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재미난 글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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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읽는지가 중요합니다

2018년 10월 16일 

2016년 5월, 국제경영학회지(International Journal of Business Administration)에는 학생들이 무엇을 읽는지가 그들의 글쓰기 능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의 논문이 실렸습니다.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학생들이 무엇을 읽는지는 심지어 글쓰기 수업 보다도 학생들의 글쓰기 능력에 더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학술 논문과 문학 소설, 논픽션을 읽은 학생들은 미스터리, 판타지, 과학소설과 같은 장르 소설이나 레딧, 텀블러, 버즈피드 등의 인터넷 글을 읽은 학생들 보다 더 수준 높은 문장을 구사했습니다.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이들은 학술 논문을 읽은 학생들이었고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이들은 인터넷 컨텐츠를 읽은 이들이었습니다.

가벼운 읽기(light reading)와 꼼꼼한 읽기(deep reading)의 차이

몰입한 상태로 감각적, 감정적, 도덕적 디테일을 만끽하며 읽는 것을 의미하는 “꼼꼼한 읽기(deep reading)”는 단순히 단어를 해석하는 수준의 “가벼운 읽기(light reading)”과 크게 다릅니다. 꼼꼼한 읽기는 세부 묘사와 암시, 비유가 풍부하게 묘사된 글을 읽는 과정에서 일어나며 독자가 글에 묘사된 사건을 직접 경험할때 활성화되는 뇌의 부위를 직접 자극합니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공감 능력을 키울 수 있으며 반성과 분석을 더하며 자신의 상황을 글 속에 대입하게 됩니다. 또한 자신의 글을 더 의미있고 매력적으로 만드는 방법을 배우게 되며, 이를 통해 글쓰기 수준을 높일 수 있습니다.

반면 가벼운 읽기는 우리가 블로그나 속보, 연예 기사 등 몇 줄의 문장이나 이모티콘 등으로 이루어진 글을 읽을때 사용됩니다. 이런 글은 고유한 관점이 부족하며 독자의 사고를 자극하는 분석적인 내용 또한 미흡한 경우가 많습니다. 읽고 지나치게 되는 이런 컨텐츠는 몇 분 안에 기억에서 사라집니다.

꼼꼼한 읽기는 글과 당신의 뇌를 일체화 합니다.

꼼꼼한 읽기는 뇌의 언어, 시각, 청각 영역을 자극하며 이를 통해 우리가 말하고, 읽고, 쓰는 능력을 키워줍니다. 읽기와 쓰기는 언어의 리듬과 문법을 인식하는 브로카 영역을 자극하며,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는 베르니케 영역과 언어를 인식하고 활용하는 핵심 부위인 모이랑회(angular gyrus)를 자극합니다. 이 세 영역은 신경섬유다발로 이어져 있으며 이를 통해 독자는 글을 읽는 동안 언어 및 리듬과 일체가 되게 만듭니다. 이를 통해 글을 쓸 때 필요한, 복잡한 문장을 만들어내는 리듬을 익히게 됩니다.

다음의 두 가지 꼼꼼한 읽기를 통해 글쓰기 능력을 더욱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시 읽기

의식 연구(Journal of Consciousness Studies)지에 발표된 한 연구는 뇌의 “독서 신경망”은 어떤 글을 읽을 때에도 활성화된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보다 감정적인 글은 우리가 음악을 들을때 활성화되는 몇몇 영역 또한 자극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시와 산문을 비교했을 때 연구진은 시의 경우 우리가 자신을 돌아볼 때 활성화되는 후대상피질(posterior cingulate cortex)과 중앙측두엽(medial temporal lobes)을 활성화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특히 자원자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시를 읽었을 때 자원자의 뇌에서는 “독서 신경망”보다 기억과 관련된 부위가 더 크게 반응했으며, 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시를 읽는 것이 강력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일종의 회상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문학 소설 읽기

인간 사회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복잡한 사회적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다른 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기술입니다. 따라서 작가는 다층적인 인물과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이의 감정 상태와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과 관련된 “마음 이론(Theory of Mind)”에 대해 연구는 아직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최근 한 연구는 문학 소설을 읽을 때, 논픽션이나 대중 소설을 읽을 때 보다 감정적 인지적 마음 이론 검사 결과가 더 올라간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이는 적어도 문학 소설을 읽을 때 일시적으로라도 타인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또한, 문학 소설은 깊은 생각을 가능하게 만들고 외향적 사고와 내향적 사고를 모두 자극합니다. 특히 잡지나 인터뷰, 인터넷의 짧은 글에 비해 인지적 능력을 더 자극합니다.

TV를 보는 대신 꼼꼼한 읽기를 시작하세요

TV를 보는 시간은 대부분 무의미한 시간이며, 뇌는 곧바로 활동을 멈추게 됩니다. 또한, 아무리 당신이 이를 정당화하려 하더라도, 가벼운 잡지나 대중 소설은 글쓰기 능력을 키워주지 못합니다. 당신이 정말로 글을 더 잘 쓰고 싶다면 당신의 뇌를 자극할 수 있는 문학 소설과 시, 그리고 수준 높은 문장으로 쓰여진 과학이나 예술에 관한 글을 읽어야 합니다.

(심리학 투데이, Susan Reynol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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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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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있는 노래는 <스타더스트>(이상은 노래)



“우리는 생각하는 별먼지… 호기심 죽이는 과학 왜 배우나요?”

[김지은의 ‘삶도’ 인터뷰] <17>별 헤는 과학자 이명현

‘코스모스’의 저자로 유명한 칼 세이건 전문가인 천문학자 이명현씨. 네덜란드에서 유학과 연구원 생활을 마친 뒤 귀국해 연세대에서 연구교수와 천문대 책임연구원을 지냈다. 몇 년 전 보직을 내려놓은 그는 올해 서울 삼청동에 과학책방 ‘갈다’를 열었다. 지난달 28일 ‘갈다’에서 그를 만났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이명현(55)은 별스럽게 사는 과학자다. 휴대폰이 있지만 쓰지 않는다. 그에게 전화를 걸면 이런 회신이 문자로 날아온다. ‘전화 받을 수 없어요. (이메일 주소)로 연락주세요.’ 이유는 간단하다. ‘자기 고립’ 확보. “늘 휴대폰을 보며 살 필요는 없잖아요?” 그렇게 얻은 시간으로 궁리를 하고, 책을 보고, 마주 앉은 사람에게 집중한다.

머리칼이 견갑골 아래까지 내려온다. 곧 허리에 닿을 것 같다. 국가 기관 회의에도 면티셔츠에 진을 입고 간다. 여름엔 거기다 슬리퍼까지. 그것이 가장 편한 차림인데다, 남에게 피해 주는 일도 아니니까. 그렇게 지금 이 순간의 작은 행복을 지켜가면서 산다. 참, 머리칼은 소아암 환자에게 기증하려고 길렀다. 딸에게서 배웠다.

그는 ‘알고 보면 우리는 모두 별에게서 왔다’는 과학적 추론을 비밀스럽고 소중하게 말하는 재주를 지녔다. 별들이 살았다, 죽었다를 반복하면서 치른 핵융합의 결과물이 실은 우리 몸을 이루는 원소들의 재료라는 얘기다. 끊임없는 원소의 순환으로, 결국 사람은 온 우주와 연결돼있다는 스토리텔링. “우리는 게다가 이런 걸 생각해낼 수 있는, 너무나 멋진 별먼지죠!”

그는 꽤 알려진 ‘글 쓰는 과학자’다. 그런데 퇴고가 없다. 머릿속에서 수없이 썼다, 고쳤다를 되풀이했다가 첫머리부터 끝 문장까지 한번에 내달려 쓴다. 그리곤 원고 청탁자에게 전송하면 끝. 컴퓨터에서도 지워 버린다. 천재인가? 중ㆍ고교 시절의 엄청난 독서량을 듣곤 고개를 끄덕였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에서 시작해 문학, 철학, 인문학의 별 같은 작품들을 모두 집어 삼킨 거였다.

천진난만한 눈웃음을 보면, 인생 심각할 것도, 걱정도 없는 사람 같은데 그런 것만도 아니다. 그의 첫사랑이자, 초등학교 때부터 함께한 인생의 벗, 그리고 두 아이의 엄마인 그의 아내는 벌써 수년 째 병상에 누워있다. 치과 의사 시절 반짝이던 아내의 뇌는 잇단 수술로 작아졌고, 반짝이던 이성의 빛도 함께 수그러들었다. 자신 역시 아내의 발병 직전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경험이 있고 아직도 하루에 약을 한 움큼씩 먹어야 한다. 그래도 그는 꽤 자주, 행복하다.

“인생의 기준점을 죽음에 둔다면 지금 이 순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이 나와요. 과거의 나와 아내는 이제 없고, 관계가 새롭게 설정된 거죠. 논리적인 교감 대신 감정의 교감이 남은 거예요. 그걸 인정해야 지금의 소중한 시간을 누릴 수 있어요.”

존재의 유한함을 받아들이면 삶의 찰나는 여전히 경이롭다. 별이 그에게 알려준 삶의 진리다. 그걸 나누려고 올해 6월엔 서울 삼청동에 ‘과학책방 갈다’를 열었다.

◇갈릴레오+다윈 첫 글자 딴 과학책방 ‘갈다’ 

그는 외모부터 눈길을 잡는 과학자다. 늘 면티셔츠에 면바지 차림. 머리칼은 한데 묶어 늘어뜨렸다. 딸의 권유로 소아암 환자에게 기증하려고 기른 지 4년쯤 됐다. 서재훈 기자

-왜 휴대폰을 안 쓰세요?

“제가 하는 일이 시급을 다투며 할 업종이 아니니까요. 전화로 약속을 잡다 보면 제대로 적어두거나 기억하지 못하는 때가 있어서 아찔했던 일도 있었고요. 또 하나는, 자기 고립이 좀 필요했어요. 그래서 연락은 이메일로 받아요. 매일 밤 확인을 하고 회신도 하고 구글 캘린더에 기록해두죠. 카톡(카카오톡)도 하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누군가를 만나 얘기하거나 밥 먹을 때 전화를 전혀 보지 않아도 돼요. 특히나 저처럼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은 이런 방식으로라도 자기 고립을 확보하는 게 필요해요. (사회에서) 그래도 되는, 그럴 수 있는 사람부터 먼저 (휴대폰에서 벗어나는 걸)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요즘 특히나 직장인들에게는 휴대폰이 ‘감옥’이나 다름 없죠.

“맞아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꼭 그렇게 살 필요는 없거든요. 저도 처음에는 주위에서 불편해 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계속 알리고 유도하니까 이제는 ‘아, 저 사람은 이메일로만 소통하는 사람이구나’라고 인식하게 되더라고요.”

-머리는 언제부터, 왜 기르는 건가요?

“네팔에 자주 가는데, 3, 4년 전에 갔을 때 (미용실 가는 걸) 신경 쓰지 않았더니 머리가 제법 길었더라고요. 딸 아이가 보더니 ‘아빠도 한 번 해보라’며 소아암 환자에게 하는 모발 기증을 권했어요. 이미 딸은 두 번, 아들은 한 번씩 머리를 길러서 기증한 적이 있거든요. 그래서 저도 기르게 됐죠. 허리까지 자라게 둬볼까 생각 중이에요. (웃음)”

-과학책방 ‘갈다’를 만든 이유는 뭔가요?

“여기가 원래 부모님 집이에요. 저도 유학 가기 전까지 8, 9년쯤 살았고요. 부모님이 이사 하면서 친분이 있는 NGO(시민단체)나 NPO(비영리기구)에 빌려줬는데, 최근까지 있던 한국비폭력대화센터가 다른 곳으로 이전하게 됐어요. 정서적인 끈이 있는 곳이니, 부모님이 남에게 처분하기보다 제게 활용할 생각이 없느냐고 제안을 해 책방을 열게 됐죠. (진화생물학자인) 장대익 서울대 교수,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김상욱 경희대 교수 같은 친한 학자 10여명과 아이디어를 모았어요. 다들 과학자이면서 책을 쓰는 사람들이고, 또 어린 시절 책에 빚진 세대죠. 그러다 보니 모두 책에 대한 로망이 있었어요. 생각을 모은 끝에 교양과학 책을 파는 책방을 하기로 했죠. 또 책만 파는 게 아니라 2층에는 책을 저술할 수 있는 방, 지하엔 북콘서트를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어요. 뜻을 함께 하는 사람은 과학자뿐 아니라 만화가, 작가, 이미지 컨설턴트, 팝 아티스트 같은 다른 직종까지 확대돼서 지금은 110명으로 늘었고요. 주주로 참여하고 있죠. 제가 대표고요.”

책방 이름 ‘갈다’는 장대익 교수의 머리에서 나왔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갈’과 다윈의 ‘다’에서 따왔다. 거기다 ‘갈다’의 사전적 의미인 ‘갈아 엎다’, ‘갈아 치우자’, ‘절차탁마’, ‘경작’의 뜻도 보태 더 근사한 작명이 됐다. 닫힌 과학이 아닌 대중에게 열린 과학으로 바꾸자는 열의가 엿보인다.

-통상 서점에서도 과학책은 소외된 경우가 많은데 소중한 공간이네요.

“과학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일종의 ‘오프라인 거점’이 생긴 거죠. 와서 편하게 하고 싶은 구상을 구현할 수도 있고, 과학책을 볼 수도 있고요. 과학책을 처음 접하는 손님이 오면 처방도 해드려요. 서사적인 서술 방식을 좋아하면 ‘불멸의 원자’(이강영), 명징한 방식을 원하면 ‘김상욱의 과학공부’, 여행이 취미라면 ‘문경수의 제주과학탐험’… 이런 식으로요.”

-이곳(책방)이 옛날 살던 집터라고 들었는데, 이곳에 추억도 많겠네요.

“저는 큰 감흥이 없어요. 살았던 집이긴 하지만.”

-왜요?

“제가 무엇에 미련을 잘 두지 않는 성격이에요. 과거도 그렇고, 제 글에도요. 이메일로 보내고 나면 잊어버려요.”

그가 올해 9월 낸 책 ‘이명현의 과학책방’ 서문이 생각 났다. “그리고 이제 내 곁은 완전히 떠나서 독자들의 품으로 간다. 안녕”이라고 그는 썼다.

“좀 의아스러운 얘기일 수도 있는데, 저는 청탁 없는 글을 써본 적이 없어요. 제가 뭘 스스로 이뤄야겠다고 생각해서 쓴 글이 없다는 의미예요. 글도 쓸 때 퇴고가 없어요.”

-일필휘지라는 건가요?

“네. 그렇게 써서 보내요. 마감에 쫓기기 때문에 퇴고를 못해요. 하하. 대신 미리 생각을 많이 하죠. (손가락으로 머리를 가리키며) 여러 번 써요. 그래서 완성된 걸 글로 옮기죠. 600쪽짜리 책 한 권이라면, 며칠 동안 몰아서 한꺼번에 써요. (원고지로) 5장 분량이든, 12장 분량이든, 100장 분량이든 마찬가지예요. 어릴 때부터 버릇이죠. 책이 나와도 방송에 출연해도 그걸 다시 보지 않아요. 출판 제의가 들어와도 조건 중 하나가 그거예요. (웃음)”

-스트레스는 적게 받을 것 같네요.

“사실, 스트레스 받을 일은 많지요. 그런데 나름대로 해소하는 방법이 있어요. 옛날엔 친구 만나 술 마시는 거였는데, (8년 전 심근경색으로) 쓰러지고 난 뒤부터 그건 못하고요. 제가 그러고 나서 바로 아내가 수술을 받게 되는 일이 겹치면서 엄청 힘들었죠. 19살 때 배운 명상이 도움 돼요.”

-명상이요?

“네. 대학 1학년 때 방학을 네팔에서 보낸 적이 있어요. 아버지와 가까운 네팔인 가족의 집요. 저보다 한 살 어린 그 집 동생과 안나푸르나를 트레킹하며 여행을 다녔는데 돈이 딱 떨어진 적이 있었어요. 그때 네팔에서 라즈니쉬교가 아주 번성을 해서 곳곳에 캠프가 많았거든요. 그 친구네 집도 라즈니쉬교를 믿었고요.”

20여 년 전 한국에서도 책과 함께 유명세를 날렸던 철학자 오쇼 라즈니쉬의 종교를 말하는 거였다.

“돈을 빌리러 가까운 곳의 라즈니쉬 캠프에 갔죠. 그런데 그곳의 구루(지도자)가 돈을 빌려주는 조건으로 명상을 권하더라고요. 저는 빨리 돈만 빌려서 다시 놀러 가면 좋겠는데. (웃음) 그래서 제가 어깃장을 놓으면서 ‘나는 격식을 갖춰 하는 명상은 싫다. 걸어 다니면서 할 수도 있는 거냐’고 했더니 그렇다는 거예요. 하는 수 없이 3, 4일 동안 캠프에 머물면서 명상을 했어요. 걸어 다니면서, 한 키워드를 잡아서 그것과 관련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흐트러뜨리는 연습을 했죠. 그런데, 한 이틀 하고 나니까 정말 되는 거예요. 재미있더라고요. 8년 전에 아내가 쓰러져 힘들 때 그게 생각이 나더군요. 그래서 해보니 작동을 하더라고요. 어릴 때 연습해둔 것이라 그런지. 그래서 힘든 일이 있을 때 명상을 해요. 그러면 마음의 진폭도 좁아지고 안정을 되찾게 되죠.”

◇8년 전 죽음의 문턱까지… 아내도 투병 

그는 ‘갈다’의 곳곳을 설레는 음성과 몸짓으로 소개했다. 지하는 북콘서트나 강연을 할 수 있는 공간, 카페 같은 아늑한 분위기의 1층엔 서가가 들어찼다. 2층은 과학 저술가들이 글을 쓰거나 머리를 맞댈 수 있는 살롱이다. 그 한편에 그의 작은 서재도 있다. 서재훈 기자

-2010년에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던 얘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11월이었어요. 일요일 밤. 김장철이라 구기동 집 3층까지 배추를 나른 뒤였어요. 약간 숨이 차긴 했어도 힘든 활동은 아니었죠. 그런데 갑자기 쓰러졌어요. 말을 할 수도 없는 상태였죠. 다행히 딸 아이가 얼마 전 반 친구 아버지가 당한 일을 떠올리곤 바로 119에 전화를 하고 의사인 제 고모에게도 급히 연락했죠. 종합병원이 10분 거리라 다행히 응급처치를 해서 살았지만 이미 심장 근육의 반 이상이 괴사돼서 뛰지 않아요. 지금도 하루에 몇 십 알씩 약을 먹고요. 피의 점도가 높아진 상태에서 혈관 벽에 붙은 세포가 떨어지면서 관상동맥이 막힌 거였어요.”

-당시 경험 이후에 느낀 건요.

“죽음의 상황까지 갔다 온 거니 종종 그런 질문을 받아요. 그런데 심적으로는 크게 달라진 게 없어요. 다만 생활 패턴이 바뀌었죠. 술을 마시지 못한다거나 하는. 그러다 보니 저녁 약속을 잡지 않고 친구들도 점심에 만나고요.”

-마음의 항상성이 견고한 것 같아요.

“내가 겪은 고통의 강도로 우열을 가리지 않으려고 해요. 나만 특별히 그런 게 아니고, 우연히 나한테 그 고통이 찾아왔을 뿐이죠.”

-과학자의 시선이기도 하겠지만, 성격도 낙관적인 듯 해요.

“엄청 낙관적이에요. (웃음) 어릴 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어요. 음, 죽음이라기보다 사라진다는 것에. 뭔지 모르니까 막연한 두려움인 거죠. 그래서 사춘기 때 화두 중 하나가 ‘존재’였어요. 장래희망란에 ‘도사’라고 썼다가 선생님한테 혼난 적도 있죠. 교회나 절은 가봐도 신통치 않았고, 도사가 되면 오래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웃음) 그러다가 나중에야, 유한함을 인지하고 받아들인 거죠. 어차피 죽지 않을 수 없다, 영원히 살면 좋겠지만 그럴 방법이 없다, 그러면 어떻게 살 것인가. 개망나니처럼? 아니면 극단적인 여러 행동을 해볼까? 그런데 그래 봤자, 너나 나나 다 죽는 거 아니야? 그렇다면 그 유한한 시간 동안 어떤 일을 하는 게 좋을까? 이런 식으로 흘러 간 거죠.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멋지고 재미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어릴 때부터 꽤 논리적인 사고를 했네요.

“사춘기 때 그런 고민을 하면서 책을 엄청 읽었어요. 철학책은 물론이고 근ㆍ현대 세계문학전집, 시집까지 닥치는 대로 다 읽었죠. 도서관까지 가서 구할 수 있는 건 모두요. 과학책은 별로 읽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사고할 재료가 많이 쌓였죠. 생각을 하다 보면 어느 지점에서 막히는 법인데, 거기서 돌파할 예제가 많아진 거죠.”

◇하늘의 금성도 혼자, 나도 혼자 ‘감정이입’ 

-별에는 언제부터 빠지기 시작했나요?

“가장 오래된 기억은 1969년. 그때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어요. 그 전에 저한테 별은 이런 거였어요. 어머니(사회학자)와 아버지(정신과의사)가 모두 일하셨으니 애들이랑 동네 골목에서 놀다 보면 다 집에 들어갈 때까지 남아 있는 때가 많았거든요. 골목에 혼자 있다가 하늘을 보면 금성이 있었어요. 금성도 혼자, 나도 혼자. 그러니 감정 이입이 되더라고요. 또 금성 옆에 있는 초승달도 보이고. 그러다가 어느 날 사람이 그 달 위를 걸어 다니고 있다니까 어린 마음에 무척 벅찼어요. 아, 나도 저런 걸 해야겠다고. 매혹이 된 거죠.”

-별을 제대로 본 건 언제예요?

“그 때 생각한 ‘저런 일’이 뭔지 모르다가 초등학교 2학년 때 학생과학 잡지에서 한국아마추어천문가회를 만든다는 소식을 봤어요. 조경철 박사 같은 천문학자들이 만든 조직이죠. 일반회원도 모집했는데 그때 저도 가입했어요. 초등생 회원은 저하고 또 하나 두 명뿐이었죠.”

-어떤 활동을 했나요?

“관측회를 해요. 망원경으로 본 달을 스케치하기도 하고 천체 사진도 찍었죠. 3학년쯤부터는 필름을 자르고 현상, 인화하는 법도 배웠어요.”

-육안으로 금성과 대화하다가 망원경으로 보니 뭐가 다르던가요?

“처음 본 게 토성 아니면 달의 크레이터(달 표면의 구덩이)일 거예요. 특히 토성은 망원경으로 보면 띠가 정말 예뻐요. 엄청 흥분했죠. 그걸 보곤 나도 내 망원경을 갖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죠. 그래서 만들었어요. 문방구에서 파는 렌즈로 초점 거리를 맞추고 마분지를 밥풀로 붙여서. (웃음) 1609년에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처음 천체를 본 망원경보다 그때 만든 망원경이 더 성능이 좋아요. 갈릴레오의 망원경보다 정교하진 못해도 렌즈 성능은 당시보다 더 좋으니까.”

-천문기상학과에 진학해서 평생 별과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그때 활동 덕분이겠죠?

“네, 우주 비행사와 천문학자는 다르긴 하지만 달에 가는 세상이 됐다고 하니까 막연히 우주란 무엇인가를 연구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당시는 천문학과가 서울대와 연세대에만 있을 때였죠. 고등학교 때 나선은하에 빠져있었는데 나선은하를 전공한 교수가 있는 연세대에 간 거죠.”

-중ㆍ고교 때 문예반 활동도 했다던데, 과학과 문학에 모두 빠져있었나요?

“이성에게 어필하려면 그런 지적 허영심, 허위의식이 필요했죠. (웃음)”

-문학과 과학이 통하던가요?

“그럼요. 경이로움이요. 문학 특히 예술은 경이로움의 경험이잖아요? 과학도 마찬가지예요. 음악이나 문학 작품, 혹은 과학에서 맛보는 경이로움은 거의 일치해요. 그래서 과학자가 예술가와 잘 통하나 봐요. 경이로움을 즐기고 받아들이고 존중할 줄 아는 태도가 공통점인 것 같아요.”

◇중2 첫 실연으로 빠져든 ‘윤동주의 별’ 

초등학교 때 ‘천문학의 별’에 빠져든 그는, 사춘기 때는 실연으로 ‘문학의 별’까지 섭렵했다. 서재훈 기자

-4년 전 낸 에세이집 제목이 ‘이명현의 별 헤는 밤’이죠. 윤동주의 별에는 언제 매료됐나요?

“중학교 2학년 때 푹 빠졌죠. 초등학교 동창이었던 지금의 아내와 사귀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이별을 통보하는 편지를 받았어요! 그 편지에 윤동주의 ‘서시’와 김소월의 ‘초혼’ 두 편이 적혀 있었죠. 인생의 첫 실연에 서럽게 울다가 그 두 시인의 시를 보기 시작했어요. 구할 수 있는 모든 시집은 다 구해서 읽고 외우고 다녔죠.”

-왜요?

“그리움에 대한 투영이 그렇게 됐나 봐요. 또 ‘네가 나한테 시를 보내 이별을 통보했으니 나도 시로 뭔가 해보겠다’ 이런 마음도 있었던 것 같고요. 처음엔 여자친구에 대한 감정 때문이었는데, 나중에는 문예반 활동에 신문반, 교지편집 활동도 했고 고등학교 때는 문학 동인회도 만들었죠.”

-그런데 왜 문학이 아닌 천문학의 별을 전공으로 택했나요?

“아주 어릴 때 매혹된 경험이 너무 크게 차지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냥 나는 ‘천문학자’, 자연스럽게 이렇게 생각했죠. 공교롭게도 진학한 대학이 윤동주의 연세대였어요. 또 제가 다닌 고교도 윤동주가 다닌 평양 숭실학교의 숭실고교고요. 제 인생의 화두인 별과 윤동주의 문학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됐어요.”

그는 외계 지성체를 탐색하는 세티(SETI)연구소의 한국 책임자이기도 하다. 그를 인터뷰 한다니까 주위의 독자 한 명이 이런 질문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외계인이 진짜 있나요?’

“(웃음) 과학자들은 (명확하게) 있다 혹은 없다고 잘 답하지 않아요. 99.9%의 확률로 존재할 개연성이 있다고 답하죠. 지금까지 그런 개연성을 만들어낼 만한 여러 관측 결과가 있다는 의미죠. 그걸 종합해서 추론하자면, 외계인은 99.9%의 확률로 존재할 것 같다고 보고 있죠. 문제는 ‘어떻게 찾을 것이냐’죠. 우리 은하 안에 지구와 비슷한 환경 조건을 가진 행성이 얼마나 있을지를 계산해보면, 적으면 50억 개, 많게는 500억 개가 있을 것으로 추정해요.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닌 거죠. 수십, 수백 개가 아니라 수십억 개 이상이라는 것, 흔하다는 게 의미가 있어요. 그 중 1%에서만 생명체가 있다고 봐도, 그 중 1%만 지구인처럼 지적 능력을 가졌다고 봐도, 우리 은하 내에서 지구인 정도의 진화된 존재는 흔할 것이라는 추론을 하는 거죠.”

-우리 모두는 별에서 왔다고요? 왜 그렇죠?

“천문학의 스토리텔링 중 하나예요. (웃음) 우주와 우리가 연결돼있다는 뜻이죠.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산소, 질소, 탄소, 황, 인 이런 원소들이 지구에서 뚝딱 만들어진 게 아니라 별들이 살았다, 죽었다를 반복하면서 치른 핵융합에서 왔다는 거죠. 개개의 사람들은 부모에게 빚을 져서 태어났지만, 화학적으로 설명하면 우리는 그렇게 온 우주와 연결돼있어요. 끊임없이 원소들이 순환하고 재활용되면서.”

그는 가수 이상은이 8년 전에 낸 곡 ‘스타더스트’ 얘기를 해주었다. 이 노래의 가사가 천문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면서. 노랫말이 이렇다. ‘후회할 필요 없어 / 시간은 순간순간 사라지는 것 / 또한 새롭게 피어나지 / 무지개의 빛 가루처럼 / 시간이 오는 / 우주의 저 편.’

하마터면 이 노래의 숨은 뜻을 모를 뻔 했지 않나. 그는 말했다. “우리는 별먼지죠. 그것도 이런 뜻까지 헤아릴 수 있는, 생각하는 별먼지. 엄청나게 멋진 존재죠!”

◇과학 교과서 10분의 1로 줄이고 천문학 빼자 

‘과학이 문화가 되는 곳', 과학책방 ‘갈다’의 곳곳. 김지은 기자

-와, 그렇군요. 그런데 학교에서 배우는 과학은 왜 이렇게 재미가 없을까요?

“맞아요. 저는 과학 교과서 내용을 10분의 1로 줄이고 천문학은 아예 빼자고 주장해요. 19세기의 과학, 예를 들면 (천체) 좌표 계산 이런 거요. 요즘은 천문학과 1학년생도 안배우거든요. 공군사관학교에서도요. 이제 프로그램 한 줄이면 돼요. 공사도 예전에는 실측해서 비행해야 하니까 배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죠. 그런 것 보다는 현대 허블 우주망원경이 찍은 사진을 보고 감동할 수 있게 하는 게 훨씬 좋은 과학 교육이에요. 지금 교육은 경이로움이 빠진 과학이죠. 있던 경이로움도 시험을 통해 없어지게 하니, 지금처럼 교육할 바엔 차라리 과학을 배우지 않는 게 나아요. 그러면 막연한 호기심은 남을 거 아녜요. 지금은 (중ㆍ고교) 6년을 거치며 호기심이 말살돼 버리는 교육이니까요.”

-그렇다면 저 같은 ‘과알못’(과학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안 생길 텐데.

“그렇죠. 시험도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과학적 사고를 하는 방식 위주로 바꿔야 해요. 하지만 (소장 과학자들이) 그렇게 주장해도 안 먹히죠. 이미 각 교과 별 기득권이 있으니까요. 총론에서 동의해도 각론으로 들어가면 양보를 하지 않더라고요.”

-‘갈다’에서 하는 ‘코스모스 끝까지 읽기’도 잃어버린, 혹은 몰랐던 과학의 경이로움을 알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거죠?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굉장히 유명한 책이잖아요. 이걸 다 읽고 싶은 욕망을 가진 분들이 많이 오죠. 제가 하는 역할은 일종의 가이드예요. 옆에서 팩트 체크와 비하인드 스토리를 얘기하는 거죠. 팩트 체크는 예를 들면 ‘코스모스’가 나왔을 때는 우주의 나이를 150억 년에서 200억 년으로 봤지만, 지금은 138억 년으로 바뀌었다거나 하는 것들이죠. 또 제가 칼 세이건의 부인이나 제자들과 친분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었던 비하인드 스토리를 설명해요.”

-1980년에 출간된 이 책을 지금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뭔가요?

“‘코스모스’는 최첨단의 과학책은 아니에요. 현대 천문학의 성과를 알려면 막 나온 책을 보는 게 낫죠. 이 책은 맥락으로 읽어야 해요. 저는 그걸 돕는 거고요. 과학 분야의 고전이 갖는 위상이 애매해요. 소설은 300년 전의 것을 읽어도 희로애락, 사랑, 질투 이런 보편적인 공감대가 있지만 과학책은 그 사이에 워낙 심하게 팩트가 변하니까요. 정보 전달의 역할은 출간 1, 2년이 지나면 없어져요. ‘코스모스’ 역시 팩트가 달라진 걸 찾기 시작하면 엉망이 되죠. 그럼에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이 책에 담긴 칼 세이건의 비전과 논리구조 때문이에요.”

-우리 삶에도 적용해 볼 수 있다는 건가요?

“칼 세이건은 우리가 살아나가야 할 가치를 외면하지 말자는 얘기를 많이 해요. 냉정하게 상황을 인정하고 난 뒤, 어떻게 살 것인가. 구체적인 방법이 ‘코스모스’에 있어요.”

-언제 처음 ‘코스모스’를 읽었나요?

“1980년에 다큐멘터리가 나왔을 때 비디오테이프를 사서 봤고, 1981년쯤 국내에 번역본 책이 나왔을 때 봤을 거예요. 그 땐 이 책에 담긴 문학적 비유나 역사, 신화, 전설을 본 게 아니라 최신 화보를 봤죠. 1977년 발사된 우주탐사선 보이저 1, 2호가 1979년부터 목성, 토성, 천왕성을 지나면서 찍은 사진을 보내오기 시작했거든요. 그 최신 화보가 ‘코스모스’에 실려 있었어요. 그러다가 귀국해서 (연세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대중을 상대로 강연을 하다가 ‘코스모스’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어요. 그래서 거의 20년 만에 다시 읽었죠.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지금도 읽을 때마다 새로워요. 한번은 초점을 신화나 전설에 맞춰서, 그 다음엔 맥락으로만 읽어보기도 하고요.”

◇죽으면 별로 흩어지니 재미난 일을 해보자 

그는 생의 기준을 태어난 때부터가 아닌 죽음에 둔다고 했다. 그렇게 ‘삶의 유한성’을 인정하고 나면, 현재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서재훈 기자

이명현의 책들을 읽으면서 몇 대목에서 탄복했다. 그 중에는 담담해서 더 절절하게 아픔이 배어 있는 문장들이 있었다. 어부들이 더 많은 돈을 받고 팔기 위해 청어를 산 채로 가져오려고 청어 사이에 새끼 상어를 풀어놓는다는 얘기 다음이다. ‘지난 1년, 나는 바로 그 청어처럼 살았다. 그래서 살아남았다. 그런데… 참… 미치겠다. 그래도 또 1년만 더 버티고 살아봐야겠다고 다시 다짐한다. 그 청어처럼.’

자신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두어 달 뒤, 아내도 뇌종양으로 투병을 시작하게 돼 힘겨운 1년을 보내고 난 때다.

-청어처럼 사는 건, 어떤 거였나요.

“걸어 다니면서 하는 (생각 흐트러뜨리기) 명상 덕도 봤고요. (주머니에서 병을 꺼내서) 이런 (심장) 비상약도 과용했죠. 어쩔 수가 없으니까. 이런 방식으로 심신을 릴랙스 시키면서요. 감정의 진폭을 줄이고 평상심을 유지하려는 노력이죠. 늘 대화를 나누던 가까운 상대가 아프고, 그렇다고 (속내를) 자식한테 털어놓을 수도 없고, 결국은 저 혼자 해결해야 하는 거니까요. 극심한 스트레스 상태에 놓이게 되면 먼저 응급실에 가서 선제 조치를 하기도 하고요. 그런 식으로 살 궁리를 하는 거죠. 힘들긴 했지만, 생각과 생활을 최대한 단순화해서 저도 버티면서 아내의 치료에 집중했죠.”

-돌이켜 보면 잘 견뎌왔나요?

“그랬죠. 반드시 해야 할 일들에만 초점을 맞춰서. 환자가 생기면 주위에서 조언이라고 생각하는 여러 말들을 해요. 억지스러운 것들도 있고. 심지어 굿을 하라는 얘기까지. 그런 것들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중심을 잡는 사람이 있어야 해요. 저는 의료체계 안에서 의사의 지시를 따르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주장들은 다 쳐냈죠. 오로지 아내의 치료와 아이들을 보살피는 것에 집중했어요.”

-부인과 초등학교 동창이니 굉장히 오래됐고 특별한 사이겠어요.

“아내이자, 연인이자, 오래된 친구, 그런 복합적인 관계죠. 우리끼리 통하는 ‘모드 바꾸기’가 있어요. 부부가 되니까 절친이거나 애인일 때 했던 얘기를 안 하게 되는 때가 있더라고요. 그러면 싸우기도 하고 삐치기도 했죠. 그런 때 쓰는 비장의 카드가 ‘절친모드’예요. 그러면 오래된 친구로 돌아가 할 말 다 하는 일종의 면책특권 같은 거죠. 이제는 그런 걸 할 수 없으니 안타깝죠. 그래도 지금의 상황을 냉정하게 봐야 이 순간 내가 이 사람과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어요. 과거만 생각한다면, 지금의 아내와 교감이나 교류는 할 수 없죠. 아내와의 모드가 새롭게 설정된 거예요. 예전처럼 절친모드로 돌아간다거나, 아이들을 함께 돌본다거나, 논리적인 교감 같은 건 할 수 없지만 함께 사진을 보면서 웃는 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교감이니 이것에 집중하는 거죠.”

-행복하세요?

“저는 늘 행복했던 것 같아요. (웃음) 힘든 일은 늘 있었지만 자책은 잘 하지 않아요. 그러니 작은 강도의 행복을 느끼는 빈도 수가 높아요. 맛있는 걸 먹으면 행복하거든요. 물론 처음 망원경으로 하늘을 봤을 때 나를 압도했던 경이로운 행복을 재현하긴 힘들어요. 하지만, 대신 약한 세기의 행복이 많죠. 그러면서 좌절의 강도는 약화시키고. 그렇게 감정의 진폭을 줄이는 훈련이 됐나 봐요.”

이 질문을 한 건 내내 그의 눈과 표정에서 느껴지는 행복 때문이었다.

-별 헤는 과학자 이명현의 삶의 도는 뭔가요?

“유한함에 대한 인식, 인지, 그것에서부터 오는 체념이요. 그게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방법이에요. 외계적 시선으로 저를 보거나 객관화 시키는 데 도움이 되죠. 바꿔 말하면 항상 배수진을 치고 사는 것이기도 해요. 당장 죽을 수도 있다는. 저는 삶의 기준점을 제가 태어난 시점이 아닌 죽음에 두고 사고하는 것 같아요. 어차피 죽는 거니까, 죽으면 (별로) 흩어지는 거니까, 끝이 나기 전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봐야 하지 않겠나. 그러니 평상적인 재미난 일을 하는 거죠. 사과나무를 심는 사람도 있지만. (웃음)”

‘과알못 기자’가 천문학자를 인터뷰 해보기로 한 데는 이런 문장도 있었다. ‘인생의 꿈을 다 꾸고 이제 막 별로 돌아가는, 그 사람을 내 마음에서 놓아주고 있던 참이었다.’ 그의 스승이자 벗이었던 조경철 박사를 추모하며 쓴 글이다. 세상의 절반인 하늘과 달과 별이 그에게 준 선물이다.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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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화된 산업화 시대 이후를 홀로세를 넘어 인류세라 이름 붙이기도 한다. 

인간이 지구와 지구에 사는 생명의 생존을 좌우하는 중요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지구 위기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지구를 살릴 구세주이기도 한 인류. 

희망은 있을까? 기대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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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 왈, 2050년을 위해 인류는 뭘 준비해야 하나


1부: 오직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만 유효하다

인류는 전례없는 변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모든 과거의 이론이 붕괴하고 있으며 어떤 새로운 이론도 이를 대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유례없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우리와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은 2050년에 겨우 30대 초반일 겁니다. 이들 중 대부분은 2100년, 곧 22세기에도 여전히 활발하게 살아갈 겁니다. 오늘날 태어나는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이들이 2050년 또는 22세기를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 시대에도 직장을 얻고 세상을 이해하고 인생의 미로를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어떤 종류의 기술을 가져야 할까요?

안타깝게도 오늘날 누구도 2100년, 아니 2050년의 세상 조차도 어떤 모습일지 알지 못하며, 따라서 누구도 이 질문의 답을 말할 수 없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인류가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했던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기술이 신체와 뇌, 마음을 제어할 수 있게 된 오늘날, 과거에는 고정되었고 영원할 것이라 여겼던 모든 사실들을 이제 확신할 수 없게 되었고, 따라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그 어느때보다도 더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천 년 전인 1018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미래를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사회의 기본적인 요소가 크게 바뀌지 않으리라는 것은 알았습니다. 만약 당신이 1018년의 중국에 살고 있다면, 당신은 1050년 쯤 송 제국이 멸망하고 거란족이 침입하며, 또 역병이 돌아 수백 만 명이 죽는 것을 겪게될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1050년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농부와 베짜는 직공으로 일하고, 정부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군대와 관료를 가질 것이며, 가부장제가 유지될 것이며, 평균수명은 여전히 40세 언저리일 것이고, 인간의 육체적 특징 또한 전혀 변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을 것입니다. 1018년, 가난한 이들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쌀을 파종하고 비단을 짜야할 것인지를 가르쳤습니다. 부유한 이들은 아들에게는 공자의 가르침과 서예, 말을 타고 싸우는 법을 가르쳤고, 딸에게는 검소하고 성실한 부인이 되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1050년에도 이런 기술이 유용하리라는 데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중국만이 아니라 다른 세계 역시 2050년에 어떤 특징을 가질지를 전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무엇으로 돈을 벌지, 군대와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어떤 관계를 가지게 될지를 알지 못합니다. 어떤 이들은 아마 지금보더 훨씬 더 오래 살게 될 것이며, 생명공학과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을 통해 인간의 육체 또한 과거와는 비할 수 없는 변화를 겪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아이들이 배우는 대부분의 기술이 2050년에는 쓸모가 없어질 수 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학교는 아이들에게 지식을 주입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정보가 희귀한 것이었고 부족한 정보 마저도 검열 때문에 쉽게 접할 수 없었기에, 이는 매우 합리적인 교육방법이었습니다. 만약 당신이 1800년 멕시코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면 당신은 바깥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알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라디오나 텔레비전, 신문, 도서관 등 세상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어떤 도구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글을 알고 책을 접할 수 있었다 하더라도 소설이나 종교 서적을 제외한 책은 거의 없었습니다. 스페인 제국은 모든 국내 인쇄물을 철저하게 통제했고, 외국 서적 또한 검열을 통과한 것들만 드물게 허용했습니다. 당시의 러시아, 인도, 터키, 중국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근대적 학교 제도가 등장했을 때, 모든 아이들을 읽고 쓸 수 있게 만드는 것과 지리학, 역사, 생물학의 기본적인 지식을 가르치는 것은 곧 인류의 거대한 진보를 의미했습니다.

하지만 21세기, 우리는 너무나 많은 정보에 둘러싸여 있으며, 이를 막으려 하는 이도 없습니다. 그 대신 어떤 이들은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며, 우리의 관심을 불필요한 것으로 돌리게 만듭니다. 당신이 지금 멕시코의 한 마을에 살며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대부분의 시간을 위키피디아를 읽고, TED 강연을 보며, 온라인 수업을 들을 수 있습니다. 어떤 정부도 그들이 원하지 않는 정보를 완전하게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대신 이제 사람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고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만드는 것이 극도로 쉬워졌습니다. 전세계의 사람들이 클릭 한 번으로 시리아 알레포에 떨어진 폭격 소식과 북극의 빙산이 녹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또한 수많은 반대되는 주장들이 있어 무엇을 믿어야 할지를 알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역시 수많은 다른 주제들 때문에 사람들은 한 가지에 집중할 수 없으며, 또한 정치와 과학이 너무 어렵게 보일 때, 고양이 비디오나 연예인 소식, 포르노 영상은 더욱 유혹적이 됩니다.

이런 세상에서 학교가 학생들에게 가장 가르칠 필요가 없는 것이 더 많은 정보일 것입니다. 이미 학생들은 너무나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대신, 사람들은 그 정보가 합리적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과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를 알 수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하며, 무엇보다도 수많은 작은 정보를 모아 세상에 대한 폭넓은 관점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합니다.

물론 이는 서구의 진보적 교육이 수백년 동안 추구해온 목표이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서구 학교에서는 만족스러운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교는 학생들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치기 보다는 정보를 직접 먹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권위주의에 대한 두려움은 진보적인 학교로 하여금 거대담론에 대한 특별한 공포를 가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학생들에게 많은 지식과 약간의 자유를 줄 경우 학생들이 알아서 세상을 이해하고, 설사 그들 세대가 모든 지식을 하나의 일관된 세계관으로 승화시키지 못한다 하더라도 미래에 이를 해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을 것이라 가정합니다. 그러나 그런 시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일이십 년 내에 우리가 내릴 결정은 인류의 미래 자체를 결정할 것이며, 우리는 오직 우리가 지금 가진 세계관을 바탕으로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을 뿐입니다. 만약 이 세대가 우주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를 가지지 못한다면, 인류의 운명 또한 그저 던져진 주사위에 의존하게 될 뿐입니다.

2부: 변화는 시작되었다

학교는 너무 많은 정보를 주입하는 것 외에도 미분방정식 풀이나 C++ 프로그래밍, 시험관의 원소 식별과 중국어 대화 같은 특정한 기술을 가르치는데 너무 전문화되어 있습니다. 2050년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는 앞으로 어떤 기술이 가치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C++ 프로그래밍이나 중국어 대화에 너무 많은 자원을 투자하고 있지만, 막상 2050년이 되었을 때,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프로그래밍을 더 잘하며, 새로운 구글 번역 앱이 만다린, 칸토니즈, 하카를 거의 불편함 없이 통역해줄지 모릅니다.

그럼 지금 우리는 어떤 기술을 가르쳐야 할까요? 많은 교육 전문가들은 학교가 다음의 “네 가지 C”, 곧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의사소통(communication), 협력(collaboration), 창의력(creativity)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곧, 학교는 구체적인 기술 교육을 줄이고 보다 범용적인 삶의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변화에 대응하는 능력,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정신적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2050년의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제품을 발명하는 능력 못지 않게 자기자신을 끊임없이 재발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변화의 속도와 함께 경제적 변화 외에 “인간의 조건” 또한 변화하고 있습니다. 1848년, 공산당 선언에는 “모든 확실한 것들이 공기중으로 사라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염두에 두었던 것은 사회경제적 구조였습니다. 2048년에는 물리적, 인지적 구조 또한 공기중으로, 혹은 데이터 클라우드 속으로 사라질 것입니다.

1848년에는 수백 만 명의 사람들이 농장에서 직장을 잃었고, 공장에서 일하기 위해 도시로 옮겨갔습니다. 하지만 공장에서도 자신의 성별을 바꿀 필요나 새로운 감각을 개발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직물공장에서 일자리를 찾고 나면 남은 인생은 그 일을 하며 보낼 수 있었습니다.

2048년 사람들은 어쩌면 가상 공간으로 이주해야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성별 역시 바뀔 수 있으며 인체에 이식된 컴퓨터에 의해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하게될 수 있습니다. 3차원 가상 현실 게임에서 최신 의상을 디자인하는 직업이 이미 존재하며, 10년 내로 이 특정한 직업뿐 아니라 이와 비슷한 예술적 감각을 필요로 하는 직업에 인공지능이 도입될 수 있습니다. 즉, 25살 때 연애 사이트 프로필에 “런던의 옷가게에서 일하는 25살의 이성애 여성”이라고 썼던 여인이 35살 때는 “나이는 조정 중이고 성별도 따로 없음. 뉴코스모스 가상세계에서 신피질 활동을 하며, 인생의 목적은 지금까지 어떤 패션 디자이너도 가보지 못한 영역을 가보는 것”이라고 쓰게될 수 있습니다. 45살 때는 연애나 자기소개라는 개념 자체가 너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어 있을 겁니다. 그저 적절한 알고리듬이 내게 딱 맞는 상대방을 찾거나 – 아니면 만들어 – 줄 겁니다. 패션 디자인 예술 분야는 알고리듬이 너무나 발달한 나머지 과거 당신이 만들었던 가장 뛰어난 작품 조차도 자부심 보다는 창피함만을 느끼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45살이면 아직도 지켜보아야 할 세상의 급격한 변화를 충분히 더 남아 있습니다.

위의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누구도 우리가 보게될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습니다. 어떤 구체적인 미래도 실제 진실과는 거리가 멀겁니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21세기 중반의 세상을 설명하고 그 내용이 마치 과학 소설처럼 느껴진다면, 그 예측은 틀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다른 이가 21세기 중반을 당신에게 설명하는데 그 내용이 전혀 과학 소설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건 확실히 맞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어떤 구체적인 미래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오직 분명한 것은 모든 것이 변할 것이라는 사실 뿐입니다.

이러한 심오한 변화는 삶의 기본적인 구조마저도 그 가장 확실한 특징을 바꾸면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인류가 문명을 만들기 전의 오랜 과거부터 인간의 삶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바로 일을 배우는 시기와, 그 일을 하는 시기입니다. 삶의 전반부에 우리는 지식을 축적하고, 기술을 갈고 닦으며, 세상을 보는 관점을 세우고,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었습니다. 열 다섯살의 나이로 학교를 가지 않고 하루 종일 가족이 소유한 논에서 일하더라도, 그 시기 가장 중요한 것은 논 농사를 하는 방법과, 대도시에서 온 욕심 많은 곡물 매매상을 상대하는 법, 옆 논의 주인과 물과 땅을 두고 생기는 충돌을 해결하는 법을 배우는 일입니다. 삶의 두 번째 시기에는 그동안 갈고 닦은 기술을 바탕으로 돈을 벌며 세상을 탐험하고, 사회에 기여하게 됩니다. 물론 50살이 되어서도 여전히 쌀에 대해, 상인과 이웃에 대해 배울 수 있지만, 이는 일찌감치 배웠던 내용을 조금더 섬세하게 만드는 것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21세기 중반의 세상에서, 급격한 변화의 속도와 길어진 수명은 이러한 과거의 모델을 무용하게 만들었습니다. 인생은 점점 더 잘게 쪼개지며, 각 구간은 연속적이지 않습니다. “나는 누구인가?”는 그 어느때 보다도 더 중요하고 복잡한 질문이 되었습니다.

이는 엄청난 수준의 스트레스를 포함합니다. 변화는 언제나 스트레스를 동반하며, 일정한 나이 이후 사람들은 변화를 꺼려하게 됩니다. 15세의 아이에게 세상은 끊임없이 바뀌는 것입니다. 신체가 자라고 생각이 깊어지며,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됩니다. 모든 것이 변화하며 모든 것이 새롭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개발하는데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십대는 이를 두려워하지만, 동시에 이를 신나는 일로 즐깁니다. 그러나 50살이 되면, 이제 변화는 두려운 것이 되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과 싸우기를 포기합니다. 이미 가 보았고, 직접 해 보았고, 남은 것은 티셔츠 뿐입니다. 안정적인 삶을 선호합니다. 지금 가진 기술과 경력, 정체성과 세계관에 너무 많은 투자를 했고,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길 원하지 않습니다.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일한 사람들일수록 이를 포기하고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 쉽지 않습니다. 새로운 경험을 소중히 여기고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나갈 수는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50대에는 자신의 정체성과 인격을 크게 바꾸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뇌과학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비록 성인의 뇌 또한 과거 우리가 알고 있던 것 보다는 더 유연하고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지만, 십대의 유연한 뇌에는 비할 수 없습니다. 뉴런을 다시 연결하고 시냅스를 추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21세기는 안정성을 추구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닙니다. 정체성을, 직업을, 세계관을 바꾸지 않는다면 세상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뒤떨어진 사람이 될 뿐입니다. 기대수명의 증가는 당신을 살아있는 화석으로 만들지 모릅니다. 이제 50살은 충분히 젊은 나이일 것이며, 따라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 단순히 경제적인 면을 넘어 사회적으로 – 항상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자신을 재발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생소함이 새로운 표준이 되는 시대에 당신의 과거 경험과 다른 모든 인류의 과거 경험은 예전처럼 믿을 수 있는 기준이 되지 못합니다. 개인으로써의 한 사람과 전체 인류는 초지능 기계나 강화 신체, 인간의 감정을 믿을 수 없이 정밀하게 조종하는 알고리듬, 인류에 의한 기후 격변, 매 십년 마다 직업을 바꾸어야 하는 급격한 변화 등 지금까지 어떤 인류도 겪어보지 못했던 것들을 대해야 합니다. 완벽하게 전례가 없는 이런 상황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막대한 양의 정보가 쏟아져 들어오고 이를 흡수하거나 분석할 방법이 전혀 없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엄청난 불확정성이 세상의 우연한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인 특성일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그런 세상에서 살아남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지적 적응력과 충분한 감정적 균형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당신이 가장 잘 아는 영역을 때로 포기해야 하며, 전혀 알지 못하는 분야를 편안하게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불행히도, 아이들을 알 수 없는 것들에 익숙해지게 만들고 정신적 균형을 유지하게 만들도록 가르치는 것은 물리학 공식이나 1차대전이 발발한 이유를 가르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듣는 것으로 회복 탄력성(resilience)을 배울 수는 없습니다. 대부분의 교사들 역시 20세기 교육을 받았으며, 이때문에 21세기가 요구하는 지적 유연성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산업혁명의 결과 우리는 마치 생산라인과 같은 교육 시스템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마을 한 가운데 커다란 콘크리트 빌딩이 서 있고, 내부에는 수많은 동일한 교실이 있으며, 각 교실에는 책상과 의자가 일렬로 늘어서 있습니다. 종이 울리면, 같은 해에 태어난 서른 명의 아이들과 함께 그 중 한 교실로 들어가게 됩니다. 매 시간, 어른 한 명이 들어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들은 이 일로 정부에서 봉급을 받습니다. 그 중 한 명은 지구의 형태를 이야기하고, 다른 이는 인류의 역사를, 또다른 이는 인체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비록 인류가 이 방법으로 커다란 진보를 이루어냈다는 것을 부정할 이는 없겠지만, 이제 이 모델은 더 이상 유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쓸만한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캘리포니아 교외와 같은 선진국 뿐만 아니라 멕시코 시골에도 적용가능한 모델은 없습니다.

3부: 인간에 대한 해킹

지금 내가 멕시코나 인도, 앨라배마의 구식 학교를 다니는 15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은 바로 이것입니다. 곧, 어른들을 너무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른들은 대부분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겠지만, 그들 또한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어른들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방법이었고, 이는 그들이 세상을 잘 알기 때문이며 또한 세상이 느리게 변했습니다. 하지만 21세기는 다릅니다. 점점 더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으며, 어른들이 말하는 정보가 시대를 초월한 지식인지, 아니면 오래된 편견인지를 확실하게 구분할 수 없습니다.

그럼 무엇에 의지해야 할까요? 기술일까요? 하지만 기술은 더 위험요소가 많은 도박입니다. 기술은 여러 면에서 당신을 도와줄 수 있지만, 기술이 당신의 주도권을 가져갈 경우 이제 당신은 기술의 포로가 될 수 있습니다. 수천 년 전, 인류는 농업을 발명했지만, 이 기술은 소수의 엘리트만을 살찌웠고 다수 인류는 노예와 같은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해가 뜰 때 부터 해가 질 때 까지 잡초를 뽑고, 물을 나르고, 뜨거운 태양 아래헤서 옥수수를 수확해야 했습니다. 같은 일이 지금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기술은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닙니다. 만약 당신이 삶에서 무엇을 원하는지가 확실하다면, 기술은 당신이 이를 얻을 수 있게 만들어 줄 겁니다. 하지만 당신이 삶에서 원하는 것이 확실하지 않다면, 기술이 당신의 목표를 조종하고 당신 삶을 좌우하게 될 것입니다. 특히 기술이 인간을 더 잘 이해하게 될수록, 당신은 점점 더 기술이 당신에 봉사하기 보다 당신이 기술에 봉사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길거리에서 자신의 얼굴을 환한 스마트폰에 처박고 배회하는 좀비들을 본 적이 있나요? 당신은 그들이 기술을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아니면 기술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그럼 당신 자신에게 의지해야 할까요? 이 말은 세서미 스트리트(역주: 미국의 교육용 프로그램)나 옛날 디즈니 영화에서 나올때는 그럴듯하게 들렸겠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디즈니도 이제 이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인사이드 아웃의 라일리 앤더슨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며, “내면의 목소리”를 들으려 할 때 조차도 외부에서 가해지는 조작의 희생양이 되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마음의 소리는 절대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이는 우리 뇌가 본래 가지고 있는 생화학적 오류 외에도 국가나 이데올로기, 상업적 광고에 쉽게 휘둘리기 때문입니다.

생명공학 기술과 기계학습 기술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의 감정과 욕망은 더 쉽게 조작될 것이며, 따라서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따르는 것은 더 위험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코카콜라, 아마존, 바이두 혹은 정부가 당신을 조종하는 방법을 파악하고 당신이 반응하는 약점을 누를 때, 과연 당신은 당신의 진짜 자신과 그들의 지시를 따르는 자신을 구별할 수 있을까요?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기 위해 매우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인생에서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사실 이 교훈은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교훈이기도 합니다. 바로 ‘너 자신을 알라’는 것이죠. 사실 철학자와 선지자들은 수천 년 동안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알아야 한다고 말해왔습니다. 하지만 이 충고는 21세기 오늘날 그 어떤 과거보다도 더 중요한 조언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노자나 소크라테스의 시대와 달리, 이제 당신을 당신보다 더 잘 알 수 있는 이들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코카콜라, 아마존, 바이두, 그리고 정부가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은 당신의 스마트폰이나 당신의 컴퓨터, 당신의 은행 계좌가 아니라, 바로 당신 자신을 속속들이 이해하려 합니다. 당신은 오늘날이 컴퓨터 해킹의 시대라는 말을 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 말은 진실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합니다. 이 시대는 바로 인간을 해킹하는 시대입니다.

알고리듬은 지금도 당신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당신이 어디를 가는지, 무엇을 사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보고 있습니다. 곧, 당신의 모든 걸음걸이, 모든 호흡, 모든 심장 박동을 지켜보게 될 것입니다. 빅데이터와 기계학습 기술을 이용해 당신에 대해 점점 더 잘 알게될 것입니다. 이 알고리듬이 당신을 당신보다 더 잘 알게되는 순간, 이제 그들은 당신을 조종하고 조작하게 될 것이며, 당신은 그저 이를 지켜볼 수 밖에 없게될 것입니다. 당신은 매트릭스와 트루먼쇼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사실 이는 매우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알고리듬이 당신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당신보다 더 잘 이해한다면, 당신을 움직이는 권력 또한 알고리듬이 가져가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당신은 알고리듬에게 모든 권력을 기꺼이 이양하고 알고리듬이 당신에게 최선의 것을 선택해 주리라 믿을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저 편안하게 세상의 발전을 지켜보면 됩니다. 사실 당신이 특별히 해야할 일도 없습니다. 알고리듬이 모든 것을 알아서 해줄테니까요. 그러나 혹시 당신이 자신의 존재와 미래에 어느 정도 주도권을 가지고 싶다면, 당신은 알고리듬보다, 아마존과 정부보다 더 빨리 뛰어야 하며, 그들이 당신에 대해 파악하는 것보다 스스로를 더 잘 알아야 합니다. 빨리 뛰기 위해서는 모든 짐을 벗어 던져야 합니다. 모든 환상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건 매우 무겁기 때문입니다.

(와이어드, Yuval Noah Har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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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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