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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가 밥이다]놀이는 아이에게 ‘자유’ 부모에겐 ‘즐거움’

‘나에게 놀이란 ( )이다.’

빈칸을 채워달라는 질문에 아이들은 ‘자유’를, 부모는 ‘즐거움’을 가장 많이 꼽았다.

아이들 중 43명(35.6%)이 놀이를 ‘자유’라고 답했고, ‘자유로운 천국’ ‘자유시간’이라는 답변도 1명씩이었다. 

자유라고 답한 아이들은 그 이유로 ‘공부라는 감옥에서 풀려나니까’ ‘노는 날이 별로 없어서’ ‘놀이할 때는 방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등을 들었다. 공부·학원·숙제에 쫓기는 일상생활에서 작은 틈새일 뿐인 놀이에 대해 아이들이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느끼는 점을 표출한 것이다. 자유 다음으로는 ‘행복’(16명)과 ‘재미’(13명)라는 답변이 많았다. 


부정적인 답변들도 눈에 띄었다. ‘나에게 놀이란 없다’ ‘두려움(할머니에게 혼날까봐)’ 등도 보였다.

부모들 중에선 ‘놀이란 즐거움’이라고 답한 이가 22명(25.6%)으로 가장 많았다. 놀이를 즐거웠던 기억으로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다음으로는 ‘생활’(일상·일상생활 등 포함)이라는 답변이 20명(23.3%)으로 많았다. ‘동네 친구, 동생, 언니, 오빠 할 것 없이 해질 무렵까지 어울려 뛰어놀았기 때문에’ ‘늘, 항상 하고 당연하게 했던 일이기 때문에’ 놀이는 생활이고, 일상이었다는 이유를 들었다. 놀이를 ‘세끼 먹는 밥’이라고 표현한 부모도 있었다.

<경향신문·참교육학부모회·서울 노원·도봉구청 공동기획>

<송현숙 기자 song@kyunghyang.com>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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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가 밥이다]긴줄넘기·사방치기… 놀이 1년 만에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났다

ㆍ(1) 아이들이 달라졌어요

함께 놀기, 매일 놀기, 몸으로 놀기에 공감하는 엄마들이 ‘놀이터의 이모’로 1년을 보냈다. 2~3명이 짝을 지어 일주일에 한 번씩 요일을 정해 돌아가며 ‘꼬마야 꼬마야’ 긴 줄을 돌려주고, 목마를 때 물을 챙겨주고, 놀이에 끼지 못하는 아이들이 보이면 함께 실뜨기를 하며 얘기를 들어줬다. 방과후에 아이들이 2시간씩 어울려 보낸 놀이터는 주로 학교 운동장과 도서관이었다. 이렇게 놀았을 뿐인데 아이들은 바람과 햇볕과 흙 속에서, 저들끼리의 재잘거림 속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컸다. 성장하는 아이들을 보며 이모들도 함께 컸다. 1년간 놀이터에선 어떤 일이 있었을까. 놀이터 이모들이 인상 깊은 장면을 적어놓은 놀이터 일기장에서 몇 편을 발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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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이운동 ‘큰이모’ 김수현씨 인터뷰
“원없이 놀았던 큰딸, 타인과 의견 조율 잘하고 좌절 이기는 힘 커”


주말인 지난 22일 김수현씨는 눈이 많이 온 강원도에 놀러 가 초등학생인 둘째, 셋째 아이와 이글루를 만들고 왔다. 집안일은 내버려두다시피 하고 갔는데도 올해 고3에 올라가는 큰아이는 불평이 없고, 엄마도 미안함은 없다고 했다.

김씨는 서울의 동북지역 학교에서 아이들의 놀이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놀이 큰이모’다. 김씨는 “아이들뿐 아니라 사람은 놀기 위해 세상에 왔다”고 말한다. 그는 큰딸이 유치원에 다닐 무렵 자녀들을 건강하게 키우는 방법을 모색하다 ‘참교육학부모회’를 알게 되고, 놀이 공부도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어렸을 때 몸이 약해 제대로 놀지 못한 경험과 동화작가로서 아이들의 삶에 늘 관심이 많았던 것도 놀이의 매력에 빠지게 된 이유였다. 

방과후에 아이들과 2시간씩 놀고 있는 한 ‘놀이터 이모’가 그린 삽화다. 서울 노원·도봉·강북·중랑구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교놀이터, 마을놀이터의 위치와 그 속에서 천진난만하게 뛰어노는 아이들의 풍경을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에요”라는 말 속에 재밌게 담고 있다.


놀이터를 자주 나가는 사이 옆집과는 현관 사이에 시트지를 깔아 맨발로 다니며 놀 정도로 친하게 지냈다. 아쉬우면 이웃에 부탁하고, 별식이 생기면 나누는 게 자연스러웠다. 그중에서도 놀이는 아이들, 어른들, 아이와 어른들 사이 마음의 벽을 허물었다.

‘놀이터 큰이모’를 엄마로 둬 동네 놀이터를 마당 삼아 성장한 딸은 원없이 놀았던 게 참 좋았다고 했다.

“동네 언니, 오빠, 동생들과 어울려 놀며 작은 사회를 경험한 것 같아요. 왜 놀면서 나름의 규칙도 만들고, 서로 싸우고 화해하는 일이 일어나잖아요. 많이 놀아서 그런지 전 친구들보다 스트레스도 별로 안 받는 편이고요.”

김씨는 “내가 농담으로 ‘자아비대증’이라고 할 정도로 큰딸은 스스로를 좋아한다. 같이 있으면 즐겁다. 문제 상황에 닥쳐도 겁내지 않고 부딪히고, 넘어졌을 때 털고 일어서는 힘이 엄마보다 낫다”고 말했다. 딸은 학교에서 부모를 상대로 진행한 진학설명회에도 바쁜 엄마 대신 참가해 친구·교사들과 상담하며 희망 대학과 학과를 정했다. 엄마가 바쁘거나 몸살로 놀이터에 못 갈 땐 도서관에 있다가도 놀이터에 나가 아이들과 몇시간씩 놀고 온 적도 많다. 집안일도 늘 분담하는 딸이 고3이 되며 달라진 것이라곤 설거지나 집안일에서 1년만 손을 떼겠다고 선언한 것뿐이다. 큰딸은 누구보다 열성적인 놀이운동의 지지자다. 다른 두 아이도 그렇고, 변화를 직접 지켜본 남편도 아이들의 노는 시간을 존중하고 있다.

“아이들은 맘껏 놀면서 자신들의 존재를 긍정적으로 느끼는 것 같아요. 부정적인 감정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죠.” 김씨는 “아이들이 땅에 금 하나를 긋는 순간 금기의 영역을 선포하는 것”이라면서 “놀이는 신비한 영역이며 어른들의 생각과 잣대로 건드리고 막아선 안된다”고 말했다.


<송현숙 기자 s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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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가 밥이다]기고 - 아이, 소비를 얻고 놀이를 잃다

아이가 점점 짐스러운 존재가 되어간다. 아이와 함께 갈 곳도, 받아주는 곳도 찾기 어렵다. 아이들한테 좋다는 것을 배우러 다니느라 한세월을 낭비하고, 부모가 교사까지 되려 한다. 한국에서 아이 키우기는 절망과 좌절의 ‘번갈아 뺨 맞기’다.

정작 짐스러운 까닭은 따로 있다. 돈이 너무 많이 든다. 이제 아이들은 돈을 내놓으라고 한다. 초등 5·6학년 아이가 “엄마는 사는데 나는 왜 못 사게 하느냐!” 따진다. 부모 또한 무얼 살 궁리에 빠져 있고 아이들은 무얼 살 때 행복해한다. 소비는 이렇게 오늘 아이들의 놀이가 되었다. 쇼핑이 즐거움인 엄마 아빠처럼…. 초등 5·6학년 아이들이 하루의 많은 시간 동안 하는 생각은 ‘아! 사고 싶다. 입고 싶다. 바르고 싶다’이다. 사기 위해 공부시키고 더 사기 위해 공부한다.

둘 다 소비자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한국의 초등 5·6학년 아이들을 어린이의 범주에서 속절없이 떠나보내고 있다. 묻고 싶다. 당신은 어떻게 사들이고 소비하면서 아이들과 지내고 있는지. 이렇듯 소비가 부모와 아이들의 오락이 되어갈 즈음 놀이는 버려졌다. 아이들에게 소비의 시작은 놀이의 종점을 뜻한다. 이제 마트로 실내놀이터로 체험으로 쇼핑으로 달음박질칠 일만 남는다. 소비가 아이들의 놀이가 되면서 배움도 불가능해졌다. 이게 돈으로 아이를 키우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모두 다같이 아이와 소비하며 살자고 톡과 페북으로 구매와 사용기를 실어나른다. 돈으로 아이 키우기를 멈추는 곳에서 아이는 살아나고 놀이는 시작된다. 

아이들은 놀이를 엄마한테 허락받아야 할 수 있는 것으로 정의한다. 물어보고 놀아야 하는 시대를 눈치 보며 통과한다. 아이들이 앞으로 살 세상을 떠올려본다. 지금보다 더 촘촘하게 삶을 조이는 사나운 세상일 것이다. 오늘 아이들을 잡은 만큼의 품값이나 사육된 만큼 인내의 대가가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 대목을 아이 키우는 부모는 깨우쳐야 한다. 그런데 도무지 깨우칠 수 없다. 머릿속에 광고만 가득하기 때문이다. 부모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보니 아이들이 노는 게 노는 게 아니다. 부모는 돈 버는 일에 올인하고 아이에게는 소비가 놀이가 되어 둘 사이에 은밀한 합의마저 이루어진다. 그것은 팔릴 만한 아이로 만들어야 하고 아이 스스로 그런 아이가 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노는 아이 꼴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나아가 다른 집 아이도 놀지 못하게 깊이 연대한다.

놀지 않고 어린 시절을 보낸 아이가 세상을 건강하게 살기란 쉽지 않다. 놀면서 죽고 살고, 이기고 지고, 되고 안되고를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마음에 상처 하나 입지 않고 숱하게 겪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부모이다. 아이들이 세상을 살려면 삶의 기운, 생기라는 것을 이 시기에 몸 가득 담아야 하는데 그걸 도와주기는커녕 방해하고 있다면 당신은 부모가 아니다. 열 살까지 이 시기는 다시 오지 않는다. 이 10년의 시기를 아이들이 보내면서 평생 쓸 삶의 밑바닥 힘을 놀이로 다질 수 있게 하자는 사회적 합의의 물꼬를 터야 한다. 아이는 놀아야 산다는 절박함을 부모와 교사들의 제정신에 호소한다. 다행스럽게도 한국 사회 곳곳에서 아이들의 가장 기본적인 놀 권리를 누리는 아이와 이를 돕는 어른들이 늘고 있다. 이런 모습이 곧 우리의 일상이 될 것이다. 이제 한국 사회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할 극한의 실험 카드가 더는 없기 때문이다. 

내 공부는 아이에서 출발해 놀이를 지나 놀이터에 이르렀다. 놀이터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위험’이다. 다칠까봐 못 내보내겠다는 것이다. 아이들 안전을 염려하는 부모에게 하고 싶은 말은 아이들이 작고 자주 다쳐야 크게 안 다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그런 위험과 만날 수 있게 하는 게 부모이다. 때론 다치면서 삶을 겪도록 하자. 체험 이야기도 짧게 해야겠다. 지금의 체험은 놀이도 학습도 아니다. 현재 조립 수준을 넘지 못하는 기획된 체험의 난립에 아이들을 맡겨서는 안된다. 돈 쥐여 어디 보내고 뭐 사주는 게 부모가 아니다. 사지 않고 아이와 10년을 보낼 궁리를 하는 부모를 만나고 싶다. 돈 들이지 않고 놀 수 있어야 그게 놀이다. 바람이 분다.

<편해문 | 어린이놀이운동가>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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