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퍼옴]

[놀이가 밥이다]‘오전엔 학교, 오후엔 학원’ 바쁜 9살에게 놀이터는 학원차 기다리며 30분 노는 곳

“놀이터에 가도 어차피 뛰놀지는 못해요. 같이 놀 애도 없고 혼자 시간 보내다 오는 거죠.”

올해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 지연이(9·서울 관악구)는 하루에 아파트 놀이터에서 딱 30분 논다. 학교수업이 끝나고 집에 왔다가 영어학원 가는 셔틀버스를 기다리며 놀이터에 들른다고 했다.

지난달 25일 놀이터에서 지연이와 함께 학원버스를 기다리던 김모씨(39)는 “아이가 학교에서 오면 가방을 던져놓고 바로 놀이터로 나간다”며 “내가 영어학원 가방을 챙겨 나가면 거기서 30분 정도 애 혼자서 그네나 기구를 타고 놀다 보면 2시10분쯤 놀이터 앞에 학원 셔틀버스가 도착한다”고 말했다.



지연이의 하루는 오전엔 학교수업, 오후엔 영어·태권도 학원으로 나뉜다. 영어학원에선 매일 두 시간 원어민교사의 영어수업을 듣는다. 이제 2학년에 올라가는 아이에겐 좀 버거울 수 있지만, 지연이는 딱히 부담을 느끼진 않는다고 했다. 5살 때부터 계속 그렇게 다녔기 때문이다. 김씨는 “어릴 때부터 다니다 보니 하루의 일상으로 굳어진 것 같다”며 “일반 초등학교에선 3학년 전에 별도로 영어수업을 하지 않아 사립초 아이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영어를 따로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사립초등학교 5학년에 올라가는 지연이 오빠(12)는 학교에서 1주일에 7~8시간씩 영어교육을 받고 있다. 

김씨는 “사립초에 다니는 큰아이 친구들은 학원을 왕복하는 시간조차 아까워 저학년 때부터 주요 과목 그룹과외를 받거나, 국제중 진학을 위한 역사체험학습·논술·와이즈만 과학학습 등을 추가로 했다고 한다”며 “좋은 대학을 가려고 경쟁 속으로 일찌감치 뛰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지연이는 학원 수나 공부시간이 또래들과 비슷하거나 적은 축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놀이시간은 거의 없는 셈이다.

한창 클 나이에 놀이가 부족할 법하다. 지연이도 더 놀았으면 했다. 김씨는 “날씨가 좋은 날엔 학원버스가 다가와도 좀 더 놀려고 떼를 쓰곤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연이의 투정은 오래가지 않는다. 체념을 먼저 배웠기 때문이다. 다른 아이들 사정도 비슷했다. 김씨는 “놀이터에 오는 애들은 다 시간제다. 지연이처럼 학원에 가기 전에 잠깐 놀러 오는 아이들이므로 셔틀버스가 오면 하나둘씩 엄마 손을 잡고 사라진다”며 “어쩌겠느냐. 더 놀고 싶어도 나나 친구나 똑같다는 걸 알기에 순순히 가방을 메고 셔틀버스에 오른다”고 말했다. 

지연이에겐 일주일에 세 번 가는 태권도학원의 레크리에이션이 친구들과 어울리는 ‘숨통 시간’이다. 김씨는 “레크리에이션 시간에 태권도 사범의 지도하에 피구나 발야구 등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연이는 “친구들을 공으로 맞히면서 노는 게 재밌다”면서도 이것도 올해면 끝난다고 했다. 3학년에 오르면 태권도를 끊고 수학학원을 다니기로 했기 때문이다. 친구들도 다 수학을 배우러 간다는 엄마의 말에 지연이도 아쉬움만 표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김지원 기자 deepdeep@kyunghyang.com>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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