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퍼옴]

[놀이가 밥이다]놀이 수준·환경 100점 만점에 절반도 못 미쳐 ‘위험 수준’

ㆍ(10) 교육감·지자체장이 말하는 놀이

교육감 16명과 인구 50만 이상 대도시 시장 21명, 서울 구청장 23명이 내놓은 한국 아이들의 놀이 평점은 100점 만점에 47.6점이었다. 아이들의 놀이 행정에 직접 관여된 60명이 박하게 매긴 점수에는 진보·보수 성향을 가릴 게 없었다. ‘놀이밥’을 앗아가는 요인으로는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벌어지는 입시경쟁’과 ‘공동체문화 악화’가 많이 꼽혔고, 안전 우려와 놀이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지목됐다.

▲ 외형적 놀이시설 늘었지만 접근성·이용률은 떨어져
‘놀이의 주인 되기’보다 혼자 휴대폰·컴퓨터 게임
아이가 주도, 함께 노는 놀이 하루 평균 2.6~3시간 돼야


■ 놀이시설은 좋아졌지만, 관계맺음 등 놀이 수준은 나빠

놀이 수준과 환경에 대한 평점은 교육감(49.3점), 시장(48.2점), 서울 구청장(44.6점) 순으로 모두 40점대에 그쳤다.

교육감 중 최고점(80점)을 준 전우홍 세종시교육감 권한대행은 “하드웨어적 환경은 80점이지만, 실제 아이들의 접근성과 이용률은 떨어진다”고 답했다. 

가장 낮은 30점을 준 민병희 강원도교육감은 “환경으로 치면 50점쯤 될 수 있지만, 아이가 놀이의 주인이 되는 온전한 놀이로 친다면 30점”이라며 “떠들지 말라, 뛰지 말라, 어지럽히지 말라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게임기와 스마트폰을 친구 삼아 쭈그려 앉아 놀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역시 30점을 매긴 고경모 경기도교육감 권한대행은 “놀 때 마음이 편안한 정도, 놀이에 참여하는 아이들의 수나 놀이의 개방성 면에서는 과거보다 나빠졌다”고 했다. 

20점을 준 자치단체장 중 최성 경기 고양시장은 “맞벌이 학부모가 다수이고, 방과후 사교육은 과다하며, 학교에서의 놀이문화도 적다”고, 유종필 서울 관악구청장은 “핵가족화로 가정에서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고 야외활동도 부족해졌다”고 평했다.


■ 하루 평균 2.6~3시간은 놀아야

교육감들은 하루 3시간은 놀아야 한다고 말했다. 6시간을 제시한 장휘국(광주)·김신호(대전) 교육감은 “하루 24시간 중 수면(8시간), 학업(6~7시간), 식사(3시간)를 제외한 6시간은 모두 놀이시간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용린 서울시교육감도 “적어도 하루 4~6시간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자유 놀이시간을 제공해줘야 한다”고 밝혔다. 가장 적은 1시간을 제시한 전우홍 세종시교육감 권한대행과 문석진 서울 서대문구청장도 “놀이는 인지발달에 가장 중요하며, 아이에게 놀이라는 행복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교육감 8명과 시장 7명, 서울 구청장 10명이 “최소한의 놀이시간, PC게임 등 혼자 노는 것이 아닌 ‘함께 노는’ 놀이시간”으로 가장 많이 제시한 것은 2시간이었다.


■ 저학년부터 시작된 입시경쟁과 안전 우려가 발목

교육감·시장·구청장 60명은 모두 “아이들의 놀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봤다. “충분하다” “교육현실을 감안해 적절하다”고 답한 사람은 없었다.

놀이 결핍 이유로는 입시경쟁에 따른 과도한 사교육을 가장 많이 꼽았다. 김영종 서울 종로구청장은 “학원을 3~4개씩 다니는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일과가 더 빡빡하다”고 했다. 전우홍 세종시교육감 권한대행은 “학부모들이 빈틈없이 아이들의 일정을 조정하고, 아이들은 이 계획대로 움직여야 하므로 놀이를 즐길 여유가 없다”고 진단했다.

이러한 현실은 놀이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이어진다. 민병희 강원도교육감은 “학원에 가지 않고 노는 아이를 ‘부모가 방치한 아이’로 보는 실정”이라고, 김만수 경기 부천시장은 “우리 사회에서 놀이는 공부의 반대말로 인식된다. ‘노는 것이 바로 공부’라는 인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성장현 서울 용산구청장은 “최근 아동 유괴나 성범죄가 늘고 있는 것도 놀이터에 아이가 없는 이유”라며 “안전에 대한 우려 때문에 밖에 나가 놀 수 없다”고 말했다. 

■ 아이들이 주도하는 놀이엔 공감

놀이시설보다 놀이시간에, 어른 중심이 아니라 아이 중심의 놀이가 이뤄져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은 “아이들은 천부적으로 놀잇감을 창조해 놀 줄 아는 능력이 있다”며 “놀이기구 제공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자유롭게 놀 수 있는 시간을 정해줘야 한다”고 했다. 염홍철 대전시장은 “문화센터나 유아교육기관에 비용을 지불하고 이뤄지는 놀이는 일방적고, 상하관계적인 형태로 진행되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은 “아이들 생일 파티조차 이벤트 업체의 레크리에이션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며 “놀이가 아이들이 스스로 즐기는 시간이 아닌, 부모의 만족을 위한 시간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병희 강원도교육감은 “교과활동 시간에 놀이가 포함돼 있다고는 하지만, 대개 승패를 겨루는 게임 위주이고, 교사나 어른들이 주도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곽희양·김지원 기자 huiyang@kyunghyang.com>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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