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캐스트 '시시한 다방'이 있다. 김사인 시인이 진행을 하는 팟캐스트다.

그의 목소리가 참 좋았다. 떨리는 듯한 목소리가 시를 읽어주는 데 딱이다 싶었다.

그런데 이제 진행을 그만두신단다.

마지막 진행 때는 손님으로 나왔는데, 이때 진행자가 김사인 시인이 2006년 대산문학상을 받았을 때

소감을 읽어주었다.

이 방송을 들은 한 벗이 그것을 손수 적었단다.

흘러가는 소리로 듣는 것과 새겨진 글씨로 읽는 것은 참 다르구나 싶었다.

그래서 나도 여기 새겨두고자...^^


옛날 '노동해방문학'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이걸 이 분이 만드셨더라.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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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소중히 여기는 우리 말 중에 '섬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섬김이라는 말을 입 안에서 굴려보는 것만으로도 저는 좀 더 순해지고 맑아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외람되지만, 저는 제 시 쓰기가 적으나마 세상의 목숨들을 섬기는 한 노릇에 해당하기를 조심스레 빌고 있습니다. 섬김의 따뜻하고 순결한 수동성 속에서 비로소 가능할 어떤 간곡함이 제 시 쓰기이 내용이자 형식이기를 소망합니다.


저의 시가, 제 말을 하는 데 바쁜 시이기보다 묵묵히 기다리는 시이기를, 할 말을 잘하는 시인 것도 좋지만, 침묵해야 할 때에 침묵할 줄 아는 시이기를 먼저 바랍니다. 저의 시가 이기는 시이기보다 지는 시이기를 바랍니다. 맑고 드높은 웃음도 아름답지만, 영혼은 언제나 설움과 쓰디쓴 쪽에서 더 온전하게 제 모습을 드러낸다고 믿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감히 그들을 위한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비 맞는 풀과 나무들 곁에서 함께 비 맞고 서 있기로서 저의 시 쓰기를 삼고자 합니다. 우산을 구해 오는 일만 능사라고 목청을 높이지 않겠습니다. 그 찬비 맞음에 외로움과 슬픈 평화를 마음 다해 예배하겠습니다. 그 곁에 서서 함께 비 맞음의 극진함으로써 제 몫의 우산을 삼겠습니다. 그것으로서 저의 리얼리즘을 삼고, 전복적 글쓰기를 삼고, 할 수만 있다면 저의 생태적 상상력과 저의 페미니즘을 삼을 수 있기 바라겠습니다. 이 소망이 과한 것이라면 부디 저의 시 쓰기가 누군가를 사하게 하는 노릇만이라도 아닐 수 있기를 마지막으로 강구하겠습니다. 


풀과 돌의 이름을, 거기 그렇게 있는 그들의 참다움을 내 시를 꾸미려고 앗아오지 않겠습니다. 지어낸 억지 이름을 그들에게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그들이 스스로 제 이름을  꽃피울 때를 오래 기다리겠습니다. 그들이 열어 허락한 만큼만을 저의 시로서 받들겠습니다. 그리하여 큰 수행이자 큰 과학이자 큰 예배로서 저에게 시 쓰기가 오래도록 다함이 없기를 기원할 따름입니다.


                                                                                                        - 시 쓰는 김사인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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