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퍼옴]

[놀이가 밥이다]기고 - ‘교육권’과 동등한 아동기의 ‘놀 권리’

아이들의 놀이가 위협받고 있다. 대부분 아이들은 놀이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영·유아들의 조기교육 과열과 지나친 방과후 사교육 등으로 아동의 놀이 기회가 원천적으로 차단되고 있다. 하루종일 유아기관에 다니는 영·유아는 일과계획에 묶여 자신이 원할 때 놀이를 할 수 없다. 개인이 원할 때 자유롭게 선택하는 놀이 본래의 성격과 어긋난다. 과도한 학습부담으로 초·중·고 학령기 놀이기회의 제한은 더욱 심각하다.

놀이공간의 부족 역시 놀이를 옥죄고 있다. 안전하고 즐겁고 창의적인 놀이가 가능하며 모든 세대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놀이공간을 주변에서 찾기 어렵다. 산업화 과정에서 아동들의 놀이 장소는 각종 빌딩과 공장으로 잠식되었다.

놀이기회의 제한과 놀이공간의 박탈은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의 발달과 더불어 우리나라 아동의 놀이 양상을 근본적으로 왜곡시켰다. 아이들은 여가시간의 대부분을 온라인과 모바일게임, TV와 DVD를 시청하는데 보낸다. 그러나 선진국은 인터넷 등 ICT 기술의 발달로 인해 아동놀이가 위축·왜곡되는 것을 우려하고 국가 차원의 놀이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이 국가들은 건강하고 안전한 놀이 환경을 제공해 주는 것을 아동권리 보장의 일환으로 인식한다.


아동의 놀 권리에 관한 최초의 국제규정은 1922년 발표된 ‘세계아동헌장’이다. 헌장 제25조는 “모든 학교는 놀이터를 갖추어 모든 아동이 방과후에 놀 수 있는 놀이터를 제공할 것”을 명시했다. 이후에도 아동과 관련한 많은 국제기구에서 아동의 놀 권리는 교육받을 권리 못지않게 불가침의 권리라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강조해 왔다. 1959년 ‘아동권리선언’ 제7조는 “놀이 및 레크리에이션은 교육과 동일하게 다루어져야 하며 사회 및 공공기관은 아동의 놀 권리 향유를 추진하기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이후 결성된 ‘아동 놀이를 위한 국제 협회’(IPA; International Playground Association)는 1977년 11월 얄타회의에서 ‘아동의 놀 권리 선언’을 했다. 1989년 발효된 유엔아동권리협약 제31조 역시 협약 당사국이 휴식과 여가를 즐기고, 연령에 적합한 놀이와 오락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아동의 권리를 인정할 것을 촉구하며, 적절하고 균등한 놀이기회를 제공할 것을 규정했다.

더 나아가 세계 각국은 아이들의 놀이권 보장을 위해 적극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 영국 정부는 ‘교육기회’와 마찬가지로 아동기의 ‘놀이기회’ 역시 모든 아동에게 공평하게 제공돼야 한다는 인식 하에 국가적인 놀이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2008년부터 시행된 영국의 놀이정책은 2020년까지 장기계획을 수립하였다. 이를 위해 영국 정부는 2008년부터 2011년까지 1차 기간에 2억3500만파운드(4200여억원)가량의 정부 예산을 투입하였다.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에 대한 예산 지원뿐만 아니라 ‘놀이터 조성위원회’ 등과 같은 실행기구를 설립하기도 하고 초등학교 평가기준에 놀이영역을 포함하기도 했다. 덴마크·스위스·독일 등 대부분의 유럽국가들도 자연환경에서 아동의 바깥놀이를 중요시하고 세대가 함께 놀이할 수 있는 바깥놀이터를 조성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영국의 아동놀이 지원단체인 플레이 잉글랜드(Play England)의 조사에 따르면 아동들은 자연환경에서 놀이할 때 더욱 큰 즐거움을 느꼈다. 영국의 내셔널트러스트는 12세가 되기 전에 해야 하는 50가지 자연생태놀이를 발표하기도 했다. 

모든 아동들은 놀 권리를 가지고 있다. 아동들은 매일 즐겁게 놀 수 있는 자유를 향유해야 한다. 아이들의 건강한 놀이가 사라지면 우리 사회의 미래도 어둡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선진국들처럼 아동놀이에 장애가 되는 문제를 진단하며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장기적 안목으로 국가 차원의 놀이 정책을 수립하길 바란다.

<황옥경 | 서울신학대학교 보육학과 교수· 한국아동권리학회장>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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