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퍼옴]

[놀이가 밥이다]쉬는 시간 5분 주고 떠들면 벌점… 점심시간에도 운동장서 못 놀아

ㆍ(7) 못 놀게 하는 학교

서울 송파구의 ㄱ초등학교 6학년 형석이(13·가명)는 학교 입학 후 지금까지 점심시간에 운동장에서 노는 게 허락된 것은 3년뿐이었다고 했다. 담임교사가 정한 원칙에 따라 2학년 때는 점심시간에 영어를 공부했고, 5학년 때는 점심시간에 모두가 청소하고 시간이 남으면 교실에서 보드게임을 했다. 6학년이 된 올해도 담임이 “운동장에 아이들이 너무 많다”며 점심시간에 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경기 양주의 ㄴ초등학교 1학년 교사는 지난해 아이들을 운동장에 나가지 못하게 하고, 점심시간에도 바로 교실에 들어와서 조용히 교실 안에서 텔레비전을 보게 했다.

아이들을 놀지 못하게 하는 학교가 곧잘 눈에 띈다. 쉬는 시간에 떠들지 말고 책상에만 가만히 앉아 있으라거나, 점심시간에 운동장에 나가지 못하게 하고, 방과 후 운동장에서 노는 아이들을 빨리 내보내는 교사나 교직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안전제일주의에 빠져 아이들의 휴식권과 놀 권리를 제한하고 빼앗는 학교들이다.

▲ 점심시간에 학습 지도 독서·TV 시청 하게 해
친구들과 노는 시간 없어


▲ 방과후 운동장서 놀 땐 “사고 우려” 귀가 종용
“방과후 문제, 부모 책임” 가정통신문 보내기도


대전 유성구에 있는 ㄷ초등학교 5학년 민준이(12·가명)는 쉬는 시간이 사실상 5분밖에 없다. 학교에서 정한 쉬는 시간은 10분이지만 담임이 수업시간 5분 전부터는 수업준비를 하고 책상에 앉아 있으라고 했기 때문이다. 규칙에 맞지 않게 행동하면 바닥에 무릎을 끓고 앉아서 수업을 받아야 한다. 서울 용산구 ㄹ초등학교 1학년 교사는 지난해 쉬는 시간에 화장실만 다녀오게 하고 친구들과 떠들거나 돌아다니면 벌점을 줘 학부모들에게 원성을 사기도 했다.

방과 후 학교 운동장에서 놀면서도 학교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5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이모씨(서울 도봉구)는 3년 전 ‘교내 안전사고 예방을 위하여 방과 후에는 아동들이 바로 귀가할 수 있도록 각 가정에서 지도를 바란다’는 가정통신문을 받았다. 이씨는 “방과 후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부모들이 책임지라는 느낌, 또 하나는 수업이 끝나면 빨리 학교에서 떠나주길 바라는 느낌을 받아 씁쓸했다”며 “이 통신문을 받고는 방과 후 운동장에서 노는 아이들은 가정에서 돌보지 않는 아이라는 인식이 퍼져 학교에서 놀던 아이들이 급속히 없어졌다”고 말했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강남의 ㅁ초등학교 운동장은 초록색 펜스가 가로막고 있고, 운동장에서 노는 아이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학교 보안관은 “운동부 때문에 운동장 통제가 어쩔 수 없다”며 “일반 아이들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고 학부모들도 불만이 많다”고 말했다.

서울의 ㅂ초등학교 교사는 “학교에선 공공연히 ‘아이들이 가방 멘 상태에서 사고가 나면 학교 책임이니, 바로 하교할 수 있도록 지도하라’는 말을 전달한다”며 “아이들이 방과 후에 학교에서 놀고 있으면 학교가 안심하지 못하고 귀가를 종용하곤 한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에서 초등학교 6년간 3년밖에 점심시간에 운동장을 나가보지 못한 형석이 엄마 손모씨(40)는 “3, 4학년 때 밥만 빨리 먹으면 나가서 놀 수 있게 됐다고 아이가 정말 좋아했다”며 “그런데 자꾸 학교에서 안전을 염려해 놀지 못하게 하니 고학년이 되면서 아이 스스로 밖에 나가 노는 것을 자포자기하는 것 같아 안쓰럽다”고 말했다. 손씨는 “제일 편하고 안전한 것이 독서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요즘엔 쉬는 시간 화장실 갔다 와서도, 점심 때도 너무 책만 읽으라고 강조하고 있다고 했다”면서 “일률적으로 막지 말고 아이들의 심신이 고루 성장하는 데 학교가 좀 더 신경을 써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오랜 미국 생활 끝에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한국으로 돌아온 김모씨(39)도 “오전·오후 20분씩 운동장에서 노는 ‘리세스(Recess·휴식) 타임’이 있던 미국 학교에 다니다 한국에 오니 쉴 틈 없는 학교 생활에 아이가 한동안 적응을 못했다”며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를 그렇게 시킬 필요는 없지 않느냐. 학교에서 아이들이 놀면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시간을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송현숙 기자 song@kyunghyang.com>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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