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퍼옴]

[놀이가 밥이다]“아이들 놀지 못하면 사회비용 커진다”

ㆍ감정 발산 못하고 안에 쌓여 우울하거나 공격적으로 변해
ㆍ무기력감도 더 자주 표출

김미경씨(56·사진)는 학부모·교사·학생들에게 ‘비폭력 대화’와 ‘갈등 중재’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강사로 일하고 있다. 그 전에는 30년간 중·고교에서 국어교사를 했다.

김씨는 ‘놀이가 밥이다’라는 기획을 하고 있는 경향신문과 만나 “놀이를 빼앗긴 아이들로 인해 우리 사회가 큰 비용을 치를 수 있다”고 말했다. 교육현장에서도 놀지 못한 아이들이 감정적으로 우울하거나 공격적이고, 무기력감을 더 자주 표출하는 것을 봤다고 했다. 감정을 발산하는 놀이를 하지 못하고, 몸이나 말로 드러내야 할 감정이 안으로 쌓여온 흔적이 ‘사고’가 터졌을 때 곧잘 보였다는 것이다.

김씨가 서울의 중·고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것은 1980년부터 2009년까지다. 김씨는 아이들의 놀이가 급변한 분기점으로 1997년 외환위기를 지목했다. 놀이터에는 아이들의 함성이 뚝 끊겼고, 골목이나 어디서도 아이들의 노는 모습은 눈에 띄게 줄었다. 아이들은 집이나 학원에서 공부만 했고, 성적 경쟁은 치열해졌다. 자녀교육이 무한경쟁, 아동학대 수준으로 달리는데도 부모들은 ‘아이 장래를 위한다’며 고삐를 죄려고만 했다.

아이들의 공부 강박증이 선을 넘었다고 느낀 지 이미 오래된 2009년, 김씨가 학교를 그만두고 지금의 일을 택한 것도 한 아이와의 상담이 계기가 됐다.

“우리반 아이 하나가 미술시간에 조각도로 친구에게 위험한 행동을 해서 얘기를 나누게 됐어요.”

김씨는 “그 아이가 며칠 전 새벽에 엄마가 잠자고 있던 자기를 깨워 다른 아파트 쪽을 가리킨 적이 있다”며 “엄마가 ‘친구방에는 불이 켜져 있는데 너는 시험기간에 왜 자느냐’고 말했을 때 그날부터 엄마도, 친구도 죽이고 싶었다고 고백했다”고 전했다. 아이들이 이렇게 힘들어하는 걸 부모도 교사도 모르고 있다는 생각에 학교를 떠나 부모와 교사들에게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주는 효율적인 방법을 찾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그는 놀지 못하는 연령이 점점 내려와 아이들이 몸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잊어버린 듯하다고 했다. 한국에서의 교육이 갈수록 감각기관을 활성화할 수 있는 놀이 요소와 음악·미술·체육 과목을 줄이고 지식교육 위주로 흐르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김씨는 “부모들이 말로는 아이들의 창의력과 자존감, 책임감을 키우고 싶다고 하면서 실은 모든 것을 막고 있다”며 “원하는 것과 몸이 하는 것이 따로 가 헛수고가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부모들을 만나보면 아이에게 길러주고 싶어하는 가치의 출발점이 자율성인데, 아이들의 놀이친구 그룹까지 만들어주려 뛰어다니는 게 어른이었다. 아이들은 놀이에서마저 자율성을 빼앗긴 것이다.

김씨는 “놀이에서도 아이들의 주체성을 빼앗는 부모들의 태도 뒤엔 스스로의 불안과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며 “아이들은 부모가 불안해하는 것을 안다. 부모의 불안은 아이들에게로 쉽게 전염된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의 삶에 대해 불안해하지 말고 어렸을 때부터 몸으로 놀게 해 주고, 아이들을 제발 부모의 감시에서 놔주라고 말하고 싶다”며 “그것이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키우고 감정 변화와 어려움을 헤쳐가는 법도 스스로 체득하게 해준다”고 말했다.

<송현숙 기자 song@kyunghyang.com>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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