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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가 밥이다]놀이 없이 공부만 한 아이들, 아는 건 많지만 생활 부적응도 많아

ㆍ(5) 상담창구에 비친 놀이

# 초등학교 3학년인 희성(10·가명)이는 4세 때부터 영재교육을 받았다. 엄마는 희성이가 이미 중학교 수준의 지식 수준을 갖췄다고 자랑했다. 희성이는 또래 아이들이 읽지 못하는 영어책을 모두 읽어내고, 그 내용도 완벽하게 파악한다. 하지만 정작 “책 속에 있는 아이가 왜 슬펐을까? 왜 화가 났을까?”라는 질문에는 답을 하지 못한다. 희성이는 또래들이 즐겨하는 훌라후프도 잘 안다. 누가 처음 만들었고 그 재질이 뭔지, 어떤 원리로 회전하는지 알고 있다. 

희성이는 그러나 훌라후프를 돌리지 못한다. 체스게임도 마찬가지다. ‘퀸’이나 ‘룩’ 등의 장기말이 어떤 규칙으로 움직이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막상 체스판 앞에 앉은 희성이는 멀뚱히 바라만 볼 뿐, 체스를 두지 못한다. 희성이는 훌라후프나 체스를 통해 한번도 놀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희성이의 지능은 또래 아이와 비슷한 수준이다. 지능검사에서 언어성은 만점에 가깝지만, 동작성은 평균 이하로 나왔다. 책에서 본 내용을 자신의 행동으로 나타낼 수 없는 것이다. 


#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재석(8·가명)이는 자신을 “한자를 많이 아는 아이”라고 소개한다. 또래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는 스케치북에 재석이는 한자를 적는다. 또래들과 달리 변신로봇을 합체하거나 장난감 팽이를 조립하는 것을 재석이는 할 줄 모른다. 유치원을 함께 다녔던 아이들은 재석이가 한자를 잘 아는 것에 대해 관심이 없다. 다른 아이들에게 재석이는 변신로봇이나 팽이로 함께 놀 수 없는 아이일 뿐이다. 아이들과 벽이 생긴 재석이는 다른 아이의 스케치북을 찢는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나홀로 왕따’가 된 재석이가 아이들 사이에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택한 행동이었다.


▲ 충분히 놀지 못한 아이, 아는 것 행동에 못 옮기는
‘사이보그형’ 될 위험


▲ ‘놀이 학습’은 학습일 뿐 갈등 해결 능력 깨치는
관계성 지닌 ‘놀이’ 아냐


▲ 엄마들 슈퍼맘 되려 말고 쉬어야 아이와 놀 수 있어

또래들의 놀이와 격리되거나 친구들에게 공격적인 행동을 하다 상담창구를 두드리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놀이 시간을 공부로 채우고, 놀이도 머리로만 하다 ‘아파하는’ 아이들이다. 머리는 큰데 손과 발은 아주 조그마한, ‘ET’와 같은 모습이 돼가고 있는 것이다. 아이에게 책만 쥐여주려는 조기교육 열풍의 그림자일 수도 있다.

2002년부터 아동상담을 진행해온 선우현 명지대 아동심리치료학 교수는 “과거에는 발달장애 등 선천적인 원인으로 상담하러 온 아이들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정서·행동 장애로 찾아오는 아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지적인 수준은 높지만, 아는 것을 실행으로 옮길 수 없는 ‘사이보그형 아이’ ‘백과사전형 아이’가 정서·행동 장애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실제 놀이가 없는 아이들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세상을 배울 기회를 잃어가고 있다. 세탁기를 돌리거나 전화를 받는 소꿉놀이를 해보지 못한 아이는 ‘나도 어른처럼 세탁기를 돌리고, 전화를 받을 수 있어’라고 유능감을 익힐 기회를 갖지 못한다. 역할놀이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마트 판매원이나 물건을 사는 손님인 것처럼 놀면서 마트라는 작은 세상에서 이뤄지는 언어를 배우고 그에 따른 행동을 배운다. 의사놀이, 선생님놀이, 아빠놀이, 전쟁놀이 등도 마찬가지다. 

김명순 연세대 교수는 “아이에게 놀이를 뺏는 것은 세상을 배우는 기회를 앗아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초등학교 2학년 나정(9·가명)이는 늘 ‘착하고 올바른 사람’이 되라고 가르침을 받았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엄마는 나정이에게 “이런 행동은 옳지 않으니 그렇게 하면 안돼” “네가 잘못을 했을 때는 반드시 네가 사과를 해야 해”라고 가르쳤다. 그러다 최근 네 살배기 동생을 무섭게 훈계하는 나정이를 보고 엄마는 놀랐다. 나정이가 얼굴을 잔뜩 붉힌 채로 동생에게 “네가 잘못했으니까 네가 나에게 사과를 해야 해”라고 다그친 것이다. 딱딱하게 굳은 훈계조의 나정이 얼굴은 학교생활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나정이는 친구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시시비비만 따지며 ‘그 친구가 나쁜 행동을 하고도 사과를 하지 않았으니, 나쁜 아이야’라고 생각한다. 나정이는 동생과 친구가 어떤 상황에서 그런 행동을 하게 됐는지 이해하려 하거나 문제를 화해로 풀려는 생각이 없다. 그렇게 할 줄도 모른다. 나정이가 친구들과 멀어지고 단절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정이는 제대로 놀지 못하고 자란 또 다른 피해자다. 친구들과 함께 몸으로 놀아보지 못한 아이는 사회성을 키우지 못하거나 더디다. 놀이는 상상과 그에 따른 규칙 안에서 이뤄진다. 가령 전쟁놀이를 하는 아이들은, ‘탕탕탕’ 하는 목소리와 함께 실제 총알이 발사됐다고 상상하며 논다. 이 상상에 동의한 아이들끼리 함께 놀이가 이뤄진다. 그러다 놀이에 참여하는 아이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면, 자연스레 새로운 상상과 규칙이 생겨난다. 아이들은 이 과정에서 수많은 갈등 상황을 만난다. 이때 아이들은 상대방을 이해하고,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며, 타협하는 방법과 내성을 기른다.


사실 상담창구를 찾은 나정이 엄마도 유년 시절 행복하게 놀아본 경험이 없다. 그는 부유하고 엄격한 환경에서 많은 것을 누렸지만, 오빠나 친구들과 정신없이 놀아본 경험은 거의 없다고 했다. 나정이 엄마는 “요즘 나정이 모습을 보며 ‘나도 어렸을 때 사람들과 충분히 놀지 못했구나’라고 느끼게 된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아이들에게 놀이를 허락하지 않는 부모들은 대개 ‘슈퍼맘 콤플렉스’에 빠져 있거나 자신이 놀아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놀아본 경험이 없거나, 놀 때 느낀 행복에 대한 기억이 흐릿한 부모에게 놀이는 ‘쓸데없는 짓’ ‘왜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시간 낭비’로 보인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쓸데없는 짓을 그만두도록 유도하는 것을 의무라고 생각한다. 이향숙 한국아동청소년심리상담센터 원장은 “아이들에게 ‘언제 사랑받는다고 느끼느냐’고 물으면 ‘엄마가 나랑 놀아줄 때’라고 답한다”며 “부모들과 아이들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것이 놀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부모에게 원죄를 씌우는 것은 최악의 처방이다. 전문가들은 상담창구에 아이를 데려온 엄마에게는 ‘친정이 가까이 있느냐’는 질문을 제일 먼저 던진다고 한다. 최상철 디딤소아정신과클리닉 원장은 “모든 성인 부모가 ‘유아교육과를 나온 것이 아니다. 부모라고 완벽할 순 없다’고 생각하면 ‘엄친아의 엄마’라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아이들과 놀고 싶어도 놀 시간이 없다고 항변하는 부모들도 많다. 하지만 ‘놀이는 사소한 것’이라는 생각을 갖는다면, 달라질 수 있다. 김지훈 부산대 어린이병원 정신건강클리닉 교수는 “ ‘엄마가 퇴근 후에 하루 30분 동안 너와 꼭 놀 거야’라는 식으로 아이가 놀이 시간을 예측하도록 하고, 이 시간에는 완전히 집중해서 노는 것이 중요하다”며 “다만 부모는 아이보다 한발자국 뒤에서 따라간다는 느낌으로, 아이에게 놀이의 주도권을 주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한익 서울우리아이마음클리닉 원장도 “아이와 노는 것이 재미있어지려면 부모가 아이의 나이로 퇴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참교육학부모회·서울 노원·도봉구청 공동기획>

<곽희양 기자 huiyang@kyunghyang.com>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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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가 밥이다]돈으로 사는, 주어진 놀이에 익숙… 놀 줄 몰라 또 돈을 낸다

“불이 2층까지 번지고 있어요. 초기 진화 확실히 해주세요.”

지난달 18일 오후 서울 영등포에 있는 한 직업체험형 키즈카페에서는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어두운 실내엔 물냄새 섞인 매캐한 연기가 퍼졌다. 한쪽 벽엔 고층빌딩 외벽처럼 꾸며진 패널 뒤로 ‘가짜 불꽃’이 날름거렸다.

소방대원 옷을 입은 아이들은 저마다 멍하니 앞을 바라보며 위아래로만 움직이도록 고정된 물호스 손잡이를 잡았다. 여섯 살 난 한석이는 엄마를 불러보지만 사이렌 소리에 묻혔다. 손잡이를 양손으로 붙잡고 엄마 쪽으로 호스를 당겨봐도 물줄기는 아주 조금 방향이 틀어질 뿐이다. 이윽고 사이렌 소리와 물줄기가 멎으며 5분의 체험시간이 끝났다. “어린이 여러분, 축하합니다. 화재 진압에 성공하셨습니다!”

그날 오후 찾아간 서울 목동의 테마파크형 키즈카페. ‘심해(深海) 세계’를 모티브로 삼은 카페엔 10평 남짓한 모래놀이터가 보였다. 소독된 모래로 채워진 모래놀이터는 기명 예약제로 운영된다. 옷 위에 작은 몸뻬와 장화를 착용한 6명의 아이들이 모래 위에 옹기종기 앉아 놀았다. 혼자 온 연수(4)는 함께 놀 사람이 없는 듯했다. 연수는 “연수야, 맘마 먹자”라고 중얼거리며 조그만 장난감 삽으로 양동이에 연신 모래를 퍼담았다. 연수가 엄마가 되고 아가도 되는 ‘혼자 소꿉놀이’다. 연수의 양동이가 반쯤 차오를 때 유리창문 너머로 “디보 만화영화 시간이다~”라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아이들은 갖고 놀던 장난감을 버린 채 우르르 밖으로 뛰쳐나갔다. 혼자 남아 당황한 연수는 잠시 망설이듯 손에 든 장난감을 바라보다 언니들을 쫓아갔다.

어린이 1만5000원, 어른 5000원. 엄마와 아이가 ‘노는 값’이다. 이 돈을 내면 두 시간 동안 엄마는 편하게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아이는 카페의 놀이기구들을 맘껏 이용할 수 있다. 그사이 엄마가 마시는 커피나 식사 값, 아이들이 추가로 체험하는 프로그램 값은 별도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노는 값’ 내는 키즈카페선 친구 아닌 장난감과 놀아
실내 모래·학습체험 등 갖출 것은 다 갖췄지만
타인과의 ‘관계’는 없다


‘돈으로 사는’ 놀이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키즈카페의 시초 격인 실내놀이터가 선보인 뒤 2000년대에는 놀이뿐 아니라 직업·스포츠·학습을 체험하는 ‘복합 기능’의 키즈카페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2012년 말 한국생활안전연합이 조사한 결과 요식·놀이시설을 겸비한 키즈카페는 2000년대 초 한 자릿수였으나 2008년 47개, 2012년 208개로 급증했다. 2곳 중 1곳(49.5%)은 수도권에 둥지를 틀었다. 어린이 실내 놀이시설로 넓히면 전국에 1030개에 이른다.

늘어난 숫자만큼 종류도 다양해졌다. 서울 ㄱ키즈카페에선 ‘어린이 방방(트램펄린)’이 유명하다. 청소년 사이에서 인기인 ‘디스코 팡팡’을 모방한 트램펄린 위에서 5~10세 아이들이 최신 아이돌 유행가에 맞춰 ‘방방’ 뛰며 춤추고 논다. 어두운 실내에 디스코 나이트 못지않은 현란한 사이킥 조명이 비친다.

경기도 ㄴ키즈카페의 콘셉트는 ‘어린이 실내 테마파크’다. 500평이 넘는 넓은 실내 한쪽에 풀장도 있어 아이들은 1인용 유아보트를 타고 물 위를 떠다닌다. 엄마는 카페에서 폐쇄회로(CC)TV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놀이와 학습을 겸한 놀이교육 키즈카페도 엄마들이 많이 찾는다. 프랜차이즈 ㄷ키즈카페에서는 원어민이 영어 동화책을 읽어주거나 아이들과 체험활동을 하고 있다. ‘에듀테인먼트 공간’을 표방하는 ㄹ키즈카페는 미니큐브, 기하판, 창의수막대 등 활동놀이 수학교구들을 갖추고 있다. 1세부터 초등 저학년까지 체험놀이를 통해 수학의 기본개념을 배우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돈으로, 학습으로 하는 놀이엔 없는 게 있다. ‘관계’다. 올해 딸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박모씨(41)는 “키즈카페에서 노는 아이들은 대부분 친구가 아닌 신기한 기구, 장난감과 논다”며 “요새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수동적으로 ‘주어진 놀이’에 익숙해지다보니 놀이터에 가고 싶어도 놀 줄 몰라서 어쩔 수 없이 키즈카페로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열흘에 한번꼴로 8세, 11세 두 아이를 데리고 키즈카페를 찾는 성모씨(35)는 “날씨에 상관없이 아이들을 안전하게 맡겨놓을 곳이 키즈카페 정도라서 주말에 쉬고 싶을 때 자주 방문한다”고 말했다. 한번에 기본 비용만 4만~5만원, 체험 프로그램이 추가되면 6만~7만원까지 들어 부담은 되지만 부모도 한숨 돌리고 쉴 수 있어 찾게 된다고 했다.

놀이의 본성을 돈으로 살 수 있을까. 지난해 서울 동북지역 3개 초등학교에서 방과후 ‘와글와글 놀이터’를 운영해 본 놀이터 이모 김수현씨는 “그렇지 않다”며 ‘돈 딱지’ 놀이를 포기한 아이들 얘기를 시작했다. 아이들 사이에선 처음에 딱지 안에 500원짜리 동전을 넣어 하는 돈 딱지치기가 유행이었다. 500원이 없는 아이들은 참여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놀이터 이모가 돈을 넣지 않은 딱지치기 놀이를 제안하자 아이들은 바뀌었다. 자신이 접은 만큼 딱지를 가질 수 있게 되자 소외된 아이 없이 딱지치기에 열중하고, 승자와 패자는 갈려도 전처럼 얼굴을 붉히거나 다투는 일이 없었다. 아이들이 원하는 건 돈이나 값비싼 장난감이 아닌 친구들과의 어울림, 놀이였다.

2012년부터 주 1회씩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전래놀이마당을 열고 있는 서울 동작구 부모커뮤니티 ‘삼별아’의 오명화 대표는 “아이들이 주도권을 갖고 ‘맘껏’ 노는 것이 건강한 놀이의 핵심”이라며 “돈을 받으면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의무가 생긴다. 고로 놀이가 서비스가 되고 어른들의 개입이 커지면서 아이들의 자유는 축소된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참교육학부모회·서울 노원·도봉구청 공동기획>

<김지원 기자 deepdeep@kyunghyang.com>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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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가 밥이다]기고 - 부모가 갑, 아이가 을인 놀이는 가짜 놀이

놀이란 말은 항시 ‘즐거운, 재미있는, 자발적인’이란 단어와 함께 붙어 다닌다. 즐겁고 재미있는 일들만 자발적으로 하며 지냈다면 매우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할 것이다. 놀이는 바로 이런 특성을 모두 지니고 있다. 많은 학자들은 아이들이 끊임없이 놀고 또 놀아도 왜 다시 놀 기운이 생기고 놀고 싶어 하는지, 그 무한한 내적 동기와 긍정 에너지, 몰입에 대해 관심을 가져 왔다.

어린아이들은 세상에 나온 후 자신의 다섯 가지 감각을 사용해 수많은 반복 경험을 한 후에야 내가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이 누구인지, 그 맛이 좋은지 아닌지 조금씩 알아 가게 된다. 아이들은 만 1년6개월이 지나면서 세상에서 본 70~100여개의 사물이나 행동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만 2세에서 3세로 올라가면서 이러한 사물과 어휘 습득은 곱절로 늘어나고 만 4~5세가 되면 기하급수적으로 개념·기술·태도에 대한 새로운 내용이 증가한다. 그러나 감당하기 어렵지만은 않다. 이를 쉽게 해결할 방법 역시 아이들 내부에 있기 때문이다.

피아제(Piaget)라는 심리학자는, 끊임없이 능력에 부치게 계속 입력된 개념들 중에서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개념일 경우 아이는 스스로 꺼내서 반복 사용해보고, 그것이 즐거워 다음번, 다음날에도 다시 꺼내보며 다시 확인해 가는 과정에 몰두하는데 이렇게 재미난 행위를 바로 놀이라고 했다.

이때 아이는 지루하게 그냥 반복하지 않는다. 본래의 두 사물이나 두 역할을 서로 바꾸어서 ‘마치 ~인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이것을 상상놀이, 가장놀이, 역할놀이라고 한다. 내가 아빠인 것처럼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는 척하기도 하고, 작은 목욕통에 앉아서 마치 핸들이 있는 것처럼 잡고 부릉부릉 운전하는 행동을 한다. 아이는 처음 알게 된 아빠의 행동이나 자동차, 핸들, 운전하기 등의 역할을 재밌게 숙달하고 있는 중이다. 아빠나 자동차 등의 개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스스로 꺼내서 다시 해보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동기와 진지함, 몰입이 값진 것이다.

이런 즐거움이 누적되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가 키우고 싶어 하는 문제해결력과 같은 고등사고 기능이 발달하게 되고, 개념과 기술을 독특하고 색다르게 사용하면서 창의적, 전략적 특성도 함께 늘게 된다. 사회성과 안정된 정서도 향상된다.

놀이의 힘은 연령이 어릴수록 바람직한 성장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놀이라는 명분 속에 새로운 공부와 개념을 넣어 주려고 할 때, 재미난 놀이 계획을 성인이 세운 후에 아이에게 따라오도록 할 때, 매력적인 ‘놀잇감’과 환경을 주며 성인이 생각하는 목표에 집중시키려 할 때, 이미 그 성인은 놀이에서 ‘갑’의 위치를 차지한다. 어른들은 ‘시간을 쪼개 아이와 놀아줬기 때문에 내 역할을 다했네’,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거리를 만들어줬네’라고 생각할 수 있다. 

진짜 놀이는 갑작스럽고 호들갑스럽게 아이의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다. 현재와 상상이 마구 오가기도 하고, 실패와 성공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 언제라도 현실세계로 돌아오고 조금 전에 했던 것에 대한 평가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 사건의 계획과 시작, 선택과 진행, 끝남과 재시작의 모든 과정에 대한 결정을 아이가 할 때 ‘진짜 놀이’라고 한다. 놀이에서 아이는 ‘갑’이어야 한다.

<김명순 | 연세대 교수>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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