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퍼옴]

[놀이가 밥이다]학원 가다 잠깐, 혼자 그네타기… 큰 놀이터는 ‘오늘도 심심해’

ㆍ(4) 놀이 결핍

안녕. 나는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 있는 들국화 놀이공원이라고 해. 아이들이 맘껏 뛰놀며 들국화처럼 싱그럽게 자라나라고 붙인 이름이야. 길 건너면 초등학교가 있고, 옆엔 개천이 흘러 산책 나온 어른들이 잠깐씩 들르곤 해. 200평 정도 되니까 놀이터 치고는 크지. 한쪽엔 애들이 노는 모래, 또 한쪽엔 어른들이 찾는 벤치와 운동시설이 있고 중앙엔 우레탄 매트에 여러 놀이기구가 들어서 있어. 미세먼지도 없고 봄방학이라 놀기 좋았던 2014년 2월19일, 한나절의 일기를 보여줄게.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노원구 중계동 들국화놀이터에서 여자아이가 혼자 놀고 있다. 660여㎡(200평) 크기에 놀이기구는 많지만 아무도 오지 않는 놀이터에서 아이는 10분가량 앉아 있다가 떠났다. | 김정근 기자


▲ 200평 크기 ‘놀이터의 하루’ 다양한 기구·시설 갖췄지만
찾는 아이들 20여명뿐서 너명이 와도 따로 놀아
미세먼지 없던 봄방학… 놀이터는 놀이 없이 텅 비어


▶ 10:30(2~3명)

오늘은 아침부터 봄볕이 잘 드네. 따스하고 나른해서 잠에 빠져들다가 13살, 8살 남매가 노는 소리에 잠이 깼어. 쟤들이구나. 2~3일에 한번꼴로 오지만 여기선 자주 보는 아이들에 속하지. 남자애는 ‘매달리기’와 ‘나무 기어오르기’를 많이 해. 키보다 높은 손잡이를 잡고 앞으로 움직여가거나 나무기둥을 힘쓰며 오르는 단순한 놀이란다. 

세번이나 땅바닥으로 떨어지면서 곧장 쪼르르 달려가 기구에 매달리던 아이가 나무기둥으로 옮겼어. 거기서 한뼘 간격으로 나 있는 작은 홈을 손으로 잡고 밟으며 올랐다. 꼬맹이는 네댓번 꼭대기까지 올랐는데 그때마다 삐죽한 정상에 배를 대고 납작 엎드려서 “엄마! 구해줘! 난 내려갈 수가 없어!”라고 소리쳤지. 그 때마다 주변을 산책하던 엄마가 와서 손을 뻗어서 내려주더군.

11시10분쯤 이 꼬맹이와 유치원 동갑내기 친구가 놀이터에 와서 함께 모래장난을 시작했어. 한데 2~3분이나 됐을까. “흙장난 하지 말랬잖아!” 엄마의 목소리가 커지고 꼬맹이는 말 없이 겉옷 주머니 두개를 뒤집어 탈탈 털고 누나 손을 잡고 놀이터를 나갔지. 모래판에 혼자 남은 친구도 10분도 안돼 일어났고. 놀이터는 다시 공터다.

▶ 12:00(1~3명)

빨간 패딩 점퍼를 입은 7살 꼬마 남자애가 할아버지 손을 붙잡고 왔어. 꼬마는 넓은 놀이터를 혼자 누비며 그네를 타기도 하고 굵은 줄로 엮어놓은 흔들틀에서 발을 구르며 놀았어. 할아버지는 운동기구를 타거나 벤치에 앉아 아이가 노는 걸 지켜봤지.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 한분이 하얀 마르티즈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왔다. 개가 짖자 아이는 “저리 가” 하면서 흔들틀 위에서 안 내려오려 해 웃음이 나왔어. 이맘때쯤 놀이터엔 손주나 애완견을 데리고 오는 할아버지들이 있어.


▶ 13:30(8~10명)

방과후교실이 끝나고 초등학교 4학년 남자애 7명이 자전거를 타고 몰려왔어. 모처럼 놀이터가 시끌시끌해졌지. 그때까지 놀이터를 차지하고 놀던 꼬마아이는 슬그머니 물러나 목마를 타다가 혼자 구석에서 놀았고. 남자애들은 땅바닥을 15발만 디디고 이쪽 기구에서 저쪽 기구로 옮겨가는 ‘발놀이’를 시작했어. 한명이 넘어지자 애들은 놀이터가 떠나갈 정도로 소리를 지르며 웃었고, 넘어진 애는 무릎을 털고 곧장 일어나 애들을 잡으러 다니는 술래를 했어.

그 사이 어린이집이 끝나고 5살짜리 남자애도 엄마 손을 잡고 왔어. 등엔 토마스 기차가 그려진 노란색 모래장난도구 가방을 앙증맞게 메고 있었어. 아이는 형들이 놀고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구석에 앉아서 모래삽과 플라스틱통을 꺼내 혼자 놀았어. 엄마는 서서 아이의 겉옷을 든 채 아이가 노는 것을 바라보다가 벤치에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봤어.

▶ 14:30(3~4명)

잠시 시끄럽던 아이들이 떠나고 놀이터는 다시 조용해졌어. 아이 셋과 가방 든 엄마 셋이 개천쪽에서 걸어왔어. 초등학생 여자애 둘과 안경쓴 남자애 하나였는데 엄마들은 벤치에 앉아 수다를 떨었지. 셋은 같은 수학학원에 다니는 애들이야. 가끔 학원 셔틀버스를 기다리며 20~30분 놀다 가지.

아이들은 모래터에서 커다랗고 매끈한 돌멩이를 찾으며 놀았어. 한 여자애가 “찾았다!”고 소리치며 돌을 들어올리자 남자애가 그걸 뺏으려다가 돌에 손을 살짝 긁혔어. 손을 보다 조금 미안했는지 애들이 모래터를 나와 용모양 놀이기구를 타러 갔어. 애들은 “어어~”하며 기구 위에 납작 엎드렸는데 결국 여자애가 땅으로 떨어졌어. 셋 다 웃음이 터졌어. 3시10분이 됐나봐. 벤치에 앉아있던 엄마가 “시간 다됐어, 학원 가야지!”라며 아이 이름을 불렀고, 다시 놀이터는 조용해졌지.


▶ 15:20(1~2명)

노란 장갑을 낀 9살 여자아이가 엄마와 함께 놀이터에 왔어. 이 엄마도 “4시에 영어학원에 가야 하니까 그전까지만 놀다와!”라고 말했어. 아이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그럼 3시50분까지 놀지 뭐”라고 대답한 뒤 패딩 점퍼를 벗어 벤치 위에 걸쳐놓았어. 여자애는 혼자서 기구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암벽타기를 위에서 거꾸로 타고 내려오기도 했어. 3시45분쯤 엄마가 “시간 다 됐다”고 다가오자 아이는 “기구 한번만 더 돌고 갈게요”라고 똑부러지게 말하더라. 정말 자기 말대로 암벽타기부터 시작해서 거미줄, 흔들틀, 미끄럼틀까지 기구를 전부 한번씩 가지고 놀고는 패딩 점퍼를 다시 입고 엄마를 향해 달려갔어. 

▶ 17:00(0명)

해가 뉘엿뉘엿 지고 미끄럼틀의 그림자가 길게 떨어지자 다시 이곳도 고요해졌어. 저녁밥을 위해 장보러 나온 할머니 한분이 주위를 둘러보더니 장바구니를 옆에 두고 5분쯤 신나게 그네를 타고 돌아가셨지. 이 할머니가 아마도 오늘의 마지막 손님일 듯 해. 잠깐 세어볼까. 놀이터에 들른 아이들이 오늘도 20명쯤 될까. 그나마 학원 가다 들르거나 혼자 그네·미끄럼틀 타다 가기 일쑤지. 서너명이 와 있어도 얼굴 안 보고 따로 노니까, 이 큰 놀이터에 놀이도 없어. 온 종일 말소리도 들리지 않고….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참 무료하다.

<경향신문·참교육학부모회·서울 노원·도봉구청 공동기획>

<김지원 기자 deepdeep@kyunghyang.com>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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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가 밥이다]매일 20분씩 놀았더니… “학교가 즐거워요” “친구와 친해졌어요”

ㆍ(3) 놀이는 힘이 세다

“꺄르륵~” “끼야악~” “야호~”.

오전 10시30분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교실에서 일제히 터졌다. 현관문을 나온 아이들은 부리나케 실내화를 운동화로 갈아신고 운동장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미끄럼틀과 구령대, 축구장과 화단에는 순식간에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1학년 남자아이가 화단을 뛰어다니다 넘어졌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무릎과 팔에 묻은 눈을 털어내고는 술래를 정하기 위해 친구들과 가위바위보를 했다. 주먹을 내밀어 이기자, 또다시 “잡아라. 잡아”라며 내달린다. 얼굴엔 웃음꽃이 활짝 폈다. 구령대 위에 선 아이들은 ‘공포탈출(눈 감고 하는 술래잡기)’을, 농구장의 아이들은 축구공으로 농구를 했다. 놀이기구를 뛰어다니며 콧물을 흘리는 아이에게 ‘춥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 아이도, 옆을 뛰어가는 아이도 “하나도 안 춥다”며 웃었다. 교실 안에는 공기놀이에 정신이 팔린 아이들이 보였다. 한쪽에서 여학생들은 인형스티커를 떼내면서 바로 공책에 뭔가를 열심히 적으며 놀았다.

1·2교시 연속 수업 후 20분간 ‘놀이시간’을 갖는 서울 수서초등학교에서 지난 12일 오전 10시30분 아이들이 운동장으로 뛰어나와 놀이를 하고 있다.


▲ 1·2교시 연달아 수업 후 쉬는 시간 20분 묶어 놀게 해

▲ 아이들 속상하거나 싸운 일 놀이시간 끝나면 기분 풀려
3교시 수업 집중도 높아져


▲ 아이들 긍정적 반응에 학교 문화 바뀌고 폭력 줄어 학부모도 호응 높아

봄방학을 앞둔 지난 12일 서울 수서초등학교 ‘놀이시간’은 운동장도, 교실도 시끌벅적했다. 1·2교시 수업을 연속으로 진행하고 쉬는 시간 20분을 묶어 놀이시간으로 짠 것이다. 20분의 힘과 활기는 대단했다. 학교를 찾아가며 ‘잠시 숨통을 트겠거니’ 상상했던 것, 그 이상이었다.

올해 9살인 2학년 1반 아이들에게 “놀이시간이 뭐가 좋으냐”고 물었다. 이서연양은 “예전에 속상한 일이 있었는데 놀이시간에 놀고 오니까 마음이 풀렸다”고 말했다. 김예은양은 “한 친구와 싸웠는데, 놀이시간에 다른 친구들과 놀고 들어온 뒤에 기분이 좋아져서 싸웠던 친구에게 사과했다”며 “놀이시간에 놀다보니까 전학온 친구와도 하루 만에 친해졌다”면서 웃었다. 박서현양은 “놀이시간이 끝나면 더 놀고 싶기는 하지만, 다시 교실 들어오면 공부에 집중이 잘된다”고 했고, 주혜온양은 “만약 놀이시간이 없어지면 공부만 계속하게 돼서 지칠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엄마한테 공부하라는 소리 듣지 않고, 학교에서 놀 수 있어서 좋다”고 입을 모았다.

김상순 담임교사는 “만약 ‘줄넘기 하고 놀자’고 하면 아이들 중에는 줄넘기를 싫어하는 아이들도 있어서 놀이시간이 아닌 체육시간이 되어 버린다”며 “홀로 노는 아이에 대한 개입을 제외하고는 최대한 아이들끼리 놀 수 있도록 배려한다”고 말했다.

서울 수서초등학교의 오전 ‘놀이시간’에 2학년 교실에 남은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고 인형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아이들에게 인기가 높은 놀이시간이지만, 1년 전 학교에서 놀이시간을 시작할 때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선 ‘놀다가 다치지 않을까’ 하는 안전에 대한 우려가 제일 컸다. 교사들과 스포츠강사, 학교보안관은 매일 아이들이 다치지 않는지 지켜본다. 대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학기 초에는 두통을 앓거나, 학기 말에는 뛰어놀다가 골절상을 입은 아이들이 있다. 하지만 지난해 다친 아이들은 우려할 정도는 아니었다. 강연실 수서초 교감은 “놀아본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크게 다치는 경우가 적다”고 말했다.

놀이시간에 땀을 흘린 뒤 이어지는 3교시 수업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교사가 놀이시간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홍순희 수서초 교사는 “ ‘놀고 왔으면 조용히 해야지’라고 훈계하기보다는 ‘무슨 놀이를 하면서 놀았니’라며 놀이에서 수업으로 아이들의 관심을 자연스럽게 돌리면, 오히려 수업에 집중을 더 잘한다”고 말했다.

학부모들도 놀이시간에 대해 긍정적이라고 했다. 아이가 학교 가기를 즐거워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오늘 놀이시간에 친구들과 딱지치기를 한다’며 등교 전부터 들떠 있는 것을 보면서 놀이시간의 팬이 되고 있다”는 식의 학부모 반응이 전해지고 있었다. 강연실 교감은 “통계치를 따로 내어보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레 점심시간에 남는 음식량이 줄어들었고, 학교폭력의 빈도도 감소했다”며 “전반적인 학교문화가 변하다보니 ‘왕따’ 등의 문제를 크게 걱정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글 곽희양 기자·사진 김창길·홍도은 기자 hui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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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가 밥이다]초등 2년생 23% “방과후 1시간도 못 놀아”

ㆍ부모 세대는 1.2%… 격차 커

현재 초등학교 2학년 학생 4명 중 1명(23.1%)은 학교가 끝나고 1시간 이상 노는 날이 하루도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매일 1시간 이상 논다는 아이는 20.6%에 불과했다. 학부모들은 자녀 시절에 68.6%가 매일 1시간 이상 놀고, 하루도 못 놀았다는 사람은 1.2%에 그쳤다. 30년의 시차를 두고 아이들의 놀이가 부모 세대의 20~30%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게 확인된 것이다.

경향신문이 지난 12~14일 서울시내 2개 초등학교의 2학년 4개 학급 학생 121명과 그 부모 86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아이들의 놀이시간이 이같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다.


학교가 끝난 후 방과후수업이나 학원을 3개 이상 다닌다는 학생이 42.1%로 가장 많았고, 2개도 29.8%나 됐다.

마음껏 놀지 못한다고 밝힌 아이들이 꼽은 이유는 ‘학원 가느라 시간이 없어서’(41.3%), ‘같이 놀 사람이 없어서’(20.6%), ‘부모님이 못 놀게 해서’(18.9%) 순으로 나왔다. 

초등학교 저학년인데도 아이들의 놀이시간이 급감한 가장 큰 이유가 학원과 숙제였던 것이다.

바깥에서 1시간 이상 논다는 대답도 부모 세대에선 80.2%였지만 자녀들은 34.7%에 불과했다. 친구들과 함께 몸으로 뛰어놀고 간단한 장난감을 갖고 주로 바깥에서 놀았던 부모 세대와 달리 아이들의 놀이 목록에는 휴대폰·컴퓨터 게임과 인터넷, TV 시청, 각종 장난감 등이 많이 올라왔다. 혼자 하거나 한두 명이 어울리는 실내 놀이가 급증한 셈이다. 놀이가 무엇이냐는 물음에도 부모들은 ‘즐거움’을, 아이들은 ‘자유’를 1위로 꼽아 세대 간 인식차가 컸다.

<송현숙 기자 s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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