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부분에서 변화, 아니 '전환'이 필요한 시기인가 보다.

여전히 다들 관성처럼 살아가고 있기는 하지만, 땅속에서 싹이 올라오듯 전환의 싹은 보이지 않게 솟구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전환의 길에 한쪽 발이라도 걸치고 있으려나?

 

오래도록 유식한 이들이 비슷한 말을 해오긴 했지만, 참고가 될 만한 글이라 옮겨둔다.

교보교육재단 참사람 소식지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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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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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게 뭐라고》를 읽고 있다. 나랑 맞는 책 같다. 아니 장강명 작가가 나랑 성향이 맞다고 해야 할까? 내가 한참 바닥이겠지만.

 

어제는 <부잣집 딸과 결혼하겠다는  생각과 인간이  스스로를 가축화한 과정>이라는 대목을 읽었다. 

<동물농장>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기억이 없지만, 대충은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대목 뒷부분 문단이 오래 남아 있어 남겨둔다.

 

조지 우웰의 <동물농장>과 <1984>를 언급하며 하는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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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소설에서 오웰의 관심은 명백하게 '누가'보다 '어떻게'를 향한다. 저널리스트였던 이력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서구 지식인들이 진영 논리('누가'의 문제)에 빠져 소련의 실체를 보지 못하거나 보고도 눈 감았을 때 오웰은 그러지 않았다. '누가'를 따진 사람들은 공산주의를 파시즘과 자본주의에 맞서 싸운 체제라고 믿었다. '어떻게'를 살핀 오웰은 공산주의와 파시즘의 공통점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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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사회에 견주어 말해도 모자람이 없지 싶다. 모임이 조직이 공동체가 '누구'에 의해 움직여져야 하는지에 눈길을 돌릴 게 아니라, 모임지 조직이 공동체가 단체가 '어떻게' 굴러가야 하는지에 더더 더 눈길을 돌리고 길을 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아니면 안 돼!' '쟤들만큼은 안 돼!' 이런 지저분한 모습 좀 되풀이 안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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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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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가 자주 오르내린다. 능력이 있으면 대접해야지, 한 자리 차지해야지 하는 마음을 당연하게 여기는 듯하지만 의문을 던질 필요가 있지 싶다. 그 능력은 어디에서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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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자본주의+능력주의' 복합체를 뿌리부터 흔들기 위해

 

[장석준 칼럼] 친절함과 용기, 상상력과 감수성이 사라지는 능력주의 시대

 

지난 두 글에 이어 이번에는 최첨단 자본주의-능력주의 복합체가 낳는 한국 사회 불평등을 극복해갈 방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한데 그 전에 따져봐야 할 게 있다. 그것은 과연 능력주의가 이렇게 시끄럽게 다뤄야 할 사안이냐는 것이다. 21세기 불평등에 능력주의 이데올로기가 상당히 기여한다는 것은 알겠지만, 이는 현대 자본주의를 뒷받침하는 여러 부차적 요소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말하자면 불평등의 더 본질적인 측면을 해결해나가면 자연스레 누그러질 현상은 아닌가?

 

나올 만한 질문이다. 그러나 이 물음에 그저 '그럴지도 모른다'고 답하기에는 능력주의가 드리우는 그림자가 너무 불길하다. 가령 우리 시대에 평등을 실현하려는 대표적인 전망들을 보자. 그 가운데에는, 자본주의 발전은 결국 경제 활동 전반의 완전 자동화를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으며 이는 한편으로 다수 대중을 실업 상태로 내몰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시민기본소득과 노동시간의 보편적-획기적 단축이 동반되면 자유와 평등이 만개한 세상을 낳을 수도 있다는 주장이 있다.

 

나는 이런 비전에 크게 공감하지만, 만약 능력주의 문제를 계속 사각지대에 놔둔다면 이 구상이 실현될지라도 새로운 불평등이 사회를 덮칠 것이라 본다. 완전 자동화의 발단이 된 제3차 산업혁명(정보화)의 추세가 그러하다. 과학기술이 경제 활동에 보다 직접적으로 통합될수록 대중이 보유하던 기존 역량은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리고 지능에 바탕을 둔 단일한 위계제가 더욱 막강한 힘을 얻는다. 시장의 지배나 관료제를 축소시킬 수도 있는 기술이 오히려 지대 수익을 빨아먹는 거대 기업이나 더 고약한 관료기구의 기반이 돼버리며, 그럴수록 이 새 시스템에서 기회를 얻은 이들과 나머지 대다수 시민 사이의 골은 깊어만 간다.

 

이런 상태에 보편적 기본소득이 추가된다면, 적어도 기본소득 없는 경우보다는 더 나은 사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빈곤에 내몰릴 위험이 적어질 뿐, 불평등의 근본적인 측면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불평등의 가장 근본적인 층위는 소득의 불평등도, 심지어는 자산의 불평등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결정권의 불평등이다. 소득이나 자산의 불평등이 일정하게 교정되더라도 시민들 사이에서 결정권을 행사하거나 그러지 못하는 지위의 차이가 지속된다면, 이런 사회는 민주주의를 안정되게 유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소득이나 자산의 불평등이 언제든 재연, 확대될 수 있다.

 

한데 정보화는 디지털 기술과 결합된 자본-국가 관료체계의 중심에 얼마나 가깝게 배치되느냐에 따라 시민들의 지위가 달라지게 만들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는 시민들이 이런 근본적 불평등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저항하기는커녕 이를 경쟁의 결과로서 스스로 정당화하게 만든다. 능력주의가 존속하는 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추세인 정보화는 세상을 항상 해방의 유토피아가 아니라 그 정반대 방향으로 이끄는 강력한 힘이 되고 말 것이다.

 

능력주의 극복 없이는, 정보화 시대에 평등 사회는 불가능하다

 

그럼 능력주의를 극복할 방안은 무엇인가? 아니, 그 전에 능력주의의 지배가 더욱 확산하지 못하게 막을 힘을 과연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물론 이제껏 능력주의 비판가들이 제시한 여러 대안이 모두 일리가 있다. 마이클 영이 강조한 것처럼 능력주의의 직접적 기반이 되는 공교육 제도 안에서 이에 맞설 장치들을 마련해야 하고, 능력주의의 신자가 된 지식인-중간층에게 각성을 촉구하기도 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제안들에는 중대한, 어쩌면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요소가 빠져 있다. 지난 글("우리가 부르짖던 공정론의 민낯 ... 한국의 능력주의는 자본주의의 최첨단", <프레시안> 2021. 1. 21)에서 나는 지식인-중간층의 성장이 능력주의 확산의 강력한 추동력이 된 반면에 노동계급 문화의 존재는 이에 맞서는 균형추 역할을 했다고 지적했다. 노동계급 문화와 능력주의 이데올로기 사이에는 역의 상관관계가 있는데, 이는 능력주의의 성장에 꼭 필요한 능력의 일원론에 쉽게 동의하지 못하는 문화가 주로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형성됐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곧바로 결론을 이끌어낸다면, 노동계급 문화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답이 될 수 없다. 우선 역사상 실제로 존재한 노동계급 문화는 결코 바람직하기만 하지는 않았다. 서유럽 노동계급 문화는 당대의 다른 계급-계층과 마찬가지로 남성 중심주의에 중독돼 있었고, 사회주의 같은 요소와 결합하지 않을 경우에는 반지성주의로 쏠릴 위험(오늘날 이미 나타나고 있는 위험) 또한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노동계급 문화로 단순히 되돌아가자고 말할 수는 없다.

 

게다가 그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어느 자본주의 사회든 지구화-금융화-정보화를 거치며 노동계급 구성 자체가 심각하게 변화했다. 제1차 산업혁명 시기에 영국에 뿌리내린 전통이나 제2차 산업혁명 중에 독일에 등장한 문화가 참고가 될 수는 있겠지만, 지금 여기에 복제, 이식될 수는 없다. 심지어 지금의 영국과 독일에서조차 이는 불가능하다.

 

지금 해야 하고 또한 할 수 있는 일은 지난 시기에 노동계급이 능력주의 확산을 막는 세력이 되게 만든 요소들을 추출하는 것이다. 과거의 노동계급이 부활할 수는 없겠지만, 현재의 사뭇 다른 사회 주체들 사이에서 이들 요소가 새롭게 배양될 수 있을지 타진해봐야 하다. 그래서 한 세기 전의 산업 노동계급과는 다른 언어와 몸짓을 통해, 하지만 그들과 마찬가지로 능력주의와는 전혀 다른 평등 관념을 견지할 사회 세력을 형성해야 한다.

 

그럼 노동계급을 능력주의에 맞서는 역사적 대항 세력으로 만든 요소들은 무엇인가? 첫째는 '위치'다. 이는 너무나 당연하면서도 기본적인 요소다. 자본주의 역사상 상당 기간 동안 노동계급은 교육 제도에 통합돼 있지 못했고, 국민 교육 체계가 발전한 뒤에도 고등교육과는 거리가 멀었다. 또한 지금에 비하면 기계화 정도가 뒤떨어지는 만큼 노동 현장의 자율성도 컸다. 그렇기에 노동자들은 엘리트들의 세계와는 동떨어진 자신들만의 역량과 덕성을 주장할 이유가 충분했다.

 

둘째는 '이상'이다. 혹은 '세계관', '이념'이다. 사실 위와 같은 노동계급의 위치는 패배감이나 열등의식을 낳을 수도 있으며, 실제 많은 경우 그러했다. 그러나 노동계급의 위치에 이상이라는 또 다른 요소가 결합되는 경우에는 정반대 효과가 나타났고, 서유럽 노동계급의 많은 이들은 이 가능성을 결코 놓치지 않았다. 이들은 여러 좌파 이념을 통해 자신들을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주역이라 인식했다. 이럴 때에 그들의 일상은 패배자에게 남은 몫이 아니라, 엘리트들이 가진 것과는 종류가 다른 역량과 덕성의 보고가 되곤 했다.

 

셋째는 '조직'이다. 능력주의가 힘을 얻기는 너무도 쉽다. 능력주의와 친화적인 막강한 조직들, 즉 근대 국가와 이를 닮으려 하는 거대 기업들이 이미 있기 때문이다. 이들 조직을 통해 능력의 일원론이 막강한 물질적 실체가 된다. 이에 맞서려면 당연히 대항 세력에게도 조직이 있어야 한다. 노동계급은 그러한 조직들을 실제로 만들었다. 대표적인 것은 물론 노동조합이다. 노동조합은 기본적으로 노동자의 권익을 방어하는 조직이지만, 회사의 질서와는 별개로 노동자들만의 상호 인정이 작동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국가나 기업과는 상관없이 노동자 조직들을 통해서 인정받을 수 있는 역량과 덕성이 분명히 존재했던 것이다.

 

이러한 노동계급의 독특한 위치와 이상, 조직이 결합돼 어떤 힘의 자장이 구축됐다. 이 자장 안에서 노동자들은 엘리트들이 제시하는 기준들에 결코 '주눅 들지 않았다'. 이게 핵심이다. 이것이 노동계급이 민주주의 발전의 전위 역할을 하던 시기에 견지하던 찬란한 덕목이다. 그들은 '주눅 들지 않는' 주체였고, 그래서 시민이 시민 되게 하는 기둥과 같은 존재였다. 그들은 불평등을 자신들의 패배의 결과가 아니라, 저들의 실패의 결과라 이해했고, 그래서 자신들이 승리할 집단적 기회를 요구했다. 현재의 패배자가 아니라 미래의 진정한 승리자로서 말이다.

 

오늘날 우리가 자본주의-능력주의 복합체를 뿌리부터 흔들기 위해 구축해야 할 것은 바로 이러한 힘의 자장이다. 그러자면 이 시대에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해 거리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선 이들이 누구인지 식별해야 하고, 그들이 그 위치를 열등감이 아닌 항의의 기반으로 새롭게 이해하게 할 '이상'이 필요하며, 이 모두에 물질적 힘을 부여할 '조직'이 있어야만 한다. 이들 요소의 결합을 통해 '주눅 들지 않는' 주체들이 형성되지 않는 한, 능력주의는 단순히 지식인-중간층 내부의 각성과 전환만으로는 결코 위축되거나 해체되지 않을 것이다.

 

'주눅 들지 않는' 주체의 뒷심이 될 조직들이 있어야 한다

 

<능력주의>(유강은 옮김, 이매진, 2020)에서 저자 마이클 영은 가상의 미래 능력주의 사회에 맞서 궐기한 이들이 발표한 '첼시 선언'을 소개한다. 이는 <능력주의>에서 영이 능력주의 극복의 방향을 제시한, 몇 안 되는 대목 가운데 하나다. 일부를 옮겨본다.

 

"계급 없는 사회는 다양한 가치를 소유하는 동시에 그런 가치에 근거해서 행동하는 사회가 되리라. 우리가 사람들을 지능과 교육, 직업과 권력만이 아니라 친절함과 용기, 상상력과 감수성, 공감과 아량에 따라서도 평가한다면, 계급이 존재할 수 없으리라. 어느 누가 아버지로서 훌륭한 자질을 갖춘 경비원보다 과학자가 우월하며, 장미 재배하는 데 비상한 솜씨를 지닌 트럭 운전사보다 상 받는 일에 비상한 기술이 있는 공무원이 우월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 모든 인간은 ... 세상에서 출세할 기회가 아니라 풍요로운 삶을 이끌기 위해 자기만의 특별한 역량을 발전시킬 기회를 균등하게 누리게 되리라." (268쪽)

 

"지능과 교육, 직업과 권력"이 아니라 "친절함과 용기, 상상력과 감수성, 공감과 아량"에 따른 평가라? 너무 천진난만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이게 대안이라면, 능력주의 사회란 난공불락이 아닐까?

 

하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여기에 '조직'이라는 변수가 개입된다면, 어떻겠는가? 가령 누가 뭐래도 "지능과 교육, 직업과 권력"에 따라 평가할 조직들과 나란히 "친절함과 용기, 상상력과 감수성, 공감과 아량"에 따라 평가하려 하는 조직들이 버티고 있다면 말이다.

 

영이 열거한 너무나 감성적인 단어들을 곧바로 평가 기준으로 들이밀지 않는다 하더라도, 인간들 사이에는 소유인과 지능인으로 환원될 수 없는, 참으로 다양한 역량과 덕성이 있다. 당장 떠오르는 것만으로도 경작인이 있고, 공작인이 있으며, 예능인이 있고, 돌봄인과 봉사인이 있다. 바로 이런 각각의 능력을 중심으로 뭉친 대중의 조직들이 있다면? 모르긴 해도, 이 경우에는 누구도 '첼시 선언'의 문구들을 그저 웃어넘기기만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대안 사회는 결코 개인과 국가, 기업만으로 이뤄진 사회일 수 없다. 그게 아무리 헌법상의 권리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개인이나, 민주화된 국가, 사회화된 기업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반드시 이들 사이에는 대중의 자발적 결사체들이 있어야 한다. 인간의 다양한 능력과 덕성을 대표할 조직들이 있어야 한다.

다만, 현실과 목표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지금도 우리에게는 대중의 자발적 결사체라 할 수 있는 조직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거의 모든 현대 헌법이 특별한 존재로 다루는 노동조합이 있다. 그러나 현실의 노동조합과 이 글이 논하는 조직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 더구나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이 간극이 유례없이 크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조직이 필요하다. 만약 지금 있는 조직조차 바람직한 조직으로 전환시킬 수 없다면, 우리에게 그런 조직은 영영 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노동조합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마이클 영의 <능력주의>에 대한 독후감에서 시작된 잇단 논의의 마지막 순서가 될 다음 글에서는 바로 이 이야기를 하고 싶다.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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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가 자주 오르내린다. 능력이 있으면 대접해야지, 한 자리 차지해야지 하는 마음을 당연하게 여기는 듯하지만 의문을 던질 필요가 있지 싶다. 그 능력은 어디에서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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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리가 부르짖던 공정론의 민낯...한국의 능력주의는 자본주의의 최첨단

 

[장석준 칼럼] 자본주의와 능력주의의 결합으로 나아간 오랜 여정

 

지난번에 이 지면에서 마이클 영의 <능력주의>(유강은 옮김, 이매진, 2020)를 읽으며 떠오른 단상을 풀어보았다("60년 전에 지금의 "능력 독재"를 정확히 예언하다", <프레시안>, 2021. 1. 4). 영의 책에서 가장 주목한 것은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에 뚜렷한 지지 집단이 있음을 환기시킨다는 점이었는데, 이들은 "지식인-중간층"이라 불리는 게 가장 적당한 이들이다.

 

이번에는 이들 지식인-중간층이 자본주의 역사의 중심으로 부상하는 역사적 과정을 엉성하게나마 소묘해보고 싶다. 영이 "소설" <능력주의>에서 전개하는 가상 역사 말고 그것과 비슷하면서 또 다른 실제 역사 말이다. 칼럼 한 편에서 한 대목으로 다루기에는 벅찬 주제인데도 이에 도전하는 이유는 단지 한국 사회가 도달한 현재 모습과 비교하기 위해서다.

 

자본주의와 능력주의의 결합으로 나아간 오랜 여정

 

지난 글에서 능력주의가 자본주의와 친화적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자본주의의 부속물은 결코 아니며 처음부터 역사를 함께 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능력주의와 더 뿌리 깊이 얽힌 것은 국가다. 인류 역사에서 인간의 다양한 능력을 만인의 우열을 판가름하는 단일한 척도로 일원화하려는 열망을 처음 세상에 선보이고 이후 줄곧 이 열망의 대표자가 돼온 조직이 국가다. 이런 국가가 유럽에 비해 훨씬 일찍부터 정연하게 발전한 유라시아 대륙 반대쪽(동아시아)에서 근대적 능력주의의 조숙한 원형이 등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산업자본주의가 시작될 때만 해도 자본과 능력주의 사이에서 이 정도로 친근한 관계를 찾아볼 수는 없었다. 여기에서 친근성의 기준이란 단지 세습에 반대해 능력을 내세운다는 것 이상이다. 더 나아가, 능력을 측정 가능한 무엇으로 만들고 그래서 모든 인간을 그 측정 결과에 따라 배열할 수 있어야 한다. 제1차 산업혁명 이후 거의 한 세기 동안은 자본주의 현실이 아직 이를 강렬히 요구하지 않았고, 그럴 여력도 없었다.

 

근대 능력주의의 본격적인 역사는 제2차 산업혁명과 함께 열렸다. 새로운 산업혁명의 핵심은 전기를 주된 동력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이에 따라 기계를 보다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중화학공업 작업장이 당대 산업의 중심이 됐다. 생산 과정과 과학기술 지식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게 유기적으로 결합하자 당연히 이런 지식의 담당자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다.

 

그러나 이보다 더 커다란 변화를 낳은 것은 제2차 산업혁명과 함께 기업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산업 혁신을 선도한 두 나라, 미국과 독일에서 흔히 "독점기업"이라 불리는 거대 기업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엄청난 생산력을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으로까지 발전시켜 시장을 사실상 지배하는 만큼, 이런 지배의 대선배인 다른 조직을 닮아갔다. 다름 아닌 국가기구다. 국가기구를 모태 삼아 발전해온 관료제가 신흥 대기업들로 확산돼 기업 관료제가 대두했다. 그리고 이는 공학도에 대한 수요보다 훨씬 더 큰 규모로 기업 공무원의 수요를 늘렸다.

 

하지만 제2차 산업혁명이 시작된 19세기 말부터 곧바로 지식인-중간층이 자본주의의 미래를 결정할 핵심 변수로 등장한 것은 아니었고, 따라서 능력주의 역시 아직은 "주요" 이데올로기가 아니었다. 미국, 독일에서 시작된 새로운 산업 구조가 무르익고 널리 퍼지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려서이기도 했지만,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지식인-중간층을 대량 배출할 사회적 기반이 갖춰지지 못한 데 있었다. 그러려면 미국에서 발전한 대중적 고등교육 체계가 다른 중심부 국가들에도 뿌리내려야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야 결국 서유럽 여러 나라와 일본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하위 중산층과 노동계급 가족의 실질 소득이 상승하고 대학 등 고등교육기관의 수용 능력이 확대되면서 이들 계급-계층의 자녀 가운데 대졸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들 중 다수는 물론 대자본이 요구하는 기업 관료, 기술 관료로 진출했지만, 자본주의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한 이 집단(하위 중산층과 노동계급의 대졸 1세대)이 체제에 어떤 충격을 낳을지는 아직 불분명했다. 영의 <능력주의>가 나온 게 바로 이 무렵이었다.

 

처음에는 이 충격이 영의 예상과는 사뭇 다른 방향, 그러니까 자본주의에게는 가장 불길한 방향으로 전개되는 듯 보였다. 1960년대에 자본주의 중심부 곳곳에서 대학 분규와 학생운동, 신좌파운동이 폭발했던 것이다. 베트남 전쟁 당사자 가운데 단호히 민족해방전선 쪽에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각목이나 화염병을 들고 거리에 나선 이들의 이념이 지금도 모두 다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이들을 능력주의의 주역으로 보기는 힘들었고 오히려 "대학 해체" 등의 주장을 통해 그 정반대 편에 섰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들은 패배했다. 적어도 이때 이들이 대변하던 그 역사적 가능성은 철저히 패배했다. 1970년대에 자본주의가 발 빠르게 착수한 세 가지 자기혁신운동, 즉 지구화, 금융화, 정보화가 지식인-중간층의 대규모 등장을 1960년대 대학가에 잠재하던 가능성과는 전혀 다른 역사의 방향과 접합시켰다.

 

첫째, 지구화. 중심부 자본이 생산 설비를 해외로 옮기면서 생산직 일자리는 줄었다. 그러나 전 지구적 생산 사슬을 관리하는 초국적기업의 관료 체계가 확장되는 바람에 중심부 국가들의 전문직-관리직 일자리는 반대로 늘어났다. 20세기 후반부터 일상적으로 대량 배출된 지식인-중간층은 노동계급의 패배로 두텁던 중산층의 다른 부분이 와해되는 시대에도 이 사다리를 부여잡고 중산층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둘째, 금융화. 영의 <능력주의>에서 능력주의의 수혜자인 새로운 지배 계급은 지금 우리 현실에 견줘보면 차라리 청빈한 편이다. 그들은 그저 능력에 따른 급여 격차에 만족한다. 그들에게는 "재테크"의 세계가 없는 것이다. 주식 투자도, 부동산 투기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실현된 능력주의는 영이 상상한 능력주의보다 더 강력하고 반동적이다. 중심부 국가들에서 전문직-관리직 일자리를 획득한 지식인-중간층은 금융화에 가담해 거대한 불로소득자 집단을 형성했다. 더불어, 불로소득자의 세습주의("세습 중산층")와 기묘하게 결합된 우리 시대의 능력주의가 부상했다.

 

셋째, 정보화. 제3차 산업혁명은 인간의 모든 지식을 0과 1의 디지털 신호로 환원하고 융합하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이는 오늘날의 능력주의에까지 이르게 된, 고대 국가 이래의 유구한 열망에 전에 없던 날개를 달아줬다. 만인의 능력을 지능이라는 단일한 기준에 따라 판정하고 이에 따라 사회적 지위를 배열하려는 열망 말이다. 아직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노동이 맡던 역할을 완전히 자동화하려는 기획("제4차 산업혁명"이라 잘못 명명된)은 이런 열망을 완성하려는 시도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 기획이 자본주의 구조 아래에서 실현된다면 오직 지식인-중간층만이 "1% 지배자들"과 함께 "능동 시민"의 범주에 들리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이렇게 지구화, 금융화, 정보화가 자본주의와 능력주의의 역사적 결합에 기여한 것만큼이나 중요한 또 다른 요인이 있다. 그것은 노동계급의 패배다. 지식인-중간층이 성장하고 능력주의가 지배 이데올로기로 부상하던 바로 그 시기에 그간 대안 세력까지는 아니더라도 대항 세력으로는 상당한 역량을 과시했던 중심부 국가들의 노동계급이 돌이킬 수 없이 패퇴하고 해체됐다. 이는 단지 비극적인 대비만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둘 사이에 어쩌면 강력한 상관관계가 있을지 모른다는 점이다.

 

위에서도 얼핏 이야기했지만, 능력주의란 단순히 다른 가치에 비해 능력이 중시된다고 하여 대두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만인을 "단일한" 능력 관념과 기준에 따라 재단하려 할 때에 능력주의가 부상하고 힘을 얻는다. 반대로 말하면, 능력의 다원론이 무너지지 않은 사회에서는 능력주의가 지배할 수 없다. 능력주의의 필수 구성요소가 능력의 일원론이기 때문이다.

 

20세기 말까지 중심부 자본주의, 특히 서유럽에서는 노동계급이야말로 이러한 능력의 다원론을 지탱하는 주역이었다. 자본가, 관리자, 정치인, 대학 교수가 뭐라 떠들든 노동자는 늘 그들 나름대로 할 말이 있었고, 그들이 믿는 제대로 된 삶이 따로 있었다. 그들이 버티고 있을 때에 자본주의 사회는 능력의 일원론을 실현시킬 수 없었다.

 

반면에 지식인-중간층은 능력의 일원론의 신실한 신자가 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한때 노동계급에 뿌리를 둔 지식인-중간층의 대규모 등장은 "지식 프롤레타리아트"라는 이름으로 일부 좌파의 환영을 받은 바 있다. 이들의 부상이 자본주의에 맞서는 노동계급 헤게모니를 구축하는 데 새롭고 결정적인 자원이 되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의 결과는 정반대다. 지식인-중간층은 자본주의가 계급투쟁에 선수 치며 선택한 방향, 즉 지구화, 금융화, 정보화에 편승하고 여기에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라는 자원을 더해주면서, 오히려 위로부터의 진지전, 즉 수동혁명의 강력한 토대가 됐다. 이들을 통해 자본주의와 능력주의의 역사적 결합이 완성되려 하고 있다.

 

한국, 자본주의-능력주의 결합의 최첨단?

 

이런 자본주의 역사의 전반적 흐름과 비교해보면, 한국 사회가 처한 상황을 보다 분명히 파악할 수 있다. 우선 한국은 근대 능력주의의 조숙한 원형이 등장하고 오랫동안 지속된 동아시아의 두세 나라 가운데 하나다. 이 기억은 지금도 대학 입시나 대기업 입사 시험, 공무원 시험 등을 현대판 과거제도로 여기는 관성으로 뿌리 깊게 남아 있다. 양반신분제가 과거제도와 결합됐던 경험 역시 세습주의와 능력주의의 역설적인 결합이 재연될만한 예외적인 토양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이전에 이미 이렇게 오랜 능력주의의 역사가 있더라도 이것이 자본주의 현실과 맞아 떨어지지 않았다면, 아무 의미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1960년대 이후 남한은 처음부터 제2차 산업혁명이 도달한 결론을 학습하고 재연하는 방식으로 산업화를 추진했다. 국가가 주도해 포항제철을 만들고, 재벌 독점기업들을 키워 중화학공업에 진출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국가 관료기구와 기업 관료기구를 채울 인력이 대규모로 필요했다. 이는 먼저 산업화한 나라들과 달리 지식인-중간층과 노동계급이 동시에 성장하는 결과를 낳았다.

 

게다가 한국 사회는 이런 지식인-중간층 수요를 충족시킬 사회적 기반도 급하게 마련해놓은 상태였다. 대학이 빠르게 성장했고, 이를 통해 자격 증서를 획득하려는 젊은이들의 숫자도 충분했다. 농지 개혁의 혜택을 입은 농민층은 마치 전후 복지국가의 노동계급 가족처럼 적어도 집안에 한 명은 대학에 보낼 여력을 확보했다.

 

이렇게 하여 20세기 말에 한국에서는 어느 자본주의 국가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지식인-중간층 집단이 성장했고, 그만큼 능력주의가 지배 이데올로기가 될 만한 토대 역시 강력히 구축됐다. 영이 <능력주의>에서 제시한 IQ 테스트보다 훨씬 더 세련된 현대판 과거시험들을 통해 경제사회적 위치를 나누며 부와 권력을 배분하는 체계가 완성되어갔다. 그리고 한국의 지식인-중간층 역시 민주화 이후에 동시대 자본주의의 거대한 흐름, 즉 지구화, 금융화, 정보화에 올라타며 전 지구적인 지식인-중간층 대열에 합류했다.

 

이 과정을 살펴보며 우리가 시야에서 놓쳐서는 안 될 것은 서구와 마찬가지로 한국 사회에서도 이것과 노동계급 형성(혹은 탈-형성) 사이에 모종의 상관관계가 있다는 점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한국의 노동계급은 자본주의가 이미 고도화 단계에 접어들던 1980년대 말에야 사회 세력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몇 년간을 돌아보면, 한국 사회에서도 노동계급의 독자적인 문화가 발전할 가능성이 전혀 없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그 속도는 지식인-중간층 헤게모니가 확산되는 속도에 종내 미치지 못했다. 더구나 뒤늦게 타올랐던 노동운동조차 1997년 외환위기의 일격으로 기세가 꺾여 버렸다.

 

그렇다. 지식인-중간층 헤게모니가 유례없이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은 절반쯤은 노동계급 쪽의 도전이 실패한 탓이었다. 지구자본주의의 오래 된 중심부에서 세기 전환기에 벌어진 것과 비슷한 상호작용이다. 다만 커다란 차이가 하나 있다. 오래 된 중심부에서는 한때 성장했던 노동계급 문화가 해체됐지만, 이 나라에서는 그런 문화가 채 등장도 하지 못하고 압살됐다. 현재는 똑같이 그런 문화가 부재하지만, 적어도 한 쪽에는 기억 정도는 살아 있다.

 

이런 비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잠정 결론은 능력주의 문제에서 한국은 (아마도 중국과 함께) 지구자본주의의 최첨단에 서 있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유독 능력주의가 심각하다면, 이는 과거제도의 기억 같은 전자본주의 유산이 너무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니다. 물론 그런 기억은 강렬하다. 그러나 이는 다름 아니라 한국 자본주의가 밟은 독특한 궤적 때문에 살아남아 재활용되고 번성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다른 사회가 100여 년은 훨씬 넘는 여정 끝에 도달한 결론, 즉 자본주의와 능력주의의 결합을 불과 한, 두 세대만에 그것도 가장 순도 높은 형태로 달성했다.

 

영미 자본주의보다 더 앞서간, 자본주의적 능력주의의 이상형이 여기에 있다. 그렇기에 더 투명한 능력 검정을 요구하는 이른바 "공정"론이 세습-능력주의 결합체를 더욱 강화하는 자기 모순적 주장이 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시험제도나 고등교육 체계에 대한 개혁론이 그것만으로는 무력한 제안이 되고 마는 것이다. 진짜 과제는 우리도 모르는 새 도달하고 만 자본주의의 가장 첨단의 형태에 어떻게 도전할 것인가이다.

 

그러려면 답해야 할 근본적 물음이 여전히 많다. 노동계급 문화가 부재할 뿐만 아니라 과거에도 부재했던 사회에서 능력의 다원론은 어떻게 복구될 수 있는가? 지금이라도 우리는 21세기에 맞는 그런 대항 세력을 형성할 수 있는가? 나는 감히 능력주의 극복의 가능성이 온전히 이 물음들에 대한 답변에 달려 있다고 말하고 싶다. 다음 글에서는 부족하나마 이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싶다.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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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가 자주 오르내린다. 능력이 있으면 대접해야지, 한 자리 차지해야지 하는 마음을 당연하게 여기는 듯하지만 의문을 던질 필요가 있지 싶다. 그 능력은 어디에서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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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전에 지금의 '능력 독재'를 정확히 예언하다

 

요즘 한국 사회의 뜨거운 쟁점 가운데 하나는 '능력주의'다. 촛불항쟁 이후에 '공정성'에 대한 요구가 당혹스럽게도 비정규직 정규직화 반대 논의로 튀고, 조국 법무부장관 논란을 거치며 대학입시제도 중 수시에 대한 불만이 느닷없는 정시 예찬론으로 비화하면서, 능력주의가 현재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핵심 개념으로 떠올랐다. 주간지 특집으로 거듭 등장하는가 하면 믿을만한 저자들의 책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게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국내에서 능력주의를 진지하게 토론하기 시작하면서 새삼 확인된 바는 이것이 지구자본주의 전체의 문제라는 사실이다. 가령 최근에 번역돼 나온 대니얼 마코비츠의 <엘리트 세습>(서정아 옮김, 세종서적, 2020, 원제는 "능력주의 함정")은 미국 사회 역시 능력주의의 덫에 걸려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철학자 마이클 샌델의 최근작 <공정하다는 착각>(함규진 옮김, 와이즈베리, 2020, 원제는 "능력 독재")은 어느 한국 필자보다 더 격렬하게 능력주의를 비판한다.

 

하지만 능력주의를 둘러싼 독서 목록의 맨 위에 올라야 하는 책은 따로 있다. 마이클 영의 <능력주의>(유강은 옮김, 이매진, 2020)다. '능력주의(meritocracy)'라는 말 자체가 이 책에서 처음 등장했으니, 이 주제에 관해서는 고전 중의 고전이라 할만하다. 출간된 지 60년이 넘었는데, 최근 능력주의 논란 속에 우리말로 다시 번역돼 나왔다.

 

오래 전에 나온 저작이라 요즘 상황과는 잘 맞지 않겠지 생각하기 쉬운데,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최근에 나온 어떤 저작보다 더 명료하게 문제의 핵심을 꿰뚫는다. 나는 영의 <능력주의>를 읽으며 다른 글들에서는 미처 깨닫지 못한 이 문제의 중요한 측면들을 새롭게 보게 됐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하고 싶다.

 

60년 전에 지금의 '능력 독재'를 정확히 예언하다

 

한데 영의 책을 처음 손에 든 독자는 십중팔구 당황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이 '능력주의'란 말을 최초로 소개한 고전이라는 정보 정도를 알고 있다면, 당연히 20세기 중반에 쓰인 다른 사회과학 저작들, 가령 C. 라이트 밀즈의 <파워 엘리트>나 다니엘 벨의 <이데올로기의 종언>과 비슷한 책을 기대할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러나 아니다. 영의 <능력주의>는 '소설'이다!

 

<능력주의>는 영국에서 이 책보다 앞서 나온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나 조지 오웰의 <1984년> 같은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1957년에 나온 책인데, 내용은 능력주의 사회가 들어선 지 이미 오래 된 2034년에 마이클 영과 같은 이름을 한 가상의 사회과학자가 1950년대 이후에 능력주의가 발전한 과정을 회고하는 이야기다. 저자는 이 책이 좀 더 많은 독자에게 읽히길 바랐기에 이런 소설 형식을 취했다고 밝힌다. 저자의 이 전략이 통했는지, <능력주의>는 당시에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러나 실제의 2020년대를 살아가는 독자에게는 이게 도리어 장애물로 다가온다. 화자가 너무 천연덕스럽게 가공의 역사 서술과 사회 분석을 전개해, 도대체 이게 1950년대 말 이후 영국 사회에서 정말 일어난 일인지 아니면 허구인지 헛갈린다. 소설이라기에는 너무 건조하고, 사회과학 저서라기에는 지나치게 상상력이 풍부한 문장들도 낯설게 느껴진다. 그래서 이 책의 독서를 권하기가 망설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난점에도 불구하고, 결코 길지 않은 분량의 이 책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우리 시대에 쓰인 어떤 글보다 더 풍성한 교훈과 영감, 논점들을 캐낼 수 있다. 무엇보다, 반세기도 더 전에 어떻게 지금 우리 사회가 도달한 지점을 이토록 정확히 예언할 수 있었는지 놀랍기만 하다. 이 점에서 <1984년>이나 <멋진 신세계>보다 더 섬뜩한 느낌을 주기까지 한다.

 

가장 명백하게 들어맞은 예언은 요즘도 능력주의를 비판적으로 다루는 모든 저작의 핵심 메시지이기도 한, 능력주의와 세습주의 사이의 역설적인 관계다. 능력주의는 자산과 권력, 명예를 세습하는 구 귀족정을 비판하는 이데올로기로 등장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상당수 젊은이들이 능력주의에 공감하는 것도 마치 이것이 '금수저'들의 세습 질서를 깨고 '공정'을 실현하는 수단인 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점에서 능력주의는 그 신봉자들을 철저히 배신한다.

 

능력주의는 구 귀족정을 타파하는 데 효과적인 무기인 듯 보이지만, 능력주의가 만들어놓는 새 질서는 결국 신 귀족정이다. 왜냐하면 능력이란 항상 학교나 시험 같은 역사적 제도들을 통해 육성되고 검증되는데, 이런 제도들은 늘 기득권층에 의해 또 다른 세습의 통로로 쉽게 전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능력주의가 승리를 구가하는 초기에는 실제 노동계급이나 하위 중산층의 자제들 중에 계급-계층 사다리를 딛고 올라가는 이들이 (조금이라도) 늘기 때문에 이런 모습이 잘 드러나 보이지 않지만, 한 세대만 지나도 사정은 달라진다. 이미 사다리 위로 올라간 이들의 자녀가 다름 아닌 '능력'이라는 명분 아래 부모의 지위를 물려받게 된다. 능력주의는 어느덧 새로운 세대의 세습주의가 된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바이지만, 오늘날 능력주의에 바탕을 둔 '공정'론이 중산층 세습화 현상을 극복하는 데 무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니, 전자는 후자를 지탱해주는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능력주의>는 전후 영국 사회에서 아직 능력주의가 대세가 되기도 전에 이를 정확히 예견했다. 다만 <능력주의>가 잘못 짚은 게 있다면, 현실에 등장한 능력주의 사회보다는 훨씬 더 '인간적인' 사회를 예상했다는 점이다. <능력주의>가 그리는 21세기 사회는 모든 시민에게 '균등급'이라는 이름으로 수당을 지급하며, 일자리가 없는 시민에게는 공공이 나서서 가내 하인 일거리라도 만들어준다. 말하자면 기본소득제와 고용보장제가 실시된다. 게다가 능력주의를 통해 계급-계층 사다리의 맨 위로 올라간 이들이 자산 투기를 통해 자신들의 지위를 공고히 하지도 않는다.

 

<능력주의>가 그린 능력주의 디스토피아는 모종의 사회민주주의 사회인 셈이다. 아마도 영은 사회민주주의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진화한 사회조차 만약 능력주의와 결합된다면 얼마나 끔찍할 수 있는지 보여주려고 이렇게 설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능력주의와 최악의 자본주의가 결합된 사회를 '실제로'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영의 <능력주의>가 디스토피아 소설이 아니라 유토피아 소설로 보일 지경이다.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의 담지자, 지식인-중간층

 

여기까지는 실은 능력주의를 다룬 다른 책들도 흔히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능력주의>는 이 모든 저작들의 맨 앞에 서 있다는 점에서 탁월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굳이 21세기에 쓰인 저작들 말고 잘 읽히지도 않는 이 책을 찾아 읽을 이유가 되지 못할 수도 있다.

 

한데, 다른 미덕이 있다. 내가 <능력주의>를 읽으면서 가장 강한 인상을 받은 그 장점이란,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를 배양하고 확산시키며 그 승리를 관철하는 역할을 하는 이들이 누구인지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즉, 이 책은 어떤 사회 집단, 사회 세력이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의 담지자인지에 주목한다.

 

물론 능력주의는 자본주의에 친화적이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처음부터 능력주의를 동반하는 것도 아니고, 자본주의가 그 내적 필요 때문에 세상에 없던 능력주의를 불러내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시킨 것도 아니다. 능력주의는 자본주의와 역사적 계보를 달리 하며, 그래서 자본주의와 때로 충돌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결국 대의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관계가 그렇듯이 최상의 한 쌍을 이루고야 한다.

 

가령 미국에서는 능력주의가 자본주의와 처음부터 거의 동의어나 마찬가지였지만, 저 늙은 대륙 유럽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곳에서는 오랫동안 자본주의와 세습주의가 어울리지 않는 동맹을 이어갔고, 그래서 상당 기간 동안 '세습주의 대 능력주의'의 대립 구도가 진실의 힘을 발휘했다. 하지만 이런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능력주의는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지구자본주의 곳곳에서 대의민주주의와 함께 자본주의에 최적의 상부구조를 제공해왔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이데올로기에 뚜렷한 담지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풍자 문학의 맛을 잃지 않으려는 <능력주의>는 그 담지자로 페이비언 사회주의자들을 지목한다. 저자 마이클 영은 자신을 윌리엄 모리스, G. D. H. 콜, R. H. 토니의 사회주의 계보 위에 올려놓는 반면, 그 반대편에 페이비언 사회주의자들을 놓는다. 전자는 누구이고, 후자는 누구인가? 전자는 노동계급을 위할 뿐만 아니라 그 노동계급의 시각으로 새로운 세상을 그리려 한 이들이다.

 

그럼 후자는? 노동계급을 위한 것은 분명했지만, 노동계급의 시각으로 새 세상을 그리지는 않는 이들이다. 페이비언 사회주의자들은, 예컨대, 다음과 같이 말하는 사람들이었다.

 

"이 무계획적인 오합지졸 민주주의는 민주적 귀족주의로 대체돼야 한다. 곧 전체 프롤레타리아의 독재가 아니라 자기에게 주어진 과업을 이해하면서 그 신성한 목표를 향한 질주를 이끌 수 있는 5퍼센트 프롤레타리아의 독재가 되어야 한다." (<능력주의> 65쪽에서 재인용)

 

이것은 페이비언협회의 창립자 가운데 한 사람인 조지 버나드 쇼의 유명한 말이다. 이 발언에서 너무도 분명히 드러나듯이 쇼는 프롤레타리아 전체가 아니라 "5% 프롤레타리아트"의 시각에서 새로운 사회를 전망했다. 그 '5%'의 기준이란 무엇인가? 물론 능력주의다.

 

그리고 영은 이 능력주의를 하나의 간명한 공식으로 정리한다. 그것은 "능력주의 = 지능 + 노력"(<능력주의> 152쪽)이다. 여기에서 '노력'이란 다소 기만적인 항목이다. 진정한 기준은 '지능'이다. 이 점에서 영은 자신이 해부하려 한 이데올로기에 너무도 이데올로기적인 이름을 붙여주고 말았다. '능력주의(meritocracy)'란 '노력'이라는 허깨비 같은 항목을 통해 진실을 가리는 명칭이다. 진짜 이름은 '지능주의'다.

 

<능력주의>에서 '능력 있는 자'는 노골적으로 IQ 테스트를 통해 선발된다. 너무 조야한 체제로 생각될 수도 있지만, 따지고 보면 지금껏 존재한 모든 근대적 시험 제도는 이 IQ 테스트의 복잡한 변주일 뿐이다. IQ 테스트를 십수년의 공식 교육 과정에서 사용되는 언어로 더 세련되게 만들고, 마치 '노력'이라는 변수도 함께 검증되는 양 설계해 정당성을 높인 것일 따름이다. 결국은 '지능'이라는 기준을 통해 선별된 자들이 정한 그 '지능'이라는 기준으로 모든 인간을 분류, 배열하는 체계다.

 

역사상 이 기준을 상대적으로 쉽게 충족시킬 수 있었던 인간 군상을 우리는 '지식인-중간층'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지능'을 기준으로 유능함을 인정받아온 이들의 역사적 명칭이 그러하기에 '지식인'이며, 바로 그 능력을 통해 사회의 밑바닥에서 맨 위를 향해 상승 운동을 벌이곤 하기에 일단 '중간층'이다. 쇼가 "5% 프롤레타리아"라 하면서 염두에 둔 집단이 이들이며, 실은 쇼 자신이 이들의 일원이다.

 

영의 <능력주의>는 이들 지식인-중간층이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 확산시키며 그것이 관철된 사회에서 승자가 되는 사회적 주체라 지목한다. 물론 이렇게 분명한 명제로 제시하지는 않지만, 그가 등장시키는 이들, 가령 페이비언 사회주의자들, 하위 중산층과 노동계급의 야심찬 자녀들, 장학금 혜택을 받으며 대학 졸업장을 따낸 이들을 '일반화'하면, 지식인-중간층 정도로 부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들에게 가장 익숙한 평등주의가 곧 능력(지능)주의이며, 이들이 마이클 영이 그린 사회민주주의적 자본주의이든 아니면 우리가 실제 사는 우주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든 현존 체제의 중심에 성공적으로 진입할 때에 능력주의 사회가 열린다.

 

우리의 우주에서는 이들이 <능력주의> 속 가상의 '페이비언 사회주의자' 말고도 다른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그 중에는 토마 피케티가 만들어낸 '브라만 좌파'라는 명칭도 있고, "우리 모두 능력주의자가 되자"고 너무도 적나라하게 외쳐서 마이클 영에게 호통을 들은 토니 블레어 같은 '사회적 리버럴(social liberal)'들도 있다.

 

그럼 마이클 영의 대체 역사물 말고 현실 역사에서 지식인-중간층은 어떻게 새로운 불평등사회의 승자 동맹에 낄 수 있었는가? 한국 사회에서 이들에 해당하는 집단은 누구인가? 또한 능력주의의 담지 세력이 지식인-중간층이라는 사실은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를 극복하려는 이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이 지면에 올릴 다음 글에서는 이 물음들에 대해 내 나름의 답을 찾고자 한다.

 

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위원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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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세상>에서 가져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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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육식

[워커스 사전]

채효정(정치학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해고강사)

 

 

 

“채식주의자는 왜 좌파가 되는가?” 2000년대 초반 독일 대학에서 이런 시험 문제를 받은 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는 채식주의가 정치적 담론은 아니었고, 채식하는 사람들의 동기는 건강, 종교, 윤리적 이유가 대부분이었다. 환경운동이 동트기 시작할 때지만 좌파는 파묻히고 있을 때다. 그러니 저 질문은 그 당시로써는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지금은 개인적으로 채식을 시작한 사람들이 좌파가 될 수 있는 가능한 경로를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건강한 음식을 찾아 채식을 시작했다고 해도 정작 ‘건강한 음식’이 무엇인지 물어가다 보면 자본주의적 식품생산체제가 근본적으로 건강한 음식을 생산할 수 없게 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그 식품의 여정을 역으로 쫓아가다 보면 채식주의를 결심한 사람은 반자본주의자가 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대부분의 식품이 동물에 대한 착취, 토지에 대한 착취, 농민에 대한 착취, 노동자에 대한 착취의 끝에 장바구니에 담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채식주의 극우 정치인도 있었고, 채식주의 인종주의자도 있었기 때문이다. 히틀러는 채식을 지향했고, 나치당은 유기농을 장려하고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환경보호법을 만들었다. 종종 극우 정치는 녹색뿐만 아니라 페미니즘이나 성소수자와 결합하기도 한다. 페이스북의 CEO 셰릴 샌드버그는 페미니스트를 자처하지만, 여성 노동자를 해고할 때는 그 이념을 적용하지 않는다. 반동성애를 표방하는 독일 극우 정당인 아에프데(AfD)의 당수는 레즈비언이다. 세상은 참 복잡하다. 그러니 “채식주의자는 왜 좌파가 되는가?”라는 질문의 반대편에는 “채식주의자는 왜 우파가 되는가?”라는 물음도 성립할 수 있다. 동물착취와 노동착취의 산업체제와 연결하지 않고 채식 자체를 절대선으로 주장하는 채식주의자는 육식주의자를 상대로 문화적·인종적 우위에 자신을 위치시킨다. 이들에게 동물을 먹는 사람들은 모두 야만인이며, 열등하고, 사악한 인간으로 규정된다.

그러나 절대적 빈곤선에 있는 사람들과 영양결핍 상태에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에는 음식에 대한 기본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음식을 제대로 먹는 일에는 음식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시간이 필요하고, 공간이 필요하고, 관계가 필요하고, 돈이 필요하다. 제때 제대로 밥을 먹어본 적이 언제인지 모를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채식을 정언명령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위선적으로 보인다. 현대 사회 계급 구조에서 높은 계층의 사람들일수록 에너지 소비와 음식 낭비, 쓰레기 배출량도 더 많다. 비행기를 타고 휴가를 떠나고, SUV승용차를 몰고, 대형마트에서 풍족하게 장을 보는 사람들이 라면이나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는 사람들에게 채식을 권고하는 것. 이는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라고 했던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해 파리 민중이 가졌던 것과 같은 분노와 적개심을 불러올 만하다. 구의역 전철문에 끼여 숨진 김군, 태안 석탄 화력발전소에서 숨진 노동자 김용균의 가방에 들어있던 것이 ‘컵라면’이었다. 컵라면은 가난한 청년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상징이다. 아마 햄이 들어간 저렴한 김밥도 자주 먹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겐 ‘정치적 채식주의’가 필요하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미국에서 시위에 나온 한 실업자가 이런 피켓을 든 것을 봤다. “우리가 라면도 못 먹을 지경이 되면 그땐 부자를 먹을 것이다.” 육식을 넘어 ‘식인’을 말하는 이 ‘야만인’들을 어떻게 봐야 할까. 좌파의 채식주의는 빈자의 채식과 야만인의 채식을 가능하게 만드는 경로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채식 컵라면’ 같은 시장의 경로가 아니라, 보다 정치적인 경로여야 한다. 예를 들어 그것은 ‘동료 살해’를 금지하는 정치적 규칙을 확장하는 상상 같은 것이다. 고대 폴리스에서 시민의 첫 번째 규칙은 동료 시민을 살해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말로 다른 폴리스의 구성원은 살해해도 좋다는 뜻이다. 근대 국가의 법도 마찬가지다. 동료시민을 살해하면 엄벌에 처하지만 전쟁에서 살인자는 호국 영웅으로 대접한다. 평화운동과 인권운동은 이와 같은 ‘국가의 규칙’을 깨트려왔다. 내셔널리즘의 시대에 노동자들은 민족의 국경을 넘어 연대했다. 그런데 왜 비인간동물을 동료 시민으로 대할 수는 없을까. ‘인간-동물’로 취급되었던 노예가 시민이 된 역사가 있었다면, 동물해방의 역사도 가능할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가만이 아니라 노동자들도 다른 노동자들을 착취해서 살아가게 만들지만, 노동자들은 그런 착취적 관계를 거부하고, 다르게 관계 맺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안하고 발명해왔다. 만약 우리가 ‘탈육식’을 그와 같은 반자본주의적 실천으로 생각한다면, 인류의 다른 노동자와 연대하듯이 비인간동물-노동자와도 그런 관계를 맺을 수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현재의 동물착취는 노동착취의 수단이며 결과다. 동물해방은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농업노동자의 해방 및 시민권의 재구성과도 밀접히 관련된다.

기후위기 시대에 탈육식은 핵심 의제가 될 수밖에 없다. 축산업은 농업분야에서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한다. 브라질에는 사람보다 많은 소가 살고 있다. 인구는 2억700만인데, 소는 2억2000만 마리다. 이 소를 브라질 사람들이 다 먹는 것도 아니다. 매년 2000만 톤의 소고기가 수출된다. OECD 회원국의 육류소비를 3분의 1만 줄여도 독일만 한 경작지가 생겨나고 여기서 인간을 위한 식량을 생산할 수 있다. 고기는 숲과 경작지를 집어삼킨다. 지구상의 농지 가운데 4분의 3이 육류생산을 위해 쓰인다. 콩만 단작하는 남미의 대두벨트는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를 합친 면적보다 더 크다. 여기서 생산된 대두의 98%는 사람의 위가 아니라 동물의 사료통으로 들어간다. 유럽은 대두와 육류의 주요 수입국이다. ‘고기’의 대량생산체제를 만든 것은 거대 글로벌 식품기업과 유통업체들이다. JBS라는 세계에서 제일 큰 육류생산 기업이 전 세계에서 거래하는 소고기의 4분의 1을 공급한다. 유럽연합에서 소비하는 고기를 위해 대두를 심는 라틴아메리카 경작지는 영국 면적에 맞먹는다.(1) 생산과 유통을 장악한 기업은 날마다 엄청난 동물을 도살해서 햄버거 패티와 통조림, 프랜차이즈와 패스트푸드에 갈아 넣는 주범이다.

자본주의 가부장제 세계에서 매 맞고 죽임당하는 것은 동물, 여성, 아이들이다. 남성이 노동자나 약자로서 착취의 대상이 될 때 종종 여성, 동물, 아이로 치환된다. ‘두유나 먹는 계집애 같은 놈’이라는 뜻의 ‘소이 보이(soy boy)’란 속어는 육식과 성차별주의의 연관성을 잘 드러낸다. 그것은 반대로 동물-여성-아동의 동물정치적 연결과 연대의 고리이기도 하다. 2008년 광우병 사태 당시 시위의 주요 주체들이 바로 이들이었다. 여성, 청소년, 어린이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매 맞고 죽임당하는 자’의 공통감각이 그들을 광장으로 불러냈다. 당시 청소년들은 소에게 소를 먹이는 것은 학교가 자신들에게 하는 것과 똑같은 짓이라고 비난하고, 동물이 처한 지옥 같은 상황을 자신이 처한 입시지옥에 빗댔다. 우리도 머지않아 소처럼 미치게 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여성들은 송아지에게 소부산물로 만든 동물사료를 먹이는 것은 ‘자식에게 어미를 먹이는 짓’과 같다고 비판했다. 이런 목소리는 ‘과학적 논리’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촛불시위는 이런 중요한 쟁점들이 발아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탈육식 논의와 동물정치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이런 언어들을 ‘비언어’와 ‘비논리’라고 생각하는 과학자와 전문가들이 공론장을 모조리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광우병 사태는 ‘안전 담론’과 ‘진실 검증 문제’로 넘어갔다. 하지만 분명 그때 분노한 사람들의 요구는 단지 ‘안전한 고기’와 과학적 진실’만은 아니었다.

그때 더 나아가지 못했던 질문은 보다 급진적인 형태로 돌아온다. 얼마 전 제이슨 무어의 《생명의 그물 속 자본주의》란 책에서 “동물은 노동계급의 일원인가?”라는 질문을 만났다. 이 질문 역시 반대로도 성립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계급은 동물의 일원인가?” 우리는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무어는 노동을 ‘생명의 일/에너지’로 정의한다. 이러한 정의는 인간의 경제와 자연의 경제를 분리하지 않고 통합시킨다. 동물의 노동, 여성의 노동이 없이는 경제가 돌아가지 않지만 동물의 노동은 여성의 노동처럼 경제에 필수적이면서도 무상으로 전유된다. 그들은 쉼 없이 노동하지만 ‘노동자(Workers)’라고 불리지 않는 존재다. 자본이 전유를 위해 그들의 노동을 임노동체제 바깥에, 다시 말해 ‘자연의 영역’에 위치시키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그들을 같은 노동계급의 일원으로 대한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동료 노동자’를 학대하고, 착취하고, 거리낌 없이 ‘먹을 수’ 있을까.

모든 삶에는 죽음이 있고, 모든 생명은 다른 생명을 먹고서 살아간다. 이것은 자연의 이치다. 탈육식은 자연의 이치에 반하는 것일까? 정말로 자연의 이치에 반하는 것은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돼지를 도살하고, 죽음을 쓰레기로 만들면서, 하루에 수천수만 마리씩 대량 학살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이다. 우리가 어떤 존재를 먹는다는 것은 물질대사를 위해 영양소를 섭취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다른 생명과 생명을 나누며 공생하는 일이다. 그 생명의 삶을 자연의 이치에 거슬러 억압하고 착취하는 힘에 저항하는 것이야말로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저항은 개인적 차원의 ‘식품 선호’가 아니라 거대한 착취의 사슬을 끊기 위해 연대하여 싸우는 것이다. 그래서 동물해방 활동가들은 ‘채식 운동’이 아니라 ‘탈육식 운동’이라고 부른다. 채소를 먹자는 운동이 아니라 육식산업과 동물착취에 저항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식품기업이 제공하는 ‘채식 상품’도 경계해야 한다. 인도의 에코 페미니스트 반다나 시바는 콩고기 같은 ‘가짜 고기’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육식 대체재로 개발 중인 체세포 복제기술을 이용한 ‘클린 미트’나, 메탄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소의 트림을 줄이는 약을 먹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술주의적 해법에는 상품화에는 동반되는 반생태적 위험성이 항상 내재해있기 때문이다. 나이키 운동복이 여성해방을 가져오지 않듯이, 이케아 베지볼과 롯데리아 채식버거도 동물해방에 기여하지 않는다. 채식이 대량생산체제로 들어간다는 것은 저렴한 채식상품을 대량 공급하기 위해 또 다른 생명과 대지와 그들의 노동이 착취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탈육식을 위해선 채식상품의 선택보다 현재와 같은 식품대량생산 체제의 해체와 프랜차이즈 외식산업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 대량소비를 부추기는 유통업체와 홈쇼핑의 대량 판매 방식에 대한 제한, 낭비를 막기 위한 식량에 대한 계획경제, 광고나 먹방에서 끊임없이 송출하는 푸드 포르노에 대한 제재와 여기에 맞선 미학적, 윤리적, 계급적 투쟁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대규모 공장형 축산업이 나타나기 전에, 노동자 민중이 동물과 관계 맺는 방식은 분명 이와 달랐다. 귀족들은 소유하고 먹지만, 돌보고 죽이고 음식으로 만드는 일은 모두 민중의 몫이다. 존 버거의 소설집 《그들의 노동에1- 끈질긴 땅》에는 소와 돼지를 잡는 장면이 나온다. 일 년에 한 번 돼지 잡는 날, 농촌의 일과는 제의처럼 전개된다. 노인은 평생 해온 방식대로 테이블 위에 정해진 자리에 하나도 남김없이 뼈와 살과 내장을 정리한다. 죽은 돼지의 몸에서 버려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이 가족이 일 년 동안 먹을 양식을 마련해놓고, 노인은 숨을 거둔다.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이란 소설에서, 마을에서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은 평생 돼지를 잡아 온 아버지가 죽은 날이다. 이들의 마음에는 더 빨리 죽이고 더 많이 죽여서 더 많은 돈을 벌자는 욕심 같은 것이 들어설 수 없다. 백정이 죽음 앞의 짐승에 대해 지키는 도는 노비를 패 죽이는 양반들보다 더 윤리적이다. 이런 장면들을 지금의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할 수 없다면, 그만둬야 한다. 이해할 수 없다는 건 이해의 기반이 사라졌다는 뜻이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난장이네 식구들이 무너지는 담장 옆에서 마지막으로 먹던 것도 고기다. 문학 작품 속에서 닭고기, 돼지고기는, 서민들의 애환을 그리며 자주 등장하는 소재지만, 육식을 민중문화로 설명하고 미풍양속으로 그리는 것도 지금으로서는 현실의 참극을 노스탤지어로 대체할 위험이 있다. 자본주의적 현대 축산업은 존 버거의 작품에 나타나는 그런 인간과 돼지의 관계가 전혀 아니다. 지금은 우리가 어디서 어떻게 먹더라도, 그런 돼지나 그런 닭은 없다. 그러니 고통 속의 존재를 외면하기 위해 자신을 속이지는 않아야겠다. 노예해방, 여성해방, 장애인해방, 노동자해방 등 모든 해방운동의 시작은 지금 여기서 고통받는 존재의 비명이 아니었던가.


[각주]
(1) 카트린 하르트만 지음, 이미옥 옮김. 『위장환경주의 - ‘그린’으로 포장한 기업의 실체』. 에코리브르, 2020. 6장 고기와 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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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플라토닉하지는 않다.
둘 중 하나로 가르는 이분법 또한 이상적일 뿐이다.

곁에 누가 있어도 혼자인 듯하고
혼자 있을 때 자꾸 뭘 하려는 모습도
외로움일까?

세월을 먹었음에도 자꾸 흔들린다.
마음이 흔들리는 거겠지.
이미 입은 옷을 다 벗지 못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새 옷 또한 가끔 딱 맞지 않을 때가 있고
옷만으로 나를 데워주진 못한다.

자꾸 혼술 하면 안 되는데...;;
둘 이상 섞는 혼술이어야 할 텐데...;;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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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베리 통밀스콘

 

어라운드 그린- 김혜선 대표 | 대한민국

 

 

요리 경력을 포함해, 간단한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비건 카페 ‘어라운드 그린’을 운영하고 있는 김혜선입니다.

 

 

고기 대신 채식을 선호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어릴적 부터 동물을 매우 좋아했었기 때문에 고기를 먹을 때마다 동물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어요. 어느 날, 좋아하는 동물을 음식으로 먹는다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면서 고기 생산과정에서 동물들이 살아가는 환경, 비윤리적인 생산 과정, 그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문제를 알게 되었고 식단을 조금씩 채식으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오늘 소개해주실 음식에 대한 사연, 역사, 개발하게 된 계기 등을 알려주세요.

 

채식을 시작하기 전에는 유제품을 너무 좋아해서 우유, 버터, 생크림 등을 자주 먹었어요. 하지만 채식 시작하게 되면서 비건이 먹을 수 있는 디저트가 생각보다 많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다양한 레시피를 연구 해 보니 빵에 들어가는 유제품도 얼마든지 비건식으로 대체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래서 현재 스콘과 케이크 등 다양한 디저트 메뉴도 비건식으로 만들고 있어요.

 

블루베리 통밀스콘 (4~5개)

 

빵이나 과자 때문에 채식을 실천하는 것이 어려웠다면, 이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티타임에 빠질 수 없는 스콘은 버터가 많이 들어가는 대표적인 베이커리인데요, 식물성 재료인 코코넛 밀크와 코코넛 오일로 스콘 특유의 식감은 유지하고, 고소한 풍미를 끌어올린 이 레시피가 있으니까요. 생블루베리를 넣어 달콤상큼한 맛도 더했어요. 빵순이, 빵돌이 여러분들도 #채소한끼최소한끼 해요!

 

<재료 >

통밀 140g, 생블루베리 100g, 베이킹 파우더 4g, 소금 1g, 설탕 40g, 코코넛 밀크 80g (기호에 따라 추가), 코코넛 오일 15g

 

<만드는 방법>

1. 볼에 가루재료를 넣고 섞어 체에 한 번 내려준다.

 

 

2. 코코넛 밀크와 코코넛 오일을 넣고 가볍게 섞은 후, 생블루베리를 넣어 반죽을 하나로 뭉쳐준다. 반죽이 잘 뭉쳐지지 않을 경우 코코넛 밀크를 추가해도 좋다.

 

 

3. 스크래퍼를 사용해 반죽을 잘라 날가루가 없어질 때까지 위아래로 뭉쳐준다.

 

 

4. 반죽을 30분간 냉장고에서 휴지시킨다.

5. 휴지된 반죽을 원하는 모양으로 잘라 윗면에 코코넛 밀크와 기호에 따라 굵은 설탕(또는 일반 비정제 설탕)을 뿌린 뒤 180˚로 예열된 오븐에서 10~15분간 노릇하게 굽는다.

 

 

Tip 1: 냉동 블루베리는 물이 생겨 반죽이 질어질 수 있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생블루베리를 사용합니다.

Tip 2: 반죽을 너무 치대면 뻣뻣해지므로 살살 뭉쳐줍니다.

Tip 3: 더 바삭한 식감을 원한다면 통밀 100g, 박력분 40g 의 비율로 반죽을 만들어 보세요.

 

김혜선 대표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아래에서 팔로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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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 홈페이지: http://blog.naver.com/tomato447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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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버섯 스테이크와 참깨된장 드레싱

 

더 피커- 홍지선, 송경호 대표 | 대한민국

요리 경력을 포함해, 간단한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수확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은 제로 웨이스트 스토어(zero waste store) ‘더 피커(the picker)’를 운영하는 홍지선, 송경호 부부입니다. 일회용 비닐과 플라스틱이 범람하는 일상에 환경에 이로운 소비방식을 제안하고, 그로서리에서 판매되는 제품이 유통기한이나 재고폐기로 쓰레기로 남지 않도록 순환이라는 방식으로 레스토랑과 재료를 공유하여 채식을 제공하는 레스토랑이기도 합니다. 다양한 재료에 대한 관심과 쓰레기를 남기지 않는 음식, 그리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메뉴를 즐거운 마음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고기 대신 채식을 선호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희는 완전 채식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고기 없는 월요일 (Meat-Free Monday)’이라는 운동이 지구 환경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지 알게 되면서 채식 식단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채식 문화는 좀 더 건강한 지구를 지속적으로 누리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멋진 문화 중 하나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소수의, 특별한, 까다로운, 철저한, 유별난 사람들만의 영역이 아니라 하루에 한 끼만 실천하더라도, 일주일에 하루정도만 실천하더라도 충분히 채식인으로 불릴 수 있고 또 그 꾸준한 실천이 환경을 위해 커다란 약속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자유로운 채식 문화가 널리 퍼지기를 바라는 바람도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늘 소개해주실 음식에 대한 사연, 역사, 개발하게 된 계기 등을 알려주세요.

 

평소에 된장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향은 강하지만 생각보다 다양한 재료에 어우러지는 의외성이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면역력을 향상해주어 건강에도 좋은 한국인들이 즐겨 먹는 재료이기 때문에 메뉴에 된장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소개하고 싶었어요.

 

 

두부버섯 스테이크와 참깨된장 드레싱

 

누구나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담백한 두부 버섯 스테이크에 구수함과 상큼한 반전 매력이 있는 참깨 된장 드레싱이 어우러졌어요. 아이들의 간식이나 파티메뉴로도 손색이 없는 특별한 맛을 자랑합니다. 비건 레시피로 만들어진 빵 사이에 채소와 소스를 곁들이면 두부 버섯 버거가 된답니다.

 

<재료 >

두부 1모, 양파 ½개, 당근 ¼개, 양송이/표고버섯 4개, 올리브유 약간, 빵가루 ½컵, 감자전분 (혹은 밀가루) 2큰술, 소금 약간, 후추 약간

 

*참깨 된장 드레싱 재료

된장 1큰술, 레몬즙 1큰술, 올리브유 1큰술, 꿀(아가베 시럽) 1큰술, 연겨자 0.5티스푼, 다진 마늘 0.5티스푼, 참깨 약간

 

<만드는 방법>

1. 두부는 으깨 물기를 꼭 짠 뒤 소금, 후춧가루로 밑간을 해줍니다.

 

2. 달군 팬에 잘게 다진 양파와 당근, 버섯을 넣고 약간의 소금, 후추를 넣고 볶아주세요.

 

3. 볶은 채소와 수분을 뺀 두부를 볼에 넣고 빵가루와 전분을 더해 반죽을 잘 섞고 동글납작하게 모양을 내주세요.

 

4. 달군 팬에 올리브유를 두른 후 두부 스테이크를 올리고 중약불에서 앞뒤로 골고루 구워주세요.

 

5. 참깨 된장 드레싱을 적당히 얹어 현미밥과 샐러드를 곁들여 먹으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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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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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듬 버섯 강정

 

발우공양- 김지영 조리장 | 대한민국

요리 경력을 포함해, 간단한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발우공양 조리장 김지영입니다. 요리는 전통음식을 하시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20대 후반에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한식을 비롯한 다양한 음식을 접하고 배웠지만, 모두를 이롭게 하는 사찰음식이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고기 대신 채식을 선호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항상 음식을 대할 때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 많은 이들의 정성과 노고에 감사하며 대합니다. 고기를 전혀 먹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고기를 먹을 때도 어떻게 자라서 내 앞에 오게 되었나 윤리적인 소비인가에 대해 생각합니다.

 

오늘 소개해주실 음식에 대한 사연, 역사, 개발하게 된 계기 등을 알려주세요.

 

모듬 버섯강정은 제가 일하는 사찰음식점 발우공양의 시그니처 메뉴로 남녀노소 모두 좋아하는 속세와 가장 가까운 맛이라고 할 수 있지요. 사찰음식을 조금 더 친근하게 여기고 이해해 보실 수 있도록 소개해 드립니다.

 

 

모듬 버섯 강정

<재료 >

건표고버섯 6장, 새송이버섯 2개, 고추장 2T, 조청 2T, 물 1T, 식초 1T, 색파프리카 약간, 전분 ½ 컵, 튀김유, 호박씨, 통깨

 

<만드는 방법>

 

1. 건표고버섯은 불려 물기를 짜고, 새송이버섯은 얼려서 해동하거나 데친 다음 한입 크기로 썬다.

2. 파프리카는 씨를 제거하고 한입 크기로 썬다.

3. 버섯에 전분을 넣고 버무린다.

4. 160도 정도의 기름에 버섯을 두 번 튀겨낸다.

5. 팬에 물, 조청, 고추장을 넣고 잘 저은 후 파프리카를 넣어 볶다가 튀긴 버섯을 넣어 양념을 골고루 묻히고 호박씨와 통깨를 넣어 마무리한다.

Tip 1: 깔끔한 맛을 위해 시판되는 물엿 대신 조청이나 꿀을 사용합니다.

Tip 2: 새송이버섯은 사용 전에 얼려서 해동하거나, 데친 후 사용하면 식감이 훨씬 쫄깃하게 살아납니다.

Tip 3: 버섯에 전분을 넣어 버무릴 때는 박박 주무르듯이 해야 버섯 안쪽까지 골고루 튀김옷을 입힐 수 있습니다.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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