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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가 밥이다]기고 - 부모가 갑, 아이가 을인 놀이는 가짜 놀이

놀이란 말은 항시 ‘즐거운, 재미있는, 자발적인’이란 단어와 함께 붙어 다닌다. 즐겁고 재미있는 일들만 자발적으로 하며 지냈다면 매우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할 것이다. 놀이는 바로 이런 특성을 모두 지니고 있다. 많은 학자들은 아이들이 끊임없이 놀고 또 놀아도 왜 다시 놀 기운이 생기고 놀고 싶어 하는지, 그 무한한 내적 동기와 긍정 에너지, 몰입에 대해 관심을 가져 왔다.

어린아이들은 세상에 나온 후 자신의 다섯 가지 감각을 사용해 수많은 반복 경험을 한 후에야 내가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이 누구인지, 그 맛이 좋은지 아닌지 조금씩 알아 가게 된다. 아이들은 만 1년6개월이 지나면서 세상에서 본 70~100여개의 사물이나 행동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만 2세에서 3세로 올라가면서 이러한 사물과 어휘 습득은 곱절로 늘어나고 만 4~5세가 되면 기하급수적으로 개념·기술·태도에 대한 새로운 내용이 증가한다. 그러나 감당하기 어렵지만은 않다. 이를 쉽게 해결할 방법 역시 아이들 내부에 있기 때문이다.

피아제(Piaget)라는 심리학자는, 끊임없이 능력에 부치게 계속 입력된 개념들 중에서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개념일 경우 아이는 스스로 꺼내서 반복 사용해보고, 그것이 즐거워 다음번, 다음날에도 다시 꺼내보며 다시 확인해 가는 과정에 몰두하는데 이렇게 재미난 행위를 바로 놀이라고 했다.

이때 아이는 지루하게 그냥 반복하지 않는다. 본래의 두 사물이나 두 역할을 서로 바꾸어서 ‘마치 ~인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이것을 상상놀이, 가장놀이, 역할놀이라고 한다. 내가 아빠인 것처럼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는 척하기도 하고, 작은 목욕통에 앉아서 마치 핸들이 있는 것처럼 잡고 부릉부릉 운전하는 행동을 한다. 아이는 처음 알게 된 아빠의 행동이나 자동차, 핸들, 운전하기 등의 역할을 재밌게 숙달하고 있는 중이다. 아빠나 자동차 등의 개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스스로 꺼내서 다시 해보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동기와 진지함, 몰입이 값진 것이다.

이런 즐거움이 누적되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가 키우고 싶어 하는 문제해결력과 같은 고등사고 기능이 발달하게 되고, 개념과 기술을 독특하고 색다르게 사용하면서 창의적, 전략적 특성도 함께 늘게 된다. 사회성과 안정된 정서도 향상된다.

놀이의 힘은 연령이 어릴수록 바람직한 성장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놀이라는 명분 속에 새로운 공부와 개념을 넣어 주려고 할 때, 재미난 놀이 계획을 성인이 세운 후에 아이에게 따라오도록 할 때, 매력적인 ‘놀잇감’과 환경을 주며 성인이 생각하는 목표에 집중시키려 할 때, 이미 그 성인은 놀이에서 ‘갑’의 위치를 차지한다. 어른들은 ‘시간을 쪼개 아이와 놀아줬기 때문에 내 역할을 다했네’,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거리를 만들어줬네’라고 생각할 수 있다. 

진짜 놀이는 갑작스럽고 호들갑스럽게 아이의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다. 현재와 상상이 마구 오가기도 하고, 실패와 성공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 언제라도 현실세계로 돌아오고 조금 전에 했던 것에 대한 평가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 사건의 계획과 시작, 선택과 진행, 끝남과 재시작의 모든 과정에 대한 결정을 아이가 할 때 ‘진짜 놀이’라고 한다. 놀이에서 아이는 ‘갑’이어야 한다.

<김명순 |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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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가 밥이다]‘디지털 보모’ 밑에서 자라는 ‘디지털 키즈’

ㆍ부모들 ‘쉬는 시간’ 위해 컴퓨터 게임 접하게 놔둬
ㆍ친구들과 어울릴수록 인터넷 중독 염려 줄어

초등학교 2학년인 은석(9·가명)이는 여섯 살 때 컴퓨터 게임을 시작했다. 맞벌이인 부모는 은석이를 세심하게 신경 쓰진 못했지만, 방치하진 않았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은석이를 보며 ‘다른 아이들도 하는 게임이니까 큰 문제는 안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은석이가 게임에 몰입할 때는 엄마·아빠의 ‘쉬는 시간’이기도 했다. 집에 손님이 오거나 은석이가 떼를 쓸 때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켜주면 조용해졌다. ‘디지털 보모’ 밑에서 자라는 ‘디지털 키즈’가 된 것이다. 지금 은석이는 학교나 학원을 오가며 짬짬이 나는 시간이나 잠자기 전에 게임기를 찾는다. 그외의 놀이는 은석이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은석이는 게임 속 캐릭터처럼 행동하기도 했다. 친구들을 괴롭히는 공격적인 행동을 보인 것이다. 한 학년 더 올라가면서 친구들보다 체격이 작은 편인 은석이는 따돌림을 당하기 시작했다. 은석이는 게임 속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 외에 현실 세계에선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쉽게’ 접하는 컴퓨터·스마트폰·게임기 놀이에 아이들이 파묻히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2012년에 실시한 인터넷 중독 실태조사에는 아이들의 ‘디지털 편식’이 드러난다. 5~9세 아동의 인터넷 중독률은 7.3%로, 20~49세 성인(6.0%)보다 높았다. 취학 전 유아의 인터넷 중독률도 4.3%에 달한다. 청소년(10~19세)의 인터넷 중독률은 10.7%, 스마트폰 중독률은 18.4%로 더 높았다. 

컴퓨터나 스마트폰 게임이 아이들에게 재미를 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온전한 놀이로서는 한계나 결함이 많다. 우선 다른 사람과의 정서적인 교류가 없다. 술래잡기나 공기놀이에서 아이들은 친구나 가족과 의사소통을 하고 머리싸움을 한다. 사방치기, 윷놀이, 말뚝박기에선 타협하고 포기하고 참고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익힌다.

디지털 게임은 다르다. ‘레벨 업’을 하고 ‘아이템’을 얻는 성취감은 느낄 수 있겠지만, 내가 기분이 나빠지면 그저 ‘종료’ 버튼을 누르면 그만이다. 이영애 원광아동상담센터 원장은 “컴퓨터·스마트폰 게임을 통해서는 자신의 의사를 상대에게 표현하고, 상대와 교감하며, 갈등을 조절하는 능력을 키우는 일을 기대할 수 없다”면서 “ ‘나와 함께 노는 상대가 왜 기분이 나쁘지?’라고 생각할 기회조차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컴퓨터 게임 등에서는 논리력이나 끈기를 키우는 일 역시 기대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강한 자극에 노출된 아이들은 더욱 강한 자극만 요구하게 된다. 이형초 미디어중독연구소 소장은 “아주 단맛에 길들여진 아이가 다른 맛을 느끼지 못하듯이, 컴퓨터 게임 등 강한 자극을 통한 즐거움을 느낀 아이들은 상대방과 서서히 즐거움을 키워가는 놀이에는 흥미를 갖지 못하게 된다”며 “혼자 노는 것보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여가활동이 활발한 아이일수록 인터넷에 중독될 염려도 줄어든다”고 말했다.

<곽희양 기자 hui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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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가 밥이다]“아이들 놀지 못하면 사회비용 커진다”

ㆍ감정 발산 못하고 안에 쌓여 우울하거나 공격적으로 변해
ㆍ무기력감도 더 자주 표출

김미경씨(56·사진)는 학부모·교사·학생들에게 ‘비폭력 대화’와 ‘갈등 중재’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강사로 일하고 있다. 그 전에는 30년간 중·고교에서 국어교사를 했다.

김씨는 ‘놀이가 밥이다’라는 기획을 하고 있는 경향신문과 만나 “놀이를 빼앗긴 아이들로 인해 우리 사회가 큰 비용을 치를 수 있다”고 말했다. 교육현장에서도 놀지 못한 아이들이 감정적으로 우울하거나 공격적이고, 무기력감을 더 자주 표출하는 것을 봤다고 했다. 감정을 발산하는 놀이를 하지 못하고, 몸이나 말로 드러내야 할 감정이 안으로 쌓여온 흔적이 ‘사고’가 터졌을 때 곧잘 보였다는 것이다.

김씨가 서울의 중·고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것은 1980년부터 2009년까지다. 김씨는 아이들의 놀이가 급변한 분기점으로 1997년 외환위기를 지목했다. 놀이터에는 아이들의 함성이 뚝 끊겼고, 골목이나 어디서도 아이들의 노는 모습은 눈에 띄게 줄었다. 아이들은 집이나 학원에서 공부만 했고, 성적 경쟁은 치열해졌다. 자녀교육이 무한경쟁, 아동학대 수준으로 달리는데도 부모들은 ‘아이 장래를 위한다’며 고삐를 죄려고만 했다.

아이들의 공부 강박증이 선을 넘었다고 느낀 지 이미 오래된 2009년, 김씨가 학교를 그만두고 지금의 일을 택한 것도 한 아이와의 상담이 계기가 됐다.

“우리반 아이 하나가 미술시간에 조각도로 친구에게 위험한 행동을 해서 얘기를 나누게 됐어요.”

김씨는 “그 아이가 며칠 전 새벽에 엄마가 잠자고 있던 자기를 깨워 다른 아파트 쪽을 가리킨 적이 있다”며 “엄마가 ‘친구방에는 불이 켜져 있는데 너는 시험기간에 왜 자느냐’고 말했을 때 그날부터 엄마도, 친구도 죽이고 싶었다고 고백했다”고 전했다. 아이들이 이렇게 힘들어하는 걸 부모도 교사도 모르고 있다는 생각에 학교를 떠나 부모와 교사들에게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주는 효율적인 방법을 찾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그는 놀지 못하는 연령이 점점 내려와 아이들이 몸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잊어버린 듯하다고 했다. 한국에서의 교육이 갈수록 감각기관을 활성화할 수 있는 놀이 요소와 음악·미술·체육 과목을 줄이고 지식교육 위주로 흐르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김씨는 “부모들이 말로는 아이들의 창의력과 자존감, 책임감을 키우고 싶다고 하면서 실은 모든 것을 막고 있다”며 “원하는 것과 몸이 하는 것이 따로 가 헛수고가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부모들을 만나보면 아이에게 길러주고 싶어하는 가치의 출발점이 자율성인데, 아이들의 놀이친구 그룹까지 만들어주려 뛰어다니는 게 어른이었다. 아이들은 놀이에서마저 자율성을 빼앗긴 것이다.

김씨는 “놀이에서도 아이들의 주체성을 빼앗는 부모들의 태도 뒤엔 스스로의 불안과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며 “아이들은 부모가 불안해하는 것을 안다. 부모의 불안은 아이들에게로 쉽게 전염된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의 삶에 대해 불안해하지 말고 어렸을 때부터 몸으로 놀게 해 주고, 아이들을 제발 부모의 감시에서 놔주라고 말하고 싶다”며 “그것이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키우고 감정 변화와 어려움을 헤쳐가는 법도 스스로 체득하게 해준다”고 말했다.

<송현숙 기자 s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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