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생각해 볼 주제.

인간에게 진정 '자유의지'가 있는가? 그간 자유를 위해 싸워왔다지만 지금 그 자유는 어떤 자유인가? 소비할 자유? 우리도 멋지고 세련되어 보이는 소비자가 될 자유? 그건 아니었을 텐데. 

그렇다면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을 돌아보는 성찰이 필요하지 않을까?

뭐 그런 비슷한 생각이 들어서 이 글이 더 눈에 들어왔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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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노아 하라리: 자유라는 신화


학자는 오직 진실에만 충실해야 할까요? 설사 그 진실이 사회 문제를 일으키더라도? 아니면 사회 질서가 유지되도록 거짓말을 해야 할까요? 나는 신작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21 Lessons for the 21st Century)”에서 자유주의(liberalism)와 관련해 바로 이런 고민을 해야만 했습니다.

한편으로 나는 자유주의에 오류가 있고 이 이론이 인간에 대한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따라서 21세기를 성공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 자유주의를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자유주의는 여전히 오늘날 세계 질서의 기본적인 원리입니다. 특히 종교와 민족 근본주의라는, 훨씬 더 위험하고 해로운 오래된 이념의 공격을 자유주의는 받고 있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선동가와 독재자들이 자유주의를 공격하기 위해 내 의도와 무관하게 내 주장을 사용하게 될 위험을 감수하고도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해야 할까요? 아니면 이를 감안해 자신을 검열해야 할까요? 자신의 영역 밖에서까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편협함의 상징입니다. 이런 분위기가 퍼질 때, 우리는 인류의 미래에 대한 냉철한 사고를 할 수 없게 됩니다.

나는 자유민주주의의 힘을 믿기 때문에 그리고 이 자유주의를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 검열 보다는 자유로운 토론을 택했습니다. 자유주의는 다른 이념보다 더 유연하고 덜 교조적이라는 매우 큰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유주의는 다른 어떤 이념보다도 비판을 잘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사실 자유주의는 사람들이 그 체제에 의문을 제기하도록 허용하는 유일한 이념입니다. 자유주의는 이미 세 번의 큰 위기, 곧 1차 세계대전, 1930년대 파시스트들의 도전, 그리고 1950년에서 70년대까지 공산주의자들의 도전을 겪었습니다. 지금 자유주의가 위기를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1918년, 1938년, 1968년의 위기가 얼마나 컸는지 생각해보면 됩니다.

1968년, 자유민주주의는 거의 지구상에서 사라질 뻔 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 내부에서 폭동, 암살, 테러 공격, 그리고 첨예한 이념 갈등이 있었습니다. 당신이 마틴 루터 킹이 암살당한 날 워싱턴에서 일어난 폭동이나 1968년 5월의 파리, 그리고 1968년 8월 시카고에서 있었던 민주당 전당대회에 있었다면 자유민주주의의 종말이 가까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워싱턴, 파리, 시카고가 혼란에 빠져 있는 동안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는 조용했고, 소비에트 사회주의는 영원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20년 뒤 붕괴한 것은 소비에트 사회주의였습니다. 1960년대의 혼란을 겪으며 자유민주주의는 오히려 더 단단해졌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의 위기 또한 자유주의가 이겨낼 것이라 믿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자유주의가 겪는 위기는 파시즘이나 공산주의, 혹은 마치 비가 내린 뒤 여기 저기에서 우는 개구리처럼 전세계 곳곳에 등장한 선동가나 독재자들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지금의 위기는 바로 실험실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자유주의는 인간이 가진 자유에 대한 믿음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쥐나 원숭이와 달리,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믿어집니다. 바로 이 사실이 우리의 감정이나 선택에 궁극적인 도덕적, 정치적 권위를 부여합니다. 자유주의는 투표권자가 최선의 결과를 알고 있으며, 고객은 언제나 옳고, 우리는 자신의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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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자유의지”는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실이 아닙니다. 이는 기독교 신학이 만든 신화일 뿐입니다. 신학자들은 어떻게 신이 죄인을 벌하고, 성자에게 상을 줄 권리가 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자유의지”를 발명했습니다. 우리의 선택이 우리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신이 우리에게 벌을 주거나 상을 줄 이유가 없을 겁니다. 신학자들은 바로 우리의 선택이 어떤 물리적, 생물학적 속박과 무관한 우리 영혼의 자유에 의한 것이며 바로 이 때문에 신이 우리를 벌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과학은 우리 호모 사피엔스와 다른 동물들에 대해 신학자의 설명과 전혀 다른 사실을 말해 줍니다. 인간은 분명 의지를 가지고 있지만, 그 의지는 자유로운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자신이 어떤 욕망을 가질지 결정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내성적일지 외향적일지, 순할지 까칠할지, 동성애자일지 이성애자일지를 결정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선택을 하지만 그 선택은 독립적이지 않습니다. 모든 선택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생물학적, 사회적, 개인적 조건에 영향을 받습니다. 무엇을 먹을지 정할 수 있고, 누구와 결혼할지, 누구를 대통령으로 뽑을지 선택할 수 있지만, 이러한 선택은 자신의 유전자, 생화학적 조건, 성별, 가족력, 자신이 속한 문화권 등의 영향을 받습니다. 자신이 어떤 유전자를 가질지, 어떤 가족의 구성원으로 태어날지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이는 추상적인 말이 아니며,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당신 머리 속에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지 한 번 기다려봅시다. 그 생각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무엇을 떠올릴지 당신은 선택할 수 있나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당신이 자신의 마음을 찬찬히 살펴보면 자신이 무엇을 생각할지에 관해 당신이 진정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무엇을 생각할지, 무엇을 느낄지, 무엇을 원할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될 겁니다.

이 “자유의지”는 비록 항상 신화였지만, 적어도 지난 세기 이 신화는 인류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 덕분에 사람들은 종교재판관 혹은 신으로부터 권리를 부여받았다고 믿어졌던 국왕, 또는 KGB나 KKK와 싸울 수 있었습니다. 이 신화를 유지하는 데는 큰 비용도 들지 않았습니다. 1776년이나 1945년에는 자신의 감정이나 선택이 생화학, 뇌과학의 결과가 아니라 어떤 “자유의지”의 결과라 믿는다고 해도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은 이제 위험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정부와 기업이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의식을 해킹하는 데 성공하게 될 경우, 가장 조종하기 쉬운 상대는 바로 이 자유의지를 믿는 이들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제대로 해킹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바로 생물학에 대한 깊은 이해와 강력한 컴퓨터 성능입니다. 종교재판관이나 KGB는 생물학 지식도, 컴퓨터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곧 기업과 정부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가지게 될 것이며, 일단 그들이 인간을 해킹하는 데 성공하게 될 경우 당신의 선택만이 아니라 당신의 감정 또한 그들의 조종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기업과 정부가 당신을 완벽하게 알 필요도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단지 당신 자신보다만 당신을 더 잘 알면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그렇게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는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만약 당신이 기존의 자유주의 이념을 잘 알고 있다면, 당신은 이러한 주장을 쉽게 무시하며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유전자나 뉴런, 알고리듬보다도 훨씬 더 깊숙한 곳에 진정한 내가 있으며 따라서 누구도 인간의 정신을 해킹할 수 없습니다. 내 선택은 내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고, 누구도 내 선택을 예측하거나 조종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고 해도 과학적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믿음을 지닌 당신은 더 쉽게 조종할 수 있는 대상이 되고 말 뿐입니다.

이미 이런 일은 일어나고 있습니다. 당신은 인터넷을 서핑하다가 눈에 띄는 기사 제목을 보게 됩니다. “이민자들이 여성을 강간했다.” 당신은 이 기사를 클릭합니다. 바로 그 순간, 당신의 이웃은 다른 기사 제목을 보게 됩니다. “트럼프는 이란에 핵공격을 준비하고 있다.” 그녀는 이 기사를 클릭합니다. 이 두 기사는 모두 가짜 뉴스이며 러시아의 트롤, 혹은 사람들을 끌어들여 광고 수익을 올리하는 어느 인터넷 언론이 만들었을지 모릅니다. 당신과 당신의 이웃은 그 기사를 자유의지를 따라 클릭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두 사람은 모두 정신을 해킹당한 것입니다.

물론 선전과 조작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선전이 무차별 폭격의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면, 이제는 정밀한 유도탄처럼 행해진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히틀러가 라디오를 통해 연설할 때 그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맞출 수 없었고, 따라서 모두가 동의할 최소한의 공통 분모만을 말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맞는 선전과 조작이 가능해 졌습니다. 알고리듬은 당신이 이민자에게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당신의 이웃이 트럼프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으며, 바로 이 사실 때문에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기사를 보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가장 영리한 사람들이 바로 이 작업, 사람들의 뇌를 해킹해 기사를 클릭하고 광고를 보게 만들며, 물건을 사게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들은 물건만이 아니라 정치인과 이념 또한 팔고 있습니다.

이는 시작일 뿐입니다. 아직 해커들이 분석하는 신호와 행동은 바깥 세계의 정보로 당신이 무엇을 사고, 어디를 가고, 어떤 단어를 검색하는지 하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몇 년 이내에 생체인식 센서는 해커들이 당신의 내적 세계에 접속할 수 있게 해줄 것이며, 당신의 마음 속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관찰하게 될 것입니다. 자유주의라는 판타지가 애정해 마지 않는, 마음이라는 은유를 가진 심장은 그저 당신의 뇌 활동에 피를 공급하는 근육 펌프로 격하될 것입니다. 해커들은 당신의 심박과 신용카드 사용을 연관지을 것이고, 혈압과 구글 검색 내용의 관계를 보게 될 것입니다. 종교재판관이나 KGB가 당신의 기분과 감정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는 생체인식 팔찌를 가질 수 있었다면,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자유주의는 억압적인 정부와 편협한 종교로부터 독립적인 개인을 지킬 수 있는 훌륭한 논리와 제도를 만들어냈지만, 개인의 자유라는 자유주의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내부에서 붕괴시키는, 곧 “개인”과 “자유” 두 개념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게 되는 상황에 대해서는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했습니다. 21세기를 살아남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근대 계몽 시대의 유산일 뿐 아니라 기독교의 유산이기도 한 이 ‘자유로운 개인’이라는 순진한 개념에서 벗어나, 인간은 해킹될 수 있으며 곧 타의에 의해 조종될 수 있는 동물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더 잘 알아야 합니다.

물론 이는 새로운 조언이 아닙니다. 고대의 철학자와 성자들은 사람들에게 “너 자신을 알라”고 말해 왔습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시대나 부처, 공자의 시대에는 당신보다 자신을 더 잘 아는 이는 없었습니다. 자신을 충분히 잘 알지 못해도, 여전히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지금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는 순간에도 정부와 기업은 당신을 해킹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당신 자신보다 당신을 더 잘 알게 된다면, 이제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어떤 것이든 곧 그것이 제품이든 정치인이든 당신에게 팔 수 있게 됩니다.

당신의 약점을 아는 것은 특히 중요합니다. 약점은 그들에게 당신을 해킹할 수 있는 지름길을 안내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컴퓨터 해킹은 코드 상의 오류를 이용해 이루어집니다. 인간에 대한 해킹은 인간이 가진 공포, 혐오, 편견, 그리고 욕망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해커들은 공포나 혐오를 그저 만들어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어떤 것을 두려워하고 싫어하는지 알게 되면 그 감정을 적절히 자극해 무척 쉽게 이를 더 큰 공포로 키워낼 수 있습니다.

순전한 노력으로 자기자신을 잘 알기 어렵다면, 해커가 사용하는 것과 같은 기술을 이용해 자신을 이해하고 보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컴퓨터에서 백신 프로그램이 바이러스를 막아내듯 우리에게도 뇌를 위한 백신 프로그램이 필요해질 것입니다. 당신의 인공지능 비서는 당신의 약점이 무엇인지를 – 그것이 유쾌한 고양이 비디오든, 짜증나는 트럼프 이야기든간에 – 파악해 당신이 거기에 반응하는 것을 막아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는 사실 곁가지에 불과합니다. 인간이 정말 조종 가능한 동물이라면, 그리고 우리의 선택과 의견이 우리의 자유의지가 아니라면, 정치는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지난 300년 동안 자유주의자들은 가능한한 많은 개인이 가능한한 자신의 꿈을 추구하고 자신의 욕망을 좇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을 정치적인 이상으로 삼아왔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 꿈을 이루게 될 순간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이 그저 환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순간도 동시에 눈앞에 와 있습니다. 개인이 자신의 꿈을 추구할 수 있게 만들어준 바로 그 기술에 의해 정부와 기업은 사람들의 꿈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바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내 꿈이 진정한 나 자신의 꿈인지를 과연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어떤 이들은 이러한 발견이 인간에게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자유를 줄 것이라고 말합니다. 앞서 우리는 자신의 욕망을 이해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았고, 그 욕망을 실현할 자유를 추구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떠오르든간에 우리는 이를 실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루하루를 이 생각과 감정, 욕망이 진정한 자신의 자유의지의 결과라 믿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만약 우리가 자신의 욕망을 더 이상 추구하지 않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가 자신의 마음을 주의깊게 지켜보다가 어떤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왜 이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라고 묻게 된다면 어떨까요?

일단 자신의 생각과 욕망이 자신의 자유의지를 반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경우, 우리는 이에 덜 얽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완전히 독립된 개체로 보고 자신의 욕망이 세상과 무관한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을 다른 개체와 다른 존재로 생각하게 됩니다. 곧, 자신은 독립된 존재이며 따라서 나머지 세상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게 될 뿐더러, 자신의 변덕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여기게 되어, 자신이 이 우주에서 가능한 모든 욕망 중에 바로 그 욕망을 선택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바로 이런 생각이 다른 세상을 자신이 원하는대로 조종하고 바꾸도록 노력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자신의 변덕에 기반해 전쟁을 일으키고, 숲을 태웠으며, 생태계를 파괴해왔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자신의 욕망이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면, 그 욕망을 덜 추구하게 될 것이며 또한 나머지 세상과 더 연결된 느낌을 가질 수 있게될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우리가 “자유의지” 개념을 버리게 될 경우 감정이 없는 존재가 될 것이며, 막다른 골목에 갇혀 멸종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유의지” 개념에 대한 포기는 두 가지 반대되는 효과를 불러옵니다. 첫째, 우리를 나머지 세상과 더 강력하게 연결하며, 이웃과 주변 환경의 요구에 더 민감하게 만들어 줍니다. 이는 우리가 다른 이와 대화할 때의 상황과 비슷합니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만 생각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지 않게 되며, 이때 모든 사람은 자신이 말할 기회만을 찾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자신의 생각을 옆으로 제쳐둘 때 우리는 갑자기 다른 이의 말이 귀에 들어오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둘째, “자유의지” 신화를 포기함으로써 우리는 더욱 심오한 호기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과 욕망에 매달리는 사람은 자신을 더 잘 알아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건 내가 아니야, 그저 뇌의 생화학적 변화일 뿐이야!”라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비로소 자기 자신이 정말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됩니다. 이는 모든 인류 각자가 반드시 거쳐야 할, 가장 힘들고 흥미로운 여정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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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지에 대한 의심이나 인간 본성에의 탐험은 아주 오래된 주제입니다.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이런 주제를 두고 이야기해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이를 구현하는 데 필요한 기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이 이제 모든 것을 바꾸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철학의 문제였던 것이, 이제 공학과 정치에서 다뤄야 할 실용적인 문제가 되었습니다. 철학자들이 자신들이 하던대로 이 문제를 천천히 생각하는 동안 – 그들은 한 주제로 어떤 결론 없이도 3천 년을 논쟁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 공학자들은 조바심을 내고 있습니다. 정치인은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이 급한 이들입니다.

정부와 기업이 인간을 해킹할 수 있게 된 이 시대에 자유민주주의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유권자의 선택이 최선이다” 혹은 “고객은 언제나 옳다”와 같은 말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당신이 해킹될 수 있는 동물이라는 사실, 당신의 지지가 정부의 조종에 의한 것일 수 있다는 사실, 당신의 편도(amygdala)가 푸틴을 위해 일하고 있고 당신의 마음 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당신보다 당신을 더 잘 아는 알고리듬에 의한 결과라는 사실을 당신이 깨닫게 될 때 당신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이는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가장 흥미로운 질문들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대개 이런 질문을 여전히 피하고 있습니다. “자유의지”라는 환상 뒤에 무엇이 있는지를 탐험하기보다 더 오래된 환상이 제공하는 피난처를 찾아 숨고 있습니다. 인공지능과 생체공학의 도전에 응전하기보다 자유주의보다도 더 과학적 현실과 거리가 먼 종교적, 민족적 환상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새로운 정치적 모델을 찾는 대신 20세기 혹은 더 오래된 사상의 찌꺼기를 다시 모으고 있습니다.

이러한 추억 속 환상에 젖어있는 나라에서는 성경의 진실성이나 민족의 신성함(특히 당신이 나처럼 이스라엘 같은 나라에 살고 있다면)에 대한 논쟁을 보게 됩니다. 학자로써 이는 정말 실망스러운 일입니다. 성경은 볼테르의 시대에나 의미 있는 학문이었고, 민족주의는 20세기 최신 사조였습니다. 하지만 2018년인 지금 이를 두고 논쟁하는 것은 심각한 시간 낭비일 뿐입니다. 인공지능과 셍체공학은 진화 과정 자체를 바꾸고 있으며, 이 기술을 어떻게 써야 할지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시간은 불과 몇십 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수천 년 전에 쓰여진 이야기에서 발견하게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두 가지 전선에서 동시에 싸워야 합니다. 먼저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합니다. 이는 자유민주주의가 다른 어떤 체제보다도 더 인간적인 정부를 가진다는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일 뿐 아니라, 또한 인류의 미래에 대해 가장 제한을 덜 가하는 체제이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자유주의의 전통적인 믿음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21세기의 과학적 진실 및 기술의 진보와 일관성을 지니는 새로운 정치적 시스템을 개발해야 합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강력한 신인 제우스와 포세이돈은 여신 테티스를 두고 싸웠습니다. 하지만 테티스가 그의 아버지보다 더 강력한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예언이 내려지자 모두 테티스를 포기합니다. 그들은 영원히 세상을 지배하고 싶었기에 그들과 경쟁하게 될 더 강력한 존재가 나타나기를 원치 않았던 것입니다. 테티스는 인간인 펠레우스 왕과 짝지어졌고, 아킬레스를 낳았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자손이 더 훌륭한 존재가 되는 것을 좋아했던 것입니다. 이 신화는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말해 줍니다. 권력을 영원히 가지려는 지배자는 자신을 밀어낼 수 있는 아이디어가 탄생하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는 새로운 아이디어의 탄생을, 설사 그 아이디어가 자신의 존재 기반을 무너뜨리는 것이라 해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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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익은수박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하루를 충실하게 보내고 싶으세요? 다음 13가지 원칙을 잊지 마세요.

2018년 10월 18일 

인생에서 하루는 얼마나 중요할까요? 당신이 오늘 보낸 하루는 당신의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까요?

시인 헤라클리투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루는 매일과 같다.” 이는 하루의 길이는 늘 같고, 같은 만큼의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같은 해가 뜨고 진다는 의미였습니다. 또한, 철학자들의 말처럼 단 하루를 제대로 살 수 있다면, 인생 또한 제대로 살 수 있다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오브리 마커스는 책의 제목으로 이를 멋지게 표현했습니다. “하루를 지배하는 이가 삶을 지배한다(Own the day, own your life)”.

아래 13가지 원칙은 하루를 제대로 살기 위한 원칙들입니다. 이 중 어떤 것은 쉽고 어떤 것은 어렵지만, 각각은 모두 중요한 원칙들입니다.

1. 매일 아침 그날을 준비할 것 – 아침 일찍 일어나 그날 할 일을 생각하고 계획하고 준비하세요. 되는대로 살아서는 안됩니다. 계획을 가지세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매일 아침 그날의 일기를 쓰며 그가 맞게될 하루를 준비했습니다. 그는 그가 만날 사람들을, 그가 겪게될지 모르는 어려움을 생각했고 어떻게 그 어려움에 대처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습니다. 아침은 일기를 쓰기에 최고의 시간이며 이를 통해 성공적인 하루를 만들 수 있습니다. 준비를 철저히 할수록, 오히려 힘든 일 없이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2. 산책할 것 – 수세기 동안 위인들은 하루에 수 킬로미터를, 지루하거나 아니면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기 위해, 상쾌한 기분을 얻기 위해 걸었습니다. 이를 통해 그들은 매우 중요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바로 산책이 마음을 맑게 하고 일의 효율을 높인다는 것입니다. 니체는 노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중요한 모든 깨달음은 산책 중에 얻었다.” 산책은 운동에도 좋지만, 심리적으로 더 큰 이득을 줍니다. 자연을 느껴보세요. 당신을 둘러싼 세상을 느껴보세요. 휴식을 취하세요. 혹시 너무 바쁘다면, 야외에서 걸으면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습니다. 주차장에서 걸어다니면서 거래처와 전화를 해보세요. 일단 밖으로 나가 움직이세요.

3. 몰입할 것 – 우리는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 동안 깊은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어떤 이야기에 잠깐 주의를 기울이다가 다시 다른 이야기로 생각을 넘깁니다. 하루를 이렇게 보내서는 안됩니다. 칼 뉴포트가 “딥 웍(deep work)”이라 부른 일에 하루 한 시간 이상을 투자해야 합니다. 글을 쓰건, 생각이나 구상, 창조적인 일을 하건 의지를 가지고 집중해야만 실제로 일이 진행됩니다. 진정한 작업은 몰입을 필요로 합니다. 하루 중 얼마나 몰입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지는 당신에게 달려있습니다. 웹브라우저를 다 닫으세요. (물론 이 글을 읽고 나서 말이지요.) 몰입을 위한 시간을 먼저 만들지 않으면, 절대 이를 이룰 수 없습니다.

4. 친절할 것 – 보이스카우트에는 하루 한 가지 착한 일을 하라는 신조가 있습니다. 세네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이 있는 곳에는, 친절의 기회가 있다.” 무례한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해 봅시다. 당신의 경쟁자에게도 친절을 베풀어 봅시다. 물론 당신이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래야 겠지요. 직장 동료는 친절을 베풀 수 있는 좋은 대상입니다. 배우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편 배달부에게도 친절을 베풀 수 있습니다. 당신은 친절을 베풀 때마다 당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된 느낌을 가지게 될 겁니다. 당신의 하루는 더 가치있게 바뀝니다. 세상은 더 살기 좋은 곳이 됩니다. 모든 기회를 놓치지 않고 친절을 베푸는 것은 성자나 성직자들만 할 수 있는 일이니 기회를 놓쳤다고 자신을 탓할 필요는 없습니다. 일단 하루 하나의 친절을 베풀어 보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세요.

5. 읽고, 읽고, 또 읽을 것 – 매일 책을 읽으세요. 단 몇 페이지라도 좋습니다. 에머슨이 말한 것처럼, 모든 책은 그 책을 만들어낸 이와 그가 속한 문화가 축적된 결과물입니다. 이를 무시할 이유가 있을까요? 물론 시간이 필요합니다. 밥을 먹는 동안, 잠 들기 전, 지하철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동안, 당신은 책을 읽을 수 있으며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도 이북을 읽을 수도 있습니다. 몇 페이지라도 읽게 되면 곧 책 한 권을 읽게 되고, 어느새 항상 읽을 거리를 찾게 됩니다. 전기, 숨은 명작들, 인생을 바꿔주는 책들, 철학 서적, 고전, 자기계발 서적, 전쟁 관련 서적, 소설 등 수많은 가치있는 책들이 있습니다. 경영이나 마케팅 책도 좋습니다. 이런 책들은 당신의 시야를 넓게 만들며, 문제 해결 능력을 키워줄 뿐 아니라 영감을 주고 수백년 동안 축적된 지혜와 지식을 제공합니다.

6.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것 – 매일 단 몇 분이라도 모든 전자기기에서 벗어난 시간을 만드세요. 나는 가능한한 매일 수영을 합니다. 이는 운동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 시간이 온전히 나만를 위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스마트폰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다른 소음을 신경쓸 필요가 없이 마음의 평안을 찾으면 됩니다.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하루 중에 얼마나 자주, 잠깐이라도 세상과 단절되나요?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시간을 자주 가지지 못할겁니다. 매일 이를 위한 시간을 정해놓으세요. 당신의 하루는 더 나아지는 반면, 바깥 세상은 당신이 사라진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할겁니다.

7. 땀흘려 운동할 것 – 이는 너무 흔한 충고입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운동을 ‘몸을 건강하게 만들 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좋은 단 하나의 마법의 총알’이라고 단언합니다. 리차드 브랜슨이 기업가들에게 준 첫 번째 충고이기도 하지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 몸은 훨씬 더 운동을 필요로 합니다. 이를 미루지 마세요. 당장 시작해야 합니다. 운동은 건강과 외모를 모두 가져다 줍니다. 목표를 분명히 할 경우 더 좋습니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무언가 일이 잘 안풀렸을 때에도, 그날의 운동 목표를 달성함으로써 하루를 기분 좋게 마칠 수 있습니다. 1마일 시간 기록을 깨는 것, 평소보다 수영장을 세 번 더 왕복하는 것, 스쿼트 중량을 높이는 것 등 다양한 목표를 만들 수 있습니다.

8. 죽음에 대해 생각할 것 – 셰익스피어는 자기가 하는 생각의 세 번 중 한 번은 죽음에 관한 것이라 말했습니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하루에 한 번은 죽음에 대해 생각해볼만 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라는 말이 아니라, 언젠가는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오늘 하루 얼마나 무의미한 일에 시간을 보냈나요? 아마 그 일을 할 동안은, 그 일이 앞으로 당신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젠가는 죽게되며, 살아 있는 동안만 살 수 있습니다. 어제 당신이 죽었고, 오늘은 새로 얻은 날인 것처럼 살아보세요. 나는 이 사실을 기억하기 위해 주머니에 동전을 넣어 놓고, 매일 한 번 이 상 그 동전을 만집니다. 죽음은 삶을 의미없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목적을 가지게 만들어줍니다. 이 사실을 깨닫기 위해 죽음을 경험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다행이지요.

9. 순간을 즐길 것 – 우리는 하루 중 상당 시간을 빈둥거리며 보냅니다. 그저 시간을 죽이며 보낸다고 말하지요. (레이먼드 챈들러는 “게다가 잘 죽지도 않는다(and it dies hard.)”고 농을 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약속장소에 일찍 도착해 로비에서 시계를 보다가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보냅니다. 이런 행동은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잘 드러냅니다. 만약 우리가 죽은 시간을 살아있는 시간으로 대체한다면, 많은 것이 바뀔겁니다. 짧은 몇 분 동안에도 수많은 가치있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을 마주하세요. 다른 사람과 소통하세요. 미루던 일을 해결하세요. 태양 빛을 쬐고 자연을 즐기세요. 가만히 자신을 비우세요. 앞일을 준비하세요. 누구도 자신이 얼마 만큼의 시간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세요.

10. 모든 일에 감사할 것 – 스토아 철학자들은 고마운 마음을 일종의 치료약으로 생각했습니다. 모든 일에 “감사합니다”라 말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모든 것이 신의 선물이므로 그 자체로 선하고 영원히 그러할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무례한 사람에게도 고맙다고 말해봅시다. 실패에 대해 고마워합시다. 며칠 늦은 택배도 다행이라 생각합시다. 이런 일이 당신을 더 큰 어려움에 빠지지 않게 해준 것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일들은 당신이 어찌할 수 없는 일입니다. 에픽테투스는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당신은 어떤 측면을 바라볼 건가요? 분노를 택하실 건가요? 아니면 감사를 택하실 건가요?

11. 하루를 돌아볼 것 – 이제 아침에 계획한 것을 돌아볼 시간입니다. 개선은 반성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습니다. 세네카가 한 것처럼 매일 저녁 그날 자신의 행위에대해 생각해봅시다. “불을 끄고 아내가 잠이 들면, 나는 이제 습관이 된 이 일을 시작한다. 오늘 하루 동안 내가 한 행동과 내뱉은 말을, 하나도 숨김 없이, 빠뜨림 없이 나는 되새긴다.” 나는 아침에 계획한 대로 행동했나요? 그 일을 위해 충분히 준비했나요? 어떻게 했으면 더 잘할 수 있었을까요? 내게 도움이 될 어떤 교훈을 얻었나요?

12. 더 큰 대상을 접할 것 – 바닷가를 걷거나 아름다운 공원을 걸을 때 우리는 일상의 걱정이나 불안을 잊을 수 있습니다. 이런 마음의 평온을 얻기 위해 꼭 휴가철을 기다릴 필요는 없습니다. 매일 이런 기회를 찾아야 합니다. 스토아 철학자들 역시 그랬습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밤하늘의 별을 보며 자신이 그 사이를 달린다고 상상하며 별의 무한함과 영원함을 느꼈습니다. 매일 밤, 아니면 아침 일찍 우리도 별을 바라 봅시다. 하늘을 바라보는 것은 지상의 사소한 괴로움에 대한 해독제가 될 수 있습니다. 하늘만 답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건물 옥상에서 먼 곳을 바라봅시다. 잔디를 맨 발로 걸어봅시다. 성당의 뒷자리에 몇 분간 앉아 보세요. 매일 어떤 거대한 무언가와 자신을 연결해 봅시다.

13. 8시간 잠을 잘 것 – 우리는 종종 “죽고 나면 원없이 잘텐데 뭘” 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잠을 적게 자는 사람들이 자랑스레 하는 말이지만, 바람직한 말이 아닙니다. 신체는 휴식을 필요로 합니다. 쇼펜하워는 잠을 인생이라는 빚에 대한 이자라고 말했습니다. 이자를 갚는 것을 언짢아 하지 마세요. 잠 덕에 우리는 살아있을 수 있습니다. 수면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은 하나의 의무입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규칙이나 습관이 아무리 좋아도, 이를 위한 에너지가 없다면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미디엄, Ryan Holi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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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익은수박

또 재미난 글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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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읽는지가 중요합니다

2018년 10월 16일 

2016년 5월, 국제경영학회지(International Journal of Business Administration)에는 학생들이 무엇을 읽는지가 그들의 글쓰기 능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의 논문이 실렸습니다.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학생들이 무엇을 읽는지는 심지어 글쓰기 수업 보다도 학생들의 글쓰기 능력에 더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학술 논문과 문학 소설, 논픽션을 읽은 학생들은 미스터리, 판타지, 과학소설과 같은 장르 소설이나 레딧, 텀블러, 버즈피드 등의 인터넷 글을 읽은 학생들 보다 더 수준 높은 문장을 구사했습니다.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이들은 학술 논문을 읽은 학생들이었고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이들은 인터넷 컨텐츠를 읽은 이들이었습니다.

가벼운 읽기(light reading)와 꼼꼼한 읽기(deep reading)의 차이

몰입한 상태로 감각적, 감정적, 도덕적 디테일을 만끽하며 읽는 것을 의미하는 “꼼꼼한 읽기(deep reading)”는 단순히 단어를 해석하는 수준의 “가벼운 읽기(light reading)”과 크게 다릅니다. 꼼꼼한 읽기는 세부 묘사와 암시, 비유가 풍부하게 묘사된 글을 읽는 과정에서 일어나며 독자가 글에 묘사된 사건을 직접 경험할때 활성화되는 뇌의 부위를 직접 자극합니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공감 능력을 키울 수 있으며 반성과 분석을 더하며 자신의 상황을 글 속에 대입하게 됩니다. 또한 자신의 글을 더 의미있고 매력적으로 만드는 방법을 배우게 되며, 이를 통해 글쓰기 수준을 높일 수 있습니다.

반면 가벼운 읽기는 우리가 블로그나 속보, 연예 기사 등 몇 줄의 문장이나 이모티콘 등으로 이루어진 글을 읽을때 사용됩니다. 이런 글은 고유한 관점이 부족하며 독자의 사고를 자극하는 분석적인 내용 또한 미흡한 경우가 많습니다. 읽고 지나치게 되는 이런 컨텐츠는 몇 분 안에 기억에서 사라집니다.

꼼꼼한 읽기는 글과 당신의 뇌를 일체화 합니다.

꼼꼼한 읽기는 뇌의 언어, 시각, 청각 영역을 자극하며 이를 통해 우리가 말하고, 읽고, 쓰는 능력을 키워줍니다. 읽기와 쓰기는 언어의 리듬과 문법을 인식하는 브로카 영역을 자극하며,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는 베르니케 영역과 언어를 인식하고 활용하는 핵심 부위인 모이랑회(angular gyrus)를 자극합니다. 이 세 영역은 신경섬유다발로 이어져 있으며 이를 통해 독자는 글을 읽는 동안 언어 및 리듬과 일체가 되게 만듭니다. 이를 통해 글을 쓸 때 필요한, 복잡한 문장을 만들어내는 리듬을 익히게 됩니다.

다음의 두 가지 꼼꼼한 읽기를 통해 글쓰기 능력을 더욱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시 읽기

의식 연구(Journal of Consciousness Studies)지에 발표된 한 연구는 뇌의 “독서 신경망”은 어떤 글을 읽을 때에도 활성화된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보다 감정적인 글은 우리가 음악을 들을때 활성화되는 몇몇 영역 또한 자극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시와 산문을 비교했을 때 연구진은 시의 경우 우리가 자신을 돌아볼 때 활성화되는 후대상피질(posterior cingulate cortex)과 중앙측두엽(medial temporal lobes)을 활성화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특히 자원자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시를 읽었을 때 자원자의 뇌에서는 “독서 신경망”보다 기억과 관련된 부위가 더 크게 반응했으며, 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시를 읽는 것이 강력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일종의 회상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문학 소설 읽기

인간 사회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복잡한 사회적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다른 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기술입니다. 따라서 작가는 다층적인 인물과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이의 감정 상태와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과 관련된 “마음 이론(Theory of Mind)”에 대해 연구는 아직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최근 한 연구는 문학 소설을 읽을 때, 논픽션이나 대중 소설을 읽을 때 보다 감정적 인지적 마음 이론 검사 결과가 더 올라간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이는 적어도 문학 소설을 읽을 때 일시적으로라도 타인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또한, 문학 소설은 깊은 생각을 가능하게 만들고 외향적 사고와 내향적 사고를 모두 자극합니다. 특히 잡지나 인터뷰, 인터넷의 짧은 글에 비해 인지적 능력을 더 자극합니다.

TV를 보는 대신 꼼꼼한 읽기를 시작하세요

TV를 보는 시간은 대부분 무의미한 시간이며, 뇌는 곧바로 활동을 멈추게 됩니다. 또한, 아무리 당신이 이를 정당화하려 하더라도, 가벼운 잡지나 대중 소설은 글쓰기 능력을 키워주지 못합니다. 당신이 정말로 글을 더 잘 쓰고 싶다면 당신의 뇌를 자극할 수 있는 문학 소설과 시, 그리고 수준 높은 문장으로 쓰여진 과학이나 예술에 관한 글을 읽어야 합니다.

(심리학 투데이, Susan Reynol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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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익은수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