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옴]김규항

분노는 차갑게 지속된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분노와 슬픔은 정상 범주의 인간성을 가진 사람에겐 당연한 것이다. “가만 있으라”는 말만 믿고 스러져간 아이들을 보면서, 절규하는 실종자 부모에게 공감조차 하지 않는 대통령을 보면서 억장이 무너지지 않는다면 사람일까. 그러나 그 분노와 슬픔이 반드시 날것으로 표현되어야만 하는 건 아니다. 100명 이상의 희생자가 난 안산 고잔동 주민들은 화조차 제대로 못 내고 조용조용 지내고 있다고 했다. 그들의 분노와 슬픔이 적어서일까. 그들은 침묵과 절제로 분노와 슬픔의 당사자인 이웃과 연대하고 있다.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제 분노와 슬픔을 날것으로 드러낼 수 있는 건, 실은 당사자들과의 거리 때문인지도 모른다.

커다란 참사가 일어나면 많은 사람들이 뜨겁게 분노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뜨거움은 식고 사람들은 하나둘씩 제 일상으로 돌아간다. 결국 당사자들만 남게 된다. 그리 되기까지 시간이 다르긴 하지만 예외는 없다. 일상을 지속할 여력이 있는 사람들이 24시간 동안 누적된 분노와 슬픔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압축하여 드러내는 걸 탓할 건 없다. 그러나 더 바람직한 일은, 제 여력을 그런 여력조차 없는 당사자들을 위해 사용하는 게 아닐까. 분노는 지속되어야 한다. 늘 그래왔듯, 이 분노가 아무런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지 못한 채 거대한 카타르시스로 끝나지 않으려면 분노는 완주해야 한다. 100m를 달리는 페이스로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할 순 없다.

뜨겁기만 한 분노는 진실을 표면만 훑거나, 기껏해야 기존의 분노와 애정을 재생하고 재현하는 데 머물게 된다. 이를테면 ‘박근혜가 아니라 노무현이었다면 김대중이었다면 달랐을 것’이라는 식의 이야기를 보자. 대통령이 왕인가. 나쁜 왕을 욕하며 자비로운 왕을 추억하는 태도야말로 사회적 퇴행을 불러올 뿐이다. 우리가 할 일은 왕이 누구든 대통령이 누구든 이런 참사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뜨겁기만 한 분노는 결국 식기 마련이다. 그러나 부러 차갑게 식힌 분노는, 뜨거움을 내 이성과 사유에 새긴 차가운 분노는 독하게 지속된다.

이미 적지 않은 사람들이 피력했듯, 이번 참사의 근본 배경은 한국식 자본주의라는 살인 체제다. 사람보다 이윤이 우선인 게 자본주의의 일반적 속성이지만, 오늘 한국식 자본주의처럼 극악한 살인 체제는 지구 어느 곳에도 없다. 이번 참사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에 한류의 주역인 대한민국이 실은 극악한 살인 체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확인해주었다. 이 살인 체제와 나는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가. 세월호의 노동 현실, 선장이고 선원이고 제 일에 대한 자부나 책임감을 기대하기 어려운 노동 현실은 비정규 불안정 노동의 전면화라는 오늘 한국 노동현실의 일반적 사례일 뿐이다. 나는 그 사실에 진즉 분노했던가. 혹시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말하며, 내가 그나마 나은 처지임에 안도하며 외면해오지는 않았던가.

세월호 참사로 쌍용차와 밀양과 유성기업과 제주 강정 등의 싸움이 잊혀졌다고들 한다. 감당키 어려운 참사 앞에서 얼마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사람을 죽여서라도 이윤을 추구한다’는 그 싸움의 배경과 내용은 세월호와 다르지 않다. 세월호는 대한민국 도처에 널려 있다. 침몰한 세월호에 분노하는 나는 더 일찍 난파하여 절박하게 구조 신호를 보내온 그 세월호들에 분노했던가. 17살이라는 꽃같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이들을 안타까워하는 나는 한국의 17살들이 이미 꽃처럼 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했던가. 한국의 17살들이 떠나는 사연의 1위가 사고나 재난이 아니라 자살이라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말하며 밤늦도록 학원으로 내몰진 않았던가.

어쭙잖은 성찰을 말하려는 건 아니다. 이미 수구언론은 ‘우리가 다 죄인’이라느니, ‘모든 어른이 죄인’이라는 식의 거짓 성찰로 물타기를 시도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진실은커녕 최소한의 사실관계마저 덮으려는 악랄한 수작과, 진실의 전모를 사회 성원으로서 나까지 포함시켜 정직하게 드러내는 노력은 전혀 다른 것이다. 1999년 6월30일 새벽 경기 화성군의 씨랜드 청소년수련원에서 불이 나 자고 있던 유치원생 19명이 죽는 참사가 일어났다. 이 참사로 아들을 잃은, 국가대표 선수 출신의 한 엄마는 몇 달 후 모든 훈장과 메달을 국가에 반납한 뒤 이민을 떠났다. 그의 절망은 단지 한 대통령이나 한 정권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 엄마가 느낀 절망감을 15년이 지나서야 느끼고 있다. 미처 몰랐다는 듯한 얼굴로, 나와는 무관한 특별한 불행인 줄 알았다는 얼굴로 말이다. 우리는 박근혜씨의 대통령직 하야를 요구한다. 하야의 이유는 충분하다. 그러나 박근혜의 하야는 나의 하야와 병행되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말하며, 나와 내 새끼의 구명보트를 기대하며 이 살인 체제를 외면해온, 그래서 결국 99%에 해당하는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는 지옥을 만들어버린 내 삶으로부터 즉각 하야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박근혜는 다른 박근혜로 교대될 뿐이다. 아, 우리는 이 지옥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경향신문 - 혁명은 안단테로)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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