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업자득가를 찾다가 이 글을 보게 되었다. 

<통일뉴스>라는 사이트에 실린 인터뷰 글.

2002년 1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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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인터뷰> 도법스님 - 통일과 반통일을 넘어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지리산 자락에 안겨있는 실상사(實相寺)를 찾아 나선 날은 가는 눈발이 비쳤다.
절집을 들어서는 천왕문(天王門) 왼켠에는 `인류의 빛 예수 그리스도 오신 날, 다함께 기뻐합니다. - 지리산 실상사`라는 현수막이, 오른켠에는 `한국전쟁으로 희생된 지리산영가 천도를 위한 천일기도 - 다잊고 조용히 잠드시오, 지리산 어디 고이 잠드시오`라는 현수막이 손님을 맞았다.

절집과 크리스마스, 그리고 지리산 좌우희생자 천도를 위한 천일기도.
첫 마주침부터 뭔가 평범한 세인의 의식을 슬쩍 넘어서 버리는 문을 지나 이 절의 주지인 도법(道法) 스님을 만나러 들어섰다.
총무스님은 일요일에는 주지스님이 단식을 한다며 다음날 인터뷰하면 좋을 것이라고 귀띔해줬다.

다음날 새벽 네시, 도량석(道揚釋)을 행하는 행자의 목탁소리와 도량송(道場誦)이 산사의 경내를 흔들어 깨웠다.
네시 반 어김없이 도법스님이 보광전(普光殿)에 정좌하자 새벽예불이 시작되고 새벽예불을 마친 이들이 하나둘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서자 300일째를 넘어선 도법스님의 천일기도가 시작되었다.

점심 공양을 마치고 "뭔 얘기든지 다 해보자"는 스님과 마주앉아 스님이 개발했다는 `하얀 민들레차`를 들면서 그의 요즘 생각을 들어보았다.


일시 : 2001.12.24  낮 12시
장소 : 실상사
대담 : 김치관 기자
사진 : 최태영 객원기자
정리 : 최윤경 객원기자


`좌든 우든 다 잘못된 인간관이 문제`

□ 통일뉴스 : `지리산 좌우희생자 천도재 천일기도`를 하고 계신데요. 

■ 도법 : 공동으로 하는 것은 백일간 원불교, 기독교와 같이 했고, 나는 백일간 같이 하되 천일간 한다 했고.

그걸 하게된 이유는 그 전부터 생각했던 문젠데, 지리산 댐 관계로 지리산에 대한 관심이 더 구체화되어지고 그런 과정에서 지리산 천도재(薦度齋) 얘기가 나왔죠.

김지하 시인이 지리산 공부를 하자고 하면서 지리산 문제를 다루면 천상 좌우 문제를 다루는데 그렇게 하기로 했었는데, 그러면 자기가 그쪽에 고민했던 사람들을 다 모아보겠다고 했는데, 막상 얘기를 해보니까 사람들이 얘기를 잘 안꺼내려고 한다고 그것이 민감한 부분도 있고 정치적인 점도 있으니까.
그래서 그러면 내가 좌우대립 희생자를 위해서 천일기도를 상징적으로 일단 할 테니까 그것에 좀 빗대서 공부모임 사람들이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하자. 그렇게 해서 나는 기도하는 역할을 했으니까.

 


□ 지리산 공부모임을 좀더 소개해 주시죠.

■ 김지하 시인은 중간에 떨어져 나갔고 전교조 위원장 했던 정해숙 선생, 한살림 박재일 회장, 움직이는 학교 박성준 교수, 귀농운동본부장 이병철씨 그런 분들 한 2,30명 정도가 있죠.

처음에는 천일기도니까 백일에 한번 모이자고 했다가 김지하 시인이 너무 뜸하다고 오십일에 한번 모이자고 그래서 오십일 주기로 쭉 모임을 해왔는데, 그런 이들이 매달려 일할 사람들은 아니고 같이 앉아서 얘기나 하니까. 일할 사람이 마땅치 않아 가지고 그래서 지금 아직 체계가 덜 잡혔어요. 모이긴 하고 있는데.

올 2월 26일부터 시작한 거예요. 그래서 지난 13일인가 12일인가 삼백일째 되는 날이어서 이제 막 300일이 지났어요.

 


□ 우리 나라에선 아직도 냉전이 걷히지 않았고 희생되신 분들의 원한이 풀릴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충분히 마련되지는 않았다고 보는데, 이런 기도를 하거나 공부를 하는 것이 과연 사회적으로 어떤 파장을 줄 수 있을지요.

■ 일단 나는 불교를 하는 사람이니까 불교적인 문제의식으로 우리 삶의 문제를 살피면서 어떻게 문제를 다뤄가야 될 것인가 하는 이런 입장이란 말이죠.

우리가 적어도 천년 역사를 되짚어 보더라도 끝없는 싸움이잖아요. 그래서 나는 뭐 남북의 문제니 좌우의 문제니 특별한 사안으로 보지 않아요. 이건 잘못된 인생관, 잘못된 인간관에 의해서 삶의 문제를 다루다보니까 생긴 현상들이지, 다만 남북의 문제니 좌우의 문제니 이것은 우리가 가까이 경험한 것일 뿐이라는 거죠. 근본적으로 보면.

그리고 그런 것이 90년대로 넘어오다 보면 요즘의 환경문제가 새롭게 등장하는 것이 생태, 생명의 논리들이잖아요. 요즘 생태, 생명의 문제의식하고 불교의 문제의식하고 상호 유사한 게 있어요. 생태, 생명의 문제의식으로 우리가 살아온 역사에 대한 성찰을 해야 된다는 그런 입장이죠. 모두가 다 반성해야 된다 이거예요.

그 다음에 한걸음 더 나아가면 어느쪽이 책임이 있고 어느쪽이 더 잘못했는가는 그 다음 문제라는 거죠.
그런 측면에서 지리산에 와서 살면서 보니까 지금 뭐 이산가족이 만나기도 하고 정상들이 왔다갔다도 하고, 남북문제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정치적인 문제지, 이게 그것으로 인해서 상처받은 당사자들, 그것으로 인해서 고통을 겪고있는 당사자들 문제는 전혀 그거하고는 관계없이 정치적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거죠. 그래서 진정한 의미에서 좌우문제나 남북문제가 풀리려면 바로 그것은 가해자든 피해자든 그걸로 인해서 정말로 상처받고 맺혀있는 이 부분을 풀어내는 작업들이 있어야 이것이 진정한 내용을 갖고 의미를 갖지 않겠는가.
그래서 인제 그걸 어떻게 할 것인가 했을 때 그 동안은 토벌대 입장에서만 문제를 다뤄왔다는 말이죠. 엄격한 의미에서는 가해자측이든 피해자측이든 모두 다 피해자예요.

이런 부분들을 하나는 종교적으로는 천도재 기도라는 형태로 해서 문제를 다뤄가고, 논리적으로는 생태, 생명 그런 문제의식과 논리로 좌우의 문제도 한번 조명하면서 서로가 뭔가 "아 우리가 잘못 했구나", 어느 한쪽이 나는 옳은데 너는 그르다면 끝없는 논쟁으로 가니까 양쪽이 모두다 공유할 수 있는 뭔가를, 논리를 만들어내고 그러면서 서로가 잘못한 걸 인정하고 그리고 그 다음에 나가서는 모두가 잘못했는데 이 부분에 있어서는 내가 잘못했고 이 부분에 있어서는 네가 잘못했다 그래서 양쪽이 동의할 수 있는 뭔가 논리 회복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지리산 공부모임의 의도예요.

양쪽이 잘못한 것을 인정하고 그 다음에는 서로 이 부분은 네가 이 부분은 내가 서로가 합의할 수 있는 이런 논리를 개발해 내야만 남북문제를 제대로 풀어갈 수 있지, 이런 논리를 개발해 내지 않고 당위론만 갖고 같은 민족이니까 만나야 한다든지, 그러면서도 팽팽하게 내가 옳고 네가 그르다든지 이렇게 가서는 문제를 풀어가기 어렵지 않겠느냐. 일단 그런 문제인식에서 시작이 된 거거든요. 거기에다가 하나 더 포함시키고 싶은 것은 인간과 자연 관계까지도 다뤘으면 하는 것이죠.

그러면 이것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느냐. 그거는 일하기 나름이라고 봐요. 나는 크게는 인간중심의 논리, 이것을 넘어서야 할 부분이고, 다음은 중앙중심의 논리, 또는 서울중심의 논리, 또는 국가중심의 논리 이것은 일단 패착이라고 봐요. 실패작이다.

예를 들어서 농촌을 버리고 도시로, 지역을 버리고 중앙으로, 이런 식으로 문제를 다룬 것이 결국 중앙도 황폐화되어지고 지역도 황폐화되어지고, 도시도 황폐화되어지고 농촌도 황폐화되어지고, 전반적인 삶의 황폐화를 낳고 말았다 말이죠. 그래서 중앙이라고 하는 상징, 도시라고 하는 상징 이것을 극복해 가기 위해서라도 나는 이 지리산이라는 상징이 굉장히 중요하다. 자연, 지역, 농촌 이런 상징이.

그래서 이런 데에서 새로운 문제의식으로 좀더 논리를 도출해내고 이런 것들을 찾아내서 제시될 수 있다고 한다면 이것은 남북문제를 푸는 문제라든가 남한 쪽에서 지역갈등을 푸는 문제라든가 이런 부분에 상당히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을 하고 시도를 하기는 했는데 아직 논리적으로 정리해내는 부분은 진행을 못시키고 있는 게 현실이에요.

 


□ 사회적 관점에서 토벌대도 있고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좌측도 있고 그런데, 화해 상생의 시대에는 어느정도 가능하겠지만 아직도 한반도에 냉전이 엄존해 있고 피해자들 같은 경우는 억울함을 풀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스님의 생각은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소지가 충분하다고 보여집니다.

■ 그래요 그건. 여기 우리가 직접 만나기도 했어요. 토벌대, 빨치산 이런 이들 천도재 때 왔었어요. 양쪽에서 와서 같이 제단에 참여를 했는데 그 부분은 쉬운 문제는 아니지만 그것을 해내야 한다고 보는 거예요. 당연히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수 있는데 그러나 그것은 해내야 한다고 보는 것이고. 그것을 한다고 어느날 갑자기 확 돌아간다고 보진 않지만 그런 방향으로 잡아나가야 한다고 보기 때문에 하나의 단초를 여는 것이죠.

그리고 빨치산 출신들 모임이 있더라구요. 그 대표 분이 저쪽 지리산 공부모임 때 한번 와서 얘기를 했었고. 또 뱀사골에 있는 빨치산이라고 하는 분은 와서 얘기를 해보니까 충분하게 이런 식의 얘기를 해갈 수 있다면 양쪽이 만나서 얼마든지 풀어갈 수 있겠다고 하더라고요.

제일 중요한 것은 일차적으로 이미 돌아가신 분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유족들이라든가 관계된 당사자들이 일단 풀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봐요. 근데 빨치산 그 분들은 충분히 가능하고 토벌대 쪽에 있었던 분들은 잘 들어가질 않아요, 오히려. 그런데 토벌대 중에서도 그런 부분에 있어서 고민했던 분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은 또 얘기가 되고 그러더라구요.


`실제 우리 수준은 뒷골목 똘마니 수준`

□ 올해 8·15 민족통일대축전 평양행사를 둘러싸고 우리 사회의 갈등이 표출되었습니다. 언론에서도 말썽이 많았고요. 이것을 지켜보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요.

■ 그것은 남한 사회가 아직도 갑갑한 상황이라는 생각을 일단 했어요. 물론 북한에 가서 그런 빌미를 안 줬으면 더 좋았겠지만 설혹 그것이 제공되었다 하더라도 남한 사회가 그렇게 몰고가서는 안될 일이란 말이죠. 장관까지 퇴임시키고 그런 쪽으로 갔는데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현실이란 말이죠.

그것을 보면서 느낀 것이 한국사회가 전체 흐름에, 한쪽은 좌, 한쪽은 우라고 칩시다, 진보 보수 세력들이 있는데 두 개의 세력 사이에서 완충역할을 해내면서 방향을 잡고 균형을 잡아갈 수 있는 흐름의 세력이 한국사회에 너무 없구나. 그러니까 극단적으로 부닥친단 말이죠. 이것이 있으면 조절을 해낼텐데. 때에 따라서는 우측을 설득하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좌측도 설득하면서 방향을 잘 잡아야 하는데 한국에 그게 너무 없단 말이죠. 그래서 나는 이것이 형성되지 않고서는 앞으로 두고두고 상당히 어렵겠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예를 들자면 우리가 소위 진보, 통일운동을 앞장서서 하는 쪽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런 쪽에서도 보수라고 얘기되어지는 이런 쪽에다 대고 반통일 세력으로 규정해서 가는 것, 이건 좀 나는 안 맞다.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그 구성원들이 좌가 됐든 우가 됐든 반통일 세력으로 규정된다는 것은 이건 안 된다고 봐요. 이건 운동하는 쪽이 넘어서야 할 부분이라고 봐요.

반통일세력을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 오히려 통일운동을 해가는데 굉장한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오히려 통일 방법론으로써 평화통일 방법을 주장한다든지 아니면 흡수통일을 한다든지 아니면 북침통일을 한다든지 이런 것을 갖고 얘기한다면 모르겠는데 반통일로 규정한다는 것은 통일문제를 풀어가는데 오히려 더 큰 극단적인 대립, 저항을 낳게 하는 것으로 작용한다는 것이고, 나로서는 일단은 넘어서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 통일을 원하는데 방법상의 문제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역으로 우리가 45년 이후 똑같이 민족을 사랑한다 했고 통일을 원한다고 했으면서도 반탁이냐 찬탁이냐, 단정이냐 통일정부냐 이런 문제를 놓고 현실적으로 항상 갈등해왔고 거기에 따라서 실제로 민족 반역자도 있었고 지금도 평화통일이냐 흡수통일이냐 여러 가지 의견이 있지 않습니까.

시기별로 어쨌든 판단을 요구하고 어떤 판단은 민족적 흐름으로 봤을 때 역사 속에서 유의미하고 어떤 것은 그 자체가 반동적 또는 반통일적 결과로 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 나는 그것이 오히려 운동권에서, 어찌됐든 우리가 성숙해야 하는데, 역량이 성숙하지 못한데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더 합리적으로 훨씬 더 효과적으로 풀어가기 위해서라도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나 우리의 태도 이런 것들을 더 발전시키고 성숙시켜 가야 하는데 우리가 지금 그런 부분들을 못해내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지금 계속 얘기했던 그런 현실적으로 문제가 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옳거나 바람직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말입니다.

이건 극복하고 더 나아가 발전시켜가야 되고 성숙해야 되는 문제이지 그 상태 그대로 가서는 절대 안 된다고 봅니다. 이건 우쪽도 마찬가지고 좌쪽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진보든 보수든 다 성숙을 필요로 한다, 운동권이라든지 정치권이라든지 자기성숙이라는 부분이 중요한 가치로 다루어지지 않고서는 극단적인 대립을 줄이면서 문제를 다뤄가기는 어려워진다는 것입니다.

 


□ 물론 인간적 성숙이나 시민사회의 성숙을 통해서 좀더 극단적이지 않고 원만하게 이루어지면 좋겠지만 과연 그것들이 현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100분 토론을 보면 자립형사립고등학교를 할거냐 말거냐, 8·15 평양행사가 잘 됐나 안 됐나, 갈등하고 대립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요.

■ 그것이 역량 문제인데 비근한 예로 여기 매동마을이라고 하는 데에 원불교 수련원이 들어와요. 지금 짓거든요. 처음에 매동마을 주민 대표들하고 지방 유지들하고 나머지 사람들하고 합의했어요. 그래서 법으로 허가가 났어요. 사업이 진행됐지요. 진행되는 상황에서 보니까 주민들이 잘 몰랐던 상황이 발생한 거예요. 그러니까 주민들이 반대하고 나섰단 말예요. 처음 대표권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밀리고 새로운 반대세력이 나타난 거죠.

주민들은 떠나라 꼴도 보기 싫다, 죽으면 죽었지 안 된다 하는 거예요. 원불교는 법으로 허가했다, 우리 땅인데 무슨 소리냐, 하겠다 하는 거예요. 한 치도 안 돼요.

결국은 어쩔 수 없이 내가 신도들도 거기 살고 그래서 왔다갔다 하소연도 듣고 여기저기 얘기하고 그러지 말고 산내면 대책수습위원회를 구성해 가지고 이 문제를 다뤄야지 개인적으로 해서는 안 되겠다, 그래서 아직은 형식적이지만 그 틀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수습대책위원회를 만들어서 한 것이 바로 그거예요. 전 주민들을 모아놓고 토론회도 하고 해서 몇 가지 합의를 했어요. 어차피 이것은 물릴 수 없는 것이니까 함께 사는 길을 찾아야 되지 일방적으로 안 된다, 원불교도 주민 무시하고 막 가겠다 해도 안 맞고 공존해야 된다. 이것은 절대 신고하지 말고 대화와 타협으로 가자. 그런 몇 가지 원칙을 합의해서 했는데 지금은 거의 결론이 났어요. 양쪽이 공존하는 쪽으로.

그래서 나는 그런 부분이 방법이 없다고 보지는 않아요. 내가 자꾸 우리 역량이 성숙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 바로 그 부분이에요. 이것은 원론적인 문제가 아니고 우리들의 의식, 정서, 습관 이 부분에 우리는 굉장히 지배받고 있거든요. 이것은 단순하게 남북 문제만이 아니고 우리 사회의 어떤 문제를 다루어 가더라도 우리가 지금 길들여져 있는 사고와 방식, 정서, 습관성 이 부분을 극복해내는 작업이 수반되지 않고서는 어떤 형태로 부닥치고 있든지 그것으로 상처받고 있는 소모전을 줄일 수가 없다고 봐요.

이것은 원론적인 문제의 측면이 아니고 문제를 효과적으로 풀기 위해서 우리 모두가 그 부분에 대해서 고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죠. 전체적으로 봐서 괴리된 문제가 아니고 현실적으로 봐서 그렇다는 것이죠. 적어도 남북문제를 가장 인간적으로 양심적으로 풀고자 하는 쪽이 운동진영이잖아요. 그럴 때에는 훨씬 더 이쪽이 양보해야 될 것이 있다. 앞서 나갈 것만이 아니라 물러서야 할 때도 있다. 그래야만 이 부분에 소모적인 부분들을 덜 소모적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이죠. 그런 부분을 너무나 이상적이다, 현실하고 동떨어져있다, 이렇게 갈 부분은 아니라는 겁니다.

 


□ 올해 우리가 9.11테러를 지켜봤고 그 이후로 아프간 전쟁이 일어났고, 그 여파로 우리 나라에서도 비상경계령이 내리고 군대를 파병했는데요. 이런 흐름들을 어떻게 보십니까.

■ 그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봐요. 우리 수준이 그것밖에 안 된다. 21세기 타령하고 있는데 소위 첨단과학, 정보화 이런 얘기들을 하고 있는데 실제 우리 수준은 뒷골목 똘마니 수준을 못 벗어나고 있다, 그렇잖아요. "너 나 건드려, 한 번 맛 좀 볼래?" 이런 식이란 말이죠. 이게 도대체 뭐냔 말이죠.

나는 그 사건 보면서 미국이 결국 저렇게 되는구나 느낌은 그랬어요. 텔레비전을 보면서 미국이 함부로 하더니 당하는구나. 그 다음에는 이제는 우리가 결론을 내려야 된다. 힘과 싸움의 논리로는 우리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하는 것, 어떤 명분과 어떤 논리로도 힘과 싸움의 논리로 이 문제를 다루는 한 그것은 끝없는 소모전일 뿐이지 절대로 상처가 치유되거나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고 하는 결론을 내려야 된다. 적어도 우리가 21세기 벽두에 서서 그런 결론을 못 내리고 또다시 힘과 싸움의 논리로 문제를 다루려고 한다면 이것은 그야말로 비극이다, 그런 생각을 했죠.

그 다음에 세 번째는 미국이 전쟁하는 것을 나쁘다고 하는데 물론 아니길 바라죠. 그러나 엄격하게 봐야 된다. 정확하게 보면 미국이 잘못하는 부분은 일차적으로 원인규명을 하지 않는다, 문제를 다루는 태도가 지 멋대로라는 거죠, 지 감정대로. 그렇잖아요.

적어도 미국이 정직하게 정말 양심적으로 왜 테러가 발생했나를 물었다면 전쟁으로 가지 않았다는 거죠. 그런데 문제를 다루는 태도가 완전히 똘마니 수준이라는 거죠. 거기다 강대국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은 전부 다 동조하고 협조하고 나섰다는 것이죠. 뭔가 문제를 수준높게 나가야 하는데 어떻게 보면 더 야만스럽게 다룬다는 거죠. 지금 우리 문제나 미국 부시가 하는 문제나 그 수준이 고만고만하다고 봐요. 크게 다르지 않고 거의 같다고 봐요. 그런데 갑갑하게도 강대국 선진국들이 전부다 동조하고 나서고 세계 여론이 그 쪽으로 다 집중되고 그 반대의 목소리가 아주 미미하고 그렇잖아요,

그것을 보면서 역사발전이라고 하는 것이 뭐냐 묻게 되고 정말 진정한 의미에서 발전을 얘기하려면 바로 삶의 문제를 다루는 수준을 우리가 어떻게 끌어올릴 것이냐 이 부문에 대한 고민과 대책을 찾아야 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했고, 현재 미국의 태도는 그야말로 똘마니 수준을 못 벗어나기 때문에 결국은 미국의 불행이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의 불행이고 하지만 미국의 불행이 크다. 다시 말하면 삶의 질이 향상되지 못하고 제자리거나 퇴보하는 거죠.

다만 한 가지 바램은 저 사건을 미국이 수준 높게 소화시키기만 한다면 인류사회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겠다, 정말로 원인규명을 하고 새로운 원인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책을 바꾼다면, 원체 이것이 상징성이 큰 사건이니까 인류사 전체의 흐름에서 한 단계 질적인 성숙을 가져올 수 있겠다 생각이 들고 미국이 좀 그래줬으면 좋겠다 하는 허황된 바램을 갖기도 했었어요.

 


□ 이미 아프간에서 전쟁이 터졌고 우리 나라까지 어찌됐든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비상경계령 상태라든지, 파병이라든지. 이런 것을 볼 때 우리 사회와의 연관성을 어떻게 보십니까.

■ 사실 정부는 국제적인 역학관계라든가 이런 것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미국이, 센놈이 따라와 하면 따라가는 것이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야당이라든가 시민단체는 말할 것도 없고 종교계는 강하게 반대하고 나서야 한다고 보거든요. 신문도 그렇고.

그런데 이놈의 야당, 종교계, 종교계는 일부가 다른 노선이긴 했지만, 거의 국가의 태도에 대해 지지한다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취해 버렸고 언론이 다 그렇게 가버리니까 어떻게 해볼 길이 없는 것이죠. 사실은 적어도 국익을 위해서라도 국민이 딴소리하면 정부가 전쟁비용을 적게 댈 수 있는 거 아니예요. 핑계 대가지고. 단순하게 볼 적에 국익을 위해서라도 야당이라든가 종교계라든가 언론계가 강력하게 반대해 왔어야 돼요. 정부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이런 것이 전부 우리 수준의 문제라고 봐요. 그 다음에 남북문제를 위해서라도 우리 민족 분단의 문제를 위해서라도 강력히 이것을 반대하고 나섰어야 한다고 봐요. 전쟁을 하면 안 된다고. 그래야 되는데 오히려 한 걸음 나서서 그냥 해버리니 이게 참 갑갑할 노릇이고 결국 우리 수준이 이렇기 때문에 결국은 정치문제라든가 지난번 8·15 방북문제 같은 것들이 결국은 그렇게 됐죠.

또 남북정상회담이라든가 노벨평화상 수상문제 이런 것들이 사실은 우리 민족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엄청난 기회이고 엄청난 자원인데 우리 수준 자체가 안 되니까 산산조각 나버렸지 않냐, 우리 민족의 전기를 마련하는 기회와 자원으로 써먹지 못하고 그렇잖아요. 그냥 김대중이 저 하나 유명해지려고 하는 것처럼 돌아가 버렸잖아요. 결국은 이것이 우리 수준 문제라고 봐요.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하는 논린데 일단계는 뭔가 앞서서 고민하는 쪽이 때에 따라서는 물러서기도 하고 양보하기도 하면서 풀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고 확 끌고 가버리면 소모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거죠.


`선택의 여지없는 지역 열린공동체`

□ 그렇게 보면 종교계도 어찌됐건 우리 사회에서 빛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실제로 실천승가회 같은 데서 반대의 목소리를 낸 적도 있고 통일문제에 있어서도 상당히 적극적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불교나 기타 종교계에서 통일과 민족문제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 종교가 제 역할을 하면 좋은데 전혀 못해서 갑갑합니다. 이번 사건이 터졌을 때도 나는 크게는 아니고 이런 문제가 꼭 큰 힘있는 사람이 나와서 하는 것만 필요하지 않다, 작은 목소리도 다 나와야 된단 말이죠. 개개인이 세상을 변하게 한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큰 무슨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세상을 변하게 한다 생각을 하지 말고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세상이 변한다 이거죠. 만약에 국민이 생각을 가지고 한나라당에 왜 이렇게 하느냐 막 해보라고. 어떻게 하겠어. 태도가 달라지지 않겠어요.

우리 거창하게 이야기하지 말고 우리 실상사 공동체 식구들 여기에 대해 우리 이야기하자. 하긴 다 했는데 결국은 문안 만들고 이런 부분들이 잘 안 된다 해가지고 질질 끌다가 말아버렸어요. 나는 그런 것들이 막 분출해 나와야 한다고 보거든요. 마을이면 마을, 청년이면 청년, 부녀면 부녀, 다 나와야 된다고 봐요. 그런 여론이 형성돼야 전체 정책이 변하는데 우리 사회는 아직 그런 부분까지는 안 된 것 같아요.

그 다음에 할 수 있는 것이 종교집단이잖아요. 우리 종단도 보니까 정부가 그렇게 나오니까 정부 입장에 적극 지지하고 협조하겠다고 나와버리더라고요. 그 동안의 흐름으로 봐서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죠. 어찌해 볼 수 없는 현실인데, 종교가 제 역할만 해도 나는 상당히 풀릴 수 있다고 보죠. 그런데 종교가 제 역할을 못하니까 그것이 문제고, 나도 거기에 몸담고 있는 당사자로서 갑갑하고. 종교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 이것은 맨날 해봐야 소용없는 일이죠.

 


□ 올해 6·15 1주년 기념 민족통일대토론회 때 7대 종단이 참여했었고, 8·15 민족통일대축전 평양행사에도 같이 간 것은 새로운 흐름 아닙니까.

■ 많은 변화가 왔는데 그중에 종교계 움직임들을 보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민족분단의 문제를 다루는데 중심을 맞추었다기보다는 경쟁심리 비슷한 집단이기 경쟁심리,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나타나는데 문제가 있다고 봐요.

예를 들어 가톨릭이라든가 불교, 기독교가 북한을 위해서 지원하는 이런 것들이 경쟁, 집단 이기를 넘어서서 종교적 양심을 갖고 우리 민족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그 역량이 모아지면  그것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봐요. 그것이 무엇이냐, 북한 돕는 것이 다급하면 당연히 도와야죠.

그러나 이것 말고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봐요. 첫째는 남한사회의 통일에 대한 국론을 통합해가는 부분이라고 봐요. 적어도 종교계가 국론통합을 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예를 들어서 6·15정상회담으로 볼 적에 북한이 갖고 있는 통일안, 또 김대중 대통령이 내놓고 있는 통일안이 있잖아요. 종교계가 이런 것을 갖고 진작에  검토하면서 국민들에게 어떤 것으로 가야 할지 그리고 우리 이렇게 가자 이런 얘기를 했어야 하는데 그런 작업이 전혀 없었죠.

현재 남북문제를 갖고 국론통일을 위해 하는 작업이 거의 보이지 않아요. 정치권에서 정쟁화시키고 신문에서 다 박살내버린단 말이죠. 그러면 종교계가 기껏 한다고 하는 것은 뭐냐면 햇빛정책이 좋다 이런 수준이란 말이죠. 실제 난 그 부분을 해야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 이번에도 불교계에서 북한에 자전거를 보내준 것으로 압니다.

■ 불교계도 그런 이야기예요. 돈 모아 갖다 주는 것 그건 당장 급하니 급하게 해야 된다, 그러나 그 수준에서 통일을 한다고 하는 것은 곤란하다, 내가 볼 적에는. 생색내기 식이여.

 


□ 실상사에서도 북한 어린이 돕기 모금을 계속하고 있습니까.

■ 지금도 해요. 그래도 꾸준히 좀 생겨요. 그래서 하나는 옥수수재단쪽, 하나는 한겨레 어깨동무쪽 두 군데 나눠서 보내고 있죠. 어쩔 때는 돈백만원씩 생겨요. 어쩔 땐 이십만원, 삼십만원 생기고. 그거 뭐 돈보다도 여기에 많은 사람이 왔다갔다 하니까 그런 부분에 관심을 갖게 하는 거죠. 보냈어도 몇 푼이나 되겠어요.

 


□ 오전에 다녀왔습니다만 귀농학교와 작은학교 등 여러 가지 대안적인 모색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작은 공동체는 가능할 수 있겠지만 우리 사회와 삶의 보편적인 방식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습니다.

■ 나타나기는 귀농운동이다 또는 공동체운동이다, 작은학교운동이다 이렇게 나타나고 있는데 실제 내가 생각하는 것은 일단은 세계관과 철학의 문제라고 봐요. 어떤 인간관을 갖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나 태도가 달라진다고 보거든요.

그동안에 우리를 지배해왔던 것이 쉽게 얘기하면 이원적이고 대립적인 세계관 그런 인간관을 갖고 살아왔고 소유, 독점, 지배, 경쟁, 투쟁, 이런 것 갖고 전체, 중앙, 대형 이런 것을 추구해 왔죠.

내가 공부하고 있는 불교가 갖고 있는 연기론의 세계관을 보면 중앙중심주의 사고라든가 대형중심주의 사고라든가 이런 게 설 땅이 없어요. 늘 지역 현장이지요. 어디든지 지역중심으로 가야한다고 봐요. 그리고 필요하다면 전체가 관계할 필요가 있겠지만 일단은 지역중심으로 가야 된다는 거죠. 첫째로는 자기, 자기 가족이겠고 이것이 확대되면 지역, 이것이 또 넓어지면 국가죠. 국가 자립경제에서 국제적 관계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지금은 그것이 아니잖아요. 국가로 보면 철저하게 국가라고 하는 중앙으로 모든 것을 모아가고 있고, 지금은 세계적으로 다국적기업이니 뭐니 해가지고 다 몰아가고 있잖아요. 그러니 지역이라고 하는 기반이 붕괴되고 있어요. 문제는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 삶이 문제가 안 된다고 하면 괜찮다는 거죠. 우리가 제대로 세계관과 철학이라는 측면에서 이 세계의 형성되어지는 구조라든가 이 세계의 존재방식이라든가 질서를 보면 그렇게 가서는 안 되게 되어 있단 말이죠. 어느 정도까지는 괜찮아 보이지만 그 한계를 넘어서면 문제가 오게 돼있다는 거죠. 지금 그 문제가 오고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그래도 좋다, 내일이 어찌되든 관계없다, 오늘 만땅 먹고 즐기자 이렇게 생각한다면 문제는 간단하다. 그렇지 않고 뭔가 우리가 나도 살고 우리 후손들도 살고 지속적으로 괜찮아지려면 지금 이런 식으로 가면 죽음의 길이 뻔하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선택의 여지는 지역을, 현장을 기반으로 하는 이것을 통해서만 삶의 문제를 다루어야만 삶이 질적으로 좋아지고 지속적으로도 가능한데 이렇게 중앙이라든가 도시라든가 고도화된 기술이라든가 이건 결국 중앙집중으로 간다고요. 이건 소수잖아요. 가진 사람들. 신자유주의니 세계화니 하는 것이 다 그런 쪽인데 이런 논리로 가는 한 마지막 도달점은 다 죽는 길이고, 도달해 가는 과정에서는 가진 사람들 소수는 이익을 보고 대다수는 형편없이 고통을 겪어야 되는, 보나마나 처음부터 끝까지 문제일 뿐이다 이거죠.

이것이 내가 보는 관점인데 그래서 이것이 얼마나 가능성이 있냐 현실적으로 가능하냐 이건 것들을 묻지 않아요. 물론 효율성이라든가 가능성을 고려해 효과적으로 가긴 가야 되겠죠. 그러나 이 부분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나는 봅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지역을 기반으로 가는 자립적 삶의 형태, 굳이 말하자면 열린공동체라고 할까 지역을 기반으로 하되 얼마든지 관계가 소통될 수 있는 이런 입장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문제라고 보고 이러한 것을 몇몇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한 시대의 생각으로 한 사회의 생각이 될 수 있도록 그것이 가능하도록 하는 효과적인 방식이 뭘까. 이 부분은 이것만을 따라야하는 그런 방식이 있을 수 없다.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야 하는 입장에서 시도하는 일이고요. 지금 의외로 전 세계적으로 이런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고 봐요. 물론 가는 과정 자체가 어렵지만 충분한 가능성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여기서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공동체 회복이란 지향점, 생명살림 지향점, 이 두 가지 지향점을 갖고 하나는 농장을 중심으로 해서 유기농공동체 그리고 귀농학교를 중심으로 해서 귀농운동, 작은 학교를 중심으로 해서 새로운 인간성, 힘의 논리, 싸움의 논리, 소유의 논리, 독점의 논리 이런 인간성이 아니라 공존하고 융화할 수 있는 이런 삶을 가꿔갈 수 있는 그런 인간상을 키워가기 위한 교육운동이란 측면에서 여러가지 실험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불교계가 갖고 있는 자원이 큰데 이론이라든가 전통, 정서 현재 갖고 있는 자원이나 조건들이 그 부분에 있어 좋기 때문에 불교계가 이런 부분에 중요한 정책으로 삼아서 갈 수 있는 대안을 내놓아야 하겠는데 그런 차원에서 실상사 자체가 대안이 될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으로 해보는 거예요.


`바깥에는 전혀 안 나가고 하루 네 차례 기도`

□ 진행하시면서 어려움이 많을 텐데요.

■ 사실은 뭐 저렇게 가면 안 어려워요. 정치의 논리, 자본의 논리, 중앙의 논리 그것도 나름대로 죽을동살동 하고 있거든요. 거기는 어렵다고 안 느끼고 이것이 어렵다고 느끼는데, 그거는 오십보백보라고 봐요. 다르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가 제일 문제는 역시 세계관과 철학이고 삶의 방식과 태도의 문제 이 부분을 기존에 있는 틀에서 벗어날 것이냐 하는 게 일차적인 관건이라고 봐요. 구체적인 관건이고, 그 부분만 되면 다른 것은 어떻게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주체적인 자기정립 부분이 약하니까 결국은 현실적으로 봤을 때 경제적인 문제들이잖아요.

이 부분이  주체적인 자기확립이 뚜렷해지면 예를 들어서 2만원만 갖고도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자기 확립이 약하면 5만원이 들어가야 현실적으로 만족할 수 있게 된단 말이죠. 그런데 현실적으로 2만원밖에 안 된다. 이게 인제 어려운 일이죠. 당장 문제는 주체적인 자기확립 부분이, 이차적으로 현실적으로 경제적인 문제가 어려운 거고요. 부닥치는 거죠.

 


□ 5만여 평의 땅에 귀농학교와 대안학교 같은 건물들을 짓는 대역사(大役事)를 하고 계시는데 어떻게 감당하는지요.

■ 주먹구구식으로 하는 거죠. 지금 이게 제대로 되겠냐 안 되겠냐 하다보면 할 수가 없는 것이고, 이건 선택의 여지가 없고 필요한 일이고 가치 있는 일이고 옳은 일이다 그러니까 형편에 관계없이 효과에 관계없이 하는 데까지 하자 최선을 다해서, 이렇게 부닥쳐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저건 뭐 그림 그리고 수지타산 맞추고 이렇게 하면 할 수가 없어요. 무모하게 하고 그런 무모한 생각들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런 대책없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 가지고 고생은 좀 하지요. 그래도 나름대로 의미부여를 하니까 되지 않겠어요.

 


□ 천일기도도 하시고 귀농학교다 대안학교다, 실상사 발굴 복원작업이다 이 많은 일들을 어떻게 다 벌리시는지요.

■ 그건 내가 안 해요. 내가 할 필요가 없어요.
여기 재정상으로도 불가능하고 그런데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가는 하나는 실상사가 그 부분을 긍정적으로 자기 일로 삼아서 하려고 하는 입장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귀농학교는 귀농학교대로 작은학교는 작은학교대로 그것을 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있는 거죠. 실상사 독자적으로 절대 할 수 없어요. 이건 돈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 그러고 그 사람들만으로도 안 돼요. 의지만 갖고 되겠냐 이거죠. 실상사 여건과 이것을 하겠다 하는 주체들이 만나서 가능한 것이죠. 그러니까 먹고 자고 공간활용하고 이건 내가 책임지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상은 나는 모른다, 그렇게 해서 하는 거예요.

그리고 구산선문(九山禪門)은 통일신라 당시 불교가 국교였잖아요. 그러니까 나라가 불교고 불교가 나라였죠. 그런데 통일신라 말에 오면 굉장한 혼란에 빠지게 되거든요. 그러면서 국민들이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되고 나라가 위태로워지고 지방 호족들이 들고 나오고 지역다툼이 생겨나고 그럴 때 뜻 있는 스님들 중에서 불교도 타락화되고 세속화되고 나라는 나라대로 어지러운 상황이니까 불교를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나 뭔가 새로운 올바른 길을 찾아내야 할 것인데 어떻게 할 것이냐, 그때 고민을 했던 사람들이 당나라로 유학을 가요. 그때 우리가 거의 당나라 쪽에서 받아오니까 당시 당나라는 선종불교가 굉장히 활발한 때였어요.

왕실 귀족 사회에서 뭔가 진취적이고 양심적인 그 사람들이 홍척선사가 들어오니까 왕실로 초청을 해서 선불교를 듣고는 아 이거 괜찮다 받아들이자 그렇게 해서 왕실이 이 스님을 도와서 선불교라고 하는 새로운 사상운동을 전개할 수 있는 무대를 최초로 만든 것이 이곳 실상사예요. 구산선문은 거의 경주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요. 장흥 보림사, 곡성 태안사, 강원도 덕흥사, 충청도 성주사, 거의 멀리 떨어져 있어요.

원형 파악을 하고 복원이야 일단 하겠지요. 초기 선종사찰이 어떻게 됐는지 하는게 우리 역사 내용을 위해서 필요하고 앞으로 복원을 할 때에도 참고를 해야 할 필요도 있을 것 같고 그래서 발굴을 하는 거예요.

 


□ 천일기도 하시는 데 하루에 몇 차례 기도를 하십니까.

■ 매번 새벽 예불(새벽 4시 반) 끝에 하고 오전 10시부터 점심 먹을 때까지 하고 오후 2시부터 체력에 따라서 한시간에서 한 시간 반 하고, 저녁예불 6시에서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하는데 부득이한 일이 더러 있어요. 바깥에는 전혀 안 나가고 바깥 관계는 싹 정리했어요.

구석구석에 특징있는 것들이 자기들 나름대로 그렇게 하는 것들이 모여서 세상이 되는 게 아니겠어요. 움직이는 사람이 있어야 하지만 가만히 있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나가야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만 물러서는 사람도 있어야 되고 그게 어울려야만 이게 한발씩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죠.

모든 게 획일화로 가고 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옛날에는 먹는 것만 하더라도 한 나라 안이라도 음식 식생활 문화라든지 자립적 기반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죠. 그런데 지금은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획일화되어 자기 기반에서 만들어진 것은 시시하게 생각한단 말이죠. 그게 정체성이 다 파괴된 것이죠. 요즘에 그렇게 가면서 개성 이야기하고 정체성 이야기하고 다양성 이야기하는데 그렇게 가면 개성, 정체성 있을 수가 없어요. 자기성장에 입각해서 자립적 삶을 살려고 할 때 정체성이라든가 다양성이라는게 살아나는 것이지 지금 이런 형태로 가서는 절대로 정체성 다양성이 있을 수 없어요.

 


□ 실상사에 스님들은 몇 분이나 계신지요. 그리고 경내의 화장실도 바뀐 것 같습니다.

■ 한 이십 명 정도. 저쪽 뒤에 새로 지은 건물에 서너분 살고. 전체적으론 한 35명 돼요. 실상사에 소속된 백장선원, 약수암, 사진암. 관루암이 있고.

뒷간은 여기가 어차피 농사를 지으니까 퇴비문제라든가 여러 가지로 볼 적에 앞으로는 생태적인 쪽으로 모든 것을 정리해 가야 하니까 긴급대책으로 이렇게 하자해서 한 것이죠. 반응이 천태만상이여. 어 이거 장난이 아니네, 어떤 사람은 야 이거 운치가 있네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가버리기도 하고......

 


□ 지난번에 해인사와 한판 `붙었었죠`. 수경스님이라고 했던가요. 모든 언론에 스님이 수염도 안깎고 단식하고 있는 사진이 실렸던 것을 보았습니다.

■ 붙었지. 그것이 우리 불교식으로 문제를 푸는 작업을 한 셈이지.

청동대불 문제 때문에 수경스님이 안 된다고 기고를 했고 기고 내용이 성철 스님을 비판하는 것은 아닌데 후손들이 만약 그렇게 간다면 성철 스님이 망친 것 아니냐, 생각을 잘못 한 게 아니냐 하는 것을 짚고 넘어간 거지. 그러니까 그 쪽에서는 성철스님 욕했다고 선방 대중이 한 30명 가까이 와서 수경스님 숙소에 가서 기물을 파괴해버렸잖아요.

그래서 일이 벌어졌는데 우리가 이래가지고는 안 된다, 사과해라, 최고 어른 사과하고 당사자 문책하고 그렇지 않으면 법적으로라도 손봐야지 안 되겠다 하고 공식적으로 요구했는데 그쪽에서는 딴 핑계를 대고.

그렇게 처음 시작했다가 우리가 다시 여러 가지로 종합 검토한 끝에 이런 물리적 행위들이 불교계에 상당히 고질화된 부분인데 고질화된 부분을 바로 잡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 한두 사람을 문책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냐. 그 한두 사람도 어떻게 보면 불교계가 갖고 있는 고질화된 폐단의 희생자로 봤을 때 그 사람을 물고 늘어져서 문책을 해라 징계를 해라 하는 것보다는 우리가 교단문제를 제대로 못한 것에 대한 자기반성과 자기반성을 통한 교단적 고질 병폐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쪽으로 문제를 다뤄갔으면 좋겠다 해서 해인사에 요구했던 것을 싹 거둔다고 했어요.
그 대신 교단적 병폐에 대해 우리가 책임이 있으니까 우리 스스로 반성을 할 것이고 지금부터 이것을 극복해가기 위해 노력을 해가도록 종단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겠다. 그래서 21일간 단식을 한 거지. 그렇게 하니까 해인사 쪽에서도 미안하지 않겠어요, 처음에는 같이 가다가. 그쪽에서도 동시에 사과문 발표하고 그 사람이 만족스럽진 않더라도 맡았던 책임들을 내놓고 그렇게 정리를 한 셈이죠. 사회적 관심은 굉장히 좋드만.


`간디 같은 민족지도자 나와야`

□ 원래 스님이 제주도에 계셨다고 들었는데 제주 4.3항쟁과 지리산하고 연관이 있는지요.

■ 태생, 태생이 제주도라. 나는 모르는 일인데 내가 한 2년 전에 비로소 우리 노모한테 들었지. 내가 유복자거든. 어머니가 아버지 돌아가시고 5개월만에 나를 낳으셨거든. 지금 생각해보니까 4.3 한 복판이었어. 어려서 성장할 때니까 물을거 아녀. 아버지가 왜 안 계시냐고. 어머니가 하는 말씀이 누가 물으면 아파서 돌아가셨다고 해라 이렇게만 들었어. 그 이상의 얘기는 일체 없었는데 2년 전에, 집에 안 가는 편인데 갈 일이 있어서 자고 왔는데 그때서야 그 얘기를 하더라고. 산간마을이라 위험하니까 소개시켜 몰살시켜버린 거여. 그때 같이 돌아가신 거라구. 그 얘기를 이제사 하는 거야. 그동안 말을 못하게 하고. 그런 경우가 허다해.

여기도 그래, 여기도. 자기 식구들이 뭐 이념이 있어서가 아니고 그냥 어쩌다 보니까 산(山)사람으로 가기도 하고. 쉽게 이야기하면 실상사도 마찬가지여. 밤낮 교차니까. 산내 여기는 우리말로 빨갱이들이 지배하고, 인월쪽에 가면 토벌대들이 와서, 밤낮이 늘 교차하는데 이러니깐 빨치산들이 와서 밥 안 해 주면 죽네사네 하는 상황인데 밥 해줘야지. 그러면 토벌대가 와서 밥 줬다고 빨갱이 아냐 하고 족치고. 그러니까 한 식구가 한 쪽은 토벌대, 한쪽은 빨치산인 경우도 있어요. 그리고 그것 때문에 이 주변에 나중에 결혼도 못하고 빨갱이라고 해서, 그러니까 말을 못하는 거죠. 여기에 실제로 결혼  못한 사람 있어요.

우리가 지금 크게 정치적으로 얘기되는 부분은 그야말로 우리가 그 아픔을 잘 몰라요. 이념적으로 해야된다 하는 것이지만 실제 당사자는 피눈물 나는 것이죠. 그러니까 한 어머니가 양쪽을 다 두는 경우도 있는 거야. 한쪽은 산에 가 있고, 한쪽은 토벌대에 가 있고. 어떻게 할거여. 어쩌다 한 번씩 만나면 두 놈 다 붙잡고 울 수밖에 없는 거 아니여. 빨치산을 붙잡고 울어야 되고 토벌대를 붙잡고 울어야 되고. 그 어머니 심정이 기가 막히는 거지.

 


□ 일설에는 스님이 금산사 주지로 부임하라는 권유를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불교를 개혁하기 위해 실제로 큰 역할을 하실 필요도 있지 않겠습니까.

■ 그건 정리됐지. 여러 가지로 봐서 내가 하도록 돼 있는데 난 주지하는데 별 흥미 없어. 실상사 주지도 하기 싫은데, 난 안 간다고 했어. 내 밑에 사제가 들어가기로 했지. 그것 때문에 1년 실갱이 했네. 와라, 안 간다 뭐 그렇게 실갱이 하다가.  지난 가을에 정리했지.

종교는 정치, 행정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은 한계가 있어요. 정치, 행정적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이 논리적으로는 그거 가서 잘하면 다른 것도 다 가능하다고 보이는데 현실적으로는 그게 안 돼요. 예를 들면 총무원장 할 수 있을 것 같예요? 가보면 맨날 정치하고 행정하고 그 문제 하다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자기자리 지켜야 되고 재산관리 해야 되고 요짓하다.

뭔가 정말로 사상적으로 철학적으로 깊이 고민하고 뭔가 이런 것을 그쪽에서는 다룰래야 다룰 길이 없어요. 종교는 그게 아니란 말예요. 그쪽에 하고 싶어하는 사람 많고 내가 간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 내가 관심 없는 쪽에서 하겠다. 그것이 잘 되면 좋은데 잘 돼야 되고, 그러나 그것은 하려고 하는 사람이 많고 이런 쪽은 관심이 없잖아요. 관심 없는 쪽을 내가 할라고요.

 


□ 천일기도를 하다보면 집중해서 하다보면 뭔가 있을 것 같기는 해요.

■ 그거는 어떤 생각을 갖느냐에 따라 불교는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살면 된다는 논리여.  나쁜 생각하면 나쁜 쪽으로 가는 것이고 좋은 생각하면 좋은 쪽으로 가는 것이고. 신비한 쪽을 겨냥해서 가면 신비한 현상을 일으키게 되고 그런다는 거지. 불교는 자기가 생각하는대로 된다는 거죠. 그게 자작자수(自作自受), 자업자득(自業自得). 스스로 자신이 행동한 대로 이루어진다 이것이 자업자득, 자기가 지은 대로 작업한 대로 그 결과가 나타난다 자작자수인 거지. 본래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그래서 불교는 늘 현재 자신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가 관건이야. 불교는 늘 현재라. 그러니까 어제 도둑질했더라고 오늘 도둑질 안 하면 도둑놈 아닌 거여. 어제 도둑질 안 했어도 오늘 도둑질하면 이건 도둑놈인 거야. 늘 현재 자기를 어떻게 가꾸어 갈 것인가 하는 문제여. 현재 좋은 쪽을 갖고 하면 좋은 쪽으로 흘러가는 것이고, 엉뚱한 생각을 하면 엉뚱한 쪽으로 흘러가는 것이고. 불교는 내가 볼 적에 현실적이여, 그 가르침이.
불교는 공존, 융화, 평화, 비폭력의 논리로 간다. 내가 봤을 때 현실을 떠나서 불교가 있다면 불교가 아니다. 가장 과학적으로 현실적으로 명쾌한 게 불교라고 생각하는데 한국불교 이 부분에 굉장하게 오류에 빠져있는 거여. 부처님 같은 경우에는 일생을 현장에 산 거여. 전쟁판에도 가고 싸움판에도 가고 그랬단 말이여. 전쟁판이 벌어지니까 정복군 대장을 직접 만나서 말도 하고 설득도 하고 두 번인가를 정복군을 퇴각시키고 세 번째 결국은 못해 전쟁이 벌어지고 나라가 멸망당하고 그랬는데. 그러니까 그것이 평화로운 방법으로 문제를 다룬다고 하는 차이지 결코 현실문제를 회피하거나 현실과 동떨어져 뭘 하는 것이 절대 아니지.

그것을 가장 조직적으로 한 사람이 마하트마 간디여, 비현실적인 인물이 아니잖여. 독립운동이라고 하는 첨예한 문제를 비폭력, 비협력운동으로 독립운동을 이끌어냈잖여. 다만 일반적인 방식과 다르다고 해서 불교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 이상적이라면 현실적인 문제를 못 풀었어야 되는데 구체적으로 독립이라고 하는 것을 이끌어냈잖여.

 


□ 우리 민족지도자도 간디 같은 철학이나 방식을 가진 지도자가 나와야 된다는 말씀입니까.

■ 어느 곳이나 그것이 필요하다 이것이여. 간디는 지금도 보면 탁월한 것이 그때도 지역자립운동을 했어. 작은 정부 얘기, 풀뿌리 민주주의 하는, 지역자립공동체운동. 중앙정부에서는 이것이 안 된다 이거여. 부처님도 그래. 부처님도 노골적으로 그렇게 얘기하는데 재상들이 와서 뭘 묻고 이런 과정에서 보면 당시도 강대국이 있고 작은 나라, 공화체제의 작은 나라를 아주 좋게 이야기해. 그러니까 개개인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고 개개인이 주권으로 참여해서 문제가 다뤄질 수 있는 이런 규모의 체제들. 이런 것을 아주 좋게 이야기했어. 이렇게 중앙집중이라든지 전제군주제라든지 이런 것은 별로야. 그것은 불교세계가 아닌 거여. 그 얘기를 간디가 했다.

 


□ 그런 것이 장기적으로 추구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 같은 사회구조 속에서 그런 방식의 지도자 나올 수 있을까요.

■ 그건 충분히 가능하죠. 마하트마 간디 시댄들 크게 달랐겠어요. 근데 해냈잖아요. 그야말로 무지와 질병과 빈곤이 뒤범벅된 사회에서 비폭력, 비협력 운동을 통해서 독립을 이끌어냈단 말이에요.

이것은 우리의 안목이나 우리의 역량이 안 닿아서 그렇지 불가능한 것은 절대 아니다, 그게 그렇게 된 것은 첫째, 마하트마 간디가 요만큼의 사심이 없었다, 이게 그릇의 차이예요. 우리 김대중 대통령 같은 경우를 보면 그 부분에 한계가 있어요. 굉장히 똑똑하고 굉장한데 그릇에 한계가 있어요. 큰 결정할 때 보면 그게 막혀요. 내가 정치적으로 관심을 가져서 보게 된 것이 87대선 때부터예요. 그때 김대중 대통령이 크게 판단을 못한 거예요. 그렇잖아요. 그리고 이번 대통령이 됐을 때도 큰 결심을 했어야 돼요. 과감하게 그동안 고생했던 사람들도 정리해내고 남북문제를 다룰 때도 야당의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과감하게 이회창을 내세워서 가야된다 이거예요. 큰 계산을 못하고 작은 계산을 하고 있어. 우리나라는 패거리지도자만 있고 국민적 지도자 없는 거여. 전부 동네지도자들, 경상도 지도자, 전라도 지도자, 충청도 지도자 이런 식이란 말이여. 국민적 지도자가 없는 거지.

그때 당시 라디오와 신문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인도 그 무지한 대중이 마하트마 간디를 추종하는 거예요. 왜, 마하트마 간디는 정말로 사심이 없다고 하는, 마하트마 간디는 정말로 우리를 위해서 산 사람이라는 신뢰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것이 성공한 거예요. 물론 그걸 리드했던 훈련된 리더들이 있긴 했지만 그  많은 대중이 그 흐름에 따라간 거예요. 그것이 그때 당시에도 어떤 사람도 그 방식이 먹혀들어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간디라고 하는 뛰어난 인물에 의해서 된 거예요.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100년만 지나면 간디는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신화적 인물로 사람들에게 기억될 것이라고 평가를 하잖아요.

그것이 충분히 난 가능하다고 봐요. 우리도 조계종단 같은 경우에도 98년 종단폭력사태가 벌어졌을 때도 엄청 논쟁이 있었는데 그런 사건을 해인사 문제를 다루는 방식으로 지도자가 나서서 풀면 분명 불교교단에서 물리적 힘으로 문제를 다루는 풍토를 근절시킬 수가 있어요. 그때 중요한 계기였어요. 근데 결국은 못하고 간 거죠. 이번 미국사건도 마찬가지죠. 그러니까 그런 위기가 있을 때 이걸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우리 수준이 한 단계 발전할 수도 있고 제자리걸음 내지는 더 퇴보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도법스님의 목소리는 갈수록 격정적이 되었고 오후 기도 시간이 다 되어서도 그칠 줄 몰랐다. "뭔 얘기든지 다 해보자"는 그의 말대로 `하얀 민들레차`가 비는 줄도 모른 채 정치지도자의 문제에서 뒷간(화장실) 문화까지 거침없이 그의 생각들이 펼쳐졌다.
분명 그는 모든 것을 꿰뚫는 일관된 자신의 세계관을 갖고 지리산 실상사에서 그 한자락을 드러내는 진지한 실험을 진행중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그의 세계관과 실험이 가장 현실적인 것으로 입증될 것인지, 현실과 한발 떨어진 작은 대안에 머물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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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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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읽은 책, #박물관에서_서성이다

 

그중 한 챕터가 인상 깊어서 옮겨 본다.

 

협객의 정신이 좀 필요해 보인다. 

---

 

협객(俠客)

 

민화에 대한 관심과 인기에 힘입어 민화 강좌는 물론 전공을 개설한 학교들도 있다. 직간접적으로 민화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민화에 대한 제도권의 관심과 후원을 기대하기도 한다. 우리 겨레의 독보적인 예술 양식인 민화도 하나의 예술 장으로 인정받고 관련 지원책도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화는 과거 문화유산의 한 유형인가 아니면 예술로서 계승/발전시켜 가야 할 분야인가? 문화재로서의 가치인지 지속적인 현재성을 가진 예술 활동인지를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선 민화를 문화유산으로 접근한다면 문화재 관리 기준을 따르면 된다. 발굴된 자원을 보존/관리하고 연구/전시를 통해 당대의 사람들이 지향했던 가치와 의미를 탐색해 오늘의 지표로 삼으면 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유의미하다는 것은 지속적인 생명력을 가진다는 뜻이다. 시대를 넘는 생면력은 바뀐 시대의 가치를 수혈했을 때라야 가능하다. 민화는 지금, 그리고 앞으로 어떤 가치를 수혈해야 할까? 현대인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민화를 걸어놓지도, 자신의 원망을 민화에 투영시키지도 않는다.

 

요즘 민화를 배우는 이들은 조선시대 민화를 따라 그린다. 몇 가지 범본을 정해 놓고 이것을 수없이 반복해서 그리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어느 정도 필력이 생기면 새로운 표현소재를 도입/적용한다. 이러한 방식을 옛 조선 민화와 견주어 현대 민화(창작 민화)’라고 한다. 우리의 전통 회화 규범에는 모//방의 절차가 있다. 모는 원본을 밑에 깔고 그대로 베끼는 것이고, 임은 원본을 옆에 놓고 따라 그리는 것이며, 방은 모/임을 거친 뒤, 원직을 기초로 자신의 방식을 가미해 그리는 것이다.

 

전통 회화의 규범은 그 시대의 논리와 당위성이 있어 그렇게 행해졌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그 규범이 유효한지는 의문이다. 그림을 따라 그리는 단순한 행위를 통해서도 어느 정도의 정서적 쾌감이나 희열을 맛볼 수는 있다. 표현력과 창작력이 뛰어난 사람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면 상당한 수준의 작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누리는 생활 예술’, ‘삶의 심미화라는 측면에서는 충분히 의미가 있겠지만, 그것이 민화의 현대적 계승은 아니다. 그렇게 그린 그림이라고 하여 민화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일상을 아름답게 가꾸는 활동으로서의 의미는 있지만, 후대에까지 전해지는 예술 장르나 작품이 되기는 어렵다.

 

그림이란 표현과 내용의 합이다. 조선 민화는 아마추어인 서민이 아니라 대체로 화원이나 화승들이 그렸다. 즉 표현은 프로들의 역할이었다 해도 그 안에 담긴 것은 민중들의 원망과 사고체계이다. 그래서 민중의 그림이라는 개연성이 성립된다. 여기서의 민중이란 서민만이 아니라 사대부, 귀족까지 누구나를 지칭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일본인들은 막 만들고 막 생겨 먹은 조선의 막사발을 가져다가 잘 다듬어진 다도의 질서 속에 편입시켰다. 그들의 다도를 위해 필요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막사발을 위해서는 아니다. 언제 막사발이 자신을 대단하게 봐 달라고 했던가? 그리하여 지금은 진짜 막사발은 다 사라졌고 기획된 짝퉁 막사발, 복제 막사발들이 난무한다. 물리적인 실체로서의 사발만이 아니라 막사발의 영혼까지 사라졌다. 들판에서 비바람 맞으며 자란 나무를 안온한 정원에 옮겨 심은 꼴이다. 야생은 야생일 때 생명력이 있다.

 

민화의 예술적인 책무는 협객이 아닐까? 태생과 성장이 그러했듯이 민화는 강호와 들판을 서식지로 하는 외톨이다. 그래서 그 표현 또한 ()’하다. 세련된 도회의 정서가 아니어서 촌스럽다. 협객은 성안의 벼슬자리를 탐하지 않으며 성 안의 장수들과 누가 더 센지 겨루지 않는다. 자신의 명분을 침해하려는 자가 나타났을 때만 기꺼이 나설 뿐이다.

 

민중의 원망과 기원이 투영되어 있으며 팍팍한 일상을 위로해 주는 것이 민화다. 민화를 보면 통쾌하다. 눈치 보지 않는 당당함, 길들여지지 않은 야성,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유로움과 권위를 무시하는 도전성이 그렇다. 제도권의 인정을 기대한다는 것은 체제의 질서로 편입되고 싶다는 욕망이다. 장으로 등극하여 제도 안에서 식재(植栽)되는 순간 그 역동적인 본능은 퇴색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은 예술 작품을 획일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콘텐츠와 정보기술을 이용해 자신만의 작품을 제작하고 소비하는 능동적인 시대다. 대중은 정형화되고 규준화된 미적 질서를 좇는 근대적 미관에서 벗어난 지 오래다. 불균형과 경계를 해체한 기이함, 낯섦 같은 야()한 것에 열광한다. 사회학자 마페졸리(Michel Maffesoli)는 현대를 재주술화(再呪術化)의 시대라고 했다. 상상력으로 가득한 낭만의 바람이 불어온다. 모호한 불안, 스펙터클한 혼돈이 예견되는 21세기 강호에서 민화는 여전히 협객이다.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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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나다!
고흥 물이 좋은갑네이!😹🍺
앞집 형님 한 병 줬다.
또 집에 찾아온 광주 후배부부한테도 주고…😌

담엔 20리터 만들어야겠다.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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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라 이름 붙이기는 민망하다. 그저 서울에서 텃밭 분양받아 하던 기분으로 하기도 하고, 농약 안 치고 제초제 안 뿌리고 하는 농사라서…;;
더구나 부지런히 받에 디나들지도 않는다. 게으른 농사인 셈이지. 풀과 함게 작물을 키우다 보니 동네분둘이나 엄니 눈엔 별 요상한 밭일지도 모르겠다.ㅎㅎ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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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하던 일들을 정리하고 요양보호사가 되어 엄니를 돌보게 되었다.

엄니를 생각하면 고흥으로 가서 둘이 사는 게 가장 좋겠다 싶다. 

몇 달이 될지 몇 해가 될지 장담은 못 하지만 말이다.

이참에 늘 마음에 담아둔 귀농귀촌을 실행하는 쪽으로 계획을 세워도 좋겠다. 

한편, 그러자면 서울 집에 성인이 되긴 했지만 두 아이만 두게 된다. 

둘이서 알아서 잘 생활할까 막연한 걱정이 앞어서 고흥행이 망설여진다.

둘에게는 늘 할머니를 대면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겠지? 

마음대로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유로움도 느낄 수 있겠지? 

현실은 집구석이 엉망진창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는 건 어쩔 수 없다.

두 냥이 밥 주고 물 주고 똥 치우는 일도 제대로 할 수나 있을까?

 

나를 생각하면 솔직히 가고 싶긴 하다. 물론 가서 생계를 고민해야 하고 아이들 생활비며 등록금이며 보내야 하는 일도 고민이긴 하다. 그래도 가면 할 일은 많아 보인다. 

게다가 이런저런 공간을 마련해서 꿈꾸던 일을 도모하고 싶기도 하다.

다만, 혼자서는 쉽지 않다. 관심과 철학과 꿈이 비슷한 이가 함께 간다면 좋겠다.

그런데 지금은 그럴 친구가 없다. 염두에 둔 친구와는 봄부터 소원해지고 말았다. 

다 내 잘못이 크다. 어쩌면 내가 1순위로 그 친구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이리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얘기를 해보고는 싶은데 용기가 나지 않는구만...;;

 

어떤 식으로는 올해는 삶에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 

제2의 인생을 준비해야겠는데, 머리속이 복잡하네...

혼자서 맨땅에 해딩하듯 추진하는 힘이 내게는 없나 보다.ㅠ

힘을 북돋아 줄 친구가 필요해!

무럭무럭 함께 잘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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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기뚫는 도구.

언제인지 정확치는 않다.
오래전 서울 종로 쪽 공구상가에 가서 구입했다.
오래된 아파트였는데, 화장실 변기가 막혔다. 그냥 똥덩어리가 막힌 수준이 아니었다.
업체를 알아봤는데, 몇십만 원 달란다.
변변찮은 월급으로는 너무 아까웠다.
게다가 '이게 뭐라고 몇십만 원이야!'하는 반발감이라고나 할까.
며칠 관리사무소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며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이런 공구가 있다는 정보를 얻고 시내로 가서 2만 얼마에 사왔다.

변기를 뜯었다.
'욱!' 냄새가 장난 아니었다.
이걸 한참을 넣고 돌려 꺼냈더니 머리카락부터 화장지까지…;;
그렇게 씨원하게 뚫었다.

그때부터 웬만한 일은 직접 고치고 만들기 시작한 듯하다. 시작은 돈이 없었고 내겐 지나친 수리비에 대한 반발감이 도발을 하게 해준 셈이다.

목공, 뜨개, 저전거정비 등등 내 손으로 할 수 있으면 온갖 일을 해보는 자신감을 얻었다.
여기엔 또 이런 짓에 긍정적 에너지를 불어넣은 무럭도 한몫했다.
언젠가 무럭이랑 가볍게 농사도 지으며 헌책도 팔고 나무로 만든 고양이 용품을 비롯한 리페어공방을 만들고 싶은 꿈을 품기도 했다.

그 꿈은 아직도 살아 있는데, 니가 좀(?) 멀어져 부렀네…;;
#보늬밤
#주제넘은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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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갑포차

카테고리 없음 2022. 10. 19. 23:42

어쩌다 보게 됐는데, 막판으로 갈수록 니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제길…
어떻게 스친 인연인데, 쉽게 끊을 수 있겠다 싶구나.

너는 일을 하였느냥? 나는 사랑을 하였지롱
저 달이 손꾸락으로 쉽게 잡히는데, 집으로 가져갈 수는 없금마이!!ㅠ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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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제맥주 만들기

발효 2022. 9. 4. 23:04

전에 집에서 맥주 만들면서 공부 삼아서 자료용으로 엉성하게 편집해본 영상.
기록으로 남겨둔다!

맥주 만드는 과정을 어설프게 편집해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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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느닷없이 생각이 나는 걸 보니...

이제와 생각해 보면, 오를 수 없는 나무였는지도 모르겠다. 

내 주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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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어서 보든가 

지금까지를 뒤집어 보든가.

 

앞으로 하려는 일은

손작업(자전거, 나무작업, 뜨개, 재봉, 요리, 수제맥주 등)은 쭉 할 듯하고

그림책 만들기 작업은 서두르지 않되 꾸준히 하면서 책을 쓰고 (그림은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맡기는 걸로) 만들어 보려고 하고

요양보호사 자격을 곧 얻을 테니 관련 돌봄 활동을 고민해 봐야겠다. 시골에서든 동네네크워크를 통해서든 경험을 쌓으면서 다른 길을 닦아 보고 싶다는 생각은 드는데, 난 뭐든 혼자서는 잘 못하니까...;;

 

엄니 돌봄으로 시골에 곧 가게 되면 살 만한 곳을 다시 찾아봐야겠다. 

산과 들과 바다가 있는 곳이면 좋겠는데. 고흥에 있을까?

가게 되면 두 냥이도 데려가는 게 좋겠지? 당장은 아니더라도...;;

아, 고흥에서 테니스는 계속 하고 싶은디.ㅋㅋ

으.... 여전히 버리지를 못하네.ㅠ

사람은 (비자발적이지만) 버렸으면서...;;

 

그리고 다 컸다고는 하지만 애들을 두고 갈 생각을 하니 맘이 편치 않다. 

둘이 잘해 내리라 믿지만 자주 와서 챙길 일은 챙겨야겠지. 

 

이렇게 써놓기는 하지만, 또 앞날에 어떤 일이 닥칠지 어떻게 상황이 바뀔지 모르니 물살을 타듯 기다리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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