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퍼옴]

[놀이가 밥이다]저학년도 공부 스트레스… 내 아이 한국에서 키우고 싶지 않아

ㆍ(9) 외국인이 본 놀이현실

외국인의 눈에는 한국 아이들의 놀이가 어떻게 비치고 있을까.

지난달 26일과 27일, 서울 미아동 화계초등학교에서 5·6학년을 가르치고 있는 일본계 미국인 카나코 아라이(23·여)와 광장동 광남초등학교에서 8년 동안 원어민 강사로 일하고 있는 아일랜드인 던컨 스미스(37)를 차례로 만나 한국 학생의 생활과 놀이에 대해 들어봤다. 이들은 “믿을 수 없이 바쁜 한국 아이들의 현실은 우리가 자라면서 경험하고, 다른 나라에서도 봐왔던 일반적인 아이들의 삶이 아니다”라며 “우리 아이들을 한국에서 키우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빗줄기가 오락가락한 지난 12일 오후 서울 대치동에서 영어학원을 마친 아이들이 집에 가기 위해 학원버스에 줄지어 오르고 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 초등학교 원어민 강사 6개월 일본계 미국인 카나코 아라이(23)
“하루 학원 3개 이상… 뛰놀 시간 없는 생활에 아이들 어릴 때부터 적응”


▲ 초등학교 원어민 강사 8년 아일랜드인 던컨 스미스(37)
“주말에 온통 숙제·공부… 아이들 노는 게 당연한데 한국은 아닌 것 같아”


- 한국 아이들의 생활과 놀이 현실을 어떻게 보나. 

아라이 = 아이들이 수업 끝나면 다들 피아노, 태권도, 영어 학원에 간다고 한다. 한국에 온 지 6개월 됐다. 한국 아이들이 학원을 많이 다닌다고는 늘 생각했지만 하나만 하고 집에 가는 줄 알았다. 경향신문 놀이기획에 나온 조사를 보면 하루에 3개 이상 학원을 다니는 아이가 가장 많다는 건데(경향신문 2월26일자 1·9면 보도), 이게 정말인가. 

스미스 = 2004년부터 초등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 아이들 대부분이 어릴 때부터 정말 바쁜 것 같다. 그래도 아이들은 에너지가 넘친다. 다른 나라 아이들 상황을 알면 우울할 텐데, 자기들이 시간이 없다는 걸 잘 모른다. 자투리 시간에 어떻게든 노는 것 같다. 영어일기 숙제에는 주말에 온통 공부했다는 얘기뿐이다. 참 안됐다.

아라이 = 가끔 수업시간에 졸려 보이는 아이들이 있다. 주말에 뭘 했느냐고 물어보면 남학생들은 PC방 갔다고 하고 여학생들은 텔레비전 봤다, 아이돌 쇼를 봤다는 대답이 많다. 정말 친구들과 같이 뛰노는 시간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생각보다 밝다. 어려서부터 이 생활에 적응이 된 것 같다.

스미스 = 2개월 전에 아이가 태어났는데 아이가 학교 입학하기 전까진 아일랜드에 돌아가기로 아내와 결정했다. 한국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좋고, 다른 생활에도 불만이 없다. 단지 애 교육 때문이다. 한국적인 압박하에선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없다. 일반적인 아이들의 삶이 아니다.

- 본인들은 어떻게 자랐나. 

아라이 = 캘리포니아 교외 지역에서 자랐다. 스쿨버스를 타거나 부모님이 픽업해서 오후 3시쯤엔 집에 왔다. 일주일에 한 번 피아노 레슨을 받는 것 외엔 숙제도 없었고, 정말 초등학교 내내 노는 것밖에(nothing but play) 한 일이 없다. 학교에서도 20~30분씩의 리세스 타임(운동장에서 노는 시간)이 있었고 중학교에서도 15분간의 휴식시간이 있었다. 학교에서도 저학년 때는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거의 없었다. 노는 듯 공부했다. 주로 3명의 형제나 친구들과 집 근처 공원, 수영장, 놀이터에서 놀다가 늦어도 저녁 9시에는 잤다. 공원엔 늘 지켜보는 엄마들이 몇 명은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자랄 때의 모습은 경향신문 조사대로라면 부모님 세대에 가까운 것 같다.

스미스 = 아일랜드의 더블린 교외에서 자랐다. 오후 2시30분쯤 집에 오면 모두 자유시간이었다. 계속 놀다가 저녁을 먹고도 나와서 놀았다. 부모님은 아이들이 어디 있는지 걱정하지 않았다. 모두 공원에서 놀고 있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도 초등학교 땐 15분, 30분 두 번의 플레이 타임이 있었다.

- 놀이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아라이 = 아이들은 에너지가 많다. 이 에너지를 발산해야 하는데 놀이가 바로 자연스러운 통로다. 놀이에 대한 긍정적인 보고서는 정말 많고, 놀이가 가진 큰 힘을 나는 믿는다. 적당히 놀면 집중도 훨씬 잘되는 것 같다. 지금 화계초등학교에서는 함께 수업을 하는 한국인 교사와 협의해 수업 전 잠깐 춤을 추는 시간을 갖고 있다. 비디오를 아이들과 같이 보면서 5분 정도 따라서 춤을 추는데, 에너지를 발산하고 수업 집중도도 높이기 위해서다.

스미스 = 내가 어렸을 때를 생각하면 놀면서 즐거웠던 기억만 난다. 아일랜드에선 아이들이 노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한국은 아닌 것 같다.

- 놀이에 대해 한국의 부모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아라이 = 한국의 부모들은 어렸을 때부터 공부 잘해서 자신감을 길러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공부를 오래, 많이 한다고 잘한다는 것은 신화인 것 같다. 자신감은 놀 때도 기를 수 있다. 놀면서 리더십, 사회성도 길러진다.

스미스 = 부모들에게 묻고 싶다. 돈 많이 들여 학원 보내면 아이들이 행복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같은 것을 해도 강요하면 잘 기억 못하고 하기 싫어한다. 최소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고를 수 있게 해야 한다. 즐겁게 하지 않는 공부가 비효율적이라는 것은 이미 교육학적으로 수없이 증명된 학설이다.

아라이 = 외국처럼 학교에서 리세스 시간을 마련하면 어떨까. 리세스 땐 교사들이 아이들을 지켜본다. 방과 후 한두 시간이라도 안심하고 놀 수 있도록 부모가 지켜봐주는 시스템도 참 좋은 것 같다.

스미스 = 모두가 일찍부터 공부하는 문화 속에서 부모들의 생각, 아이들의 생활이 쉽게 바뀌진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어렸을 때부터 공부시키는 것이 다른 나라들과는 정말 다르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학교가 좀 더 놀이에 문을 열어놓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학교들이 사고를 막기 위해 문을 걸어 잠가놓고 안심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overkill’(지나쳐서 비효율적인 것)이다.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에는 놀이가 꼭 필요하다.

<송현숙 기자 song@kyunghyang.com>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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