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퍼옴]

[놀이가 밥이다]학교 입학과 동시에 놀이터 발길 끊고 못 노는 것 당연시 여겨

ㆍ(8) 엄마가 본 놀이현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엄마들은 아이의 놀이 현실에 대해 답답함부터 토로했다. 뭔가 바뀌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경쟁적인 사회분위기, 부모들의 막연한 불안심리가 아이들의 놀이를 막는다고 봤다.

엄마들은 경향신문의 ‘놀이가 밥이다’ 기획에서 곧잘 나오는 “적어도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친구들과 놀게 하자”는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의 놀이 결핍 상황이 속히 개선될 전기가 있기를 바랐고, 제도적 대안도 기대했다. 그 말끝에는 그렇지 못한 현실, 노는 게 어느덧 용기가 된 현실을 보는 답답함이 다시 더해졌다. 다섯 엄마의 좌담은 지난 5일 서울 중구 정동길의 한 카페에서 이뤄졌다.

황미선·오현경·성청미·조정옥·장은주씨(왼쪽부터) | 박민규 기자


-아이들의 놀이 현실을 어떻게 봅니까.

장은주 = 아이들이 너무 바쁘고 같이 놀 친구들을 정말 찾기 어려워졌어요. 경쟁적인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아주 어릴 때부터 맘껏 못 노는 것이 당연해진 것 같아요.

성청미 = 학원을 별로 안 다니는 우리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친구 찾으러 동네를 몇 바퀴 돌곤하는데요. 엄마들이 마치 불량청소년 얘기하듯 “지금 배회하고 있는 애는 언니 애밖에 없다”고 ‘신고전화’를 해요(웃음).

장은주 = 이사 오기 전 수도권 신도시에 살 때 우리애 별명이 하이에나였어요. 친구들 학원 시간표, 학원 비는 일정까지 다 갖고 다니면서 같이 놀 친구를 찾아 다녔거든요.

황미선 = 놀이가 좋다고 생각하던 부모님들도 초등학교 입학 후엔 분위기에 휩쓸려 학원 뺑뺑이에 동참하더라구요. 1학년 때부터 논술, 영어, 수학을 보내고 최근엔 방과후 수업까지도 학습 위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놀이에 대한 좌담회까지 해야 하는 현실이 참 씁쓸하네요.

성청미 = 최근에 줄넘기, 오재미, 비석치기 같은 것을 실내에서 돈 내고 배운다는 생활체육 프로그램 선전을 보고, 자연스럽게 하던 놀이를 지금은 돈 들여서 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 답답하더라구요.

오현경 = 놀 시간이 생겨도 뭘 하고 놀지 모르고 친구들과 무슨 말을 해야 할지조차 모르는 아이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작은 애는 혁신학교에 보냈는데, 80분 수업에 노는 시간이 30분 있어요. 놀아본 아이들이 훨씬 잘 노는 것 같아요. 충분히 노니까 공부 집중도 잘하고 수업도 즐겁고 아이들끼리도 친하고, 또 방학도 주말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로 학교를 좋아해요.

조정옥 = 저도 큰 아이가 어릴 땐 강남 사는 지인들의 얘길 듣고 5살 때부터 매일 영어학원에 보내던 보통 엄마였어요. 그런데 둘째가 너무 소심하고 자신감이 없어 미술치료까지 받고, 놀이터를 찾아 놀이터 바로 옆으로 이사 오면서 정말 놀이의 힘이 크다는 것을 믿게 됐죠. 매일 놀이터에서 놀다 보니 아이가 정말 많이 밝아졌어요. 놀이의 힘은 정말 센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교 입학과 동시에 놀이터 발길을 끊는 걸 보면 안타깝죠. 


-사회 곳곳에 있을 놀이 방해자들은 뭐라고 봅니까. 

황미선 = 놀 공간, 놀 시간, 친구들만 있어서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학부모들 사이도 너무 각박해졌어요. 놀이도 같은 수준, 같은 생각을 가진 그룹을 짜서 같이 놀게 하는 분위기죠. 아이들이 논다고 하면 어떤 엄마들은 “누구랑 놀 건데?” “어디서 뭘 할 건데?” 꼬치꼬치 묻고 누구누구가 있으면 가지말라고까지 합니다. 순수한 놀이집단, 순수한 놀이는 사라졌다고 봅니다.

장은주 = 아이들의 놀이를 보는 사회적인 시선이 확 달라졌어요. 옛날엔 아이들이 놀러간다는 말에 시간을 허비한다는 생각을 하는 부모들은 없었잖아요. 지금은 놀이에 빠지면 공부 안 한다는 생각에 불안해하는 엄마들이 많아요.

오현경 = 솔직히 걱정은 좀 돼요. 주변에서 “언니 그만 놀려. 지금도 늦었어”라고 자꾸만 말하거든요. 그래서 애들한테 너희들 놀린 거 후회하지 않도록 알아서 좀 잘해 달라고 말해요. 놀이가 좋은 걸 다 알지만 그런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힘든 게 아닐까요.

장은주 = 애들이 마땅히 갈 곳이 없는 것도 문제에요. 동네 놀이터는 유아들이 갈 만한 고만고만한 놀이터죠.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동네놀이터 가면 질 나쁜 언니 오빠 취급을 받아요. 

조정옥 = 무조건 안전제일주의인 학교 얘기도 하고 싶어요. 몇 년 전에 아이가 담임선생님이 쉬는 시간에 화장실만 갔다 오고 엎드려 있게 한다는 얘기를 하더라구요. 담임선생님께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얘기해 봤지만 사고가 일어났던 얘기만 하시면서 안전만을 강조하시는 거예요.

성청미 = 우리 아이는 몇 년 전에 쉬는 시간에 담임선생님이 조용히 하라고 했는데 허밍을 했다가 교실 뒤에서 벌을 섰다고 일기에 썼더라구요. 

-놀이의 복원을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황미선 = 놀아서 잘 큰 아이들에 대한 추적조사가 좀 나왔으면 좋겠어요. 놀이 결핍의 부작용, 놀이의 힘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들이 계속 나오면 사회적인 인식이 많이 바뀌리라 생각합니다.

조정옥 = 우선 저학년은 각종 평가를 없애고 학교에서 너무 경쟁을 조장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초등학교(저학년)만이라도 학교는 자유롭게 놀면서 배움의 즐거움을 알려주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학교에서 줄넘기 몇개, 달리기 몇분을 했는지, 무슨 책 읽고 어떤 느낌인지 등 날짜를 기록하고 본인이 했던 것을 틀에 맞게 쭉 쓰는 생활본을 하도록 시키는데 그걸로 학기말에 상을 주는 것 자체가 경쟁을 조장하는 것 같아요. 

장은주 =학교가 놀이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며 놀이시간을 확보해 주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해요. 놀이시간을 혁신학교처럼 20~30분 확보하거나, 녹색어머니회, 도서실 봉사처럼 방과후에 아이들의 놀이를 지원하는 학부모 모임을 활성화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죠. 

조정옥 = 그런데 학교와 교사들이 하나같이 하는 걱정은 아이들의 안전 문제예요. 

오현경 = 전, 그 점에선 학교와 학부모가 비겁하게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생각해요. 학부모들도 생각을 바꿔야죠. 학교 놀이터가 아닌 동네 놀이터나 집에서도 똑같이 사고가 날 수 있는 건데, 학부모들이 학교에서 생긴 일은 무조건 학교에서 책임지라고 나오니까 학교나 교사 입장에선 굳이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 놀게 하고 싶지 않은 거죠. 

성청미 = 맞아요. 죽고 사는 게 아니면 다치고 싸우면서 크는 게 애들이잖아요. 정말 아이들을 위한다면 놀이 기회를 많이 확보해 주되 안전하게 지킬 방법을 생각해 봐야죠.

조정옥 = 전 놀이터 정책이 수요자 중심으로 좀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저는 경험이 있어요. 어린이집과 놀이터 사이의 경사가 급하고 그 사이에 잡고 올라가는 밧줄이 3개 정도 있었는데 아이들이 몇 번이나 다쳤어요. 어느날 놀이터 리모델링을 한다고 하길래, 우리 엄마들이 그 경사지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서대문 자연사박물관 공룡미끄럼틀처럼 아주 높은 미끄럼틀을 만들어달라고 제안했어요. 이 미끄럼틀이 만들어지니까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고, 다치지도 않았고, 멀리까지 소문이 나 아이들이 일부러 찾아오는 놀이터가 됐어요.

황미선 = 우린 고학년 자녀들이 있으니까 어렸을 때 공부 조금 더 했다고 나중에 큰 효과가 없다는 걸 잘 알죠. 그렇지만 이런 목소리가 저학년 부모들에겐 안 들리나 봐요. 더 이상 혼자만의 벽을 쌓지 말고 어릴 때부터 다양한 친구들과 어울려 놀면서 마음을 열고 세상을 경험하자는 이런 캠페인이 빨리 확산됐으면 좋겠어요. 


<경향신문·참교육학부모회·서울 노원·도봉구청 공동기획>

<송현숙 기자 song@kyunghyang.com>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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