 전개했다.

 

후지와라는 “새삼 느끼는 것은 독서를 통해 지식의 인풋을 축적해 나가지 않으면 자신의 의견이라는 것은 결코 생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인터넷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책으로는 얻을 수 없는 여러 가지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터넷에 얻은 정보만으로는 얕은 사고밖에 할 수 없다는 의견에는 나 역시 전적으로 동의한다. 깊게 논리적으로 사고하기 위해서는 절대 책을 빼놓을 수 없다.”

 

저자는 성장 사회에서는 퍼즐형 사고와 정보 처리력이 요구되었지만, 성숙 사회에서는 레고형 사고와 ‘정보 편집력’이 필수적인 기량이라고 말한다. 정보 처리력은 조금이라도 빨리 정답을 찾아내는 힘을 말한다. 과거의 교육은 주로 ‘보이는 학력’이라는 정보 처리력을 키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21세기형 성숙사회에서 요구되는 자질은 정보 편집력이다.



“정보 편집력은 익힌 지식과 기술을 조합해서 ‘모두가 수긍하는 답’을 도출하는 힘이다. 정답을 맞히는 것이 아니라, 수긍할 수 있는 답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모두가 수긍하는 답을 도출하는 힘이란 단순히 퍼즐 조각을 정해져 있는 장소에 넣는 것이 아니라 레고 블록을 새롭게 조립하는 것이다. 정답은 하나가 아니며 조합 방법에 따라 무궁무진하다. 그런 가운데 자기 나름의 세계관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 없느냐가 요구된다. 하나의 정답을 찾는 정보 처리력에서 필요한 것이 ‘빠른 머리 회전’이라고 한다면 정해진 답이 아닌 새로운 답을 찾아가야 하는 정보 편집력에는 ‘유연한 머리’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앞으로 정보 편집력이 중요해진다고 하지만 정보 처리력과 정보 편집력은 자동차의 양바퀴와 같다. 초등학교에서는 정보 처리력에 비중을 두어 기초 학력을 키우는 것이 중심이 되어야 하지만 상급 학교로 갈수록 정보 편집력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 그렇다면 정보 편집력을 어떻게 키워나갈 수 있을까? 저자는 다섯 가지 응용력과 하나의 기술을 제시한다. 다섯 가지 응용력은 다음과 같다.

 

1. 소통하는 힘(다른 생각을 지닌 타인과 교류하면서 자신을 성장시키는 기술) : 국어, 영어

2.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힘(상식이나 전제를 의심하면서 유연하게 복안사고를 하는 기술) : 수학

3. 시뮬레이션하는 힘(머릿속에서 모델을 그려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유추하는 기술) : 자연과학

4. 롤플레잉하는 힘(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이나 마음을 상상하는 기술) : 사회과학

5. 프리젠테이션하는 힘(상대방과 아이디어를 공유하기 위한 표현 기술) : 실기교과(음악, 미술, 체육, 기술, 가정)

 

비판적 사고력을 뜻하는 ‘크리티컬 싱킹’은 이 다섯 가지 능력과 더불어 정보 편집력을 높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한 가지 기술이다. “크리티컬 싱킹의 본질은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여 주체적인 의견을 지니는 태도, 즉 본질을 통찰하는 능력을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크리티컬 싱킹을 ‘복안 사고’라고 표현하고 싶다. 사물을 단락적인 패턴만 인식하는 것으로 포착하지 않고 다면적으로 포착하는 것이다.”

 

저자는 다섯 가지 능력과 하나의 기술을 키우기 위해서는 독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누누이 강조한다. 하지만 책만 읽는다고 해서 정보 편집력이 키워지지 않는다는 것도 강조한다. 그러면 무엇이 더 필요할까? “정보 편집력을 확실하게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예기치 못한 만남이 중요하며, 그것을 일상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놀이’다.”

 

“우리는 놀이를 통해 문제에 부닥쳤을 때 그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이런 위기 상황을 어떻게 모면할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그때그때 일어나는 복잡한 상황에서 다양한 정보를 수용하고 판단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정보 편집력이 키워진다. 또 이런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부닥치는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또한 키울 수 있다. 어떤 놀이라도 다양하고 복잡하며 변화가 풍부하다. 막상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요소가 많아 늘 수정이 필요하다. 즉 ‘정답주의’로는 놀이를 즐길 수 없다는 말이다.

 

놀이는 성숙 사회에 꼭 필요한 정보 편집력의 토대가 된다. 특히 어린 자녀를 둔 독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아이가 열 살까지 얼마나 실컷 놀았느냐에 따라 아이의 상상력이 좌우된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자.”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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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아이들에게 부모가 살아온 방식으로 가르치는 것처럼 위험한 것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지금의 부모 대개는 뾰족한 수가 없다고 여긴다. 아이들이 가여울 수밖에 없다.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바라보면 어떨까? 조급해하지 말고.... 말처럼 쉽지 않다고? 그럴 수도 있겠지. 

이 글을 읽고 기본소득과 교육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볼 기회를 갖는다면 좋겠다.



[제정임의 문답쇼, 힘] ③ 김대식 교수 “다가온 인공지능시대··· 기계처럼 일한다면, 당신은 위험하다”


뇌과학자인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 김대식(47) 교수는 인간의 정신노동을 대신하는 인공지능이 곧 대부분의 일자리를 위협할 것이라며 “지금 기계적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은 창의성 있는 인간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인공지능시대를 맞아 교육, 복지, 조세 등의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며 “아무것도 안 하면 자동으로 디스토피아(지옥)로 가는 것이고 유토피아(천국)를 만들려면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4월 7일 SBS CNBC에서 방영된 <제정임의 문답쇼, 힘>에 출연해 이같이 밝혔다. 다음은 이날 방송의 주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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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SBSCNBC <제정임의 문답쇼, 힘>에 출연한 뇌과학자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가 인공지능이 가져올 교육, 사회, 경제 등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SBSCNBC



■인간의 뇌를 모방하는 인공지능 연구

제정임(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교수님은 뇌과학을 연구하시죠.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학문인데, 뇌과학이란 어떤 연구인가요?

김대식(카이스트 전기ㆍ전자공학과 교수): 우리가 뇌를 연구할 수 있는 분야는 첫 번째로 뇌를 생물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의사들이 뇌 질병이나 자폐증·치매 등을 연구하는 상당히 중요한 분야죠. 두 번째는 인지 뇌과학입니다. 약간 심리학적 개념으로 ‘도대체 생각이라는 것은 어떻게 하는 걸까’, ‘머리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왜 우린 이런 상황에서 이런 판단을 하는 걸까’라는 것을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세 번째 분야는 약간 공학적인 개념입니다. 뇌는 우주에서 단 하나뿐인 자아를 만들 수 있고, 생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계잖아요. 우리가 지난 몇 십 년 동안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려고 노력했는데 성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차라리 우리가 알고 있는 유일한 예제, 생각이라는 것을 만들어내는 뇌를 모방해서, 또는 거꾸로 역공학해서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어보자는 것이 뇌 공학, 또는 인공지능 분야입니다. 제 연구 분야는 뇌공학과 인지 뇌과학 정도입니다.

제: 그런데 얼핏 생각하면 우리의 뇌는 단백질 덩어리고 컴퓨터의 CPU(중앙처리장치)는 실리콘, 여러 가지 금속, 플라스틱인데 어떤 원리가 비슷할까요? 인간의 뇌와 인공지능의 작동원리는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궁금해요.

김: 뇌를 복사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뇌는 말씀하신 대로 단백질이고 그 안에 신경세포가 10의 11승이 있고, 또 10의 15승 되는 연결성을 가지고 있고, 정말 무한으로 복잡한 기계인거죠. 이것을 복사하는 방법은 아무도 모릅니다. 뇌를 복사하기 위해서는 그냥 아이를 가지면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은 뇌를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뇌가 가장 잘하는 것, 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을 모방하는 것이죠.

■뇌 과학자가 던지는 철학적 질문의 의미

제: 교수님이 쓰신 여러 가지 글을 보면 존재는 왜 존재하는가, 삶은 왜 의미가 있어야 하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셨어요. 뇌 과학자인데 왜 이런 질문을 할까요.

김: 네. 자주 듣는 질문입니다. 제가 그러면 되묻습니다. 본래 그런 질문이 과학자가 해야 할 질문이 아니냐고요. 현대 과학의 시작은 어떻게 보면 3000년 전의 그리스겠죠. 수염 난 할아버지들이 하얀 수건 같은 것을 두르고 지중해 바닷가에 누워서 하늘을 보신 거잖아요. 은하수부터 시작해서 초롱초롱한 별들을 보면서 너무 궁금했겠죠. 도대체 저게 뭘까. 그리고 드디어 이분들이 종교나 전설이 아니고 논리와 이성을 사용해서 세상을 이해해보자고 하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신 거죠.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가 안 풀리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이분들이 조금씩 방법론적으로 나뉘기 시작한 거죠. 어떤 분들은 수학을 사용해야 된다, 어떤 분들은 실험을 해야 한다, 어떤 분들은 시를 쓰자, 어떤 분들은 그림을 그리자, 어떤 분들을 철학을 해야 한다. 결국은 저희가 지금 알고 있는 철학, 문학, 예술, 수학, 과학은 사실 인간의 동일한 노력에서 나온 것이죠. 세상을 이해하고 싶은 노력이요. 이해하는 방법이 다양할 뿐입니다. 다시 말해서 제가 지능, 또는 뇌에 대해서 연구할 때는 수학이나 코딩 등 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하지만요. 뇌라는 것이 지구에서 상당히 특별한 인간이라는 동물을 가능하게 하고, 더 재미있는 건 뇌에 대해서 생각하는 나 자신도 뇌 덕분에 생각할 수 있게 합니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가 철학적인 질문을 배제하고서는 이런 (과학적인) 질문으로 접근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제: 철학자의 질문을 던지고 과학자의 답을 얻는 것이군요.

김대식 교수는 철학적 질문을 하지 않으면 과학적인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 <제정임의 문답쇼, 힘> 화면 갈무리



제: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 알파고 간의 세기의 대결이 벌어져서 폭발적인 관심을 모았는데요. 하필이면 대한민국 서울에서 벌어지는 바람에 우리나라 국민들이 잘 몰랐던 인공지능에 대해서, 인공지능이 불러올 사회변화에 대해서 엄청난 각성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그 분야를 전공하신 김대식 교수님은 이번 대국을 어떻게 보셨나요?

■‘이세돌 승리’ 확신은 기계를 몰랐던 인간의 실수

김: 대한민국 국민들이 이세돌 9단에게 항상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세돌 9단이 중국인이 아닌 한국인이라는 것에 대해서요. 하필이면 중요한 21세기, 2016년 3월에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국이 서울에서 벌어졌어요. 딥마인드에서 3월에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을 하겠다고 했을 때 저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저는 당연히 이세돌 9단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신문 칼럼에도 썼고, 인터뷰도 했고요. 대부분의 전문가들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인공지능 전문가, 바둑 전문가는 물론 이세돌 9단께서도 본인이 이긴다고 했죠. 

우리가 왜 이런 예측을 하게 됐을까. 알파고는 인간을 아주 잘 알고 있었어요. 수십만 번 사람들이 둔 바둑 기보를 가지고 학습했잖아요. 그런데 거꾸로 우리는 기계에 대해서 잘 몰랐습니다. 우리가 유일하게 알 수 있었던 것은 네이처지 논문에 나온 내용과 2015년에 알파고가 유럽챔피언 판후이하고 뒀던 바둑기보예요. 모든 전문가는 판후이가 프로급으로 1단 정도 할 것 같다고 했어요.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알파고도 당시에 그렇게 잘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냥 판후이보다 조금 더 잘했죠. 많은 분들이 이세돌은 9단이고, 알파고는 한 3단 정도다, 작년 10월부터 올해 대국까지 약 6개월이 있는데 알파고가 진화하더라도 5단~6단이다, 아무리 잘하더라도 7~8단이지 9단은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고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아주 신기한 일이 벌어졌죠. 3월 9일 첫 대국에서는 사실 이세돌 9단이 그렇게 잘하지 못했을 거예요. 긴장했겠죠. 그런데 알파고가 조금 더 잘했습니다. 2국에서는 이세돌 9단이 상당히 잘했습니다. 그런데 알파고가 또 조금 더 잘한 거예요. 여기서 우리는 약간 섬뜩한 결론을 하나 낼 수 있는데요. 어쩌면 알파고의 진정한 능력을 아무도 모른다는 겁니다. 알파고는 인간이 아니에요. 다시 말해서 얘는 본인이 딱 이길 만큼만 잘한다는 거죠. 판후이하고 할 때는 판후이보다 조금 더 잘하고, 못하는 이세돌과 할 때는 못하는 이세돌보다 조금 더 잘하고, 잘하는 이세돌과 할 때는 그보다 조금 더 잘하는 거죠. 마치 우사인 볼트가 초등학생하고 달리기할 때 초등학생보다 조금 더 빠르게 달리고, 고등학생하고 할 때는 고등학생보다 좀 더 빠르게 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결론은 우리가 알파고의 진정한 능력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승리를 예측했다는 겁니다. 저도 반성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 대국을 할 때, 기계라는 것을 모르고 봤다면 창의적인 사람이라고 얘기했을 것 같아요. 인간 중 가장 천재적인 기사라고 착각을 했을 겁니다. 결론은 뭐냐면 이번 알파고와의 대국을 통해서 인류 역사에서 새로운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고 보시면 됩니다. 약한 인공지능(독립성과 자의식은 없는 인공지능)은 우리가 잘하면 천국 같은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고 우리가 못하면 지옥 같은 디스토피아도 될 수 있습니다. 단, 우리 인간이 컨트롤할 수 있는 범위일 때 얘깁니다. 강한 인공지능(독립성과 자의식이 있는 인공지능)은 인간이 더 이상 컨트롤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육체노동과 지식노동을 넘어 인공지능 시대에는 기계가 못하는 영역의 개척이 필요하다. ⓒ <제정임의 문답쇼, 힘> 화면 갈무리



제: IBM은 왓슨(인공지능컴퓨터)을 의료 쪽으로 발전시켜서 암 진단에도 응용을 하고 있다고 해요. 그렇다면 구글은 알파고를 앞으로 어느 쪽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전망하세요?

김: 우선 알려진 것으로는 딥마인드에서 올해 초부터 영국 의료보험이죠, NHS(National health Service)와 함께 의료 데이터를 진단용으로 활용한다고 합니다. IBM하고 동일한 비즈니스 모델이죠. IBM하고 구글이 최고의 경쟁사가 되겠죠. 이번에 딥마인드의 경우 바둑을 마스터했고, 작년에는 벽돌 깨기 비디오게임을 마스터했고, 작년 인터뷰를 보면 스타크래프트 대결도 하고 싶다고 말씀하시는데요. 구글 같은 회사가 딥마인드를 인수하는데 천문학적인 돈, 4천억 이상을 투자해놓고 비디오 게임 잘하는 회사로 키우고 싶어 하진 않을 겁니다. 구글이 바둑소프트는 만들지는 않을 것이고, 뭔가로 돈을 벌려고 하겠죠. 다양한 시나리오가 가능하겠지만 소문을 들어보면요, 이번에 알파고 같은 비슷한 알고리즘으로 월스트리트 최고 투자자의 뇌를 한번 분석, 적용해보자는 시나리오가 있습니다. 우리가 워렌 버핏에게 어떻게 투자를 이렇게 잘 하느냐고 질문할 수 있겠죠. 하지만 워렌 버핏은 말로 답해줄 수 있는 게 없어요. 왜냐면 대부분 직관이니까요. 그런데 이런 식으로 투자의 비법이 표현만 된다면, 그 데이터를 구글이 얻을 수 있다면 10년, 20년 내에 월스트리트 최고의 투자자들보다 뛰어난 성과를 내는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을 거예요. 아시다시피 이런 분야를 요새 로보 어드바이저라고 부르는데요. 사실 이미 웬만한 사람보다 좋은 결과를 내고 있습니다. 로열뱅크 오브 스코틀랜드(RBS)에서는 사람들 다 내쫓고 기계로 바꾸겠다고 결론을 냈고요. 성과가 더 좋으니까요. 아직 이분들은 딥러닝 같은 최고 발달한 기술을 쓰지도 않았는데도 그런 성과가 난다면, 알파고와 같은 기술을 도입할 경우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결과가 나올 수 있겠죠.

■인공지능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인간적’이어야

제: 인공지능이 폭넓게 도입이 될 경우 인류가 안고 있는 난제 중 먼저 해결될 수 있다고 기대할 만한 분야가 뭘까요.

김: 상당히 많은 질병의 치료 방법을 기계가 만들어 줄 수 있고요. 무한 에너지를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유토피아 책에서 봤던 것처럼 인공지능이 제대로만 활용되고, 그 생산성의 결과물만 합리적으로 재분배된다고 전제하면 국민소득 평균 3만 달러가 30만 달러, 300만 달러가 되지 못하라는 자연의 법칙은 없습니다. 이것이 유토피아인 거죠. 문제는 우리 인간도 결국은 몸 아니면 머리를 사용한다는 거예요. 이제까지 몸을 사용해서 하는 일들은 기계한테 넘겨주고 우리는 머리를 사용하는 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머리를 사용하는 일마저 기계한테 넘겨주면 인간이 갈 데가 없다는 거죠. 물론 새로운 직업들 많이 만들어질 겁니다. 예를 들어서 인공지능 알파고를 예쁘게 꾸며주는 기계 미용사가 나올 수도 있고. 가상현실 작가가 나올 수도 있고요. 그런데 그런 일자리를 다 합쳐도 사라지는 일자리를 대체하기에는 모자라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있습니다.

인공지능 시대가 오면 대부분의 직업들, 특히 우리가 얘기하는 화이트칼라 직업들이 위험해집니다. 1차, 2차 산업혁명 땐 블루칼라 직업들이 위험해졌잖아요. 물론 안전한 직업들도 있습니다. 안전한 직업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요, 첫 번째는 기업이나 사회 또는 조직에서 아주 중요한 선택을 해야 되는 직업입니다. 왜냐면 그분들은 책임을 져야 되거든요. 예를 들어서 요즘 우리가 비행기를 타면 90%의 시간은 컴퓨터가 조종을 합니다. 오토파일럿으로요. 하지만 여전히 파일럿은 필요합니다. 누군가 책임을 져야 되니까요. 만약 우리가 비행기를 탔는데 “재미있게도 오늘은 파일럿이 안 탔다. 알파고 파일럿이 열심히 조종하고 있다”고 방송이 나오면 난리가 나겠죠. 그런 건 불가능할 겁니다.

두 번째는 인간을 이해하는 행위가 필요한 직업입니다. 교육 관련 직업이 많이 해당되고요. 특히 아동교육이요. 또 협상, 광고, 영업, 심리치료사, 예술가와 같은 사람의 심리를 이해해야 하는 직업도 다 그쪽에 들어가겠죠. 인간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가장 크면서도 가장 애매모호한 영역인데요. 창의성이 필요한 직업, 지적인 노동이 있지만 매번 무언가를 새로 해야 되므로 반복성이 없는 직업입니다. 결론은 뭐냐 하면 인공지능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내가 인간적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결국 우리가 분석해야 할 것은 내가 지금 하는 일에 얼마만큼 반복성이 있고 내가 얼마만큼 기계화됐나 하는 것입니다. 솔직히 생각했을 때 내가 하는 일 자체가 나는 이미 반은 기계다, 그때는 많이 위험하거든요. 그렇다면 다시 인간의 세상으로 돌아오셔야 됩니다.

제: 기계가 할 수 없는 영역을 개척해야 되는 군요.

김: 우리가 기계하고 경쟁할 때, 인간이 아무리 기계 흉내를 내더라도 더 좋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더 인간적이어야 되겠죠. 모든 기술이 그렇지만 특히 인공지능은 우리가 잘만 활용하면 유토피아고 잘못하면 디스토피아입니다. 근데 이거는 좀 기억해야 될 것 같아요. 역사에서도 항상 그랬지만, 천국으로 가는 길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아주 쉬워요. 그게 항상 문제인거죠. 우리가 편하게 아무것도 안 하면 100% 지옥으로 갈 겁니다. 자동으로 가는 길은 지옥이고 디스토피아예요. 유토피아나 천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피눈물 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육체노동과 지식노동을 넘어 인공지능 시대에는 기계가 못하는 영역의 개척이 필요하다. ⓒ <제정임의 문답쇼, 힘> 화면 갈무리



■국·영·수에 치중한 교육시스템 전면적 개혁 필요

제: 교육이 좀 달라져야 할 것 같아요. 지금처럼 국·영·수 잘하게 키우는 거로는 불충분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너무 막연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이 문제를 이미 한 번 풀어봤거든요. 1차·2차 산업혁명 때요. 18세기, 19세기에 수많은 폭동과 전쟁이 있었죠. 어떻게 보면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도 1차 기계혁명과 산업혁명의 결과물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해피엔딩으로 왔을까요. 19세기에 있었던 혁신적인 발전 덕분입니다. 크게 3가지 혁신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첫 번째는 프랑스에서 공교육이 시작된 것입니다. 200년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이 문맹이었습니다. 글을 모르는 농부의 자식들이 공장이나 회사에서 일하려면 적어도 글을 읽고 써야 했고, 웬만큼 수학을 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이게 바로 국·영·수의 시작입니다. 당시에는 상상을 초월한 혁신이었습니다. 그때의 기계들은 지적인 노동을 못했잖아요. 모든 프랑스 국민에게 삽질을 더 빨리하는 방법을 가르쳐줘도 불도저가 나오면 끝인 거예요. 그래서 기계가 못 하는 것을 가르치기 시작한 겁니다. 두 번째는 정치적으로 아주 보수적이었던 독일의 비스마르크 수상이 사회보장제도를 만드신 거예요. 안 하면 폭동이 일어날 테니까요. 그래서 사회보장제도로 노후대책, 의료보험, 실업자 연금 같은 걸 만드신 거죠. 마지막으론 영국에서 세금제도를 바꿨습니다. 그전까지 국가 대부분의 소득은 농업을 통해서 왔는데, 농업이 없어지고 공장이 생기니까 부가가치세라는 게 만들어졌습니다.

지금 우리도 비슷한 걸 또 한 번 해야 합니다. 첫 번째는 교육이에요. 20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대한민국에서는 18세기 초 나폴레옹 때 만들어진 공교육을 갖고 있어요. 국·영·수죠. 문제는 지금 10대들이 20년 후에 노동시장에 들어갈 때, 다른 건 몰라도 기계가 인간보다 국·영·수를 100% 더 잘 할 거라는 겁니다. 따라서 저희가 이 시점에 국·영·수를 가르치는 것은 200년 전 프랑스 국민에게 삽질하는 걸 가르치는 것과 똑같은 겁니다. 기계가 하지 못하는 것을 가르쳐야 되겠죠.

두 번째로 사회보장제도도 생각을 해야 합니다. 비스마르크시대에는 100% 일을 하고 사람들이 60~65살까지만 산다는 전제에 만들어진 시스템인데요, 50%만 일을 하고 100살까지 살 때는 안 됩니다. 직업이 더 많이 생기면 아무 문제 없겠지만, 지금으로서는 50% 정도는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수준의 일자리가 없습니다. 어쨌든 이분들한테도 소득이 있어야 하잖아요. 소비자니까요. 알파고가 제일 못 하는 것 중 하나가 소비입니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소비를 해야 하니까, 소비하는 능력에 대해 우리가 소득을 줘도 되겠죠. 물론 내가 자아실현을 하지 않고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소비하는 것만으로 소득을 받는다면 노예근성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 소득만큼은 보장해야 한다는 거죠. 이 기본소득은 유럽에서 쓰는 단어고 미국에서는 역소득세인데 똑같은 얘기예요.

제: 최저한도의 소비 수준을 유지시켜줄 만큼은 주자는 거죠?

김: 사회에서 소비가 필요하니까요. 그렇다면 소비를 유도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어떻게 해서라도 만들어줘야 된다는 거예요.

제: 그렇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일자리를 나눠서 모든 개인이 일을 통해 자아실현 할 수 있는 길은 열어 줘야 된다는 거죠?

김: 그렇죠. 근데 여기서 얘기하는 일이라는 게 기존의 일과는 완전히 다를 수 있습니다. 결국 그 일이 직접 사회에 생산성을 늘리는 일은 아니고, 가상직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얘기하는 인공지능시대 같은 식으로 많은 분들은 기본소득만 있으면 되겠다고 하는데, 이미 그런 사회가 있습니다. 미국의 노스다코타 같은 경우는 미국 원주민들이 사는 도시가 있어요. 인디언들의 땅을 뺏은 미국이 죄책감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기본월급을 주고, 모든 의료혜택과 교육이 무료입니다.

제: 먹고 살수는 있도록 해주는 거죠.

김: 그렇다면 이분들이 시를 쓰고 철학을 할까요? 아니요. 미국에서 알코올 중독률이 가장 높습니다. 마약 중독률도 가장 높고요. 그래서 이 경우는 적절한 답이 아닌 것 같고요. 프랑스에서 생각하고 있는 건 가상회사를 만들어서 일자리가 없는 분들을 거기서 트레이닝 시켜줍니다. 새로운 기술을 익힐 수 있게요. 그리고 이분들은 트레이닝을 받고 가상으로 일도 하세요.

제: 사실 지금 우리 경제상황을 생각해보면 참 먼 얘기 같기도 합니다. 우리는 급식 같은 것으로도 싸우고 있는 나라니까요. 하지만 그런 토론의 논지, 근거, 아이디어와 같은 것들을 우리가 주목을 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사회의 큰 흐름 이해할 수 있게 아이들 가르쳐야 

김: 이게 사이언스 픽션(공상과학) 아니냐 하는데, 여기서 우리가 특이점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술의 특징, 특히 인공지능의 특징은 상당히 오랜 기간 또한 천천히 발전하다가 어느 한순간부터 급격하게 기하급수적으로 발전을 합니다. 이 시점을 특이점, ‘싱귤러리티(singularity)’라고 부르는데요, 이날이 온다는 것은 알고 있는데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거예요. 미국에서는 11월 추수감사절에 식구들이 다 모여서 칠면조를 먹잖아요. 11월 25일에 칠면조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칠면조 중 아인슈타인이 과거의 데이터를 가지고 한 번 분석을 해보는 거예요. 보니까 1년 동안 농부가 아침 8시에 와서 먹을 걸 줬거든요. 그 농부는 당연히 좋은 사람이고요. 11월 26일이 조금이라도 다를 것 같지 않다는 거예요.

제: 그렇죠. 과거의 데이터는 항상 그렇게 말하고 있으니까.

김: 대한민국의 미래도 우리가 지금까지 이 작은 문제들을 가지고 항상 싸웠듯이 10년, 20년 100년 계속 갈 거라는 느낌이 나겠지만요. 이 칠면조들은 11월 26일 아침에 일어났을 때 약간 기대하지 못한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깜짝 놀랄 일이요. 이게 특이점의 문제라는 거죠. 어느 한순간 우리도 이런 얘기 하다가 갑자기 다른 세상에 갈 수 있다는 거고요. 노키아 같은 경우에도 망하기 일주일 전까지 노키아 10년 미래를 기획하는 태스크포스(TF)가 있었대요. 자신들도 몰랐던 거예요. 그런 식으로 우리가 인공지능시대에 기본소득을 어떻게 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어느 한순간에 이게 사이언스 픽션이 아니게 될 수 있다는 거죠.

예측 불가능한 인공지능의 특이점(singluarity)이 단순히 터무니없는 사이언스픽션이 아닌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 ⓒ <제정임의 문답쇼, 힘> 화면 갈무리



제: (교육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라는 얘기냐. 이런 답답함을 가지고 있거든요.

김: 저도 답을 모르죠. 제가 그 답을 안다면 인공지능에 대비한 대치동 학원을 하나 차려서 재벌이 되겠죠. 단 우리가 큰 예측을 해볼 수는 있겠죠. 아까 대한민국의 교육시스템, 수능 말씀하셨는데, 그럼 이걸 지금 당장 포기해야 될까. 그건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현실은 인공지능이 세상을 지배할 하루 전까지 수능시험이 있을 겁니다. 어쩔 수 없이 지금 이 현실에 산다면 지금 하는 것은 계속 해야 됩니다. 단, 더해서 미래에 중요하다고 예측되는 것들, 코딩(프로그램방법) 같은 것을 더해야 하고요. 거기서 끝이 아니라,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것도 준비해야 된다는 겁니다. 이게 뭘까요. 아이들이 배워야 될 중요한 기술 중의 하나는 세상을 거시적으로 보는 겁니다. 내가 나중에 변호사가 되든 과학자가 되든 인공지능이 가져올 사회변화가 어디서 언제 튀어나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미래 예측은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단 언젠가는 일어날 것을 알고, 그 언젠가가 100년이 아니라는 것까지만 우리가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일 먼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눈을 크게 뜨는 겁니다. 이게 알파고의 역할이었는데, 눈을 크게 뜨고, 그 크게 뜬 눈을 2주 만에 감지 말고, 계속 사회에 관심을 보여줘야 됩니다.

제: 사회의 큰 흐름에 관심을 갖고 이해를 해라, 파악을 해라, 그런 뜻이죠?

김: 그렇죠. 지금 10대한테도 신문 읽기를 가르쳐주고. 이걸 어떻게 보면 인문학적인 관점이라고도 볼 수 있고요. 사회 큰 흐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라는 것을 우선 가르쳐줘야 될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관심만 갖는다고 되는 건 아닙니다. 관심은 필수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겠죠. 다시 말해서 평생 새로운 것을 공부하고 싶은, 공부할 수 있는, 변화는 세상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가르쳐줘야 되겠죠.

세 번째는, 이게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스킬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선생님이나 부모님의 잔소리를 통해서 사회에 관심을 갖고 적응하는 것이 아니고 내부동기를 심어줘야 된다는 겁니다. 이건 내 인생이고 내 자아고, 내 미래이기 때문에, 내가 나의 미래를 위해서 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무언가를 발견하면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심어주는 것이죠. 이게 제일 어렵죠. 왜냐? 내부동기를 가지기 위해서는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는가?”란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에서 평범한 학생으로 자란다면, 내가 무엇을 원하나, 나는 누굴까 하는 질문을 할 시간이 없습니다. 이런 질문은 학원 2개 다니는 중간 쉬는 시간 10분에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경우에는 고등학교를 독일서 다니다가 고등학교가 싫다고 뛰쳐나온 거잖아요. 1년 동안을 북 이태리의 파비아 도시에서 그냥 놀았습니다. 1년 동안 놀면서 나는 뭘 원하고, 난 뭐가 좋고, 나는 누군가를 생각했죠. 자전거 타고 다니면서 ‘왜 빛이라는 게 있을까?’ 따위의 말도 안 되는 생각들을 하기 시작한 거죠. 물론 여기서 1년 쉰다고 모두가 다 아인슈타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단 아인슈타인 되기 위해서는 ‘여유’를 가져야 된다는 것이죠. 여기서 우리가 얘기하는 아인슈타인은 노벨상을 타는 아인슈타인이 아니라 세상을 창의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 아인슈타인입니다. 우리 인간이 가져야할 능력은 창의성이에요. 너무나도 평범한 답인데, 재미있는 점은 지금 대한민국 현실에서는 대기업에 임원으로 있으면서 창의성 필요 없습니다. 지금은 창의적이지 않아도 잘 살고, 사실 창의적이지 않은 것이 먹고 사는데 더 도움이 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미래 사회에서는 창의적이지 않으면, 또 내가 스스로 세상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없으면, 내가 하는 일은 기계가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이에요.

■정보기술발전 비해 개발 더딘 재난구조 로봇

제: 저는 과학자들에게 막연한 경외감을 갖고 있으면서도 기술에 대해서 한때 냉소적인 생각이 든 적도 있었어요. 작년 재작년에 우리가 세월호 참사를 겪었잖아요. 우리가 우주에도 왔다 갔다 하는 시대에 저 선실 안에 있는 희생자를 수색하는데 저걸 제대로 해낼 로봇이 하나 없나, 기술의 진보라는 게, 재난 로봇이 우리에게 더 필요한 건데 왜 그렇게 진도가 안 나갈까 실망을 했습니다. 이게 기술적으로 더 어려운건가요?

김: 훨씬 어렵습니다. 이런 것들은 저희가 의외로 못합니다. 뭔가가 움직이고 그러기 시작하면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전 세계의 최고 천재들이 최고의 첨단 기술을 사용하고 무한한 비용을 투자하는데도 NASA(미국항공우주국)에서도 여전히, 우주선을 띄우면 다섯 번 중 한 번은 폭발합니다. 그런가 하면 거꾸로 몸이 필요 없는 것들, 물질적이 이동이 필요 없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쉽습니다. 스마트폰, 위치확인시스템 등 정보의 역학은 기대했던 것보다 더 빨리 발전했습니다. 우리가 후쿠시마 재난 로봇 하나 없냐. 너무 맞는 말씀이지만, 거꾸로 우리가 꿈조차 꾸지 못했던 것을 이뤄냈죠. 이 두 가지 기술이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인공지능에서도 비슷한 관점으로 터미네이터 같은 기계가 인간을 밟고 지나가는 미래는 멀어요.

데이터 공개를 꺼리는 한국은 인공지능시대를 앞서가기 어렵다. ⓒ <제정임의 문답쇼, 힘> 화면 갈무리



■데이터 공개 꺼리는 정부와 기업, 인공지능 발전 막아

제: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바이두 등은 검색엔진 회사거나, SNS 회사거나 전자상거래 데이터가 엄청 많은 회사들인데, 이들이 인공지능개발에 앞장서는 것은 빅데이터 사용과 관련이 있는 건가요?

김: 네 그렇습니다. 지금 기계학습적인 인공지능을 주도하는 회사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바이두. 공통점이 하나 있죠. 그건 뭐냐면 인간의 선호도에 대한 데이터를 이미 많이 가지고 있는 회사들입니다. 이번에 알파고에서도 봤지만, 알파고도 바둑에 대한 직관을 얻기 위해서 프로 기사들의 12만개 기보를 가지고 학습을 했다는 거죠. 기계 학습은 항상 데이터가 고픕니다. 구글이나 바이두는 그런 데이터를 이미 가지고 있는 회사입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어떻게 따라 잡아야 할지 고민을 해야 될 텐데, 우리나라는 두세 가지 포인트가 있어요.

첫 번째는 기술자체입니다. 이건 다 소프트웨어잖아요. 알고리즘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다 논문으로 나와 있고 퍼블릭 도메인(공개된 장소)이기 때문에, 몇 달 열심히 공부하면 대부분 할 수 있는 기술이에요. 문제는 두 번째, 데이터가 없죠.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정부와 대기업도 본인들이 만들어내는 데이터조차도 다 막혀 있어요.

제: 제공을 안 한다는 거죠? 연구자들에게.

김: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드는데, 우리는 이름하고 주민번호 알겠다는 거 아니고 통계만 알고 싶은 거예요. 은행, 건강, 행정, 교통, 그 많은 데이터가 있는데 쓸 수가 없습니다.

세 번째는 인력이 없습니다. 우리나라를 총 통틀어 딥러닝 전문가가 20명이 안 될 거예요.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다시 말해서 인공지능 시대를 대비해서 전 세계의 최고의 전문가를 키워야 된다는 겁니다. 제 개인적으로 느낌으로는, 우리나라에 인공지능 전문가 1000명만 키우면 세상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박사학위 받기 위해 5년이 걸립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당연히 접근해서는 안 되고, 우리는 빨리 진행을 해야겠죠. 다시 말해서 저 같으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똘똘한 젊은 친구들 1000명 정도 뽑아서 한 6개월 정도 특공대 공부를 시키겠어요.

제: 국가대표 선수로?

김: 네! 시켜서, 그런 다음에는 곳곳으로 뿌리겠어요. 기업, 국가정부, 국정원, 군대, 다 필요하죠.

다양한 경험으로 다양한 자극을 주자

제: 기계가 따라할 수 없는 인간의 경쟁력을 길러라 했는데, 이 기술의 흐름을 정말 어떻게 따라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다수의 평범한 시청자들을 어떻게 준비하라는 말씀을 좀 해주세요.

김: 우선 미래에 대해서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인간의 뇌는 의외로 적응력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인공시대에 와서 우리가 기계가 못하는 정말 창의적인 일을 해야 한다? 여기서 창의적인 일이라는 것이 대단한 게 아닙니다. 누구나 피카소가 되고 아인슈타인이 돼야 한다는 게 아이에요. 우리 모든 인간은 창의성, 즉 새로운 뭔가를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나폴레옹 시대 만들어진 국·영·수 교육 덕분에 기계적인 인간으로 키워진 거죠.

반복적이지 않고 새로운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가 다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자라는 아이들한테는 이미 가지고 있는 창의력이 사라지지 못하도록 도와주면 되겠죠. 특히 5~7살 때는 뇌가 거의 스펀지 같아서 매일 새로운 단어를 수십 개 배울 수 있어요. 결국 반복된 생활에서 주말마다만 나와도 됩니다. 동물원, 이태원 가는 거예요. 인도식당 가서 손으로 밥을 먹어보는 거예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이 친구들한테는 엄청난 효과를 줄 수 있는 것이거든요.

제: 다양한 경험으로 다양한 자극을 주는 것.

김: 그렇죠. 그렇다면 이미 뇌가 다 굳어버린 우리 어른들은 어떻게 할까. 우리의 하드웨어는 이미 다 끝났기 때문에 우리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알파고의 방법을 쓰는 것입니다. 알파고도 처음 학습데이터를 얻은 다음에 데이터가 모자라니까 셀프시뮬레이션(self-simulation)을 했죠. 알파고와 알파고의 대결을 통해서 새로운 데이터를 만들었죠. 이건우리 어른들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뇌는 더 이상 바꿀 수 없지만, 우리 머리 안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에 대해서 셀프시뮬레이션을 해볼 수 있다는 겁니다. 나와 나 자신과의 토론, 나와 나 자신과의 대화 그리고 사물을 보는 것에 대한 다양한 관점·경험들을 통해서 알파고와 같은 능력을 얻을 수 있는 거죠. 

자, 이 방송이 끝나자마자 우선 TV를 끄세요. 왜냐? TV는 모든 질문과 답이 한쪽 방향에서 나오기 때문에 셀프시뮬레이션이 안 됩니다. 창의성은 뇌가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본인이 던진 질문에 대한 답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거죠. TV를 끄고, 휴대폰을 끄고 인생과 세상에 대한 질문을 구석에 앉아서 하시면 됩니다. 본인이 앉아있는 거실, 아님 카페에서 하셔도 됩니다. 이런 시간을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가지시는 게 어떻게 보면 가장 저렴하고 효율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거죠. 세상에 대한 스스로의 질문 만들기입니다. 아주 쉬운 방법으로, 스스로 실천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되겠죠.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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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의 기적, 그리고 나와 우리의 미래"

 

▷ 일시 : 2014년11월18일(목) 저녁 7시
▷ 
장소 : 에코팜(종로2가 YMCA 1층)
▷ 이야기 손님 : 도법스님


사람마다 세상을 보는 관점도 다르고 입장도 다르기에 말하기 쉽지 않지만, 저는 한국 사회의 통일 문제, 남북 문제를 푸는 데 있어 서로 편갈려서 불신하는 남남갈등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부분을 걱정하는 분들은 많이 계신 것 같은데 드러내 놓고 이야기해 보자 하는 분들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북한 문제를 많이 다루는 분들은 계신 것 같습니다만. 

저는 지리산운동을 했던 사람입니다. 2000년 초부터 지리산운동을 하면서도 한국 사회의 남남갈등 또는 남북분단의 문제 이런 문제를 풀어 가려면 관계된 구성원들이 어떤 형태로든 만나고 대화하고 때로는 미안하다고 이야기도 좀 하고 잘못했다고 이야기도 좀 하고 이래야 문제를 풀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런 생각들이 모여진 것이 생명평화운동입니다. 생명 평화를 주제로 하면 누구나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생명 평화는 진보냐 보수냐 관계 없지 않습니까? 남이냐 북이냐도 관계 없고 친미냐 반미냐, 친북이냐 반북이냐도 관계 없을 것 같고 노동자냐 자본가냐? 기독교냐 불교냐? 이런 것들을 넘어서서 만날 수 있는 가치잖아요. 남북문제는 좌우의 극단적인 대립인데 이 문제를 던져 놓고 이야기 해보자. 그러면 우리가 쌓아 놓았던 벽을 넘어서 만나고 이야기하고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다루는 게 가능하지 않겠는가 해서 그 운동을 쭉 해왔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기도 가고 저기도 가고 그럽니다. 

“네 색깔이 무어냐?” 묻는 사람도 있고 “네 정체성이 도대체 뭐냐?” 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는 회색분자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네 행보는 도대체 뭐냐?”, “나는 갈 지(之)자 행보다. 나는 회색분자고 갈지자 행보를 하는 사람이니까 여기가든 저기가든 그냥 좀 놔둬라.” 하고 말합니다.

지금 어쨌든 제가 알고 있는 수치로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재판 건수가 대략 630만 건이라고 합니다. 일본의 60배입니다. 또 갈등으로 인한 손실이 약 300조 가까이 된다고 합니다. 오늘도 누가 자료를 줘서 보니까 우리 사회에 믿을 구석이 없다는 불신의 수치가 어마어마하게 높더라고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믿음이 깨진 것이지요. 재판 자리에서 사이가 좋아지는 경우는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재판을 많이 하고 있는 것이지요. 어떻게 말하면 모두가 싸움의 주체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300조에 이른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런 부분이겠지요. 


“싸우는 사람은 있는데 싸움을 말리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싸우는 사람이 있으면 싸움을 말리고 흥정을 붙이는 사람도 있어야 하는데 그 역할은 국가 체계로 보면 정부가 또는 정치인들이 해야 할 몫인데, 그런데 정부도 싸움의 당사자가 되어있습니다. 정부가 하는 것을 보면 계속 국론을 분열시키고 대립하게 만듭니다. 대부분 보면. 정치인들도 그런 것을 조장하고 이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싸움판이 있으면 이것을 말라고 풀어가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그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보고 있습니다. “싸우는 사람은 있는데 싸움을 말리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너 뭐하냐 물으면 “세력분자를 세력화하는 것이 내 관심사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면서 우리 문제를 다루고 풀어가는 사회가 좀 그렇게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습니다.


세월호가 우리에게 가져단 준 것들.

세월호 문제 참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어떻게 그 일이 정쟁거리로 갑니까? 그것을 보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생각을 했었습니다. 정부가 못해주니까 유족들이 진실을 알고 싶다고 들고 나온 건데, 정부가 못하면 국민이라도 나서서 그것을 해야 하지 않습니까? 유족들은 지금 너무 힘든 상황이니 우리가 나서서 하겠습니다. 이렇게 사회가 들고 나와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전 세월호 사건이 난 것도 기가 막힌 일이지만 이렇게 유족들이 거리로 나서게 만든 우리 사회도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부가 나쁘다고 백날 이야기 해봐야 입만 아프고 한국 사회도 보면서 참 큰일이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세월호 현상에서 중요한 몇가지 생각들을 했었습니다.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 현대 한국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의 세계관, 가치관, 삶의 방식 한국 사회의 구조나 풍토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 이런 것들이 다 담겨 있는 게 세월호 사건입니다. 그런가 하면 세월호가 우리의 문제도 다 드러나게 했지만 동시에 우리의 문제를 푸는 길도 다 내놓았다고 봅니다. 문제를 드러나게도 했지만 문제의 해답도 보이게 내놓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거기에 주목하지 않고 있다고 봅니다.

사건의 현상만 놓고 보면 특별법 만들어서 법적으로 다루는 것도 그것대로 잘 해가야 한다고 봅니다.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족들이 원하는 대로 특별법을 만들고 법적으로 다룬다 하더라도 그것이 할 수 있는 한계는 뻔하다고 봅니다. 세월호가 드러낸 문제가 무언지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데 법적으로 물을 것만 묻고 있는 것이지요.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세계관이나 가치 의식이나 사회 방식이나 또는 구조적인 문제들이나 관행적인 문제들 풍토적인 문제들을 다 드러낸 사건이라고 한다면 이것을 법적으로만 다루어서 다 짚어질 일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훨씬 더 근원적인 문제들 본질적인 문제들이 있는 것이고 어쩌면 세월호 문제는 그렇게 갔어야 맞는 일인데 특별법 문제에 꼬여서 - 물론 이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기본적인 것인데 - 거기에 다 소진해 버린 느낌이 있는 것이지요 그것도 국론 분열을 불러오면서 말입니다. 

세월호 문제가 그런 총체적인 문제를 다 담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많은 분들이 동의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문제를 정말로 아주 본질적인 문제부터 현상적인 문제까지 정확히 짚어내는 일이 문제를 풀어내는 출발점이라고 봅니다. 법적으로 하는 것은 법적으로 하는 것이지만 그것만 했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문제를 잘 짚어내면 해답은 거기서 나오리라고 봅니다. 

국민들이 보여주었던 반응에서 몇 가지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드리는 것으로 제 역할을 할까 합니다. 세월호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반응이 몇가지로 표현이 되었었지요. 그중에서 이런 표현이 중요하게 생각되더라고요. 

“제발 살아있어만 다오”, “제발 함께 있어만 다오” 이런 반응. 평소에는 내 마음에 드냐 안드냐 나하고 친하냐 안친하냐 나에게 이익이 있냐? 없냐? 공부를 잘하냐? 못하냐? 또 엄마 아빠는 내 말을 잘 듣냐 안 듣냐? 이런 것들이 중요한 판단의 기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월호 사건을 겪으면서는 그런 것 보다 더, 그 이전에 또는 그것을 넘어서 내 딸로 내 아들로 내 친구로 내 이웃으로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야 될 한 사람으로 있어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잖아요. “살아 있어만 다오 제발 함께 있어만 다오” 그 외에는 다 두 번째 문제인 것이지요. 공부를 잘하냐 못하냐 내 마음에 드냐 안 드냐 나랑 친하냐 안 친하냐 나에게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 그런 것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내 아들, 내 딸, 내 친구, 내 이웃, 한국 사회에서 함께 살아야 할 구성원, 한 인간으로 살아 있어만 다오 하는 그 마음은 어떤 것보다도 생명을 가진 한 인간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 각성은 놀라운 것이라고 봅니다. 온 국민이 함께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은 이런 부분들은 세월호가 우리에게 준 기적적인 선물이라고 봅니다. 

세월호 사건이 왜 일어났습니까? 사람보다 돈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 아니었습니까? 사람보다 권력, 사람보다 명예, 사람보다 출세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원인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그 사건을 바라보면서 온 국민이 ‘아 우리가 그동안 그것을 잘 몰랐었구나 잘 못했구나’ 하는 것을 느끼고 있지 않습니까 돈 보다도 명예보다도 권력보다도 재산보다도 그 어떤 것보다도 사람이란 것, 그 자체가 중요하다 인간 존재 가치에 대해서 온 국민이 눈을 뜬 사건. 전 이것은 정말로 그분들에게는 죄송스러운 말씀이겠지만 ‘세월호가 우리에게 준 기적적인 선물이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같은 맥락이지만 “미안해”, “잘못했어”, “이제 달라질게” 그런 바람이라는 것입니다. 이건 어떤 말이겠어요, 아까의 그 이야기와 연결되는 맥락입니다. 네가 내 아들로, 내 딸로, 내 친구로, 내 이웃으로 동반자로 사는 것 보다 다른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살아왔다는 이야기잖아요. 그래서 미안하다는 이야기잖아요. 내가 잘 모르고 살아왔다. 미안하다, 잘못했다 이제 달라질게, 새로워질게 이게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모르긴 몰라도 진보다 보수다, 노동자다 자본가다, 관이다 민이다, 여다 야다. 경상도다 전라도다. 이런저런 이유로 갈기갈기 찢어져 있는데 그 사건을 대하고 국민들이 일으킨 반응은 사실은 거의 다 같았죠 온 국민이 같은 마음이었죠. 

그리고 그 다음엔 
"잊지 않을게, 기억할게, 헛되지 않게 할게 값지게 할게. 세월호 이전의 나와 대한민국하고 세월호 이후의 나와 대한민국이 반드시 달라지게 할게" 하는 다짐이 있었습니다. 

그 반응들을 이렇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특정인들만 그렇게 반응한 게 아니라 온 국민이 그랬습니다. 온 국민이 그렇게 함께 하는 현상을 본 기억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다 편 가르고 있었지요. 붉은 악마 현상 같이 그나마 크게 논란 없이 온 국민이 함께 했던 것이지만 그것은 민족 감정, 경쟁심, 승부욕 같은 것이 건강하게 분출된 현상이었습니다. 세월호는 그와 전혀 다른 것입니다. 나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친분 관계가 없는 누군가의 슬픔, 고통, 문제를 마치 나의 슬픔처럼, 고통처럼, 문제처럼 온 국민이 함께 한 현상입니다. 전 이 현상은 하나의 기적이라고 봅니다.

누군가의 슬픔을, 누군가의 고통을, 누군가의 아픔을 나의 슬픔으로, 고통으로, 문제로 한 것이 바로 거룩한 마음 아니겠는가! 이보다 더 인간적인 마음이 있을까? 이보다 더 아름다운 마음이 있을까? 참으로 이것은 인간적인 마음, 아름다운 마음, 거룩한 마음입니다. 짧은 시간이다 하더라도 온 국민으로 하여금 이렇게 거룩한 마음을, 인간다운 아름다운 마음을 일으키게 한 것이 세월호 사건인데 이건 기적이라고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그래서 저는 세월호의 기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다른 말이 생겨서 욕도 얻어먹고 곤란해지니까 주변에서는 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10년은 천착해야 하는 세월호 문제

저는 한국 사회가 세월호 문제에 적어도 10년은 천착(穿鑿)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속담에 “귀신은 무서워하면 자꾸 덤빈다”는 말이 있습니다. 불편한 것을 피하지 말고 마주해서 이를 풀어내야지 이를 자꾸 피하면 계속 불편한 상황에서 달라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린 힘들고 불편한 것은 피하고 싶어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힘들고 불편하다고 자꾸 피하면 계속 그런 상황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정직하게 맞이하고 정직하게 풀어내는 것이 여러모로 바람직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저는 한국 사회가 세월호가 던진 화두를 붙잡고 10년은 천착을 해야 지금 다짐한대로 세월호 이후의 나와 대한민국이 달리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달라진다는 게 그리 간단할 턱이 없지 않습니까? 온 국민의 누군가의 슬픔을 자기의 슬픔처럼 함께 했다는 사실 이것이 세월호가 우리에게 준 첫 번째 기적의 선물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그 기적을 실현해 가야 하는 것이지요. 그것은 우리 살아있는 사람들의 몫입니다. 내용은 간단합니다. 온 국민이 그렇게 마음을 먹으면 못할게 뭐 있겠습니까? 저는 온국민이 그렇게 마음을 먹으면 통일도 남북 문제 풀어가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고 봅니다. 거기에 해답이 있다고 봅니다, 거기에는 기독교냐 불교냐 하는 벽도 허물어졌고, 여냐 야냐 하는 벽도 허물어졌고 관이냐 민이냐 하는 벽도 허물어졌고 진보냐 보수냐, 자본가냐 노동자냐 경상도냐 전라도냐 하는 벽도 허물어 졌습니다. 모든 벽을 넘어선 것입니다.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모든 벽을 허물고 서서 사람으로 구성원으로 만나고 함께 했던 이런 내용을 나의 이익이냐 편의냐 이런 게 아니라 누군가의 아픔, 누군가의 슬픔, 누군가의 문제를 나의 슬픔처럼, 아픔처럼, 문제처럼 함께 했던 그 고귀한 마음들을 어떻게 생활화할 것인가 이것을 어떻게 사회화 할 것인가가 나머지 과제라고 봅니다. 만약에 그 거룩한 마음이 한사람 한사람에게 생할화되어질 수 있고 사회화 되어 질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기적의 실현이라고 봅니다. 그 보다 더 큰 기적은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요즘에 어디 가서 이야기 할 기회가 생기면 주로 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제 가슴으로는 세월호와 연결시키지 않고는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없습니다. 세월호를 덮어놓고 다른 이야기를 하면 안될 것 같은 마음입니다. 저는 싸움은 말리고 흥정을 붙이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고 그런 중간 지대가 탄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싸우고 있을 때 누가 말리면 못이기는 척하고 그만두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말리는 이가 없으면 싸우다가 갑자기 그만둘 수도 없잖아요. 누가 안 말리면 그냥 계속 가는 것이지요. 그런데 누가 강력히 말리면 그리고 설득력 있게 말리면 또는 힘 있게 말리면 못 이기는 척 물러서기도 격앙된 감정을 추스르기도 하지 않습니까? 한국 사회도 저는 그런 제3지대에 사람들이 힘 있게 있으면 좋겠다 그 길을 열어보자 해서 여기도 가보고 저기도 가보고 그러는데요. 


생명평화운동을 하는 이유



 


이 그림은 지리산 생명평화운동을 하면서 만들어진 그림입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 어떻게 이루어진 곳인지 또는 인생이란 뭔지 나는 또 어떤 존재인지 내가 만나는 너는 누구인지 생명은 또 어떻게 생겼는지 이런 물음에 대한 사실적인 표현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어떻게 살아야 될 지 어떻게 살아야 괜찮을지 이런 물음에 대한 그림설명입니다. 

인간이 알아야 될 것은 두가지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현대인들을 보면 가장 큰 문제가 자기 존재에 대한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자기존재에 대한 관심이 없으니까 당연히 자기존재에 대해 아는 것이 없지요. 달리 이야기하면 인생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어떻게 살아야 인생이 괜찮은가 하는 이런 물음이 없는 것이지요. 

인생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두가지 물음이지요. 그런데 다른 것은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전지전능하신 하느님 정도로 다른 것은 지식이 많습니다. 그런데 자기존재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한 것이지요. 막말로 이야기하면 무식한 것이지요. 또 자기가 아닌 다른 것을 다루는 능력은 대단히 출중합니다. 못 다루는 게 없을 정도이지요. 그런데 자기를 다루는 능력은 또 제로입니다. 자기를 다루는 능력은 무능력에 가깝습니다. 

‘무식하고 무능력하다’라는 질문을 던져 보면 현대인들은 대단히 무식하고 무능력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어쩌면 인생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괜찮은 것인지 이 두가지가 인생에게 던져진 가장 중요한 화두라 할 수 있겠는데 현대인들의 경향을 보면 이기적이고 감각적인 욕망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자기존재의 가치에 대해선 거의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기적이고 감각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게 마치 인생을 잘 사는 것처럼 거기에 다 골몰하고 있지요. 그것이 얼마나 자기 존재 가치를 형편없게 만드는지 그게 얼마나 삶을 파괴적으로 몰고가는지 전혀 모릅니다. 인간은 당연히 이기적인 존재라고 생각하고 이기적으로 살아가는데 미안해하지도 않고 부끄러움도 모르고 있는 것이지요. 기가 막힌 일입니다.

그렇게 되는 데에는 따지고 보면 자기존재에 대한 무관심, 무지에서부터 비롯됩니다. 이 그림을 가지고 더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우리는 내 생명은 내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네 생명은 네안에 있고 내 생명은 내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너는 너고 나는 나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너 없이 나 혼자도 살 수 있어. 여기서 더 나아가면 차라리 네가 없는 것이 더 좋겠어. 여기 사과가 하나 있는데 혼자 있으면 혼자 다 먹을 수 있지만 둘이 있으면 나눠 먹어야 되잖아요. 그러니 네가 없는 게 내게 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좀 더 가면 너 없애고 나만 하겠어. 한국사회는 극단적인 경쟁의 상황이지요. 너를 없애고 나 혼자 하겠어. 이런 것이지요, 그것은 네 생명은 네안에 따로 있고 내 생명은 내안에 따로 있다는 이런 생각 이런 신념체계에 따르기 때문에 너 없이 나 혼자 살 수 있어 너 없는 게 더 좋아 너 없애고 나 혼자 하겠어 이런 것이 당연한 진리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극단적인 갈등과 분열과 대립이 생기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세상에는 따로따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실제로 없습니다. 분리 독립되어서 따로따로되어 있다는 것은 생각이나 말이나 글로만 가능하지 실제로는 없다는 말입니다. 마치 거북이털, 토끼뿔 같은 것입니다. 토끼뿔 같은 것은 생각할 수 있지요. 말로도 할 수 있지요. 글로도 쓸 수 있지요. 그러나 실제로 토기는 뿔이 없습니다. 그건 그냥 관념일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생각으로 있는 것, 말로 있는 것, 글로 있는 것이 진짜 있는 것처럼 믿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예로 짚어 보면 한국 사회에서 1등이 최고야 부자 되면 행복해 이런 놀이인 것이지요. 정말 1등이 최고인가? 정말 1등이 되면 희망이 있는 것일까? 정말 부자가 되면 좋을까? 부자는 행복할까? 생각이나 말이나 글로는 그럴 것 같지만 실제로 이것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대단히 위험한 거짓말이지요. 대단히 나쁜 거짓말입니다. 하지만 이게 진짜인 것처럼 사람들은 다 혈안이 되어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나타나는가? 요즘의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가서 물어보면 너 커서 뭐 될래? 물어 보면 65%가 부자되겠다고 합니다. 왜 그러겠습니까? 할머니 할아버지가, 엄마 아빠가, 삼촌이 선생님이 어른들이 부자가 좋은 거라고 하니까 부자 되면 행복한 거야, 너도 부자되야 해라고 말하고 새해 덕담도 이렇게 바뀌지 않습니까 새빨간 거짓말을, 나쁜 거짓말을 어른들이 진짜처럼 믿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거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이렇게 되는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이러면서 이 사회가 어떻게 건강한 사회가 되기를 바랄 수 있을까? 이러면서 어떻게 인간다운 사회가 가다능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건 도저히 인간다울 수 없는 길입니다. 그런데 대다수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오히려 그게 아니라고 이야기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합니다.


자, 이 그림을 가지고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태양이 없는 지금 내 생명이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태양이 없으면 나는 절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냥 현상으로만 보면 태양과 나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태양이 없으면 여기의 나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부처도 별 수 없고 예수도 별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예외가 아닙니다. 태양과 나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그물의 그물코들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 의지되어 있고 서로 관계 맺고 있고 서로 영향과 도움을 주고 받으면서 존재합니다. 온 우주의 시간, 공간, 유형, 무형, 내면, 외면, 정신, 물질, 인간, 자연 어떤 형태로 표현되어 지던 분리독립되어 따로따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관념으로만 있을 뿐입니다. 실제는 그런 거 없습니다, 그 누구도. 그 어떤 존재도. 태양과 나의 관계가 그러하듯이 그 여타의 모든 관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내 생명은 나 아닌 다른 것들에 의지해서 존재하고 있습니다. 나가 아니라고 생각되는 것을 다 제외시켜 놓고 보면 나라는 것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온 우주는 하나의 살이있는 그물이다

그렇다면 생명은 어떻게 생겼는가? 현대과학에선 생명그물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온 우주는 하나의 살아있는 그물로 이루어져 있다. 낱낱의 존재들은 그물의 그물코처럼 연결되어있고 의지하고 관계맺고 도움을 주고 받으며 존재한다’고 설명합니다.

이렇게 보면 이렇게 생명의 실제 내용을 확인해 보면 전부 연결되어 있다면 세상에 내 생명 아닌게 있겠습니까? 여기 물이 있는데 물과 내 생명을 놓고 봤을 때 어떤게 더 중요하겠습니까? 당연히 습관적으로 인간의 생명이 더 중요하다 하지요. 그런데 물이 없는 인간의 생명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물이 곧 인간의 생명일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이게 분리되어 있으면 가치의 우열을 이야기 할 수가 있는데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의 생명만 더 중요하고 물의 가치는 별게 아니다 이렇게 이야기 할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세상에 대한 유일한 진실은 세상은 함께 살도록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함께 산다는 것! 이게 온 우주의 존재법칙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길은 함께 사는 것 말고 다른 길은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함께 사는데 인생을 걸어본 적 있십니까? 기독교인들이 평화를 이야기 할 때 불교인들을 포함시키겠습니까? 당연히 안하지요 불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현상이 뭡니까 종교전쟁이지요. 우리는 더불어 함께 살자고 이야기는 합니다. 그런데 온통 내막을 들여다 보면 패거리 싸움입니다. 국가란 이름으로, 종교란 이름으로, 민족이란 이름으로, 지역이란 이름으로 그리고 또 다른 이해타산으로 패거리싸움을 하교 있습니다. 나와 내편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서 상대와 상대편을 공격대상으로 삼는 것이지요. 그래서 공격하고 짓밟고 파괴하고 그렇지 않습니까?

왜그럴까? 나라고 하는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모르기에 그런 것입니다. 함께 살아야 하는 사회라는 것을 안다면 내가 머리를 싸매고 열정을 바쳐서 해야하는 것은 함께 사는 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싸워서 이기는 길만 추구해 왔습니다. 너와 나 이웃과 이웃 또는 인간과 자연이 함께 살도록 되어있는 세상이고 존재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든 편갈라 싸우면서 함께 사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저도 종교인입니다만 인류역사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약 60~70%가 종교전쟁이라고 합니다. 허울만 종교인 것이지요. 인간이 하는 일중에서 가장 비인간적이고 잔인하고 야만적이고 파괴적인 행위가 전쟁인데 어떻게 종교의 이름을 전쟁을 벌이는 이게 과연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종교가 일으키는 전쟁이 말이됩니까 그런데 그것이 엄연히 역사입니다. 종교의 이름으로 그러는데 다른 것은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렇게 되는 이유는 첫 출발점은 바로 ‘나는 누구인지 내가 사는 세상은 어떤 곳인지’ 이런 것에 대해서, 존재에 대해서, 존재의 가치에 대해서 우리가 무관심하고 무지하고 또는 잘못할고 있음으로 해서 생기는 문제라고 봅니다. 그러나 함께 살도록 되어있는 세상이기에 우리가 머리를 맞대고 찾아가야 할 길은 함께 사는 길이라고 봅니다.

남북문제도 함께 살아야 한다는 세계관만 투철하다면 남북문제를 푸는 방식도 달리나오리라 생각합니다. 얼마전 탈북자간첩조작사건 변호인과 당사자를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건 정말 생으로 간첩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사회는 북한을 함께 살아야 할 동포로 볼 것인가? 제거해야 할 악마로 볼 것인가? 동포로 본다면 간첩조작 같은 것은 없을 것입니다. 제거해야 할 악마로 보기에 이런 간첩조작 사건 같은 것이 생기는 것입니다. 한국사회는 이 문제를 안풀고는 남북문제를 제대로 바라볼 수 없을 것입니다. 함께 살아야 동포라는 생각으로 접근하면 남북문제의 해법도 어렵지 않다고 봅니다.


우리 함께 산다는 것

결국 우리가 인생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화두에 부실하게, 투철하지 않게 천착하고 살았기 때문에 저는 세월호라 하는 비극이 벌어졌다고 봅니다. 함께 산다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서로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하고 고마워하고 배려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자꾸만 하나 되자고 하는데 하나가 되면 안됩니다. 삶이 불가능해집니다. 여기 이 바닥과 내가 하나가 되면 걸을 수 있겠습니까? 완전히 따로 떨어져도 허공을 밟고 걸을 수는 없기에 역시 걸을 수 없습니다. 굳이 이야기 하다면 왼손과 오른손 같은 것입니다. 왼손과 오른손은 몸으로 보면 한몸인 것이고 그러면서도 분리된 다른 손이지 않습니까

하나이면서 분리되어 있는 것이고 분리되어 있으면서 또 하나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이분법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우리는 관념적으로 불의는 싹 없애버리고 정의만 넘쳐나는 세상을 바랍니다. 그러나 과연 불의가 없고 정의만 존재하는 세상은 가능합니까? 그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손바닥과 손등 같은 것이고 동전의 양면 같은 것입니다. 정의와 불의가 동전의 양면이라 한다면 정의와 불의를 바라보는 태도도 달라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인생이란 뭔지 사실적으로 확인해 보면 어떻게 살 것이냐가 저절로 해답이 나옵니다.
 너 없는 나는 존제할 수 없게 때문에 너의 존재가치, 너에 의지해서, 나무에 의지해서, 태양에 의지해서, 이웃에 의지해서 존재하고 부모에 의지해서 물에 의지해서 밥 의지해서 존재하고 상대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부모님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것은 나를 낳아서 질러주었기 때문이니 세상에 내 생명에 하느님, 부처님, 어버이 아닌 존재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있게끔 만든 그 누군가의 존재가치를 진심으로 존중하고 보호하고 고마워하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그렇게 되면 편안하고 따듯하고 인간다운 사람이 될 것이고 이런 대접을 받으면 역시 기분 좋을 것이고 이렇게 사는 게 함께 사는 길이라고 봅니다. 단순합니다. 복잡한 논문, 박사학위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삶이 복잡하다는 것은 사람의 생각이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숨을 쉬기에 살고 숨은 저절로 쉬어지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쉽게 생각하는 숨쉬기를 세월호의 아이들은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숨을 쉴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숨을 쉴 수 있는 조건을 누군가가 만들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절대 공짜가 아닙니다. 저 하늘의 태양이 숨을 쉴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에 곧 돌아올 엄동설한에 저 산위의 나무들이 제 할을 을 해주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은 온 우주에 존재하는 누군가가 자기 위치에서 제 역할을 정상적으로 해 주기 때문에 숨을 절로 쉴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지고 내가 숨을 쉬면 사는 것입니다. 즉, 온 우주의 신세를 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겠습니까? 누군가의 신세로 우리가 살고 있다면 나도 그 도리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삶은 엄중합니다. 가장 중요한 가치는 공짜입니다. 가장 무서운 가치도 가장 위대한 가치도 공짜입니다. 가장 비싼 가치도 공짜입니다. 왜 그럴까요? 공로 숨을 못쉬면 인간은 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꼭 나의 이익을 위해서만 삶을 소중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가능하게 새주는 이 세상에 대한 당연한 도리로서도 우리 삶을 잘 살아야합니다. 

저는 오히려 우리가 세월호라는 화두를 통해서 우리 삶에 대한 본질적인 성찰과 근원적 자각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는 온 국민이 해야하는 일이지 대통령이, 장관이, 국회위원 몇 명이 해야하는 일인 아니라고 봅니다. 그래서 새로운 세계관과 가치관과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세월호의 비극은 계속 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세월호가 준 기적의 선물을 잘 파악하고 이 기적의 선물의 실제 삶으로 사회로 구현될 수 있게 하는데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지혜를 모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마음들이 모아지면 희망래일이 고민하는 통일문제도 멋있게 바람직하게 푸러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2014년 희망래일 대륙학교 녹취록입니다.
* [녹취 : 이종수]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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