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에서 연재 중인 <세계여성 지성과의 대화> 가운데 반다나 시바 인터뷰를 옮겨둔다. 

이 연재 시리즈는 여기 가면 볼 수 있다. <세계 여성 지성과의 대화> 바로가기(클릭)


---


원문보기: 



[세계 여성 지성과의 대화](3)반다나 시바(상)“2차 대전 지원 기업, 농화학 산업 주도…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ㆍ“올바른 행동이 성공이자 평화…우린 우리의 사람다움 지켜야”

이탈리아 나브다냐 회원들이 “이윤보다 사람이 우선”이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범대서양투자무역동반자협정(TTIP)’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Manlio Masucci 제공

이탈리아 나브다냐 회원들이 “이윤보다 사람이 우선”이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범대서양투자무역동반자협정(TTIP)’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Manlio Masucci 제공

두 공간에서의 삶을 동시에 살아갈 수 있는 현대이다. 온라인의 공간, 그리고 실제 부딪치고 소리 내는 오프라인 생활현장. 개인의 생활이 이 둘의 경계가 모호해질 정도로 연결되는 만큼, 세상을 움직이는 돈과 권력 또한 이 둘의 영역에서 엽렵하게 개인의 모든 것을 수집하고 있다. 빅데이터 정보가 기업과 정치권력의 실제 이익으로 귀속되는 온·오프 소비정치시대이다. 개인이 단속해야 할 곳은 어디까지일까? 물리학자이자 농부이며 사상가인 반다나 시바(65)와 함께 오늘날 지구를 관통하며 진화해가는 ‘자본의 질주’를 진단해 본다.

유럽과 북미에서 더욱 절대적인 신뢰를 받고 있는 반다나 시바는 세계를 대표하는 환경운동가이자 농업정책가로 반세계화 시민운동을 이끌고 있다. 그와의 대화는 1월6일 인도의 나브다냐(Navdanya) 뉴델리사무실에서 이뤄졌다. 나브다냐는 ‘지구는 한 가족’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반다나 시바가 30여 년 동안 매진해온 지구 민주주의 운동이다. 이 운동은 세계의 토종 씨앗을 갈무리하며 생태적인 유기농사를 이끈다. 인터뷰에 앞서 찾은 인도 북부 데라둔, 나브다냐 생물다양성 보존 농장에는 프랑스, 미국, 네덜란드, 라닥에서 온 젊은이들이 생태농법을 배우고 있었고, 정갈한 고요 속에서 초록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시바는 종자 전쟁, 식량 전쟁, 금융 전쟁, 디지털 전쟁이 하나의 사이클 속에서 개인들을 공습하고 있다고 경고하며 “올바른 행위, 그것이 곧 평화”라고 역설했다.

안희경: 여성 지성과의 대화 첫 대담자인 쥘리에트 비노슈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72년이 넘었지만 아직 우리는 평화를 찾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두 전쟁 사이에 있는 평화는 진짜 평화가 아니라고요. 그런데 선생님은 우리가 사는 이 시간이 바로 전쟁 속이라고 하십니다. 왜죠? 지금도 창 너머로 평화로이 오가는 사람들의 수다 소리가 들려오는데요.

반다나 시바: 2차 세계대전의 공습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으니까요. 전쟁을 자행하던 기업들이 여전히 농업과 화학산업으로 우리 삶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히틀러에게 독가스를 대던 기업은 농약산업의 대표주자가 됐고, 폭탄공장은 나트륨 비료산업을 선도합니다. 요즘 테러리스트들이 쓰는 폭탄을 왜 질소폭탄이라고 부를까요? 비료로 만들기 때문이에요. 물질적인 면으로 보면 전쟁은 끝나지 않은 거죠. 농업으로 들어와 우리 삶을 계속 죽이고 있습니다. 75%의 물이 죽었고, 75%의 벌과 75%의 토양이 사라졌어요. 기후의 50%가 타격을 받았는데, 이는 앞으로 더 대대적인 인명이 죽을 수 있다는 재앙을 예고합니다. 여기에 한 줌 기득권 무리들이 벌이는 간접적인 폭격, 바로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만들려는 전쟁까지 함께하고 있어요.

안: 2차 대전 역시 후발 산업화 국가들이 새로운 시장을 갖고자 벌인 건데요.

시바: 네, 이들은 계속 새로운 시장을 노리고 있어요. 이제는 그 시장에 화학물질뿐 아니라 유전자변형생물(GMO), 유전공학까지 결합시켰습니다. GMO와 화학물질은 대중을 상대로 벌이는 정치적 도발이에요. 어제 인터뷰하러 왔을 때 제가 서둘러 나갔던 이유도 국회에서 요청이 왔기 때문이에요. 유전자변형 겨자씨를 밀어붙이는 부패사건을 조사하는데, 제 조언이 필요하다고 급히 부른 거죠. 인도에서는 아직 유전자변형 식량은 생산하지 않습니다.

안: 하지만 인도의 시장에도 많은 GMO 제품이 있을 텐데요. 한국산 간장, 과자가 늘어선 가게라면 그 원재료가 대부분….

시바: 미국에서 오죠. 유전자변형 콩에 라운드업을 사용해 키웁니다. 라운드업은 베트남 전쟁에서 쓰던 고엽제와 같은 성분의 제초제예요. 이를 사용하는 GMO 종자를 키웠던 스리랑카 농민 4만명이 죽었습니다. 신부전으로요. GMO 제품은 또 다른 차원의 전쟁이죠. 겨자는 수입 문제가 아니라, 생산의 문제거든요. 이미 인도 정부가 유전자변형 가지를 밀어붙인 적이 있었지만 막아냈습니다. 아직까지 인도에서 GMO 농작물을 재배하지는 못해요. 그런데, 지금 겨자를 미는 거죠. 인도사람들이 늘 먹는 중요한 식량이라서 그래요. 다들 겨자기름으로 요리하고, 피클도 만들고, 주요 칼슘원인데다 봄을 나타내는 색도 겨자색이죠. 문화공격이에요. 정치적 전쟁이고, 지식전쟁입니다. 왜냐? 유전자조작은 과학을 죽이는 날조된 체계니까요. 과학은 바로 아는 겁니다. 영어 science는 “안다”는 뜻을 가진 scio- 라는 말에서 왔어요. “안다”라는 의미는 제게 있어 열정이에요. 저는 무지한 채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지구가 작동하는 원리를 알고 싶고,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방법을 알고 싶고, 사람들이 권리를 더 잘 행사할 방법을 알고 싶어요. 그래서 지구를 파괴하고, 삶을 파괴하고, 1995년부터 30만명의 인도 농부를 자살로 몰아간 그 사람들의 실체를 드러내려는 겁니다.

안: 그 30만명이라는 자살자 숫자는 들을 때마다 믿기 힘듭니다.

시바: 거기에 작년에만 자살률이 또 14% 올랐어요.

안: 왜죠?

시바: 정부가 사람들의 일상을 가지고 더 비참한 게임을 시작했답니다. 지금 현금을 못 쓰게 해요. 당신도 여기서 60달러 이상 현금을 쓸 수 없었을 거예요.

안: 공항에서도 그 이상 환전을 안해 주더군요. 저는 화폐개혁 기간이라서, 묻혀있는 현금을 순환시키려는 일종의 경제 활력을 모색하는 작업이라 생각했어요.

시바: 아닙니다. 모두 신용카드를 쓰라는 강압이에요. 돈을 쓰되 카드로 쓰라는. 그러면 가난한 사람들은 돈을 만질 수가 없어요. 우리 집 앞에 배추를 들고 와 정직하게 값을 부르는 그이는 무슨 수로 돈을 만지겠습니까? 자살이 늘 수밖에요. 자, 제가 전쟁이라고 부르는 예를 또 들어 볼까요. 이 기업들, 몬산토 바이엘, 듀폰, 신젠타 모두 2차 대전에 비용을 대던 기업의 연장입니다.

안: 작년 9월, 바이엘이 몬산토를 샀죠.

시바: 거기에 듀폰이 하나로 합쳐졌고, 신젠타가 중국회사와 합병했어요. 중국시장 진출이라는 전략이죠. 이 모두는 아이지 파벤(IG Farben)과 하나입니다. 거대 화학기업으로 뉘른베르크 재판에도 섰던 전범기업이죠. 아이지 파벤의 파트너 회사로 바스프(BASF)도 있고, 모비(MOBAY, 몬산토 바이엘)도 있어요. 우리는 이들을 독성 카르텔(Poison Cartel)이라고 불러요. 지금도 전쟁이에요.

안: 신젠타, 바스프, 몬산토 모두 한국에 나와있는 기업들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비료는 유기농으로 전환되고 있는데요. 2004년엔 화학비료 사용 농가에 대한 보조금도 중단했고요. 비료만이라도 변화하고 있다는 건 뭔가 시스템이 달라지고 있다는 거 아닐까요?

반다나 시바가 지난달 6일 인도의 나브다냐 뉴델리 사무실에서 인터뷰하며 거대 기업에 의한 화학물질과 유전자변형생물(GMO) 산업의 위험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안희경씨 제공

반다나 시바가 지난달 6일 인도의 나브다냐 뉴델리 사무실에서 인터뷰하며 거대 기업에 의한 화학물질과 유전자변형생물(GMO) 산업의 위험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안희경씨 제공

시바: 글쎄요. 유기농은 그들의 공습을 멈추고자 모색하는 우리들의 저항인데요. 하지만, 같은 공격자에 의해서 전쟁은 계속 다양하게 진행되어 왔어요. 그러니까 진정한 평화는….

안: 100년 동안 오지 않은 거네요.

시바: 네, 우리는 100년의 대량학살, 100년의 생태학살이라고 부릅니다. 강제 수용소에서 대량학살을 했고, 땅을 일구는 농민 수십만명을 죽였고, 지구 아이들의 미래를 죽이는 것도 학살이니까요.

안: 농사는 지역적인 주권의 문제 아닌가요? 농민의 선택이고, 종자와 농법의 혁신은 지난 세기 처음으로 인류를 기근에서 벗어나게 했는데요.

시바: 지역의 주권은 많은 조약, 협정으로부터 어마어마한 공격을 받아왔습니다. 세계무역기구(WTO), 자유무역협정,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지역 식량체계를 파괴했고, 그 땅에 독성화학제품을 쏟아부었죠. 저들이 비타민A를 증진시켰다며 심게 한 볍씨, 골든 라이스(Golden rice)도 결국 독성 카르텔이 조작한 녹색과학이라는 신기루입니다. 비타민A는 녹색잎 채소만 잘 먹으면 충분해요. 종자를 조작해 상품으로 만들어 사람들을 함정에 빠뜨린 겁니다. 어떤 GMO 종자도 유기농 종자보다 영양이 높은 것은 없어요. 이 기업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수십조원의 시장을 눈앞에 보고 있으니까요. 오늘 아침 스리랑카에서 전화가 왔더군요. 이 다국적기업 카르텔이 정부를 접수해서 공공 기금으로 독성카르텔을 확산하려고 하니 도와달라고요. UN과 각국 정부를 손아귀에 넣은 것도 모자라 지금은 현금거래까지 건드리려 합니다.

안: 농화학산업이 금융에까지 손을 댄다는 건가요?

시바: 네. 1조2000억달러의 경제가 얼마만 한 규모인지 상상할 수 있나요? 거기의 95.7%가 현금거래로 이뤄져요. 인도 시장이죠. 순차적으로 설명할게요. 빌 게이츠도 이 게임에서 큰 몫을 쥐고 있습니다.

안: 빌 게이츠가요?

시바: 자선사업가로 알려진 그 빌게이츠요. 우리 시대의 가장 대단한 식민지 개발자입니다.

안: 하지만 엄청난 돈을 아프리카에 기부하는데요?

시바: 시장을 창조하려고 하는 거죠. 그는 아프리카를 녹색혁명의 동맹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토종 씨앗을 지키던 탄자니아 농부들이 체포됐어요. 바로 빌 게이츠가 GMO 종자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빌 게이츠는 자선사업가라는 이미지를 먼저 창조했고, 그 뒤에서 독성카르텔과 함께 UN에 돈을 좀 주고 WHO를 손에 넣었어요.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약간의 돈을 주고 모든 식량농업기구를 장악했습니다. 유니세프(UNICEF·유엔아동기금)에 돈을 내고는 어린이를 위한 재단들을 잡았고, 그런 다음 자신을 위한 시장을 창조하고 있어요.

안: 그가 만든 건 소프트웨어 시장 아닌가요?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이 밑천이고요. 그의 프로그램은 지금 무료로 누구나 쓸 수 있죠.

시바: 아닙니다. 소프트웨어 ‘특허’를 통해 번 돈입니다. 우리는 그의 소프트웨어를 복제할 수 없어요. 그래서 빌 게이츠 말고, 원래 개발자들이 소프트웨어를 개방해야 한다고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빌 게이츠는 또 다른 위험한 시도를 하는데, 생명공학에 정보기술을 융합하고 금융기술까지 융합하는 공격입니다. 인도 정부가 지폐사용 금지 선언을 하자마자 빌 게이츠가 달려와 연설한 이유도 여기 있어요.

안: 왜 인도죠?

시바: 가장 큰 시장이니까요. 식민지를 개발할 때, 집중하는 것은 단 한 가지예요. ‘얼마나 많이 가져올 수 있는가?’ 그가 새로 만든 회사가 에디타스예요. 에디트, 편집이죠. 생명을 조각조각 섞는 거예요. DNA 차원에서 여기서 잘라서 저기로 붙이고. 그는 생명을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생각합니다. 하지만 생명은 스스로 조직되어 있는 유기체예요. 진화하는 네트워크입니다.

안: DNA 차원의 게놈 편집(genome editing)은 작년에 엄청난 뉴스였습니다. 바이오산업에 새바람을 일으킬 혁신이라고 들썩였는데요.

시바: 거기에 금융테크놀로지까지 합병해 ‘화폐와의 전쟁’을 선포했어요. 그들의 용어입니다. 자 보세요. 제가 당신한테 100루피를 주면, 당신은 홍차를 사 먹으려고 차이 장사에게 돈을 주죠. 그는 또 다른 곳에 돈을 쓸 거예요. 고용이 일어나고, 생산이 일어나고, 진짜 음식이 만들어지고, 실제 웰빙이 진행됩니다.

안: 한 마을에 나그네가 와서 여관방을 잡으면, 돈을 받은 여관주인이 푸줏간에 가서 빚을 갚고, 푸줏간 주인은 술집 외상값을 갚고, 나그네가 그날 묵지 않고 돈을 찾아간다 해도, 반나절 만에 마을에 돈이 돌아 다들 숨을 돌린다고 합니다. 경제학자들이 설명하는 돈의 힘이죠.

시바: 그런데, 100루피를 비자나 마스터 카드로 지불한다면요? 디지털 단계에서 은행은 즉각적으로 6%에서 10%의 수수료를 벌어요. 그다음 두번째 거래에서 또 10%를 벌죠. 그러니까 100루피 지폐가 100번을 옮겨 다닐 때는 늘 100루피일지라도, 사람들의 생활이 달라지는 반면, 디지털 세상에서는 아닙니다. 100번의 돈거래는 돈주인에게만 기회를 줘요. 돈주인은 1만루피도 벌 수 있어요. 디지털 이체는 소프트웨어 특허로 돈을 버는 것과 같아요. 우리는 소프트웨어를 공공재라 생각하지 않죠. 빌게이츠가 특허라는 구조를 만들어 우리 생각까지 바꿨어요. 하지만 돈은 공공재에요. 다른 사람과 지폐를 교환하며 생활을 만들어 가니까 공공재 영역에 들어가죠. 하지만 특허받은 소프트웨어를 통해 금융거래되면 수수료(임대료)가 발생하면서 돈은 개인의 손아귀로 가게 됩니다.

안: 오늘날 하느님으로 일컬어지는 건물주와 같은 시스템이군요.

시바: 최상의 권력이죠. 임대주는 일을 하지 않아도 노동자인 나로부터 임대료가 걷히고 권력도 휘두르고.

안: 자유무역협정의 마지막 단계에서 금융개방에 박차를 가하는 것도 바로 그 돈이 돈을 가장 많이 벌기 때문인데요. 금융경제 역시 시장 강탈을 위한 2차 대전과 같은 패턴입니다.

시바: 완전히 똑같죠. 특히 강조하고 싶은 건 이들의 배후입니다. 몬산토와 바이엘이 합병했을 때, 어떻게 작은 바이엘이 거대한 몬산토를 살 수 있을까 의아해했어요. 파악해 보니 배후에 다른 소유주들이 있더군요. 바로 금융거래로 돈버는 대형 투자 펀드들이에요. 뱅가드(Vanguard·세계 최대 투자기업, 자산 보유 3조달러), 캐피털 그룹(Capital Group·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투자기업, 자산운용액 1조3009억달러) 같은 기업들요. 이들이 독성 카르텔뿐 아니라 코카콜라, 펩시, 마이크로소프트, 모든 걸 갖고 있어요. 그래서 금융 전쟁, 종자 전쟁, 식량 전쟁, 디지털 전쟁은 모두 같은 사이클에서 운영된다고 봐야 하는 거죠.

안: 2008년 금융위기를 맞고 금융자본 개방이 몰아칠 때부터 들던 생각이 있어요. 이제 시민은 사라졌구나. 오직 ‘고객님’만 남은 세상이 된 거죠. 성인이 된다는 의미도 크레딧카드 빚을 얻는 자본주의의 시민 ‘고객님’이 되는 거고요.

시바: 제가 렌트 이코노미 (rent economy 임대경제)라고 부르는 이유도 그래요. 농부들은 마땅한 삶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 농민도 마찬가지죠. 나는 아직도 2003년 칸쿤에서 자결한 이경해씨를 잊지 못합니다. 그는 자유무역이, WTO가 세상 농부를 죽이고 있다고 알렸어요. 한국농부들은 1993년부터 저와 함께 싸웠습니다. 독성 카르텔들이 이제 화학제품으로는 더 이상 돈이 안되니 씨앗을 갖겠다고 바이오산업으로 옮겨가던 1987년, GMO의 출현을 알게 됐어요. 아직 유전자 변형이 무엇인지 상상도 못하던 시절이죠. GMO는 그들이 생명의 창조자가 되겠다는 도발이에요. 세계 곳곳에 전했습니다. 1993년, 대규모 저항운동을 조직해 WTO 합의문이 서명되기 1년 전, 인도 벵갈루루로 불러 모았습니다. 프랑스 농부, 아프리카 농부, 일본 농부 모두 모였죠. 거기 한국 농민이 왔어요. 50만명의 세계 소농들이 함께 외쳤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제게 요청하더군요. 조직을 만들자고. 우리는 세계 소농 조직인 라 비아 캄페시나(La Via Compesina·농민의길, 88개국의 188개 조직 가입, 약 2억명 회원, 2013년 기준)를 탄생시켰습니다. 1994년, WTO가 설립되고, 인도정부는 정보기술산업과 농민들을 맞바꿨습니다.

안: 한국에서는 자동차 산업 등의 수출과 맞바꿨죠.

시바: 정작 거대자본은 어떤 비용도 내지 않아요. 싱가포르에서 열렸던 첫 WTO 회의 덕으로 누리는 완전 면세죠. 두번째 회의는 시애틀에서 열렸어요. 그다음이 도하였고, 칸쿤이었습니다. 이경해씨가 자결한. 그리고 다음해 우리는 홍콩에서 모였어요. 한국 농민들은 그때도 12월 차가운 바닷물에 뛰어들어 헤엄치며 회의를 막는 시위를 했습니다.

안: 물속에서 저항의 장막을 펼친 거네요.

시바: 용감했어요. 지난달에 UN생물다양성 회의에서 주는 상을 받으러 칸쿤에 갔습니다. 운전하는 이에게 물었죠. 여기에서 운전한지 얼마나 됐냐고요. 오래 했다고 하더군요. 13년 전 WTO회의도 알겠군요 했더니, 안다고 해요. “한국 농부 기억해요?” 했더니 그러더군요. 어떻게 잊겠냐고. 네, 우리는 다 기억하고 있어요.

안: 백남기 농민의 마음 또한 다시 헤아리게 됐습니다. 국가폭력의 희생자라는 좁은 의미의 해석이 아니라 토종 종자를 지키고 땅과 국민의 밥상을 살리려 했던 농민운동가의 삶이 있었기에 그 거리에 나섰던 마음 말입니다. 그런데요. 거대자본이 씨앗 해적질에서, 디지털 해적질로 견고해지고, 금융자본으로 진화해온 걸 들으며 무력감이 생깁니다. WTO는 FTA, TPP로 금융, 정보, 의약, 결국 유전자까지 잠식했는데, 이는 냉정히 보면 개인, 생산자와 소비자의 실패 아닌가요?

시바: 그렇지 않아요. 우리는 결코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결코 올바른 행동에서 실패한 적이 단 한번도 없으니까요. 올바른 행동을 한다는 것이 곧 성공입니다. 실패는 당신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데 하지 않았을 때, 그때 있는 거예요. 올바른 행위, 그것이 평화입니다. 그것이 붓다가 가르친 거죠. 올바른 생활이란 올바른 행동으로 우리가 연결되어 있는 관계들을 이해하며 바른 길로 나아가는 겁니다. 바른 법(정법·The right Dharma)이죠. 아름다운 인도경전 기타에서 크리쉬나가 말합니다. ‘결코 그대의 행동이 맺을 열매를 바라보지 마라. 오직 행동을 보아라.’ 왜냐하면 올바름을 행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기 때문이에요. 그 행동으로 무엇이 나오든 그건 미리 판단내릴 영역이 아니죠. 인과는 꼭 연역적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자유무역을 막아내려던 일은 다 실패한 거 아냐?’라고 물을 수 없어요. 아니,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정직한 생산, 진실한 무역, 농부의 삶을 지키고 바른 먹거리와 건강한 식량을 말하는 그 일을 하는데 실패했는가?’라고 물어야죠. 만약 그리 행동하는데 실패한다면, 그날 우리는 실패한 겁니다. 그것이 진짜 우리의 패배죠.

안: 그 길이 점점 더 가파르고 고될 듯합니다.

시바: 어렵죠. 그들이 더 어려운 길로 만들고 있고요. 평범했던 일상을 범죄로 만들었으니까요. 농부들이 1만년 동안 보존해오던 씨앗을 어느 날 갑자기 몬산토, WTO가 불법으로 만들었습니다. 2014년 유럽에서 종자보존 규제법을 추진했어요. 유럽연합의회에 가서 농부들을 대변했습니다. 가까스로 철회시켰죠. 멕시코에서 부르더군요. 상원에서 농민의 권리를 말해야 한다고. 미국은 씨앗을 지키는 이들을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더군요. 또 갔죠. 미국인들과 간디의 비폭력 정신을 수련했습니다. 우리는 단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모든 곳에서 포기하지 않았어요. 그들은 마지막 벌을 죽이고, 마지막 농부, 마지막 아이, 우리의 마지막 자유까지도 파멸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는 당부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일이 있어요. 반드시 해내야 하는 일. 간디 선생께서 말씀하셨죠. ‘부당하고 잔악한 법은 맞서 싸워야 한다. 그것이 사람의 의무이다.’ 우리는 우리의 사람다움을 지켜내야 합니다. 인간이기에 마땅히 인간으로 살아가는 겁니다.



[세계 여성 지성과의 대화](3)반다나 시바(하)“세계화가 만든 탐욕의 경제, 증오 정치로 여전히 세 유지”

ㆍ“여성의 자비심이 바탕 된 공유경제가 지구를 살린다”

프랑스와 네덜란드, 미국, 캐나다 등지에서 온 젊은이들이 인도 북부 데라둔에 있는 나브다냐 생물 다양성 보존 농장에서 유기농사를 배우고 있다. 안희경씨 제공

프랑스와 네덜란드, 미국, 캐나다 등지에서 온 젊은이들이 인도 북부 데라둔에 있는 나브다냐 생물 다양성 보존 농장에서 유기농사를 배우고 있다. 안희경씨 제공

세계를 대표하는 환경운동가이자 농업정책가이며 반세계화 시민운동을 이끄는 반다나 시바. 지난달 6일 인도 나브다냐 뉴델리 사무실에서 진행된 그와의 대화를 상편(▶경향신문 2월1일자 8·9면 바로가기)에 이어 소개한다. 그는 앞서 종자전쟁, 식량전쟁, 금융전쟁, 디지털전쟁이 하나의 사이클 속에서 개인들을 공습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 하편에서는 진정한 공유경제의 의미, 4차 산업혁명은 과연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우리의 생각을 이끈다. 그는 전 지구적 위기의 대안으로 지구민주주의와 에코페미니즘을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개인의 역할이 중심에 있는 대안이다. 먹고, 생각하고, 소비하는 매일매일의 선택들, 과연 개인의 오늘은 어떻게 채워져야 할까. 반다나 시바가 이끄는 나브다냐의 밥상은 담백했다. 골고루 싱싱하게 차려졌고, 차이(차 음료) 역시 달지 않았다. 입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을 보살피며 세상의 평화와 건강을 만드는 그의 사상 또한 간결하다.

안희경: 양자역학으로 캐나다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인도에 와서도 정부의 지원을 받던 과학자였는데 농부가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반다나 시바: 농부가 되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그런데 계속 부닥치는 현실이 저를 농업으로 이끌더군요. 히틀러와 손잡고 돈 벌던 기업들이 농업으로 들어와 전쟁을 계속한다는 걸 깨달았을 때, 땅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죠. 평화를 소망하니까요. 비폭력 농업경제를 만들겠다고 서원했어요. 그들은 우리네 밥상뿐 아니라 주머니까지 탈탈 털어가는 도구를 끊임없이 고안해내고 있습니다. 몬산토가 기후 관련 회사인 클라이메이트 코퍼레이션(The Climate Corporation)과 2013년 합병했습니다. 이 기업은 토양분석기업, 기계산업기업과 이미 합병한 상태에서 몬산토 밑으로 간 거고요. 그 다음 몬산토는 실리콘밸리를 이끄는 정보기업과 합병합니다.

안: 거대한 궤도를 그리며 기계를 거쳐 정보산업으로 집중하는군요.

시바: 스파이드론을 띄우고 트랙터에 스파이웨어를 장착해서 농부들이 뿌리는 유전자변형생물(GMO) 씨앗을 찾아내고, 다른 한편으로는 토양 데이터를 손에 쥐려는 거죠. 이미 많은 농부들이 날아온 GMO 씨앗 때문에 몬산토한테 고소당해왔습니다. 여기에 토질정보를 이용하는 패키지 신상품까지 만들어 농부들한테 팔려는 겁니다. 빅데이터를 사유화하려는 거예요.

안: 인공지능과 같은 4차 산업혁명이 오히려 농업을 살릴 거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노동력이 사라지는 농촌에 진화된 기계가 들어가면 기존 농기계로 유실되던 흙도 살리고 화학제품 사용량도 줄지 않겠냐고요.

시바: 스파이드론이나 인공위성을 띄운다고 해서 미생물의 세계, 그러니까 실제 흙의 활동을 볼 수 있는 건 아니에요. 1세제곱인치 흙 속에는 8백만이나 되는 균이 살아요.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공유경제 시스템을 이루며 아낌없이 주는 삶을 살죠. 하지만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기계를 통해서도 질소, 인, 칼륨으로 측정될 뿐이고. 몬산토가 농부들에게 흙을 살리는 균을 팔까요? 아닙니다. 기기를 파는 겁니다. 농부한테 이럴 거예요. ‘당신네 눈에는 땅속 사정이 안 보이니 토질을 개선할 성분과 양을 정확히 넣지 못한다. 그러니 우리 기기를 써라. 트랙터에 로봇을 부착하면 질소, 인, 칼륨 함유량을 모니터링할 수 있다.’ 속셈은 GMO 씨앗을 만들어 거기에 맞는 화학비료랑 제초제를 팔던 것과 똑같아요. 인공지능을 도입한 기계는 인위적인 사실을 포함해 새로운 판매 시스템을 창조하는 겁니다. 인공지능은 한계가 있어 흙의 지능을 복제할 수 없어요. 우리 호흡으로 들어오는 수십억 생명의 활동을 어떻게 다 정보화해냅니까.

안: 미생물의 세계야말로 진정한 공유경제라고 하셨는데요. 제러미 리프킨은 이미 현대의 생활 속으로 공유경제가 들어온 시대라고 합니다. 인터넷을 통해 수평적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그 망을 통해 각자가 주인이 되면서 소비자가 되는 시대로요.

시바: 모든 경제가 디지털화되면서 거대자본은 인도에서 화폐와의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공공재인 화폐 사용을 막고 카드를 쓰게 해서 거래마다 그 프로그램을 돌리는 비자카드, 마스터카드로 이윤이 가게 하죠. 이는 공유경제가 아니죠. 정보만 공유하는 것뿐이에요. 우버택시도 마찬가지 입니다. 프로그램에다 택시를 예약하는 플랫폼이죠. 자동차를 나눠 쓰는 것이 아니라요. 금융과 디지털 회사를 소유한 사람들이 왜 갑자기 억만장자가 됐을까요? 모든 디지털 거래마다 수수료를 챙기기 때문입니다. 차를 운전하지도 않은 사람이 예약이 발생할 때마다 돈을 거둬요.

안: 우버택시나 에어비앤비 시스템을 보며 착잡했습니다. 그나마 적더라도 자기 자산이 있는 사람들이 벌이는 빚잔치 같아서요. 우버를 운전했던 분 말이 먹고살려면 회사 택시를 모는 것 이상의 노동시간을 들여야 한다고 하더군요. 택시회사에 자기 차를 몰고가서 일하는 것과 같은 기분이죠. 실제로 우버 이후에 미국 대도시 택시회사들이 줄도산했습니다.

시바: 프로그램이 일하고, 노동하지 않는 사람이 가장 큰돈을 만집니다. 노동하지 않는 자가 노동하는 사람들이 내는 수수료로 억만장자가 됩니다. 수수료산업이죠.

안: 선생님은 세계화에 앞장서서 반대해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국가주의가 세를 확장하고 있어요. 세계화가 싫다고 외치는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됐고, 브렉시트도 영국에서 이행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시바: 20년 동안 기업 중심의 세계화 속에서 대중이 고통받아왔지요. 사람들이 말해요. ‘이젠 좀 그만하자’고. 여기에 금융자본, 정보기술자본, 대형 농업자본이 매우 영리한 대응을 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영국이 했던 방식으로요. 1857년 세포이항쟁이 일어나고 동인도회사가 해체되자, 영국은 이렇게 대응했습니다. ‘인도인들이 우리에게 맞설 수 있었던 것은 똘똘 뭉쳐 있기 때문이다. 먼저 이들을 분열시키자. 그리고 통치하자!’ 영국은 매우 인위적이고 배타적인 정체성 개념을 만들어냅니다. 성공적이게도 인도인들끼리 싸움이 붙었어요. 잘 살던 이웃들이 무슬림과 힌두로 격돌했고, 결국 파키스탄으로 분할되었죠.

환경운동가이며 농부인 반다나 시바가 인도 북부 데라둔에 있는 나브다냐 농장에서 유기농으로 거둔 씨앗을 보여주며 웃고 있다. 안희경씨 제공

환경운동가이며 농부인 반다나 시바가 인도 북부 데라둔에 있는 나브다냐 농장에서 유기농으로 거둔 씨앗을 보여주며 웃고 있다. 안희경씨 제공

안: 인도에서 운전해준 분이 무슬림인데요. 제게 친한 무슬림 친구들이 여럿 있다고 하니 그제서야 미소지으며 자기 본명이 칸이라고 알려주더군요.

시바: 그래요. 무슬림들은 포위되었다고 느낍니다. 이런 두려움을 만들어낸 것이 이전부터 통치술로 써오던 분열로 통제하는 방식이에요. 오늘날 통치권력은 사람들의 원망이 커지며 공격받는다 싶으니까 분할통제를 꺼냈어요. 세계화에 진저리 난다고 하니 서로를 탓하게 조장하며 말합니다. ‘서로 죽이도록 놔둬라!’ 실제로 영국 국회의원이 총 맞아 사망하지 않았습니까. 경제 시스템에 저항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서로를 증오하며 문화전쟁을 치르는 덫에 걸려버렸습니다. 인도에서 분열 선동하던 영국이 지금은 자기네 영토에서 사람들을 인종으로 나눕니다. 브렉시트를 보세요. 어떻게 됐죠? 백인이 이민자를 증오합니다. 반세계화 논쟁은 어떻게 축소되었나요? 미국에서는 백인 대 유색인으로 맞서고, 백인 남성 대 여성으로 싸웁니다. 백인우월주의 이슈로 변질되어버렸어요.

안: 신자유주의가 가고 신파시즘이 왔습니다.

시바: 금이 그어진 겁니다. 인간이 조작한 정체성이죠. 어둠입니다. 식민주의가 있기 전에는 피부색을 신경 쓰지 않았어요. 그저 인종이 다를 뿐이었고, 차이를 받아들였죠. 그런데 색깔이 통치의 기준이 됐고, 타 종교도 악마화됐습니다. 모든 사회에는 늘상 남자와 여자가 있어왔어요. 여성이냐 남성이냐로 문화전쟁을 벌일 필요가 없었죠. 고통과 분노는 경제 때문에 발생했고, 반세계화 목소리는 기업이 조장하는 세상에 대한 저항이었는데, 사람들이 분열하게 되면서 원인으로 향하던 목소리는 줄어들었습니다. 거대산업이 저지르는 탐욕의 경제는 두려움과 증오의 정치로 옮겨가면서 그 세를 유지하고 있어요.

안: 그렇다면 국가와 지도자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시바: 세계화가 돈의 힘을 더 키워냈습니다. 그리고 돈의 힘이 국가의 테두리 안에서 시민의 힘을 약화시켰고요. 지도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온갖 방법으로 엄청난 돈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모든 부패한 지도자들은 선거에서 실제로 현금을 챙겨요. 선거에 뛰어드는 기업과 결탁하죠. 인도 경제의 디지털화는 인도에서 정치적으로 진행되고 있어요. 그 뒷배가 제가 ‘뱅가드 카르텔’이라 부르는 로비 집단입니다. 빌 게이츠, 비자카드, 마스터카드, 구글, 페이스북…. 그들이 선거 쇼를 펼치죠. 이들은 또 선거의 전체 과정을 선전의 과정으로 옮겨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텔레비전에 가장 많이 나온 자가, 미디어 감각이 특출난 자가 후보로 나올 수 있는 구조가 된 거죠. 진정으로 괜찮은 지도자는 목소리를 잃거나 범죄자로 몰리거나 물대포를 맞게 됐습니다. 한국의 농민처럼요. 세월호에 남겨진 아이들처럼 무시되는 거죠. 더 이상 사람이 중요하지 않은 거예요. 선거는 점점 더 기업의, 기업을 위한, 기업에 의한 선거로 되고 있어요. 점점 더 많은 부패 지도자가 이어지는 이유입니다. 한국뿐 아니라 곳곳에서 보내오는 신호가 ‘민주주의는 돈에 잡아먹혔다’입니다. 미국에서는 대법원 판결까지 나오길, 기업의 돈이 선거를 훔친 사건을 두고 기업의 표현의 자유라고 했어요. 왜 우리는 지금 민주주의를 제대로 세워내야 하는가 어떻게 일으킬 것인가 묻고 또 물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제가 글을 쓰고 지구민주주의(Earth Democracy)에 대해 알리는 이유입니다.

안: 지구민주주의, 제가 선생님을 다시 찾아올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시바: 우리는 각자의 삶을 통해서 민주주의를 회복시켜야 합니다. 투표용지를 통해서만이 아니죠. 투표용지가 깨끗하게 살아날 수 있을 때는 우리가 일상에서 더욱 힘을 갖고, 공동체가 되어 더 강한 힘을 창조할 때예요. 그런 다음 공동체들의 조합으로 삶이란 무엇인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자유란 무엇인가 등등에 대한 또 다른 차원의 생각을 창조하는 거죠. 그렇게 나아간다면 새로운 민주주의의 물결은 일어나게 돼요. 바로 지구와 함께하는 우리의 인간다움이 기능하면서요. 왜냐하면 돈이 휘두르는 권력은 우리 스스로를 보잘것없는 존재로 느끼게 하니까요.

안: 돈은 늘 침울하게 하죠.

시바: 그리고 인간을 퇴행시켰어요. 우리의 뇌를요.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손과 발을 퇴화시켰어요. 건장한 몸을 갖고 있으면서 오직 엄지손가락만 쓰고 있잖아요. 우리의 마음도 퇴화됐어요. 자비로움을 잃었어요. 지금 미국을 보면 알 수 있죠. 우리끼리 헐뜯고 드잡이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물질적 차원에서 일상을 재편해 세계경제를 바꿔나가자고 생각할 겨를이 없어졌어요. 지구민주주의는 대표로 뽑힌 이들이 잘한다고 해서 되지 않아요. 풀뿌리, 바로 우리가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는가에 달렸어요. 민주주의는 반드시 여러 겹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다양한 차원에서 수평적으로 조직되어야 합니다. 공동체로 이어지는 개인들, 공동체로 이어지는 나라들이 국제적으로 결합되는 것이 지구민주주의입니다.

안: 선생님은 평화를 강조하며 유기농을 꼽았고, 거기에 여성을 강조합니다. 에코페미니즘이 여성만이 아닌 지구를 살릴 길이라고 설파하는데요. 왜죠.

시바: 어떤 길을 둘러봐도 우리가 마지막으로 도달할 물음은 에코페미니즘입니다. 어제 어떤 모임에서 참석자들이 묻더군요. 왜 페미니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느냐고요. 제가 답했어요.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이들이 ‘페미니즘은 죽었다’고 말하기에 쓴다고요. 그전에는 굳이 페미니즘이란 용어를 넣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여성의 역량, 기술, 창의력, 힘, 자유라는 말을 써왔죠. 지금은 페미니즘 저편에 있는 그룹 전체가 페미니즘을 죽인 것은 여성이라고 하기에 강조해요. 페미니즘에다 마거릿 대처를 거론합니다. 마거릿 대처, 어쩌면 총리가 될지도 모를 마린 르펜(프랑스 극우정당 대표), 이들은 페미니즘이 아닙니다.

안: 한국의 부패한 여성 지도자도 여성차별을 강조합니다.

시바: 그들은 부패 시스템에 올라탄 여성일 뿐입니다. 여성해방이 아니라, 새로운 여성 포로죠. 부패한 사회는 여성에게 자유를 줄 수 없어요. 여성은 먹거리를 키워왔습니다. 음식을 요리하죠. 아픈 아이를 돌봅니다. 나이든 부모도 보살핍니다. 이것이 진정한 경제입니다. 이것이 자연의 경제입니다. 이것이 지속적인 경제예요. 진정한 돌봄경제, 진정한 공유경제. 공유경제는 전자기기로 창조되지 않습니다. 나누는 공유경제는 공감하는 자비로운 인간에 의해서 창조됩니다. 그렇다면 누가 자비를 일구는 길에서 리더가 될까요? 여성이에요.

안: 또 다른 성차별 아닐까요. 여성만이 희망을 만들 수 있고, 옳다는….

시바: 아니죠. 현실을 직시하는 겁니다. 남성들이 거부감을 가질 일이 아니에요. 그들도 함께 에코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는 거니까요. 에코페미니즘은 여성이냐 남성이냐로 나뉘지 않아요. 에코페미니즘은 우리가 갖고 있는 마음의 종류입니다. 간결합니다. 알아차리는 거예요. ‘자연은 살아 있고, 창조적이며,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생산한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겁니다. 바로 ‘여성성’이죠. 간디 선생께서 말씀하셨어요. ‘비폭력 혁명의 지도자는 여성이 되어야 한다.’ 전쟁으로 물든 남성들 마음에서 자비심이 죽었을 때, 여성이 그 불씨를 계속 살려왔기 때문이에요. 그럴 수 있었던 건 여성이라는 유전자 때문이 아니라, 여성이 있어온 위치, 역할 때문이죠. 자비심은 성염색체 속에 있는 자산이 아닙니다. 지금껏 시장경제가 가치 없다 치부하던 일을 여성이 떠맡아오던 상황에서 길러진 겁니다.

안: 보살핌을 간직한 여성의 마음에서 온 생명을 살릴 길을 발견하는 거군요.

시바: 진실한 공유사회를 길러내는 현장을 건설하는 겁니다. 자비심을 바탕으로, 우리의 지성을 바탕으로, 자연의 지성을 바탕으로. 그렇게 자리한 경제만이 진정한 공유경제라 부를 수 있어요. 그리고 아직 우리 세상에 희망이 있다면 이는 자연이 갖고 있는 지적 능력 때문입니다. 이러한 지성이 우리에게 자유를 줍니다.

안: 모든 생명에는 인간과 다른 방식의 지적 활동이 있죠. 식물의 지능도 지금은 과학자들이 대중의 눈높이에 맞게 보여주고 있고요. 온 생명과 지성을 통해 연결되자, 결국 생명에 대한 깨달음까지 가는 쉽지 않은 길인데요. 저는 박사님 가르침 중에 머리(head), 가슴(heart), 손(hand)을 강조하는 지침을 듣고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바로 손을 강조하시는 말이 반가워서요.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의 사고, 마음, 기분, 결정 등은 몸을 쫓아가는 거 같아요. ‘손’이 갖는 의미는 엄청난 가능성이겠다고 여겼습니다.

시바: 우리의 몸은 분산된 지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분산된 에너지 시스템이죠. 가장 높은 차원의 분산이 바로 지능이고요. 이는 몸 구석구석에 있어요. 모든 세포에. 그러니까 지능이 뇌에 있다는 사고는 아주 인위적인 발상입니다. 그리고 몸의 모든 부분은 기능하려는 욕구가 있습니다. 우리의 존재는 어딘가를 떠돌고 있는 추상적인 마음이 아니죠. 머릿속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자연의 일부이자 그로부터 확장된 존재입니다. 자연의 연장으로 존재하며 공동체를 이뤄요. 내가 지금 당신과 시간을 보내고 있잖아요. 이 시간 속에서 당신하고 나는 하나로 있는 거예요. 우리들은 서로서로의 연장으로 존재하고 있답니다. 우리의 대화가 서로를 연결시켜주고요, 눈맞춤이 우리를 이어주고 있어요. 불교에서는 이를 두고 ‘상호존재(inter-being)’라는 단어로 표현합니다. 분리되어 있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 안에 있는 거죠. 우리는 나무에도 있어요. 나무는 우리 안에 있고요. 그들이 주는 선물로 지금 우리가 이렇게 각자 자기답게 있죠. 자연이 우리의 생명을 만들고 우리의 세포, 우리 몸을 만들어요.

안: 결국 마음은 뇌의 작용보다 확장된 몸 전체의 작용이자 온 세상의 작용인 거네요.

시바: 몸이야말로 우리를 세상과 연결시켜주는 매개체입니다. 내가 탁자를 만지면 탁자가 느껴지죠. 잘 살고자 하는 모두의 실험은 반드시 자연과 사회와 맺고 있는 개인의 관계를 꾸준히 이해하면서 진행되어야 합니다. 다차원으로 온 생명을 이해하는 끈기가 있어야 하죠. 오직 몸이 줄 수 있는 우리의 감각도 함께 깃들여서요. 보세요. 우리의 감각은 멈추지를 않습니다. 몸은 전체로써 알아차리는 주체예요. 그리고 몸의 창조성은 전체가 작동할 때만 충만하게 드러나고요. 오직 충만하게 깨어 있는 자비로운 인류만이 사랑과 보살핌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되어보시죠.

안: 개인이 사회와 자연과 이어지며 힘을 기르는 길, 어떻게 다다를 수 있을까요.

시바: 간디 선생께서 말하기를 우리 모두는 반드시 빵 만드는 노동을 수행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빵을 빚는 노동을 불러냈어요.

안: 먹는 빵이오?

시바: 네, 그는 진짜 노동을 말한 거예요. 컴퓨터 두드리며 돈 벌어 사먹는 빵 말고요. 빵을 빚는 진실한 노동 말입니다. 이 멋진 몸으로 빵을 만들면서, 그러니까 농부가 아니라 해도 집에서 빵은 구워낼 수 있잖아요. 그리고 먹거리도 직접 기르는 겁니다. 그럼 사람들이 말하죠. ‘우린 도시에 사는데요.’ 아시나요? 델리 우리 집 테라스엔 채소가 빽빽하게 자라고 있어요. 당신도 당신의 두뇌를 잘 보살필 수 있습니다. 뱃속을 편안하게 보살핌으로써요. 그럼으로써 우리는 자유를 창조하게 됩니다. 오직 몸이 줄 수 있는 우리의 감각도 함께 깃들여서요. 보세요. 우리의 감각은 멈추지를 않잖아요.

변화의 가능성을 못 미더워하는 이들에게 반다나 시바는 예술가처럼 가보자고 했다. 훌륭한 아티스트가 그림을 그릴 때 아무도 막지 않고 결국 아름다운 작품을 선보이듯, 사회를 움직이는 길에서 각자 예술가가 되자고 한다. 그럼 변화는 온다는 확실함을 느낄 수 있다고. 30년 전 씨앗을 지키자는 외침은 오직 반다나 시바의 목에서만 나왔다. 하지만 지금은 전 세계로 조직되어나가는 거대한 운동이다. 희망에 속을까 마음 사리면서도 희망을 향해 일어서는 우리에게 그의 생은 변화의 증거로 격려를 보내고 있다.



Posted by 익은수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