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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줄 보드게임 12선

2014년 12월 2일  |  By:   |  문화  |  댓글이 없습니다

보드게임과 카드게임의 유용성은 많습니다. 휴식과 즐거움을 주고 타인과 교류를 할 수 있게 하며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비디오 게임과 달리 모니터에서 풍겨나오는 중독성 분위기도 없고 옆사람을 꼭 눌러야 겠다는 경쟁적 분위기도 덜하죠. 게다가 보드게임을 통해 역사를 배우고, 창의력을 높이며, 수학 능력을 일깨우고 협동 정신을 높이는 것도 가능합니다.

물론 아예 교육적 목적으로 제작된 게임도 있지만, 그런 유아용 게임을 친구와 함께 하기는 어렵겠지요. 파티를 주최한 사람이라면 먼저 재미있는 보드게임을 보여주는 게 첫째고, 게임을 통해 얻는 교훈은 부산물일 것입니다.

여기 게임 자체로 재미있으면서도 당신을 좀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멋진 보드게임 12개를 소개합니다.(역자 주: 게임 이름은 한국에서 판매되는 이름으로 표기했습니다)

작문 능력과 창의심을 기르는 게임
1. 옛날 옛적에(Once Upon a Time)
이름에서 드러나듯, 《옛날 옛적에》는 동화속 나라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게임입니다. 카드에 적힌 소재를 이용해서 게임 참가자는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하는 데 누가 더 독창적이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막히지 않고 제시하는 지가 승부를 가릅니다.
이 게임은 미처 몰랐던 친구의 창의력을 발견하는 기쁨을 주며 전문 작가에게는 영감을 떠올리는데 도움을 줍니다. 학교 현장에서 특히 인기가 있어서 교실에 비치된 경우가 많습니다.

2.딕싯 여행(Dixit Journey)
딕싯은 이쁜 그림들로 구성된 카드게임입니다. 자신이 들고 있는 카드가 어떤 카드인지른 설명해야 해야하는데 그림이 추상적이고 몽환적인 경우가 많아 설명하는 과정이 웃음을 자아냅니다. 창의적이고 기호론적인 전략을 짜야하며 노래나 몸짓으로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3. 로리의 스토리큐브(Rory’s Story Cubes)
로리의 스토리큐브는 《옛날옛적에》와 비슷한 이야기 짓기 게임이지만 이야기 소재가 판타지 동화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보다 훨씬 단순하고 규칙에 덜 얶매입니다. 카드 대신 주사위를 던져서 나오는 문양에 따라 즉흥적인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1명에서 12명까지 즐길수 있습니다.

협동심을 기르는 게임
4. 판데믹(Pandemic)
보드게임 중에는 상대와 경쟁하고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협력을 강조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 중에서는 이 《판데믹》게임이 최고입니다. 참가자는 한 팀이 돼서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세상을 지켜야 합니다. 과학을 무기로 질병을 막아야 하지만 감염을 저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5. 우주사관학교(Space Cadets)
《판데믹》과 같은 협동게임의 문제점은 특출난 리더 한명이 게임을 지배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리더가 하는데로 나머지는 따라갈 수밖에 없죠. 《우주 사관학교》는 제각기 고유한 특징과 역할이 있어서 각자가 고르게 참여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6.포비든 아일랜드(Forbidden Island)
최근 나온 협력 게임가운데 가장 유명한 게임입니다. 가라앉는 섬에서 참가자는 지혜를 모아 보물을 찾고 탈출해야 합니다. 서로 전략을 나누고 목표를 공유하고 영광을 독차지하지 않아야겠죠.

수학 계산 능력을 키우는 게임
7.카멜업(Camel Up)
계산 게임은 수도없이 많지만 카멜업은 독특한 면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보드게임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독일의 올해의 게임상(Spiel Des Jahres)을 수상했죠. 낙타 경주 게임으로 확률과 점수 계산 능력을 겨룹니다.

8. 레모네이드 가게(Lemonade Stand)
레모네이드 장사를 하면서 돈을 법시다. 가벼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경영 투자 게임이지만 날씨라는 변수에 따른 가격 조정을 잘 해야 합니다

9. 쓰루 디 에이지스
문명 대서사시 게임. 규칙이 복잡하고 경기 시간도 꽤 긴편이지만 한번 배우고 나면 그만한 가치가 있을 겁니다. 정치,자원,주택,식량,일자리,기술,문화,분쟁,과학 등 다양한 요소를 계산해 문명을 경영하는 게임입니다

역사를 배울 수 있는 게임
10. 메모아44(Memoir ‘44)
2차대전 전투 게임으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그날을 잘 재현했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게임을 하고나면 왠만한 역사다큐 보는 것보다 나을 겁니다.

11. 황혼의 투쟁(Twilight Struggle)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의 대결을 소재로 한 게임입니다. 규칙이 복잡하고 게임 시간이 대개 한 시간 가까이 소요되지만 게임을 하면서 냉전 시절 주요 역사적 사건들을 배우고 냉전의 국제정치학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12.폼페이(Dhe Downfall of Pompeii)
고대 로마 시대 폼페이 화산 폭발을 소재로 했습니다. 대재앙 속에서 폼페이를 무사히 탈출하는 것이 게임의 목표입니다. 학습 목적으로 만들어진 게임은 아니지만 유명한 역사적 사건을 돌아보는 시간을 줍니다.

원문출처: 가디언(영국 일간지)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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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 말라. 별 것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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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에 대하여

2014년 10월 23일  |  By:   |  과학  |  댓글이 없습니다

프랭크린 루스벨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유일하게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다.”

매우 정확한 말입니다.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은 보통 두려움 그 자체보다 더 많은 문제를 불러일으킵니다. 물론 이 말에는 어느 정도 설명이 필요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두려움을 싫어하며, 이는 당연하게 들립니다. 두려움은 아래와 같이 간단하게 정의됩니다: 어떤 현상이나 경험을 예상했을 때 우리가 느끼게 되는 불안한 감정.

의학 전문가들은 우리가 두려울 때 느끼는 불안한 감정이 생물학적으로 동일하다고 말합니다. 즉, 우리가 개에게 물릴까 봐, 연인에게 차일까 봐, 그리고 세무조사를 받을까 봐 두려워 할 때 우리는 똑같은 신체적 반응을 나타냅니다.

두려움은 다른 모든 감정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하나의 정보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자신의 두려움을 통해 자신의 심리적 상태를 이해하고 자신에 대해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두려움에는 기본으로 다섯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다른 거의 모든 두려움은 이 기본 요소들의 조합입니다.

  1. 소멸(Extinction)— 자신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이는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 더 근본적인 것입니다. 모든 인간이 가진 근본적인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불안감이 이 두려움과 관련이 있습니다. 높은 장소에서 바닥을 내려볼 때 가지는 공포도 여기에 기인합니다.

  1. 절단(Mutilation)— 신체의 부분을 잃을까 하는 두려움입니다. 인체의 기관이나 부분, 자연적 기능을 다른 존재에 의해 잃게 되는 두려움입니다. 곤충, 거미, 뱀 또는 다른 징그러운 것들에 대한 두려움이 이 절단의 두려움과 관련이 있습니다.

  1. 자유의 상실(Loss of Autonomy)— 움직일 수 없게 되거나, 마비되거나, 제한되거나, 갇히거나, 덫에 빠지거나, 묻히는 것과 같이 어떤 환경에 의해 자신을 제어할 수 없게 되는 데 대한 두려움입니다. 물리적인 차원에서 흔히 “폐소공포증(claustrophobia)”로 알려져 있으며, 사회적 관계에서도 이런 두려움이 가능합니다.

  1. 분리(Separation)— 버려지고, 거부되고, 관계를 잃어버리는 데 대한 두려움입니다. 또 다른 이에게 갈망의 대상으로, 존중의 대상으로, 가치 있는 존재로 남을 수 없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입니다. 집단으로부터 주어지는 “침묵의 벌(silent treatment)”이 개인에게 심각한 심리적 영향을 끼치는 이유입니다.

  1. 자아의 죽음(Ego-death)— 창피함, 수치심 등은 스스로를 부인하게 만들며 자아를 위협합니다. 자아가 파괴됨으로써 더 이상 다른 사람으로부터 호감을 사거나 인정을 받고 존경을 받을 수 없게 된다는 데 대한 두려움입니다.

이 다섯 가지는 간단한 위계 구조를 가집니다. 가장 아래에는 소멸의 공포가 있고 가장 위에는 자아의 죽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은 이들을 바탕으로 모두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소공포증은 기본적으로 소멸의 두려움에 기반합니다. 실패를 두려워 하는 것은 자아의 죽음에 기반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두려워 하는 것 역시 자아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누군가와 가까워지거나 결혼을 두려워하는 것은 자유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 입니다.

질투는 분리의 두려움에 기반합니다. “그녀는 나보다 그 사람을 더 가치 있게 여기는 것 같아.” 질투가 극단에 이르면 자아의 죽음을 느끼게 됩니다. “나는 무가치한 인간이야.” 부러움 역시 같은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부끄러움과 죄책감 역시 분리와 자아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기반합니다. 당황스러움과 창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두려움은 종종 분노의 원인이 됩니다. 억압받는 이들이 억압하는 이들에게 화를 내는 이유는 자유의 상실, 그리고 자아의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입니다. 다른 이들이 자신의 문화나 종교를 무시할 때 역시 자아의 죽음을 느낍니다. 우리를 분노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들입니다.

종교적으로 극단적인 행위들은 자아의 죽음에 대한 공포가 확장되어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불안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만약 나의 신이 진짜 신이 아니라면, 혹은 최고의 신이 아니라면, 나는 신이 없는 상황에 내몰리게 될 것이다. 나는 비정한 자연 앞에 홀로 버려질 것이다.”

당연히 어떤 두려움들은 우리의 생존을 위해 존재합니다. 하지만 어떤 것들은 학습된 반응이며 따라서 없애거나 줄일 수 있습니다.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말은 다소 어색하게 들리지만 아래와 같은 우리의 행동을 생각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어색할 것 같은 모임에 초대 받았을 때 그 모임에 가지 않습니다. 의사와의 약속을 이유 없이 연기하며, 연봉을 올려 달라는 말을 그저 꺼내지 않습니다. 

이것들은 과거 두려웠던 기억 때문에 생기는 본능적 반응입니다. 이 반응은 순간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행동에서는 두려움을 거의 느끼지 않습니다. 단지 진짜 두려움에 대한 압축된 반응인 “미세 공포”를 경험합니다. 이 순간적 감정에 대해 우리는 진짜 두려움을 느낄 때와 같은 회피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이런 반응을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자신이 느끼는 두려움을 그저 자신의 감정이자 정보로 대할 수 있다면 우리는 두려움을 이성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두려움의 원인을 더 명확하고 냉정하게 분석할 때, 우리는 두려움이 우리를 공포에 떨게 하고 조종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싸이칼러지 투데이)

원문 보기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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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 꿈에 나온 양반이 경향에 쓴 글이네.ㅎㅎ

취향... 어쩌면 자기 철학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자기 철학을 대개들 가질 기회가 없거나 눈길을 주지 못했거나...

나라도 예외일 수도 없을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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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양식의 전투 


몇 해 전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노페 열풍’(노스페이스 패딩 열풍)이 있었다. 그즈음 노스페이스 창업주가 한국에서 실적이 좋은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한국엔 산이 많다”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한국에 산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그는 제 상품이 한국 고등학생의 ‘비공식 교복’이라는 사실은 몰랐던 것 같다. 고등학생들은 왜 그리 노페에 집착하고 또 안달했을까? 이런저런 사회문화적 분석을 할 수 있겠지만, 결국 옷에 관한 ‘취향’이 없기 때문이다.

교사들에 따르면 MP3 플레이어(최근엔 스마트폰으로 통합된)에 기획사에서 만들어내는 유행 음악이 아닌 음악, 대중음악의 고전이나 인디음악 파일이 한 개라도 있는 아이는 반에서 하나가 채 안된다고 한다. 왜 그런 걸까? 역시 아이들에게 음악에 관한 ‘취향’이 없기 때문이다. 취향이 없는 아이는 유행하는 것, 즉 남들이 하는 걸 따르게 되고, 따를 수 없을 때 심한 통증을 느낀다.

노페 열풍도 강남에선 통하지 않았단다. 어릴 적부터 노페보다 더 좋은 옷들을 구매해본 아이들에게 노페 열풍이란 촌스러운 풍경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취향이라기보다는 소비 취향이다. 브랜드와 가격으로 표현되는 소비 취향은, 취향처럼 보이는 자본에 의한 ‘취향의 계열화’다. 그러나 주류 대중음악이 아닌 음악을 듣는 아이들이 가장 많은 곳 역시 강남이라는 사실은, 소비 취향의 기회와 취향 사이의 일정한 인과관계를 보여준다. 물론 대개의 아이들은 강남 아이들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취향이 없는 이유는 역시 어른들(부모들)에게 취향이 없기 때문이다. 옷이나 음악뿐 아니라 삶의 여러 부문에서 나름의 취향을 가진 사람, 남의 기준이나 이목에 아랑곳않는 제 나름의 미감과 생활철학을 가진 사람을 찾기란 정말 어렵다. 이를테면 돈에 대한 나름의 주관이나 철학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 단지 다들 ‘돈이 모자란다’고 생각할 뿐이다. 집이라는 게 삶에서 무엇이고 나에게 적당한 집은 어떤 것이며 집을 위해 인생을 얼마나 할애할 것인가 등에 대해 나름의 정리된 생각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 내 집이 작은가 큰가, 싼 집인가 비싼 집인가를 생각할 뿐이다.

이런 상태는 결코 자연스러운 것도 당연한 것도 아니다. 훨씬 더 가난했고 생존이 숙제이던 시절의 사람들도 나름의 취향과 철학을 가졌다는 사실을 떠올려볼 때 말이다. “돈이 중요하지. 하지만 사람이 너무 탐욕 부리면 죄 받지.” 이 흔하디흔한 말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적 위엄을 지키는 삶의 비결을 묘파한다. “공부 열심히 해. 하지만 공부가 인생의 다는 아니야. 동무한테 양보할 줄 알고 잘 놀아야지.” 어지간한 어른이라면 예사롭게 하던 이 말엔 교육 철학의 정수가 담겨 있다.

돈, 집, 직업, 아이 교육, 종교, 사랑 등 삶의 부문들에서 마련된 취향과 삶의 철학들이 모여 하나의 ‘생활양식’을 만들어낸다. 생활양식은 한 인간의 영적 성곽이다. 노페 점퍼를 두 벌 가진 아이가 못 가진 아이를 무시할 순 있지만 옷에 대한 나름의 취향을 가진 아이에겐 별 도리가 없다. 마당이 온통 잡초로 덮인 작고 초라한 시골집에서 혼자 살아가는 병든 노인을 누군들 측은히 여기지 않을까. 그러나 제 생활양식에 의거하여 바로 그렇게 살던 권정생을 측은히 여긴 사람은 없었다.

신자유주의에서 삶이란 곧 생활양식이 파괴된 삶이다. 신자유주의는 단지 ‘보이지 않는 손’에 모든 걸 내맡기는 19세기 경제체제의 부활이 아니다. 신자유주의는 인간의 정신과 영혼을 극단적 개인주의와 물신주의로 개조하려는 강력한 영성운동이다. 신자유주의는 모든 인간이 낱낱이 흩어져 무한 경쟁을 벌임으로써 구원을 얻는, 또 그렇게 살아가는 인간으로 가득한 세상을 유토피아라고 설파하는 종교다. 한국인들은 1997년 이래 그 종교에 포획되었다. 이명박이라는 극단적 추(醜)와 박근혜라는 극단적 악(惡)에 분노하는 ‘정의로운 사람들’의 일상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생활양식은 24시간 내 영혼을 파고드는, 불안감과 경쟁 강박에 전전긍긍하게 하는 종교에 대한 면역체계다. 물론 신자유주의하에서 나름의 생활양식을 온전하게 마련하긴 어렵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내가 지금 당장 마련할 수 있는 생활양식의 범주는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이다. 신자유주의는 정치적 민주주의라는 외피를 쓰고 있기에 그 자체로는 내 삶을 말단까지 장악하기 어렵다. 내가 나름의 생활양식을 가지려 하지 않음으로써 말단까지 장악되는 것이다.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외피를 역이용하여 나만의 생활양식을 만들어갈 수 있다.

아이에게 제 삶과 관련한 취향들을 일찌감치 하나씩 길러주고 돈, 집, 직업, 교육 등 삶의 모든 부문에서 차근차근 나만의 생활양식을 만들어가는 일, 누구도 감히 내 삶의 가치를 함부로 평가하거나 재단할 수 없는 영혼의 성곽을 쌓아가는 일은 일상에서 수행하는 신자유주의와의 전투다. 물론 일상의 전투만으로 신자유주의가 극복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일상에서 전투가 없다면 사회적 차원, 좀 더 거대한 차원에서 전투도 없다. 신자유주의는 경제체제이자 종교이기 때문이다. (경향신문 - 혁명은 안단테로)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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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꿈 이야기를 적어보련다.

일어나자 마자 딱 생각했을 때는 그래도 조금 또렷하게 떠오르는 듯했는데...

몇 시간이 지나서 적으려니 가물가물하다.

앞으로는 일어나자마자 메모를 해보려고 해야겠다.

이놈에 습관은 참 쩔어! 

그래서 마눌님이 나를 쩔은 눈빛으로 보는 건가?

자기는 습관이 잘 잡혀 있고, 나는 개습관이고....ㅠ


암튼 꿈 이야기.


일단 나오는 사람은 김규항 씨가 나왔다. 헐!

그리고 나는 어린이로 나온 것 같았다. 내 기억에 쫌 천진하게 나왔던가? 가물가물하다~

배경은 침대였는지 소파였는지에 김규항 씨가 앉아 있었는지 누워 있었는지 했던 것 같다.

나는 서서 그 양반하고 눈을 마주하고 대화를 한 것 같기도 하고 눈빛만 주고받은 것도 같고... 역시 가물가물!


오늘은 이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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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혜경 샘 말에 따르면, 꿈에 나오는 모든 것은 나의 반영(투사)이라고 했다.

오늘 꿈에 나온 모든 캐릭터와 사물들은 다 나의 또 다른 모습일 터!

너무 파헤치려 하지 말고 일단 꿈 이야기나 써보는 습관을 들이자!

오늘도 자전거 출퇴근 때 고혜경 꿈 특강 되풀이해서 들으며 

꿈으로 나에게 메세지를 주시는 그분께 다가가 보자고!!^^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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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권에서 자주 쓰는(진짜?) 문장 600개!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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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민족 신화기행 바로가기 ]

나비는 영혼이다.

온갖 빛깔의 꽃이 피는 귀한 단풍나무에서 나온 호접마마의 후손들은 나비를 영혼으로 여긴다. 그래서 먀오족(苗族) 사람들은 집으로 고운 나비 한 마리가 날아 들어오면 조상님이 배가 고파 찾아 오셨다고 여기고 상을 차려드린다. 다른 사람과 다툴 때 나비가 나타나면 조상님이 그 다툼을 못마땅해 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싸움을 그만둔다. 푸른 숲 한가운데에서 홀연히 꿈처럼 날아오르는 찬란한 나비, 꿈틀거리는 몸을 벗어버리고 가볍게 훌쩍 날아오르는 나비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영혼’을 의미한다.

먀오족의 성인식. 마을의 지도자 군위안량에 낫으로 머리카락을 잘라주고 있다.


그 호접마마가 알록달록한 빛깔의 알 열두 개를 낳는다. 창세의 신 푸팡(府方)이 커다란 할미새를 불러다가 알을 품으라고 했다. 먀오족의 신화에는 거인 신들이 많이 등장한다. 푸팡은 다리 관절이 아홉 개나 있고 팔이 여덟 쌍 있는 거인이다. 물고기 아홉 광주리, 찹쌀 떡 아홉 통을 먹는 힘센 그가 한데 붙어있던 하늘과 땅을 갈라놓았고, 거인신 양유(養優)는 산을 만들었으며 머리에 뿔이 있는 거인 슈뉴는 강을 만들었다.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 없어서 하늘과 땅이 흔들거릴 때 바오궁(寶公)과 슝궁(雄公), 쥐궁(且公)과 당궁(當公)이 머나먼 곳에서 온갖 고생 끝에 금과 은을 가져다가 녹여 금 기둥, 은 기둥을 만들어 하늘을 받쳤다.

은 장신구로 치장한 먀오족 여성들.

기둥은 만들었지만 해와 달이 없어 세상은 여전히 어두웠다. 신들은 고민했다. 어떤 모양으로 해와 달을 만들까? 돌을 강물에 던질 때 퍼져나가는 둥근 물결무늬가 너무나 아름답다고 생각한 그들은 그 무늬를 모델 삼아 해와 달을 만들었다. 거인 신들은 금으로 열두 개의 태양을, 은으로 열두 개의 달을 만들고 남은 부스러기로 별을 만들었다. 거인 신들이 왼쪽 어깨에 태양을, 오른쪽 어깨에 달을 지고, 소매에는 별을 넣고 허리에는 은하수를 차고 푸른 하늘로 올라가 해와 달을 제자리에 놓았다. 다른 버전에 의하면 하늘에 걸린 해와 달이 자꾸 흔들리니까 남은 부스러기로 별을 만들어 못처럼 하늘에 박아놓았다고 한다. 참으로 아름다운 상상력이다. 하지만 열두 개의 태양과 달이 질서를 무시하고 한꺼번에 떠오르니 활 잘 쏘는 신 쌍자(桑札)가 한 개의 태양과 달만 남기고 다 쏘아서 떨어뜨렸다.

한 개씩 남은 태양과 달은 겁이 나서 숨어버렸고 세상은 암흑천지가 되었다. 숨어있는 해와 달을 불러내기 위해 신들은 온갖 동물들을 보내지만 결국 수탉의 청랑한 목소리에 해와 달이 다시 나온다. 신들은 세상에 다시 빛을 가져다준 수탉의 공로를 기려 예쁜 빗을 하나 주었고, 수탉은 그것을 자랑스레 머리 위에 꽂고 다녔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보는 수탉의 붉은 볏이다.

먀오족의 창세신화에는 이렇게 많은 거인 신들이 등장한다. 서구의 신화에도 세상의 시작에는 거인 신들이 있다. 그 거인 신들의 신화가 피로 물들어 있다면 먀오족 신화의 거인 신들은 선량하기 이를 데 없다. 그들은 지금의 먀오족 사람들처럼 부지런하다. 금과 은을 운반해오기 위해 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고, 해와 달을 하늘로 운반하다가 실수로 해와 달을 물에 빠뜨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슬퍼하는 일이 없다. 언제나 유쾌하게 함께 힘을 합해 끊임없는 노력으로 마침내 창조의 거대한 작업을 마무리한다.

먀오족 여성들이 치마에 수놓는 3개의 선은 그들이 이주할 때 건너온 3개의 강을 의미한다. 역사를 옷에 기록하는 것이다.


한편 노란 알에서 나온 최초의 인간 장양(姜央)은 하얀 알에서 나온 우레신 뇌공(雷公·꺼우하오라고도 한다)과 끊임없이 다툰다. 먀오족의 오래된 노래는 열두 개의 알 이야기에서 홍수이야기로 이어진다.

열두 개의 알에 관한 노래 다 끝났네/ 이제 무얼 부를까/
다른 구연자가 와서 노래 이어 가네/ 홍수가 하늘까지 차오른 노래를 불러야지/

알에서 태어난 장양과 뇌공, 호랑이와 용 등은 누가 땅의 주인인가를 놓고 내기를 한다. 땅은 결국 꾀를 써서 승리한 장양의 차지가 되며 뇌공은 하늘로 올라간다. 그런데 뇌공이 하늘로 올라가면서 개 한 마리만 남기고 소와 말을 모조리 갖고 가버렸다. 세상에 남겨진 개 한 마리를 데리고 농사를 지으려니 농사가 잘될 리 없다. 화가 난 장양은 마침내 뇌공을 찾아간다.

“누렁이가 힘이 없어 논을 갈지 못해. 내게 너의 소를 빌려주면 논을 갈고 나서 돌려주지.”

하지만 장양은 논을 다 갈고 난 뒤에 소를 죽여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고기를 다 먹어버렸다. 소의 꼬리와 뿔만 남겨 논에 묻어두고 장양은 뇌공에게 달려가 슬픈 척 하며 말했다.

“뇌공아. 이를 어떡하지? 논이 질척이고 소는 무거워서 논을 다 갈고 나니 소가 그만 논에 빠져 묻혀버렸단다.”

구이저우성 동남부의 계단식 논.


뇌공은 그 와중에 녹색 비단옷을 챙겨 입고 상투를 잘 매만지고서 논으로 달려갔다. 그랬더니 정말 소의 꼬리와 뿔만 보이는 것이었다. 놀란 뇌공이 소의 꼬리를 잡아 당겨보고 나서 피가 묻어있지 않은 것을 보고 장양에게 속은 것을 알았다.

“네 이놈, 남의 소를 빌려다가 다 먹어버려? 내가 하늘로 돌아가 쇠망치와 도끼를 들고 돌아와 네 놈을 죽일 것이다.”

비단옷을 챙겨 입고 상투까지 틀고 왔는데 장양에게 속아 공연히 힘을 쓰느라 비단옷은 더럽혀지고 상투는 흐트러진 것이 생각할수록 분했다. 이렇게 시작된 그들의 싸움은 팽팽하게 이어진다. 뇌공이 마침내 장양에게 잡혔지만 장양이 외출 한 사이에 장양의 두 아이는 뇌공이 보여주는 현란한 마술에 정신을 빼앗겨 그가 원하는 물과 도끼를 가져다준다. 오누이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한 뇌공은 오누이에게 조롱박 씨앗을 준다.

“나를 살려줘서 고맙구나. 이 씨앗을 심어라. 이틀 후에 창고보다 큰 조롱박이 열릴 거야. 속을 파내고 그 안에 들어가렴. 큰 배가 되어 너희를 보호해 줄 거야.”

하늘로 돌아간 뇌공은 ‘하늘의 배꼽’을 열어 비를 퍼부어 홍수를 일으켰고 착한 오누이는 거대한 조롱박 속에 숨어 대홍수에서 살아남는다. 뇌공과 싸우러 하늘로 올라간 장양은 그곳에 남고, 오누이만 돌아와 우여곡절 끝에 혼인을 하게 된다. 마침내 먀오족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바사 먀오족 마을의 군위안량(滾元亮)이 바로 그 장양의 화신이다. 그의 키는 정말 작다. 군위안량이 어려서 키가 자라지 않자 어머니가 마을의 장로에게 그 이유를 물었고 장로는 귓속말로 어머니에게 말했다고 한다.

“이 아이는 장양의 화신이야.”

먀오족 여성의 치마에 나비 무늬의 자수가 새겨져 있다.

중국 국무원에서 유일하게 총을 지니고 다녀도 된다고 허락해주었다는 바사 먀오족 마을의 지도자 군위안량, 그가 지니고 다니는 총의 크기만큼 키가 자랐을 때 그는 이제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그런 그가 강렬한 지도력으로 마을을 이끈다. 숲 속의 통과 의례에서 오랜 전통에 따라 낫으로 머리를 밀어주는 그의 얼굴에서 단풍나무의 후손, 강인한 장양의 모습을 본다. 오랜 옛날, 동쪽에서 살던 먀오족의 인구가 늘어나고 농사 지을 땅이 부족하게 되자 그들은 좋은 땅을 찾아 서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들을 이끌었던 신화 속의 영웅이 바로 슝궁(雄公)이다. 그는 지혜로움과 용기로 부족을 이끌고 서쪽으로 온다.

좋은 곳은/ 하늘 저편에 있어요/
좋은 생활 하려면/ 산 저쪽으로 가야 해요/

살던 땅을 바라보며 눈물 짓는 이들을 이렇게 달래며 그는 목말라 하는 할머니에겐 찬물 한 모금, 힘들어하는 할아버지에겐 담배 잎 하나를 드리며 그들을 이끈다. 마침내 그들은 세 개의 강을 지난다. 강의근원에 금이 있는 누런 강, 강의 근원에 은이 있는 하얀 강이 나타난다. 사람들이 말한다.

“은이 있는 곳으로 가자. 은이 가장 귀해. 희고 예쁘잖아. 옷에 장식할 수 있는 은이 많은 곳으로 가자.”

“아니야. 금이 은보다 귀해. 누런 강물을 따라 금이 있는 곳으로 가자.”

그러나 슝궁이 말한다.

“금과 은은 다 파내면 끝이지요. 벼꽃 향기 가득한 강으로 갑시다.”

그들은 금과 은을 버리고 벼꽃 향기를 택했고, 그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욕심을 버린 조상들 덕분에 그 후손들은 지금도 구이저우성 동남쪽 벼꽃향기 아름다운 곳에서 자신들만의 세계를 이루고 있으니. 

〈김선자 중국신화연구가〉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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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옴]

구이저우(貴州)성. 중국이 우리에게 성큼 다가온 지금도 구이저우성이라는 이름은 무척이나 낯설다. 그도 그럴 것이 석유 같은 것이 엄청나게 묻혀있어 주목 받는 곳도 아니고 번쩍이는 대도시가 즐비한 화려한 곳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에는 중국 최대의 폭포인 황궈수(黃果樹)폭포가 있고 산둥성 취푸(曲阜)의 공자 사당만큼이나 멋진 건물을 가진 문묘(文廟)가 있다. 명나라 때 중원에서 내려온 군인들의 후손이 몇백년 동안 똑같은 풍습을 지닌 채로 단란하게 살아가는 모습도 볼 수 있지만 무엇보다 이곳에는 중국 소수민족 중에서도 단결력이 강하기로 유명한 먀오족(苗族)이 가장 많이 모여 산다. 그뿐인가, 구이저우성에는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길 갈피갈피에 통족, 이족, 토가족(土家族) 등 여러 민족들이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다. 소수민족에게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숨어있는 보석과 같은 곳이다.

구이저우성 공자사당 문묘의 용조각 기둥.


구이저우성의 성회인 구이양(貴陽)에서 동쪽으로 카이리(凱里)까지 가서 방향을 남쪽으로 틀어 고요하게 흐르는 두류강(都流江) 물줄기를 따라 내려가면 먀오족과 동족들이 사는 첸동남 지역으로 접어든다. 구이저우성은 간략하게 ‘첸(黔)’이라고 불린다. 그러니까 첸동남이란 구이저우성 동남부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그들의 삶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두류강 물줄기가 내려다보이는 아득한 산꼭대기에 먀오족의 마을들이 있다. 사람들이 찾아오기 힘든 높은 산꼭대기에 먀오족의 마을이 생긴 것은 청나라 때 먀오족이 기의를 일으켰을 때 그들을 토벌하려는 중앙정부의 군사들을 피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그들의 아픈 역사는 지금도 그들의 피 속에 여전히 남아있어 10여 년쯤 전에는 자신들이 조상이라고 여기는 ‘치우(蚩尤)’를 모욕한 자들과 일전불사의 의지를 불태웠던 적도 있다. 소수인 그들을 그렇게 당당하게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먀오족 사람들은 아득한 옛날 자신들이 머나먼 중원 땅에서 세 개의 큰 강을 건너 지금의 구이저우성으로 이주해왔다고 믿는다. 그들에게 전해지는 오랜 전설은 이렇다.

두류강 건너편으로 먀오족의 마을이 보인다.


“치우가 황제(黃帝)와 싸워서 졌어. 그래서 치우가 아들들에게 묘족을 이끌고 떠나라고 했지. 아들들은 혼수와 청수, 흑수를 건너 이곳으로 왔어. 우리 바사 사람들은 바로 치우 셋째 아들의 후손이야.”

구이저우성 동남부 충장현(從江縣) 근처 바사(沙) 먀오족 마을 노인의 말이다. 황제와 치우의 전쟁은 중국신화에서도 가장 유명한 전쟁이다. 중원의 신 황제와 동이의 신 치우가 탁록에서 맞붙었고, 그 치열한 전투에서 치우가 패하여 목이 잘린다. 그리고 치우의 손과 발을 묶었던 수갑과 차꼬에 묻은 피에서 이루지 못한 치우의 한처럼 붉디붉은 단풍나무가 자라난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단풍나무’를 잘 기억해두시라.

구이저우성에는 명나라때 중원에서 내려온 군인들의 후손이 그 시절의 풍습을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이마의 머리카락을 뽑은 여성을 매력적으로 여긴다.


바사 먀오족 마을은 충장현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 321번 국도가 마을 앞으로 지나간다. 그런데도 바사 사람들은 중국어를 하지 않는다. 마을의 대표자 노릇을 하는 군위안량(滾元亮)만이 중국어를 할 뿐, 다른 사람들은 그저 환한 미소로 자신들의 마음을 대신할 뿐이다.(이 마을은 중국 구이저우성의 인물 사진작가인 루셴이(盧現藝)의 강렬한 사진들로 세상에 알려졌다. 그는 2003년 7월에 프랑스 아를에서 열린 세계 사진전에 ‘바사 먀오족사람들’이라는 사진을 출품하여 상당히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지금도 베이징의 다산쯔 예술인 지역(大山子藝術區) 어디쯤에서는 아마 그 사진들이 전시되고 있을 것이다.)

마을은 숲속에 있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바사’라는 마을 이름이 ‘풀과 나무가 많은 곳’이라는 뜻임을 밝혀주는 돌 하나가 서있다. 바사 사람들에게 나무는 바로 생명이며 조상의 영혼이 머무는 곳이라고 적혀 있다. 아이가 태어나면 나무를 심고 사람이 죽어도 나무를 심는 곳, 나무가 없는 그들의 삶은 생각할 수도 없다. 오래된 나무일수록 신성이 깃들어 있다. 나무가 말라죽어도 그들은 그 나무가 저절로 쓰러질 때까지 절대로 베지 않는다.

바사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엄청나게 굵은 향장목(香樟木) 뿌리가 모셔져 있다. 앞에는 ‘나무의 신(樹神)’이라는 이름표가 붙어있다. 1976년 어떤 사람이 마오쩌둥기념관을 만드는 데 바치겠다며 다른 마을 청년들을 동원해 그 나무를 베었다. 나무가 쓰러질 때 비바람이 몰아쳤고 붉은 액체가 흘러나와 놀란 마을 사람들이 모두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빌었다고 한다. 그 사건에 대해서 듣고 난 뒤 당 중앙에서 그 나무의 뿌리를 원래 자리에 그대로 모셔두라고 허락하여 지금의 ‘신수정(神樹亭)’이 생긴 것이다. 나무에 신이 깃들어있다고 믿는 그들의 심리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그들의 모든 통과 의례는 숲속에서 행해지고 죽으면 숲에 묻히며, 그 숲에는 성스러운 단풍나무가 있다.

바사의 대표자 역할을 맡고 있는 군위안량의 뒷모습.

단풍나무는 그들의 생활에서도 주로 제의와 관련되어 있다. 먀오족 사람들의 큰 제사인 고장절에 희생물로 바쳐지는 소의 뿔을 묶는 나무도 단풍나무이며 조상들의 영혼이 깃들어있다고 여겨지는 북 역시 단풍나무로 만든다. 집을 지을 때에도 가운데 큰 기둥은 단풍나무로 세운다. 단풍나무에서 메이방이 태어났네
단풍나무에서 메이류가 태어났지
찬미하고
노래하네

지금도
아빠 엄마가 너와 나를 낳으시지
탄생에 대한 이야기,
들려줄 만한 것이라네
아득한 옛날을 생각해보세
단풍나무가 메이방메이류를 낳았어
어머니가 계셔야
너와 내가 있는 것,
어머니를 위한 노래를 불러야 하지.

메이방의 탄생을 노래해
메이류의 탄생을 노래해


먀오족 사람들이 자신들의 역사라고 여기는 ‘먀오족의 오래된 노래(苗族古歌)’에 들어있는 ‘단풍나무의 노래(楓木歌)’의 한 대목이다. ‘메이방메이류(妹榜妹留)’는 ‘호접마마’ 즉 ‘나비엄마’라는 뜻을 가진 여신이다. 그녀는 이렇게 단풍나무에서 태어났다.

메이방이 다 자랐네
메이류가 다 자랐어

이제 짝을 찾아 나서네
무슨 옷을 입었나?
무슨 치마를 걸쳤나? 방류가 짝을 찾아가네
꽃무늬 옷을 입고
꽃무늬 주름치마를 두르고
꽃무늬 옷 몸에 잘도 맞네
주름치마도 몸에 꼭 맞아

호접마마 방류
오얏나무 아래에서 짝을 찾아가네
누구와 함께 갈거나?
짝을 찾을까? 못 찾을까?

강물과 짝 이뤄볼까 했으나
강물은 너무 거칠어
짝이 되지 못했네
태양과 짝 이뤄볼까 했으나
짝이 되기 직전
검은 구름이 나타나 막았네

그들은 짝이 되지 못했네

호접마마 방류
누가 가장 아름다운가
누가 그와 함께 짝을 이룰까?

호접마마 방류
작은 물거품을 사랑했네
말도 할 줄 알고 노래도 할 줄 알아
생긴 것도 아름다우니
그와 함께 떠나

마침내 짝이 되었네

이렇게 그녀는 ‘작은 물거품’과 혼인하여 열두개의 알을 낳는다. 최초의 인간 장양(姜央)이 그 알 속에서 나왔다. 나머지 알에서는 우레신과 용, 뱀, 호랑이, 코끼리, 지네 그리고 착한 신과 나쁜 신들이 나왔다. 인간이라고 해서 자연계의 다른 것들보다 우월한 것이 아니다. 인간인 장양은 동물, 귀신과 마찬가지로 알에서 태어난다. 그 모든 것들을 품어주고 지켜주는 존재가 바로 어머니 여신, 호접마마이며 그 호접마마는 단풍나무에서 태어났다. 앞에서 치우의 영혼이 단풍나무로 변했다고 말한 것을 기억하자. 먀오족 사람들, 그들은 단풍나무의 후손이며 또한 치우의 후손이다. <다음 편으로 이어짐>

〈김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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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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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갈등이 끊이지 않네요.

이 갈등으로 아이들을 비롯해 민간인 희생만 자꾸 늘어가고 있어요.

물론 일방적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많이 희생되고 있지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도대체 어떤 관계이고 어떤 역사를 갖고 있기에 이런 갈등이 끊이지 않을까요?

관련 글을 좀 퍼왔습니다.

출처 : 뉴스페퍼민트(http://newspeppermin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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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x)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분쟁 (1)

옮긴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무차별 보복 공세를 퍼붓고 있습니다. 가자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의 사상자 숫자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이곳에서는 피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걸까요? 지난 4월 Vox가 정리했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관계에 대한 모든 것을 소개합니다.

1. 이스라엘(Israel)과 팔레스타인(Palestine)은 어떤 나라인가? 왜 싸우는가?

지중해 동쪽 연안 국가인 이스라엘은 지구 상에 유일한 유대인의 국가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영토는 아랍인들이 살던 땅을 빼앗은 것입니다. 아랍인들은 지금의 이스라엘 땅을 팔레스타인이라 부릅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을 한 줄로 요약하면 같은 땅을 주고 자신의 영유권과 통치권을 주장하는 두 민족의 다툼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땅의 주인이 원래 자신이라는 양측의 주장 모두 역사적 근원을 갖고 있고, 둘 다 일리가 있습니다. 시시비비를 가려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결국 이 문제는 힘이 센 쪽이 이기는 폭력으로 비화했는데, 1차대전 이전 오스만제국 식민지였던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들이 나라를 세우고자 영국 정부를 압박했습니다. 아랍인들의 반발과 양쪽 모두에게 영토를 분배하려던 UN의 계획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고, 현재 이스라엘과 이웃들의 국경선은 대체로 1948년과 1967년 일어났던 중동 전쟁의 결과라고 보면 됩니다.

오늘날 팔레스타인이라 하면 크게 이스라엘 내 두 지역을 합쳐 일컫는 말입니다. 우선 요르단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요르단강 서안(West Bank)은 팔레스타인이 명목상 통치하고 있지만, 사실상 이스라엘의 지배를 받고 있는 곳입니다. 이스라엘은 이곳에 끊임없이 정착민을 이주시키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서서히 내쫓아 왔는데, 정착민들이 새로 터전을 잡을 때마다 이곳은 이스라엘군과 경비병력의 보호를 받습니다. 이스라엘 남서쪽, 이집트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가자지구(Gaza Strip)는 사정이 좀 다릅니다. 이곳은 이슬람 원리주의 정당이자 군대 조직까지 갖춘 하마스(Hamas)가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곳입니다. 이스라엘은 지상군을 가자지구에 상주시키지 않고 있지만, 가자지구를 오가는 모든 물자를 효과적으로 차단하며 이곳을 봉쇄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노선 차이로 좀처럼 손을 잡지 않던 하마스와 요르단강 서안의 파타(Fatah)가 2007년 이후 처음으로 단일 정부 구상을 논의하자 이스라엘이 즉각 이를 가로막고 나서기도 했습니다.

두 국가 해법(Two-state Solution)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끝내고 평화와 공존으로 나아갈 방안이라는 평가를 받는 해법입니다. 현재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대부분을 영토로 하는 팔레스타인을 새로운 독립국으로 인정해주고, 나머지 영토는 이스라엘 땅으로 하여 두 민족이 공존을 도모하는 것이죠. 아랍 민족이 살고 있던 땅을 영국이 식민지로 경영하던 곳에 원주민을 쫓아내고 세운 나라가 이스라엘이기 때문에 영구적인 평화 정착안으로서 두 국가 해법은 사실상 이스라엘이 건국될 때부터 있던 셈입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이를 어떻게 실행할지를 두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단 한 번도 실질적인 합의에 이른 적이 없습니다. 반대로 한 국가 해법(One-state Solution)은 둘 중 하나의 정부가 상대방을 함께 다스리는 것으로 평화적인 공존과는 거리가 먼 해법으로 평가됩니다. (V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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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x)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분쟁 (2)

2. 시온주의(Zionism)는 무엇인가?

시온주의는 유대인들의 삶을 규정하는 사상이자 종교입니다. 유대인들은 시온주의에 근거해 조상 대대로 살았던 땅 이스라엘에 유대인들의 국가를 세우는 걸 지상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신에 의해 선택받은 민족인 유대인들은 유대인 국가 이스라엘을 세우는 걸 신의 뜻이라고 믿고 실행에 옮겼지만, 그들이 선택한 땅은 유대인과 다른 신을 믿는 아랍인들이 팔레스타인이라 이름을 짓고 살고 있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다윗왕과 솔로몬왕에게서 유대민족의 뿌리를 찾는 유대인들이 “시온으로 돌아가자”는 열망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 건 근대 민족주의가 유럽을 휩쓸던 19세기부터입니다. 오스트리아 태생의 유대인 헤르즐(Theodor Herzl)은 유럽에서 점점 극심해지던 반유대주의(anti-Semitism)를 직접 겪으며 유대인들의 국가를 건설하지 않고는 유대인들이 살아남을 수 없다고 믿게 됐습니다. 언론인이었던 그는 신문에 글을 써 시온주의의 정당성과 지금의 이스라엘이 된 팔레스타인으로 유대인들이 집단 이주를 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헤르즐이 글을 쓰기 전 팔레스타인에 살던 유대인들은 약 2만 명이었는데, 히틀러가 독일에서 권력을 잡을 때쯤엔 16만여 명이 팔레스타인 땅에 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건국에는 이견을 보이지 않던 시온주의 내부에도 소위 좌파와 우파가 있습니다. 1970년대까지 이스라엘의 정치권력을 좌우했던 시온주의 좌파는 이스라엘이 점유한 땅 일부를 아랍 국가들에 돌려주고 평화협정을 맺는 이른바 땅과 평화의 맞교환(Land for Peace) 정책을 지지하고, 경제적으로는 큰 정부의 개입을 선호했습니다. 또한, 종교 색을 가급적 배제한 세속적 정부를 원했죠. 반면 현재 집권세력이라 할 수 있는 시온주의 우파는 땅과 평화의 맞교환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품고 있고, 정부보다는 시장에 경제를 맡기려는 쪽입니다. 종교 원리를 현실 정치에 인용하는 데도 훨씬 거부감이 덜합니다.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 국가들은 시온주의를 규탄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온주의는 선택받은 민족은 오직 유대인뿐이라는 원칙에 기반을 두고 있고, 이에 따라 전 세계 어디에 있는 유대인은 원하면 이스라엘 국적을 바로 얻을 수 있습니다. 이 권리는 유대인 말고는 누구도 누릴 수 없는 것이죠. 때문에 아랍인들은 시온주의를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땅에서 내쫓기 위한 계책이나 종교의 탈을 쓴 제국주의 내지 인종주의로 규정해 왔습니다. 아랍 국가들은 1975년 유엔 총회에서 “시온주의는 인종주의, 인종차별의 한 형태”라는 결의안을 이끌어내기도 했는데, 이 결의안은 1991년 폐지됩니다. (V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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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x)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분쟁 (3)

3. 이스라엘 건국 과정

19세기 말 유럽의 민족주의가 강화되면서 유럽에 있던 유대인들도 유대 민족의 나라를 세워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당시 전체 유대인의 90%가 유럽에 살고 있었는데, 이 가운데 수천, 수만 명이 1896 ~ 1948년 사이 유럽에서 점차 노골적으로 드러나던 반유대주의를 피해, 그리고 세속적 민족주의를 좇아 선택받은 땅으로 이주합니다. 그곳은 바로 당시 영국이 관할하고 있던 아랍의 팔레스타인 땅이었습니다. 아랍인들은 유대인들의 계속된 이주를 유럽의 또 다른 식민 침탈이라 여기며 격렬히 반대했습니다. 크고 작은 폭력이 잇따랐죠. 팔레스타인을 식민지로 경영했고, 유대인들에게 이스라엘 건국을 지지하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 결과적으로 이주를 부추긴 영국은 계속되는 폭력을 막을 방법을 찾지 못했고, 갓 결성된 UN이 나섰습니다.

UN은 팔레스타인 땅을 둘로 나눠 65만 명의 유대인을 한 쪽에, 그리고 인구가 유대인의 두 배 가까이 됐던 아랍인들을 다른 한 쪽에 배치하는 계획을 발표합니다. 유대인들은 이 계획을 받아들였지만, UN의 계획을 계속되는 유대인 이주와 식민 침탈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한 아랍인들은 계획을 거절했습니다. 이스라엘을 곱게 보지 않던 이집트와 요르단, 이라크, 그리고 시리아 등 주변국들은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민병대와 아랍 국가의 연합군을 물리칩니다. UN의 첫 분리안은 팔레스타인 영토의 56%를 이스라엘에 주는 것이었는데, 전쟁이 끝난 시점에 이스라엘은 요르단강 서안과 요르단이 통치하는 예루살렘 동쪽 일부, 이집트가 통치하는 가자지구 일부를 제외한 팔레스타인 영토의 77%를 장악합니다.

4. 나크바(Nakba)

1948년 전쟁으로 팔레스타인 인구 70만 명이 삶의 터전을 잃고 난민이 됐습니다. 나크바는 아랍어로 “재앙”이라는 뜻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가장 슬픈 역사의 한 장면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1948년 전쟁과 나크바를 이스라엘이 수년 동안 치밀하게 계획한 아랍 민족에 대한 인종청소라고 비난하는 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쟁이 불가피했던 측면을, 그리고 아랍 군대를 비난합니다. 팔레스타인 난민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나크바 때 난민 70만 명과 그들의 후손, 그리고 계속해서 이스라엘로부터 쫓겨나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이 불어나 이제는 700만 명으로 불어났습니다. 팔레스타인은 기본적으로 이들 난민들이 원래 자신들의 땅으로 돌아가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절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습니다. 현재 이스라엘의 인구는 약 800만 명인데 이 가운데 이미 아랍인들이 150만 명쯤 됩니다. 여기에 팔레스타인 난민 700만 명을 이스라엘에서 살 수 있도록 허락한다면, 유대인의 나라여야 하는 이스라엘은 유대인이 소수 민족이 되는 셈이죠. 유대민족 국가라는 위상이나 1인 1표를 원칙으로 하는 민주주의 둘 중 하나를 버려야 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권리에 관한 어떤 사항도 협상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자세를 고수해 왔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이 합의할 수 있는 한에서 난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방안이 오랫동안 협상 의제로 다뤄졌고, 난민에 대한 금전적인 지원을 확충하고 유대인들이 무차별적인 이주로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잠식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지만, 양측은 실천 방안을 두고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V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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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x)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분쟁 (4)

5. 요르단강 서안(West Bank)

고유명사 West Bank는 여느 강의 서쪽 편을 일컫는 말이 아니라 요르단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요르단강 서안의 팔레스타인 자치구를 일컫는 말입니다. 팔레스타인인 260만 명이 살고 있는 땅으로 여러모로 팔레스타인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곳이죠. 1967년 6일 전쟁 이후 이곳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는 이스라엘은 유대인 정착촌을 계속해서 확장해 왔습니다. 반면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여러 나라, 단체들은 이스라엘이 불법으로 땅을 점유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발포로 시작된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주변국가의 군대를 사실상 궤멸시키고 승리합니다. 특히 요르단으로부터 동예루살렘과 고대 유대인들의 유적이 많은 요르단강 서안을 빼앗은 건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현재 요르단강 서안에 사는 유대인 정착민들은 약 50만 명입니다. 이들은 대부분 (사실상의) 이스라엘 국경 가까이에 살고 있는데, 두 국가 해법안대로 협상이 이뤄진다면 이들 가운데 일부는 땅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반납하고 이스라엘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은 국경을 어디에 어떻게 그어야 할지를 두고 합의 다운 합의를 이뤄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6. 예루살렘 (Jerusalem)

유대인과 무슬림 모두에게 종교적 성지인 예루살렘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구의 경계선에 걸쳐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 예루살렘을 정신적 수도로 삼고 싶어하기 때문에 예루살렘 안에서 양측의 경계선을 어떻게 나누느냐 문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의 축소판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건국 후 처음 20년 동안 이스라엘은 서쪽을, 요르단은 고대도시 유적을 포함한 동예루살렘을 다스렸습니다. 특히 요르단은 성산(聖山, Temple Mount)을 다스리고 있었는데, 이곳에는 유대교 성지인 통곡의 벽(Western Wall)과 이슬람교 성지인 알 악사 사원(al-Aqsa Mosque), 바위의 돔(Dome of the Rock)이 모여 있습니다. 1967년 이전에는 통곡의 벽과 유대교 사원에 접근이 금지됐던 유대인들은 전쟁으로 아예 성산을 점령해버리고 예루살렘을 유대인들의 수도로 선포해버립니다. 동예루살렘을 정복한 건 명백한 국제법 위반으로 이스라엘을 물심양면 지지하는 미국조차도 예루살렘이 온전히 이스라엘 소유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유엔은 안보리 결의안 478호를 통해 이스라엘의 동예루살렘 합병을 비난하고 타협안을 도출할 것을 촉구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땅을 나눌지는 여기서도 역시 합의가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그러는 사이 유대인들은 꾸준히 예루살렘으로 이주해왔고, 현재 예루살렘 땅의 2/3는 유대인 주거구역이 됐습니다.


7. 가자 (Gaza)

이스라엘 남서쪽, 이집트와의 국경지대에 위치한 가자지구는 요르단강 서안과는 또 다른 팔레스타인 인구 밀집지역입니다. 동예루살렘을 요르단이 통치했던 것처럼 가자지구는 이집트가 통치해 왔는데, 역시 6일 전쟁 때 이스라엘이 점령했습니다. 가자지구에 점령군으로 상주하던 이스라엘군은 2005년에 철수했지만, 여전히 가자지구는 이스라엘 당국에 의해 거의 완벽하게 봉쇄되어 있습니다. 선거로 선출된 하마스는 이스라엘과 충돌이 있을 때마다 이스라엘을 향한 로켓 공격을 감행하는데, 이는 종종 팔레스타인을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스라엘 매파의 입지를 다져주는 계기가 됩니다. 하마스가 무기를 만드는 데 쓰일 만한 물자를 가능한한 가자지구로 들여보내지 않는 이스라엘의 봉쇄정책 때문에 가자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전기와 연료, 식량, 의약품 등 생필품이 만성적으로 부족합니다. (V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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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x)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분쟁 (5)

옮긴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무차별 보복 공세를 퍼붓고 있습니다. 가자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의 사상자 숫자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마스가 거대한 땅굴을 파고 이를 통해 이스라엘을 공격하려 했다는 주장과 이스라엘이 소형 강철 화살인 플레셰트탄(flechette)을 사용해 민간인들을 무차별 학살하려 했다는 증거도 나왔습니다. 정전이나 휴전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양측은 안타깝게도 총부리를 내려놓기보다는 갈수록 서로의 심장부를 겨누는 파멸의 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상자 숫자를 비롯한 속보는 우리 언론에도 상세히 소개되고 있습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을 짚어보고 싶습니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이곳에서는 피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걸까요? Vox가 지난 4월에 정리했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모든 것”에 최근 양측의 충돌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설명을 추가했습니다. 5편에서는 이 글을 소개합니다.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망자 숫자가 500명을 넘었습니다. 표면적으로 하마스를 포함한 팔레스타인의 무장단체들과 이스라엘의 이번 충돌은 지난달 10일 이스라엘 청년 3명이 납치, 살해된 사건에서 시작됐습니다. 요르단강 서안에서 정통 유대교 대학인 예시바에 갔던 청년 3명이 괴한에 납치됐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를 하마스의 소행이라고 보고 가자지구는 물론 요르단강 서안까지 팔레스타인 전역을 이 잡듯이 뒤졌습니다. 하지만 사라졌던 청년들은 지난달 30일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누군가에게 살해된 것이 명백했습니다. 나중에 나온 보도들을 종합해보면, 이스라엘 당국은 이미 청년들이 숨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 기회에 하마스 세력을 약화할 목적으로 대대적인 검거 작전을 펼쳤고, 공식적으로 시신이 발견된 이후로는 가자지구에 대대적인 폭격을 시작했습니다. 팔레스타인 무장세력들도 이스라엘 영토를 향해 로켓포를 쐈는데, 주목할 만한 사실은 하마스는 처음에는 공격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틀 뒤인 7월 2일, 16살 팔레스타인 청년 무하메드 아부 케디르(Muhammed Abu Khedir)가 예루살렘에 있는 자신의 집 근처에서 불에 타 숨진 채로 발견됩니다. 팔레스타인 경찰은 이스라엘인 6명을 용의자로 체포한 뒤, 이 사건을 이스라엘 청년들의 죽음에 대한 보복 살인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버즈피드의 프렌켈(Sheera Frenkel)은 용의자 가운데 한 명이 이스라엘의 극우 인종주의 훌리건(축구광)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스라엘의 극우 정치인들은 보복 살인을 옹호하며 반(反) 팔레스타인 정서를 부추겼습니다. 무하메드가 숨진 지 사흘 뒤인 7월 5일, 그의 미국인 사촌 동생인 타리크 아부 케디르(Tariq Abu Khedir)가 이스라엘 경찰에게 심하게 폭행당한 영상이 공개됩니다. 계속되는 가자지구 공습과 케디르 형제의 사건 등을 계기로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시위도 격렬해졌습니다.

하마스는 7월 8일,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포 공격을 감행합니다. 지난 2012년 말, 여드레 간의 전투 이후 처음이었죠.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는 기다렸다는듯이 가자지구를 향한 공세를 한층 강화했습니다. “하마스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7월 14일을 기점으로, 사상자 숫자는 이미 2012년 전투 때의 사상사 수를 넘어섰고, 이튿날인 15일, 이집트의 중재로 한시적인 정전이 성사되는 듯했으나, 하마스 내부 강경파가 이를 거부한 채 계속해서 로켓포 공격을 이어가 다시 전투가 속개됐습니다. (Vox)


8. 유대인 정착촌


1967년 6일 전쟁 이후 요르단강 서안을 군사력으로 장악한 이스라엘은 자국민들의 이주를 장려합니다. 원래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쫓아내고 유대인들이 점점 정착촌을 늘려갔는데, 종교나 정치적인 이유에서 온 사람도 있었고, 단지 이곳의 집값이 상대적으로 싸고 이스라엘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했기 때문에 이사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어쨌든 공격적으로 확장을 거듭한 유대인 정착촌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의 평화를 논의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현재 요르단강 서안 팔레스타인 땅 안에 있는 유대인 정착촌 130여 곳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국민은 모두 합해 50만 명인데, 이 가운데 75% 정도는 요르단강 서안 중에서도 이스라엘과 가까운 쪽에 있는 정착촌에 살고 있습니다. 원래 팔레스타인 땅이라고 해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합법적으로’ 와서 뿌리를 내리고 살기 시작하면서 원주민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점점 땅과 연관된 영유권을 잃었습니다. 정착촌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 가운데는 요르단강 서안이 오롯이 이스라엘 영토로 편입돼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스라엘 국민들의 믿음은 이스라엘 경찰들에게 시도때도 없이 불심검문을 당하고 유대인이 아니면 접근할 수도 없는 구역이 늘어나면서 점점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변호사들은 대부분 무력으로 점령한 땅에 자국민을 이주시키는 것을 금하는 제네바협약 4조를 이스라엘이 명백히 어겼다고 보고 있습니다.


15.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바라보는 세계의 여론

이슬람 국가들을 제외한 전체 국가들 가운데 83%가 이스라엘과 국교를 맺거나 이스라엘을 나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나라들은 이스라엘의 요르단강 서안 정복과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핍박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이스라엘보다 팔레스타인 편을 드는 의견이 대부분 훨씬 높습니다. 이스라엘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나라보다는 싫어하는 나라로 꼽힙니다. 요르단강 서안에 마구잡이로 유대인 정착촌을 설치해 팔레스타인인들을 쫓아낸 게 비난을 산 결정적인 원인입니다. 많은 변호사, 법률가들이 이스라엘의 요르단강 서안 점령을 제네바 협약과 국제법을 위반한 범법 행위라고 보고 있지만, 이스라엘과 친 이스라엘 성향 법률가들의 주장은 다릅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이 요르단강 서안을 불법 점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제네바 협약이 금지하고 있는 건 국민들의 강제 이주이지 유대인 정착촌에 모여드는 이스라엘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이주를 선택했기 때문에 유대인 정착촌이 제네바 협약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V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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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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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의 스토리텔링 22가지 법칙

 

 

1. 캐릭터가 목표를 ‘이루는 것’보다,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것’을 더 중요시 여겨라.

 

2. 작가로서가 아닌 관객의 입장에서 무엇을 더 재미있어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둘은 매우 다를 수 있다.

 

3. 스토리에 테마를 가지고 있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스토리를 다 쓸 때까지 그 스토리가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니 다 적었다면 이제 다시 적어라.

 

4. 어느 옛날 __가 있었다(캐릭터 소개). 매일 __(일상의 반복). 그러던 어느 날 __(사건의 시작)

   그것으로 하여 __(사건에 의한 사건). 그것으로 하여 __(사건에 의한 사건) 결국 __(결말).

 

5. 이야기를 단순화시키고 한 가지 요소에 집중해라. 캐릭터를 합치거나, 불필요한 요소는 빼버려 라. 

   처음에는 중요한 것들을 놓친다는 생각이 들 수 있어도 한층 자유로워짐을 느낄 수 있을 것 이다.

 

6. 주인공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반대의 것을 주어 힘들게 하라.

   캐릭터가 그것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를 생각하라.

 

7. 중간을 생각하기 전에 엔딩을 먼저 생각하라. 엔딩은 어렵다. 그러니 미리 해놓아라.

 

8. 완벽하지 않아도 좋으니 이야기를 끝마쳐라. 완벽하게 하고 싶겠지만 그냥 넘겨라. 다음에 잘 하면 된다.

 

9. 막혔을 땐 스토리의 다음 단계에 ‘일어나지 않을 일’의 리스트를 만들어라.

    이렇게 함으로써 막힌 것이 뚫릴 때가 많다.

 

10. 평소 좋아했던 이야기를 생각해 보라. 거기서 좋아하는 부분은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한다.

 

11. 일단 종이에 적기 시작하면 고칠 부분을 볼 수 있게 된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머릿속에만 두면 아무도 모를 것이다.

 

12. 머릿속에 떠오르는 가장 첫 번째 아이디어는 버려라. 그리고 두 번째도. 세 번째도. 네 번째도. 다섯 번째도…. 

    뻔한 아이디어는 버려라. 내 자신을 놀라게 하라.

 

13. 자기 입장이 뚜렷한 캐릭터를 만들어라. 

     스토리를 쓰면서는 소심하고 얌전한 캐릭터가 마음에 들지 몰라도 관객들에게는 독이 된다.

 

14. 왜? ‘이 스토리’를 전해야 하는지 생각하라. 나의 어떤 것이 담겨있는 스토리인가?

    이것이 스토리의 심장이라고 볼 수 있다.

 

15. 내가 주인공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떤 느낌을 받을까? 주인공의 진심을 느낄 수 있게 하라. 

    진심은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신뢰를 준다.

 

16. 관객들이 주인공을 응원해야 할 이유를 줘라.

    또 주인공이 실패하게 된다면 겪을 일들에 대해서도 표현하라.

 

17. 어떤 일이든지 낭비되지 않는다. 지금 쓸모가 없어도 그냥 넘어가라. 나중에 필요할 때가 있다.

 

18.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스토리를 쓸 때에는 새로운 것을 실험해 가면서 완성해 가야 한다. 

     이미 있는 것을 고치는 중이라면 그만 하라.

 

19. 캐릭터를 사건에 휘말리게 하는 '우연'은 좋은 것이다.

     캐릭터를 사건에서부터 빠져 나오게 하는 '우연'은 사기다.

 

20. 연습 : 내가 싫어하는 영화의 한 배경을 골라 나라면 ‘어떻게 고칠지’ 연구해 본다.

 

21. 상황이나 캐릭터의 성향을 확실히 한다. 그냥 ‘멋짐’은 안된다.

    ‘나는’ 왜 그렇게 느끼고 행동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22. 내 스토리의 본질은 무엇인가? 스토리를 간단하게 설명하면 무엇인가?

     이것을 알고 거기서 부터 시작한다.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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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잡지 격월간 '민들레' 93호에서 퍼옴]

mindle.org

놀이와 놀이터 다시 보기 _ 독일 놀이터 디자이너 귄터 벨치크에게 듣는다


인터뷰와 정리_편해문 (놀이운동가)


40년 동안 약 2만 개의 놀이터 디자인에 참여해온 독일의 놀이터 디자이너 귄터 벨치크가 세계인권도시포럼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공공놀이터 혁신에 관심을 두고 있는 한국의 놀이운동가 편해문 님이 일주일 동안 전국의 여러 강연과 놀이터 참관 여정에 동행했으며, 이 인터뷰는 지난 5월 21일 부산대학교 유아교육학과 이연선 교수님의 통역으로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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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는 놀이가 현실이다 

해문: 아이들은 길과 거리에서 놀면서 큰다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특정 구역에 자리 잡은 놀이터가 만들어진 것은 근대 이후로 알고 있다. 유럽에 많은 놀이터를 디자인하신 입장에서 놀이터가 없어져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무슨 뜻인가?

귄터: 오늘 호텔에서도 보았듯이 그곳은 어른들을 위한 장소이지 아이들을 위한 장소가 아니다. 놀이터를 만드는 것은 “이제 너희는 여기서만 놀아”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 다른 문제는 아이들이 놀이터에 갔을 때 좋은 느낌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할 거면 차라리 놀이터를 만들지 않는 게 낫다. 만들 거면 정말 최선을 다해서 좋은 장소에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해문: 놀이터에 대해 아이들과 부모의 시각이 서로 다른 것 같다. 

귄터: 부모는 놀이터를 만들거나 아이를 놀이터에 보낼 때, 그곳에서 뭔가 배우기를 바란다. 부모는 놀이터마저 교육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아이들은 친구를 만나고 자기들끼리 규칙도 만들면서 놀려고 가는 것이다. 이것이 놀이터에 대한 부모와 아이들의 완전히 다른 관점이다.

해문: 옳은 말씀이다. 놀이는 아이를 속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물이든 사람이든, 놀이 속에서 만나는 것들은 노는 만큼 아이에게 알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은 아이들을 속이고 있다.

귄터: 왜 놀이가 아이들을 속이지 않느냐면, 아이들에게는 놀이 자체가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속에 판타지가 있고 상상력이 있다. 그 순간순간이 아이들에게는 진실이다. 아이들이 공주 놀이를 할 때, 그 아이는 공주 자체이지 그런 말을 하는 아이를 바보 같다거나 어리석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반면에 교육은 그것을 파괴한다. 놀이는 삶을 가르치지만, 교육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 교육은 삶과 관련 없는 것을 너무 오래 가르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스스로 실수를 하면서 배운다. 아이들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는데 왜 자꾸 가르치는가. 아이들은 답을 해달라고 한 적이 없는데 왜 답을 해주는가. 왜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는가. 아이들이 물어볼 때만 가르쳐주고, 물어보지 않는 한 대답을 하면 안 된다. 

해문: 아이들이 놀기를 바란다면 부모와 교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귄터: 아이들은 뭔가를 하면서, 놀면서 배운다. 그런데 세상이 많이 복잡해져서 아이들이 놀기에 공간이나 장소가 충분하지 않다. 이렇게 되면 아이들은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기술을 배우지 못하게 된다.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싸우는 방법이 아니라 갈등이 생겼을 때 그걸 풀어가는 방법을 배운다. 이것은 교육을 통해서가 아니라 놀이에서 배울 수 있다. 아이들은 자기가 놀고 싶을 때 노는 것이지, 부모나 교사가 놀라고 해서 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놀이에 대한 부모와 교사의 태도는 잘못되었다. 이건 좋은 놀이고 저건 나쁜 놀이라고 구별하고, 이 시간에는 무엇을 하고 놀아야 한다고 정해주지만 아이들은 놀고 싶을 때 놀 뿐이다. 놀이라는 것은 목마를 때 물 마시는 것, 배고플 때 밥 먹는 것과 같아서 시간을 정할 수 없다. 아이가 꽃과 이야기한다고 해서 그것이 놀이가 아닌가 하면 그렇지 않다. 그 순간 판타지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놀이다. 아이들이 놀기를 바란다면 부모와 교사가 먼저 놀면 된다.

해문: 한국의 부모와 교사는 놀이기구가 있어야 놀이터라고 생각한다.

귄터: 한국의 놀이터는 유럽 같은 다른 나라에서 베껴 온 것 같다. 자세히 보면 그것은 놀이기구가 아니라 스포츠 기구에 가깝다. 움직임만을 유도하는 기구이지 놀이기구가 아니다. 한번 생각해보자. 아이들이 순서를 기다려서 미끄럼틀을 온종일 여섯 번, 최대 열 번 탔다고 했을 때, 모두 합쳐 2분 30초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게 놀이일까. 부모들이 놀이터의 상징으로 놀이기구를 떠올리는 그 생각부터 고쳐야 한다. 오히려 놀이터 공간 자체가 놀이기구라는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놀이기구를 타는 아이들을 보면서 부모는 “하지 마라, 위험하다”라는 말을 끊임없이 해댄다. 그런데 아이들을 잘 보면 미끄럼틀 타는 그 시간에 노는 게 아니라 미끄럼틀을 거꾸로 올라가면서 논다. 그런데 부모는 그걸 하지 말라고 한다. 놀이란 직접 해보면서 배우는 것이다. 이런 것이 허용되는 놀이기구가 있어야 한다. 단순히 움직이고 운동하는 것은 놀이가 아니다.

한국 놀이터의 ‘안전 신화’

해문:  현재 한국 공공놀이터의 참담한 상상력은 ‘안전 신화’에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안전만을 오래도록 강조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아이들에게 조금의 모험도 허용하지 않는, 재미없고 지루한 놀이터가 되고 말았다. 놀이터 안전 신화는 누가 만들어낸 것이며, 안전 강조에 따른 이익은 누구에게 돌아가는 것인가.

귄터:  왜 안전이 강조되는가 하면 첫 번째는 과잉보호 때문이다. 형제자매가 많으면 서로 돌보면서 크게 되는데, 요즘은 하나밖에 낳지 않으니까 당연히 과잉보호하는 문화가 만들어진다. 어른들이 아무리 안전하게 놀이터를 만들고 규칙을 만들어도, 아이들은 그것을 넘어 제 맘대로 조작하려고 한다. 도전적 요소를 반드시 넣어줄 필요가 있다. 아이들은 나이가 많아질수록 더 심하게 기존의 것들을 다르게 조작하려고 한다. 안전이 강조되는 두 번째 이유는 놀이기구를 만드는 회사에 원인이 있다. 그들은 물건을 팔아야 하고 누군가는 사야 하는데, 가장 많이 팔 수 있는 방법이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것은 과잉보호하는 부모들을 만족시킨다. 
그리고 세 번째는 보험회사이다. 보험회사는 사고가 나면 어디에 돈을 줘야 하는지에 집중한다. 그래서 표준을 만들거나 공장에서 놀이기구를 제조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아주 구체적으로 ‘이렇게 만들면 허리를 다치고, 저렇게 만들면 어깨를 다칠 수 있다’는 식으로 조목조목 따지고 살핀다. 그들은 다치지 않는 것에만 신경을 쓴다. 그리고 그에 따른 표준화 테스트를 하는데, 오로지 숫자에 의존한다. ‘이 길이가 맞다. 저 길이는 틀렸다’는 것에만 관심을 둔다. 숫자만 이야기하지 아이를 보지 않는다. 공장과 회사는 오로지 돈에만 관심 있으니까 보험과 표준치라는 것이 한 패가 되어 판매에만 집중한다. 회사나 공장에서는 보험과 표준치의 기준에 맞춘 제품을 만들어서 많이 팔기만 하면 된다. 이런 이유로 놀이기구의 안전이 강조되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런 사건이 터지면 사람들은 먼저 보험 이야기에 주목한다. 

해문:  한국의 놀이터 안전 신화는 세 가지 맥락에서 파악되어야 한다고 본다. 첫째로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 둘째로 재미없는 놀이터가 완성됐다는 것. 셋째로 관련 업체와 그들을 둘러싼 이익집단의 마케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선생님은 한국에 오셔서 세월호 참사 촛불집회에 참여하며 눈물짓기도 하셨는데, 이 사고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안전 신화’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아이들은 ‘안전’으로 포장된 ‘하지 마라, 가만히 있어라, 앉아 있어라’ 같은 말들을 너무 많이, 너무 오랫동안 듣고 자란다. 이런 지시와 제지에 익숙해져서 문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지시받지 않으면 무엇 하나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아이들이 된 것은 아닌가 싶었다. 우리나라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실체 없는 ‘안전’만을 강요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본다.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왜 그것이 위험한지 질문하지 못한 채 말이다. 이러한 것들이 세월호 참사에 영향을 줬다고 생각한다. 독일도 이와 비슷한 시기가 길게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독일에서는 이런 지시와 통제의 흐름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알고 싶다.

귄터:  아이들이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 어른들이 움직이지 말라고 했을 때 그 말을 들었다는 것에는 히틀러식 교육이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 상황은 공포를 느끼거나 당황하거나 파랗게 질려버려야 할 상황, 다시 말해 패닉이 왔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살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해보다가 죽는 것과 가만히 앉아서 죽는 것 사이에는 큰 의미의 차이가 있다. 살려고 몸부림쳤다면 30명 정도만 목숨을 잃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가만히 앉아서 200명이 넘는 아이들이 죽었잖은가.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어른들이 “가만히 있어라, 우리가 하는 말을 들어라” 하는 지시를 내리며 결과적으로 과잉보호에 익숙해지게 한 것이다. 내가 나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어른이나 군인, 해양경찰이 와서 나를 보호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그런 사회적 정서가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자신은 스스로 보호해야 한다.

누가 놀이터를 만들어야 하는가

해문:  한국에서 놀이터를 누가 만들어야 하는지 물으면 건축사도 내 일이다, 조경사도 내 일이다 그런다. 거기에 놀이터 디자이너까지. 놀이터 만들기는 누구의 일이며 누가 해야 하는가.

귄터:  왜 다들 자신이 적격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 그 뿌리는 모든 어른들이 다 아이들이었다는 데 있다. 그러니까 놀이터를 잘 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아동기에 대한 해석을 성인의 관점에서 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 당시의 아동기와 요즘 아이들이 느끼는 아동기는 다르기 때문에, 그 당시의 아동기에 거리를 두고 지금의 아이들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런데 건축가나 조경사는 아동기를 성인의 눈으로 해석하면서 스스로 놀이터 전문가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그들은 놀이터가 깨끗하고 안전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노는 공간은 매우 복잡한 사회적 기능을 가진 곳이다. 그러므로 놀이터를 만드는 일을 꼭 전문가가 도맡아 할 필요는 없다. 부모도 좋다. 교육운동가도 좋다. 다만 10~20년 정도 아이들 놀이를 관찰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뭘 하는지,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나온 부모는 뭘 하는지 오래도록 지켜본 사람이 필요하다. 반달리즘에 영향을 받아서도 안 된다. 500년 전 아이들이 뭘 했는지, 이런 거 말고 지금 아이들에 집중해야 한다. 놀이터를 볼 때도 흔히 ‘저 아이 나쁜 아이다’, ‘놀이기구 저렇게 타면 안 된다’ 이렇게 비판적으로 보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말로 아이와 부모가 놀이터에서 뭘 하는지 볼 수 있는 사람이 놀이터 만드는 데 참여해야 한다. 아이들이 놀 때 어른들은 머릿속으로 안전하기를 바라는데, 사실 아이들은 파괴하고 망치며 논다. 그런 모습을 본 어른들은 ‘어! 아이들이 저거 망가뜨린다.’ 그렇게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바꾸는 것이다. 약간의 변화를 주는 것이다.
 
해문:  선생님과 며칠을 함께 다니면서 보니, 강연을 마치면 늘 한국의 오래된 건축물들을 보러 다니셨다. ‘우리나라 놀이터에 한국 전통의 숨결이 담겨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놀이터를 만들 때 외형을 보면 장식마저 서구적 장식을 따라 한다. 예를 들면 뜬금없이 놀이터 기둥에 야자수를 매달아 놓는다. 어떤 경우는 통째로 스웨덴 미끄럼틀을 사다가 꽂아놓는 경우도 있는데, 한국적 놀이터 양식은 왜 고민하지 않는 걸까.  

귄터:  한국은 일본의 지배를 받았고 이어 미국으로부터 자유를 선물 받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생각해봐라. 미국은 역사가 없는 나라다. 다른 역사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만든 나라일 뿐이다. 그렇지만 한국은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이다. 그런데 한국인은 왜 자신들의 것을 말하거나, 표현하거나, 만들어내는 것을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하는가. 한국의 놀이터 또한 그런 영향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한국적인 삶의 방식이나 문화를 만나고 찾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 한국에는 좋은 것들이 많이 있는데 한국인들은 그것을 느끼지도, 발견하지도 못하는 것 같다. 그것은 자기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두려움 때문이라고 본다. 이런 한국적인 자산을 충분히 인식하고 놀이터를 만들 때 반영하면서, 시대에 맞게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내가 한국에 와서 한국적인 건축을 보러 다니는 까닭은 ‘한국 아이들은 이런 것 속에서 자신들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느끼고 자연스럽게 공동체 의식을 가지겠구나’ 하는 것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적인 것의 좋은 점을 내가 알아야 한국 놀이터에 관해 조언을 해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놀이에는 항상 ‘치유’가 포함되어 있다

해문:  외람되지만, 선생님께서는 어렸을 때 왼손잡이셨고(당시만 해도 왼손잡이는 교정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요즘 말로 하면 ADHD와 가까운 면도 있었고, 게다가 난독증까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은 아주 명랑하고 쾌활하신 모습인데, 어떻게 그 시기를 지나게 되셨는지 알고 싶다. 이 질문을 드리는 까닭은 놀이라는 것이 육체적, 정신적, 정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들에게 더욱 절실한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놀이와 놀이터는 이런 아이들과 어떻게 함께할 수 있을까.

귄터:  나는 왼손잡이였고 ADHD와 난독증이 있었지만, 이것이 장애인지는 모르겠다. 놀이는 세상을 배우고 미래를 배우는 일이기 때문에 항상 그 안에는 ‘치유’가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 부모님이 싸우는 모습을 봤다면, 아이들은 가상놀이를 통해 엄마 아빠 역할을 하고, 요리도 하면서 그 충격을 치유한다. 아이들은 자신이 본 것을 가지고 놀기 때문에 또래 아이들과 놀게 해야 한다. 아이들이 언제 노는지를 보면 문제가 있을 때 놀고 싶어 하기도 하고, 평화를 유지하고 싶을 때 놀기도 하고, 세상에서 어려운 일을 겪었을 때 놀고 싶어 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자신이 보고 들은 세상을 모방하면서 평화를 찾을 때까지 논다. 그래서 놀이는 치유다. ‘장애아를 위한 놀이터’라는 말을 쓰지 말자. 왜냐하면 여자아이들을 위한 놀이터, 남자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라는 말을 따로 안 쓰지 않느냐. 마찬가지로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위한 특별한 놀이터나 장소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 아이들은 보통의 놀이터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의 놀이를 하고 논다. 
나는 놀이터에서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무엇이 다른지 오래 관찰했지만 별 차이가 없었다. 그저 여자아이들은 차보다는 인형을 더 좋아하고, 남자아이들은 인형보다는 차를 더 좋아했다.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위해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준다고 해서, 그 아이들이 마주하는 사회를 바꿀 수는 없다. 그러므로 똑같은 장소에서 놀게 해야 한다. 이 아이들에게 어떤 놀이기구를 주느냐, 어떤 특별한 장소와 공간을 주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무엇을 갖고 어떻게 노느냐’가 더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충분히 놀 수 있는 공간을 주고 있는가’이다. 아이들이 노는 그 순간순간이 중요한 것이다.

해문:  끝으로 놀이터를 혁신하려는 한국사람들에게 들려주고픈 말은?

귄터:  우리는 아이들을 강하게 키워야 한다. 여기서 ‘강하다’는 것은 자기감정을 스스로 알고 있는 아이를 말한다. 아이들이 그런 감정을 키우려면 스스로 좋은 것을 만들어보고, 좋은 것을 해본 경험이 있어야 한다. 그 경험은 놀이를 통해서 할 수 있다.

해문:  한국에서 새로운 놀이터 문화를 가꾸려는 사람들에게 깊은 깨우침을 주셨다고 생각한다. 건강하시고 또 뵙기를 바란다.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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