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기획하는 데뿐만 아니라 글을 쓰는 데도 큰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

또 지금 동네서 아이들과 하는 디베이트에도 적용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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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질문 100가지를 할 수 있으면 책을 쓸 수 있다



강원국의 글쓰기에 대한 글쓰기
행복했던 순간 떠올려 보니
연애하며 상대에게 질문이 많았던 때
한국, 질문·반문하기 어려운 구조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
질문 잘하는 이 많아야 사회 행복해져


“저 친구 참 삐딱해.”

‘삐딱’의 의미는 무엇인가. 아귀가 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관계가 매끄럽지 않다는 것이다. 퍼즐 조각 맞출 때 아귀가 딱딱 맞아야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채워야 할 공간에 맞는 모양으로 주무르기 쉽게 물컹해야 한다. 고분고분해야 한다. 딱딱하게 모난 돌은 끼워 넣기 힘들다. 어디에 포섭되지 않는다. 묻어가지 않는다. 비탈에서 홀로 서 있다. 눈에 띈다. 아니, 튄다. 결국 정 맞는다. 관계 역시 그러하다. 모난 돌, 내 편이 아닌 돌, 내 말에 순응하지 않는 돌, 물 흐르듯 스며들지 않는 돌은 외톨이가 된다.

인간은 언제 행복한가. 궁금해서 못 견딜 때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을 꼽으라면 연애 기간이다. 연애 감정이란 실은 궁금증이다. 연애 시절을 떠올려 보라. 사귀는 상대가 나를 좋아할까, 좋아한다면 얼마나 좋아할까, 내가 청혼하면 받아줄까. 모든 것이 궁금하다. 데이트하고 헤어지면 조금 전까지 같이 있던 그 사람이 지금은 무얼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전화하고 문자 보내고, 그것도 모자라 다시 그 집 앞으로 달려가고, 그런 시간을 도저히 감당 못 해 결혼한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면 어떤가. 꼴도 보기 싫지 않던가. 눈앞에서 알짱알짱하지 않는 게 고맙지 않던가. 그때 궁금해지면 병이다. ‘출장 간다고 했는데 정말 갔는지.’ 의심하면 질환이다. 물론 내 얘기는 아니다. 나는 지금도 아내가 그립다. 여전히 궁금하다. 늘 이선희의 노래 ‘알고 싶어요’를 웅얼거린다. ‘내가 정말 그대의 마음에 드시나요. 나를 만나 행복했나요. 바쁠 때 전화해도 내 목소리 반갑나요. 그대 생각하다 보면 모든 게 궁금해요.’ 가장 궁금한 건 그녀가 지금 어디쯤 오고 있는지이다. 그녀가 오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술상도 치워야 하고 설거지도 해야 한다. 그녀가 지시한 일을 해놓아야 한다. 그래도 그 시간이 가슴 떨리게 무섭고 행복하다.

연애할 때 말고 행복한 시절은 또 있다. 바로 어린 시절이다. 왜 행복한가. 어린아이가 어른보다 모르는 게 많아서라고 생각한다. 어린아이는 모든 게 신기하다. 이것은 무엇인지, 왜 그런지, 오늘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싶다. 하루하루가 새롭다. 그래서 엄마에게 묻는다. 학교에 가선 선생님께 질문한다. 그것이 본성이다. 왜 알고 싶어 하나. 알아야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어디에 가야 먹을거리가 있는지, 어딜 가면 위험한지 알아야 살아남는다. 알았을 때 안전하다. 그래서 알고 싶고, 알았을 때 행복하다. 어쩌면 인간의 호기심은 그런 이유 때문에 만들어진 게 아닐까.

나는 질문 못 하는 사람이다. 최근 어쭙잖게 라디오 진행을 시작했지만,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진행자는 청취자 입장에서 궁금한 걸 물어야 한다. 방송국 프로듀서는 나의 연설비서관 경력을 높이 샀다. 대통령 글을 쓰려면 궁금한 걸 대통령께 물어야 하고, 국민이 궁금해하는 내용을 써야 하니 질문 하나는 잘할 것으로 믿고 있다. 착각이다. 나는 받아쓰는 사람이었다. 묻는 사람이 아니었다. 대통령 말귀를 알아듣고 대통령의 생각을 읽는 사람이었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기자들, 질문하는 것이 본업인 기자들도 묻지 않았다. 2010년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가 끝나고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개최국인 한국 기자들에게만 질문 기회를 줬지만, 끝내 질문하지 않았다. 한국말로 해도 된다고 했지만 끝까지 버텼다. 어디 기자뿐인가. 삼성전자, 현대차에 가도, 공무원 조직에 가도 질문하지 않는다.

질문하지 않는 것은 학습이 잘된 결과다. 우리 사회는 궁금해지면 위험하다. 어렸을 적 엄마에게 주야장천 묻는다. 그러다 혼난다. 특히 많은 사람이 보는 데서 엄마가 모르는 것을 물어보다 한 대 맞는다. “시끄러워. 사람들 많은 데서 그러는 것 아냐!” 학교에 들어가면 더욱 본격화된다. 모르는 것을 물으면 그것도 모르냐고, 무슨 그리 허접한 질문을 하느냐고 타박한다. 그래서 아는 사람만 묻는다. 선생님이 ‘질문 있나?’ 하면 모르는 아이들은 묻지 않는다. 공부 잘하는 아이가 묻는다. 학창시절 내내 그랬다. 학교에 왜 가는가. 알려고 가는 것 아닌가. 알려면 모르는 건 물어야 하지 않는가. 질문은 학교 가는 이유이고 학생의 권리 아닌가.

이스라엘에 간 적이 있다. 질문하지 않는 학생은 선생님이 상담한다고 한다. 왜 그러는지 물었더니, ‘그런 친구는 아예 모르거나 학습 의욕이 없기 때문인데, 학생에게 이보다 더 큰 문제가 무엇이냐’고 되묻는다. 0.2%도 안 되는 인구로 25% 가까운 노벨상을 휩쓰는 이유가 서로 질문하고 토론하는 ‘하브루타’ 학습과 당돌하고 뻔뻔하게 묻는 ‘후츠파’ 정신에 있다고 한다.

모르는 것을 들킬 때만 위험한 게 아니다. ‘그게 맞나?’ ‘저래도 되나?’ 의문이 들 때도 위험하다.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참고서를 소개했다. 우리 반 친구 중에 누군가 물었다. “선생님, 그 책 사라는 말씀이신가요?” “이리 나와. 누굴 책장사로 알아?” 그 친구 한 시간 내내 맞았다. 학교뿐 아니다. 직장에서도 고개를 갸우뚱하면 안 된다. 상사 생각에 의문을 품거나 의심하는 사람은 충성심이 부족한 사람이 된다. 대차게 끄덕여야 한다. 리액션이 좋아야 한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시기에 그렇게 고명한 생각을 하실 수 있느냐’고 감탄을 금치 못해야 한다. 당신의 말씀 단 한 자도 놓치지 않겠다는 불퇴전의 각오로 받아 적어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우아하게 차려입고 청와대 상춘재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대통령 옆에 포진해 있는 기자는 어찌 그리 리액션이 좋은지. 대통령은 착각했을 법도 하다. 기자들 반응으로 봐선 모든 게 완벽하게 해명됐다고. 이뿐인가.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종범실록’은 또 어떤가. 대법원장을 옥에 가두는 결정적 증거도 깨알같이 받아쓴 수첩이었다지 않은가.

받아 적는 게 장땡이다. 밑줄 쫙쫙 긋고 번호 매기고 별표치고 ‘야마’ 잘 잡고 상사 의중 잘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분위기와 흐름을 잘 읽어야 한다. 묻는 건 하수다. 행간을 읽고 빈칸을 채워줘야 중수는 되고, 시키지 않은 짓도 잘해야 고수다. 그래야 출세한다.

글쓰기를 힘들어하는 이유도 질문하기를 주저하고 두려워하는 우리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글쓰기는 스스로 묻고 답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게 언제였지?’ ‘누구였더라?’ ‘이것에 관한 내 생각은 뭐지?’ 물을 수 있으면 쓸 수 있다. 회사에서 쓰는 보고서는 내가 아는 것, 쓰고 싶은 것을 쓰는 게 아니다. 상사가 궁금해하는 것, 알고 싶어 하는 것에 답하는 것이다. 하물며 일기도 ‘오늘 내가 뭘 했지’라는 물음에서 시작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시 이명박 당선인이 정부 조직개편안을 발표하자, 쉰한 가지 질문으로만 연설문을 작성했다. 첫 문장을 질문으로 시작해보라. 마무리로 질문을 던지며 끝내보라. 질문 100가지를 할 수 있으면 책을 쓸 수 있다. 답을 몰라 못 쓰는 것이 아니다. 질문을 못 해 못 쓰는 것이다.

대답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도 잘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 받아 적는 사람이 아니라 의문을 품고 반문하는 사람,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아니라 문제의식을 갖고 이의 제기하는 사람, 문제를 풀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 내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 그랬을 때 우리 사회는 한 단계 더 도약하고 구성원 역시 행복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은 따로 있다고요? 당신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강원국(작가)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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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볼 만한 주제 같다.

무심고 종이 봉투가 훨 친황경적이고 진보적일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 글을 읽다 보면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되는 것 같다.

아이들과 토론해 볼 만한 주제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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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 봉투 대신 종이 봉투를 쓰는 것이 정말 환경에 도움이 될까요?

2016년 6월 24일  |  By:   |  과학  |  댓글이 없습니다

지난 몇 년 사이에 비닐 봉투를 사용하는 일은 마치 담배처럼 그저 꼴보기 싫은 일에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악한 행동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지난 달 뉴욕 시 의회는 모든 일회용 봉투에 5센트의 비용을 부과하는 법안을 통과 시켰습니다. 또한 지난 주 메사추세츠 상원은 소매점들이 비닐 봉투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였고 재생종이 봉투와 재활용 봉투에 10센트의 비용을 물리도록 만드는 조례를 통과시켰습니다. 메사추세츠 주의 범안이 올해 내에 실행될지는 의문이지만, 적어도 비닐 봉투 산업이 이 싸움에서 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입니다. 메사추세츠의 32개 도시 혹은 마을은 이미 비닐 봉투를 금지하거나 비용을 물리는 제도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LA 와 샌프란시스코를 포함한 캘리포니아의 88개 시군 역시 마찬가지이며 다른 여남은 개의 주에서도, 그리고 여남은 개의 나라에서도 같은 법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비닐 봉투의 해악은 확실합니다. 비닐 봉투는 하수구를 막고 나무 사이에 끼어 거리를 어지럽힙니다. 바다에서는 물고기와 바다새 그리고 다른 해양생물이 이를 먹고 목이 막혀 죽게 됩니다. 대표적인 비닐 봉투 반대 운동가인 이안 프레이지어는 최근 뉴요커에 실은 기사에서 “2014년, 식료품 비닐 봉투는 해양보전센터의 국제해안청소운동(Ocean Conservancy’s International Coastal Cleanup)이 발표한 바다에서 많이 발견된 쓰레기 중 담배와 빨대, 병뚜껑 다음인 7번째를 차지했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뉴욕 공중위생국은 매주 1,700톤의 일회용 봉투를 수거하며 이를 처리하기 위해 사용하는 비용은 연간 140억원에 이릅니다.


비닐 봉투 금지 법안은 이 문제들을 원천적으로 해결합니다. 캘리포니아 산호세에서 비닐 봉투를 금지하자, 도시의 하수구를 막는 비닐 봉투의 수는 89% 감소했습니다. 비용을 물리는 제도는 이보다는 작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큰 효과를 냅니다. 워싱턴 DC 정부는 5센트의 비용을 물리는 것 만으로 비록 수치에 논란은 있지만, 전체 비닐 봉투 사용이 60% 줄었다고 발표했습니다.


비닐이 정말 종이보다 나쁠까요?

그러나 이 법안을 지지하는 이들은, 무엇이 비닐 봉투를 대신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대안들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종종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쨌든 가게에서 산 물건들을 들고 가기위해서는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비닐 봉투를 대체할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대안은 종이 봉투입니다. 그러나 어떤 환경 문제를 따지느냐에 따라 종이는 비닐 보다 더 나쁠 수 있습니다.


봉투 금지 운동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메사추세츠의 법안은 모든 일회용 봉투를 막으려 하는 법안이지만 여전히 종이 봉투를 비닐 봉투보다 더 선호하게 만드는 법안입니다. 뉴욕시의 법안은 모든 일회용 봉투를 동일하게 대합니다. 물론, 이 경우에도 일회용 봉투가 재사용 가능한 가방보다 정말로 나쁜가라는 의문은 남습니다.


봉투가 만들어져 사용 후 처리되기 까지의 과정에서 환경이 받는 영향을 밝힌 연구들이 내놓는 결론은 매우 다양합니다. 비닐 산업 종사자들의 모임인 “미국진보봉투협회(American Progressive Bag Alliance)”(재미있는 이름이지 않나요?)의 지원을 받은 연구들이 있습니다. 순수한 의도로 이루어진 연구들 역시 몇몇 가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의 면 토트 백은 몇 개의 비닐 봉투를 대신하는 것일가요? 만약 어떤 이가 가게에서 가지고 온 비닐 봉투를 다시 화장실 쓰레기 봉지로 사용한다면 그 비닐 봉투는 다른 비닐 봉투를 대신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만약 당신의 가장 큰 걱정이 기후변화라면 문제는 더 복잡해집니다. 2007년 호주 정부에 의해 이루어진, 봉투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가장 종합적인 연구는 종이 봉투가 비닐 봉투보다 더 많은 온실 개스를 만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는 종이 봉투를 만드는 데 더 많은 에너지가 쓰이며 또한 이를 운반하기도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종이는 썩으니까 환경에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후변화의 관점에서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오레곤 주립대의 화학과 교수인 데이비드 타일러의 말입니다. 종이가 더 많은 온실 개스를 만드는 이유는 복잡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종이 봉투가 비닐 봉투보다 더 두껍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온실 개스는 그 대상의 질량에 비례합니다.” 예를 들어 종이 봉투는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기 때문에 이를 수송하는 데 더 많은 트럭이 필요합니다.


기후변화를 넘어

물론 많은 환경주의자들은 비닐이 종이보다 나쁘다고 말합니다. 즉 기후 변화는 우리가 걱정해야할 환경 오염 중 하나의 요소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종이가 생산에 드는 에너지 때문에 환경에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메사추세츠 시에라 클럽의 대표 에밀리 노튼의 말입니다. “그러나 종이와 비닐의 가장 큰 차이는 종이는 스스로 썩는다는 것입니다. 비닐은 환경에 오래도록 남아 악영향을 일으킵니다. 수중 생물들이 이를 먹음으로써 결국 우리의 뱃속에도 비닐이 들어오게 됩니다.”


도시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정의 활동가들 또한 비닐 봉투가 특별한 문제를 일으킨다고 말합니다. “쓰레기들은 도시의 빈민가로 모이게 됩니다.” 브루클린의 사회정의 및 환경 단체인 UPROSE 의 대표 엘리자베스 얌피에르의 말입니다. “비닐 봉투는 도시 시설을 파괴할 뿐 아니라” 그녀는 하수구 등을 언급했습니다, “온실 개스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녀는 또한 저소득층이 수산물을 섭취하기 때문에 비닐에 의한 바다 오염 역시 문제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 때문에 이들은 뉴욕 시의 법안이 비록 저소득층에게 부담이 되는 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지하고 있습니다. 싱글 맘이나 투잡을 뛰는 이들은 토트 백을 준비할 겨를 없이 퇴근 시간에 급히 장을 보아야 할 일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UPROSE 는 비닐 봉투가 지역 사회를 오염시키는 일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 때문에 환경주의자들은 모든 일회용 봉투에 비용을 물리며, 또한 종이 봉투는 재활용 종이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법안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지금 메사추세츠 주에 계류중인 조례 중에는 일회용 종이 봉투는 적어도 40%의 재활용 성분을 가져야 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는 메사추세츠 시에라 클럽이 지지하는 법안입니다.


복잡한 문제

그러나 재사용 가능한 가방 조차도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앞서 이야기한 호주의 연구는 면으로 된 가방이 매우 큰 환경 문제를 가지고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전 세계 농경지 중 면을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비율은 2.4% 에 불과하지만, 이들이 사용하는 병충해 약은 24%, 살균제는 11%에 달한다고 세계야생기금(World Wildlife Fund)는 밝혔습니다. 1파운드의 면을 만들기 위해서는 5,000 갤런의 물이 필요하며, 이는 어떤 야채보다도 많고 대부분의 고기보다도 많은 양입니다. 면은 또한 종이와 달리 대부분의 경우 재활용가능하지 않습니다.


앞서 호주의 연구에서 내린 최선의 방법은 재사용 가능한 가방을 사용하되 면을 사용한 토트백이 아닌 재활용 비닐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보다 튼튼한 가방을 사용하는 것이 온실 개스를 조금이라도 덜 만들며, 에너지와 물의 사용을 줄이는 방법이며 자원의 낭비를 막고 쓰레기를 줄이는 길입니다.” 연구의 결론입니다. “다른 종류의 일회용 백으로 옮겨가는 것은 다른 종류의 환경 문제로 옮겨가는 일일 뿐입니다.”


그러나 호주나 유럽에서 진행된 연구를 그대로 미국의 환경에 적용해서는 안됩니다. 특히 가장 중요한 문제가 기후변화일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는 나라마다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실 미국의 경우 주마다 에너지원은 다릅니다.


“문제는 간단하지 않습니다.” 뉴욕시의 법안을 지지하는 천연자원관리국 뉴욕시 부장인 에릭 골드스타인의 말입니다. “너무 많은 변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종이 봉투를 만드는 종이가 스테튼 아일랜드의 재활용 제지소에서 만든 종이냐 아니면 캐나다 북부의 숲에서 만들어진 종이냐라는 문제를 생각해 봅시다. 내가 아는 한, 누구도 이런 수많은 요소들을 고려한 연구를 진행한 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마치 ‘주차 딱지를 받을래, 세무 조사를 받을래’ 처럼 상황에 따라 답이 달라지는 질문입니다. 물론 두 경우를 모두 피할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요.” 골드스타인은 면으로 된 토트 백이라 하더라도, 꾸준히만 사용한다면 일회용 봉투보다 나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정책은 뉴욕시처럼 일회용 봉투에 비용을 부과하면서, 동시에 재사용 가능한 재활용 비닐 가방을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특히 저소득층에게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부유한 이들은 PBS 나 홀푸즈에서 받은 토트백이 집에 넘칠 겁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어떤 봉투도 기후변화, 해양 오염, 물 부족, 병충해 약 사용 등의 환경 문제에 대해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는 일입니다. 만성적인 과소비를 줄이고자 자신이 좋아하는 재활용 봉투를 사용하는 마음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봉투가 어떤 재질인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일주일에 고기를 한 번만 덜 먹는다면, 당신은 환경에 진정한 공헌을 하는 것입니다.” 타일러의 말입니다. “봉투안에 어떤 걸 담아오는가가 진짜 중요한 문제라는 뜻입니다.”

(G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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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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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식 대화법을 활용한 토론이 디베이트를 하는 데 어떤 의미가 있을지 생각해 보게 하는 것 같다.

토론, 독서는 앞으로 나의 삶에서 여러 화두 가운데 주요 화두가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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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쉽게 틀리는 오답이 무엇인지 선생님이 알아야 하는 까닭

2016년 4월 18일  |  By:   |  과학  |  댓글이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에 대해 잠깐 생각해봅시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궤도를 그려보면 그 궤도가 완전한 원이 아니라 타원이라는 사실은 아실 겁니다. 그 말인즉슨 일 년 중 지구와 태양의 거리는 일정하지 않고, 어떤 때는 지구가 태양보다 상대적으로 더 가까이 있다는 뜻이죠.

그렇다면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즉 계절이 있는 이유가 바로 이 지구의 타원 궤도 때문일까요? 많은 사람이 그렇다고 생각할 겁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답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버드대학교 과학교육과의 학과장이자 천문학자인 필립 새들러(Philip Sadler) 교수는 위에서 예로 든 것과 같은 “많은 사람이 틀리는 오답”에 관심이 많습니다.

“학생들의 머릿속을 백지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미 학생들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에 대해 나름대로 지식과 논리를 갖고 설명하려 들죠.”

이 세계를 이해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또 애쓰는 것이 어쩌면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우리가 세상을 이해할 때 현대의 과학적 기법보다는 그리스 시대 철학자들이 했을 법한 방법론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의 제한된 경험, 그로 인한 제한된 지식에만 기대어 섣불리 답을 얻으려 하죠. 그래서 천동설을 주장했던 프톨레마이오스처럼 우리는 정답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오답을 아무런 의심 없이 믿게 되는 겁니다.

새들러는 한번 머릿속에 입력된 오답을 지워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인지과학을 빌려 설명합니다. 학생이 오답을 얻어내는 과정을 보고 논리적 결함을 찾지 못하거나 문제를 발견하지 못한 선생님은 학생의 머릿속에 들러붙은 오답을 정답으로 바꿔놓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한번 정답이라고 믿은 무언가를 바꾼다는 건 정신적으로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일입니다. 이런 식이죠. ‘내가 정확히 어디가 틀렸는지 이해는 되지 않지만, 혹은 여전히 내가 보기엔 이게 오답 같지는 않은데 어쨌든 일단 교과서가, 선생님이 설명하시는 대로 믿어보겠다.’는 건 아주 큰 결단인 셈입니다.”

<미국 교육자 회보(American Educator magazine)>에 최근 쓴 글에서 새들러는 중학생들에게 객관식 과학 문제 20개를 풀게 한 결과를 소개했습니다. 문항마다 많은 사람이 흔히 정답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오답인 함정이 숨어있었습니다. 정답보다 오히려 더 유명한 오답도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풀어보세요)

  • 여기 양초 하나가 타고 있습니다. 초가 모두 탄 뒤에, 이를 지켜본 에릭은 원래는 고체 상태였던 밀랍이 어떻게 된 건지 궁금해졌습니다. 에릭이 제시한 가설 가운데 어떤 가설이 사실일까요?

보기 1번은 “밀랍이 모두 보이지 않는 기체로 기화됐다.”는 설명이었고, 4번은 “모든 밀랍이 녹아 촛농이 되어 촛대 밑부분으로 흘러내렸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정답은 1번입니다. 하지만 문제를 푼 학생 가운데 17%만 정답을 맞혔습니다. 반면 오답인 4번을 고른 학생은 59%나 됐습니다.

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에게 같은 문제를 주었습니다. 선생님들에게는 문제를 푸는 일 외에 학생들이 자주 틀리는 오답이 무언지 알고 있는지도 함께 물었습니다. 선생님들은 대부분 정답을 알고 있었습니다. 85%가 정답을 맞혔으니까요. 하지만 학생들의 약점에 대해서는 모르는 선생님들이 많았습니다. 4번 보기에 학생들이 취약하다고 골라낸 선생님은 41%에 그쳤습니다.

그해 말에 학생들에게 다시 과학 시험을 치렀는데, 학생들이 자주 틀리는 오답에 대해 알고 있는 선생님들에게 배운 학생들의 과학 성적이 훨씬 더 많이 올랐습니다.

오답을 잘 아는 건 학생들 가르치는 데 대단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학생들을 설득해야 할까요?

새들러는 소크라테스식 교육법을 먼저 꼽습니다. 즉, 학생들과 문답을 주고받으며, 학생들에게 직접 소리 내 논리를 설명하게 시키는 겁니다. 일방적으로 선생님이 앞에서 강의하는 것보다 특히 학생들의 오답을 바로잡는 데는 훨씬 효과적이라는 게 새들러의 설명입니다.

“중요한 주제를 찾아내는 선생님보다도 오히려 학생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아내는 선생님이 더 훌륭한 선생님입니다.”

다음 단계는 학생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주고 경험을 통해 스스로 깨우치고 정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겁니다.

새들러와 동료들이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개설했던 천문학 강좌를 예로 들어보죠. 새들러는 학생들에게 같은 망원경으로 같은 위치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촬영한 태양 사진을 비교해보도록 했습니다. (여름이 더운 이유가 태양이 지구에서 가깝기 때문이라고 여기는) 많은 학생이 여름에 촬영한 태양의 크기가 가장 클 거라 예상합니다. 하지만 직접 자를 대고 사진 속 태양의 크기를 재보면, 정반대로 태양이 가장 큰 건 1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실제로 올해 태양이 지구와 가장 가까웠던 근일점(perihelion)은 1월 2일이었습니다)

“타원 궤도를 토대로 유추해낸 그럴싸한 상식이 사실은 오답이었음을 빼도 박도 못하게 각인시키는 거죠.”

참고로 계절이 있는 이유는 타원 궤도 때문이 아니라 지구의 자전축이 23.5도 기울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N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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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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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베이트 주제 : 인터넷 실명제 폐지해야 한다

참고자료 01
미디어오늘 이정환 기자 기사


최근 해외에서도 실명 확인을 요구하는 인터넷 사이트가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뉴욕타임즈가 우리나라의 인터넷 실명제 도입 사례를 거론해 눈길을 끈다. 뉴욕타임즈는 4일 "인터넷에서 이름 대기(Naming Names on the Internet)"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에서는 3년 전 인터넷 악성 댓글에 시달리던 여자 배우가 자살한 뒤 인터넷 실명제가 도입됐지만 지난달 대규모 개인 정보 유출 사고 이후 이를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한국에서의 경험은 실명을 강요하는 정책이 멍청한(lousy) 아이디어라는 걸 입증했다"면서 "온라인에서의 익명 표현의 자유는 단순히 개인 정보 보호 차원이 아니라 아랍의 반정부 시위에서 보듯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반대 의견을 표명하거나 기업의 기밀을 폭로하려는 내부 고발자에게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이 신문은 "미국에서는 익명 표현의 자유가 법으로 보장돼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세계적으로 실명 확인을 요구하는 인터넷 사이트가 늘어나고 있어 주목된다. 페이스북을 비롯한 일부 해외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실명을 쓰도록 권고하고 실명이 아닌 것으로 확인될 경우 계정을 폐쇄하는 일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하루 방문자 10만명 이상의 사이트를 대상으로 주민등록번호 기반의 실명 확인을 의무화하고 있는데 정부 차원에서 인터넷 실명제를 강제 도입하는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

최근 독일의 프리드리히 한스-페터 내무부 장관은 노르웨이 테러 같은 사건을 막으려면 블로거들이 그들의 실명을 드러내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68명을 살해한 테러범 안드레스 베링 브레이빅은 '피요르드만'이라는 가명으로 블로그를 운영해 왔다. 한스-페터 장관은 시사주간지 슈피겔과 인터뷰에서 "떳떳하다면 굳이 실명을 밝히지 않으려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고 반문하기도 했다.

구글의 최고경영자 에릭 슈미트 회장도 지난달 한 컨퍼런스에서 "우리가 당신에 대한 좀 더 정확한 정보를 갖는다면 훨씬 더 나은 서비스를 할 수 있다"면서 실명 확인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만약 당신이 실명을 적고 싶지 않다면 구글 플러스를 쓰지 않으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즈는 "열린 인터넷을 지향한다는 회사의 최고경영자가 익명 표현의 가치를 부정하는 건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즈는 "구글의 주장은 범죄 예방 차원이라기 보다는 상업적인 목적에서 나온 것이며 구글이 세부적인 개인 정보를 수집하려 하는 것도 결국 광고나 다른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그러나 장벽 없는 인터넷의 세계에서 완벽한 실명제는 매우 복잡하고 어렵다"면서 "페이스북 역시 실명 확인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덧붙였다.

뉴욕타임즈는 "만약 온라인 토론이 실명을 기반으로 이뤄진다면 인터넷이 좀 더 정화될 거라는 기대가 가능하다"면서도 "온라인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는 건 사실이지만 익명성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전문가들은 원하기만 하면 익명의 사이버 범죄를 추적할 기술을 확보하고 있고 익명으로 활동하는 악명 높은 해커 그룹이 체포된 사례도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 정부가 구글이 운영하는 유튜브에 인터넷 실명제를 요구하자 구글이 유튜브 한국 서비스를 차단한 사실도 거론됐다. 구글은 사용자 설정이 한국으로 돼 있을 경우 업로드를 할 수 없도록 제한했는데 이 때문에 청와대가 국적을 바꾸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뉴욕타임즈는 "현실의 세계는 지저분하고 혼란스러우며 익명의 개인들로 넘쳐난다"면서 "인터넷도 마찬가지로 내버려두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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