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이 곳을 내버려두는 듯하다.

이곳에서 편하게 하고 싶은 얘기, 떠오르는 생각, 고민, 누구랑 다툰 얘기, 좋았던 일 따위 

자잘한 것들을 조금씩조금씩 토해보고 싶다.


그런 게 쌓이면 그게 어느 정도 나일 것 같다.

내가 나를 잘 모르겠으니, 이렇게라도 한번 해보도록 억지로라도 끄적여보자!

익은수박아, 알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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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 것임을 밝혀 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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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한홍구 "박정희는 공포와 욕망의 정치를 했다"
[정치경영연구소의 '自由人']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


과거는 오늘의 교훈이다.  

'걸어 다니는 현대사'라 불리는 역사학자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의 냉철한 비판에는 지난 역사의 교훈이 담겨 있다. 침묵하기를 강요하는 현실에서 기형적 근대화 산물인 '종북'이라는 낙인찍기는 결국 또 다른 폭력을 낳았다. 폭식투쟁, 냄비폭발물 투척, 언론의 마녀사냥 등 극단적으로 과잉된 행동이 '애국(愛國)'이라는 이름으로 집결되는 데는 분명 왜곡된 담론이 수용된 결과다.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일터. 새도 좌우의 양 날개가 균형을 갖춰야 고공비행을 할 수 있듯 우리 사회의 왜곡된 좌와 우의 불균형을 바로잡을 때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를 인정하고 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야당성을 잃은 진보와 합리적 보수의 부재를 지적한다.

"우리 사회에 정말 큰 문제는 진보가 약한 게 아니라 합리적인 보수가 복원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진보는 충분하진 않지만 많이 복원됐다. 그러나 합리적인 보수는 복원되지 않았다. 한국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민주, 인권, 평화와 같은 보편적인 가치에 동의하는 합리적인 보수가 복원되어야 한다."

돈과 욕망이 지배하는 사회가 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슬프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 사회는 물질만능주의, 즉 돈과 욕망의 지배 속에 살고 있다. 그는 룰을 강조한다. 

"'룰(rule)을 지키지 않으면 욕망을 충족시킬 수가 없구나, 룰을 어기면 망하는 거구나'를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룰을 지키는 놈이 바보가 된다. (중략) 대중들이 정당한 욕망을 가지는 것은 나쁘지 않다. 다만 그 욕망을 충족하는 방식이 적법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한다."


▲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 장발장은 빵 한 조각 때문에 19년 옥살이를 했다. 바로 그 유명한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 이야기다. 가난한 것도 죄라는 한탄이 쏟아지고, 가난이 곧 형벌인 현재가 지금 우리 사회의 단면이다. 최근 '장발장 은행'이 출범했고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난한 이들에겐 자베르의 잣대는 너무 가혹한 것 같다.


돈이 없어 벌금형을 받고도 감옥에 가야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1년에 4만 명이 넘는다는 걸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 처음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운동 시작할 때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병역 거부로 수용된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몇 명이나 징역을 살고 있나?' 하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1600명이나 감옥에 있더라. 이들은 벌금 수십만 원이 없어 노역장에 간다. 그곳 하루 일당이 5만 원이다. 법이 만인 앞에 평등한가? 누구는 '황제 노역'이라 해서 하루 5억 원씩 깎아주고, 누구는 수십만 원이 없어 하루 5만 원씩 감옥살이하고…. 징역형에는 집행유예가 있어, 훨씬 무거운 죄를 짓고도 집행유예로 풀려난다. 인권 문제에 대해 조금 더 세심한 눈길이 필요하다. 구치소 강연을 많이 다닌 서해성 작가와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등이 이 문제를 제기했고 홍세화 선생님, 김희수 변호사, 도재형 교수 등 많은 전문가가 발 벗고 나섰다. 나는 그냥 이름을 올린 정도다. 우리 벌금 체계가 재벌이나 날품팔이, 실업자, 기초생활자나 다 똑같이 벌금을 매긴다. 이건 평등이 아니다. 소득에 따라 벌금도 차등을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 조선시대 학자 한백겸 선생의 14대손, 한치응(韓致應) 선생의 7대손, 독립운동가 한기악 선생님의 손자, '일조각(一潮閣)' 창업주이자 언론인 한만년 선생의 4남, 교육자 유진오 선생의 외손이다. 명문가 집안 출신이라, 어렸을 때 교육환경도 남달랐을 것 같다. 어린 시절 이야기가 궁금하다.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매우 좋은 환경이었다. 아버지가 출판사를 했는데, 상업적으로 큰 출판사는 아니었지만 우리나라 학술서적에 있어서는 권위가 있었다. 특히 한국사 분야는 거의 독점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집에 책밖에 없어 책과 친숙하게 지냈다. 물론 표지나 목차 정도지만, 중고생 때부터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봐야 할 책을 다 봤다. 우리 세대 전체를 놓고 봐도 지금에 비해 그때가 청소년 입장에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기에 좋은 시절이었다. 나는 한 10살 때쯤부터 사학자(史學者)가 되고 싶었다. 대한민국에서 10살 때 하고 싶었던 것을 지금까지 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다. 역사가 재밌었고, 의미 있는 일도 많이 할 수 있다. 

- '걸어 다니는 한국 현대사'라 불리고,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김일성 전문가'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김일성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금기다. 김일성을 연구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내가 만 30살이 안 돼 미국을 갔는데, 그때까지 공부하면서 느낀 책임감 같은 게 있었다. 사실 성균관대 서중석 교수보다 우리 또래가 현대사를 먼저 공부했다. 서중석 교수는 나보다 11년쯤 윗 학번인데, 이분이 학교 졸업 후 <신동아> 기자로 오래 있다 대학원을 들어왔다. 이보다 앞서 대학원에서 현대사를 해야 한다고 왔다갔다 설치고 다녔었다. 80년대엔 현대사를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보니, 현대사에 대한 수요가 폭발할 때였다. 당시 젊은 나이였지만, 여기저기 강연을 다녔다. 1987~88년 무렵엔 내가 어디 가서 무슨 얘기를 하든지 첫 번째와 두 번째 질문은 항상 "김일성이 진짜냐, 가짜냐?"였다. 이 질문을 받아보지 않은 적이 없다. 흔히 '주사파'라고 불리는 집단도 이보다 2~3년 전에 형성되기 시작했고, 북한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번질 때였다. 그때는 '북의 지도자 김일성이 진짜냐, 가짜냐'가 절박하게 중요한 문제였다. 당시 우리 사회에 대한 절절한 호소력이 분명하게 있었다. '북한을 추종한다'는 얘기는 예나 지금이나 말이 안 되지만, 북에 대한 정당한 관심이었다. 그래서 김일성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이른바 '북한바로알기운동'이라는 게 적극적으로 일어났는데, 그에 앞장섰던 사람으로 박사논문에서 '김일성은 도대체 누구며, 항일무장투쟁은 무엇이고, 또 이것이 분단된 우리 사회에 던지는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해 다뤄야겠다고 생각했다. 

- 주간지 <한겨레21>에 2001년부터 '한홍구의 역사이야기'를 연재하며 한국 현대사의 금기를 많이 고발했다. 어조가 굉장히 강했는데, 어떤 계기로 쓰게 됐나.  

처음에는 현대사를 대중화하는 역할을 했다. 내가 민청련(故 김근태 상임고문이 초대 의장을 지낸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약칭) 선전국 출신이라 대중화에 책임감이 있었다(웃음). 우리 현대사에서 꼭 짚어야 할 주제를 대충 50개 정도 뽑아서 연재를 시작했는데, 몇 번 연재하다 보니 그때그때 발생하는 문제를 언급할 필요가 생겼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문제는 다 역사적인 맥락이 있고, 역사가 왜곡된 부분도 많다. 

미국 유학 후 돌아오니, '호주제 폐지' 문제가 한참 논쟁이었다. 호주제 폐지를 반대하는 토론자들이 TV 토론회에서 호주제와 관련해서 미풍양속이 어쩌고저쩌고하더라. 그런데 여성 쪽 토론자가 이 부분에 대해 방어를 잘 못 하더라. 호주제가 무슨 미풍양속이냐. 이건 일본제국주의자들이 만들어 놓은 대표적인 친일 잔재다. 이런 건 박살을 내야 한다. 한 가지 예를 들었지만, 시시각각 사건이 터지며 논쟁거리가 되다 보니 민족문제, 친일파문제, 민간인 학살 문제 등 50가지 주제에 대해 차근차근 글을 쓸 수가 없었다. 그때그때 벌어지는 현상을 역사적으로 풀어서 설명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겼고, 또 그런 요구도 생겼다. '시민사회에 내가 이걸로 기여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연재했다. 주위에서 걱정도 많이 했지만, 큰 탈 없이 여기까지 왔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말을 세게 하는 사람들이 바로 비전향 장기수 선생들인데, 내가 이분들과 친하게 지냈다. 주간지에 몇 번 글을 쓰자, 그분들이 "한 박사, 그렇게 글 써도 됩니까. 조심해야 하지 않습니까?"라며 "몸조심하라"고 하더라.(웃음)

- '한홍구의 역사이야기'로 투고한 글을 묶은 책 <대한민국史>(한겨레출판사 펴냄)가 2008년 국방부 불온서적으로 지정돼 논란이 있었다. 그때 기분이 어땠나? 

박정희 전 대통령을 기회주의자라고 비판한 게 당시 내 책이 처음이었는데, 요즘은 책이든 온라인상에서든 이런 관점에서 쓴 글이 많아졌다. 당시만 해도 칼럼니스트 조갑제가 쓴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조선일보사 펴냄)는 박정희에 대해 '백마 타고 온 초인', '고독한 철학자' 등으로 평가하던 분위기였다. 그런데 내가 박정희의 젊은 시절을 기회주의자라고 해석한 것이 대중들에겐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 역사학은 사실 한발 늦은 학문이다. 다른 학문에 비하면 현실 대응력이 떨어진다. 그러나 나름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현실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고 기여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나름대로 재밌게 시도해볼 수 있었던 것이 <대한민국史>였다. 

ⓒ프레시안(최형락)

불온서적으로 지정됐을 땐 한국 민주화의 취약성, "아! 세상이 아직 다 안 바뀌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재밌었던 건, 국방부 불온서적 지정으로 책이 훨씬 많이 팔렸다는 점이다. 나중에 들어보니, <대한민국 史>가 불온서적으로 지정된 데에는 약간의 비화도 있었다. 당시 군대에서 후배 대학생들이 책 보내주기 운동을 하면서 추천도서를 선정했는데, 그 도서 전부 금서가 됐다. 권정생 선생의 동화책이 왜 금서가 돼야 하나. 그런데 그 운동을 한 친구들이 조금 NL 쪽에서 학생운동 하던 친구들이었다는 거다. 그러다 보니, 나보다 훨씬 더 급진적인 좌파들이 쓴 책이 오히려 불온서적으로 지정되지 않았다. 민주정책연구원 우석훈 부원장, 동양대 진중권 교수 등이 쓴 책도 빠져 있더라. 그들 중 몇몇이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며 국방부를 야유했고, 불온서적 필자들은 그들을 보고 '축에도 끼지 못한다'라고 낄낄대기도 했다.(웃음) 

한국 사회에서 아직도 불온(不穩)으로 낙인찍거나, 검열과 통제를 하지 않으면 못 배기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문제는 끊임없이 벌어질 텐데, 되도록 이런 건 유쾌하게 넘어갈 필요가 있다. 물론 굉장히 기분이 나쁘다. 민주사회에 불온이라는 말이 어디 있나. 불온한 것이 역사를 발전시켰다. 

- <대한민국史>에서 "해방 후 친일파 청산이 아니고 친일파에게 역으로 청산을 당했다. 식민지에서 해방됐는데, 식민국에 빌붙은 세력이 권력을 잡았다면, 정의, 상식은 어떻게 됐을까. 지금 우리 사회의 수많은 일의 근원이 거기에 있다"고 했다. 친일파 청산 문제, 어떻게 하면 근원을 해결할 수 있나?

과거 청산은 과거의 영역에서 싸워서는 이길 수가 없고 이겨도 무의미하다. 나는 과거 청산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지만, 과거 청산을 잘하는 길은 현재(現在)를 바꾸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을 바로잡음으로써 과거에 잘못된 부분까지 역사적인 의미에서 바로 잡히는 것이다. 현재를 지배하는 사람이 결국은 과거를 지배하게 된다. 지금 친일파는 현실적으로 다 죽었다. 그러나 친일파의 후예들이 여전히 현실을 잡고 있다. 친일파를 찬양하거나 그리워하거나 고마워하는 태도가 지배적인 위치가 되지 않게 하려면, 현재가 바뀌어야 한다. 현재 우리 사회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민주화되면 민주화 된 것으로써 친일문제를 청산할 수 있다. 그래야 뒤늦게나마 독립운동을 했던 이들에게 "늦었지만, 이제야 좋은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친일문제는 현실과 동떨어져서 개혁하거나 청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민주주의를 잘하면 친일문제를 제기할 이유도 없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를 하려면 친일파, 그리고 그 후손이 지배하는 한국 사회를 바꿔야 하는데 이것이 민주화이기 때문이다. 국가기구를 그런 사람들의 손에 맡기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국가란, 양면적인 성격이 있다. 약자의 보호기구이면서도 가장 철저하고 광범위하게 인권 탄압을 할 수 있는 것이 국가다. 극악한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살인하면, 몇십 명이 죽는 것이지만 국가는 몇십만 명을 죽인다. 단위 자체가 다르다. 이런 국가를 유영철보다 나을 게 없는, 더 흉악한 이들에게 맡겨둬서는 안 된다. 그놈들이 국가를 장악하는 과정이 바로 민간인 학살이었다. 수십만 명을 죽이며 힘의 불균형을 만들어 지배했는데, 그나마 우리가 민주화해서 턱밑까지 쫓아가고 있는 것이다. 친일파 문제의 해결은 과거로 돌아가 친일문제를 파헤쳐 승부가 나는 것이 아니다. 현실을 바꿔 독립투사들이 꿈꿨던 세상을 만들어야, 처절히 죽어간 독립투사들에게 "죄송합니다. 근 70년 걸렸습니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제대로 청산 작업을 했다면, 아주 관대하게 해야 했다고 생각한다. 독립운동했던 사람들을 밀고하고 체포하고, 학살한 놈들 빼고는 웬만한 건 다 봐줘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우리의 문제는 바로 이런 도저히 봐줄 수 없는 사람들이 권력을 잡았다는 거다. 이런 놈들이 민족적 양심을 가진 합리적 보수들까지 다 잡아 죽인 거다. 합리적 보수의 씨가 마른 이유는 바로 악질 친일파가 합리적인 보수를 빨갱이로 몰아 처단했기 때문이다. 백범 김구 선생조차 빨갱이란 소리를 들었다. 장준하 선생 같은 극우파가 왜 재야의 원조가 됐겠는가. 친일파가 양심적인 보수를 몰아냈기 때문이다. 1949년 '국회 프락치 사건'으로 잡혀간 사람들도 좌파가 아니라 민족적 양심을 가진 우파였다. 해방 직후, 좌파 대부분은 북으로 넘어가고 5.10선거에는 아예 참여하지 않았다. 민족적 양심을 가진 우파들은 '대한민국을 어떻게 세울지'를 고민하며, 공산당에게 넘길 수도 친일파에게 넘길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공산당에게 먹히지 않으려면 개혁해야 되고 개혁을 하려면 친일파를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친일파가 진짜로 위기감을 느끼고 이들을 공격한 것이다. 그래서 1946년 백범을 쏴 죽였다. 

이렇게 민족을 중시하는 진짜 보수들이 산산이 흩어지고, 이 중 일부가 재야인사가 된 것이다. 함석헌 선생이나 장준하 선생은 해방 직후의 기준으로 볼 때 진짜 보수적인 분 아니었나? 문익환 목사는 70년대 카터(Jimmy Carter)가 주한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하니, 주한 미군 철수 반대 서명 운동을 했다. 리영희 선생은 국군 장교였다. 김수영 시인은 반공 포로였다. 이들의 우산 밑에서 진보가 컸는데, 원래 진보는 아니었다. 해방 후, 진짜 진보는 전쟁 때 다 죽거나 북으로 갔다. 그 이후 한국의 진보는 진짜 보수의 그늘서 컸다. 진짜 보수들이 한국의 진보진영에게 젖을 물려준 거다. 진보는 진짜 보수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한국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민주, 인권, 평화와 같은 보편적인 가치에 동의하는 합리적인 보수가 복원되어야 한다.

- 일간베스트(일베)나 서북청년단 재건 논란 등 금기시되어야 할 용어와 움직임이 다시 태동하는 것 같다. 역사적 관점으로 볼 때 왜 이런 일이 생겨나는 것인가.  

솔직히 이들은 상대할 가치도 없는 쓰레기들이다. '일베', '서북청년단' 같은 세력이 형성될 때 이에 기겁해 억누르는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사실 보수여야 한다. 유럽도 극우파의 등장을 제일 경계한 이들은 좌파가 아니라 합리적인 보수였다. 한국 사회는 합리적인 보수가 없다. 사실 친일 청산할 때 친일파에게 청산 당한 사람들이 합리적인 보수다. 지금 한국사회는 진보와 보수의 구도가 너무 이상하게 형성되어 있다. 우리 사회에 정말 큰 문제는 진보가 약한 게 아니라 합리적인 보수가 복원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진보는 충분하진 않지만 많이 복원됐다. 그러나 합리적인 보수는 복원되지 않았다. 한국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민주, 인권, 평화와 같은 보편적인 가치에 동의하는 합리적인 보수가 복원되어야 한다. 

지금은 80년대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은 책이 쏟아져 나오는데, 보수는 책을 읽지도 않고 쓰지도 않는다. 진보는 책을 쓰고 읽긴 하지만, 자기들 책만 읽는다. 콘텐츠로도 비교가 안 된다. 해방 전 독립운동 과정에서는 나라를 찾기 위해 제 한 몸을 바친 보수인사가 수없이 많았다. 그러나 한국 전쟁 이후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내던진 보수인사, 찾을 수 있나? 참으로 슬프고 다시 되풀이돼선 안 될 일이지만, 진보진영에는 공동선을 위해 분신하고 투신한 열사들과 관련해 '별걸 다 기억하는 역사학자'라는 별명이 붙은 나도 다 기억 못 할 정도로 열사가 많다.  

그런데 한국 사회의 보수를 보라. 도덕적으로 존경할 만한 보수가 어디 있나. 콘텐츠를 갖고 방향을 제시하거나 이 사회가 위기에 빠졌을 때 헌신할 수 있는 보수가 없다. 보수 중에 병역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한 사람이 없다. 진보진영은 수감생활로 차마 군대로 끌고 가지 못한 사람 빼고는 거의 다 의무를 마쳤다. 백낙청 선생은 미국 유학시절, 입대하기 위해 귀국했다. 하지만, 병역의 의무를 충실히 하기 위해 귀국했다는 보수는 없다. 

모택동의 아들도 한국전쟁에서 죽었고, 벤 플리트(Van Fleet) 미 8군 사령관 아들도 한국전쟁에서 죽었다. 미군 고위직 아들 중 한국전쟁에서 희생된 사람만 35명이라고 한다. 한국 장관이나 장성, 국회의원 아들 중에서 한국전쟁에서 희생됐다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다. 있었으면 교학사 역사교과서에 3페이지 쓰고 전쟁박물관에 별도 공간도 만들었겠지만, 없지 않나. 우리 사회에 진짜 보수가 없다는 증거다. 건전한 보수가 있다면, '일베 현상'이 나올 수 없다. 건전한 보수가 없어 진보에 밀리다 보니, 한다는 게 폭식투쟁 등 턱도 없는 조롱만 하는 것이다. 

- 합리적 보수를 다시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보수들이 진짜 각성하고 깨어나야 할 필요가 있다. 보수는 자기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다. 우리나라 보수의 역사를 스스로 어떻게 세워야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보수의 계보는 김창룡이나 노덕술, 서북청년단 같은 자들이 아니라, 백범을 중심으로 또는 그도 아니라면 김성수나 방응모 같은 사람을 중심으로 재정리해야 한다. 김성수, 방응모가 친일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고 <동아일보>나 <조선일보>가 친일한 것도 사실이지만, 해방 직후 <동아>나 <조선>이 친일 신문이니 복간하면 안 된다'고 한 사람이 있는가. 

김성수는 친일한 게 맞지만 재평가해야한다. 제헌헌법 86조에 농지개혁이 명시되어 있다. 농지개혁은 지주의 토지를 빼앗아 농민에게 나눠주자는 것이다. 조선 8도에서 땅을 제일 많이 가진 김성수가 제헌헌법을 만들 때 그 조항에 반대하지 않았다. 자기 땅을 다 뺏어서 나눠준다는데도 동의했다. 지금의 수구꼴통과는 격이 달랐다.

친일 문제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장덕수는 보성전문 학생들에게 학도병 나가라는 연설을 했다. 내가 "장덕수가 학도병 연설을 하고 젊은이를 군대로 내보내지 않았느냐"라고 하니까 아버지께서 "야 이놈아, 내가 그 연설을 들었다"고 하시더라. 그러면서 장덕수가 그 연설을 울면서 했고, 아버지와 학생들도 울면서 들었다는 거다. "장덕수가 진짜로 친일파여서 그런 연설을 했으면, 이철승 같은 깡패가 돌아와서 장덕수를 때려죽였지 가만뒀겠느냐"며, 학도병으로 갔던 학생들이 살아 돌아와 장덕수를 부둥켜안고 울었다고 하시더라. 학도병 연설을 잘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당시 학도병들은 장덕수를 아무도 친일파라고 보지 않았다는 거다. 

한국 역사의 복잡함 속에서 보수의 계보를 다시 세워야 한다. 인류 역사에서 진보를 실제 진보로 바꾸는 과정을 진보가 했나, 보수가 했나. 진보는 악을 썼고, 진보의 주장과 헌신적인 투쟁을 보면서 '세상이 바뀔 수밖에 없구나!'를 깨달은 보수가 그동안 범죄시 되고 탄압받던 진보의 주장을 제도화해 세상을 바꾸는 거다. 그런 역할을 보수가 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큰 문제는 보수파가 자신들의 진짜 족보를 모른다는 거다. 지금 진보에서 장준하 선생에게 제사를 드리며 '재야의 큰 어른'이라고 하는데, 이 분은 사실 문창극보다 더한 보수다. 백범을 극우라고 얘기하지만, 장준하는 백범보다 훨씬 더한 극우였다. 백범의 수행 비서였던 장준하가 백범과 갈라선 이유는 백범이 남북협상에 대해 '빨갱이와 무슨 협상이냐'고 소리쳤기 때문이다. 

우파가 뭐냐? 민족을 얘기하는 거다. 그런데 한국에는 글로벌스탠다드에 맞는 우파가 없다. 우리나라 우파는 '앞잡이 우파'다. 친일파 앞잡이 노릇을 했던 이들이 '반공'으로 갈아타면서 우파가 된 거다. 그러니 민족 대신 동맹을 얘기하는 것이다. 한국 현대사를 보면, 민족을 얘기하면 잡아 죽였다. 진보당 조봉암 선생이 그렇게 죽었고, <민족일보> 조용수가 그렇게 죽었다. 인민혁명당, 통일혁명당, 남조선해방전략당,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가 또 그렇게 죽었다. 한국의 자칭 우파들은 정말 주인으로서의 자격이 없고 자부심과 책임이 없다. 그러니 공동체를 위한 책임감과 헌신이 나올 수 있겠는가. 

합리적인 보수가 있는 곳에는 일베나 서북청년단이 설 자리가 없다. 국가기관이 대선에 개입해서 댓글을 다는데도 보수는 침묵하고 있다. 정보기관의 선거 개입을 막는데, 진보와 보수가 어찌 따로 있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그걸 비판하면 '종북좌파'가 된다. 이런 구도를 만들어야만 서식할 수 있는 게 일베와 서북청년단이다. 그러니 이 환경이 무너질까 봐 통일도 반대하는 거다.  

- 책 <특강>(한겨레출판 펴냄)에서 "그들이 공포의 정치는 놓아버렸지만 욕망의 정치를 더욱 강화한 사회구조 속에서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욕망을 향해 뛰고 있다. 공포의 국가에서는 무서워서 뛰었다. 하지만 욕망의 정치 속에서는 거기에 세뇌되어 우리 스스로 쫓아가고 있기 때문에 훨씬 더 어렵고 힘든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현재 욕망의 정치, 돈을 숭배하는 마몬의 정치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여실히 드러난 관피아의 문제 역시 욕망과 마몬의 정치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 

"룰(rule)을 지키지 않으면 욕망을 충족시킬 수가 없구나, 룰을 어기면 망하는 거구나"를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룰을 지키는 놈이 바보가 된다. 그러나 욕망을 거세하려고 하면 안 된다. 우리가 다들 수도승은 아니지 않나. 다 잘 먹고 잘 살아보려고 하는 것 아닌가. 대중들이 정당한 욕망을 가지는 것은 나쁘지 않다. 다만 그 욕망을 충족하는 방식이 적법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한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기회는 균등하게, 과정은 공평하게, 결과는 정의롭게'라고 했는데,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한다. 

MBC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 79회 '투기의 뿌리, 강남공화국'을 담당했던 유현 피디가 한 인터뷰에서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잘 지적했다. 자신은 '독재자 박정희가 정권 유지를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고문해서 간첩 만든 것을 큰 죄악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프로그램을 만들고 보니 박정희의 더 큰 죄악은 부동산 투기에 올라타지 못한 채 그저 성실하게 일해 온 우리 숱한 아버지들을 무능력자로 만들어버렸다는 점'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죄악을 어떻게 씻겠느냐'는 얘길 하더라. 정말 명언이다. 1966년도 국민학교 입학식 때 '회풍각'이라는 집 앞 중국집 짜장면이 30원이었다. 이번에 평당 4억 원에 팔린 한국전력 부지 땅값이 그때 30원이었다. 짜장면값이 100배, 150배 오르는 동안 땅값은 수백만 배 뛰어버렸다. 성실한 아버지를 무능력자로 만들어 버린 게 바로 부동산 투기다. 박정희가 한 건 바로 공포의 정치와 욕망의 정치다. 

- 2013년 10월 한 인터뷰에서 "자칭 진보라는 민주당과 지식인, 언론이 손을 놓고 있었으니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민생을 도외시한 채, 그들만 '민주화'가 된 것이다"라며 야당이 야당성(野黨性)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 야당이 걸어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 

'중도'라는 개념이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한국에서 중도라는 용어는 미래에 대한 진보와 보수의 이념 사이에서 양자를 아우른 제3의 길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싸우지 않겠다는 거다.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해 댓글을 다는데, 이런 짓을 하는 놈과 하면 안 되는 놈 사이에 중도가 어디 있나. 이건 아니다. 싸워야 할 때 싸우지 않는 것을 중도라고 포장하는 게 현재 한국 야당의 병폐가 됐다.  

그리고 야당이 '486', '친노'라고 비판받는 이유 중 하나가 '말만 세게 한다'는 거다. 물론 민주당이 새누리당보다는 더 많이 얘기하지만, 선거 때 비정규직이 누구를 찍나? 새누리당을 찍는다. 왜냐하면, 야당이 말로만 떠들기 때문이다. 절박함이 묻어나지 않는 연설과 떠들지 말자는 중도를 표방하는 놈들은 싸우지 않겠다는 거다. 이걸 우린 옛날에 '사쿠라(さくら, 사기꾼)'이라고 불렀다. 이게 무슨 놈의 중도냐. '한국 사회가 어떻게 나가야 할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하며 방향성의 중도를 얘기한다면, 그걸 누가 비판하겠는가. 이런 의미의 중도라면 같이 고민하고 토론하는 대상이 될 수도, 서로 자극하는 경쟁자가 될 수 있다. 단테는 "지옥에서 가장 뜨거운 자리는 도덕적 위기에서 중도를 표방하는 자식들에게 차려질 것이다"고 했다. 

한국 사회 대의정치는 정말 문제가 있다. 비정규직이 670만 명(2014년 통계청)이면 비정규직을 대변하는 자가 국회에 적어도 2~30명은 있어야 하지 않나. 세상이 변하면서 호남이 가졌던 동력도 떨어졌다. 호남 출신 의원들이 민주주의가 아니라 지역 토호들의 이익을 대변하다 보니, 야당이 비리비리 맥을 못 추고 있다. 야당성과 투쟁성을 회복하고 야당이 야당다워야 한다. 현재 호남은 하나의 지역이지만, 6·70년대와 80년대 호남은 그냥 하나의 지역이 아니었다. 지금은 그 성격이 죽어버렸다. 호남 정치의 복원, 투쟁성의 복원을 해야 한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 임기가 2년 남았다. 그런데 '그게 아닐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박근혜 하는 걸 봐라. 저렇게 못하는데, 저걸 못 바꾸면 바보 아니냐." 그런데 야당이 하는 걸 보면, (정권)을 바꾼다고 바뀔 리가 없다. 박 대통령도 '어쩜, 저렇게 못할 수가 있는지' 의문이다. 그런데 야당을 보면, 저들보다 훨씬 더 못한다. 박 대통령이 '축복받았다'라는 건 바로 이런 거다. 


ⓒ프레시안(최형락)


- 2004년부터 3년간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 규명을 위한 발전위원회 민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밝힌 내용을 <한겨레>에 '사법부-회한과 오욕의 역사'로 연재했다. 인권과 양심의 자유를 지켜줄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 '오욕'의 역사가 과거의 지난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지금 사법 체계와 판결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사법부에 절망스러운 부분과 희망적인 부분이 공존하고 있다. 절망만 얘기해서는 안 된다. 국정원 과거사 보고서 부분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라고 생각했던 것이 바로 사법부 얘기다. 과거사의 모든 심급이 결국은 사법부에 가서 판결을 어떻게 받느냐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걸 할 수 있는 게 바로 '국정원 과거사위'다. 나로서는 보람 있는 작업이었다.  

<한겨레>에 연재한 '사법부-회한과 오욕의 역사'에 부제를 단다면, '바짓가랑이를 올려보라 하지 않은 죄에 관한 보고서'라고 하고 싶다. 그 사람들이 "여기 아직 상처가 남아 있습니다"라며 고문당했다고 하소연하면, 사법부가 "거, 바짓가랑이 한번 올려보시오"라는 얘길 하지 않고 간첩 유죄판결을 내렸다. 그 죄를 어떻게 물어야 할까? 정말 착잡했다. 그래도 그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은 좋은 판결이 더 많이 나온다. 50년대 진보당 판결과 관련해 반공 청년들이 법원에 쳐들어가 '빨갱이 판사'를 때려잡자고 했고, 60년대엔 군인들이 법원 앞에 가서 왜 영장을 발부하지 않느냐며 데모했다. 하지만 70년대부터 그런 분위기가 사라졌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서 조금씩 다시 나타난 게 '미네르바 사건'과 강기갑 전 의원의 이른바 '공중부양 사건', 'PD수첩 사건', '한명숙 전 의원 사건' 등의 판결을 앞두고 보수단체 회원들(일명 '가스통 할배들')이 사법부 앞에서 데모를 했다. 그만큼 사법부에서도 양심적인 판결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사법부는 여전히 보수적인 구성이 지배적이지만, 그럼에도 세대가 교체되면서 건강한 부분이 돋아난 것이다.  

사법부의 '회한과 오욕의 역사'를 쓴 탓인지 재판에 자주 불려 갔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때도 피고로 여러 번, 또 전문가 증언으로 불려 갔다. '국가보안법 문제'와 '정수장학회 사건' 때도 그랬고, '이석기 사건'에도 증인으로 참석했다. 아직도 이런 재판을 해야 한다는 건 불행한 일이다. 정말 시대착오다. 내란음모 사건으로 사형수 생활을 했던 김대중이 대통령이 된 나라다. 이런 면에서는 한국이 참 대단한 나라다. 사형수를 17년 만에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난 미국에 있었지만, '아, 다시는 한국에서 내란음모 사건은 일어나지 않겠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국민의 정부 이후 17년 만에 내가 내란음모 사건의 증인으로 법정에 섰다.  

역사적으로 내란음모 사건이 많았는데, 대개 쇼였다. 보도 간첩, 보도 내란이란 말을 적용할 수 있다. 내란죄로 일단 잡아서 기소할 때는 '소요죄(騷擾罪)'로 이름 붙인다. 내란죄에 비해 소요죄는 훨씬 약하다. 데모를 조금만 세게 하면, 소요죄 적용이 가능하다. 그런데 내란죄는 다르다. 조직적인 무장동원 체계를 갖고 국가기관을 점거하고 파괴하는 행동이 있어야 내란인데, 내란으로 뻥튀기해서 걸어놨다가 막상 기소할 때는 '내란'을 슬그머니 빼고 기소할 때가 잦다. 

- 헌법재판소에 의해 결국 정당이 해산됐다. 역사적 의미를 따지자면?

우리가 어렵게 이룩한 민주화가 공안 세력들에 의해 다시 짓밟혔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대한민국을 국민의 것이 아니라 자기들 것으로 천년만년 누리고자 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무게 중심을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누리려고만 하는 자에게서 일반 국민 대중으로 옮겨야 한다. 통합진보당이 부당하게 해산됐을 때 새정치민주연합이나 정의당이 보인 태도는 실망을 넘어 절망스러웠다. 우리가 '진보적 민주주의'를 지켜나갈 것이라고 왜 당당하게 선언하지 못하나. 통합진보당이 여러 가지 잘못으로 대중에게 외면받은 것을 깊이 반성해야 한다. 그러나 시민들 역시 이 문제가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 마르틴 니묄러 목사의 글 <그들이 처음 왔을 때>가 다시 생각나는 밤이다.  

그들이 처음 공산주의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에  

이어서 그들이 유대인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에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에  

그리고 그들이 나에게 왔을 때  
그때는 더 이상 나를 위해 말해 줄 이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 지난해 12월 19일 헌재의 통진당 해산 판결 후, <한겨레> 특별 기고를 통해 "'진보적 민주주의'는 김일성만이 얘기한 것이 아니라 백범 김구 선생도 했고, 임시정부 헌법도 진보적 민주주의 기초위에 섰다. 지금 학교들에서 제헌헌법을 가르치지 않는데, 이유는 통합진보당의 강령보다 더 세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인 제헌헌법도 그동안 충실히 배우지 못한 것인가.  

제헌헌법은 대한민국 국가 정체성을 다룬다. 우리 사회에서 제헌헌법은 잘 가르치지 않는다. 수능시험에 나오지도 않는다. 이유는 너무 빨갛기 때문이다. 이석기 전 의원의 항소심 증인으로 법정에 갔을 때도 얘기했다. "현행 헌법을 보면 '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했다'고 하는데, 임시정부 헌법을 읽어본 적 있나?"라며, 임시정부 의회인 임시의정원 의사록과 선언문, 백범이 쓴 성명서 등을 제시했다. 1944년 개헌 이래, 임시정부의 헌법 자체를 역사적으로 '진보적 민주주의'에 기초해서 만들었다. 그리고 '제헌헌법 해설서'인 유진오 박사의 <헌법해의>를 보면, 대한민국 헌법은 경제 질서에 있어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폐기하고 사회주의적 균등의 원리를 채택했다 되어 있다. 또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 성격을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를 조화한 것이라고 했다. <헌법해의>에는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는 않지만, 정치적 민주주의가 흔히 말하는 자유 민주주의고 여기에 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를 더한 게 '진보적 민주주의'다. 경제 민주화가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원래 제헌헌법에도 제기된 과제인데 친일파가 우리나라를 접수하면서 사라졌던 것이 뒤늦게 나온 것이다. 옛날 백범이나 임시정부에서 얘기한 내용과 조금 달라질 수는 있지만, 기본정신은 이거다. 제헌헌법이 이런 대한민국을 만들자고 국민들에게 약속한 것인데, 그 약속의 내용을 가르쳐야 할 것 아닌가. 이 큰 약속보다도 약한 약속(강령)을 내건 사람을 '헌법 위반'이라고 잡는 나라가 어디 있나. 이게 '반(反) 헌법'이고 '반(反) 대한민국'이라고 하면서 법정에서 악을 쓰고 나왔다(웃음). 

- <대한민국史>·<특강>·<유신>·<지금 이 순간의 역사>(한겨레출판 펴냄), <장물바구니>(돌아온산 펴냄) 등 다양한 책을 썼다. 앞으로 꼭 쓰고 싶은 책이 있다면?

지금 살고 있는 젊은이들이 '아, 이 형 별 볼 일 없었네. 나랑 같은 과(課)네?' 하고 느낄 수 있도록 역사 속 인물들을 친근하게 푼 '형과 누나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 '중근이 형', '봉길이 형', '봉창이 형'처럼 말이다. 요즘은 위인전이 너무 거룩하게만 쓰여 있다. 안중근이 지금 고등학교에 다녔다면 어떤 과였을까? 비범한 인물이었을까? 껌 좀 씹고, 다리 좀 떨고, 침 좀 뱉고, 삥 좀 뜯으며 어디선가 일진 노릇했겠지(웃음). 위인전을 보면 애들이 안중근을 따라 배우지 못하게 만들어 놨다. '태어날 때부터 비범했고, 오색구름이 뜨고 등 안중근처럼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 이 한 몸 던져서 총을 쏘려면 등에 하다못해 별을 7개는 달고 태어나야 한다'는 식으로 만들어 놨다. 안중근도 삥도 뜯고 좌충우돌하며, 총도 뽑아들고 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대오각성해서 정의를 위해서 나선 거다. 안중근 어머니도 대단하다. "아들아, 더 살려고 하지 마라. 넌 이미 훌륭한 일을 많이 했다." 이런 얘기들이 교과서에 실려야 한다. 김 알렉산드라(1885~1918)는 한국인 최초의 외국 장관이었다. 러시아극동인민공화국이라고 잠깐 세워졌다가 없어진 나라지만, 100년 전에 한국 여성이 외무담당 인민위원(외무부장)을 했다. 그녀가 사형당할 때 마지막 소원이 "8보(步)만 걷게 해다오" 였다고 한다. "왜 하필 8보냐?"라고 물으니, "비록 가보진 못했지만 우리 아버지 고향이 조선인데 8도라고 들었다. 내 한발 한발에 조선에 살고 있는 민중들, 노동자들의 미래에 대한 희망, 새로운 사회가 실현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는다"라고 하면서 죽었다. 얼마나 멋진가. 매일 영어 단어 외워야 하는 학생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읽혀야 하지 않겠나. 

또 과거사와 관련해 고문과 용공조작 등 '조작 간첩 사건'을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 것인가 등 '반헌법행위자열전'을 쓰고 싶다. 영화 <변호인>을 보면서 생각했다. 거기서 나오는 국밥집 아들 진우가 현실에선 내 나이 또래다. 나중에 아들딸이 커서 영화를 보며 "아빠, 송 변호사는 어떻게 됐어?"라고 물으면, "음…. 정의를 세우려고 왔다 갔다 하다가 잘못돼서 죽었어“라고. 또 "그럼 차동영은 어떻게 됐어? 감옥 갔어?"라고 물으면 "연금 또박또박 받아먹다가 얼마 전에 늙어 죽었어"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차동영이 하다못해 감옥에는 못 보냈지만, 국밥집에 찾아가 무릎 꿇고 사죄했어." 이렇게는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사람들의 사죄와 반성을 촉구하고, 사죄를 안 한다면 현실 법정에는 못 세웠지만 역사의 법정에는 세워야 하지 않겠나. 그 사람들의 자료를 모아서 전기를 써주려고 한다. 물론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하루 이틀에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뿐만 아니라 여러 명이 같이 쓰는 방식을 구상 중이다.  

- 2011년 한 인터뷰에서 청년들을 향해 "지금 20대가 능력은 예전보다 뛰어난데, 패기와 저항정신이 없는 것 같다. 이제는 슬슬 자기 싸움을 시작할 때"라고 조언했다.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에게 할 말이 있다면? 

지금은 젊은이들에겐 단군 이래 가장 야박한 사회다. 개인의 역량이나 세대를 놓고 보면 가장 능력이 있지만, 사회적으로 기가 죽어 있을 뿐 아니라 젊은이들에게 주어진 게 가장 적은 시대다. 지금 젊은이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 자신을 내던질 때 비로소 참된 자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젊은 사람들에게 자유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실천하면서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 말해 주고 싶다. 

- 한홍구에게 자유란 무엇인가? 

어렸을 때 김수영 시인을 참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 김수영 시집 하나만 가방에 넣고 다니기도 했다. 그중에 제일 이해가 안 되었던 시가 '푸른 하늘을'이었다. 김수영 시는 굉장히 난해하고 헷갈린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푸른 하늘을'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득도(得到)하는 느낌이었다. 첫 구절이 "푸른 하늘을 制壓(제압)하는 노고지리가 自由(자유)로웠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詩人(시인)의 말은 修訂(수정) 되어야 한다"다. 당시 내가 고1 때였으니, 유신시대였다. 부러워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스스로 날면 된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더라. 

김남주 시인도 "싸울 때 자유로워진다"고 했듯이 정말 자유라는 게 싸움을 통해 꿈꾸는 것을 얼마만큼 밀고 나가는가에 달려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빼앗겼다고 생각하지만, 자유는 실천하는 것이다. 1974년에 '자유언론실천선언(自由言論實踐宣言)'에 참여했는데, 한국 언론사에서 획기적인 일이었다. "언론 자유를 수호하라"에서 "자유는 실천하는 거다"라고 전환한 것이다.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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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는 이들을 잘 모른다>


훈민이, 정음이.


나는 이들을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해 왔다. 

내 눈에 비치는 이들 모습을 내 마음대로 해석하고 판단하고 단정하기도 했지.

하지만 나는 이들을 잘 모른다.

티끌만큼이나 알까...?


잘 안다고 착각하는 순간 이 사람들과 나 사이에 비극은 시작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물론 깨달음은 아직까지 내 머릿속에 머물 뿐.

몸과 마음, 나아가 그런 관계로 나아가기까지는 더 걸릴지도 모르겠다.


이들은 내 몸을 빌려서 세상에 나왔을 뿐이다.


- 당신과 나누고픈 얘기를 여기에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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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퍼민트]


이제는 버려야 할 과학적 아이디어 I

2014년 1월 14일  |  By:   |  과학  |  No Comment

1996년 시작된 Edge.org는 출판 대리인 존 브록만에 의해 창설된 재단입니다. 리처드 도킨스, 소설가 이언 맥퀸 등 ‘인류의 사고를 확장시킨’ 이들로 구성된 이 재단은 1999년부터 매년 중요한 질문을 정하고 이 질문에 대한 그들의 답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들의 이러한 방식은 바로 적절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그 질문에 답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생각에 바탕하고 있습니다. 1971년 제임스 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습니다. “나는 질문에는 답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그 질문을 던질 수 있을만큼 영리할까?”

올해의 질문은 “이제 어떤 과학적 아이디어는 그만 버려야 할 것인가?”입니다. 14일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홈페이지에 올라올 예정입니다. 가디언지는 그중 몇 개의 답을 미리 골랐습니다.

  • 아즈라 라자(과학자): “의학실험에서 인간의 대용물로의 쥐” 이제 쥐를 통해 사람의 질병을 연구할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쥐의 백혈병을 1977년 완치했지만 그 방법은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최근 한 연구는 수천억 원이 든 150종의 패혈증 치료제가 모두 임상 단계에서 실패했음을 보고했습니다. 이는 이 약들이 쥐를 대상으로 개발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쥐의 패혈증은 인간의 패혈증과 전혀 다른 질병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물론 이러한 현실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MIT의 로버트 와인버그의 말처럼 “첫째, 불쌍한 쥐를 대신할 동물이 없다는 이유, 그리고 둘째, 미국 식품의약국이 습관적으로 쥐에 대한 실험결과를 최선의 도구로 생각한다는 점”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이유를 더 들자면, 너무나 많은 연구장비가 쥐를 대상으로 개발된 점과, 너무나 많은 연구인력이 평생 쥐를 연구해왔다는 점이 있습니다. 마크트웨인의 다음과 같은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를 곤경에 빠뜨리는 것은 우리가 잘 모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확실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 조나단 가찰(작가): “예술은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없다는 생각” 오랜 시간 동안 스티븐 제이 굴드 등이 주장한 것처럼 예술과 과학은 다른 영역(magisteria)에 속해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데니스 더튼이 “예술본능(The Art Instinct)”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모든 인간은 거의 동일한 예술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예술에 대한 사랑은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나 인간의 도구와 같이 우리 안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예술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왜 우리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지, 왜 인간은 예술작품을 만들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사실 예술의 정확한 정의도 아직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최근 신경과학은 인문학의 주제들을 과학으로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음악을 들을 때,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 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관찰할 수 있습니다. 예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이제 과학을 사용해야 할 때입니다.
  • 스튜어트 브랜드(작가): “낮은 방사능도 위험할 것이라는 생각” 아이젠하워의 과학조언자 조지 키스티아코프스키의 책 “백악관의 과학자(A Scientist at the White House)”에는 방사능 위험기준이 결정된 1960년 그가 이를 어떻게 생각했는지가 나와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낮은 방사능의 위험에 대해 어떠한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 어떠한 개인도 자연에서 받는 방사능의 3배가 넘는 양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결정에서 사실 3이라는 숫자는 임의로 정해진 숫자입니다… ” 그리고 이 기준은 그 후 63년동안 모든 규제에 사용되었고, 원자력에 대한 공공의 두려움을 자극해 왔습니다. 이 기준을 지키기 위해 발전소와 폐기물 저장소에 사용되는 돈은 수십조 원에 이릅니다. 체르노빌 사태가 벌어졌을 때, 사람들의 공포는 소련과 유럽에서 10만 건의 유산을 발생시켰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연구는, 연간 100 밀리시버트 이하의 노출에서는 방사능 증가가 암 발병을 증가시킨다는 어떠한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경우 사람들은 평균 연간 6.2 밀리시버트의 방사능에 노출됩니다. 북동부 지역의 값은 낮고, 콜로라도 지역은 높은 값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암 발생률은 오히려 북동부 지역이 더 높습니다. 이란의 람사 지역은 다른 지역보다 10배 이상 높은 자연방사능을 가지고 있지만, 암 발생률은 다른 지역과 다르지 않습니다. 낮은 방사능에 대한 공포의 진정한 문제는 이 가설이 증명되거나 반증되기 힘든 가설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염려와 경제적으로 막대한 비용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제 이 가설을 떠나 측정가능한 의학적 영향을 바탕으로 전체 시스템의 손익을 계산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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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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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슐러 K. 르 귄'의 2014 ‘미국 도서상’ 수상 소감

벅찬 감동을 주는 할머니 작가의 말씀을 나누고 싶어서 퍼왔습니다.


이윤 추구와 예술의 목적은 종종 갈등을 빚게 돼 있습니다. 우리는 자본주의 안에 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힘은 도무지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요. 하지만 절대왕정 시절 왕의 권력도 그랬습니다. 사람이 만든 그 어떤 권력도 사람이 저항하고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저항과 변화는 예술에서 출발합니다. 그 중에서도 많은 경우, 그것은 우리의 예술, 즉 말의 예술에서 출발합니다.

번역된 글은 이곳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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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왔어요~^^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는 없다

2014년 10월 6일  |  By:   |  과학칼럼  |  1 comment

네덜란드 이펜베르그의 모래 언덕에 바람이 부는 날이면 당신은 커다란 버스 크기의 조형물이 언덕을 천천히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플라스틱 튜브와 나무, 돛이 복잡하게 얽힌 수많은 다리를 움직여 이동하는 이 물체는 마치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이들은 네덜란드의 예술가 테오 얀센의 작품입니다. 그의 웹사이트에는 이렇게 써 있습니다. “1990년부터 나는 새로운 종류의 생명체를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는 그의 작품들을 스트랜드비스트(strandbeest)라고 부릅니다. “나는 언젠가는 이들을 해변가에 무리지어 흩어놓고 싶어요. 그러면 이들은 자신만의 삶을 살게 되겠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트랜드비스트가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는 하지만, 이들이 살아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할 겁니다. 이들은 정교하고 아름답지만 생명을 가지지 않은 어떤 기계에 불과하다고 말이죠.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 역시 이런 생각에 동의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 때는 내가 생명의 본질에 대한 진정한 통찰력을 가지기 전이었습니다. 이제 나는 스트랜드비스트가 곰팡이나 식물과같은 다른 생명체들과 전혀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나는 어떤 것도 진정으로 살아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생명이란 무엇일까요? 이것은 과학이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철학자와 과학자들은 생명의 보편적이고 정확한 정의를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오늘날의 교과서에는 생명은 조직적이며, 성장하고, 번식하고, 진화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써있습니다. 그러나 이 정의에 맞지 않는 수많은 예외적 생명체들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수정 결정은 매우 조직적이며, 성장하고, 자신의 형태를 충실히 복제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수정이 살아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어떤 컴퓨터 프로그램들은 번식하고, 짝을 짓고, 진화하지만 이들 역시 우리는 생명체로 여기지 않습니다. 반대로, 젤리 모양의 미생물인 완보동물(tardigrades)이나 아르테미아 새우는 수 년 간의 동면기간 동안 먹지도 않고, 성장하거나 형태를 바꾸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들을 살아있다고 생각합니다.

90년대 NASA의 과학자들은 다른 행성의 생명을 찾기 위해 생명을 임시로 정의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진화능력을 갖추고 스스로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생명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물론 이 정의도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DNA와 RNA를 단순한 단백질로 감싸고 있는 바이러스를 생각해 봅시다. 이들은 다른 세포에 침입해 자신을 복제할 수 있습니다. 또한 어떤 생명체보다도 빠르게 진화합니다. 그러나 생물학자들은 이들을 살아있는 생명체로 여길 것인지에 대해 아직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NASA 에 참여했던 생물학자 제랄드 조이스는 바이러스는 “스스로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생명체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사실 바이러스는 자신이 감염시킨 다른 세포 안에서만 진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우리는 다른 기생 생명체들을 비록 이들이 홀로 살아갈 수 없다 하더라도 당연히 살아있는 것으로 여깁니다. 내장의 기생충이나 다른 식물의 수액을 빠는 덩굴식물, 거미를 감염시켜 죽인 후 그 사체에서 오렌지 색의 뿔을 키우는 곰팡이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바이러스처럼 그 숙주에 번식과 진화를 의존한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들은 살아있는 생물로 여겨집니다.

제랄드 조이스는 10년 동안 NASA와 함께 일한 이후, 자신들이 내렸던 생명의 정의를 더 위태롭게 만드는 한 실험과 마주쳤습니다. 그들은 실험실에서 때때로 서로를 복제하는 두 RNA 분자 쌍을 발견했습니다. 40억년 전, 지구가 원시 수프 상태일 때 이와 비슷한 RNA 들이 우연히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이들은 바이러스보다 더 간단한 형태이지만 번식과 진화가 가능합니다. 조이스는 이들이 NASA 의 정의에 부합한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이들이 살아있다고는 쉽게 말하지 못했습니다.

왜 이런 모순들이 발생하는 것일까요? 왜 과학자들은 생물과 무생물을 구분하는 것을, 그리고 바이러스가 생명체인지를 결정하기를 그렇게 어려워할까요? 그것은 그들이 실재하지 않는 어떤 개념을 정의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나의 결론입니다. 생명이란 그저 관념일 뿐입니다. 현실 세계에서 존재하고 구별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내 말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지는 마음속에 떠올리는 모형과 순수한 개념 사이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때때로 우리의 두뇌는 어떤 대상을 나타내는 표상을 만들어냅니다. 눈에 들어온 소나무에서 반사된 빛과 코를 자극하는 솔잎의 분자들의 자극들이 더해져 우리는 나무에 대한 기억을 만들게 됩니다. 뇌는 다른 대상에 대한 개념들 역시 이러한 관찰을 기반으로 만들어내며, 이는 세상을 인식하는 유용한 방법입니다. 우리가 “나무”라고 말할 때 우리는 순수한 개념으로의 나무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나무”는 우리의 마음속에만 존재합니다. 세상에 우리가 나무라고 뭉뚱거려 표현하는 수십억의 식물들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당신은 식물학자들이 나무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어떤 식물이 나무(tree)인지, 관목(shrub)인지를 구별하는 것은 때로 매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나무”와 “관목”은 식물이 가진 고유의 특성이 아니라 우리가 그들에게 붙인 이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생명(life)”도 이와 비슷합니다. 우리가 어떤 대상들을 살아있는 것과 살아있지 않은 것으로 구분하는 것은 종종 유용할 수 있지만, 그러한 구분은 사실 우리의 마음 속에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사실 생명을 정의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일 뿐 아니라 그 대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는 데 불필요하기까지 합니다. 가장 기초적인 수준에서 유일하게 의미있는 것은 그 대상을 이루는 원자들과 다른 입자들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복잡도의 척도에는 물 분자 하나처럼 극히 간단한 대상에서부터 개미집처럼 놀랄만큼 복잡한 대상들이 존재합니다. 생명의 특징이라 여겼던 대사, 번식, 진화와 같은 활동들은 이 복잡도 척도상의 여러 다른 수준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입니다. 생명의 경계로 딱 떨어지는 경계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어떤 것들이 때로 우리가 생명체만의 특성으로 여기는 그런 활동들을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우리가 살아있다고 여기는 것들이 그런 특성을 갖추지 못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들을 단 하나의 기준, 곧 살아있는 것과 살아있지 않은 것으로 구분하려 했으며, 현실에서 아무런 의미없는 경계선을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생명이란 개념이 그저 우리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실용적인 개념일 뿐이며, 우주의 실재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를 인정하는 것은 여러모로 우리의 생각을 자유롭게 만들어 줍니다. 우리는 더 이상 얀센의 작품들이 살아있는 것인지를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스트랜드비스트가 우리를 매혹시키는 이유는, 이들이 “살아있는 것들”이 우리를 매혹시키는 그 특성들을 정확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이것은 이들이 매우 복잡하기 때문이고, 바로 그 복잡함 속에 아름다움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스트랜드비스트의 돛이 바람에 의해 흔들릴 때, 다리들은 규칙을 가지고 굽혀지고 펴지며, 이 물체의 움직임은 시작됩니다. 나는 스트랜드비스트의 의지와 집요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장엄한 존재가 살아있는가 그렇지 않은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지켜볼 뿐입니다.

(뉴욕타임즈)

스트랜드비스트 유튜브 영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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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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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사경제 2010년 12월 기사(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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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머리 토론으로 아이 논술 걱정 끝


독서로 아이 키우는 10가지 비법

[아시아경제 이상미 기자]지난해 통계청에서 발표한 생활시간 조사에 따르면 맞벌이 가정의 아내는 가족을 보살피는 데 하루 평균 42분의 시간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맞벌이가 아닌 가정의 아내가 2시간 7분을 쓰는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한편 맞벌이 여부와 상관없이 남편들은 가족을 보살피는 데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맞벌이 가정의 남편은 13분, 맞벌이가 아닌 가정의 남편은 20분을 쓰는 게 고작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요즘 대부분의 맞벌이 부모들은 아이들을 학원에 맡긴다. 그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들은 많지 않을 텐데 말이다. 

지난 2일 서울시교육청(교육감 곽노현)에서 주최한 '사교육 없는 자녀교육 성공사례' 발표회에서 알게 된 자녀교육 비법들을 소개한다. 20여 명의 수상자들을 통해 우리는 다시 한 번 평범한 진리를 알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가장 훌륭한 선생님은 '엄마와 아빠'라는 사실이다. 


◆독서로 아이 키우는 10가지 비법 

이날 발표회에서 눈길을 끈 정채린(16ㆍ봉원중 3) 학생의 어머니 호경환씨는 "아이가 엄마와 눈을 맞출 수 있게 되면서부터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단순히 어려서부터 책만 열심히 읽어주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며 '꾸준히 독서하는 아이로 키우는 비법 10가지'를 공개했다. 

1. 어릴 때부터 밥 먹고 잠자듯 하루도 빠짐없이 책을 읽어주겠다는 각오부터 하자. 

2. 아이가 읽는 책을 엄마도 같이 읽자. 그래야만 아이와 자연스럽게 책에 대한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서로의 생각과 느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3. 책을 사는 데 돈을 아끼지 말자. 아이들 학원 보낼 돈으로 책을 사주자. 

4. 집안 곳곳에 책 읽는 분위기를 조성하자. 거실, 안방, 부엌, 심지어 화장실에까지 책꽂이를 두고 언제 어디서나 책을 꺼내 읽을 수 있게 만들어 놓으면 아무래도 책을 더 많이 접하게 된다.

5. 서점에 되도록 자주 가자. 아이들에게 책의 내용을 보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 다양한 장르의 책들이 구비되어 있는 만큼 아이들이 다양한 책을 접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6. 책을 읽은 후 독후감 쓰기를 강요하지 말고 독후감 대신 토론을 생활화하자. 논술에 대비해 독후감을 쓰도록 강요하다 보면 아이들이 책에 대한 흥미를 잃을 수도 있다. 

7. TV를 끄고 살아보자. 안되면 꼭 필요한 것만 시청한다는 원칙을 세우자.

8. 아이들이 책을 잘 읽게 도와주고 싶다면 순수한 동기를 가져라. 책을 많이 읽혀서 공부 잘하는 아이로 만들겠다고 접근하면 실패하기 마련이다. 생각이 깊은 아이, 마음이 넓은 아이로 키우고 싶다는 순수한 동기로 접근하라.

9. 공부하는 시간과 책 읽는 시간 사이에서 갈등하다 보면 책과 멀어지니 주의하라. 책 읽는 시간을 아깝게 여긴다거나 공부하고 남는 시간에 책을 읽으려 하면 꾸준히 읽을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하자. 

10. 책을 읽고 토론을 습관화하면 입시 논술도 해결된다. 


◆밥상머리에 마주 앉아 책 읽고 이야기하세요

올해 고려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한 딸을 둔 한희석씨(48)는 이번 발표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는 "가난한 살림에 논술학원을 보낼 수 없어 모든 걸 집에서 준비했다"고 말했다. 논술 대비는 독서와 토론 두 가지가 전부라는 소신으로 본인이 직접 챙긴 것이다. 

딸이 중학교에 다닐 때부터 아빠와 함께 매일 준비한 것은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과 신문 칼럼이었다. 책과 신문 칼럼처럼 논술시험에 응용하는 데 좋은 자료가 없다는 것이 확고한 그의 신념이다. 그는 "특히 칼럼은 쟁점토론에 효과 만점"이라고 말한다. 그는 아이의 정치, 학문적 균형을 잡아주기 위해 성향이 다른 두 가지 신문을 구독해 그날의 칼럼을 가위로 잘라 아이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화장실에 갈 때 잘라놓은 칼럼을 가지고 들어가 읽는다. 그 다음 단계가 바로 토론이다. 그는 "독서든 칼럼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의 느낌과 생각을 함께 나누는 것"이라며 아이와 밥상머리에 함께 앉아 식사하면서 함께 이야기 나누는 교육을 강력히 추천했다. 

그래서일까? 사교육 한번 받아본 적 없는 딸은 중 1때 학급에서 38명 중 27등을 했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논술대회에 나가 상도 받고, 2학년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한 번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고려대 경영학과에 합격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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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의 기적, 그리고 나와 우리의 미래"

 

▷ 일시 : 2014년11월18일(목) 저녁 7시
▷ 
장소 : 에코팜(종로2가 YMCA 1층)
▷ 이야기 손님 : 도법스님


사람마다 세상을 보는 관점도 다르고 입장도 다르기에 말하기 쉽지 않지만, 저는 한국 사회의 통일 문제, 남북 문제를 푸는 데 있어 서로 편갈려서 불신하는 남남갈등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부분을 걱정하는 분들은 많이 계신 것 같은데 드러내 놓고 이야기해 보자 하는 분들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북한 문제를 많이 다루는 분들은 계신 것 같습니다만. 

저는 지리산운동을 했던 사람입니다. 2000년 초부터 지리산운동을 하면서도 한국 사회의 남남갈등 또는 남북분단의 문제 이런 문제를 풀어 가려면 관계된 구성원들이 어떤 형태로든 만나고 대화하고 때로는 미안하다고 이야기도 좀 하고 잘못했다고 이야기도 좀 하고 이래야 문제를 풀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런 생각들이 모여진 것이 생명평화운동입니다. 생명 평화를 주제로 하면 누구나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생명 평화는 진보냐 보수냐 관계 없지 않습니까? 남이냐 북이냐도 관계 없고 친미냐 반미냐, 친북이냐 반북이냐도 관계 없을 것 같고 노동자냐 자본가냐? 기독교냐 불교냐? 이런 것들을 넘어서서 만날 수 있는 가치잖아요. 남북문제는 좌우의 극단적인 대립인데 이 문제를 던져 놓고 이야기 해보자. 그러면 우리가 쌓아 놓았던 벽을 넘어서 만나고 이야기하고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다루는 게 가능하지 않겠는가 해서 그 운동을 쭉 해왔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기도 가고 저기도 가고 그럽니다. 

“네 색깔이 무어냐?” 묻는 사람도 있고 “네 정체성이 도대체 뭐냐?” 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는 회색분자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네 행보는 도대체 뭐냐?”, “나는 갈 지(之)자 행보다. 나는 회색분자고 갈지자 행보를 하는 사람이니까 여기가든 저기가든 그냥 좀 놔둬라.” 하고 말합니다.

지금 어쨌든 제가 알고 있는 수치로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재판 건수가 대략 630만 건이라고 합니다. 일본의 60배입니다. 또 갈등으로 인한 손실이 약 300조 가까이 된다고 합니다. 오늘도 누가 자료를 줘서 보니까 우리 사회에 믿을 구석이 없다는 불신의 수치가 어마어마하게 높더라고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믿음이 깨진 것이지요. 재판 자리에서 사이가 좋아지는 경우는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재판을 많이 하고 있는 것이지요. 어떻게 말하면 모두가 싸움의 주체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300조에 이른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런 부분이겠지요. 


“싸우는 사람은 있는데 싸움을 말리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싸우는 사람이 있으면 싸움을 말리고 흥정을 붙이는 사람도 있어야 하는데 그 역할은 국가 체계로 보면 정부가 또는 정치인들이 해야 할 몫인데, 그런데 정부도 싸움의 당사자가 되어있습니다. 정부가 하는 것을 보면 계속 국론을 분열시키고 대립하게 만듭니다. 대부분 보면. 정치인들도 그런 것을 조장하고 이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싸움판이 있으면 이것을 말라고 풀어가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그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보고 있습니다. “싸우는 사람은 있는데 싸움을 말리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너 뭐하냐 물으면 “세력분자를 세력화하는 것이 내 관심사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면서 우리 문제를 다루고 풀어가는 사회가 좀 그렇게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습니다.


세월호가 우리에게 가져단 준 것들.

세월호 문제 참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어떻게 그 일이 정쟁거리로 갑니까? 그것을 보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생각을 했었습니다. 정부가 못해주니까 유족들이 진실을 알고 싶다고 들고 나온 건데, 정부가 못하면 국민이라도 나서서 그것을 해야 하지 않습니까? 유족들은 지금 너무 힘든 상황이니 우리가 나서서 하겠습니다. 이렇게 사회가 들고 나와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전 세월호 사건이 난 것도 기가 막힌 일이지만 이렇게 유족들이 거리로 나서게 만든 우리 사회도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부가 나쁘다고 백날 이야기 해봐야 입만 아프고 한국 사회도 보면서 참 큰일이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세월호 현상에서 중요한 몇가지 생각들을 했었습니다.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 현대 한국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의 세계관, 가치관, 삶의 방식 한국 사회의 구조나 풍토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 이런 것들이 다 담겨 있는 게 세월호 사건입니다. 그런가 하면 세월호가 우리의 문제도 다 드러나게 했지만 동시에 우리의 문제를 푸는 길도 다 내놓았다고 봅니다. 문제를 드러나게도 했지만 문제의 해답도 보이게 내놓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거기에 주목하지 않고 있다고 봅니다.

사건의 현상만 놓고 보면 특별법 만들어서 법적으로 다루는 것도 그것대로 잘 해가야 한다고 봅니다.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족들이 원하는 대로 특별법을 만들고 법적으로 다룬다 하더라도 그것이 할 수 있는 한계는 뻔하다고 봅니다. 세월호가 드러낸 문제가 무언지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데 법적으로 물을 것만 묻고 있는 것이지요.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세계관이나 가치 의식이나 사회 방식이나 또는 구조적인 문제들이나 관행적인 문제들 풍토적인 문제들을 다 드러낸 사건이라고 한다면 이것을 법적으로만 다루어서 다 짚어질 일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훨씬 더 근원적인 문제들 본질적인 문제들이 있는 것이고 어쩌면 세월호 문제는 그렇게 갔어야 맞는 일인데 특별법 문제에 꼬여서 - 물론 이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기본적인 것인데 - 거기에 다 소진해 버린 느낌이 있는 것이지요 그것도 국론 분열을 불러오면서 말입니다. 

세월호 문제가 그런 총체적인 문제를 다 담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많은 분들이 동의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문제를 정말로 아주 본질적인 문제부터 현상적인 문제까지 정확히 짚어내는 일이 문제를 풀어내는 출발점이라고 봅니다. 법적으로 하는 것은 법적으로 하는 것이지만 그것만 했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문제를 잘 짚어내면 해답은 거기서 나오리라고 봅니다. 

국민들이 보여주었던 반응에서 몇 가지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드리는 것으로 제 역할을 할까 합니다. 세월호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반응이 몇가지로 표현이 되었었지요. 그중에서 이런 표현이 중요하게 생각되더라고요. 

“제발 살아있어만 다오”, “제발 함께 있어만 다오” 이런 반응. 평소에는 내 마음에 드냐 안드냐 나하고 친하냐 안친하냐 나에게 이익이 있냐? 없냐? 공부를 잘하냐? 못하냐? 또 엄마 아빠는 내 말을 잘 듣냐 안 듣냐? 이런 것들이 중요한 판단의 기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월호 사건을 겪으면서는 그런 것 보다 더, 그 이전에 또는 그것을 넘어서 내 딸로 내 아들로 내 친구로 내 이웃으로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야 될 한 사람으로 있어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잖아요. “살아 있어만 다오 제발 함께 있어만 다오” 그 외에는 다 두 번째 문제인 것이지요. 공부를 잘하냐 못하냐 내 마음에 드냐 안 드냐 나랑 친하냐 안 친하냐 나에게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 그런 것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내 아들, 내 딸, 내 친구, 내 이웃, 한국 사회에서 함께 살아야 할 구성원, 한 인간으로 살아 있어만 다오 하는 그 마음은 어떤 것보다도 생명을 가진 한 인간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 각성은 놀라운 것이라고 봅니다. 온 국민이 함께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은 이런 부분들은 세월호가 우리에게 준 기적적인 선물이라고 봅니다. 

세월호 사건이 왜 일어났습니까? 사람보다 돈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 아니었습니까? 사람보다 권력, 사람보다 명예, 사람보다 출세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원인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그 사건을 바라보면서 온 국민이 ‘아 우리가 그동안 그것을 잘 몰랐었구나 잘 못했구나’ 하는 것을 느끼고 있지 않습니까 돈 보다도 명예보다도 권력보다도 재산보다도 그 어떤 것보다도 사람이란 것, 그 자체가 중요하다 인간 존재 가치에 대해서 온 국민이 눈을 뜬 사건. 전 이것은 정말로 그분들에게는 죄송스러운 말씀이겠지만 ‘세월호가 우리에게 준 기적적인 선물이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같은 맥락이지만 “미안해”, “잘못했어”, “이제 달라질게” 그런 바람이라는 것입니다. 이건 어떤 말이겠어요, 아까의 그 이야기와 연결되는 맥락입니다. 네가 내 아들로, 내 딸로, 내 친구로, 내 이웃으로 동반자로 사는 것 보다 다른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살아왔다는 이야기잖아요. 그래서 미안하다는 이야기잖아요. 내가 잘 모르고 살아왔다. 미안하다, 잘못했다 이제 달라질게, 새로워질게 이게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모르긴 몰라도 진보다 보수다, 노동자다 자본가다, 관이다 민이다, 여다 야다. 경상도다 전라도다. 이런저런 이유로 갈기갈기 찢어져 있는데 그 사건을 대하고 국민들이 일으킨 반응은 사실은 거의 다 같았죠 온 국민이 같은 마음이었죠. 

그리고 그 다음엔 
"잊지 않을게, 기억할게, 헛되지 않게 할게 값지게 할게. 세월호 이전의 나와 대한민국하고 세월호 이후의 나와 대한민국이 반드시 달라지게 할게" 하는 다짐이 있었습니다. 

그 반응들을 이렇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특정인들만 그렇게 반응한 게 아니라 온 국민이 그랬습니다. 온 국민이 그렇게 함께 하는 현상을 본 기억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다 편 가르고 있었지요. 붉은 악마 현상 같이 그나마 크게 논란 없이 온 국민이 함께 했던 것이지만 그것은 민족 감정, 경쟁심, 승부욕 같은 것이 건강하게 분출된 현상이었습니다. 세월호는 그와 전혀 다른 것입니다. 나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친분 관계가 없는 누군가의 슬픔, 고통, 문제를 마치 나의 슬픔처럼, 고통처럼, 문제처럼 온 국민이 함께 한 현상입니다. 전 이 현상은 하나의 기적이라고 봅니다.

누군가의 슬픔을, 누군가의 고통을, 누군가의 아픔을 나의 슬픔으로, 고통으로, 문제로 한 것이 바로 거룩한 마음 아니겠는가! 이보다 더 인간적인 마음이 있을까? 이보다 더 아름다운 마음이 있을까? 참으로 이것은 인간적인 마음, 아름다운 마음, 거룩한 마음입니다. 짧은 시간이다 하더라도 온 국민으로 하여금 이렇게 거룩한 마음을, 인간다운 아름다운 마음을 일으키게 한 것이 세월호 사건인데 이건 기적이라고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그래서 저는 세월호의 기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다른 말이 생겨서 욕도 얻어먹고 곤란해지니까 주변에서는 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10년은 천착해야 하는 세월호 문제

저는 한국 사회가 세월호 문제에 적어도 10년은 천착(穿鑿)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속담에 “귀신은 무서워하면 자꾸 덤빈다”는 말이 있습니다. 불편한 것을 피하지 말고 마주해서 이를 풀어내야지 이를 자꾸 피하면 계속 불편한 상황에서 달라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린 힘들고 불편한 것은 피하고 싶어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힘들고 불편하다고 자꾸 피하면 계속 그런 상황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정직하게 맞이하고 정직하게 풀어내는 것이 여러모로 바람직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저는 한국 사회가 세월호가 던진 화두를 붙잡고 10년은 천착을 해야 지금 다짐한대로 세월호 이후의 나와 대한민국이 달리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달라진다는 게 그리 간단할 턱이 없지 않습니까? 온 국민의 누군가의 슬픔을 자기의 슬픔처럼 함께 했다는 사실 이것이 세월호가 우리에게 준 첫 번째 기적의 선물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그 기적을 실현해 가야 하는 것이지요. 그것은 우리 살아있는 사람들의 몫입니다. 내용은 간단합니다. 온 국민이 그렇게 마음을 먹으면 못할게 뭐 있겠습니까? 저는 온국민이 그렇게 마음을 먹으면 통일도 남북 문제 풀어가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고 봅니다. 거기에 해답이 있다고 봅니다, 거기에는 기독교냐 불교냐 하는 벽도 허물어졌고, 여냐 야냐 하는 벽도 허물어졌고 관이냐 민이냐 하는 벽도 허물어졌고 진보냐 보수냐, 자본가냐 노동자냐 경상도냐 전라도냐 하는 벽도 허물어 졌습니다. 모든 벽을 넘어선 것입니다.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모든 벽을 허물고 서서 사람으로 구성원으로 만나고 함께 했던 이런 내용을 나의 이익이냐 편의냐 이런 게 아니라 누군가의 아픔, 누군가의 슬픔, 누군가의 문제를 나의 슬픔처럼, 아픔처럼, 문제처럼 함께 했던 그 고귀한 마음들을 어떻게 생활화할 것인가 이것을 어떻게 사회화 할 것인가가 나머지 과제라고 봅니다. 만약에 그 거룩한 마음이 한사람 한사람에게 생할화되어질 수 있고 사회화 되어 질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기적의 실현이라고 봅니다. 그 보다 더 큰 기적은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요즘에 어디 가서 이야기 할 기회가 생기면 주로 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제 가슴으로는 세월호와 연결시키지 않고는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없습니다. 세월호를 덮어놓고 다른 이야기를 하면 안될 것 같은 마음입니다. 저는 싸움은 말리고 흥정을 붙이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고 그런 중간 지대가 탄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싸우고 있을 때 누가 말리면 못이기는 척하고 그만두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말리는 이가 없으면 싸우다가 갑자기 그만둘 수도 없잖아요. 누가 안 말리면 그냥 계속 가는 것이지요. 그런데 누가 강력히 말리면 그리고 설득력 있게 말리면 또는 힘 있게 말리면 못 이기는 척 물러서기도 격앙된 감정을 추스르기도 하지 않습니까? 한국 사회도 저는 그런 제3지대에 사람들이 힘 있게 있으면 좋겠다 그 길을 열어보자 해서 여기도 가보고 저기도 가보고 그러는데요. 


생명평화운동을 하는 이유



 


이 그림은 지리산 생명평화운동을 하면서 만들어진 그림입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 어떻게 이루어진 곳인지 또는 인생이란 뭔지 나는 또 어떤 존재인지 내가 만나는 너는 누구인지 생명은 또 어떻게 생겼는지 이런 물음에 대한 사실적인 표현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어떻게 살아야 될 지 어떻게 살아야 괜찮을지 이런 물음에 대한 그림설명입니다. 

인간이 알아야 될 것은 두가지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현대인들을 보면 가장 큰 문제가 자기 존재에 대한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자기존재에 대한 관심이 없으니까 당연히 자기존재에 대해 아는 것이 없지요. 달리 이야기하면 인생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어떻게 살아야 인생이 괜찮은가 하는 이런 물음이 없는 것이지요. 

인생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두가지 물음이지요. 그런데 다른 것은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전지전능하신 하느님 정도로 다른 것은 지식이 많습니다. 그런데 자기존재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한 것이지요. 막말로 이야기하면 무식한 것이지요. 또 자기가 아닌 다른 것을 다루는 능력은 대단히 출중합니다. 못 다루는 게 없을 정도이지요. 그런데 자기를 다루는 능력은 또 제로입니다. 자기를 다루는 능력은 무능력에 가깝습니다. 

‘무식하고 무능력하다’라는 질문을 던져 보면 현대인들은 대단히 무식하고 무능력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어쩌면 인생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괜찮은 것인지 이 두가지가 인생에게 던져진 가장 중요한 화두라 할 수 있겠는데 현대인들의 경향을 보면 이기적이고 감각적인 욕망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자기존재의 가치에 대해선 거의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기적이고 감각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게 마치 인생을 잘 사는 것처럼 거기에 다 골몰하고 있지요. 그것이 얼마나 자기 존재 가치를 형편없게 만드는지 그게 얼마나 삶을 파괴적으로 몰고가는지 전혀 모릅니다. 인간은 당연히 이기적인 존재라고 생각하고 이기적으로 살아가는데 미안해하지도 않고 부끄러움도 모르고 있는 것이지요. 기가 막힌 일입니다.

그렇게 되는 데에는 따지고 보면 자기존재에 대한 무관심, 무지에서부터 비롯됩니다. 이 그림을 가지고 더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우리는 내 생명은 내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네 생명은 네안에 있고 내 생명은 내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너는 너고 나는 나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너 없이 나 혼자도 살 수 있어. 여기서 더 나아가면 차라리 네가 없는 것이 더 좋겠어. 여기 사과가 하나 있는데 혼자 있으면 혼자 다 먹을 수 있지만 둘이 있으면 나눠 먹어야 되잖아요. 그러니 네가 없는 게 내게 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좀 더 가면 너 없애고 나만 하겠어. 한국사회는 극단적인 경쟁의 상황이지요. 너를 없애고 나 혼자 하겠어. 이런 것이지요, 그것은 네 생명은 네안에 따로 있고 내 생명은 내안에 따로 있다는 이런 생각 이런 신념체계에 따르기 때문에 너 없이 나 혼자 살 수 있어 너 없는 게 더 좋아 너 없애고 나 혼자 하겠어 이런 것이 당연한 진리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극단적인 갈등과 분열과 대립이 생기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세상에는 따로따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실제로 없습니다. 분리 독립되어서 따로따로되어 있다는 것은 생각이나 말이나 글로만 가능하지 실제로는 없다는 말입니다. 마치 거북이털, 토끼뿔 같은 것입니다. 토끼뿔 같은 것은 생각할 수 있지요. 말로도 할 수 있지요. 글로도 쓸 수 있지요. 그러나 실제로 토기는 뿔이 없습니다. 그건 그냥 관념일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생각으로 있는 것, 말로 있는 것, 글로 있는 것이 진짜 있는 것처럼 믿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예로 짚어 보면 한국 사회에서 1등이 최고야 부자 되면 행복해 이런 놀이인 것이지요. 정말 1등이 최고인가? 정말 1등이 되면 희망이 있는 것일까? 정말 부자가 되면 좋을까? 부자는 행복할까? 생각이나 말이나 글로는 그럴 것 같지만 실제로 이것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대단히 위험한 거짓말이지요. 대단히 나쁜 거짓말입니다. 하지만 이게 진짜인 것처럼 사람들은 다 혈안이 되어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나타나는가? 요즘의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가서 물어보면 너 커서 뭐 될래? 물어 보면 65%가 부자되겠다고 합니다. 왜 그러겠습니까? 할머니 할아버지가, 엄마 아빠가, 삼촌이 선생님이 어른들이 부자가 좋은 거라고 하니까 부자 되면 행복한 거야, 너도 부자되야 해라고 말하고 새해 덕담도 이렇게 바뀌지 않습니까 새빨간 거짓말을, 나쁜 거짓말을 어른들이 진짜처럼 믿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거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이렇게 되는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이러면서 이 사회가 어떻게 건강한 사회가 되기를 바랄 수 있을까? 이러면서 어떻게 인간다운 사회가 가다능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건 도저히 인간다울 수 없는 길입니다. 그런데 대다수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오히려 그게 아니라고 이야기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합니다.


자, 이 그림을 가지고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태양이 없는 지금 내 생명이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태양이 없으면 나는 절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냥 현상으로만 보면 태양과 나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태양이 없으면 여기의 나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부처도 별 수 없고 예수도 별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예외가 아닙니다. 태양과 나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그물의 그물코들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 의지되어 있고 서로 관계 맺고 있고 서로 영향과 도움을 주고 받으면서 존재합니다. 온 우주의 시간, 공간, 유형, 무형, 내면, 외면, 정신, 물질, 인간, 자연 어떤 형태로 표현되어 지던 분리독립되어 따로따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관념으로만 있을 뿐입니다. 실제는 그런 거 없습니다, 그 누구도. 그 어떤 존재도. 태양과 나의 관계가 그러하듯이 그 여타의 모든 관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내 생명은 나 아닌 다른 것들에 의지해서 존재하고 있습니다. 나가 아니라고 생각되는 것을 다 제외시켜 놓고 보면 나라는 것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온 우주는 하나의 살이있는 그물이다

그렇다면 생명은 어떻게 생겼는가? 현대과학에선 생명그물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온 우주는 하나의 살아있는 그물로 이루어져 있다. 낱낱의 존재들은 그물의 그물코처럼 연결되어있고 의지하고 관계맺고 도움을 주고 받으며 존재한다’고 설명합니다.

이렇게 보면 이렇게 생명의 실제 내용을 확인해 보면 전부 연결되어 있다면 세상에 내 생명 아닌게 있겠습니까? 여기 물이 있는데 물과 내 생명을 놓고 봤을 때 어떤게 더 중요하겠습니까? 당연히 습관적으로 인간의 생명이 더 중요하다 하지요. 그런데 물이 없는 인간의 생명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물이 곧 인간의 생명일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이게 분리되어 있으면 가치의 우열을 이야기 할 수가 있는데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의 생명만 더 중요하고 물의 가치는 별게 아니다 이렇게 이야기 할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세상에 대한 유일한 진실은 세상은 함께 살도록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함께 산다는 것! 이게 온 우주의 존재법칙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길은 함께 사는 것 말고 다른 길은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함께 사는데 인생을 걸어본 적 있십니까? 기독교인들이 평화를 이야기 할 때 불교인들을 포함시키겠습니까? 당연히 안하지요 불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현상이 뭡니까 종교전쟁이지요. 우리는 더불어 함께 살자고 이야기는 합니다. 그런데 온통 내막을 들여다 보면 패거리 싸움입니다. 국가란 이름으로, 종교란 이름으로, 민족이란 이름으로, 지역이란 이름으로 그리고 또 다른 이해타산으로 패거리싸움을 하교 있습니다. 나와 내편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서 상대와 상대편을 공격대상으로 삼는 것이지요. 그래서 공격하고 짓밟고 파괴하고 그렇지 않습니까?

왜그럴까? 나라고 하는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모르기에 그런 것입니다. 함께 살아야 하는 사회라는 것을 안다면 내가 머리를 싸매고 열정을 바쳐서 해야하는 것은 함께 사는 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싸워서 이기는 길만 추구해 왔습니다. 너와 나 이웃과 이웃 또는 인간과 자연이 함께 살도록 되어있는 세상이고 존재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든 편갈라 싸우면서 함께 사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저도 종교인입니다만 인류역사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약 60~70%가 종교전쟁이라고 합니다. 허울만 종교인 것이지요. 인간이 하는 일중에서 가장 비인간적이고 잔인하고 야만적이고 파괴적인 행위가 전쟁인데 어떻게 종교의 이름을 전쟁을 벌이는 이게 과연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종교가 일으키는 전쟁이 말이됩니까 그런데 그것이 엄연히 역사입니다. 종교의 이름으로 그러는데 다른 것은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렇게 되는 이유는 첫 출발점은 바로 ‘나는 누구인지 내가 사는 세상은 어떤 곳인지’ 이런 것에 대해서, 존재에 대해서, 존재의 가치에 대해서 우리가 무관심하고 무지하고 또는 잘못할고 있음으로 해서 생기는 문제라고 봅니다. 그러나 함께 살도록 되어있는 세상이기에 우리가 머리를 맞대고 찾아가야 할 길은 함께 사는 길이라고 봅니다.

남북문제도 함께 살아야 한다는 세계관만 투철하다면 남북문제를 푸는 방식도 달리나오리라 생각합니다. 얼마전 탈북자간첩조작사건 변호인과 당사자를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건 정말 생으로 간첩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사회는 북한을 함께 살아야 할 동포로 볼 것인가? 제거해야 할 악마로 볼 것인가? 동포로 본다면 간첩조작 같은 것은 없을 것입니다. 제거해야 할 악마로 보기에 이런 간첩조작 사건 같은 것이 생기는 것입니다. 한국사회는 이 문제를 안풀고는 남북문제를 제대로 바라볼 수 없을 것입니다. 함께 살아야 동포라는 생각으로 접근하면 남북문제의 해법도 어렵지 않다고 봅니다.


우리 함께 산다는 것

결국 우리가 인생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화두에 부실하게, 투철하지 않게 천착하고 살았기 때문에 저는 세월호라 하는 비극이 벌어졌다고 봅니다. 함께 산다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서로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하고 고마워하고 배려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자꾸만 하나 되자고 하는데 하나가 되면 안됩니다. 삶이 불가능해집니다. 여기 이 바닥과 내가 하나가 되면 걸을 수 있겠습니까? 완전히 따로 떨어져도 허공을 밟고 걸을 수는 없기에 역시 걸을 수 없습니다. 굳이 이야기 하다면 왼손과 오른손 같은 것입니다. 왼손과 오른손은 몸으로 보면 한몸인 것이고 그러면서도 분리된 다른 손이지 않습니까

하나이면서 분리되어 있는 것이고 분리되어 있으면서 또 하나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이분법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우리는 관념적으로 불의는 싹 없애버리고 정의만 넘쳐나는 세상을 바랍니다. 그러나 과연 불의가 없고 정의만 존재하는 세상은 가능합니까? 그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손바닥과 손등 같은 것이고 동전의 양면 같은 것입니다. 정의와 불의가 동전의 양면이라 한다면 정의와 불의를 바라보는 태도도 달라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인생이란 뭔지 사실적으로 확인해 보면 어떻게 살 것이냐가 저절로 해답이 나옵니다.
 너 없는 나는 존제할 수 없게 때문에 너의 존재가치, 너에 의지해서, 나무에 의지해서, 태양에 의지해서, 이웃에 의지해서 존재하고 부모에 의지해서 물에 의지해서 밥 의지해서 존재하고 상대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부모님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것은 나를 낳아서 질러주었기 때문이니 세상에 내 생명에 하느님, 부처님, 어버이 아닌 존재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있게끔 만든 그 누군가의 존재가치를 진심으로 존중하고 보호하고 고마워하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그렇게 되면 편안하고 따듯하고 인간다운 사람이 될 것이고 이런 대접을 받으면 역시 기분 좋을 것이고 이렇게 사는 게 함께 사는 길이라고 봅니다. 단순합니다. 복잡한 논문, 박사학위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삶이 복잡하다는 것은 사람의 생각이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숨을 쉬기에 살고 숨은 저절로 쉬어지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쉽게 생각하는 숨쉬기를 세월호의 아이들은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숨을 쉴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숨을 쉴 수 있는 조건을 누군가가 만들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절대 공짜가 아닙니다. 저 하늘의 태양이 숨을 쉴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에 곧 돌아올 엄동설한에 저 산위의 나무들이 제 할을 을 해주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은 온 우주에 존재하는 누군가가 자기 위치에서 제 역할을 정상적으로 해 주기 때문에 숨을 절로 쉴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지고 내가 숨을 쉬면 사는 것입니다. 즉, 온 우주의 신세를 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겠습니까? 누군가의 신세로 우리가 살고 있다면 나도 그 도리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삶은 엄중합니다. 가장 중요한 가치는 공짜입니다. 가장 무서운 가치도 가장 위대한 가치도 공짜입니다. 가장 비싼 가치도 공짜입니다. 왜 그럴까요? 공로 숨을 못쉬면 인간은 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꼭 나의 이익을 위해서만 삶을 소중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가능하게 새주는 이 세상에 대한 당연한 도리로서도 우리 삶을 잘 살아야합니다. 

저는 오히려 우리가 세월호라는 화두를 통해서 우리 삶에 대한 본질적인 성찰과 근원적 자각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는 온 국민이 해야하는 일이지 대통령이, 장관이, 국회위원 몇 명이 해야하는 일인 아니라고 봅니다. 그래서 새로운 세계관과 가치관과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세월호의 비극은 계속 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세월호가 준 기적의 선물을 잘 파악하고 이 기적의 선물의 실제 삶으로 사회로 구현될 수 있게 하는데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지혜를 모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마음들이 모아지면 희망래일이 고민하는 통일문제도 멋있게 바람직하게 푸러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2014년 희망래일 대륙학교 녹취록입니다.
* [녹취 : 이종수]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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