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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가 밥이다]놀이는 폭력 ‘방관자’였던 아이, ‘방어자’로 만드는 기반

ㆍ관계·공동체 요소 가져… 친구가 괴롭힘 당하면 고통 느껴, 적극적 대항

경기도의 한 중학교 2학년인 수경(이하 모두 가명)이는 ‘일진’이다. 수경이는 같은 반 슬기의 필기구나 노트를 숨겨놓고는 슬기가 당황해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친한 은수와 함께 깔깔댄다. 학교에서 학교폭력에 대한 경계심을 높여 요즘엔 괴롭힘의 형태가 바뀌었다. ‘단체 카톡방(온라인 모임)’에 슬기를 초대한 뒤 “돼지(슬기의 별명) 정말 못생기지 않았냐”며 욕을 한다. 은수도 맞장구를 친다. 두 사람은 슬기를 괴롭혔다는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카톡방에선 이름 대신 별명을 부른다. 

단체 카톡방 안에는 지원이와 현수, 은경이도 있지만 슬기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지원이는 직접 괴롭히진 않지만, 슬기가 놀림 당하는 걸 보며 함께 웃는다. 현수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 “찌질이(슬기)와 놀면 나도 찌질해진다”며 슬기를 피한다. 수경이의 눈밖에 나면, 다음 괴롭힘의 대상이 자신이 될 것 같아 두렵기도 하다. 은경이는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며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다.

괴롭힘을 당하는 슬기와 함께 노는 친구는 아무도 없다. 슬기는 엄마나 선생님께 말씀드릴까도 했지만, 더 큰 따돌림을 받을까봐 조용히 ‘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이 교실에서 폭력은 수경(가해자)이와 슬기(피해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경이와 동조한 은수, 괴롭힘을 방관한 지원·현수·은경이도 이 폭력에 가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현 마을공동체교육연구소장은 “가해자와 피해자만을 바라보는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학교폭력을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만약 방관자나 조력자 역할에 머물렀던 지원·현수·은경이가 목소리를 합쳐 “슬기 좀 그만 괴롭혀”라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 이들이 함께 수경이를 제재한다면, 수경이는 슬기를 괴롭히는 행동을 지속하기 힘들다. 반대로 은수·지원·현수·은경이가 수경이처럼 슬기를 함께 괴롭히게 되면, 슬기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문 소장은 “폭력을 방관하거나 소극적으로 도왔던 아이들을 ‘방어자 역할’이 되도록 만드느냐, 아니면 ‘가해자 역할’이 되도록 만드느냐가 관건”이라며 “방어자 역할을 하는 아이들이 늘어날수록 학교폭력은 사라진다”고 단언했다.

그는 “방관자에 머물렀던 아이들이 방어자로 바뀔 수 있도록 하는 기반이 놀이”라고 말했다. 평소 놀이를 통해 친밀감과 공감대를 쌓아둔 아이들은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의 고통을 함께 느끼게 되고, 이는 누군가의 괴롭힘을 막는 적극적인 행동으로 이어진다. 문 소장은 “학교폭력을 막기 위해 놀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의 놀이가 자연스럽게 학교폭력을 막는 마법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소장이 이끌고 있는 ‘평화샘 프로젝트’에 참여한 학교와 교실은 놀이로 올해 새학기를 시작했다. 개학 후 첫 일주일을 ‘아이들과 친해지는 시간’으로 정해 하루에 한두 시간씩 아이들의 자유놀이, 선생님이 참여하는 대동놀이 등을 진행한 것이다. 학기 초 놀이를 통해 친구들과 평등한 관계가 만들어지고, 이를 통해 안정감을 느낀 아이들은 이후 1년 동안 평화롭게 지낸다.

한국에서 ‘왕따’ 문화가 생겨난 것은 1990년대 중반이다. 이 시기는 아이들의 놀이문화가 급격하게 사라진 때이기도 하다. 문 소장은 “아이들의 놀이문화가 사라진 것은 사회구조적인 문제인 까닭에 부모나 아이의 변화만을 강조하는 개인적인 접근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 ‘한 사람이라도 놀이에 끼지 않으면 재미가 없다. 힘이 약한 아이는 깍두기나 왔다리갔다리 몫으로 끼어주면 된다’는 공동체적 놀이문화를 갖고 자란 30대 중반 이후 세대가 요즘 아이들의 놀이와 관계에 대해 이해 못하는 것 역시 사회의 공동체적 요소가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단지 아이들에게 놀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제공한다고 해서, 놀이문화가 생겨나고 학교폭력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기대한다고 단언할 수만은 없다. 요즘 아이들은 누군가와의 관계를 통한 놀이를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다. 유치원 때부터 ‘누가 더 센가’ ‘누가 힘이 약한가’ 등의 서열관계를 정하고, 힘이 센 아이에게는 친한 척을, 그렇지 않은 아이에게는 무시를 해 온 상황에 물들어 있다. 이 때문에 ‘따돌림 놀이’ ‘무시하기 놀이’ 등 놀이 속에서 힘이 약한 아이를 괴롭히는 형태도 나타나고 있다.

문 소장은 “요즘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장난감 놀이 등 무엇인가를 일방적으로 지배하는 놀이에 익숙하거나 사람과 상호작용을 한 경험이 없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라며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학교와 교실에서 ‘평화를 위한 규칙’을 세워두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문 소장이 정한 평화를 위한 규칙은 ‘우리는 친구들이 괴롭힘을 당할 때 도울 것이다’ ‘괴롭힘을 당하는 누군가가 홀로 있을 때 함께할 것이다’ ‘선생님은 평화의 본보기가 될 것이다’ 등이다.

문 소장은 “우리 사회가 아이들을 보살피지 못하고 경쟁으로 떠밀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이미 권력질서와 그로 인한 폭력에 물들어 있다”며 “단순히 ‘아이들끼리 놀아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와 학부모, 지역사회가 함께 평등하고 민주적인 관계를 만들어가야 학교폭력 해결은 물론 평화적인 사회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참교육학부모회·서울 노원·도봉구청 공동기획>

<곽희양 기자 hui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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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가 밥이다]놀이 없이 공부만 한 아이들, 아는 건 많지만 생활 부적응도 많아

ㆍ(5) 상담창구에 비친 놀이

# 초등학교 3학년인 희성(10·가명)이는 4세 때부터 영재교육을 받았다. 엄마는 희성이가 이미 중학교 수준의 지식 수준을 갖췄다고 자랑했다. 희성이는 또래 아이들이 읽지 못하는 영어책을 모두 읽어내고, 그 내용도 완벽하게 파악한다. 하지만 정작 “책 속에 있는 아이가 왜 슬펐을까? 왜 화가 났을까?”라는 질문에는 답을 하지 못한다. 희성이는 또래들이 즐겨하는 훌라후프도 잘 안다. 누가 처음 만들었고 그 재질이 뭔지, 어떤 원리로 회전하는지 알고 있다. 

희성이는 그러나 훌라후프를 돌리지 못한다. 체스게임도 마찬가지다. ‘퀸’이나 ‘룩’ 등의 장기말이 어떤 규칙으로 움직이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막상 체스판 앞에 앉은 희성이는 멀뚱히 바라만 볼 뿐, 체스를 두지 못한다. 희성이는 훌라후프나 체스를 통해 한번도 놀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희성이의 지능은 또래 아이와 비슷한 수준이다. 지능검사에서 언어성은 만점에 가깝지만, 동작성은 평균 이하로 나왔다. 책에서 본 내용을 자신의 행동으로 나타낼 수 없는 것이다. 


#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재석(8·가명)이는 자신을 “한자를 많이 아는 아이”라고 소개한다. 또래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는 스케치북에 재석이는 한자를 적는다. 또래들과 달리 변신로봇을 합체하거나 장난감 팽이를 조립하는 것을 재석이는 할 줄 모른다. 유치원을 함께 다녔던 아이들은 재석이가 한자를 잘 아는 것에 대해 관심이 없다. 다른 아이들에게 재석이는 변신로봇이나 팽이로 함께 놀 수 없는 아이일 뿐이다. 아이들과 벽이 생긴 재석이는 다른 아이의 스케치북을 찢는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나홀로 왕따’가 된 재석이가 아이들 사이에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택한 행동이었다.


▲ 충분히 놀지 못한 아이, 아는 것 행동에 못 옮기는
‘사이보그형’ 될 위험


▲ ‘놀이 학습’은 학습일 뿐 갈등 해결 능력 깨치는
관계성 지닌 ‘놀이’ 아냐


▲ 엄마들 슈퍼맘 되려 말고 쉬어야 아이와 놀 수 있어

또래들의 놀이와 격리되거나 친구들에게 공격적인 행동을 하다 상담창구를 두드리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놀이 시간을 공부로 채우고, 놀이도 머리로만 하다 ‘아파하는’ 아이들이다. 머리는 큰데 손과 발은 아주 조그마한, ‘ET’와 같은 모습이 돼가고 있는 것이다. 아이에게 책만 쥐여주려는 조기교육 열풍의 그림자일 수도 있다.

2002년부터 아동상담을 진행해온 선우현 명지대 아동심리치료학 교수는 “과거에는 발달장애 등 선천적인 원인으로 상담하러 온 아이들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정서·행동 장애로 찾아오는 아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지적인 수준은 높지만, 아는 것을 실행으로 옮길 수 없는 ‘사이보그형 아이’ ‘백과사전형 아이’가 정서·행동 장애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실제 놀이가 없는 아이들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세상을 배울 기회를 잃어가고 있다. 세탁기를 돌리거나 전화를 받는 소꿉놀이를 해보지 못한 아이는 ‘나도 어른처럼 세탁기를 돌리고, 전화를 받을 수 있어’라고 유능감을 익힐 기회를 갖지 못한다. 역할놀이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마트 판매원이나 물건을 사는 손님인 것처럼 놀면서 마트라는 작은 세상에서 이뤄지는 언어를 배우고 그에 따른 행동을 배운다. 의사놀이, 선생님놀이, 아빠놀이, 전쟁놀이 등도 마찬가지다. 

김명순 연세대 교수는 “아이에게 놀이를 뺏는 것은 세상을 배우는 기회를 앗아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초등학교 2학년 나정(9·가명)이는 늘 ‘착하고 올바른 사람’이 되라고 가르침을 받았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엄마는 나정이에게 “이런 행동은 옳지 않으니 그렇게 하면 안돼” “네가 잘못을 했을 때는 반드시 네가 사과를 해야 해”라고 가르쳤다. 그러다 최근 네 살배기 동생을 무섭게 훈계하는 나정이를 보고 엄마는 놀랐다. 나정이가 얼굴을 잔뜩 붉힌 채로 동생에게 “네가 잘못했으니까 네가 나에게 사과를 해야 해”라고 다그친 것이다. 딱딱하게 굳은 훈계조의 나정이 얼굴은 학교생활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나정이는 친구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시시비비만 따지며 ‘그 친구가 나쁜 행동을 하고도 사과를 하지 않았으니, 나쁜 아이야’라고 생각한다. 나정이는 동생과 친구가 어떤 상황에서 그런 행동을 하게 됐는지 이해하려 하거나 문제를 화해로 풀려는 생각이 없다. 그렇게 할 줄도 모른다. 나정이가 친구들과 멀어지고 단절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정이는 제대로 놀지 못하고 자란 또 다른 피해자다. 친구들과 함께 몸으로 놀아보지 못한 아이는 사회성을 키우지 못하거나 더디다. 놀이는 상상과 그에 따른 규칙 안에서 이뤄진다. 가령 전쟁놀이를 하는 아이들은, ‘탕탕탕’ 하는 목소리와 함께 실제 총알이 발사됐다고 상상하며 논다. 이 상상에 동의한 아이들끼리 함께 놀이가 이뤄진다. 그러다 놀이에 참여하는 아이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면, 자연스레 새로운 상상과 규칙이 생겨난다. 아이들은 이 과정에서 수많은 갈등 상황을 만난다. 이때 아이들은 상대방을 이해하고,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며, 타협하는 방법과 내성을 기른다.


사실 상담창구를 찾은 나정이 엄마도 유년 시절 행복하게 놀아본 경험이 없다. 그는 부유하고 엄격한 환경에서 많은 것을 누렸지만, 오빠나 친구들과 정신없이 놀아본 경험은 거의 없다고 했다. 나정이 엄마는 “요즘 나정이 모습을 보며 ‘나도 어렸을 때 사람들과 충분히 놀지 못했구나’라고 느끼게 된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아이들에게 놀이를 허락하지 않는 부모들은 대개 ‘슈퍼맘 콤플렉스’에 빠져 있거나 자신이 놀아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놀아본 경험이 없거나, 놀 때 느낀 행복에 대한 기억이 흐릿한 부모에게 놀이는 ‘쓸데없는 짓’ ‘왜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시간 낭비’로 보인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쓸데없는 짓을 그만두도록 유도하는 것을 의무라고 생각한다. 이향숙 한국아동청소년심리상담센터 원장은 “아이들에게 ‘언제 사랑받는다고 느끼느냐’고 물으면 ‘엄마가 나랑 놀아줄 때’라고 답한다”며 “부모들과 아이들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것이 놀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부모에게 원죄를 씌우는 것은 최악의 처방이다. 전문가들은 상담창구에 아이를 데려온 엄마에게는 ‘친정이 가까이 있느냐’는 질문을 제일 먼저 던진다고 한다. 최상철 디딤소아정신과클리닉 원장은 “모든 성인 부모가 ‘유아교육과를 나온 것이 아니다. 부모라고 완벽할 순 없다’고 생각하면 ‘엄친아의 엄마’라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아이들과 놀고 싶어도 놀 시간이 없다고 항변하는 부모들도 많다. 하지만 ‘놀이는 사소한 것’이라는 생각을 갖는다면, 달라질 수 있다. 김지훈 부산대 어린이병원 정신건강클리닉 교수는 “ ‘엄마가 퇴근 후에 하루 30분 동안 너와 꼭 놀 거야’라는 식으로 아이가 놀이 시간을 예측하도록 하고, 이 시간에는 완전히 집중해서 노는 것이 중요하다”며 “다만 부모는 아이보다 한발자국 뒤에서 따라간다는 느낌으로, 아이에게 놀이의 주도권을 주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한익 서울우리아이마음클리닉 원장도 “아이와 노는 것이 재미있어지려면 부모가 아이의 나이로 퇴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참교육학부모회·서울 노원·도봉구청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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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가 밥이다]돈으로 사는, 주어진 놀이에 익숙… 놀 줄 몰라 또 돈을 낸다

“불이 2층까지 번지고 있어요. 초기 진화 확실히 해주세요.”

지난달 18일 오후 서울 영등포에 있는 한 직업체험형 키즈카페에서는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어두운 실내엔 물냄새 섞인 매캐한 연기가 퍼졌다. 한쪽 벽엔 고층빌딩 외벽처럼 꾸며진 패널 뒤로 ‘가짜 불꽃’이 날름거렸다.

소방대원 옷을 입은 아이들은 저마다 멍하니 앞을 바라보며 위아래로만 움직이도록 고정된 물호스 손잡이를 잡았다. 여섯 살 난 한석이는 엄마를 불러보지만 사이렌 소리에 묻혔다. 손잡이를 양손으로 붙잡고 엄마 쪽으로 호스를 당겨봐도 물줄기는 아주 조금 방향이 틀어질 뿐이다. 이윽고 사이렌 소리와 물줄기가 멎으며 5분의 체험시간이 끝났다. “어린이 여러분, 축하합니다. 화재 진압에 성공하셨습니다!”

그날 오후 찾아간 서울 목동의 테마파크형 키즈카페. ‘심해(深海) 세계’를 모티브로 삼은 카페엔 10평 남짓한 모래놀이터가 보였다. 소독된 모래로 채워진 모래놀이터는 기명 예약제로 운영된다. 옷 위에 작은 몸뻬와 장화를 착용한 6명의 아이들이 모래 위에 옹기종기 앉아 놀았다. 혼자 온 연수(4)는 함께 놀 사람이 없는 듯했다. 연수는 “연수야, 맘마 먹자”라고 중얼거리며 조그만 장난감 삽으로 양동이에 연신 모래를 퍼담았다. 연수가 엄마가 되고 아가도 되는 ‘혼자 소꿉놀이’다. 연수의 양동이가 반쯤 차오를 때 유리창문 너머로 “디보 만화영화 시간이다~”라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아이들은 갖고 놀던 장난감을 버린 채 우르르 밖으로 뛰쳐나갔다. 혼자 남아 당황한 연수는 잠시 망설이듯 손에 든 장난감을 바라보다 언니들을 쫓아갔다.

어린이 1만5000원, 어른 5000원. 엄마와 아이가 ‘노는 값’이다. 이 돈을 내면 두 시간 동안 엄마는 편하게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아이는 카페의 놀이기구들을 맘껏 이용할 수 있다. 그사이 엄마가 마시는 커피나 식사 값, 아이들이 추가로 체험하는 프로그램 값은 별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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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는 값’ 내는 키즈카페선 친구 아닌 장난감과 놀아
실내 모래·학습체험 등 갖출 것은 다 갖췄지만
타인과의 ‘관계’는 없다


‘돈으로 사는’ 놀이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키즈카페의 시초 격인 실내놀이터가 선보인 뒤 2000년대에는 놀이뿐 아니라 직업·스포츠·학습을 체험하는 ‘복합 기능’의 키즈카페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2012년 말 한국생활안전연합이 조사한 결과 요식·놀이시설을 겸비한 키즈카페는 2000년대 초 한 자릿수였으나 2008년 47개, 2012년 208개로 급증했다. 2곳 중 1곳(49.5%)은 수도권에 둥지를 틀었다. 어린이 실내 놀이시설로 넓히면 전국에 1030개에 이른다.

늘어난 숫자만큼 종류도 다양해졌다. 서울 ㄱ키즈카페에선 ‘어린이 방방(트램펄린)’이 유명하다. 청소년 사이에서 인기인 ‘디스코 팡팡’을 모방한 트램펄린 위에서 5~10세 아이들이 최신 아이돌 유행가에 맞춰 ‘방방’ 뛰며 춤추고 논다. 어두운 실내에 디스코 나이트 못지않은 현란한 사이킥 조명이 비친다.

경기도 ㄴ키즈카페의 콘셉트는 ‘어린이 실내 테마파크’다. 500평이 넘는 넓은 실내 한쪽에 풀장도 있어 아이들은 1인용 유아보트를 타고 물 위를 떠다닌다. 엄마는 카페에서 폐쇄회로(CC)TV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놀이와 학습을 겸한 놀이교육 키즈카페도 엄마들이 많이 찾는다. 프랜차이즈 ㄷ키즈카페에서는 원어민이 영어 동화책을 읽어주거나 아이들과 체험활동을 하고 있다. ‘에듀테인먼트 공간’을 표방하는 ㄹ키즈카페는 미니큐브, 기하판, 창의수막대 등 활동놀이 수학교구들을 갖추고 있다. 1세부터 초등 저학년까지 체험놀이를 통해 수학의 기본개념을 배우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돈으로, 학습으로 하는 놀이엔 없는 게 있다. ‘관계’다. 올해 딸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박모씨(41)는 “키즈카페에서 노는 아이들은 대부분 친구가 아닌 신기한 기구, 장난감과 논다”며 “요새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수동적으로 ‘주어진 놀이’에 익숙해지다보니 놀이터에 가고 싶어도 놀 줄 몰라서 어쩔 수 없이 키즈카페로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열흘에 한번꼴로 8세, 11세 두 아이를 데리고 키즈카페를 찾는 성모씨(35)는 “날씨에 상관없이 아이들을 안전하게 맡겨놓을 곳이 키즈카페 정도라서 주말에 쉬고 싶을 때 자주 방문한다”고 말했다. 한번에 기본 비용만 4만~5만원, 체험 프로그램이 추가되면 6만~7만원까지 들어 부담은 되지만 부모도 한숨 돌리고 쉴 수 있어 찾게 된다고 했다.

놀이의 본성을 돈으로 살 수 있을까. 지난해 서울 동북지역 3개 초등학교에서 방과후 ‘와글와글 놀이터’를 운영해 본 놀이터 이모 김수현씨는 “그렇지 않다”며 ‘돈 딱지’ 놀이를 포기한 아이들 얘기를 시작했다. 아이들 사이에선 처음에 딱지 안에 500원짜리 동전을 넣어 하는 돈 딱지치기가 유행이었다. 500원이 없는 아이들은 참여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놀이터 이모가 돈을 넣지 않은 딱지치기 놀이를 제안하자 아이들은 바뀌었다. 자신이 접은 만큼 딱지를 가질 수 있게 되자 소외된 아이 없이 딱지치기에 열중하고, 승자와 패자는 갈려도 전처럼 얼굴을 붉히거나 다투는 일이 없었다. 아이들이 원하는 건 돈이나 값비싼 장난감이 아닌 친구들과의 어울림, 놀이였다.

2012년부터 주 1회씩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전래놀이마당을 열고 있는 서울 동작구 부모커뮤니티 ‘삼별아’의 오명화 대표는 “아이들이 주도권을 갖고 ‘맘껏’ 노는 것이 건강한 놀이의 핵심”이라며 “돈을 받으면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의무가 생긴다. 고로 놀이가 서비스가 되고 어른들의 개입이 커지면서 아이들의 자유는 축소된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참교육학부모회·서울 노원·도봉구청 공동기획>

<김지원 기자 deepdeep@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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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가 밥이다]기고 - 부모가 갑, 아이가 을인 놀이는 가짜 놀이

놀이란 말은 항시 ‘즐거운, 재미있는, 자발적인’이란 단어와 함께 붙어 다닌다. 즐겁고 재미있는 일들만 자발적으로 하며 지냈다면 매우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할 것이다. 놀이는 바로 이런 특성을 모두 지니고 있다. 많은 학자들은 아이들이 끊임없이 놀고 또 놀아도 왜 다시 놀 기운이 생기고 놀고 싶어 하는지, 그 무한한 내적 동기와 긍정 에너지, 몰입에 대해 관심을 가져 왔다.

어린아이들은 세상에 나온 후 자신의 다섯 가지 감각을 사용해 수많은 반복 경험을 한 후에야 내가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이 누구인지, 그 맛이 좋은지 아닌지 조금씩 알아 가게 된다. 아이들은 만 1년6개월이 지나면서 세상에서 본 70~100여개의 사물이나 행동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만 2세에서 3세로 올라가면서 이러한 사물과 어휘 습득은 곱절로 늘어나고 만 4~5세가 되면 기하급수적으로 개념·기술·태도에 대한 새로운 내용이 증가한다. 그러나 감당하기 어렵지만은 않다. 이를 쉽게 해결할 방법 역시 아이들 내부에 있기 때문이다.

피아제(Piaget)라는 심리학자는, 끊임없이 능력에 부치게 계속 입력된 개념들 중에서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개념일 경우 아이는 스스로 꺼내서 반복 사용해보고, 그것이 즐거워 다음번, 다음날에도 다시 꺼내보며 다시 확인해 가는 과정에 몰두하는데 이렇게 재미난 행위를 바로 놀이라고 했다.

이때 아이는 지루하게 그냥 반복하지 않는다. 본래의 두 사물이나 두 역할을 서로 바꾸어서 ‘마치 ~인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이것을 상상놀이, 가장놀이, 역할놀이라고 한다. 내가 아빠인 것처럼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는 척하기도 하고, 작은 목욕통에 앉아서 마치 핸들이 있는 것처럼 잡고 부릉부릉 운전하는 행동을 한다. 아이는 처음 알게 된 아빠의 행동이나 자동차, 핸들, 운전하기 등의 역할을 재밌게 숙달하고 있는 중이다. 아빠나 자동차 등의 개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스스로 꺼내서 다시 해보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동기와 진지함, 몰입이 값진 것이다.

이런 즐거움이 누적되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가 키우고 싶어 하는 문제해결력과 같은 고등사고 기능이 발달하게 되고, 개념과 기술을 독특하고 색다르게 사용하면서 창의적, 전략적 특성도 함께 늘게 된다. 사회성과 안정된 정서도 향상된다.

놀이의 힘은 연령이 어릴수록 바람직한 성장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놀이라는 명분 속에 새로운 공부와 개념을 넣어 주려고 할 때, 재미난 놀이 계획을 성인이 세운 후에 아이에게 따라오도록 할 때, 매력적인 ‘놀잇감’과 환경을 주며 성인이 생각하는 목표에 집중시키려 할 때, 이미 그 성인은 놀이에서 ‘갑’의 위치를 차지한다. 어른들은 ‘시간을 쪼개 아이와 놀아줬기 때문에 내 역할을 다했네’,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거리를 만들어줬네’라고 생각할 수 있다. 

진짜 놀이는 갑작스럽고 호들갑스럽게 아이의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다. 현재와 상상이 마구 오가기도 하고, 실패와 성공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 언제라도 현실세계로 돌아오고 조금 전에 했던 것에 대한 평가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 사건의 계획과 시작, 선택과 진행, 끝남과 재시작의 모든 과정에 대한 결정을 아이가 할 때 ‘진짜 놀이’라고 한다. 놀이에서 아이는 ‘갑’이어야 한다.

<김명순 |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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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가 밥이다]‘디지털 보모’ 밑에서 자라는 ‘디지털 키즈’

ㆍ부모들 ‘쉬는 시간’ 위해 컴퓨터 게임 접하게 놔둬
ㆍ친구들과 어울릴수록 인터넷 중독 염려 줄어

초등학교 2학년인 은석(9·가명)이는 여섯 살 때 컴퓨터 게임을 시작했다. 맞벌이인 부모는 은석이를 세심하게 신경 쓰진 못했지만, 방치하진 않았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은석이를 보며 ‘다른 아이들도 하는 게임이니까 큰 문제는 안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은석이가 게임에 몰입할 때는 엄마·아빠의 ‘쉬는 시간’이기도 했다. 집에 손님이 오거나 은석이가 떼를 쓸 때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켜주면 조용해졌다. ‘디지털 보모’ 밑에서 자라는 ‘디지털 키즈’가 된 것이다. 지금 은석이는 학교나 학원을 오가며 짬짬이 나는 시간이나 잠자기 전에 게임기를 찾는다. 그외의 놀이는 은석이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은석이는 게임 속 캐릭터처럼 행동하기도 했다. 친구들을 괴롭히는 공격적인 행동을 보인 것이다. 한 학년 더 올라가면서 친구들보다 체격이 작은 편인 은석이는 따돌림을 당하기 시작했다. 은석이는 게임 속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 외에 현실 세계에선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쉽게’ 접하는 컴퓨터·스마트폰·게임기 놀이에 아이들이 파묻히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2012년에 실시한 인터넷 중독 실태조사에는 아이들의 ‘디지털 편식’이 드러난다. 5~9세 아동의 인터넷 중독률은 7.3%로, 20~49세 성인(6.0%)보다 높았다. 취학 전 유아의 인터넷 중독률도 4.3%에 달한다. 청소년(10~19세)의 인터넷 중독률은 10.7%, 스마트폰 중독률은 18.4%로 더 높았다. 

컴퓨터나 스마트폰 게임이 아이들에게 재미를 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온전한 놀이로서는 한계나 결함이 많다. 우선 다른 사람과의 정서적인 교류가 없다. 술래잡기나 공기놀이에서 아이들은 친구나 가족과 의사소통을 하고 머리싸움을 한다. 사방치기, 윷놀이, 말뚝박기에선 타협하고 포기하고 참고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익힌다.

디지털 게임은 다르다. ‘레벨 업’을 하고 ‘아이템’을 얻는 성취감은 느낄 수 있겠지만, 내가 기분이 나빠지면 그저 ‘종료’ 버튼을 누르면 그만이다. 이영애 원광아동상담센터 원장은 “컴퓨터·스마트폰 게임을 통해서는 자신의 의사를 상대에게 표현하고, 상대와 교감하며, 갈등을 조절하는 능력을 키우는 일을 기대할 수 없다”면서 “ ‘나와 함께 노는 상대가 왜 기분이 나쁘지?’라고 생각할 기회조차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컴퓨터 게임 등에서는 논리력이나 끈기를 키우는 일 역시 기대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강한 자극에 노출된 아이들은 더욱 강한 자극만 요구하게 된다. 이형초 미디어중독연구소 소장은 “아주 단맛에 길들여진 아이가 다른 맛을 느끼지 못하듯이, 컴퓨터 게임 등 강한 자극을 통한 즐거움을 느낀 아이들은 상대방과 서서히 즐거움을 키워가는 놀이에는 흥미를 갖지 못하게 된다”며 “혼자 노는 것보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여가활동이 활발한 아이일수록 인터넷에 중독될 염려도 줄어든다”고 말했다.

<곽희양 기자 hui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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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가 밥이다]“아이들 놀지 못하면 사회비용 커진다”

ㆍ감정 발산 못하고 안에 쌓여 우울하거나 공격적으로 변해
ㆍ무기력감도 더 자주 표출

김미경씨(56·사진)는 학부모·교사·학생들에게 ‘비폭력 대화’와 ‘갈등 중재’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강사로 일하고 있다. 그 전에는 30년간 중·고교에서 국어교사를 했다.

김씨는 ‘놀이가 밥이다’라는 기획을 하고 있는 경향신문과 만나 “놀이를 빼앗긴 아이들로 인해 우리 사회가 큰 비용을 치를 수 있다”고 말했다. 교육현장에서도 놀지 못한 아이들이 감정적으로 우울하거나 공격적이고, 무기력감을 더 자주 표출하는 것을 봤다고 했다. 감정을 발산하는 놀이를 하지 못하고, 몸이나 말로 드러내야 할 감정이 안으로 쌓여온 흔적이 ‘사고’가 터졌을 때 곧잘 보였다는 것이다.

김씨가 서울의 중·고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것은 1980년부터 2009년까지다. 김씨는 아이들의 놀이가 급변한 분기점으로 1997년 외환위기를 지목했다. 놀이터에는 아이들의 함성이 뚝 끊겼고, 골목이나 어디서도 아이들의 노는 모습은 눈에 띄게 줄었다. 아이들은 집이나 학원에서 공부만 했고, 성적 경쟁은 치열해졌다. 자녀교육이 무한경쟁, 아동학대 수준으로 달리는데도 부모들은 ‘아이 장래를 위한다’며 고삐를 죄려고만 했다.

아이들의 공부 강박증이 선을 넘었다고 느낀 지 이미 오래된 2009년, 김씨가 학교를 그만두고 지금의 일을 택한 것도 한 아이와의 상담이 계기가 됐다.

“우리반 아이 하나가 미술시간에 조각도로 친구에게 위험한 행동을 해서 얘기를 나누게 됐어요.”

김씨는 “그 아이가 며칠 전 새벽에 엄마가 잠자고 있던 자기를 깨워 다른 아파트 쪽을 가리킨 적이 있다”며 “엄마가 ‘친구방에는 불이 켜져 있는데 너는 시험기간에 왜 자느냐’고 말했을 때 그날부터 엄마도, 친구도 죽이고 싶었다고 고백했다”고 전했다. 아이들이 이렇게 힘들어하는 걸 부모도 교사도 모르고 있다는 생각에 학교를 떠나 부모와 교사들에게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주는 효율적인 방법을 찾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그는 놀지 못하는 연령이 점점 내려와 아이들이 몸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잊어버린 듯하다고 했다. 한국에서의 교육이 갈수록 감각기관을 활성화할 수 있는 놀이 요소와 음악·미술·체육 과목을 줄이고 지식교육 위주로 흐르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김씨는 “부모들이 말로는 아이들의 창의력과 자존감, 책임감을 키우고 싶다고 하면서 실은 모든 것을 막고 있다”며 “원하는 것과 몸이 하는 것이 따로 가 헛수고가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부모들을 만나보면 아이에게 길러주고 싶어하는 가치의 출발점이 자율성인데, 아이들의 놀이친구 그룹까지 만들어주려 뛰어다니는 게 어른이었다. 아이들은 놀이에서마저 자율성을 빼앗긴 것이다.

김씨는 “놀이에서도 아이들의 주체성을 빼앗는 부모들의 태도 뒤엔 스스로의 불안과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며 “아이들은 부모가 불안해하는 것을 안다. 부모의 불안은 아이들에게로 쉽게 전염된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의 삶에 대해 불안해하지 말고 어렸을 때부터 몸으로 놀게 해 주고, 아이들을 제발 부모의 감시에서 놔주라고 말하고 싶다”며 “그것이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키우고 감정 변화와 어려움을 헤쳐가는 법도 스스로 체득하게 해준다”고 말했다.

<송현숙 기자 s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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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가 밥이다]‘오전엔 학교, 오후엔 학원’ 바쁜 9살에게 놀이터는 학원차 기다리며 30분 노는 곳

“놀이터에 가도 어차피 뛰놀지는 못해요. 같이 놀 애도 없고 혼자 시간 보내다 오는 거죠.”

올해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 지연이(9·서울 관악구)는 하루에 아파트 놀이터에서 딱 30분 논다. 학교수업이 끝나고 집에 왔다가 영어학원 가는 셔틀버스를 기다리며 놀이터에 들른다고 했다.

지난달 25일 놀이터에서 지연이와 함께 학원버스를 기다리던 김모씨(39)는 “아이가 학교에서 오면 가방을 던져놓고 바로 놀이터로 나간다”며 “내가 영어학원 가방을 챙겨 나가면 거기서 30분 정도 애 혼자서 그네나 기구를 타고 놀다 보면 2시10분쯤 놀이터 앞에 학원 셔틀버스가 도착한다”고 말했다.



지연이의 하루는 오전엔 학교수업, 오후엔 영어·태권도 학원으로 나뉜다. 영어학원에선 매일 두 시간 원어민교사의 영어수업을 듣는다. 이제 2학년에 올라가는 아이에겐 좀 버거울 수 있지만, 지연이는 딱히 부담을 느끼진 않는다고 했다. 5살 때부터 계속 그렇게 다녔기 때문이다. 김씨는 “어릴 때부터 다니다 보니 하루의 일상으로 굳어진 것 같다”며 “일반 초등학교에선 3학년 전에 별도로 영어수업을 하지 않아 사립초 아이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영어를 따로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사립초등학교 5학년에 올라가는 지연이 오빠(12)는 학교에서 1주일에 7~8시간씩 영어교육을 받고 있다. 

김씨는 “사립초에 다니는 큰아이 친구들은 학원을 왕복하는 시간조차 아까워 저학년 때부터 주요 과목 그룹과외를 받거나, 국제중 진학을 위한 역사체험학습·논술·와이즈만 과학학습 등을 추가로 했다고 한다”며 “좋은 대학을 가려고 경쟁 속으로 일찌감치 뛰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지연이는 학원 수나 공부시간이 또래들과 비슷하거나 적은 축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놀이시간은 거의 없는 셈이다.

한창 클 나이에 놀이가 부족할 법하다. 지연이도 더 놀았으면 했다. 김씨는 “날씨가 좋은 날엔 학원버스가 다가와도 좀 더 놀려고 떼를 쓰곤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연이의 투정은 오래가지 않는다. 체념을 먼저 배웠기 때문이다. 다른 아이들 사정도 비슷했다. 김씨는 “놀이터에 오는 애들은 다 시간제다. 지연이처럼 학원에 가기 전에 잠깐 놀러 오는 아이들이므로 셔틀버스가 오면 하나둘씩 엄마 손을 잡고 사라진다”며 “어쩌겠느냐. 더 놀고 싶어도 나나 친구나 똑같다는 걸 알기에 순순히 가방을 메고 셔틀버스에 오른다”고 말했다. 

지연이에겐 일주일에 세 번 가는 태권도학원의 레크리에이션이 친구들과 어울리는 ‘숨통 시간’이다. 김씨는 “레크리에이션 시간에 태권도 사범의 지도하에 피구나 발야구 등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연이는 “친구들을 공으로 맞히면서 노는 게 재밌다”면서도 이것도 올해면 끝난다고 했다. 3학년에 오르면 태권도를 끊고 수학학원을 다니기로 했기 때문이다. 친구들도 다 수학을 배우러 간다는 엄마의 말에 지연이도 아쉬움만 표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김지원 기자 deepdeep@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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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가 밥이다]학원 가다 잠깐, 혼자 그네타기… 큰 놀이터는 ‘오늘도 심심해’

ㆍ(4) 놀이 결핍

안녕. 나는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 있는 들국화 놀이공원이라고 해. 아이들이 맘껏 뛰놀며 들국화처럼 싱그럽게 자라나라고 붙인 이름이야. 길 건너면 초등학교가 있고, 옆엔 개천이 흘러 산책 나온 어른들이 잠깐씩 들르곤 해. 200평 정도 되니까 놀이터 치고는 크지. 한쪽엔 애들이 노는 모래, 또 한쪽엔 어른들이 찾는 벤치와 운동시설이 있고 중앙엔 우레탄 매트에 여러 놀이기구가 들어서 있어. 미세먼지도 없고 봄방학이라 놀기 좋았던 2014년 2월19일, 한나절의 일기를 보여줄게.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노원구 중계동 들국화놀이터에서 여자아이가 혼자 놀고 있다. 660여㎡(200평) 크기에 놀이기구는 많지만 아무도 오지 않는 놀이터에서 아이는 10분가량 앉아 있다가 떠났다. | 김정근 기자


▲ 200평 크기 ‘놀이터의 하루’ 다양한 기구·시설 갖췄지만
찾는 아이들 20여명뿐서 너명이 와도 따로 놀아
미세먼지 없던 봄방학… 놀이터는 놀이 없이 텅 비어


▶ 10:30(2~3명)

오늘은 아침부터 봄볕이 잘 드네. 따스하고 나른해서 잠에 빠져들다가 13살, 8살 남매가 노는 소리에 잠이 깼어. 쟤들이구나. 2~3일에 한번꼴로 오지만 여기선 자주 보는 아이들에 속하지. 남자애는 ‘매달리기’와 ‘나무 기어오르기’를 많이 해. 키보다 높은 손잡이를 잡고 앞으로 움직여가거나 나무기둥을 힘쓰며 오르는 단순한 놀이란다. 

세번이나 땅바닥으로 떨어지면서 곧장 쪼르르 달려가 기구에 매달리던 아이가 나무기둥으로 옮겼어. 거기서 한뼘 간격으로 나 있는 작은 홈을 손으로 잡고 밟으며 올랐다. 꼬맹이는 네댓번 꼭대기까지 올랐는데 그때마다 삐죽한 정상에 배를 대고 납작 엎드려서 “엄마! 구해줘! 난 내려갈 수가 없어!”라고 소리쳤지. 그 때마다 주변을 산책하던 엄마가 와서 손을 뻗어서 내려주더군.

11시10분쯤 이 꼬맹이와 유치원 동갑내기 친구가 놀이터에 와서 함께 모래장난을 시작했어. 한데 2~3분이나 됐을까. “흙장난 하지 말랬잖아!” 엄마의 목소리가 커지고 꼬맹이는 말 없이 겉옷 주머니 두개를 뒤집어 탈탈 털고 누나 손을 잡고 놀이터를 나갔지. 모래판에 혼자 남은 친구도 10분도 안돼 일어났고. 놀이터는 다시 공터다.

▶ 12:00(1~3명)

빨간 패딩 점퍼를 입은 7살 꼬마 남자애가 할아버지 손을 붙잡고 왔어. 꼬마는 넓은 놀이터를 혼자 누비며 그네를 타기도 하고 굵은 줄로 엮어놓은 흔들틀에서 발을 구르며 놀았어. 할아버지는 운동기구를 타거나 벤치에 앉아 아이가 노는 걸 지켜봤지.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 한분이 하얀 마르티즈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왔다. 개가 짖자 아이는 “저리 가” 하면서 흔들틀 위에서 안 내려오려 해 웃음이 나왔어. 이맘때쯤 놀이터엔 손주나 애완견을 데리고 오는 할아버지들이 있어.


▶ 13:30(8~10명)

방과후교실이 끝나고 초등학교 4학년 남자애 7명이 자전거를 타고 몰려왔어. 모처럼 놀이터가 시끌시끌해졌지. 그때까지 놀이터를 차지하고 놀던 꼬마아이는 슬그머니 물러나 목마를 타다가 혼자 구석에서 놀았고. 남자애들은 땅바닥을 15발만 디디고 이쪽 기구에서 저쪽 기구로 옮겨가는 ‘발놀이’를 시작했어. 한명이 넘어지자 애들은 놀이터가 떠나갈 정도로 소리를 지르며 웃었고, 넘어진 애는 무릎을 털고 곧장 일어나 애들을 잡으러 다니는 술래를 했어.

그 사이 어린이집이 끝나고 5살짜리 남자애도 엄마 손을 잡고 왔어. 등엔 토마스 기차가 그려진 노란색 모래장난도구 가방을 앙증맞게 메고 있었어. 아이는 형들이 놀고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구석에 앉아서 모래삽과 플라스틱통을 꺼내 혼자 놀았어. 엄마는 서서 아이의 겉옷을 든 채 아이가 노는 것을 바라보다가 벤치에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봤어.

▶ 14:30(3~4명)

잠시 시끄럽던 아이들이 떠나고 놀이터는 다시 조용해졌어. 아이 셋과 가방 든 엄마 셋이 개천쪽에서 걸어왔어. 초등학생 여자애 둘과 안경쓴 남자애 하나였는데 엄마들은 벤치에 앉아 수다를 떨었지. 셋은 같은 수학학원에 다니는 애들이야. 가끔 학원 셔틀버스를 기다리며 20~30분 놀다 가지.

아이들은 모래터에서 커다랗고 매끈한 돌멩이를 찾으며 놀았어. 한 여자애가 “찾았다!”고 소리치며 돌을 들어올리자 남자애가 그걸 뺏으려다가 돌에 손을 살짝 긁혔어. 손을 보다 조금 미안했는지 애들이 모래터를 나와 용모양 놀이기구를 타러 갔어. 애들은 “어어~”하며 기구 위에 납작 엎드렸는데 결국 여자애가 땅으로 떨어졌어. 셋 다 웃음이 터졌어. 3시10분이 됐나봐. 벤치에 앉아있던 엄마가 “시간 다됐어, 학원 가야지!”라며 아이 이름을 불렀고, 다시 놀이터는 조용해졌지.


▶ 15:20(1~2명)

노란 장갑을 낀 9살 여자아이가 엄마와 함께 놀이터에 왔어. 이 엄마도 “4시에 영어학원에 가야 하니까 그전까지만 놀다와!”라고 말했어. 아이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그럼 3시50분까지 놀지 뭐”라고 대답한 뒤 패딩 점퍼를 벗어 벤치 위에 걸쳐놓았어. 여자애는 혼자서 기구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암벽타기를 위에서 거꾸로 타고 내려오기도 했어. 3시45분쯤 엄마가 “시간 다 됐다”고 다가오자 아이는 “기구 한번만 더 돌고 갈게요”라고 똑부러지게 말하더라. 정말 자기 말대로 암벽타기부터 시작해서 거미줄, 흔들틀, 미끄럼틀까지 기구를 전부 한번씩 가지고 놀고는 패딩 점퍼를 다시 입고 엄마를 향해 달려갔어. 

▶ 17:00(0명)

해가 뉘엿뉘엿 지고 미끄럼틀의 그림자가 길게 떨어지자 다시 이곳도 고요해졌어. 저녁밥을 위해 장보러 나온 할머니 한분이 주위를 둘러보더니 장바구니를 옆에 두고 5분쯤 신나게 그네를 타고 돌아가셨지. 이 할머니가 아마도 오늘의 마지막 손님일 듯 해. 잠깐 세어볼까. 놀이터에 들른 아이들이 오늘도 20명쯤 될까. 그나마 학원 가다 들르거나 혼자 그네·미끄럼틀 타다 가기 일쑤지. 서너명이 와 있어도 얼굴 안 보고 따로 노니까, 이 큰 놀이터에 놀이도 없어. 온 종일 말소리도 들리지 않고….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참 무료하다.

<경향신문·참교육학부모회·서울 노원·도봉구청 공동기획>

<김지원 기자 deepdeep@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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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가 밥이다]매일 20분씩 놀았더니… “학교가 즐거워요” “친구와 친해졌어요”

ㆍ(3) 놀이는 힘이 세다

“꺄르륵~” “끼야악~” “야호~”.

오전 10시30분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교실에서 일제히 터졌다. 현관문을 나온 아이들은 부리나케 실내화를 운동화로 갈아신고 운동장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미끄럼틀과 구령대, 축구장과 화단에는 순식간에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1학년 남자아이가 화단을 뛰어다니다 넘어졌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무릎과 팔에 묻은 눈을 털어내고는 술래를 정하기 위해 친구들과 가위바위보를 했다. 주먹을 내밀어 이기자, 또다시 “잡아라. 잡아”라며 내달린다. 얼굴엔 웃음꽃이 활짝 폈다. 구령대 위에 선 아이들은 ‘공포탈출(눈 감고 하는 술래잡기)’을, 농구장의 아이들은 축구공으로 농구를 했다. 놀이기구를 뛰어다니며 콧물을 흘리는 아이에게 ‘춥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 아이도, 옆을 뛰어가는 아이도 “하나도 안 춥다”며 웃었다. 교실 안에는 공기놀이에 정신이 팔린 아이들이 보였다. 한쪽에서 여학생들은 인형스티커를 떼내면서 바로 공책에 뭔가를 열심히 적으며 놀았다.

1·2교시 연속 수업 후 20분간 ‘놀이시간’을 갖는 서울 수서초등학교에서 지난 12일 오전 10시30분 아이들이 운동장으로 뛰어나와 놀이를 하고 있다.


▲ 1·2교시 연달아 수업 후 쉬는 시간 20분 묶어 놀게 해

▲ 아이들 속상하거나 싸운 일 놀이시간 끝나면 기분 풀려
3교시 수업 집중도 높아져


▲ 아이들 긍정적 반응에 학교 문화 바뀌고 폭력 줄어 학부모도 호응 높아

봄방학을 앞둔 지난 12일 서울 수서초등학교 ‘놀이시간’은 운동장도, 교실도 시끌벅적했다. 1·2교시 수업을 연속으로 진행하고 쉬는 시간 20분을 묶어 놀이시간으로 짠 것이다. 20분의 힘과 활기는 대단했다. 학교를 찾아가며 ‘잠시 숨통을 트겠거니’ 상상했던 것, 그 이상이었다.

올해 9살인 2학년 1반 아이들에게 “놀이시간이 뭐가 좋으냐”고 물었다. 이서연양은 “예전에 속상한 일이 있었는데 놀이시간에 놀고 오니까 마음이 풀렸다”고 말했다. 김예은양은 “한 친구와 싸웠는데, 놀이시간에 다른 친구들과 놀고 들어온 뒤에 기분이 좋아져서 싸웠던 친구에게 사과했다”며 “놀이시간에 놀다보니까 전학온 친구와도 하루 만에 친해졌다”면서 웃었다. 박서현양은 “놀이시간이 끝나면 더 놀고 싶기는 하지만, 다시 교실 들어오면 공부에 집중이 잘된다”고 했고, 주혜온양은 “만약 놀이시간이 없어지면 공부만 계속하게 돼서 지칠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엄마한테 공부하라는 소리 듣지 않고, 학교에서 놀 수 있어서 좋다”고 입을 모았다.

김상순 담임교사는 “만약 ‘줄넘기 하고 놀자’고 하면 아이들 중에는 줄넘기를 싫어하는 아이들도 있어서 놀이시간이 아닌 체육시간이 되어 버린다”며 “홀로 노는 아이에 대한 개입을 제외하고는 최대한 아이들끼리 놀 수 있도록 배려한다”고 말했다.

서울 수서초등학교의 오전 ‘놀이시간’에 2학년 교실에 남은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고 인형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아이들에게 인기가 높은 놀이시간이지만, 1년 전 학교에서 놀이시간을 시작할 때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선 ‘놀다가 다치지 않을까’ 하는 안전에 대한 우려가 제일 컸다. 교사들과 스포츠강사, 학교보안관은 매일 아이들이 다치지 않는지 지켜본다. 대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학기 초에는 두통을 앓거나, 학기 말에는 뛰어놀다가 골절상을 입은 아이들이 있다. 하지만 지난해 다친 아이들은 우려할 정도는 아니었다. 강연실 수서초 교감은 “놀아본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크게 다치는 경우가 적다”고 말했다.

놀이시간에 땀을 흘린 뒤 이어지는 3교시 수업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교사가 놀이시간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홍순희 수서초 교사는 “ ‘놀고 왔으면 조용히 해야지’라고 훈계하기보다는 ‘무슨 놀이를 하면서 놀았니’라며 놀이에서 수업으로 아이들의 관심을 자연스럽게 돌리면, 오히려 수업에 집중을 더 잘한다”고 말했다.

학부모들도 놀이시간에 대해 긍정적이라고 했다. 아이가 학교 가기를 즐거워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오늘 놀이시간에 친구들과 딱지치기를 한다’며 등교 전부터 들떠 있는 것을 보면서 놀이시간의 팬이 되고 있다”는 식의 학부모 반응이 전해지고 있었다. 강연실 교감은 “통계치를 따로 내어보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레 점심시간에 남는 음식량이 줄어들었고, 학교폭력의 빈도도 감소했다”며 “전반적인 학교문화가 변하다보니 ‘왕따’ 등의 문제를 크게 걱정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글 곽희양 기자·사진 김창길·홍도은 기자 hui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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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가 밥이다]초등 2년생 23% “방과후 1시간도 못 놀아”

ㆍ부모 세대는 1.2%… 격차 커

현재 초등학교 2학년 학생 4명 중 1명(23.1%)은 학교가 끝나고 1시간 이상 노는 날이 하루도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매일 1시간 이상 논다는 아이는 20.6%에 불과했다. 학부모들은 자녀 시절에 68.6%가 매일 1시간 이상 놀고, 하루도 못 놀았다는 사람은 1.2%에 그쳤다. 30년의 시차를 두고 아이들의 놀이가 부모 세대의 20~30%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게 확인된 것이다.

경향신문이 지난 12~14일 서울시내 2개 초등학교의 2학년 4개 학급 학생 121명과 그 부모 86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아이들의 놀이시간이 이같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다.


학교가 끝난 후 방과후수업이나 학원을 3개 이상 다닌다는 학생이 42.1%로 가장 많았고, 2개도 29.8%나 됐다.

마음껏 놀지 못한다고 밝힌 아이들이 꼽은 이유는 ‘학원 가느라 시간이 없어서’(41.3%), ‘같이 놀 사람이 없어서’(20.6%), ‘부모님이 못 놀게 해서’(18.9%) 순으로 나왔다. 

초등학교 저학년인데도 아이들의 놀이시간이 급감한 가장 큰 이유가 학원과 숙제였던 것이다.

바깥에서 1시간 이상 논다는 대답도 부모 세대에선 80.2%였지만 자녀들은 34.7%에 불과했다. 친구들과 함께 몸으로 뛰어놀고 간단한 장난감을 갖고 주로 바깥에서 놀았던 부모 세대와 달리 아이들의 놀이 목록에는 휴대폰·컴퓨터 게임과 인터넷, TV 시청, 각종 장난감 등이 많이 올라왔다. 혼자 하거나 한두 명이 어울리는 실내 놀이가 급증한 셈이다. 놀이가 무엇이냐는 물음에도 부모들은 ‘즐거움’을, 아이들은 ‘자유’를 1위로 꼽아 세대 간 인식차가 컸다.

<송현숙 기자 s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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