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이야기 2.


뱀꿈


2017.2.10.


들길을 누군가(얼굴 기억 안 남)와 걸은 건지 뛴 건지 암튼 가는 길.
갑자기 발 밑에서 뱀 세 마리가 튀어나왔다. 그러더니 이 녀석들이 허리 바지춤으로 들어왔다. 깜딱 놀라 바지를 툭툭 털었더니 바지춤에서 세 마리가 길바닥으로 떨어졌다. 활발하게 팔딱거리다가 그 가운데 둘은 금세 사라지고, 하나는 좀더 꾸물거리다 사라졌다. 길가엔지 길을 가로지른 건지 또랑으로 사라진 것 같다.
대체 뭔 일이래?

어린 시절 꿈속에서 발아래 그렇게나 많은 뱀들이 나타나더니 다시 찾아온 건가? 그땐 무섭고 나를 발걸음을 무겁게 했던 것 같은데, 이번엔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끝!


Posted by 익은수박
,

꿈 꾼 이야기 1.



2017.2.7.


회색톤의 넓은 방. 별다른 물건은 없이 그저 방뿐이고, 벽에 기댄 듯하기도 하고... 암튼 벽을 등지고 아내가 서 있다. 내가 입을 맞추는 순간, 아내 얼굴이 딸(맞나?)로 바뀌면서 갑자기 왼쪽 뒤에선지 내 왼쪽 방향 문에선지 아내가 왔다갔다 하는 것 같다. 그 순간 나는 딸인지와 껴안은 채 누웠다. 입을 맞춘 채였던 것 같기도 하고... 옷은 다 입었음.



Posted by 익은수박
,

언젠가부터 아내와 사이가 멀어짐을 느꼈다.

처음엔 중년이 된 아내가 갱년기라서 그런가 싶었다. 

사실, 아이들 교육에 대한 생각이 달라서 아이들을 사이에 두고 다툼이 많았다. 그 밖에도 서로 다른 게 많을 것이다. 아니 다른 게 당연한 거지. '다른' 게 '틀린' 게 아님을 서로 받아들이지 못했겠지.ㅠ

조금 엄격하고 관리하려 드는 아내에게 자꾸 딴지를 거는 내 모습이 아내에겐 자존감을 짓밟는 것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런 다툼이 불편해 말을 아낀다는 핑계로 집안일에 나몰라라 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해오지 않았나 싶다. 


어느날 아내는 자유를 찾고 싶다고 선언을 하였다. 처음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동안 보잘것없는 직장 생활로 아내에게 믿음직한 남편의 모습으로 비춰지지 않았나 싶다. 모든 일을 혼자 고민해야 하고, 추진해야 했던 과거 또한 아내에게는 지긋지긋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다 집안일도 하고 밥도 하고 설겆이도 하고... 이렇게 '도와주고 있'는데 나한테 왜 이러나 싶었다. 내가 뭘 잘못했나? 대체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고민이 떠나질 않았다. 


자유를 찾고 싶다는 선언에 이어 헤어짐을 꺼내들었다. 상담이든 대화든 뭐든 해보자고 했지만 답을 돌아오지 않았다. 바뀌지 않았다. 긴 침묵이 이어졌다. 


순간, 나 혼자라도 답을 찾고자 했다. 처음 이 책 저 책을 뒤지다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었다. 

나를 많이 돌아보게 되었다. 페미니즘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도 많이 벗어낼 수 있었다. 시켜야 뭘 했던 나에서 자발적으로 밥을 하고, 음식을 조금씩 만들고, 국을 만들고, 빨래를 하고, 이사 준비도 혼자 하고...

물론 이 모든 게 한편으로는 나 자신을 위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의 자유에 대비한 자립을 염두에 둔... 


홀로 아이들과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기댈 수 있었던 존재의 부재에 대한 두려움. 이런 것에 눌린 발버둥에서 조금씩조금씩 벗어나는 것 같기도 하지만...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아내에 대한 서운함에서 미안함이 조금씩 더 커지는 듯하다. 나에 대해 위선이라 했던 아내의 말이 더 크게 다가오기도 한다. 처음엔 위선이라는 말이 참 불쾌했는데, 이제는 받아들여 지는 듯하다. 수십 년, 아니 수천 년을 이어져 온 가부장제의 무의식이 쌓여 있는데 당연히 그래 보일 것 같다. 나를 둘러싼 거의 모든 것들이 남성 중심인데... 내가 거기에서 어떻게 '공부' 한 번으로 바뀐단 말인가. 여성 또한 그 틀에서 어찌 벗어나 있겠는가. 피해자이면서도 가해자의 의식이 있을 테고... 에고 머리 아프다.


정기적으로 약을 먹듯 페미니즘을 공부해야지 싶다. 아이들에게도 권하고 있지만, 아들은 관심을 갖고 보는 듯하지는 않다. 언젠가는 보면서 돌아볼 때가 오겠지. 


어쨌든 삶을 바꾼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지금까지의 나를 거의 버려야 하는데... 옆에 동지가 있다면, 덜 두렵지 않을까. 덜 비틀거리지 않을까.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라지만, 그 글귀 안에는 동지가 있다면 함께 가라는 문장도 하나 있더라.


내가 뭔 소리를 하는 건지...

지우려다 지우려다... 다시 돌아볼 흔적을 남겨두고자..._()_


(며칠 뒤 다시 보면 지우거나 글을 고치거나 할까?)


Posted by 익은수박
,

경향신문에서 연재 중인 <세계여성 지성과의 대화> 가운데 반다나 시바 인터뷰를 옮겨둔다. 

이 연재 시리즈는 여기 가면 볼 수 있다. <세계 여성 지성과의 대화> 바로가기(클릭)


---


원문보기: 



[세계 여성 지성과의 대화](3)반다나 시바(상)“2차 대전 지원 기업, 농화학 산업 주도…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ㆍ“올바른 행동이 성공이자 평화…우린 우리의 사람다움 지켜야”

이탈리아 나브다냐 회원들이 “이윤보다 사람이 우선”이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범대서양투자무역동반자협정(TTIP)’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Manlio Masucci 제공

이탈리아 나브다냐 회원들이 “이윤보다 사람이 우선”이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범대서양투자무역동반자협정(TTIP)’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Manlio Masucci 제공

두 공간에서의 삶을 동시에 살아갈 수 있는 현대이다. 온라인의 공간, 그리고 실제 부딪치고 소리 내는 오프라인 생활현장. 개인의 생활이 이 둘의 경계가 모호해질 정도로 연결되는 만큼, 세상을 움직이는 돈과 권력 또한 이 둘의 영역에서 엽렵하게 개인의 모든 것을 수집하고 있다. 빅데이터 정보가 기업과 정치권력의 실제 이익으로 귀속되는 온·오프 소비정치시대이다. 개인이 단속해야 할 곳은 어디까지일까? 물리학자이자 농부이며 사상가인 반다나 시바(65)와 함께 오늘날 지구를 관통하며 진화해가는 ‘자본의 질주’를 진단해 본다.

유럽과 북미에서 더욱 절대적인 신뢰를 받고 있는 반다나 시바는 세계를 대표하는 환경운동가이자 농업정책가로 반세계화 시민운동을 이끌고 있다. 그와의 대화는 1월6일 인도의 나브다냐(Navdanya) 뉴델리사무실에서 이뤄졌다. 나브다냐는 ‘지구는 한 가족’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반다나 시바가 30여 년 동안 매진해온 지구 민주주의 운동이다. 이 운동은 세계의 토종 씨앗을 갈무리하며 생태적인 유기농사를 이끈다. 인터뷰에 앞서 찾은 인도 북부 데라둔, 나브다냐 생물다양성 보존 농장에는 프랑스, 미국, 네덜란드, 라닥에서 온 젊은이들이 생태농법을 배우고 있었고, 정갈한 고요 속에서 초록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시바는 종자 전쟁, 식량 전쟁, 금융 전쟁, 디지털 전쟁이 하나의 사이클 속에서 개인들을 공습하고 있다고 경고하며 “올바른 행위, 그것이 곧 평화”라고 역설했다.

안희경: 여성 지성과의 대화 첫 대담자인 쥘리에트 비노슈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72년이 넘었지만 아직 우리는 평화를 찾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두 전쟁 사이에 있는 평화는 진짜 평화가 아니라고요. 그런데 선생님은 우리가 사는 이 시간이 바로 전쟁 속이라고 하십니다. 왜죠? 지금도 창 너머로 평화로이 오가는 사람들의 수다 소리가 들려오는데요.

반다나 시바: 2차 세계대전의 공습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으니까요. 전쟁을 자행하던 기업들이 여전히 농업과 화학산업으로 우리 삶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히틀러에게 독가스를 대던 기업은 농약산업의 대표주자가 됐고, 폭탄공장은 나트륨 비료산업을 선도합니다. 요즘 테러리스트들이 쓰는 폭탄을 왜 질소폭탄이라고 부를까요? 비료로 만들기 때문이에요. 물질적인 면으로 보면 전쟁은 끝나지 않은 거죠. 농업으로 들어와 우리 삶을 계속 죽이고 있습니다. 75%의 물이 죽었고, 75%의 벌과 75%의 토양이 사라졌어요. 기후의 50%가 타격을 받았는데, 이는 앞으로 더 대대적인 인명이 죽을 수 있다는 재앙을 예고합니다. 여기에 한 줌 기득권 무리들이 벌이는 간접적인 폭격, 바로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만들려는 전쟁까지 함께하고 있어요.

안: 2차 대전 역시 후발 산업화 국가들이 새로운 시장을 갖고자 벌인 건데요.

시바: 네, 이들은 계속 새로운 시장을 노리고 있어요. 이제는 그 시장에 화학물질뿐 아니라 유전자변형생물(GMO), 유전공학까지 결합시켰습니다. GMO와 화학물질은 대중을 상대로 벌이는 정치적 도발이에요. 어제 인터뷰하러 왔을 때 제가 서둘러 나갔던 이유도 국회에서 요청이 왔기 때문이에요. 유전자변형 겨자씨를 밀어붙이는 부패사건을 조사하는데, 제 조언이 필요하다고 급히 부른 거죠. 인도에서는 아직 유전자변형 식량은 생산하지 않습니다.

안: 하지만 인도의 시장에도 많은 GMO 제품이 있을 텐데요. 한국산 간장, 과자가 늘어선 가게라면 그 원재료가 대부분….

시바: 미국에서 오죠. 유전자변형 콩에 라운드업을 사용해 키웁니다. 라운드업은 베트남 전쟁에서 쓰던 고엽제와 같은 성분의 제초제예요. 이를 사용하는 GMO 종자를 키웠던 스리랑카 농민 4만명이 죽었습니다. 신부전으로요. GMO 제품은 또 다른 차원의 전쟁이죠. 겨자는 수입 문제가 아니라, 생산의 문제거든요. 이미 인도 정부가 유전자변형 가지를 밀어붙인 적이 있었지만 막아냈습니다. 아직까지 인도에서 GMO 농작물을 재배하지는 못해요. 그런데, 지금 겨자를 미는 거죠. 인도사람들이 늘 먹는 중요한 식량이라서 그래요. 다들 겨자기름으로 요리하고, 피클도 만들고, 주요 칼슘원인데다 봄을 나타내는 색도 겨자색이죠. 문화공격이에요. 정치적 전쟁이고, 지식전쟁입니다. 왜냐? 유전자조작은 과학을 죽이는 날조된 체계니까요. 과학은 바로 아는 겁니다. 영어 science는 “안다”는 뜻을 가진 scio- 라는 말에서 왔어요. “안다”라는 의미는 제게 있어 열정이에요. 저는 무지한 채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지구가 작동하는 원리를 알고 싶고,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방법을 알고 싶고, 사람들이 권리를 더 잘 행사할 방법을 알고 싶어요. 그래서 지구를 파괴하고, 삶을 파괴하고, 1995년부터 30만명의 인도 농부를 자살로 몰아간 그 사람들의 실체를 드러내려는 겁니다.

안: 그 30만명이라는 자살자 숫자는 들을 때마다 믿기 힘듭니다.

시바: 거기에 작년에만 자살률이 또 14% 올랐어요.

안: 왜죠?

시바: 정부가 사람들의 일상을 가지고 더 비참한 게임을 시작했답니다. 지금 현금을 못 쓰게 해요. 당신도 여기서 60달러 이상 현금을 쓸 수 없었을 거예요.

안: 공항에서도 그 이상 환전을 안해 주더군요. 저는 화폐개혁 기간이라서, 묻혀있는 현금을 순환시키려는 일종의 경제 활력을 모색하는 작업이라 생각했어요.

시바: 아닙니다. 모두 신용카드를 쓰라는 강압이에요. 돈을 쓰되 카드로 쓰라는. 그러면 가난한 사람들은 돈을 만질 수가 없어요. 우리 집 앞에 배추를 들고 와 정직하게 값을 부르는 그이는 무슨 수로 돈을 만지겠습니까? 자살이 늘 수밖에요. 자, 제가 전쟁이라고 부르는 예를 또 들어 볼까요. 이 기업들, 몬산토 바이엘, 듀폰, 신젠타 모두 2차 대전에 비용을 대던 기업의 연장입니다.

안: 작년 9월, 바이엘이 몬산토를 샀죠.

시바: 거기에 듀폰이 하나로 합쳐졌고, 신젠타가 중국회사와 합병했어요. 중국시장 진출이라는 전략이죠. 이 모두는 아이지 파벤(IG Farben)과 하나입니다. 거대 화학기업으로 뉘른베르크 재판에도 섰던 전범기업이죠. 아이지 파벤의 파트너 회사로 바스프(BASF)도 있고, 모비(MOBAY, 몬산토 바이엘)도 있어요. 우리는 이들을 독성 카르텔(Poison Cartel)이라고 불러요. 지금도 전쟁이에요.

안: 신젠타, 바스프, 몬산토 모두 한국에 나와있는 기업들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비료는 유기농으로 전환되고 있는데요. 2004년엔 화학비료 사용 농가에 대한 보조금도 중단했고요. 비료만이라도 변화하고 있다는 건 뭔가 시스템이 달라지고 있다는 거 아닐까요?

반다나 시바가 지난달 6일 인도의 나브다냐 뉴델리 사무실에서 인터뷰하며 거대 기업에 의한 화학물질과 유전자변형생물(GMO) 산업의 위험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안희경씨 제공

반다나 시바가 지난달 6일 인도의 나브다냐 뉴델리 사무실에서 인터뷰하며 거대 기업에 의한 화학물질과 유전자변형생물(GMO) 산업의 위험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안희경씨 제공

시바: 글쎄요. 유기농은 그들의 공습을 멈추고자 모색하는 우리들의 저항인데요. 하지만, 같은 공격자에 의해서 전쟁은 계속 다양하게 진행되어 왔어요. 그러니까 진정한 평화는….

안: 100년 동안 오지 않은 거네요.

시바: 네, 우리는 100년의 대량학살, 100년의 생태학살이라고 부릅니다. 강제 수용소에서 대량학살을 했고, 땅을 일구는 농민 수십만명을 죽였고, 지구 아이들의 미래를 죽이는 것도 학살이니까요.

안: 농사는 지역적인 주권의 문제 아닌가요? 농민의 선택이고, 종자와 농법의 혁신은 지난 세기 처음으로 인류를 기근에서 벗어나게 했는데요.

시바: 지역의 주권은 많은 조약, 협정으로부터 어마어마한 공격을 받아왔습니다. 세계무역기구(WTO), 자유무역협정,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지역 식량체계를 파괴했고, 그 땅에 독성화학제품을 쏟아부었죠. 저들이 비타민A를 증진시켰다며 심게 한 볍씨, 골든 라이스(Golden rice)도 결국 독성 카르텔이 조작한 녹색과학이라는 신기루입니다. 비타민A는 녹색잎 채소만 잘 먹으면 충분해요. 종자를 조작해 상품으로 만들어 사람들을 함정에 빠뜨린 겁니다. 어떤 GMO 종자도 유기농 종자보다 영양이 높은 것은 없어요. 이 기업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수십조원의 시장을 눈앞에 보고 있으니까요. 오늘 아침 스리랑카에서 전화가 왔더군요. 이 다국적기업 카르텔이 정부를 접수해서 공공 기금으로 독성카르텔을 확산하려고 하니 도와달라고요. UN과 각국 정부를 손아귀에 넣은 것도 모자라 지금은 현금거래까지 건드리려 합니다.

안: 농화학산업이 금융에까지 손을 댄다는 건가요?

시바: 네. 1조2000억달러의 경제가 얼마만 한 규모인지 상상할 수 있나요? 거기의 95.7%가 현금거래로 이뤄져요. 인도 시장이죠. 순차적으로 설명할게요. 빌 게이츠도 이 게임에서 큰 몫을 쥐고 있습니다.

안: 빌 게이츠가요?

시바: 자선사업가로 알려진 그 빌게이츠요. 우리 시대의 가장 대단한 식민지 개발자입니다.

안: 하지만 엄청난 돈을 아프리카에 기부하는데요?

시바: 시장을 창조하려고 하는 거죠. 그는 아프리카를 녹색혁명의 동맹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토종 씨앗을 지키던 탄자니아 농부들이 체포됐어요. 바로 빌 게이츠가 GMO 종자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빌 게이츠는 자선사업가라는 이미지를 먼저 창조했고, 그 뒤에서 독성카르텔과 함께 UN에 돈을 좀 주고 WHO를 손에 넣었어요.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약간의 돈을 주고 모든 식량농업기구를 장악했습니다. 유니세프(UNICEF·유엔아동기금)에 돈을 내고는 어린이를 위한 재단들을 잡았고, 그런 다음 자신을 위한 시장을 창조하고 있어요.

안: 그가 만든 건 소프트웨어 시장 아닌가요?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이 밑천이고요. 그의 프로그램은 지금 무료로 누구나 쓸 수 있죠.

시바: 아닙니다. 소프트웨어 ‘특허’를 통해 번 돈입니다. 우리는 그의 소프트웨어를 복제할 수 없어요. 그래서 빌 게이츠 말고, 원래 개발자들이 소프트웨어를 개방해야 한다고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빌 게이츠는 또 다른 위험한 시도를 하는데, 생명공학에 정보기술을 융합하고 금융기술까지 융합하는 공격입니다. 인도 정부가 지폐사용 금지 선언을 하자마자 빌 게이츠가 달려와 연설한 이유도 여기 있어요.

안: 왜 인도죠?

시바: 가장 큰 시장이니까요. 식민지를 개발할 때, 집중하는 것은 단 한 가지예요. ‘얼마나 많이 가져올 수 있는가?’ 그가 새로 만든 회사가 에디타스예요. 에디트, 편집이죠. 생명을 조각조각 섞는 거예요. DNA 차원에서 여기서 잘라서 저기로 붙이고. 그는 생명을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생각합니다. 하지만 생명은 스스로 조직되어 있는 유기체예요. 진화하는 네트워크입니다.

안: DNA 차원의 게놈 편집(genome editing)은 작년에 엄청난 뉴스였습니다. 바이오산업에 새바람을 일으킬 혁신이라고 들썩였는데요.

시바: 거기에 금융테크놀로지까지 합병해 ‘화폐와의 전쟁’을 선포했어요. 그들의 용어입니다. 자 보세요. 제가 당신한테 100루피를 주면, 당신은 홍차를 사 먹으려고 차이 장사에게 돈을 주죠. 그는 또 다른 곳에 돈을 쓸 거예요. 고용이 일어나고, 생산이 일어나고, 진짜 음식이 만들어지고, 실제 웰빙이 진행됩니다.

안: 한 마을에 나그네가 와서 여관방을 잡으면, 돈을 받은 여관주인이 푸줏간에 가서 빚을 갚고, 푸줏간 주인은 술집 외상값을 갚고, 나그네가 그날 묵지 않고 돈을 찾아간다 해도, 반나절 만에 마을에 돈이 돌아 다들 숨을 돌린다고 합니다. 경제학자들이 설명하는 돈의 힘이죠.

시바: 그런데, 100루피를 비자나 마스터 카드로 지불한다면요? 디지털 단계에서 은행은 즉각적으로 6%에서 10%의 수수료를 벌어요. 그다음 두번째 거래에서 또 10%를 벌죠. 그러니까 100루피 지폐가 100번을 옮겨 다닐 때는 늘 100루피일지라도, 사람들의 생활이 달라지는 반면, 디지털 세상에서는 아닙니다. 100번의 돈거래는 돈주인에게만 기회를 줘요. 돈주인은 1만루피도 벌 수 있어요. 디지털 이체는 소프트웨어 특허로 돈을 버는 것과 같아요. 우리는 소프트웨어를 공공재라 생각하지 않죠. 빌게이츠가 특허라는 구조를 만들어 우리 생각까지 바꿨어요. 하지만 돈은 공공재에요. 다른 사람과 지폐를 교환하며 생활을 만들어 가니까 공공재 영역에 들어가죠. 하지만 특허받은 소프트웨어를 통해 금융거래되면 수수료(임대료)가 발생하면서 돈은 개인의 손아귀로 가게 됩니다.

안: 오늘날 하느님으로 일컬어지는 건물주와 같은 시스템이군요.

시바: 최상의 권력이죠. 임대주는 일을 하지 않아도 노동자인 나로부터 임대료가 걷히고 권력도 휘두르고.

안: 자유무역협정의 마지막 단계에서 금융개방에 박차를 가하는 것도 바로 그 돈이 돈을 가장 많이 벌기 때문인데요. 금융경제 역시 시장 강탈을 위한 2차 대전과 같은 패턴입니다.

시바: 완전히 똑같죠. 특히 강조하고 싶은 건 이들의 배후입니다. 몬산토와 바이엘이 합병했을 때, 어떻게 작은 바이엘이 거대한 몬산토를 살 수 있을까 의아해했어요. 파악해 보니 배후에 다른 소유주들이 있더군요. 바로 금융거래로 돈버는 대형 투자 펀드들이에요. 뱅가드(Vanguard·세계 최대 투자기업, 자산 보유 3조달러), 캐피털 그룹(Capital Group·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투자기업, 자산운용액 1조3009억달러) 같은 기업들요. 이들이 독성 카르텔뿐 아니라 코카콜라, 펩시, 마이크로소프트, 모든 걸 갖고 있어요. 그래서 금융 전쟁, 종자 전쟁, 식량 전쟁, 디지털 전쟁은 모두 같은 사이클에서 운영된다고 봐야 하는 거죠.

안: 2008년 금융위기를 맞고 금융자본 개방이 몰아칠 때부터 들던 생각이 있어요. 이제 시민은 사라졌구나. 오직 ‘고객님’만 남은 세상이 된 거죠. 성인이 된다는 의미도 크레딧카드 빚을 얻는 자본주의의 시민 ‘고객님’이 되는 거고요.

시바: 제가 렌트 이코노미 (rent economy 임대경제)라고 부르는 이유도 그래요. 농부들은 마땅한 삶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 농민도 마찬가지죠. 나는 아직도 2003년 칸쿤에서 자결한 이경해씨를 잊지 못합니다. 그는 자유무역이, WTO가 세상 농부를 죽이고 있다고 알렸어요. 한국농부들은 1993년부터 저와 함께 싸웠습니다. 독성 카르텔들이 이제 화학제품으로는 더 이상 돈이 안되니 씨앗을 갖겠다고 바이오산업으로 옮겨가던 1987년, GMO의 출현을 알게 됐어요. 아직 유전자 변형이 무엇인지 상상도 못하던 시절이죠. GMO는 그들이 생명의 창조자가 되겠다는 도발이에요. 세계 곳곳에 전했습니다. 1993년, 대규모 저항운동을 조직해 WTO 합의문이 서명되기 1년 전, 인도 벵갈루루로 불러 모았습니다. 프랑스 농부, 아프리카 농부, 일본 농부 모두 모였죠. 거기 한국 농민이 왔어요. 50만명의 세계 소농들이 함께 외쳤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제게 요청하더군요. 조직을 만들자고. 우리는 세계 소농 조직인 라 비아 캄페시나(La Via Compesina·농민의길, 88개국의 188개 조직 가입, 약 2억명 회원, 2013년 기준)를 탄생시켰습니다. 1994년, WTO가 설립되고, 인도정부는 정보기술산업과 농민들을 맞바꿨습니다.

안: 한국에서는 자동차 산업 등의 수출과 맞바꿨죠.

시바: 정작 거대자본은 어떤 비용도 내지 않아요. 싱가포르에서 열렸던 첫 WTO 회의 덕으로 누리는 완전 면세죠. 두번째 회의는 시애틀에서 열렸어요. 그다음이 도하였고, 칸쿤이었습니다. 이경해씨가 자결한. 그리고 다음해 우리는 홍콩에서 모였어요. 한국 농민들은 그때도 12월 차가운 바닷물에 뛰어들어 헤엄치며 회의를 막는 시위를 했습니다.

안: 물속에서 저항의 장막을 펼친 거네요.

시바: 용감했어요. 지난달에 UN생물다양성 회의에서 주는 상을 받으러 칸쿤에 갔습니다. 운전하는 이에게 물었죠. 여기에서 운전한지 얼마나 됐냐고요. 오래 했다고 하더군요. 13년 전 WTO회의도 알겠군요 했더니, 안다고 해요. “한국 농부 기억해요?” 했더니 그러더군요. 어떻게 잊겠냐고. 네, 우리는 다 기억하고 있어요.

안: 백남기 농민의 마음 또한 다시 헤아리게 됐습니다. 국가폭력의 희생자라는 좁은 의미의 해석이 아니라 토종 종자를 지키고 땅과 국민의 밥상을 살리려 했던 농민운동가의 삶이 있었기에 그 거리에 나섰던 마음 말입니다. 그런데요. 거대자본이 씨앗 해적질에서, 디지털 해적질로 견고해지고, 금융자본으로 진화해온 걸 들으며 무력감이 생깁니다. WTO는 FTA, TPP로 금융, 정보, 의약, 결국 유전자까지 잠식했는데, 이는 냉정히 보면 개인, 생산자와 소비자의 실패 아닌가요?

시바: 그렇지 않아요. 우리는 결코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결코 올바른 행동에서 실패한 적이 단 한번도 없으니까요. 올바른 행동을 한다는 것이 곧 성공입니다. 실패는 당신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데 하지 않았을 때, 그때 있는 거예요. 올바른 행위, 그것이 평화입니다. 그것이 붓다가 가르친 거죠. 올바른 생활이란 올바른 행동으로 우리가 연결되어 있는 관계들을 이해하며 바른 길로 나아가는 겁니다. 바른 법(정법·The right Dharma)이죠. 아름다운 인도경전 기타에서 크리쉬나가 말합니다. ‘결코 그대의 행동이 맺을 열매를 바라보지 마라. 오직 행동을 보아라.’ 왜냐하면 올바름을 행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기 때문이에요. 그 행동으로 무엇이 나오든 그건 미리 판단내릴 영역이 아니죠. 인과는 꼭 연역적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자유무역을 막아내려던 일은 다 실패한 거 아냐?’라고 물을 수 없어요. 아니,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정직한 생산, 진실한 무역, 농부의 삶을 지키고 바른 먹거리와 건강한 식량을 말하는 그 일을 하는데 실패했는가?’라고 물어야죠. 만약 그리 행동하는데 실패한다면, 그날 우리는 실패한 겁니다. 그것이 진짜 우리의 패배죠.

안: 그 길이 점점 더 가파르고 고될 듯합니다.

시바: 어렵죠. 그들이 더 어려운 길로 만들고 있고요. 평범했던 일상을 범죄로 만들었으니까요. 농부들이 1만년 동안 보존해오던 씨앗을 어느 날 갑자기 몬산토, WTO가 불법으로 만들었습니다. 2014년 유럽에서 종자보존 규제법을 추진했어요. 유럽연합의회에 가서 농부들을 대변했습니다. 가까스로 철회시켰죠. 멕시코에서 부르더군요. 상원에서 농민의 권리를 말해야 한다고. 미국은 씨앗을 지키는 이들을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더군요. 또 갔죠. 미국인들과 간디의 비폭력 정신을 수련했습니다. 우리는 단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모든 곳에서 포기하지 않았어요. 그들은 마지막 벌을 죽이고, 마지막 농부, 마지막 아이, 우리의 마지막 자유까지도 파멸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는 당부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일이 있어요. 반드시 해내야 하는 일. 간디 선생께서 말씀하셨죠. ‘부당하고 잔악한 법은 맞서 싸워야 한다. 그것이 사람의 의무이다.’ 우리는 우리의 사람다움을 지켜내야 합니다. 인간이기에 마땅히 인간으로 살아가는 겁니다.



[세계 여성 지성과의 대화](3)반다나 시바(하)“세계화가 만든 탐욕의 경제, 증오 정치로 여전히 세 유지”

ㆍ“여성의 자비심이 바탕 된 공유경제가 지구를 살린다”

프랑스와 네덜란드, 미국, 캐나다 등지에서 온 젊은이들이 인도 북부 데라둔에 있는 나브다냐 생물 다양성 보존 농장에서 유기농사를 배우고 있다. 안희경씨 제공

프랑스와 네덜란드, 미국, 캐나다 등지에서 온 젊은이들이 인도 북부 데라둔에 있는 나브다냐 생물 다양성 보존 농장에서 유기농사를 배우고 있다. 안희경씨 제공

세계를 대표하는 환경운동가이자 농업정책가이며 반세계화 시민운동을 이끄는 반다나 시바. 지난달 6일 인도 나브다냐 뉴델리 사무실에서 진행된 그와의 대화를 상편(▶경향신문 2월1일자 8·9면 바로가기)에 이어 소개한다. 그는 앞서 종자전쟁, 식량전쟁, 금융전쟁, 디지털전쟁이 하나의 사이클 속에서 개인들을 공습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 하편에서는 진정한 공유경제의 의미, 4차 산업혁명은 과연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우리의 생각을 이끈다. 그는 전 지구적 위기의 대안으로 지구민주주의와 에코페미니즘을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개인의 역할이 중심에 있는 대안이다. 먹고, 생각하고, 소비하는 매일매일의 선택들, 과연 개인의 오늘은 어떻게 채워져야 할까. 반다나 시바가 이끄는 나브다냐의 밥상은 담백했다. 골고루 싱싱하게 차려졌고, 차이(차 음료) 역시 달지 않았다. 입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을 보살피며 세상의 평화와 건강을 만드는 그의 사상 또한 간결하다.

안희경: 양자역학으로 캐나다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인도에 와서도 정부의 지원을 받던 과학자였는데 농부가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반다나 시바: 농부가 되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그런데 계속 부닥치는 현실이 저를 농업으로 이끌더군요. 히틀러와 손잡고 돈 벌던 기업들이 농업으로 들어와 전쟁을 계속한다는 걸 깨달았을 때, 땅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죠. 평화를 소망하니까요. 비폭력 농업경제를 만들겠다고 서원했어요. 그들은 우리네 밥상뿐 아니라 주머니까지 탈탈 털어가는 도구를 끊임없이 고안해내고 있습니다. 몬산토가 기후 관련 회사인 클라이메이트 코퍼레이션(The Climate Corporation)과 2013년 합병했습니다. 이 기업은 토양분석기업, 기계산업기업과 이미 합병한 상태에서 몬산토 밑으로 간 거고요. 그 다음 몬산토는 실리콘밸리를 이끄는 정보기업과 합병합니다.

안: 거대한 궤도를 그리며 기계를 거쳐 정보산업으로 집중하는군요.

시바: 스파이드론을 띄우고 트랙터에 스파이웨어를 장착해서 농부들이 뿌리는 유전자변형생물(GMO) 씨앗을 찾아내고, 다른 한편으로는 토양 데이터를 손에 쥐려는 거죠. 이미 많은 농부들이 날아온 GMO 씨앗 때문에 몬산토한테 고소당해왔습니다. 여기에 토질정보를 이용하는 패키지 신상품까지 만들어 농부들한테 팔려는 겁니다. 빅데이터를 사유화하려는 거예요.

안: 인공지능과 같은 4차 산업혁명이 오히려 농업을 살릴 거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노동력이 사라지는 농촌에 진화된 기계가 들어가면 기존 농기계로 유실되던 흙도 살리고 화학제품 사용량도 줄지 않겠냐고요.

시바: 스파이드론이나 인공위성을 띄운다고 해서 미생물의 세계, 그러니까 실제 흙의 활동을 볼 수 있는 건 아니에요. 1세제곱인치 흙 속에는 8백만이나 되는 균이 살아요.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공유경제 시스템을 이루며 아낌없이 주는 삶을 살죠. 하지만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기계를 통해서도 질소, 인, 칼륨으로 측정될 뿐이고. 몬산토가 농부들에게 흙을 살리는 균을 팔까요? 아닙니다. 기기를 파는 겁니다. 농부한테 이럴 거예요. ‘당신네 눈에는 땅속 사정이 안 보이니 토질을 개선할 성분과 양을 정확히 넣지 못한다. 그러니 우리 기기를 써라. 트랙터에 로봇을 부착하면 질소, 인, 칼륨 함유량을 모니터링할 수 있다.’ 속셈은 GMO 씨앗을 만들어 거기에 맞는 화학비료랑 제초제를 팔던 것과 똑같아요. 인공지능을 도입한 기계는 인위적인 사실을 포함해 새로운 판매 시스템을 창조하는 겁니다. 인공지능은 한계가 있어 흙의 지능을 복제할 수 없어요. 우리 호흡으로 들어오는 수십억 생명의 활동을 어떻게 다 정보화해냅니까.

안: 미생물의 세계야말로 진정한 공유경제라고 하셨는데요. 제러미 리프킨은 이미 현대의 생활 속으로 공유경제가 들어온 시대라고 합니다. 인터넷을 통해 수평적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그 망을 통해 각자가 주인이 되면서 소비자가 되는 시대로요.

시바: 모든 경제가 디지털화되면서 거대자본은 인도에서 화폐와의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공공재인 화폐 사용을 막고 카드를 쓰게 해서 거래마다 그 프로그램을 돌리는 비자카드, 마스터카드로 이윤이 가게 하죠. 이는 공유경제가 아니죠. 정보만 공유하는 것뿐이에요. 우버택시도 마찬가지 입니다. 프로그램에다 택시를 예약하는 플랫폼이죠. 자동차를 나눠 쓰는 것이 아니라요. 금융과 디지털 회사를 소유한 사람들이 왜 갑자기 억만장자가 됐을까요? 모든 디지털 거래마다 수수료를 챙기기 때문입니다. 차를 운전하지도 않은 사람이 예약이 발생할 때마다 돈을 거둬요.

안: 우버택시나 에어비앤비 시스템을 보며 착잡했습니다. 그나마 적더라도 자기 자산이 있는 사람들이 벌이는 빚잔치 같아서요. 우버를 운전했던 분 말이 먹고살려면 회사 택시를 모는 것 이상의 노동시간을 들여야 한다고 하더군요. 택시회사에 자기 차를 몰고가서 일하는 것과 같은 기분이죠. 실제로 우버 이후에 미국 대도시 택시회사들이 줄도산했습니다.

시바: 프로그램이 일하고, 노동하지 않는 사람이 가장 큰돈을 만집니다. 노동하지 않는 자가 노동하는 사람들이 내는 수수료로 억만장자가 됩니다. 수수료산업이죠.

안: 선생님은 세계화에 앞장서서 반대해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국가주의가 세를 확장하고 있어요. 세계화가 싫다고 외치는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됐고, 브렉시트도 영국에서 이행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시바: 20년 동안 기업 중심의 세계화 속에서 대중이 고통받아왔지요. 사람들이 말해요. ‘이젠 좀 그만하자’고. 여기에 금융자본, 정보기술자본, 대형 농업자본이 매우 영리한 대응을 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영국이 했던 방식으로요. 1857년 세포이항쟁이 일어나고 동인도회사가 해체되자, 영국은 이렇게 대응했습니다. ‘인도인들이 우리에게 맞설 수 있었던 것은 똘똘 뭉쳐 있기 때문이다. 먼저 이들을 분열시키자. 그리고 통치하자!’ 영국은 매우 인위적이고 배타적인 정체성 개념을 만들어냅니다. 성공적이게도 인도인들끼리 싸움이 붙었어요. 잘 살던 이웃들이 무슬림과 힌두로 격돌했고, 결국 파키스탄으로 분할되었죠.

환경운동가이며 농부인 반다나 시바가 인도 북부 데라둔에 있는 나브다냐 농장에서 유기농으로 거둔 씨앗을 보여주며 웃고 있다. 안희경씨 제공

환경운동가이며 농부인 반다나 시바가 인도 북부 데라둔에 있는 나브다냐 농장에서 유기농으로 거둔 씨앗을 보여주며 웃고 있다. 안희경씨 제공

안: 인도에서 운전해준 분이 무슬림인데요. 제게 친한 무슬림 친구들이 여럿 있다고 하니 그제서야 미소지으며 자기 본명이 칸이라고 알려주더군요.

시바: 그래요. 무슬림들은 포위되었다고 느낍니다. 이런 두려움을 만들어낸 것이 이전부터 통치술로 써오던 분열로 통제하는 방식이에요. 오늘날 통치권력은 사람들의 원망이 커지며 공격받는다 싶으니까 분할통제를 꺼냈어요. 세계화에 진저리 난다고 하니 서로를 탓하게 조장하며 말합니다. ‘서로 죽이도록 놔둬라!’ 실제로 영국 국회의원이 총 맞아 사망하지 않았습니까. 경제 시스템에 저항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서로를 증오하며 문화전쟁을 치르는 덫에 걸려버렸습니다. 인도에서 분열 선동하던 영국이 지금은 자기네 영토에서 사람들을 인종으로 나눕니다. 브렉시트를 보세요. 어떻게 됐죠? 백인이 이민자를 증오합니다. 반세계화 논쟁은 어떻게 축소되었나요? 미국에서는 백인 대 유색인으로 맞서고, 백인 남성 대 여성으로 싸웁니다. 백인우월주의 이슈로 변질되어버렸어요.

안: 신자유주의가 가고 신파시즘이 왔습니다.

시바: 금이 그어진 겁니다. 인간이 조작한 정체성이죠. 어둠입니다. 식민주의가 있기 전에는 피부색을 신경 쓰지 않았어요. 그저 인종이 다를 뿐이었고, 차이를 받아들였죠. 그런데 색깔이 통치의 기준이 됐고, 타 종교도 악마화됐습니다. 모든 사회에는 늘상 남자와 여자가 있어왔어요. 여성이냐 남성이냐로 문화전쟁을 벌일 필요가 없었죠. 고통과 분노는 경제 때문에 발생했고, 반세계화 목소리는 기업이 조장하는 세상에 대한 저항이었는데, 사람들이 분열하게 되면서 원인으로 향하던 목소리는 줄어들었습니다. 거대산업이 저지르는 탐욕의 경제는 두려움과 증오의 정치로 옮겨가면서 그 세를 유지하고 있어요.

안: 그렇다면 국가와 지도자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시바: 세계화가 돈의 힘을 더 키워냈습니다. 그리고 돈의 힘이 국가의 테두리 안에서 시민의 힘을 약화시켰고요. 지도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온갖 방법으로 엄청난 돈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모든 부패한 지도자들은 선거에서 실제로 현금을 챙겨요. 선거에 뛰어드는 기업과 결탁하죠. 인도 경제의 디지털화는 인도에서 정치적으로 진행되고 있어요. 그 뒷배가 제가 ‘뱅가드 카르텔’이라 부르는 로비 집단입니다. 빌 게이츠, 비자카드, 마스터카드, 구글, 페이스북…. 그들이 선거 쇼를 펼치죠. 이들은 또 선거의 전체 과정을 선전의 과정으로 옮겨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텔레비전에 가장 많이 나온 자가, 미디어 감각이 특출난 자가 후보로 나올 수 있는 구조가 된 거죠. 진정으로 괜찮은 지도자는 목소리를 잃거나 범죄자로 몰리거나 물대포를 맞게 됐습니다. 한국의 농민처럼요. 세월호에 남겨진 아이들처럼 무시되는 거죠. 더 이상 사람이 중요하지 않은 거예요. 선거는 점점 더 기업의, 기업을 위한, 기업에 의한 선거로 되고 있어요. 점점 더 많은 부패 지도자가 이어지는 이유입니다. 한국뿐 아니라 곳곳에서 보내오는 신호가 ‘민주주의는 돈에 잡아먹혔다’입니다. 미국에서는 대법원 판결까지 나오길, 기업의 돈이 선거를 훔친 사건을 두고 기업의 표현의 자유라고 했어요. 왜 우리는 지금 민주주의를 제대로 세워내야 하는가 어떻게 일으킬 것인가 묻고 또 물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제가 글을 쓰고 지구민주주의(Earth Democracy)에 대해 알리는 이유입니다.

안: 지구민주주의, 제가 선생님을 다시 찾아올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시바: 우리는 각자의 삶을 통해서 민주주의를 회복시켜야 합니다. 투표용지를 통해서만이 아니죠. 투표용지가 깨끗하게 살아날 수 있을 때는 우리가 일상에서 더욱 힘을 갖고, 공동체가 되어 더 강한 힘을 창조할 때예요. 그런 다음 공동체들의 조합으로 삶이란 무엇인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자유란 무엇인가 등등에 대한 또 다른 차원의 생각을 창조하는 거죠. 그렇게 나아간다면 새로운 민주주의의 물결은 일어나게 돼요. 바로 지구와 함께하는 우리의 인간다움이 기능하면서요. 왜냐하면 돈이 휘두르는 권력은 우리 스스로를 보잘것없는 존재로 느끼게 하니까요.

안: 돈은 늘 침울하게 하죠.

시바: 그리고 인간을 퇴행시켰어요. 우리의 뇌를요.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손과 발을 퇴화시켰어요. 건장한 몸을 갖고 있으면서 오직 엄지손가락만 쓰고 있잖아요. 우리의 마음도 퇴화됐어요. 자비로움을 잃었어요. 지금 미국을 보면 알 수 있죠. 우리끼리 헐뜯고 드잡이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물질적 차원에서 일상을 재편해 세계경제를 바꿔나가자고 생각할 겨를이 없어졌어요. 지구민주주의는 대표로 뽑힌 이들이 잘한다고 해서 되지 않아요. 풀뿌리, 바로 우리가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는가에 달렸어요. 민주주의는 반드시 여러 겹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다양한 차원에서 수평적으로 조직되어야 합니다. 공동체로 이어지는 개인들, 공동체로 이어지는 나라들이 국제적으로 결합되는 것이 지구민주주의입니다.

안: 선생님은 평화를 강조하며 유기농을 꼽았고, 거기에 여성을 강조합니다. 에코페미니즘이 여성만이 아닌 지구를 살릴 길이라고 설파하는데요. 왜죠.

시바: 어떤 길을 둘러봐도 우리가 마지막으로 도달할 물음은 에코페미니즘입니다. 어제 어떤 모임에서 참석자들이 묻더군요. 왜 페미니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느냐고요. 제가 답했어요.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이들이 ‘페미니즘은 죽었다’고 말하기에 쓴다고요. 그전에는 굳이 페미니즘이란 용어를 넣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여성의 역량, 기술, 창의력, 힘, 자유라는 말을 써왔죠. 지금은 페미니즘 저편에 있는 그룹 전체가 페미니즘을 죽인 것은 여성이라고 하기에 강조해요. 페미니즘에다 마거릿 대처를 거론합니다. 마거릿 대처, 어쩌면 총리가 될지도 모를 마린 르펜(프랑스 극우정당 대표), 이들은 페미니즘이 아닙니다.

안: 한국의 부패한 여성 지도자도 여성차별을 강조합니다.

시바: 그들은 부패 시스템에 올라탄 여성일 뿐입니다. 여성해방이 아니라, 새로운 여성 포로죠. 부패한 사회는 여성에게 자유를 줄 수 없어요. 여성은 먹거리를 키워왔습니다. 음식을 요리하죠. 아픈 아이를 돌봅니다. 나이든 부모도 보살핍니다. 이것이 진정한 경제입니다. 이것이 자연의 경제입니다. 이것이 지속적인 경제예요. 진정한 돌봄경제, 진정한 공유경제. 공유경제는 전자기기로 창조되지 않습니다. 나누는 공유경제는 공감하는 자비로운 인간에 의해서 창조됩니다. 그렇다면 누가 자비를 일구는 길에서 리더가 될까요? 여성이에요.

안: 또 다른 성차별 아닐까요. 여성만이 희망을 만들 수 있고, 옳다는….

시바: 아니죠. 현실을 직시하는 겁니다. 남성들이 거부감을 가질 일이 아니에요. 그들도 함께 에코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는 거니까요. 에코페미니즘은 여성이냐 남성이냐로 나뉘지 않아요. 에코페미니즘은 우리가 갖고 있는 마음의 종류입니다. 간결합니다. 알아차리는 거예요. ‘자연은 살아 있고, 창조적이며,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생산한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겁니다. 바로 ‘여성성’이죠. 간디 선생께서 말씀하셨어요. ‘비폭력 혁명의 지도자는 여성이 되어야 한다.’ 전쟁으로 물든 남성들 마음에서 자비심이 죽었을 때, 여성이 그 불씨를 계속 살려왔기 때문이에요. 그럴 수 있었던 건 여성이라는 유전자 때문이 아니라, 여성이 있어온 위치, 역할 때문이죠. 자비심은 성염색체 속에 있는 자산이 아닙니다. 지금껏 시장경제가 가치 없다 치부하던 일을 여성이 떠맡아오던 상황에서 길러진 겁니다.

안: 보살핌을 간직한 여성의 마음에서 온 생명을 살릴 길을 발견하는 거군요.

시바: 진실한 공유사회를 길러내는 현장을 건설하는 겁니다. 자비심을 바탕으로, 우리의 지성을 바탕으로, 자연의 지성을 바탕으로. 그렇게 자리한 경제만이 진정한 공유경제라 부를 수 있어요. 그리고 아직 우리 세상에 희망이 있다면 이는 자연이 갖고 있는 지적 능력 때문입니다. 이러한 지성이 우리에게 자유를 줍니다.

안: 모든 생명에는 인간과 다른 방식의 지적 활동이 있죠. 식물의 지능도 지금은 과학자들이 대중의 눈높이에 맞게 보여주고 있고요. 온 생명과 지성을 통해 연결되자, 결국 생명에 대한 깨달음까지 가는 쉽지 않은 길인데요. 저는 박사님 가르침 중에 머리(head), 가슴(heart), 손(hand)을 강조하는 지침을 듣고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바로 손을 강조하시는 말이 반가워서요.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의 사고, 마음, 기분, 결정 등은 몸을 쫓아가는 거 같아요. ‘손’이 갖는 의미는 엄청난 가능성이겠다고 여겼습니다.

시바: 우리의 몸은 분산된 지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분산된 에너지 시스템이죠. 가장 높은 차원의 분산이 바로 지능이고요. 이는 몸 구석구석에 있어요. 모든 세포에. 그러니까 지능이 뇌에 있다는 사고는 아주 인위적인 발상입니다. 그리고 몸의 모든 부분은 기능하려는 욕구가 있습니다. 우리의 존재는 어딘가를 떠돌고 있는 추상적인 마음이 아니죠. 머릿속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자연의 일부이자 그로부터 확장된 존재입니다. 자연의 연장으로 존재하며 공동체를 이뤄요. 내가 지금 당신과 시간을 보내고 있잖아요. 이 시간 속에서 당신하고 나는 하나로 있는 거예요. 우리들은 서로서로의 연장으로 존재하고 있답니다. 우리의 대화가 서로를 연결시켜주고요, 눈맞춤이 우리를 이어주고 있어요. 불교에서는 이를 두고 ‘상호존재(inter-being)’라는 단어로 표현합니다. 분리되어 있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 안에 있는 거죠. 우리는 나무에도 있어요. 나무는 우리 안에 있고요. 그들이 주는 선물로 지금 우리가 이렇게 각자 자기답게 있죠. 자연이 우리의 생명을 만들고 우리의 세포, 우리 몸을 만들어요.

안: 결국 마음은 뇌의 작용보다 확장된 몸 전체의 작용이자 온 세상의 작용인 거네요.

시바: 몸이야말로 우리를 세상과 연결시켜주는 매개체입니다. 내가 탁자를 만지면 탁자가 느껴지죠. 잘 살고자 하는 모두의 실험은 반드시 자연과 사회와 맺고 있는 개인의 관계를 꾸준히 이해하면서 진행되어야 합니다. 다차원으로 온 생명을 이해하는 끈기가 있어야 하죠. 오직 몸이 줄 수 있는 우리의 감각도 함께 깃들여서요. 보세요. 우리의 감각은 멈추지를 않습니다. 몸은 전체로써 알아차리는 주체예요. 그리고 몸의 창조성은 전체가 작동할 때만 충만하게 드러나고요. 오직 충만하게 깨어 있는 자비로운 인류만이 사랑과 보살핌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되어보시죠.

안: 개인이 사회와 자연과 이어지며 힘을 기르는 길, 어떻게 다다를 수 있을까요.

시바: 간디 선생께서 말하기를 우리 모두는 반드시 빵 만드는 노동을 수행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빵을 빚는 노동을 불러냈어요.

안: 먹는 빵이오?

시바: 네, 그는 진짜 노동을 말한 거예요. 컴퓨터 두드리며 돈 벌어 사먹는 빵 말고요. 빵을 빚는 진실한 노동 말입니다. 이 멋진 몸으로 빵을 만들면서, 그러니까 농부가 아니라 해도 집에서 빵은 구워낼 수 있잖아요. 그리고 먹거리도 직접 기르는 겁니다. 그럼 사람들이 말하죠. ‘우린 도시에 사는데요.’ 아시나요? 델리 우리 집 테라스엔 채소가 빽빽하게 자라고 있어요. 당신도 당신의 두뇌를 잘 보살필 수 있습니다. 뱃속을 편안하게 보살핌으로써요. 그럼으로써 우리는 자유를 창조하게 됩니다. 오직 몸이 줄 수 있는 우리의 감각도 함께 깃들여서요. 보세요. 우리의 감각은 멈추지를 않잖아요.

변화의 가능성을 못 미더워하는 이들에게 반다나 시바는 예술가처럼 가보자고 했다. 훌륭한 아티스트가 그림을 그릴 때 아무도 막지 않고 결국 아름다운 작품을 선보이듯, 사회를 움직이는 길에서 각자 예술가가 되자고 한다. 그럼 변화는 온다는 확실함을 느낄 수 있다고. 30년 전 씨앗을 지키자는 외침은 오직 반다나 시바의 목에서만 나왔다. 하지만 지금은 전 세계로 조직되어나가는 거대한 운동이다. 희망에 속을까 마음 사리면서도 희망을 향해 일어서는 우리에게 그의 생은 변화의 증거로 격려를 보내고 있다.



Posted by 익은수박
,

음... 남쪽에서 좋은 벗과 이런 비슷한 공간을 마련하면 좋겠다.

헌책도 새책도, 차도 담소도, 온갖 손작업도... 있는 그런...


기자가 몇 군데 책 제목을 잘못 쓴 게 있어서 바로잡았다.

보관 겸 공유를 위해 여기 옮겨 둔다.

---



베스트셀러도, 신간도 없는 

강남 한복판 4층 ‘최인아책방’의 실험

글 | 김민희 주간조선 기자




▲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차장
고층빌딩이 즐비한 서울지하철 선릉역 7번 출구를 나와 걷다 보면 의외의 간판을 만난다. 가로 세로 1m×1m가 되지 않는 작은 초록색 간판. 간판에는 보일락 말락 작은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다. ‘최인아책방’.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에 내려 작은 문을 열면 탁 트인 공간이 나타난다. 5000여권의 장서가 꽂혀 있는 이곳은 서점보다 도서관에 가깝다. 강남 한복판, 그것도 4층에 이런 공간이 숨어 있을 줄이야.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주인공 센의 기분이 이러했을까. 작은 터널을 통과해 제3의 세계를 만나듯 작은 문 하나를 열자마자 펼쳐진 의외의 광경에 잠시 멍했다.

이곳의 주인은 제일기획 부사장 출신 최인아씨.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광고계의 전설이다. 삼성그룹 최초의 공채 출신 여성 임원으로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라는 카피를 썼다. 최씨는 한창 잘나가던 3년 전 퇴사했다. 그간 산티아고 여행을 다녀오고 책을 지독하게 읽으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다가 지난 8월 중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책방을 열었다. 광고계 후배 정치헌씨와 함께 열었는데, 책방 이름은 정씨가 정했다고 한다.

스마트폰에 밀려 책을 읽지 않는 시대, 서점의 몰락이 기정사실처럼 여겨지는 시대, 최씨의 행보는 대담하다. 최씨는 책방을 열면서 ‘책방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고 했다. 최인아책방의 성공 여부는 출판계에서도 초미의 관심사라고 한다. 책방 오픈 50여일이 지난 시점, 과연 성적표는 어떨까. 지난 10월 10일 오후 최인아책방에서 최인아씨를 만났다. 자분자분 답하는 그의 말에는 묘한 힘이 있었다.

“50여일이 지난 시점에서 성과를 말하기 조심스럽다. 하루하루 (매출이) 다르다. 어떤 날은 확 올라가는데 어떤 날은 확 떨어진다. 그런데 기본은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주변에서는 이 정도면 선방했다고 하더라.”

그가 처음 이곳에 책방을 열겠다고 하자 하나같이 반대했다. 책방이라는 아이템에서 한 번, 강남 한복판이라는 데에서 또 한 번, 4층이라는 데에서 연거푸 “안 된다”는 소리를 귀가 아프도록 들었다. 이유도 다양했다. 젊은 나이도 아니니 만회할 기회가 없다는 이유에서부터 입지가 안 좋다, 4층은 또 웬말이냐는 말을 들었다. “이곳에 이 규모로 책방을 연다고 하니까 독지가가 있냐, 건물주냐고 묻더라. 언제부턴가는 책방을 연다는 말을 아예 안 했다. 내가 흔들릴까봐. 다들 안 된다고 하길래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러면 안 할 건가’ 하고. 잘하면 망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고, 잘되도록 하는 데 힘을 쏟았다.”

최인아책방은 우려와는 달리 강남의 ‘핫’한 공간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모양새다. 공간의 의미와 책방 주인의 메시지를 읽은 사람들은 빈손으로 나가지 않는다. 최씨의 말마따나 ‘기본은 하는’ 책방으로 자리 잡은 것은 이런 고객들의 힘이다. 다녀간 고객들은 “이런 공간을 만들어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남긴다. 예상치 못한 팬층이 또 있다. 바로 동네 주민들이다. “일하는 사람들, 광고하는 사람들의 동선을 생각해서 이곳에 책방을 만들었다. 그런데 뜻밖에 인근 주민들이 많이 오신다. 연배가 좀 있으신 분들이 오셔서 술집이 즐비한 환락가에 이런 공간을 만들어줘서 고맙다며, 잘 운영해서 제발 오래오래 하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 최인아책방에는 지인 150여명에게서 추천받은 책 1600여권이 꽂혀 있다.

광고도 책방 운영도 생각하는 일

최인아씨가 모두가 뜯어말리는 책방을 굳이 연 것은 ‘좋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좋은 일’은 두 가지 차원이다. 하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 또 하나는 세상에 도움이 되는 좋은 일. “앞 단계에서 치열하게 살았고, 성취도 할 만큼 했다. 인생 2막의 우선순위는 달라야 한다고 봤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면서 기왕이면 공동체에도 이익이 되는 일이길 바랐다. 책에서 교집합을 찾았다. 광고도, 책방 운영도 생각하는 일이다. 광고는 기업이나 공동체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을 때 아이디어를 빌려 해법을 찾는 것이고, 책방도 어떤 책을 얼굴로 내세울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어떻게 알리고, 이 책이 어떤 의미를 줄지 생각하는 일이다. 다행히 사람들이 와 보고 새롭다는 말을 많이 한다.”

최인아책방은 기존 서점과는 여러모로 다르다. 베스트셀러나 신간이 거의 없다. 경제, 문학, 에세이같이 분야별로 전시돼 있지도 않다. 책방의 3분의 1에 달하는 1600여권의 책은 지인들의 추천서로 채웠다. 그 책들은 열두 개의 테마로 나눠 진열돼 있다. ‘무슨 책부터 읽어야 할지 고민인 그대에게’ ‘우리 사회가 나아지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이 깊어지는 마흔 살’ ‘서른 넘어 사춘기를 겪는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등. 이 테마 책장에는 한 권 한 권마다 추천인의 ‘북카드’가 꽂혀 있다. 책 추천 이유와 추천인의 간단한 프로필을 손글씨로 쓴 카드다. 바로 이 ‘북카드’가 최인아책방의 트레이드마크이자 책을 사게 하는 힘이다.

“사람들은 어떨 때 책을 찾아볼까? 고민이 있거나 새로운 과제와 맞닥뜨렸을 때가 대표적이다. 누구나 살면서 마주함 직한 질문을 12가지 뽑고, 지인들을 총동원해서 추천서 목록을 받았다. 그 요청이 지독했다. 두 가지 질문을 보냈다. ‘① ‘인생의 책’ 열 권을 꼽고 왜 좋았는지 말해 달라, ② 12개 주제 중 당신에게 의미 있는 주제 세 가지를 뽑은 후 각 질문마다 세 권의 책을 선정, 왜 좋았는지 말해 달라.’ 내가 낸 숙제에 제대로 답변한 사람은 19권의 책을 추천한 거다.”

최씨는 지인 220명에게 ‘숙제’를 내줬고, 그중 150명으로부터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숙제를 내주면서 무리한 부탁을 한 것 같아 미안했는데, 오히려 숙제를 제출한 지인들이 더 고마워했다고. 지인들은 “스무 살, 서른 살, 마흔 살에 읽은 책이 다 다르더라. 나의 20년 인생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됐다”는 소감을 남겼다고 한다. 인터넷에도 엇비슷한 책 추천 앱이 있지만 대부분 익명이다. 이 북카드는 실명이다. 고객 입장에서는 추천인을 만난 적은 없지만 실명이고, 연배도 비슷하고,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람들 마음을 움직인다.

최씨의 생각은 통했다. 실제로 고객들은 북카드가 꽂혀 있는 책들을 많이 산다고 한다. 실제로 이날 고객들의 동선을 봐도 그랬다. 전체 책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북카드 서가 앞에 고객들의 발걸음이 많이 머물렀다. 고객들은 북카드를 책보다 더 관심 깊게 읽고 있었고, 그 북카드만 읽고 책을 빼들어 구입하기도 했다. 최씨는 “북카드는 책과 고객을 연결해주는 보이지 않는 끈”이라며 “누군가를 책까지 데려가는 경로를 디자인했다고 말하고 싶다”고 표현했다.

최씨의 지인들이 가장 많이 추천을 한 책은 1위가 ‘그리스인 조르바’. 2위는 ‘코스모스’였고, 위화의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도 많이 추천받았다. 

책 매대의 카테고리도 재밌다. ‘쟁이들은 어떤 책을 사랑하는가’에는 ‘축적의 시간’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로페셔널의 조건’ 등이, ‘세상의 큰 흐름’에는 ‘오가닉 미디어’ ‘오가닉 비즈니스’ ‘일본 디플레이션의 진실’ ‘소유의 종말’ ‘인공지능 시대의 삶’ 등이,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하면 잘 보낼까’에는 ‘와일드’ ‘신과 인간에 대하여’ ‘중년의 배신’ ‘긍정의 배신’ 등이 진열돼 있다. “‘요즘 재미가 부족한 당신에게’ 매대에 이문구 작가의 ‘우리 동네’ ‘나는 너무 오래 앉아 있거나 서 있었다’를 진열해 놓았다. 개그콘서트 유의 재미만 있다고 생각하는 젊은 사람들한테 ‘이런 재미도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정말로 나는 그 책을 읽으면서 참을 수 없을 만큼 계속 깔깔거렸다.”

최씨가 추천한 이문구 작가의 책 두 권은 금세 최인아책방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이 책방의 최근 한 달간 베스트셀러 1·2위는 ‘오가닉 미디어’와 ‘오가닉 비즈니스’. 둘 다 최씨가 ‘세상의 큰 흐름’ 매대의 중앙에 놓은 책이다. 최인아씨의 힘이다. 최씨는 “직장인이 많아서 디지털시대, 저성장시대 비즈니스에 관심을 뒀다”며 “단순히 ‘디지털’이라는 키워드로 뽑기보다 세상의 큰 흐름 속에서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될까’라는 방향성을 품고 책을 선정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 복층으로 된 최인아책방에서는 클래식 공연, 강연회도 연다. / photo by 이경호 영상미디어 차장

‘최인아’ 브랜드의 힘

사람들은 ‘최인아’를 하나의 브랜드로 인식하고 있었다. 실제로 이곳을 찾는 고객의 상당수는 ‘최인아씨가 과연 어떤 책방을 만들었을까’ ‘최인아씨는 어떤 책을 추천할까’가 궁금해서 온다. 그를 만나고 싶어서 먼 거리에서 찾아오는 고객도 꽤 있고, 구입한 책에 사인을 해달라는 고객도 있다. 최씨는 거의 책방을 지키면서 자신을 믿고 찾아오는 이들을 맞는다. “책방 주인의 사인이라니, 재밌지 않나. 요즘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여쭤 보고 거기에 맞춰 응원의 메시지를 써준다. ‘최인아 드림’ 하려다가 내가 드리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최인아책방’이라고 사인했다. 어제는 나처럼 하던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는 분이 사인을 요청했다. ‘응원합니다’라는 메시지의 사인을 했다.”

최인아책방 매대에는 책이 듬성듬성 놓여 있다. 하도 듬성듬성 놓여 책상인지 매대인지 헷갈릴 정도다. 틈 없이 빼곡하게 쌓여 있는 대형 서점과 비교된다. “처음엔 빽빽하게 놓아 봤다.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 ‘~다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빽빽하게 쌓아 놓는 건 우리답지 않다고 여겼다. (동업인 정치헌씨와) 한 번도 ‘우리(최인아책방)다움’에 대한 구체적인 언어를 나눈 적은 없지만 느끼는 바가 있었던 거다.”

최인아씨가 오랫동안 천착해온 주제는 ‘시간’이다. 그는 ‘알랭 드 보통 인생학교 서울’에서 ‘혼자 있는 시간 잘 지내는 법’을 주제로 강연을 해왔다. 최씨는 ‘시간’의 짝패로 ‘공간’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 이 책방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공간이 주는 매력이다. 이 공간은 책방의 기능에 그치지 않는다. 클래식 공연을 열고 강연도 연다. 최인아씨가 직접 강사로 나서기도 한다.

“온라인, 모바일 시대일수록 이런 공간이 더 필요하다고 본다. 어떤 인간도 온라인에서만도, 오프라인에서만도 존재하지 않는다. 온라인에서 시간을 오래 보낼수록 오프라인에 대한 필요성이 커질 거다. 아마존이 오프라인 서점을 다시 오픈한 것도 이 맥락이라고 본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태생 자체가 개별자인 동시에 사회적 동물이다. 사람들에게 시달릴수록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데, 반면 혼자만 있으면 사람들이 그리워진다. 균형감이 필요하다는 거다. 이 현상이 이 디지털과 오프라인에도 나타난다. 사람들과 부대끼는 시간도 필요하고, 모든 정보와 지식을 품은 디지털을 무시할 수도 없고. 이 둘의 밸런스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공간에 대한 필요성이 커진다.”

그는 책을 신봉하면서도 “책의 힘은 약하다”고 했다. 공간의 매력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다. “사람들을 유혹하는 여가거리가 다양해졌는데, 책은 콘텐츠를 원하는 사람에게 가장 많은 수고를 요구하는 콘텐츠다. ‘책이나 보자’가 아닌 거다. 가장 집중력을 요하는 콘텐츠이기에 여타의 여가거리들에 비해 불리한 콘텐츠다. 그래서 책에까지 오게 하는 힘은 책 자체만으로는 부족하다. 공간의 매력이 대단히 중요하다.”

최인아책방은 읽고 생각하고 쉬는 공간이 많다. 얼핏 보면 북카페를 닮았다. 낮은 테이블을 둔 2인용 의자도 꽤 있고, 1층에는 20여명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2층 복층 서가에는 1인용 의자가 조르르 줄 맞춰 있다. 한데 가만히 앉아 있으면 공간이 말을 걸어오는 듯하다. ‘이곳은 책을 읽는 공간이지, 노트북 작업을 하는 공간이 아닙니다’ 하고. 최인아씨의 의도가 반영된 인테리어다. “요즘 어떤 공간이든 문 열고 들어가면 죄다 노트북 꺼내 놓고 일하는 사람이 많다. 그것만은 우리 책방에서 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책을 읽거나 생각을 하거나 뭔가를 쓰거나 하다못해 ‘멍때리는’ 공간이길 바랐다. 그래서 일부러 테이블을 작게 놓고 1인용 의자들을 놓았다.”

그에게 당면한 도전과제가 생겼다. ‘가성비’를 최우선으로 삼는 고객을 대할 때다. 그도 얌체고객들을 피해갈 수는 없다. 어떤 고객은 책의 원하는 부분만 노트북에 베껴 가고, 또 어떤 고객은 차 한 잔 시켜놓고 책을 쌓아두고 보면서 맘에 드는 페이지만 스마트폰 사진으로 찍어 간다. 심하게는 새 책에 밑줄을 벅벅 그어놓고 가 버리는 고객도 있다. 그는 ‘프로’라는 단어를 꺼냈다.


진정한 프로란?

“내가 쓴 카피 중에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가 있지 않나. ‘프로’가 뭘까. 과거에는 나를 쓸 수밖에, 나에게 일을 시킬 수밖에 없도록 뭔가를 만들어 내놓는 사람이라고 봤다. 요즘엔 프로를 ‘선한 의도로 시작했고, 선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내가 이 책방을 통해 시험에 들었다. 좋은 뜻으로 시작한 일이 정말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걸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시간이다. 가성비를 내세우는 고객은 나를 시험에 들게 한다. 그분 입장에서는 가성비가 높지만 우리 입장에서 그런 분이 많아지면 매우 어려워진다. 개인과 개인, 비즈니스와 비즈니스 간에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이득을 보는 관계는 오래가지 않는다. 본인이 여기에 와서 좋다면 왜 이런 생각을 안 할까. 어떻게 해야 우리가 뜻하는 대로 이 세상이 꾸려질까, 고민이다.”

책방을 열고 한 달 즈음에 책방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게시판이 생겼다. 최인아책방 사용설명서 격이다. 게시판 앞부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2층 서가를 제외한 모든 책이 판매용입니다. 부디 깨끗이 조심스레 다뤄주시고…’. 계획에 없던 게시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선한 의도가 선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이 공간의 힘이 선한 흐름을 새롭게 만들길 기대한다. “평소에 책을 많이 읽지 않는 사람이라도 ‘책이 있는 공간이 이렇게 좋구나’ ‘나도 책을 좋아하는구나’라고 일깨울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10년, 20년 후 내 모습? 저기(책방 코너에 있는 자신의 책상)에 여전히 앉아 있으면 좋겠다.”

인터뷰를 마치자 최인아씨를 만나고 싶어하는 고객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책방 구석구석을 둘러보다 ‘오가닉 미디어’를 샀다. 예정에 없던 책을, 그것도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을 산 건 아주 오랜만이었다.


Posted by 익은수박
,

동네 서점을 노닐다가 쉼보르스카의 유고 시집 <충분하다>를 보았다.

몇 장 뒤적이다 이 시가 눈에 들어왔다.

제목은 안 밝히고 시만 적어 본다.

제목이 뭘까 맞혀 보는 것도 재밌겠다 싶어서...


뭐 여기까지 올 이가 있을까 싶지만!^^


---


                   ㅇㅇ


                                                    _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아이들에겐 첫번째 세상의 종말.


고양이에겐 새로운 남자 주인,


개에겐 새로운 여자 주인의 등장.


가구에겐 계단과 쿵쾅거림, 차량과 운송.


벽에겐 그림을 떼고 난 뒤 드러나는 선명한 네모 자국.


이웃들에겐 이야깃거리, 잠시 따분함을 잊게 해주는 휴식.


자동차에겐 만약 두 대였다면 훨씬 나은 상황.


소설책과 시집들에겐 --- 좋아, 당신이 원하는 걸 맘대로 가져가.


문제는 백과사전과 비디오 플레이어,


그리고 맞춤법 교본이다.


앞으로 두 사람의 이름을 나란히 쓸 때 어떡하면 좋을지 적혀 있을 텐데 ---


접속사 '그리고'로 연결해야 하는지,


아니면 두 이름을 분리하기 위해 마침표를 사용해야 하는지.

Posted by 익은수박
,

지난 주에는 '바람'을 노래한 시를 나누었다.

바람... 어찌 보면 우울과 번민과 아픔을 시원하게 날려줄 같다가도

현재를, 기쁨을, 신남을 순식간에 날려버릴 것 같은 그런 바람.

아니면 저 멀리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전해줄 메신저이거나.

뭐, 그런 '바람'을 

암튼 '바람'에는 참 많은 바람이 담겨 있는 듯했다.


---


바람은 왜 등 뒤에서 불어오는가

 

_ 나희덕

 

바람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순간

눈이 멀 것만 같아

몸을 더 낮게 웅크리고 엎드려 있었다.

떠내려가기 직전의 나무뿌리처럼

모래 한 알을 붙잡고

오직 바람이 지나가기만 기다렸다.

그럴수록 바람은 더 세차게 등을 떠밀었다.

 

너를 날려버릴 거야

너를 날려버릴 거야

저 금 밖으로, 흙 밖으로

 

바람은 왜 등 뒤에서 불어오는가

수천의 입과 수천의 눈과 수천의 팔을 가진 바람은

 

나는 엉금엉금 기어서

누군가의 마른 종아리를 간신히 붙잡았다.

그 순간 눈을 떴다

 

내가 잡은 것은 뗏목이었다.

아니, 내가 흘러내리는 뗏목이었다.



----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_ 포루그 파로흐자드

 

나의 작은 밤 안에,

바람은 나뭇잎들과 밀회를 즐기네

나의 작은 밤 안에

적막한 두려움이 있어

 

들어 보라

어둠이 바람에 날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나는 이방인처럼 이 행복을 바라보며

나 자신의 절망에 중독되어 간다

 

들어 보라

어둠이 바람에 날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지금 이 순간, 이 밤 안에

무엇인가 지나간다

그것은 고요에 이르지 못하는 붉은 달

끊임없이 추락의 공포에 떨며 지붕에 걸쳐 있다

조문객 행렬처럼 몰려드는 구름은

폭우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한 순간

그 다음엔 무

밤은 창 너머에서 소멸하고

대지는 또다시 숨을 멈추었다

이 창 너머 낯선 누군가가

그대와 나를 향하고 있다

 

,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푸르른 이여

불타는 기억처럼 그대의 손을

내 손에 얹어 달라

그대를 사랑하는 이 손에

생의 열기로 가득한 그대 입술을

사랑에 번민하는 내 입술의 애무에 맡겨 달라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바람 잘 날 없어라

 

_ 박노해

 

바람 잘 날 없어라

내 생의 길에

온 둥치가 흔들리고

뿌리마다 사무치고

 

아 언제나 그치나

한 고비 넘으면 또 한 고비

이렇게 살아야 하나

이렇게 싸워야 하나

 

바람 잘 날 없어라

울지 마, 살아 있다는 것이다

오늘 이 아픔 속에 외로움 속에

푸르게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다





추풍에 부치는 노래

 

_ 노천명

 

가을바람이 우수수 불어옵니다

신이 몰아오는 비인 마차 소리가 들립니다

웬일입니까

내 가슴이 써늘하게 샅샅이 얼어듭니다

 

인생은 짧다고 실없이 옮겨 본 노릇이

오늘 아침 이 말은 내 가슴에다

화살처럼 와서 박혔습니다

나는 아파서 몸을 추설 수가 없습니다

 

환혼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섭니다

하루하루가 금싸라기 같은 날들입니다

어쩌면 청춘은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었습니까

연인들이여 인색할 필요가 없습니다

 

적은 듯이 지나 버리는 생의 언덕에서

아름다운 꽃밭을 그대 만나거든

마음대로 앉아 노니다 가시오

남이야 뭐라든 상관할 것이 아닙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거든 밤을 도와 하게 하시오

총기(聰氣)는 늘 지니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금싸라기 같은 날들이 하루하루 없어집니다

이것을 잠가 둘 상아 궤짝도 아무것도

내가 알지 못합니다

 

낙엽이 내 창을 두드립니다

차 시간을 놓친 손님 모양 당황합니다

어쩌자고 신은 오늘이사 내게

청춘을 이렇든 찬란하게 펴 보이십니까



(친일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작품만으로 감상해 보고자 한다. 죽음을 앞둔 병상에서 쓴 시)





바람만이 아는 대답

 

_ 밥 딜런

 

사람은 얼마나 더 먼 길을 가야만

사람다워질까?

흰 비둘기는 얼마나 많은 바다를 건너야

모래밭에서 편안히 쉴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많은 포탄이 터져야만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끝날까?

친구여, 묻지 말아요

오직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얼마나 더 많은 세월이 흘러 가야만

산이 씻겨 바다로 갈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많은 세월이 흘러 가야만

사람들은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

사람들은 얼마나 더 외면을 하고

보지 못한 척할 수 있을까?

친구여, 묻지 말아요

오직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얼마나 더 많이 고개를 들어야

사람은 하늘을 볼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많은 귀를 가져야

세상 사람들의 울음을 들을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더 죽어야

너무 많이 죽었음을 깨닫게 될까?

친구여, 묻지 말아요

오직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바람이 불어오는 곳

 

_ 김광석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덜컹이는 기차에 기대어

너에게 편지를 쓴다

꿈에 보았던 그 길 그 길에 서 있네

 

설레임과 두려움으로 불안한 행복이지만

우리가 느끼며 바라볼 하늘과 사람들

힘겨운 날들도 있지만 새로운 꿈들을 위해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햇살이 눈부신 곳 그곳으로 가네

바람에 내 몸 맡기고 그곳으로 가네

출렁이는 파도에 흔들려도 수평선을 바라보며

햇살이 웃고 있는 곳 그곳으로 가네

 

나뭇잎이 손짓하는 곳 그곳으로 가네

휘파람 불며 걷다가 너를 생각해

너의 목소리가 그리워도 뒤돌아 볼 수는 없지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Posted by 익은수박
,

다큐 <내일>을 보며 공부가 됐다.

<다음 침공은 어디에?>와 비슷할 수도 있겠지만 많이 다르다.


마지막 부분에서 얻은 자막 글을 거칠게 옮겨 본다.

(괄호)는 내 짐작으로 보탠 것이다.


---


그게 핵심이다.

더불어 살게 하는 것

완벽한 학교나 민주적, 경제적 모델은 없다

이 여행에서 새로운 세계관을 본 것 같다


권력과 권위가 피라미드 중앙에 집중되지 않고

모든 게 자연속에서처럼 상호의존적으로 연결되고

다양성(이 있음)이 진정한 힘이다

(그래야)개인과 각 공동체가 더 자율적이고 자유롭다

권리와 책임감이 더 크다

인체의 세포들처럼 제대로 기능하려면

상호의존적이어야 한다


새 역사의 주인공들은 아직 늦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바꿔야 한다


이들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가 만난 사람들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수많은 사람들 중 일부일 뿐이다


전 세계에

전환도시 1200개

'놀라운 먹거리' 그룹은 800개 이상

수천 개의 도시 농장과

보완화폐 4천 개

100% 유기농 국가, 부탄

곧 에너지 자립할 나라들  카보베르데, 코스타리카, 스웨덴

19세 청소년의 대양청소기계 발명

공기 압착 모터 발명가


구입하기보다는 나누고

에너지를 만들며

나무를 심고

탄소를 포집하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


아이들에게 세계가 하루 만에 변할 거라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해결책은 있다고 맹세할 수 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매일 일어나

모든 에너지를 동원해 사람들을 모은다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내일!

Posted by 익은수박
,

펑펑 눈이 오기에....


------


펑펑!


눈이 펑펑 오네요!

펑펑~

축포일지

서러움일지

창밖 정처없이 흩날리는 센치함인지

너무나 가벼운 눈발에도

흔들리는 

박스 할머니 리어카 때문인지

펑펑!

리셋!


(2017.01.13.)




Posted by 익은수박
,



매일 독을 먹이는 기업, 당신이 절대 모르는 이유
[미완의 민주주의-그대의 목소리를 찾아라] 반다나 시바


그의 손이 엄마의 밥상을 지켜왔다는 것을 알지 못 했다. 그의 마음이 없었다면 엄마의 정성은 애당초 갈 길을 잃는다는 것을. 내 아이의 몸을 지켜낼 수도 없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 했다.

도심 한복판에서 농민이 물대포를 맞았다. 죽음에 이르렀다. 그리고 세상은 소란스러워졌다. 폭력시위, 물대포, 사망진단서, 의사의 양심, 외압... 참사를 혼동으로 몰아가는 단어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쌀값은 개 사룟값에도 못 미치고, 토종의 씨앗은 뿌리내릴 땅을 찾지 못하고, 거대 자본에 의해 휘둘리는 세상의 밥상은 GMO와 항생제로 물들고 있다는 것. 오늘도 농부들은 황급히 거둬들여야 할 들녘의 여문 곡식을 뒤로하고 아스팔트에서 한뎃잠을 잔다. 

신자유주의 질서가 견고해져 오던 지난 30여 년 동안 거대 자본에 의해 잠식되어 가는 세계의 농업과 환경을 지키고자 인도 출신의 물리학자 반다나 시바는 반세계화 저항에 앞장서 왔다. 

이 펀딩의 마지막 편에서는 그녀의 대담을 복기하며 주로 지구 민주주의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하지만, 한국 농민의 뜨거운 저항을 증언하는 그녀의 말에서 그만 옴짝 못할 울컥거림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농부의 정성이 가슴으로 사무쳐왔다.

▲ 반다나 시바 ⓒ 안희경


반다나 시바는 1993년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에 맞서 전 세계 농민의 저항을 조직한 이야기를 했다. 쌀개방에 맞서 함께 한 한국 농부에 대한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았다.

물러나 있던 나의 기억도 선명해졌다. 당시 트랙터와 경운기가 고속도로를 메웠고, 전국의 농민들이 여의도로 몰려들었다. WTO(세계무역기구)로 저항 상대는 바뀌었지만, 그 뒷배로 버티고 있는 거대 자본은 변하지 않았고, 농부들은 기나긴 저항을 이어갔다. 

반다나는 십년 뒤 2003년 멕시코 칸쿤에서 벌어진 그 일도 토로했다. 한국 농부가 스스로 목숨을 버리며 세상을 향해 외친 경고, "FTA(자유무역협정)가 농민을 죽이고 있다". 반다나는 묻는다. "그래서, 지금 소비자인 우리네 밥상은 안전한가?"라고. 

농민이 스러져간 거기, 그 처절한 저항의 역사 속에 백남기 어른도 있었던 것이다. 그가 산골 마을을 찾아 토종 씨앗을 얻고 작물을 키워온 일생과 아스팔트 농사를 지어온 농심은 한 곳을 향한다. 농부의 안전한 삶 그리고 그 농부의 손에 기대어 먹는 국민의 안전한 밥상이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모든 국가는 같은 길을 걸었다. 미국의 농부도 한국의 농부도 브라질의 농부도 모두 도시로 몰려들었다. 산업이 농부들을 도시로 부르기도 했고, 땅에서 쫓겨나도록 부추기기도 했다. 

그 결과 세계 인구 70%가 도시에 산다. 도시로 몰려온 과거의 농부들은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 손으로 땅을 일궈 먹고 살던 능력, 모든 야생 동물들이 다 갖춘 자급 능력을 상실하고 만다. 살아갈 가능성은 오직 돈을 버는 데 있기에 인간 자체가 생산을 위한 단가 경쟁에 돌입한다. 

농촌의 삶도 변하였다. 농업이 산업화되고, 식량이 투기자본에 잠식되면서 전 세계 농토는 시장 논리로 재편되었다. UN 식량농업기구(FAO)의 발표에 의하면 오늘날의 농업 생산량이라면 성인 기준 하루 2200칼로리로 120억 인구가 먹고 살 수 있다 한다. 

두 배 가까이 인구가 늘어난다 해도 배고픈 사람이 생겨서는 안 될 양이다. 하지만 지금 5초 마다 10살 이하의 어린이가 배곯아 죽고 있다. 매일 5만7천 명이 죽는다. 식량이 제품이 됐고, 돈이 되었기에 벌어지는 살인이다.

기아 걱정 없는 우리네 밥상은 어떨까? 주요 식품 회사들이 GMO 콩을 수입한다. 된장 간장은 유전자 조작 씨앗이 잠식했다. 밭 한 뙈기 꾸릴 줄 모르는 도시 노동자들, 한 평의 땅이 있어도 시간이 없는 타임푸어 워킹푸어가 마주할 밥상은 점점 더 먹지 못할 것으로 차려지고 있다.

농업이 산업이 된 배경에는 세계대전이 있는데, 전쟁 기기를 만들던 회사들은 전쟁이 끝나고 팔 곳이 없자 농기계를 만들었다. 화약을 만들던 회사는 질소를 비료로 전환시켰다. 독가스를 만들던 기업을 대안을 찾기가 훨씬 쉬웠다. 제초제, 살충제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리고 그 회사들이 세계의 종자를 끌어모아 유전자 변형을 하여 특허를 내고 불임 종자를 만들어 제초제와 함께 팔고 있다. 세계의 농민과 농토가 그들의 이윤 속으로 빨려가도록 국가를 주무른다. 이제 식량은 부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가난 할수록 몸으로 더 많은 독소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식량 독재구조이다. 지구 전체를 시들게 하는 죽음의 순환인데, 자본은 이를 극렬히 외면하고 있다. 반다나 시바는 지구 민주주의를 제안한다. "살리는 경제", "살아나는 민주주의", "살아있는 의식"을 일으키자 한다. 죽음의 문화가 아닌 생명의 문화 속에 살길이 있기에.

반다나 시바와의 대담은 2012년 10월 31일 샌프란시스코, 세계화국제포럼 본부에서 가졌다. 4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녀의 지적이 더욱 구체적 실상이 되어버린 오늘이다.


"지금 당신이 뭘 먹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면, 이는 기업이 매일 백만불을 쓰며 전하는 메시지가 작동한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당신한테 독을 먹이지만 당신은 그 사실을 결코 알 수 없다' 이는 음식 독재입니다. 식량 독재죠. 음식 독재는 정치적 독재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요. 저는 독재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를 지지합니다.

식품은 생태적 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입니다. 지구의 자원에 대해 그 어떤 (인간의) 활동보다 훨씬 많은 폐해가 산업화된 농업에서부터 식품산업 구조 전반에까지 벌어지고 있어요. 지구의 75% 토양이 약화됐고, 75% 수자원이 파괴되었으며, 75% 생물종이 멸종했습니다. 기후 위기는 40% 증가했고요. 제일 먼저 우리는 소농과 친환경 농업을 살려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시대의 엄청난 환경 문제를 풀어갈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기본적인 권리는 바로 먹을 권리입니다. 먹지 않으면 우리는 살아갈 권리를 얻지 못하거든요. 십억의 인구가 먹을 권리를 빼았겼습니다. 지구에서 생산되는 식량 대부분이 음식이 아니라 상품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에요.

나는 알아요. 몇 년 전 일이죠. 한국 농민들과 한국인은 저항했습니다. 바로 호르몬 항생제를 주사한 소고기 수입을 막자고요. 한국인은 외쳤죠. "소고기 수입 반대! 우리에겐 우리의 좋은 소고기가 있다." (FTA)이해 당사자들은 부정했어요. 

저는 자유무역으로 벌어진 모든 것을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제가 92년, 93년에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에 반대하는 전지구적인 저항을 조직했습니다. 50만 인도인이 한국 농민을 포함해 전세계 농민들과 함께 저항했습니다. (2003년) 칸쿤에서는 한국 농민이 목숨을 끊으며 외쳤죠. "자유무역이 농부를 죽이고 있다!"

그동안 27만 인도 농부들이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농부들은 점점 힘들어졌구요. 그럼 소비자는요? 우리는 좀 나아졌나요? 아니죠. 우린 이제 독을 먹고 사는 처지가 됐잖아요. 온갖 살충제 말입니다. 우리는 계속 더 나쁜 식품을 먹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농민들만 싸워서는 안 되는 시대가 됐어요. 소비자들만도 힘든 싸움입니다. 청년들의 문제도 그들만으론 안 됩니다. 우리 모두 함께 우리의 권리를 지키고 미래의 자유를 지켜내야 합니다.

모든 문제에는 씨앗과 뿌리가 있죠. 모든 해법에도 씨앗이 있구요. 씨앗이라는 단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생물학적인 의미로는 삶을 주죠. 또, 어떤 일의 바탕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우리가 직면하는 문제에는 근본 원인들이 있어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시작할 수 있는 근원적인 출발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씨앗 해방 캠페인'을 합니다. 왜냐하면, 거대 기업이 종자를 소유하고, 유전자를 조작해서, 특허로 묶고, 불임종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업들은 엄청난 이윤을 만들고, 그들만을 위한 제국을 창조하려고 지구의 인류와 모든 생명을 완전히 통제하려 합니다. 하지만 씨앗을 통해서 우리는 생명을 되찾고, 자유를 되찾을 겁니다. 이는 바로 25년 전에 제가 '나브다냐'를 시작한 이유지요. 올해부터 지구적인 시민 운동으로 전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자를 보존하고, 먹거리를 키워요. 유기농사를 짓습니다. 공정무역을 이뤄왔죠. 사람들이 와서 맛보고는 이런 말을 해요. 어릴 적 먹던 그 맛이라고.

제 책 중에 <지구민주주의>라고 있습니다. 지구에서 영감을 얻은 책이죠. 지구의 모든 생명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흙은 식물과 연결되어 있죠. 식물은 우리의 건강과 연결됩니다. 우리가 어떻게 농사 짓느냐에 따라 기후변화도 좌우됩니다. 기후변화는 우리가 식량을 갖느냐 마느냐를 결정하고요. 그러니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는 거죠.

제가 지구 민주주의를 말할 때, 이는 모든 생명의 민주주의를 뜻하는 겁니다. 지구는 하나의 가족이니까요. 또한 이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이기도 해요. 우리 삶에 뿌리내린 민주주의죠. 돈, 자본, 권력에 뿌리내린 것 말고요. 

미국의 선거를 봐요, 아마 한국 선거도 그럴지 몰라요. 누가 더 돈을 많이 가졌냐에 따라 달라지는 선거잖아요. 민주주의란 국민이 국민을 위해 국민을 바탕으로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기업에 의해 그들을 위하고 그들 손으로 더 많은 돈을 벌도록 지구의 자원을 훔치게 하고 있습니다. 지구 민주주의는 바로 우리 모두의 연결이에요.

여성이 권한을 갖고, 배고픔을 없애고, 이 모든 것이 서로 안에 연결되어 생명의 피륙으로 짜여지는 것이죠. 이를 위한 하나의 핵심이 '살리는 경제'입니다. 지금까지는 죽이는 경제였어요. (두 번째 핵심,) '살아나는 민주주의', 지금까지 텅빈 민주주의가 됐죠. 우리를 대변해야 하는 정치인들은 오히려 우리와 단절되어 버렸으니까요. 그리고 (세 번째) '살아있는 의식'을 일으켜야 해요. 죽음의 문화가 아닌 생명의 문화 속에 있어야 합니다."

- 지금 당장 우리는 무얼 할 수 있을까요?
"씨앗을 지키는 겁니다!" 

▲ 반다나 시바 ⓒ 안희경


촘스키 선생을 비롯해 모든 석학에게 늘 마지막으로 건넨 질문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때 보았던 그들의 얼굴을 기운 잃은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다. 석학들의 표정은 '그걸 왜 나한테 묻나요? 당신이 답인데...'라고 반문하는 듯했다. 그리고 직접 말했다. 

"당신들이 그 답을 알고 있습니다."

창을 열어 밖을 바라보려고, 더 멀리 보려고 안경알만 닦아왔던 내게 석학들이 꺼내준 것은 거울이었다. 내 안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 결국 답은 내 안에 있고, 세계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답도 우리가 품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미완의 민주주의-그대의 목소리를 찾아라' 이 기획이 우리의 가치를 확인해보는 여정이 되길 바란다. 단 한 명이라도 그 석학의 지혜에 화답한다면, 세상은 한층 나아지리라 믿기에. 한 생명이 밝아지면, 세상은 그만큼 희망을 얻기 때문이다.

Posted by 익은수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