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퍼옴]

[놀이가 밥이다]‘디지털 보모’ 밑에서 자라는 ‘디지털 키즈’

ㆍ부모들 ‘쉬는 시간’ 위해 컴퓨터 게임 접하게 놔둬
ㆍ친구들과 어울릴수록 인터넷 중독 염려 줄어

초등학교 2학년인 은석(9·가명)이는 여섯 살 때 컴퓨터 게임을 시작했다. 맞벌이인 부모는 은석이를 세심하게 신경 쓰진 못했지만, 방치하진 않았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은석이를 보며 ‘다른 아이들도 하는 게임이니까 큰 문제는 안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은석이가 게임에 몰입할 때는 엄마·아빠의 ‘쉬는 시간’이기도 했다. 집에 손님이 오거나 은석이가 떼를 쓸 때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켜주면 조용해졌다. ‘디지털 보모’ 밑에서 자라는 ‘디지털 키즈’가 된 것이다. 지금 은석이는 학교나 학원을 오가며 짬짬이 나는 시간이나 잠자기 전에 게임기를 찾는다. 그외의 놀이는 은석이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은석이는 게임 속 캐릭터처럼 행동하기도 했다. 친구들을 괴롭히는 공격적인 행동을 보인 것이다. 한 학년 더 올라가면서 친구들보다 체격이 작은 편인 은석이는 따돌림을 당하기 시작했다. 은석이는 게임 속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 외에 현실 세계에선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쉽게’ 접하는 컴퓨터·스마트폰·게임기 놀이에 아이들이 파묻히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2012년에 실시한 인터넷 중독 실태조사에는 아이들의 ‘디지털 편식’이 드러난다. 5~9세 아동의 인터넷 중독률은 7.3%로, 20~49세 성인(6.0%)보다 높았다. 취학 전 유아의 인터넷 중독률도 4.3%에 달한다. 청소년(10~19세)의 인터넷 중독률은 10.7%, 스마트폰 중독률은 18.4%로 더 높았다. 

컴퓨터나 스마트폰 게임이 아이들에게 재미를 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온전한 놀이로서는 한계나 결함이 많다. 우선 다른 사람과의 정서적인 교류가 없다. 술래잡기나 공기놀이에서 아이들은 친구나 가족과 의사소통을 하고 머리싸움을 한다. 사방치기, 윷놀이, 말뚝박기에선 타협하고 포기하고 참고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익힌다.

디지털 게임은 다르다. ‘레벨 업’을 하고 ‘아이템’을 얻는 성취감은 느낄 수 있겠지만, 내가 기분이 나빠지면 그저 ‘종료’ 버튼을 누르면 그만이다. 이영애 원광아동상담센터 원장은 “컴퓨터·스마트폰 게임을 통해서는 자신의 의사를 상대에게 표현하고, 상대와 교감하며, 갈등을 조절하는 능력을 키우는 일을 기대할 수 없다”면서 “ ‘나와 함께 노는 상대가 왜 기분이 나쁘지?’라고 생각할 기회조차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컴퓨터 게임 등에서는 논리력이나 끈기를 키우는 일 역시 기대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강한 자극에 노출된 아이들은 더욱 강한 자극만 요구하게 된다. 이형초 미디어중독연구소 소장은 “아주 단맛에 길들여진 아이가 다른 맛을 느끼지 못하듯이, 컴퓨터 게임 등 강한 자극을 통한 즐거움을 느낀 아이들은 상대방과 서서히 즐거움을 키워가는 놀이에는 흥미를 갖지 못하게 된다”며 “혼자 노는 것보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여가활동이 활발한 아이일수록 인터넷에 중독될 염려도 줄어든다”고 말했다.

<곽희양 기자 huiyang@kyunghyang.com>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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