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퍼옴]

[놀이가 밥이다]기고 - 놀이도 때가 있다

아이들에게 중요하고 급한 일이 무엇일까. 지금 그런 일을 시키고 있는가. “그렇다”고 답해놓고 뭔가 찜찜한 느낌이 든다면 그 불편한 느낌에 귀 기울여야 한다.

무한경쟁시대에, 공부를 잘해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지상목표인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어린이와 청소년의 행복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 23개국 중에 꼴찌라는 사실, 20대 여성의 47%가 요즘같이 살기 힘든 사회에서 아이를 낳기 싫다고 말한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어린 시절을 불행하게 보낸 결과, 2010년 자살한 청소년의 수는 교통사고·암·심장질환으로 사망한 수를 더한 것보다 많다는 통계청의 자료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우리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자. 친구들과 목청껏 노래하면서 뛰어넘던 고무줄 놀이, 쳐들어오는 상대를 온몸으로 막았던 오징어 놀이, 손이 더러워지는 것도 상관없이 땅바닥에 앉아 작은 돌을 튀기던 땅따먹기를 비롯하여 숨바꼭질, 말뚝박기, 깡통차기에 하루 해가 짧았던 때를 말이다. 그때는 먹을 것, 입는 것, 부모의 보살핌이 요즘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지만 그래도 지금보다는 행복했었다. 그때의 행복은 단지 어린 시절의 추억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함께 어울릴 친구가 있었고, 나름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할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현재진행형이며 미래지향적이다. 그래서 아이들을 볼 때 현재의 모습과 그런 모습이 이어져 장래의 모습이 된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어른들의 하루와 아이들의 하루가 다른 이유는 절대시간은 같지만 변화 가능성이 많고 적음 때문이다. 그 변화 가능성은 어른에 의해 강제되는 경우와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경우로 나뉜다. 영·유아기에는 어른에 의존한 변화가 중심이 되지만 학령기가 되면 스스로 변화 가능성을 열어 나가는 것이 지속가능한 방식이다. 그럼 이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대한 적극적인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인류는 오랫동안 놀이라는 문화 형식으로 살아가면서 필요한 제반 능력을 스스로 배워 익힐 수 있도록 했다. 거의 대부분의 놀이를 들여다보면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능력’(놀면서 오가는 많은 이야기), ‘자신을 돌아보고 제어하는 능력’(딱지치기나 승패놀이에서 졌을 때 인정하는 경우), ‘긍정적 태도’, ‘협동’, ‘창의성 배양’(호기심의 구현) 등이 잘 갈무리되어 있다. 아이들은 놀면서 자신도 모르게 이 같은 능력이 몸에 배게 되었기에 어른이 되었을 때 여럿이 어울릴 수 있었고 자신을 긍정하면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벌써 평균수명이 80세를 넘기고 있고 조만간 100세 시대가 온다고 한다. 또한 매일 새로운 지식과 정보가 쏟아지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평생교육이 강조되고 있다. 평생교육이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이 되면서 ‘공부는 때가 있다’는 말이 설득력을 잃었다. 오히려 공부는 평생 해야 하지만 놀이는 때(어린 시절)가 있는 것이다. 이가 빠지고 콧물을 손으로 훔치던 개구쟁이들이 놀면서 맑게 웃는 표정, 소꿉놀이에서 아빠 모습을 진지하게 흉내 낼 때의 몰입, 기분 좋아 내는 달뜬 목소리는 어른이 결코 재현할 수 없다.

중요하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은 것은 놀이가 아니고 그 반대다. 아이들에게 놀이는 너무나 시급해서 때를 놓치면 할 수 없는 일이고 살아가는 기본을 배우고 익히는 데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이상호 | (사)놀이하는사람들 대표·충주 대미초 교사>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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