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세상이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하게 하는 무속 신화. <원천강본풀이>

주인공(?) 오늘이 이야기를 통해 들여다보는 삶의 본질(?), 뭐 이런 걸 생각해 볼 수도 있겠......^^

어여어여 작업해서 책으로 나와랏!

그림은 웹툰 <묘진전>을 쓰고 그린, 젤리 빈 님이 그려주었다.

대개 신화 이야기들이 가부장적인 게 많아 불편한 느낌이 강하다. 여기에 젤리 빈의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글과는 다른 젤리 빈 만의 컷과 만화를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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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적막한 들에서 원천강으로 _원천강본풀이

_ 신동흔 

 

먼 옛날에 적막한 들에 옥 같은 여자아이가 나타났다. 아이를 발견한 사람들이 물었다.

너는 누구냐? 어디에서 왔으며, 이름은 무엇이냐?”

저는 강림들에서 솟아나서 혼자 살았습니다. 성도 모르고 이름도 모릅니다.”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왔느냐?”

학이 날아와서 한 날개를 깔아 주고 한 날개를 덮어 주며 먹을 것을 가져다 줘서 오늘까지 살아왔습니다.”

네가 오늘 우리를 만났으니, 오늘을 낳은 날로 하고 이름을 오늘이라고 하자꾸나.”

세상으로 나온 오늘이가 이리저리 다니다가 박이왕의 어머니 백씨부인을 찾아가자 부인이 말했다.

오늘아, 너의 부모님 나라가 어디인지 아느냐? 부모님 계신 곳은 원천강이다.”

원천강은 어찌하면 갈 수 있습니까?”

서천강 흰모래마을 별층당에 높이 앉아 글 읽는 도령을 찾아가 물으면 알 길이 있을 게다.”

오늘이는 바로 길을 나서서 흰모래마을 별층당을 찾아갔다. 저물 무렵에 별층당을 찾아 들어가자 청의동자가 나와서 누구냐고 물었다.

저는 오늘이입니다. 부모를 찾아 원천강에 가고 있습니다. 도련님은 누구십니까?”

저는 장상이입니다. 하늘의 명으로 여기서 늘 글을 읽고 있습니다.”

원천강 가는 길을 알려 주십시오.”

연화못 가에 연꽃나무한테 물어보면 알 길이 있을 것입니다. 원천강에 가시거든 왜 내가 늘 글만 읽어야 하고 성 밖으로 못 나가는지 알아봐 주십시오.”

꼭 알아볼게요.”

오늘이가 다음 날 아침 일찍 길을 떠나 한참을 가다 보니 연화못 가에 연꽃나무가 보였다.

연꽃나무님, 부모님을 찾아 원천강에 가는 길입니다. 어디로 가면 원천강을 갈 수 있나요?”

원천강 길은 청수바닷가에서 뒹구는 큰뱀을 찾아가 물으면 알 수 있을 거예요. 원천강에 가거든 내 팔자를 좀 알아다 주세요. 나는 겨울에 움이 뿌리에 들고 정월이면 몸속에 들었다가 2월에 가지로 가서 3월이 되면 꽃이 피는데 맨 윗가지만 꽃이 피고 다른 가지는 피지 않으니 어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오늘이는 답을 알아보겠다고 약속하고 길을 떠나 청수바닷가를 찾아갔다. 바닷가에서 이리저리 구르는 큰 뱀을 만나서 원천강 가는 길을 묻자 뱀이 말했다.

길 인도하기는 어렵지 않으나 내 부탁도 들어주오. 다른 뱀들은 야광주를 하나만 물고도 용이 되어 올라가는데 나는 세 개나 물고도 용이 못 되니 어쩌면 좋겠는지 알아봐 주오.”

오늘이가 응낙하자 큰 뱀은 오늘이를 등에 태우고 물로 들어가 청수바다를 건네주었다.

가다 보면 별층당에서 글을 읽는 매일이라는 처녀가 있을 테니 길을 물어보구려.”

오늘이가 큰 뱀과 작별하고 길을 가다 보니 한 처녀가 별층당에 높이 앉아 글을 읽고 있었다. 오늘이가 다가가 인사하고 원천강 길을 묻자 매일이가 말했다.

길을 한참 가다 보면 시녀 궁녀가 우물가에서 울고 있을 겁니다. 그들한테 말하면 소원을 이룰 거예요. 원천강에 가거든 내가 매일 여기서 글만 읽는 팔자가 어찌 된 일인지 알아봐 주세요.”

. 그럴게요.”

오늘이가 그날 밤을 지내고 일찍 길을 나서서 한참을 가다 보니 시녀 궁녀가 우물가에서 흐느껴 우는 것이 보였다.

여기서 왜 이렇게 울고 계신가요?”

우리는 하늘옥황 시녀로 죄를 지어 내려왔는데 이 우물물을 다 퍼내기 전에는 돌아갈 수가 없어요. 그런데 물을 푸려 해도 바가지에 큰 구멍이 나서 아무리 해도 퍼낼 수가 없습니다.”

오늘이는 시녀들에게 정당풀을 뜯어서 덩어리를 만들게 한 다음 그것으로 구멍을 막고 송진을 녹여 칠하고는 하늘에 정성껏 기원을 올렸다. 그렇게 하고 물을 푸자 물이 한 방울도 새지 않아서 금세 우물물이 말라붙었다.

덕분에 저희가 살았습니다. 원천강에 간다고 하셨지요? 우리가 동행해 드리겠습니다.”

시녀들이 앞장서서 한참 동안 길을 가다 보니 멀리 낯선 별당이 보였다. 시녀들은 그곳을 가리킨 뒤 오늘이 앞길을 축복하고서 하늘로 올라갔다.

오늘이가 원천강에 가까이 가서 보니 주위에 높다랗게 만리장성이 둘러 있고 대문이 꽁꽁 닫혔는데 무서운 문지기가 지키고 있었다.

저는 인간 세상에서 온 오늘이입니다. 이곳이 부모 나라라고 해서 찾아왔습니다. 들여보내 주세요.”

여기는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야. 문을 열어 줄 수 없다.”

문지기가 냉정하게 가로막자 오늘이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오늘이는 문 앞에 쓰러져 통곡하기 시작했다.

 

오늘이는 백만 리 인간 세상 먼 곳에서

어린 처녀 혼자서 외로이

산과 물을 건너고 온 고생 겪으면서

부모 나라라고 이런 곳을 찾아왔는데

이렇게도 박정하게 하는구나.

이 문 안에 내 부모 있으련마는

이 문 앞에 나 여기 왔건마는

원천강 신인들은 너무 무정하다.

빈 들에 홀로 울던 처녀

산 넘고 물 건널 적에 외로운 처녀

부모 나라 문 앞에 외로운 처녀

부모는 다 보았나, 제 할 일 다하였나.

박정한 문지기야 무정한 신인들아.

그립던 어머님아 그립던 아버님아.

 

오늘이가 하염없이 흐느껴 울자 돌 같은 문지기 심장에도 동정심이 우러났다. 문지기가 안으로 들어가 그 사실을 알리자 원천강 신인들이 그렇지 않아도 울음소리를 들었다면서 아이를 들이게 했다. 오늘이가 꿈꾸는 듯 안으로 들어가자 신인들이 물었다.

너는 무슨 이유로 이곳에 왔느냐?”

그때 오늘이가 학의 깃 속에서 살던 일부터 지금까지 지나온 일을 하나하나 이야기하자 신인들이 다가와 오늘이 손을 꼭 잡고서 말했다.

기특하구나. 우리가 너의 부모로다. 너를 낳은 날에 옥황상제가 우리를 불러 원천강을 지키라 하니 어찌 거역할까. 할 수 없이 여기 있게 됐지만 항상 네가 하는 일을 보면서 너를 보호하고 있었노라.”

서로 정담을 나눈 뒤 부모는 오늘이를 이끌고 원천강 구경을 시켜 주었다. 만리장성 둘러싼 곳에 문들이 나란히 달려 있는데, 첫째 문을 여니 화창한 날씨에 봄꽃이 만발하고, 둘째 문을 열자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며, 다음 문을 여니 황금 들판에 나무 열매가 가득하고, 또 한 문을 여니까 세상이 눈으로 하얗게 덮여 있었다. 춘하추동 사시절이 그 안에 다 모여 있었다.

이제 저는 왔던 길로 돌아가렵니다. 오면서 부탁받은 일이 많은데 어찌해야 할지 알려 주세요.”

오늘이가 장상이와 연꽃나무, 큰뱀, 매일이의 사연을 이야기하자 부모가 말했다.

장상이와 매일이는 부부가 되면 만년 영화를 누릴 게야. 연꽃나무는 윗가지 꽃을 따서 처음 보는 사람한테 주면 다른 가지에도 꽃이 만발할 것이고, 큰 뱀은 야광주 두 개를 뱉어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주면 용이 될 수 있지. 너는 연꽃과 야광주를 가지면 신녀가 될 게야.”

오늘이는 돌아오는 길에 먼저 매일이를 만나서 원천강에서 들은 일을 말했다.

하지만 장상이가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

내가 데려다 드릴게요.”

매일이와 함께 길을 떠난 오늘이가 큰 뱀을 만나 원천강에서 들은 대로 말하자 뱀은 야광주 둘을 뱉어서 오늘이에게 주었다. 뱀은 곧바로 용이 되어 천둥소리를 내며 승천했다. 다시 연꽃나무를 만나서 답을 전해 주자, 연꽃나무는 윗가지 꽃을 꺾어 오늘이에게 주었다. 그러자 가지마다 고운 꽃이 피어나 고운 향기를 내뿜었다. 다음에 장상이한테로 가서 매일이와 서로 만나게 하니 두 사람은 부부가 되어 만년 영화를 누리게 되었다.

오늘이는 백씨부인을 만나 야광주 하나를 드린 뒤 옥황 신녀가 되어서 인간 세상 곳곳을 다니며 원천강 조화를 전해 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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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덧붙여 신동흔 샘이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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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천강본풀이>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가 근래 들어 큰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된 신화입니다. 한 폭의 그림 동화 느낌을 주는 아련한 이야기지요. 하지만 단순하고 소박한 이야기는 아니에요. 세상이란 어떠한 곳이며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일인지를 저 밑바탕으로부터 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신화입니다.

이야기 속 오늘이 모습에서 어떤 느낌을 받았을지 궁금합니다.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어린 소녀가 홀로 살았던 곳이 적막한 들이라는 사실이 마음을 싸하게 합니다. 부모도 친구도 없이 넓고 황량한 들판에서 혼자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세상에 자기가 왜 생겨났는지, 어디 가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두루 아득했을 거예요.

이 세상에서 무엇을 어찌해야 하는지 모르는 채 방황하는 존재는 오늘이만이 아니었어요. 벌을 서는 것처럼 책만 읽고 있는 장상이와 매일이도 슬픈 사람들이었지요. 꽃이 제대로 피어나지 않아서 고민하는 연꽃나무도, 아무리 애써도 용이 되지 못해 바닥을 구르는 큰뱀, 고향으로 돌아갈 수가 없어 울고 있는 선녀들도 다 외롭고 힘든 존재였습니다. ‘나는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걸까?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지?’ 만약 여러분이 이런 고민을 해 본 적이 있다면 저들의 모습이 남의 일로 여겨지지 않을 거예요.

이들 가운데 오늘이는 좀 특별했어요. 다들 그 자리에 머물러 고민할 때에 오늘이는 답을 찾아 길을 떠나지요. 여기서 부모님을 찾아가는 일은 제 존재의 뿌리를 찾아가는 일과 같아요. 부모님이 있어야 자기가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쉽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오늘이는 마침내 부모님을 만납니다. 거기서 오늘이는 답을 찾은 걸까요? 적막한 들의 외로운 삶에서 벗어나게 된 걸까요?

이야기를 보면 장상이 매일이와 선녀, 연꽃나무, 큰뱀 등은 답을 찾아서 문제를 해결한 것 같은데 오늘이는 명확해 보이지 않아요. 부모님을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원천강을 구경했다는 내용뿐이지요. 그러고는 다시 돌아왔다고 해요. 고생 끝에 힘들게 만난 부모님인데 그렇게 금세 헤어지다니, 좀 이해가 안 가기도 합니다. “다시는 헤어지지 말아요!” 이러면서 매달리는 게 맞을 것 같은데 말이에요.

이야기로 돌아가서 오늘이와 부모가 만나는 장면을 보면, 부모님은 오늘이한테 이렇게 말합니다. “항상 네가 하는 일을 보면서 너를 보호하고 있었다고요. 비록 몸이 곁에 없고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부모님은 늘 오늘이와 함께였다는 말이에요. 얼핏 보면 엉뚱한 말 같지만, 잘 생각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오늘이가 가진 것들, 그러니까 눈 코 입이나 팔다리, 감각과 판단력 같은 것이 다 부모한테서 온 것이지요. 그 힘으로 오늘이는 적막한 들에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고요. 오늘이를 보살폈다는 학은 오늘이가 부모한테 받은 능력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늘 부모님이 함께였다는 말, 꼭 맞지 않나요? 생각하면 부모님만이 아닙니다. 오늘이가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준 햇빛과 바람과 물과 열매와 풀……. 그 모든 것들이 늘 함께였지요. ‘적막한 들이라고 했지만 이 세상은 충만한 들이고 생명의 들이었던 거예요.

그 이치가 장상이와 매일이, 연꽃나무와 큰뱀 등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눈앞의 자기 자신만 보고 있을 때 그들은 외로운 존재이고 세상은 적막한 곳이었지요. 하지만 옆에 있는 다른 생명과 마음을 나누고 삶을 나누자 그 자신 환하게 빛나는 존재가 되고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 됩니다. 사실은 그것이 본모습이었지요.

이야기는 이 모든 답이 있는 곳이 원천강이었다고 말합니다. 이름도 독특한데 그 풍경은 더욱 특별해요. 춘하추동 사계절이 한데 모여 있다니 정말로 신기합니다. 사계절이 함께 모인 모습이란 어떠할까요? 무지개떡처럼 나란히 모여 있을까요, 색색의 꽃다발처럼 어울려 있을까요, 아니면 한데 뒤섞여서 자꾸 변하고 있을까요? 할 수만 있다면 꼭 찾아가서 동영상으로 촬영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건 한 가지 비밀인데요. 원천강을 찾아가는 일은 정말로 불가능할까요? 사계절이 한데 모여 있다는 원천강은 어쩌면 이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지도 몰라요. 그것도 아주 가까운 곳에 말이에요. 한번 창밖의 들을 한번 내다보세요. 어때요. 거기 사계절이 함께 있지 않나요? 저 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겪으면서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씨를 맺고 땅에 묻히고 또 싹이 나고 꽃이 피는 역사를 펼쳐 냈으니 그 안에 사계절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우리의 몸과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안에 지난 사계절의 경험과 느낌과 추억이 다 깃들어 있으니 그 또한 하나의 원천강이라고 할 만합니다.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사계절의 준비도 우리 몸과 마음은 이미 하고 있는 중이지요. ‘에 갇힐 때 사람은 외롭고 무력하지만, ‘우리를 향해 활짝 열릴 때 사람은 무한하고 영원한 존재가 됩니다. 고독한 소녀 오늘이와 하늘 선녀 오늘이의 차이이지요. 오늘이가 사람들한테 전해 준다는 원천강 조화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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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가 <아픔의 기록>에 쓴 '길 안내'

자꾸 읽어 보면 시라는 게 그림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이 대목이 자꾸 끌린다.

"시는 사실(事實앞에서 무력하다무력하지만 인내력을 잃은 채 무력한 것은 아니다모든 것이 시에 저항하기 때문이다시는 결과에 어울리는 이름을 찾지결정에 어울리는 이름을 찾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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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의 기록>(존 버거) 시 소묘 사진 1956-1996

_ 존 버거

 

길 안내

 

열두 살 때부터 시를 썼다, 무엇이든 다른 것을 할 수가 없을 때면. 시는 무력감에서 탄생한다. 그러므로 시의 힘은 무력감에서 나온다.

 

모터사이클을 모는 일과 정반대의 위치에 놓이는 것이 시를 쓰는 일이다. 모터사이클을 모는 동안 우리는 우리가 접하는 주변의 모든 사실과 빠른 속도로 타협한다. 몸과 기계는 나아갈 길을 찾는 눈을 따른다. 냉정함을 잃지 않은 채. 자유롭다는 우리의 느낌은 결정을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극히 짧다는 사실에서 온다. 그리고 어떤 저항이나 지연이 있게 되면 우리는 이를 비스듬히 비껴 가는 반동(反動)의 계기로 이용한다.

모터사이클을 몰 때, 삶을 계속 이어 가고자 한다면 거기에 있는 것 이외에 어느 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시는 사실(事實) 앞에서 무력하다. 무력하지만 인내력을 잃은 채 무력한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시에 저항하기 때문이다. 시는 결과에 어울리는 이름을 찾지, 결정에 어울리는 이름을 찾지 않는다.

 

시를 쓰는 동안 우리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을 제외한 모든 것에 귀를 기울인다. , 벗어 던진 신발, 그리고 머리 빗는 솔처럼, 시는 거기에 없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니, 더 적절하게 말하자면, 우리 앞에 없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 세기 전 스페인 북서쪽에 있는 갈리시아인들의 마을 베탄소스(Betanzos) 이곳저곳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이 플로리다, 쿠바, 중앙아메리카로 이민을 떠났다. 그래서 베탄소스라는 이름은 그들에게 내면화되어 있다. 내가 그리는 그림에다 계속 이 단어를 써 넣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모터사이클을 모는 사람은 바람을 누비듯 앞으로 나아가고, 시는 그 반대 방향에서 다가온다. 하지만 그들이 서로를 지나칠 때 둘 사이에 때로 함께 나누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베탄소스와 같은 이름이 의미하는 바에 대한 똑같은 연민의 마음이다. 그리하여 거기에 내 사랑이, 똑같은 사랑이.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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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이도 안 되는 듯한데 책방은 늘어나나 보다. 왜일까? 그 흐름에 어떤 굶주림이 있을까 궁금하다. 암튼! 이 대열에 끼는 것은 아니지만, 책을 매개로하는 어떤 공간을 만든다면 좋겠다. 그래도 책이 중심!!!

여기에 일도 하면서! 지금 일하는 곳에서든 한 발 걸치고 있는 곳에서든 내가 그리고 우리(누구랑?)가 품고 있는 현재와 미래를 담은 그림을 '재미나게' 실현해 보는 공간은 있어야겠다. 이왕 하려면 재미지게!

평화를 가져오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어야 하듯, 나 자신이 문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어쨌든! 이런 일은 마음과 뜻과 꿈이 맞는 사람이 손잡아야 하지 않을까? 손을 내밀게 잡아줄래?^^ 꼬옥 잡아주길 바라~~~

수지타산으로만 따지면 문을 닫아야 할 테니, 비빌 언덕이 있어야겠다. 또 서로 비빌 사람도 있어야겠고. 끊임없이 채워줄 콘텐츠도 있어야겠고. 저성장, 아니 비성장 시대에 맞게 가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농과 이어지는 무엇이어야겠고. 

일단 이 공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책 읽고, 만화도 보고, 아이들과 게임처럼 토론하고, 음악 듣고, 술도 걸치고, 영화도 보고, 그냥 좋아하는 사람 그저 쳐다보고, 끌리는 사람 얘기도 듣고, 온갖 수작(손으로 할 수 있는 건 '거의' 다! 뜨개질, 바느질, 목공, 조각, 카빙, 또 뭐가 있을까? )도 부리고, 그냥 수다도 떨고, 글도 쓰고, 책도 만들고, 그림도 그리고, 요가도 하고, 명상도 하고, 커피도 내리고, 차도 우리고....

아... 욕심이 많다. 다시 생각해 보자! 어쩌면 문화도 '미니멀'해야 하지 않을까? (한국에서 미니멀 라이프는 변태처럼 변질된 것 같다. 바뀐 것 같다는 표현보다는 변질이 더 어울려 보인다. 왠지 몰라도!) 

어쩌면 배가 안 고프니까 이런 고민을 하는지도 모른다! 에이 C~^^ 이런 씨잘데기 없는(?) 생각이나 하니, 집에서 짤리지!ㅠ (그래도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라면 나를 자르지는 않겠지?^^ 뭔 소린지...ㅠ 정신 차려라. 막걸리 한 병으로 별 소리를 다하는구나!) 

아, 노래 연습도 해야 하고, 존 버거 스케치북 전시 보러 갈 날도 잡아야 하는데... 아니, 당장 원고부터 써야 하는데!!!!!

암튼 토요일만 기다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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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서점 한 번 내볼까” 문화계는 요즘 책방앓이


서울 용산동 책방 '고요서사'.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동네책방의 맏형이라 불리는 ‘땡스북스’로 널리 알려진 이기섭 대표는 요즘 매장이 있는 강북이 아니라 강남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냈다.

외서 전문 서점과 손잡고 서울 신사동 도산공원 일대의 핫플레이스라는 ‘퀸마마마켓’에다 1일 책방을 열기 때문이다. 기존 땡스북스의 색깔과 차별화하고, 도산공원에 둘러싸인 공간의 특징을 감안해‘PARRK’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대표는 “수익률이 낮아 서점을 찾기 힘든 강남에 도전해보고 싶었던 참에 아주 좋은 기회가 왔다”면서 “원서와 번역서를 함께 배치하는 등 홍대와는 다른, 이 동네에 어울리는 새로운 콘셉트의 서점을 시도해보겠다”고 말했다.

#팟캐스트 ‘과학하고 앉아있네’ 진행자이자 ‘이명현의 별 헤는 밤’ 같은 과학대중서를 펴내고 있는 천문학자 이명현은 12월쯤 서울 삼청동에 과학책 전문책방 ‘갈다’를 낼 예정이다. 아직 최종 낙점된 이름은 아니지만 ‘갈라파고스의 다윈’을 줄인 말이다. 이 서점은 과학을 업으로 삼고 있는 학자, 저자, 번역자 등이 주주로 참여한다. 요즘 과학대중서가 쏟아지면서 사정이 좀 나아졌다지만, 과학책 시장은 흔히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 모두 ‘소수 정예’라 불린다. ‘소수’이니 대박 날 일은 없을 지 몰라도 ‘정예’들이 모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주 재미있는 실험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문화계는 지금 ‘책방 앓이’ 중이다. “문화 쪽에 관심 있고,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들의 관심이 커피, 와인, 음악 같은 것에서 지금은 완전히 ‘책방’쪽으로 넘어왔어요.” 출판사 마음산책 정은숙 대표의 달뜬 목소리다. 정 대표는 ‘탐방서점’을 낸 서평가 금정연, 소설가 김중혁과 함께 한 때 동네책방 전도사였던 적이 있었다. 그는 “모였다 하면 누군가 ‘이런 콘셉트의 책방 한번 해볼까’는 제안을 내놓고, 호기심에 찾아보면 비슷한 책방이 이미 있을 정도로 요즘 최고의 문화 트렌드는 책방”이라고 말했다. 사람들 관심도 많다. 블로그나 SNS에도 인증샷이 넘쳐난다.

서울 신촌의 동네책방 '위트앤시니컬'.

책방이 ‘핫 아이템’으로 떠오른 배경은 여러 가지다. 교육수준, 소득수준에 따라 다양한 문화적 욕구가 일고 있다. 서점은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집객 효과’가 있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적 욕구가 분출되는 장에서 한 축을 담당할 수 있다. 책 본다는 데 뭐라 그럴 사람은 없다. 제일기획 부사장을 지낸 최인아씨의 ‘최인아책방’에서 연예인 노홍철의 ‘철든 책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이 책방을 내면서 ‘화제성’도 극대화됐다. 도서정가제 영향도 있다. 가격할인폭이 제한되면서 대형서점의 마케팅 파워가 상대적으로 제한됐다. 개성과 색깔을 지닌 동네서점이 널리 퍼져나갈 여지가 생긴 셈이다. 대형서점들로서도 뭔가 색다른 매력을 내놔야 할 시점이 됐다.

책방의 변신을 대중들에게 가장 널리 각인시킨 건 교보문고 광화문점의 전면 리뉴얼이다. 의자를 늘리고 아늑하게 만들었다. 영풍문고도 9월 종각점을 새 단장했다. 동네책방들은 훨씬 더 자유롭다. 커피나 술을 내놓기도 하고, 낭독회나 콘서트 같은 문화행사도 기획한다. 수입원을 책 판매 이외 영역으로 분산해 지속가능성을 끌어올리면서도, 책 이외에 다양한 경험까지 함께 제공하는 ‘복합문화공간’처럼 운영하는 것이다.

서울 이태원의 동네책방 '다시서점'의 내부.

서울 논현동의 북티크는‘심야서점’을 열어 밤새 책만 읽는다. 염리동 ‘퇴근길 책 한잔’은 제목 그대로 책과 술을 함께한다. 지난 추석 때 “명절날 친척 잔소리를 피해 책방으로 대피하라”는 이벤트도 벌였다. 충북 괴산의 ‘숲속의 작은 책방’은 무조건 책 1권씩을 강매한다. 유희경 시인의 시집 전문 서점으로 널리 알려진 신촌의 ‘위트 앤 시니컬’은 LP판 등 음악 관련 콘텐츠를 다루는 공간 ‘프렌테’와 카페 ‘파스텔’이 한 공간에 있다. 시집 보러 왔다 차 마시고, 그러다 음악도 듣고 가라는 얘기다. ‘다시서점’은 저녁마다 술집 ‘초능력’으로 변신한다. 북바이북, 일단멈춤, 도어북스, 스토리지북앤필름, 봄날의 책방, 책방 만일 등 이런 콘셉트로 화제에 오른 책방들은 인터넷 등에서 검색해보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덕분에 서점의 감소세에 제동이 걸렸다. 한국서점조합회가 2년마다 내는 한국서점편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서점은 1,559개. 서점이 계속 없어지고는 있지만, 감소폭이 7.2%에서 4.1%로 줄었다. 50~100평 중형 규모의 서점은 서점들의 전반적인 감소세에도 불구하고 2009년 317개에서 2015년 346개로 소폭 늘기도 했다.

‘고요서사’의 내부.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책방앓이’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한가지 의문이 남는다. 그래서 책은 좀 더 팔리고 있는 걸까. 이 대목은 아직 고개를 끄덕이기 힘들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매장 리뉴얼이 “침체된 분위기를 쇄신하는데 큰 도움은 됐지만 수익으로 연결됐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한 동네책방 관계자도 “화제가 됐다지만 월말 결산해보면 있는 돈 까먹는 달이 더 많고, 남아봤자 몇 만원 정도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귀띔했다.

SNS족의 배경화면으로 관광지처럼 소비되다 보니 동네책방인데 정작 ‘동네’와 ‘책’은 들러리를 서고 있다는 한탄도 나온다. 한 동네책방 주인은 “서점인데 카페 같은 분위기다 보니 동네책방을 가볍게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면서 “다른 서점에서 안 할 행동이라면 동네책방에서도 안 하는 게 맞다”고 꼬집기도 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지금 책방 열풍의 핵심은 ‘취향과 가치의 공동체’를 만들어내려는 것”이라면서 “책방을 찾는 고객들도 책방과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는가라는 ‘관계’에 대한 고민을 한 뒤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책방앓이’의 힘은 아날로그적인 그 무엇을 찾는 이들간에 흐르는,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하는 이들 간에 흐르는, 묘한 공범의식에서 나온다. 개점 한 달을 맞은 최인아책방의 최인아 대표는 “직장보다 더 어렵고 스트레스를 받긴 하지만 강남에 책방 내줘서 고맙다는 너무 많은 응원이 있어서 나 스스로 고무되어 있다”고 말했다. “가끔 어떤 시집을, 그냥 인터넷에서 주문해서 사도 되는데, 이 책만큼은 이 책방에서 꼭 사야만 할 것 같아서 왔다는 분들이 계세요. 책은 어디서 사나 그냥 다 똑 같은 책일 뿐인데 말이지요. 참 고맙고도 신기한 경험인데, 그게 책방을 하는 맛이지요.” 차경희 고요서사 대표의 말이다. 그 덕에 아직은 주변사람이 책방을 하고 싶다면 굳이 말리고 싶지 않다고도 했다. 그는 “매운 맛(?)을 덜 봐서 그렇겠죠”라며 웃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변해림 인턴기자

서울 마포 책방 '만일'.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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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남쪽에서 좋은 벗과 이런 비슷한 공간을 마련하면 좋겠다.

헌책도 새책도, 차도 담소도, 온갖 손작업도... 있는 그런...


기자가 몇 군데 책 제목을 잘못 쓴 게 있어서 바로잡았다.

보관 겸 공유를 위해 여기 옮겨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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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도, 신간도 없는 

강남 한복판 4층 ‘최인아책방’의 실험

글 | 김민희 주간조선 기자




▲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차장
고층빌딩이 즐비한 서울지하철 선릉역 7번 출구를 나와 걷다 보면 의외의 간판을 만난다. 가로 세로 1m×1m가 되지 않는 작은 초록색 간판. 간판에는 보일락 말락 작은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다. ‘최인아책방’.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에 내려 작은 문을 열면 탁 트인 공간이 나타난다. 5000여권의 장서가 꽂혀 있는 이곳은 서점보다 도서관에 가깝다. 강남 한복판, 그것도 4층에 이런 공간이 숨어 있을 줄이야.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주인공 센의 기분이 이러했을까. 작은 터널을 통과해 제3의 세계를 만나듯 작은 문 하나를 열자마자 펼쳐진 의외의 광경에 잠시 멍했다.

이곳의 주인은 제일기획 부사장 출신 최인아씨.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광고계의 전설이다. 삼성그룹 최초의 공채 출신 여성 임원으로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라는 카피를 썼다. 최씨는 한창 잘나가던 3년 전 퇴사했다. 그간 산티아고 여행을 다녀오고 책을 지독하게 읽으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다가 지난 8월 중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책방을 열었다. 광고계 후배 정치헌씨와 함께 열었는데, 책방 이름은 정씨가 정했다고 한다.

스마트폰에 밀려 책을 읽지 않는 시대, 서점의 몰락이 기정사실처럼 여겨지는 시대, 최씨의 행보는 대담하다. 최씨는 책방을 열면서 ‘책방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고 했다. 최인아책방의 성공 여부는 출판계에서도 초미의 관심사라고 한다. 책방 오픈 50여일이 지난 시점, 과연 성적표는 어떨까. 지난 10월 10일 오후 최인아책방에서 최인아씨를 만났다. 자분자분 답하는 그의 말에는 묘한 힘이 있었다.

“50여일이 지난 시점에서 성과를 말하기 조심스럽다. 하루하루 (매출이) 다르다. 어떤 날은 확 올라가는데 어떤 날은 확 떨어진다. 그런데 기본은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주변에서는 이 정도면 선방했다고 하더라.”

그가 처음 이곳에 책방을 열겠다고 하자 하나같이 반대했다. 책방이라는 아이템에서 한 번, 강남 한복판이라는 데에서 또 한 번, 4층이라는 데에서 연거푸 “안 된다”는 소리를 귀가 아프도록 들었다. 이유도 다양했다. 젊은 나이도 아니니 만회할 기회가 없다는 이유에서부터 입지가 안 좋다, 4층은 또 웬말이냐는 말을 들었다. “이곳에 이 규모로 책방을 연다고 하니까 독지가가 있냐, 건물주냐고 묻더라. 언제부턴가는 책방을 연다는 말을 아예 안 했다. 내가 흔들릴까봐. 다들 안 된다고 하길래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러면 안 할 건가’ 하고. 잘하면 망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고, 잘되도록 하는 데 힘을 쏟았다.”

최인아책방은 우려와는 달리 강남의 ‘핫’한 공간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모양새다. 공간의 의미와 책방 주인의 메시지를 읽은 사람들은 빈손으로 나가지 않는다. 최씨의 말마따나 ‘기본은 하는’ 책방으로 자리 잡은 것은 이런 고객들의 힘이다. 다녀간 고객들은 “이런 공간을 만들어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남긴다. 예상치 못한 팬층이 또 있다. 바로 동네 주민들이다. “일하는 사람들, 광고하는 사람들의 동선을 생각해서 이곳에 책방을 만들었다. 그런데 뜻밖에 인근 주민들이 많이 오신다. 연배가 좀 있으신 분들이 오셔서 술집이 즐비한 환락가에 이런 공간을 만들어줘서 고맙다며, 잘 운영해서 제발 오래오래 하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 최인아책방에는 지인 150여명에게서 추천받은 책 1600여권이 꽂혀 있다.

광고도 책방 운영도 생각하는 일

최인아씨가 모두가 뜯어말리는 책방을 굳이 연 것은 ‘좋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좋은 일’은 두 가지 차원이다. 하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 또 하나는 세상에 도움이 되는 좋은 일. “앞 단계에서 치열하게 살았고, 성취도 할 만큼 했다. 인생 2막의 우선순위는 달라야 한다고 봤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면서 기왕이면 공동체에도 이익이 되는 일이길 바랐다. 책에서 교집합을 찾았다. 광고도, 책방 운영도 생각하는 일이다. 광고는 기업이나 공동체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을 때 아이디어를 빌려 해법을 찾는 것이고, 책방도 어떤 책을 얼굴로 내세울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어떻게 알리고, 이 책이 어떤 의미를 줄지 생각하는 일이다. 다행히 사람들이 와 보고 새롭다는 말을 많이 한다.”

최인아책방은 기존 서점과는 여러모로 다르다. 베스트셀러나 신간이 거의 없다. 경제, 문학, 에세이같이 분야별로 전시돼 있지도 않다. 책방의 3분의 1에 달하는 1600여권의 책은 지인들의 추천서로 채웠다. 그 책들은 열두 개의 테마로 나눠 진열돼 있다. ‘무슨 책부터 읽어야 할지 고민인 그대에게’ ‘우리 사회가 나아지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이 깊어지는 마흔 살’ ‘서른 넘어 사춘기를 겪는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등. 이 테마 책장에는 한 권 한 권마다 추천인의 ‘북카드’가 꽂혀 있다. 책 추천 이유와 추천인의 간단한 프로필을 손글씨로 쓴 카드다. 바로 이 ‘북카드’가 최인아책방의 트레이드마크이자 책을 사게 하는 힘이다.

“사람들은 어떨 때 책을 찾아볼까? 고민이 있거나 새로운 과제와 맞닥뜨렸을 때가 대표적이다. 누구나 살면서 마주함 직한 질문을 12가지 뽑고, 지인들을 총동원해서 추천서 목록을 받았다. 그 요청이 지독했다. 두 가지 질문을 보냈다. ‘① ‘인생의 책’ 열 권을 꼽고 왜 좋았는지 말해 달라, ② 12개 주제 중 당신에게 의미 있는 주제 세 가지를 뽑은 후 각 질문마다 세 권의 책을 선정, 왜 좋았는지 말해 달라.’ 내가 낸 숙제에 제대로 답변한 사람은 19권의 책을 추천한 거다.”

최씨는 지인 220명에게 ‘숙제’를 내줬고, 그중 150명으로부터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숙제를 내주면서 무리한 부탁을 한 것 같아 미안했는데, 오히려 숙제를 제출한 지인들이 더 고마워했다고. 지인들은 “스무 살, 서른 살, 마흔 살에 읽은 책이 다 다르더라. 나의 20년 인생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됐다”는 소감을 남겼다고 한다. 인터넷에도 엇비슷한 책 추천 앱이 있지만 대부분 익명이다. 이 북카드는 실명이다. 고객 입장에서는 추천인을 만난 적은 없지만 실명이고, 연배도 비슷하고,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람들 마음을 움직인다.

최씨의 생각은 통했다. 실제로 고객들은 북카드가 꽂혀 있는 책들을 많이 산다고 한다. 실제로 이날 고객들의 동선을 봐도 그랬다. 전체 책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북카드 서가 앞에 고객들의 발걸음이 많이 머물렀다. 고객들은 북카드를 책보다 더 관심 깊게 읽고 있었고, 그 북카드만 읽고 책을 빼들어 구입하기도 했다. 최씨는 “북카드는 책과 고객을 연결해주는 보이지 않는 끈”이라며 “누군가를 책까지 데려가는 경로를 디자인했다고 말하고 싶다”고 표현했다.

최씨의 지인들이 가장 많이 추천을 한 책은 1위가 ‘그리스인 조르바’. 2위는 ‘코스모스’였고, 위화의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도 많이 추천받았다. 

책 매대의 카테고리도 재밌다. ‘쟁이들은 어떤 책을 사랑하는가’에는 ‘축적의 시간’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로페셔널의 조건’ 등이, ‘세상의 큰 흐름’에는 ‘오가닉 미디어’ ‘오가닉 비즈니스’ ‘일본 디플레이션의 진실’ ‘소유의 종말’ ‘인공지능 시대의 삶’ 등이,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하면 잘 보낼까’에는 ‘와일드’ ‘신과 인간에 대하여’ ‘중년의 배신’ ‘긍정의 배신’ 등이 진열돼 있다. “‘요즘 재미가 부족한 당신에게’ 매대에 이문구 작가의 ‘우리 동네’ ‘나는 너무 오래 앉아 있거나 서 있었다’를 진열해 놓았다. 개그콘서트 유의 재미만 있다고 생각하는 젊은 사람들한테 ‘이런 재미도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정말로 나는 그 책을 읽으면서 참을 수 없을 만큼 계속 깔깔거렸다.”

최씨가 추천한 이문구 작가의 책 두 권은 금세 최인아책방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이 책방의 최근 한 달간 베스트셀러 1·2위는 ‘오가닉 미디어’와 ‘오가닉 비즈니스’. 둘 다 최씨가 ‘세상의 큰 흐름’ 매대의 중앙에 놓은 책이다. 최인아씨의 힘이다. 최씨는 “직장인이 많아서 디지털시대, 저성장시대 비즈니스에 관심을 뒀다”며 “단순히 ‘디지털’이라는 키워드로 뽑기보다 세상의 큰 흐름 속에서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될까’라는 방향성을 품고 책을 선정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 복층으로 된 최인아책방에서는 클래식 공연, 강연회도 연다. / photo by 이경호 영상미디어 차장

‘최인아’ 브랜드의 힘

사람들은 ‘최인아’를 하나의 브랜드로 인식하고 있었다. 실제로 이곳을 찾는 고객의 상당수는 ‘최인아씨가 과연 어떤 책방을 만들었을까’ ‘최인아씨는 어떤 책을 추천할까’가 궁금해서 온다. 그를 만나고 싶어서 먼 거리에서 찾아오는 고객도 꽤 있고, 구입한 책에 사인을 해달라는 고객도 있다. 최씨는 거의 책방을 지키면서 자신을 믿고 찾아오는 이들을 맞는다. “책방 주인의 사인이라니, 재밌지 않나. 요즘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여쭤 보고 거기에 맞춰 응원의 메시지를 써준다. ‘최인아 드림’ 하려다가 내가 드리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최인아책방’이라고 사인했다. 어제는 나처럼 하던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는 분이 사인을 요청했다. ‘응원합니다’라는 메시지의 사인을 했다.”

최인아책방 매대에는 책이 듬성듬성 놓여 있다. 하도 듬성듬성 놓여 책상인지 매대인지 헷갈릴 정도다. 틈 없이 빼곡하게 쌓여 있는 대형 서점과 비교된다. “처음엔 빽빽하게 놓아 봤다.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 ‘~다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빽빽하게 쌓아 놓는 건 우리답지 않다고 여겼다. (동업인 정치헌씨와) 한 번도 ‘우리(최인아책방)다움’에 대한 구체적인 언어를 나눈 적은 없지만 느끼는 바가 있었던 거다.”

최인아씨가 오랫동안 천착해온 주제는 ‘시간’이다. 그는 ‘알랭 드 보통 인생학교 서울’에서 ‘혼자 있는 시간 잘 지내는 법’을 주제로 강연을 해왔다. 최씨는 ‘시간’의 짝패로 ‘공간’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 이 책방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공간이 주는 매력이다. 이 공간은 책방의 기능에 그치지 않는다. 클래식 공연을 열고 강연도 연다. 최인아씨가 직접 강사로 나서기도 한다.

“온라인, 모바일 시대일수록 이런 공간이 더 필요하다고 본다. 어떤 인간도 온라인에서만도, 오프라인에서만도 존재하지 않는다. 온라인에서 시간을 오래 보낼수록 오프라인에 대한 필요성이 커질 거다. 아마존이 오프라인 서점을 다시 오픈한 것도 이 맥락이라고 본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태생 자체가 개별자인 동시에 사회적 동물이다. 사람들에게 시달릴수록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데, 반면 혼자만 있으면 사람들이 그리워진다. 균형감이 필요하다는 거다. 이 현상이 이 디지털과 오프라인에도 나타난다. 사람들과 부대끼는 시간도 필요하고, 모든 정보와 지식을 품은 디지털을 무시할 수도 없고. 이 둘의 밸런스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공간에 대한 필요성이 커진다.”

그는 책을 신봉하면서도 “책의 힘은 약하다”고 했다. 공간의 매력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다. “사람들을 유혹하는 여가거리가 다양해졌는데, 책은 콘텐츠를 원하는 사람에게 가장 많은 수고를 요구하는 콘텐츠다. ‘책이나 보자’가 아닌 거다. 가장 집중력을 요하는 콘텐츠이기에 여타의 여가거리들에 비해 불리한 콘텐츠다. 그래서 책에까지 오게 하는 힘은 책 자체만으로는 부족하다. 공간의 매력이 대단히 중요하다.”

최인아책방은 읽고 생각하고 쉬는 공간이 많다. 얼핏 보면 북카페를 닮았다. 낮은 테이블을 둔 2인용 의자도 꽤 있고, 1층에는 20여명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2층 복층 서가에는 1인용 의자가 조르르 줄 맞춰 있다. 한데 가만히 앉아 있으면 공간이 말을 걸어오는 듯하다. ‘이곳은 책을 읽는 공간이지, 노트북 작업을 하는 공간이 아닙니다’ 하고. 최인아씨의 의도가 반영된 인테리어다. “요즘 어떤 공간이든 문 열고 들어가면 죄다 노트북 꺼내 놓고 일하는 사람이 많다. 그것만은 우리 책방에서 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책을 읽거나 생각을 하거나 뭔가를 쓰거나 하다못해 ‘멍때리는’ 공간이길 바랐다. 그래서 일부러 테이블을 작게 놓고 1인용 의자들을 놓았다.”

그에게 당면한 도전과제가 생겼다. ‘가성비’를 최우선으로 삼는 고객을 대할 때다. 그도 얌체고객들을 피해갈 수는 없다. 어떤 고객은 책의 원하는 부분만 노트북에 베껴 가고, 또 어떤 고객은 차 한 잔 시켜놓고 책을 쌓아두고 보면서 맘에 드는 페이지만 스마트폰 사진으로 찍어 간다. 심하게는 새 책에 밑줄을 벅벅 그어놓고 가 버리는 고객도 있다. 그는 ‘프로’라는 단어를 꺼냈다.


진정한 프로란?

“내가 쓴 카피 중에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가 있지 않나. ‘프로’가 뭘까. 과거에는 나를 쓸 수밖에, 나에게 일을 시킬 수밖에 없도록 뭔가를 만들어 내놓는 사람이라고 봤다. 요즘엔 프로를 ‘선한 의도로 시작했고, 선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내가 이 책방을 통해 시험에 들었다. 좋은 뜻으로 시작한 일이 정말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걸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시간이다. 가성비를 내세우는 고객은 나를 시험에 들게 한다. 그분 입장에서는 가성비가 높지만 우리 입장에서 그런 분이 많아지면 매우 어려워진다. 개인과 개인, 비즈니스와 비즈니스 간에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이득을 보는 관계는 오래가지 않는다. 본인이 여기에 와서 좋다면 왜 이런 생각을 안 할까. 어떻게 해야 우리가 뜻하는 대로 이 세상이 꾸려질까, 고민이다.”

책방을 열고 한 달 즈음에 책방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게시판이 생겼다. 최인아책방 사용설명서 격이다. 게시판 앞부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2층 서가를 제외한 모든 책이 판매용입니다. 부디 깨끗이 조심스레 다뤄주시고…’. 계획에 없던 게시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선한 의도가 선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이 공간의 힘이 선한 흐름을 새롭게 만들길 기대한다. “평소에 책을 많이 읽지 않는 사람이라도 ‘책이 있는 공간이 이렇게 좋구나’ ‘나도 책을 좋아하는구나’라고 일깨울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10년, 20년 후 내 모습? 저기(책방 코너에 있는 자신의 책상)에 여전히 앉아 있으면 좋겠다.”

인터뷰를 마치자 최인아씨를 만나고 싶어하는 고객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책방 구석구석을 둘러보다 ‘오가닉 미디어’를 샀다. 예정에 없던 책을, 그것도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을 산 건 아주 오랜만이었다.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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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북에 소개된 어느 블로그 글에서 비슷하게 옮겨 적어 보았다

만만한 일은 아닌 것 같지만....

어려서 버르장머리를 잘 들였어야 하는데....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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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읽기 전에


  1. 책을 무작정 사려 들지 마라고 한다.

      다 읽지도 않은 채 읽어야 할 책이 책장에 쌓여 있다면, 절대 책을 사지 말고, 있는 것부터 읽으란다. 

      읽기 위한 책이 아니라, 욕망을 위한 책 사기는 한순간의 유흥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더라.


  2. 읽지도 않는 책은 과감히 정리해 버리란다.

      지금껏 읽지 않은 책은 앞으로도 안 읽을 거라면서... 죽은 책을 덜어내고 책장을 가볍게 정리하는 게 좋       다고  한다. 꼭 읽을 책만 남겨두고, 우선 책장을 정리하래! 꼭 읽을 책이 좀 많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삐딱한 궁금함이 남아 있긴 하지만, 새겨는 듣기로!^^


  3. 욕심 내지 마라고 한다.

      열 권을 한 번 읽는 것보다, 책 한 권을 열 번 반복해서 읽는 것이 낫다고 한다. 읽은 책을 다시 읽어 보         면 그때마다 새로운 깨달음이 찾아올 테니, 읽은 책 권수에 집착할 게 아니라는 뜻이렷다!




- 첫 번째 읽기에서


  1. 책을 모시지 마라고!

      책은 욕망이 아니라 정신이며, 홀로 읽는 것이 아니라 저자와 대화하는 것이라고 한다. 

      읽으면서 떠오르는 느낌, 생각 들을 책에 기록하고 지나가래. 줄 긋고 포스트잇 붙이고, 접고... 

      나만의 흔적 남기기




- 두 번째 읽기에서 


  1. 두 번짹 읽을 때는 내가 남긴 흔적을 중심으로 읽으랜다.

      처음 읽을 때보다 속도감 있게 읽되 밑줄, 메모, 접은 부분에서는 천천히 내용을 곱씹어 가며 읽자~




- 또 읽을 때


  1. 머릿속에 강하게 남는 문장들을 따로 옮겨 정리해 두라고 한다.  

     밑줄 그은 내용 가운데 와 닿는 문장들을 따로 적어두면, 나만이 느낀 책의 정수를 뽑아낼 수 있단다. 아!!

     


- 읽기 위한 쓰기


  1. 필사하는 버르장머리를 들이자!

     땡기는 작가의 글은 한 주에 한 번이라도 시간을 정해서 정기적으로 책 한 권을 필사해 보란다. 

     필사는 책의 구조를 이해하고, 문장과 어휘 고유의 질감을 느끼는 데 확실한 작업이라네?! 아하!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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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부추기고자 하는 마음도 있고, 요즘 아이들과 소통하고도 싶고, 그동안 해오던 토론 모임의 연장 및 확장의 욕구도 있고.... 하여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가 동네 청소년들과 책 읽기 모임을 한번 해보고 싶어졌다.

아무래도 쉽지 않은 일일 수 있다. 일단 함께할 친구들을 찾는 것도 그렇겠고, 학교공부나 학원에 더 관심이 있을 법한 친구들이 대부분일 텐데 이런 모임에 마음이 움직일까? 


암튼 차근차근 자료도 모아 보고, 나도 공부도 좀 하면서 연말에는 윤곽을 그려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이 모임이 해오던 토론 모임의 확장이 될 수 있으면 더욱 좋겠고....


'가화'도 못 하는 주제에 이런 고민이라니.........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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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고전 읽기가 중요하다는 말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하지만 막상 읽으려고 하면 막막하기만 하다. 100권이 넘어가는 추천도서 목록에 기부터 죽는 데다 마음 먹고 책을 펼쳐도 어려운 내용에 잠이 쏟아지기 일쑤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어떻게 읽어야 할지도 잘 모른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고전을 읽는 방법들을 알고 나면 고전 읽기의 첫걸음을 좀 더 쉽게 뗄 수 있을 것이다. 







읽기 전에 관심사 파악하고 쉬운 책 먼저 읽어야

책을 고르기 전 자신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먼저 돌아보는 게 중요하다. 문학·역사·철학·과학 등 관심 분야에 맞춰 읽을 책을 선택하는 게 좋다. 관심 있는 분야라면 읽기가 좀 어렵더라도 한결 편하게 책장을 넘길 수 있다. 서울대 문용린(교육학과) 교수는 “소위 ‘필독서’라고 하는 목록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서목록을 만들라”고 말했다.

연세대 정과리(국문과) 교수는 “처음 고전을 읽는다면 오래된 작품이면서 동시에 대중성이 있는 소설을 읽는 게 실패할 확률이 낮다”고 조언했다. 소설은 줄거리가 있는 ‘이야기’다 보니 사회과학 서적에 비해 비교적 쉽게 읽힌다. 이후 교양서나 사상서 등 사회과학 서적으로 독서 영역을 넓히며 시야를 확장하자. 같은 작품이라도 청소년용으로 나온 책이 있는지 먼저 찾아보는 것도 잊지 말자.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쓰여 있고 해설도 곁들여져 있다.

책을 정했다면 이제 탐색전이다. 본격적인 독서에 앞서 읽기로 한 책에 대해 사전조사를 하자. 작가에 대한 소개, 책이 쓰인진 곳, 시대적 상황 등을 먼저 살피며 책에 대한 흥미를 높일 수 있다. 이를 통해 얻은 배경지식으로 작품을 좀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내 관심사와 맞는 책인지 확인할 수 있다.

읽어 나가며 목차 활용해 흐름을 파악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는 데 주안점을 두자. 저자가 말하고 싶은 내용과 책에서 제시하는 새로운 생각, 그에 대한 자신의 의견과 느낌만 파악해도 충분하다.

이때 목차가 유용하다. 목차는 책의 지도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이화여대 한수영(국문과) 교수는 “목차는 책 전체의 스토리를 보여 주고 각 부분의 핵심어를 알려 준다”며 “책을 읽는 도중에도 수시로 목차를 확인해 앞뒤 내용을 비교해 가며 읽는다면 큰 흐름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읽으면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은 메모해 두자. 서울 오산고 박정준 교사는 “챕터별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거나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은 표시해 두고 짤막한 이유를 함께 적어 둬라”고 조언했다. 책을 읽으며 인상 깊은 부분마다 ‘왜’ ‘어떻게’라고 자문하고, 독서가 끝난 뒤에도 답을 찾지 못했다면 인터넷과 백과사전·신문을 이용하자. 책 내용에 대해 스스로 던진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사고력과 배경지식을 키워 준다.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관심사에 맞는 책을 고른 뒤 맥락을 이해하자는 생각으로 읽어나가면 고전 읽기의 첫걸음은 한결 수월해진다. 읽을 책에 대한 사전조사도 읽기에 도움이 된다. [김진원 기자]




읽고 나서 끊임없이 ‘나’와 연관시켜 읽기

『리딩으로 리드하라』를 쓴 이지성 작가는 “고전 읽기는 책을 다 읽은 뒤 ‘생각하는 단계’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만약 논어의 한 구절을 읽었다면 먼저 공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뿐 아니라 각 제자들 입장에서, 노자나 장자 심지어 예수나 석가모니 등 다른 사상가 입장에서 끊임없이 사색해 보면서 생각의 폭을 넓혀 갈 수 있다. 

DA 300



한 교수는 “책을 한 권 읽었다는 사실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며 “자신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계속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주관적인 느낌도 중요하지만 객관적인 근거를 들어 비평해 보자. ‘이 작품은 이런 이유로 탁월하다’는 식이다. 상상력을 발휘해 내가 사는 사회와 연결시켜 보자. ‘고리타분한 이야기’거나 ‘남의 이야기’가 아닌 ‘살아 있는 내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회과학 서적은 지금 발생하는 사건이나 사회 문제들과 연관 지어 볼 수 있으며 인물평전의 경우 자신이 살아오면서 겪은 경험과 연결해 볼 수 있다. 이런 활동을 토대로 글을 쓰면 자연스럽게 깊이가 더해진다. 이때 찾은 관련 자료나 신문기사도 함께 모아 두자. 일련의 활동을 차곡차곡 기록해 두면 나만의 특별한 독서 포트폴리오가 된다. 

[출처: 중앙일보] [인문고전 읽기] 소설로 시작하면 부담 적어요, 청소년용은 이해하기 쉽죠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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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그리고 깊게 우리와 지구를 바라보고, 그 안에서 나는 어디에 있을까....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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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지금 출판계의 화두는 ‘문명史’

중력파ㆍ인공지능 잇단 조명에

‘사피엔스’ 계기로 관심 높아져

베스트셀러 ‘총 균 쇠’는 물론

‘더 타임스 세계사’ 등 인기

“스토리텔링 측면에서 단연 압도적인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출판 위기라는 상황 속에서 특히나 눈 여겨 볼만한, 하나의 모델 같은 책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26일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김영사) 인기 비결을 이렇게 설명했다.

‘사피엔스’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하라리의 ‘글빨’이다. 새로운 정보, 대담한 이론 쪽보다는 적절한 비유, 유려한 문체, 간간이 섞여 든 유머가 더 빛나는 책이다. 후일담이지만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는 ‘사피엔스’가 국내에 소개된다는 소식을 듣고 이미 성공을 예감했다. 몇 년 전 이스라엘 방문 중 현지 미용실을 찾았는데 미용실 주인이 ‘사피엔스’를 재밌게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진입장벽이 낮은 책이다.

‘사피엔스’를 계기로 문명사 책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빅데이터, 중력파, 인공지능(AI) 같은 얘기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인류 문명 차원에서의 호기심이 폭발하고 있어서다.

문명사라면 누가 뭐래도 1순위로 꼽히는 책은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문학사상사)다. 1977년 미국에서 나왔으나 국내엔 1990년대에 소개됐다. 그 때만 해도 알음알음 알려진 수준이었는데, 2000년대 들어 서울대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대출된 책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판매가 늘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인간의 분투보다는 환경의 차이가 역사적 차이를 낳는데 더 큰 영향을 끼쳤다는 관점을 담고 있다. 지금까지 30만부 정도 팔렸다.

또 손꼽히는 역작으로는 세계적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의 ‘축의 시대’(교양인), 인지과학자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사이언스북스)가 있다. 암스트롱은 신화, 이성, 문명이 폭발하던 기원전 시기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고, 핑커는 인간 마음의 진화 과정을 통찰한 뒤 문명사적 책으로는 드물게 인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제시했다.

고고학자 이언 모리스의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글항아리)도 빼놓을 수 없다. 문명사가 대체로 문명간 우열 도식에 빠져들 위험을 피하기 위해 ‘동서양 문명에 별 차이가 없다’는 전제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무척 애쓴다면, 이 책은 제목에서 보듯 아예 지금 현재는 명백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까발리고 시작하는 독특한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모리스는 정통 고고학자이기에 고고학 자료가 아주 풍부하다.

이외에 ‘말 바퀴 언어’(에코리브르) ‘탄소문명’(까치) ‘시간의 지도’(심산) 등이 명작으로 꼽힌다. 이런 책들은 ‘사피엔스’와 같은 대중성은 조금 떨어지지만, 대개 몇 년간에 걸쳐 꾸준히 팔리면서 1만권 이상 나가는 스테디셀러로 분류된다.

이런 흐름은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100여명에 이르는 전문가들의 협업이 빛나는 ‘더 타임스 세계사’(예경), 캘리포니아 학파의 대표선수라 할 수 있는 케네스 포메란츠의 ‘대분기’(에코리브르)가 대표적이다.

대작만 있는 건 아니다. 얇은 책으로는 인공지능을 키워드로 과학과 인문학을 합친 ‘김대식의 인간 vs 기계’(동아시아), 대륙 문명 베헤모스와 해양 문명 리바이어던 간 대결로 세계사를 설명한 칼 슈미트의 ‘땅과 바다’(꾸리에), 지리적 차이의 영향력에 주목한 다이아몬드의 또 다른 책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나와 세계’(김영사) 등도 잇달아 나왔다.

‘더 타임스 세계사’를 낸 예경의 김지은 편집자는 “이런 책들은 한 권 분량으로 고대에서 현대까지 인간 문명의 모든 장면을 다 담아냈다는 점이 매력”이라면서 “출간 초기 주문량을 따라가지 못해 책이 없어 못 팔 정도였다”고 말했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는 “초창기와 달리 지금은 문명사 책이 어느 정도 소개된 단계여서 단순히 거시적 시각을 갖추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책만의 독특한 시각을 전달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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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감으로도 좋겠다.

이런 걸 소재로 한 이야기도 재밌을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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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아이는 파란색, 여자 아이는 분홍색? 언제부터 그랬을까?

2015년 9월 10일  |  By:   |  문화  |  댓글이 없습니다

루즈벨트(F.D.R.) 전 미국 대통령의 세 살적 모습을 찍은 사진입니다. 하얀 치마에 깃털 달린 모자를 꼭 움켜쥔 손과 어깨까지 내려오는 단발보다 더 긴 머리, 애나멜가죽으로 댄 구두까지 지금 기준에서 보면 어여쁜 여자 아이 같습니다. 분명 지금 기준에서 보면 남자 아이에게 왜 저렇게 옷을 입혔을까 의아할 수 있지만, 사진이 찍힌 1884년 기준에서 보면 지극히 평범한,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옷차림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남자 아이든 여자 아이든 일고여덟 살 때까지 치마를 입혔고, 머리도 자르지 않았습니다. 사진 속 루즈벨트의 옷차림은 당시에는 아주 흔했던 중성적인(gender-neutral) 아이 옷차림입니다.

“지금 우리는 아이를 보고 한 눈에 성별을 구분해야만 하는 세상에 살고 있어요. 아직 머리숱이 거의 없는 아기의 머리에도 굳이 분홍색 헤어밴드를 씌우고, 사람들은 또 그걸 보고 아이가 여자 아이라고 짐작하잖아요.”

<분홍과 파랑: 여자 아이와 남자 아이를 분간해내는 미국(Pink and Blue: Telling the Girls From the Boys in America)>이란 책의 저자 메릴랜드대학교의 역사학자 파올레티(Jo B. Paoletti) 교수의 말입니다. 파올레티 교수는 30년 동안 아기와 어린이의 옷차림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루즈벨트의 사진이 찍힌 시점부터 오늘날까지 130여 년은 길다면 긴, 하지만 짧다면 짧은 기간인데, 그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걸까요? 우리는 언제부터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의 옷을 색깔별로 구분해서 입혔을까요?

파올레티 교수는 중성적인 옷차림의 소멸 과정을 살펴보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수세기 동안 아이들은 일곱 살 정도가 될 때까지 (남녀 가리지 않고) 하얀색 치마를 입었습니다. 여기에는 상당히 실용적인 이유가 있는데, 흰 옷감은 때가 타고 더러운 것이 묻어도 다시 표백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다 보니 하얀 옷을 입히지 않으면 부모들이 잘못이라고 느낄 정도로 오랫동안 어린이에겐 하얀 옷을 입히는 게 사실상의 규범이었습니다.”

성별에 따라 다른 색깔, 다른 종류의 옷을 입히는 건 하루아침에 나타난 트렌드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서서히 굳어진 관행이라고 보기도 어렵긴 합니다. 우선 19세기 중반쯤 사람들은 아이 옷에 색깔을 넣기 시작합니다. 분홍색, 파란색을 비롯해 여러 색깔이 선을 보였죠. 하지만 그저 옷 색깔이 다양해졌을 뿐,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도 특정 색상이 성별과 관련이 있다고 여겨진 건 아닙니다. 1918년, 지금으로 치면 일종의 어린이 패션 잡지라고 할 수 있는 <Earnshaw’s Infants’ Department>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분홍색은 남자 아이에게 어울리고, 파란색은 여자 아이에게 어울리는 색깔이다. 확실하고 더 힘찬 색깔로 여겨지는 분홍이 남자 아이에게 더 잘 어울리고, 여자 아이들은 연약하고 앙증맞은 색깔인 파랑을 입었을 때 더 예뻐 보이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파란색이 금발에 더 잘 어울리고 분홍색은 검은 머리에 더 잘 어울린다거나, 파란 옷은 눈이 파란 아이에게, 분홍색 옷은 눈이 갈색인 아이에게 입혀야 한다는 등 지금 기준과는 상당히 다른 설명들도 많습니다.

1927년 <타임>지가 미국의 주요 백화점에서 아이의 성별에 따라 어떤 색깔 옷을 권장하는지를 정리한 표를 보면 보스톤과 뉴욕, 클리블랜드, 시카고 등 많은 곳에서 남자 아이에게 권하는 옷은 분홍색이었습니다.

파올레티 교수는 소매업계와 의류 제조업체들이 소비자들의 기호를 고려하고 동시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194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아이의 성별에 따른 색깔이 정해지기 시작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니까 세계 2차대전이 끝나고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들은 이전 세대와는 달리 ‘남자답게’, 혹은 ‘여자답게’ 옷을 입으면서 자랐습니다. 여기서 남자답게, 여자답게는 남자 아이는 아빠처럼, 여자 아이는 엄마처럼 입는 것을 뜻합니다. 여자 아이들은 학교에 치마를 입고 가야만 했습니다. 아무 무늬도 없는 치마나 뛰어놀기 편한 말괄량이 스타일의 옷이라도 치마는 치마여야 했습니다.

1960년대 중반 들어 나타난 여성주의, 여성해방 운동의 영향으로 이른바 “여성스러운 옷”이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했고, 사람들은 다시 어린이들에게 중성적인 옷을 입히기 시작했습니다. 여자 아이도 남자 아이처럼, 혹은 옷 입은 것만 봐서는 성별을 알아차릴 수 없는 식으로 옷을 입기 시작했습니다. 1970년대 초반 몇몇 백화점의 아동복 코너에서는 분홍색 옷이 한동안 자취를 감췄습니다.

“당시 여성주의자들, 혹은 여성주의의 영향을 받은 사회 전체가 여성들이 보다 순종적으로 길들여지는 이유가 옷차림에 있다고 생각했어요. 여자 아이에게도 남자 아이처럼 옷을 입히면 이 아이가 자라서 더 자유롭고 적극적인 사람이 될 거라고 여겼죠. 성역할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 학습된다(nurture not nature)는 믿음이 널리 받아들여지던 시기였습니다.”

중성적인 옷차림은 1985년쯤까지 계속됐습니다. 파올레티 교수가 이를 연 단위로 정확히 기억하는 건 1982년에 그녀의 첫째 딸이 태어났고, 1986년에 둘째 아들이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온 매장에 갑자기 파란 옷이 깔린 건 아니에요. 정확히 말하면 풋볼을 들고 있는 테디베어 마네킹이 파란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 마네킹이 갑자기 매장 어디를 가나 눈에 띄었죠.”

이어 분홍색, 파란색 기저귀가 출시됐습니다.

이런 변화는 뱃속의 아기의 성별을 미리 알 수 있게 된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즉, 부모는 태어날 아이가 남자 아이일지 여자 아이일지를 알고 나서 미리 옷을 사두고 방을 꾸미게 된 것이죠. 항목과 특성을 보다 세분화할수록 물건을 더 많이 팔 수 있고 매출이 늘어나는 법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신발부터 아기 이불, 장난감, 보행기, 차량용 아기 의자에 이르기까지 분홍색이 대유행합니다. 첫째가 딸이면 온통 분홍색으로 물건들을 샀다가 둘째가 아들이면 다시 전부 다 파란색 물건을 사야 했지만, 여유가 있는 부모들은 개의치 않았습니다.

파올레티 교수는 또한 중성적인 옷차림이 여전히 유행하던 1980년대 초반에 어린 시절을 보낸 엄마들이 자신의 딸들에게는 중성적인 옷차림을 잘 입히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들이 다시 순종적인 여성상을 이상적으로 여기기 때문은 물론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여성주의자들과는 조금 이유가 다른데, 예를 들어 딸들이 외과 의사와 같은 여전히 남성이 많은 직업을 갖더라도 충분히 여성스러운 외과 의사로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어린이들의 소비, 정확히 말하면 유아용품, 어린이들의 물건에 대한 부모들의 소비가 크게 늘어난 것도 중요한 변화입니다. 아동발달을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아이들은 만 나이 3~4세 즈음 처음으로 성적 정체성을 인식하기 시작하고, 6~7살 때까지는 자신이 남자라는, 혹은 여자라는 의식이 확고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오늘날 아이들은 사회적으로 이미 정해진 ‘남자다운 것, 여자다운 것’에 끝없이 노출돼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 어린 아이들도 머리가 길고 치마를 입는 건 여자 아이들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어떻게 보면 그저 그렇다는 사실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겁니다.”

파올레티 교수는 책을 쓰는 내내 사회가 규정한 성적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이들의 부모들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아이의 성별에 맞춰 옷을 입혀야 할까요? 아니면 그런 데 아이들을 얽맬 게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원하는대로 옷을 입고 생각을 말하도록 놔둬야 할까요? 파올레티 교수는 이 지점에서 나름대로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중성적인 옷차림의 소멸이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남자 아이다운 것, 여자 아이다운 것을 명확하게 나눠버린 고정관념이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런 게 원래부터 정해져있던 것도 아니니까요. 중성적인 옷차림에 대한 수요가 다시 조금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중성적인 옷차림의 가치에 대해 다같이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좋겠어요. 우리 애는 사내 아인데 늘상 옷을 여자 아이처럼 입으려고 해서 걱정이라는 부모가 여전히 많잖아요. 그것이 결코 문제가 아닌데 말이죠. 패션 업계는 남자 옷, 여자 옷을 구분해서 팔면 매출이 늘어나서 좋을지 모르지만, 실제 세상은 그렇게 명백하게 남성성, 여성성을 분간할 수 있는 게 아니랍니다.” (Smithson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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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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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회의’ 393호 2015. 6. 5>에 실린 글.

공부가 되고 자극을 주는 말씀이 참 많네. 나를 돌아보게 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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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안 되는’ 책을 만드는 즐거움을 알려주마

— 알마 정혜인 대표

 

김수한 편집자 popnamu@hanmail.net

 

 


지난 봄 <한겨레>에 실린 김민기 선생의 인터뷰 기사가 꽤나 화제였던 것 같다. 이진순 씨가 오랜만에 지면으로 불러낸 김민기의 근황은 특유의 목소리와 제스처의 질감이 생생히 전달되는 듯했다. 시종 어눌하면서도 단호하고, 수줍어하면서도 뚜렷하게 삶의 마디마디에 새겨진 요철의 시말을 전하는 ‘조용한 거장’의 일대기는 그를 아는 이들에겐 당대의 깊이를 새삼스레 확인하는 계기가, 그 이름이 낯선 이들에겐 신선한 꼰대를 발견하는 기회가 되었다. 한국의 문화판에서 이리도 묵묵히 제 뜻과 길을 벼려온 ‘딴따라’가 몇 있겠는가. “문 닫을 때까지 돈 안 되는 일을 할 거다”라는 한결같은 태도를 견지하는 사람이 갈수록 귀중하고 드문 시대. 그처럼 뚝심 있게 ‘돈 안 되는 책’을 만들어가는 출판사도 몇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은 어떻게 일하고 먹고살아 갈까. 그 노하우를 알고 싶어 지난 5월 15일 스승의날 연남동에 자리한 알마 출판사에서 정혜인 대표를 만났다.

 

알마는 어떤 출판사입니까

김수한(김) — 10년 전에 연남동으로 출근하던 시절이 기억납니다. 조용한 주택가라 산책하기 좋은 동네였는데, 그 사이 변화도 있지만 여전히 사람 냄새가 나고 ‘저녁이 있는 삶’이 있는 동네 같습니다. 알마가 이곳에 자리 잡은 지 2년 정도 되지요? 장소의 기운일까요? 그 사이 알마 책들도 더 부드럽고 환해진 것 같습니다.

 


정혜인(정) — 파주에 있을 때보다 일하기 편해요. 저자 미팅이나 서점 방문도 파주보다 수월해요. 인쇄 감리는 파주로 들어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요. 로케이션의 의미는 근무자의 일상과도 관계가 커요. 창문을 열어두면 이웃 카페에서 커피 볶는 냄새도 흘러들어오고, 더러 물건 파는 분들의 스피커 소리도 들립니다. 사람 사는 동네죠. 파주출판단지는 그런 면에서 고립되어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요.

 

김 — 알마에 관한 자료를 검색하여 몇 편의 인터뷰 기사를 찾아 읽었습니다. 반가운 사실 하나가 눈에 띄더라고요. 보통 출판사 인터뷰는 대표이사의 사진만 실리는데, 알마는 책을 만드는 식구들 단체 사진이 주로 소개되어 보기 좋았습니다.

 

정 — 대표 혼자 책을 만드는 건 아니니까요. 안타깝지만, 오늘은 신간을 마무리하는 날이라 단체 사진은 찍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김 — 예전에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꼭 가난하라는 법 없듯이, 편집자가 가난한 직업일 까닭은 없다’고 말씀해주셨지요. 편집일을 해서도 넉넉히 먹고살 수 있다는 말씀에 힘이 났는데, 지금도 그러한지 갸우뚱합니다. 알마 살림은 괜찮은지요?

 

정 — 사실 기억은 잘 안 나는데….(웃음) 제가 평소에 그런 말을 자주 해왔으니 그 기억이 맞을 겁니다. 제가 어린 나이에 50만 부, 100만 부 넘게 팔린 책들을 만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실제로 그 책들로 큰돈을 벌기도 했고요. 잘 먹고 잘살 수 있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습니다. 다만 하고 싶은 일 재미있게 하면서 건강한 소시민으로 살 수 있다면 그게 바로 넉넉한 거 아닌가요? 알마 살림살이는 직원 10명이 먹고살 정 도는 됩니다. 작년에 전년 대비 매출액이 28% 올랐고, 영업이익도 6% 정도 됐어요. 시장이 좋지는 않지만 나름 잘 지냅니다. 책의 물성에 돈을 아끼지 않는 편이고, 원고 계약도 활발한 편이라 현금 운용은 빠듯하지만요.

 

셀러로 기획하는 책은 별도로 계획을 짜지만, 대체로 손익분기를 1000부에서 맞추려고 합니다. 합리적인 관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책값을 제대로 받으려고 해요. 거칠게 말해서 초판을 소화할 수 있다면 다른 책 한 권을 다시 출간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기는 거예요. 알마에서는 1000부 나가는 책을 실패로 보지 않습니다. 물론 1000부도 안 나가는 책이 있긴 하지만, 더 나가는 책도 있으니 상쇄가 됩니다. 중요한 지점이 몇 있는데, 하나만 말씀드릴게요. 알마는 구간 대 신간 매출이 5대 5에서 4대 6 사이인데, 매년 큰 변동이 없습니다. 알마가 문을 연 지 올 6월이면 만 9년이 되는데, 절판된 책이 총 출간종수의 5%가 안 돼요. 연 500부만 팔려도 중쇄를 찍습니다. 그래서 알마는 주문부수에 비해 일일주문장이 길어요. 작은 부수가 모여 알마의 총매출이 되는 거죠. 지난달에 재론칭한 『남해 유배지 답사기』(박진욱)도 악성 재고라 할만한 800여 부를 제목도 바꾸고 표지도 새롭게 해서 출고했는데 죽었던 책이 살아나서 500부를 더 찍었어요. 기쁜 일이죠. 출판업의 메커니즘을 제대로 이해해야 하고, 우리가 만든 책을 스스로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김 — 알마 하면 책 본문 뒤에 제본한 간이 도서목록 리플릿이 떠오릅니다. 몇몇 출판사들이 때때로 하지만 알마처럼 꾸준히 하는 경우는 드문 것 같습니다.

 

정 — 권당 리플릿 비용이 10만 원 정도 들어요. 그만하면 비용 대비 훌륭하죠. 노출 기회가 턱없이 부족한 단행본 시장에서 마케팅 비용을 아끼면서 홍보하려는 몸부림이죠.(웃음) 홈페이지는 따로 없고요. 페이스북과 트위터 정도 하고 있는데요. 출간 이후 저자와 독자가 직접 만나는 이벤트를 자주 엽니다. 독자들도 예전처럼 수동적이지 않고 저자를 만나려는 분위기라 출판사로서는 책을 적극적으로 알리기에 좋은 기회죠.

 

김 — 문학동네 계열사로 있다가 독립해 이사하시면서 주식회사에서 협동조합으로 전환하셨지요? 협동조합 절차는 완료가 되었는지요?

 

정 — 아이쿱생협이 55% 지분을 투자하고, 45%의 지분을 저와 직원들, 몇몇 저자 분들이 나눴어요. 협동조합 기본법의 후속 입법 작업이 진행되지 않은 상태여서 ‘세금폭탄’을 우려해 아직 법적으로는 주식회사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내용 면에서는 일부 변화가 있었는데요, 사안에 따라 결정권에 자잘한 변화들이 있었고, 핵심은 이익 배분 시스템을 사실상 협동조합 체제로 전환했다는 겁니다. 대부분 출판사들의 매출 대비 인건비 비율이 통상 10~15%로 압니다. 알마는 전년도 기준 24% 가까이 됩니다. 어떻게 회사를 유지하느냐고 걱정해주시는 분도 계십시다. 편집자는 책으로 말하고, 회사는 인건비로 말하라?! 투자 대비 이익을 많이 내는 것만이 선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전부터 노조 설립도 독려했는데, 드디어 노조도 만들어졌어요. 올해 노조와 첫 연봉협상을 하면서 재미난 일이 있었어요. 연봉협상 시기가 다가왔는데도 인상폭에 대한 이야기가 없는 거예요. 인상폭을 제시해달라고 했더니 그제야 회의를 거쳐 3% 인상안을 제시하더라고요. 어용노조 만들지 말라고 뼈 있는 농담을 던졌죠. 그동안 마땅한 이런 과정들이 무시되었는데, 반성할 지점입니다.

 

김 — 출판공동체를 지향하시는데, 일반 기업의 일하는 방식과 크게 다른가요?

 

정 — 출판공동체라고 해서 일하는 방식이 크게 다르지는 않아요. 매사에 회의와 토론을 거쳐 의사결정을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권한에 따른 책임과 리더십의 집중도 당연히 필요한 거니까요. 또 제가 살펴야 하는 것들도 분명 있고요. 많은 부분을 직원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게 하려고 애쓰는 건 있어요. 이건 출판공동체와는 무관하고요. 슬슬 은퇴 준비를 하려는 제 속셈인 거죠.(웃음)

 

김 — 정혜인 대표님은 ‘무서운 분’이라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카리스마 작렬이라는….

 

정 —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감정 표출의 강약이 분명한 편이죠. 제 나름의 원칙이 있는데요. 제작 사고를 낸다든지, 교정 과정에서 본문 일부가 날아가 책을 다시 찍어야 한다든지, 표지에서 글자 하나가 사라졌다든지, 이런 큰 실수는 한두 마디로 끝냅니다.

 


더러 위로도 하죠. 편집자도 사람인데 그럴 수 있다고. 본인은 얼마나 황망하고 부끄럽겠어요. 저까지 보탤 필요 없죠. 하지만 작은 실수들, 실수도 능력인 경우에는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결국 책을 만드는 일은 ‘안다’ ‘알고 있다’에서 그칠 수 없는 일이잖아요. 체화되어야 하는 거죠. 가령 조사나 접속사의 쓰임을 설명할 수 있다 해도 잘못된 부분을 짚어내지 못한다면 그건 조사와 접속사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디테일입니다. 최고인 사람은 작은 것에 강하다는 말이 있잖아요. 작은 것이 큰 변화를 불러오듯, 소소한 요소들이 모여 좋은 책이 만들어진다고 봅니다.

 

알마는 어떤 책들을 만듭니까

김 — 지난 5월 14일,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의 무죄 판결이 최종 확정되었습니다. 희생자는 참기 힘든 고통 속에 무연한데, 가해자는 어느 누구도 사과하지 않는 이 기묘한 상황이 참괴합니다. 어떻게 이런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지, 말문이 막힙니다. 누군가 이 사건을 추적해 논픽션을 만들어주길 고대했는데, 신문을 보니 『거짓말 잔치』라는 제목으로 조만간 출간된다는 소식이 있어 반가웠습니다. 혹시 이렇게 뜨거운 책이라면, 알마에서 나오나 하고 잠깐 기대가 일었습니다.

 

정 — 알마는 아니에요. 그런 책은 꼭 필요하죠. 밀양이나 세월호, 쌍용자동차 같은 안타깝고 충격적인 일에 알마가 함께하지 못해 아쉬움이 큽니다. 책도 인연인 것 같아요. 시도를 안 해본 건 아닌데, 마음먹는다고 해서 책을 낼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김 — 알마에서 펴내는 책들을 보면 뜨겁고 위험한 이슈를 건드리는 출판사라는 느낌이 듭니다. 재미나고 술술 읽히는 책보다는 무겁고 딱딱한 책들도 많고, 어떤 뚝심과 결기의 집요함이 느껴지는 목록입니다.

 

정 — 그런 책들은 이슈를 타고 드러나는 것이고, 차분하고 재미있는 책도 꽤 있습니다. 알마 책들의 무거움에 대해 변을 좀 하자면, 한국사회에서 책을 만든다는 것은 여전히 운동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인데요. 현재성의 가치를 높이 사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샘깊은오늘고전’ 시리즈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오늘날 그것이 우리에게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놓을 수가 없어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단행본도 매체라는 사실입니다. 신문이나 TV 같은 제도권 매체는 큰 목소리만 노출시킵니다. 단행본은 다기한 작은 목소리로 다양성을 확보하고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작은 단행본 출판사들이 기획력을 발휘한다면 한국사회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이때 다양성은 책을 왜 읽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합니다.

 

김 — 현재성과 다양성에 대한 강조는 요즘 소란스러운 고전과 인문학 열풍과는 좀 거리가 있는 듯합니다.

 

정 — 열풍은 어차피 지나가는 것입니다. 고전 열풍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은데요. 문자나 텍스트는 현재의 욕망을 기록하기 마련입니다. 기원전 2000~3000년 전 수메르 문명으로 거슬러 가볼까요? 그들은 문자로 무엇을 거래했는지 기록했습니다. 서양이 그렇게 거래 기록을 문자로 남겼다면, 동양의 문자는 당대의 체제 유지와 상류층을 위한 자기 계발의 도구였습니다. 한무제의 필요에 의해 그가 다시 불러낸 공자 말씀이 왜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필독서가 됐는지…. 물론 연구자나 깊이 공부를 해볼 목적이라 면 당연히 읽어야겠지요. 전 국민의 필독서, 혹은 베스트셀러 목록에 그런 책들이 들어가 있다는 건 기이한 일입니다.


알마 저자인 백지연 선생이 출연하는 드라마라 요즘 <풍문으로 들었소>를 챙겨 보고 있는데요. 대형 로펌 대표인 상류층 주인공이 자식들에게 플라톤의 『국가』를 읽히고, 자신의 속물성을 치장하기 위해 공자님 말씀을 들먹입니다. 어이없어 실소가 나오더라고요. 제국의 통치, 기득권 체제 유지를 위해 『논어』를 읽힌 맥락이 지금 한국사회와 어떻게 접속하고 있는지 드러나는 대목이지요. 지금은 오히려 묵자를 읽어야 할 때 아닌가요? 고전을 다루더라도 그것의 현재적 의미에 주목하고 새로 읽기를 강조해야 합니다. 저희 사마천의 『사기』 완역 시리즈가 그러하다고 생각합니다. 독서의 의미, 좋은 책이란 무언가를 역사적으로 탐문한 『책의 정신』(강창래)도 그러한 배경에서 나온 책입니다.

 

김 — 출판 기획은 반 발 앞서야 한다는 말이 있지요? 한 발 앞서면 너무 이르다는 말이기도 한데, 알마 책들이 그러한 것 같습니다. 일반 독자들의 관심사와 독서 습관의 경계를 살짝 넘어간 책들이라고 할까요? 무척 낯설거나 무거워 보이는 기획들, 가령 『누가 무지개 깃발을 짓밟는가』(스티븐 V. 스프링클)나 『이븐 할둔』(이브 라코스트), 올리버 색스 전작선,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에세이들, 『철학자들의 식물도감』(장 마르크 드루앵), 『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제이 그리피스), 『난학의 세계사』(이종찬) 같은 책들은 어느 출판사에서 시도할 수 있을까요?

 

정 — 거대 담론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와 문체를 찾습니다. 더해서 한국사회의 메커니즘을 밝히고 그 비밀과 작동 방식을 들추는 책들,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세상의 여러 문제를 추적하는 논픽션 책들을 펴내려 합니다. 가령 『우유의 역습』(티에리 수카르), 『감시의 시대』(아르망 마틀라르), 『검열에 관한 검은책』(에마뉘엘 피에라 외), 『식량은 왜! 사라지는가』(빌프리트 봄머트), 『질병판매학』(레이 모이니헌 외) 등이 그런 책들인데, 판매도 꾸준하고 반응도 느껴져 보람을 느낍니다. 학제간의 경계에 갇히지 않은 연구, 성소수자나 장애인 등 마이너리티의 목소리에 관심을 가지려 합니다.

 

김 — 한 발 앞선 기획인 데다가, 책을 만드는 물리적 시간이 길어 한 발 더 늦어 판매 포인트를 놓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정 — 알마에서 내는 책들의 시의성이 부분적으로 지속되고 보편성을 갖는 터라 약간의 수익을 내는 데는 부족하지 않아요. 판매 포인트를 놓치는 건 매우 안타깝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힘 쏟아 만들어서 길게 가는 겁니다.

 

김 — 기획의 대부분을 대표님이 주관하시나요?

 

정 — 전에는 그랬어요. 올해부터는 편집자들의 기획 역량을 강화하려 합니다. 1월부터 2시간씩, 주 2회 기획회의를 하고 있어요. 자율적으로 진행해보라고 맡겨 뒀는데, 기획안들이 느슨하더라고요. 그래서 기초부터 다지자는 뜻에서 기획회의를 정례화하고, 트렌드와 매체 분석 등을 해보고, 그것을 바탕으로 기획안을 작성합니다. 기획안의 완성과 실현은 어차피 기획자의 몫이니 기대하고 있습니다.

 

알마는 어떻게 기획하고 편집합니까

김 — 알마에는 스타일이 강하고 까다로운 필자들이 많아 보입니다. 고종석, 손석춘 선생부터 올리버 색스와 크리스토퍼 히친스까지 국내외 필자들의 면면이 ‘세다’는 느낌이 듭니다.

 

정 — 네, 저자 관리가 쉽지 않아요. 모든 편집자의 고민일 텐데요. 그래도 한 가지는 지키려고 애씁니다. 쉽지 않지만 저자들의 사소한 말에도 귀 기울이는 것. 번역자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마찬가지인데요. 저자가 원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알아야 편집자도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펼칠 수 있거든요. 그러기 위해선 어떤 맥락에서 이 문장이 들어갔는지 꼼꼼히 살피고 매사에 의문을 가지는 태도가 우선돼야 합니다.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 히친스의 『논쟁』에 썼던 표지글인데, 편집자에게도 꼭 필요한 태도라고 봅니다.

 

김 — 필자와의 대면 접촉을 통해 적극적으로 제안과 설득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정 — 중간에 아는 사람을 통한 소개로 필자를 접촉하는 방식은 거의 쓰지 않습니다. 이메일, 편지, 만남의 단계로 관계를 트는데, 필자의 이야기를 진득이 듣고 우리의 생각을 타진합니다. 저는 지난해부터 기획 미팅에 거의 나가지 않고 편집자들이 전담하고 있습니다. 판단을 하기 위해 부분적으로 살펴보는 경우는 있지만, 실무 교정에서도 손을 뗐어요. 『고종석의 문장』이 제가 마지막으로 본 교정지입니다.

 

김 — 이제 알마의 주요 책들을 훑어보지요. 먼저 인터뷰집 전문 출판사로 아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인터뷰 대담집의 본격 성공을 이끄셨잖아요?

 

정 — 그건 사실 창업 초기에 수익 불균형을 타개하기 위한 처방전이었어요. 창업 초기 60권 정도 기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기대만큼 수익을 얻지 못했어요. 만들고 싶은 무거운 책을 하기 위해서라도 우선 살아남자 싶어서 좀 가벼운 책을 기획한 겁니다. 제가 사람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데, 평전 시장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될 만큼 미미하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 이야기를 좀 캐주얼하게 접근해볼 방법을 고민하다가 인터뷰집이라는 형식을 찾게 되었어요. 한국사회를 모자이크 해보자 생각했습니다. 그것도 살아 있는 사람들, 우리와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는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싶었어요.

 

김 — 이어진 인터뷰이들의 면면이 익숙하다가, 갈수록 신선한 인물이 세팅되었습니다. 광고인 박웅현, 만화가 이원복 선생 편까지는 출판과 먼 전문 분야가 아닌데, 이어 빗물박사 한무영, 법의학자 문국진 선생 편은 평소 접하기 어려웠던 이야기를 들려주어 반가웠습니다. 배우 신성일이나 영화감독 양익준, 김조광수, 뮤지션 신대철 편은 우리 대중문화의 두께와 너비를 새롭게 확인시켜준 반가운 기획인데요.

 

정 — 평전과 달리 그가 일궈낸 한 분야의 주제에 집중하자는 게 애초 기획 의도였으니까요. 뒤로 갈수록 주제가 더 잘 드러났을 뿐입니다. 철학자나 사상가, 학자들의 필생의 학문 주제를 집중 대담하는 책을 기획하고 싶은데 인터뷰어 섭외가 너무 어려워요.

 

김 — 알마 소개글에 ‘살아 숨 쉬는 인문 교양’과 ‘대안을 담은 교육 비평’을 펴낸다고 밝히셨어요. 주요 출간 토픽들을 보니 빈곤과 인권 및 평화 문제 등을 다룬 인문 사회 논픽션, 교양 과학과 환경 생태 관련서, 자녀 교육과 청소년 심리, 의료사회학과 음식 및 질병 관련 논픽션, 책읽기와 도서관 관련 책, 협동조합 관련 기획, 폐사지와 유배지 기행 등 문화 지리서, 대중문화 에세이 등이 여럿 보이고 특히 뇌과학과 범죄심리학, 언어학에 관한 책들이 많아 이채롭습니다.

 

정 — 수많은 인문 교양, 논픽션을 도서관 10진 분류법에 모두 채워 넣을 수 있을까요? 고전적인 장르 범주보다는 변화하는 지식장을 반영한 작은 계열, 겹쳐 읽을 수 있는 주제, 현재성을 띤 의제들로 기획 방향을 갈래지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류와는 다른 시각, 생성중인 지식, 새로운 필자들의 책들을 주로 소개하게 된 거죠. 가령 범죄와 이상 심리, 법의학은 인간의 이해를 넓히는 창입니다. 선악의 구분을 넘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묻는 책들. 만드는 재미도 있고 판매도 좀 되어 범죄 덕을 봤어요.(웃음)

 

김 — 올리버 색스는 거의 전작이 소개된 듯합니다. 우스갯소리로 색스의 『편두통』은 읽어보려다 편두통이 나는 듯했습니다. 말기 암 투병중인 색스가 올초 <뉴욕타임스> 에 기고한 「나의 삶(My Own Life)」이라는 겸허한 성찰의 글이 감동과 화제를 주었는데, 책 판매에 조금이라도 영향이 있었나요?

 

정 — 『편두통』은 색스의 초기 작품이라 원문이 난삽합니다. 번역하고 감수하고, 두 분 선생님이 엄청 고생하셨어요. 교정 작업도 거의 6개월이 걸렸어요. 그렇게 어렵게 나왔는데도 편집자로서 부족함을 느끼는 책이에요. 색스의 저작물은 소량으로 꾸준히 나가는데요, 기사가 뜬 이후에 큰 폭은 아니고, 좀 움직이긴 했어요. 『뮤지코필리아』 는 순출고가 8000부를 넘어섰고요. 다른 타이틀들은 1000~2000부 선이에요. 큰 수익은 아니지만 손익분기는 충분히 넘어섰다고 봐야지요. 번역비도 많이 들고 교정 난 이도도 최상급이지만, 휴머니티가 살아 있는 그의 글은 매력이 넘칩니다. 올해 안으로 올리버 색스 자서전을 펴내려 하는데, 판매를 기대해봅니다.

 

김 — 알마 책의 물성 또한 눈에 두드러집니다. 어느 인터뷰에서 늘 “겉과 속이 따로 놀지는 않는가” “과하게 포장하고 있지 않는가” 하고 자기 점검을 한다 하셨지요. 맞춤한 만듦새라는 감탄을 하면서도 과하게 비용을 쓰시진 않나 궁금하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 나온 『징비록』은 최근 만난 책들 가운데 최고의 물성을 보여주지 않나 부러웠습니다만, 1만 3800원에 그게 가능한지요?

 

정 — 그 책은 어린이용 징비록을 성인용으로 새로 편집, 디자인한 건데, 해설을 풍부하게 붙인 장점이 있습니다. 제작 비용이 커서 500부 단위로는 제작 단가가 안 나와요. 책 팔아 큰돈 벌려 하지 않으니 설계가 가능했던 건데요. 다행히 이부록 그림작가와 안지미 디자이너가 계약금 일부에 인세를 받는 방식으로 계약에 동의해주어 작업이 가능했습니다. 고마운 일이지요. 현재 7000부 찍었고, 순출고가 5500부 정도 됩니다.

 

김 — 이슈북 시리즈는 참여한 필자들의 이름이 쟁쟁합니다. 크게 출판 이슈가 되지는 않은 것 같은데, 계속되나요?

 

정 — 매체로서 단행본의 기능과 형식을 고민해본 한국형 신서인 셈인데, 반응이 책마다 편차가 있어요. 세로로 길쭉한 판형이 아무래도 낯선가 봅니다. 궁리 중이에요.

 

김 — 개정도서정가제 실행 이후에 출간량이 줄어들긴 했습니다만, 일주일에 100~200여 권의 신간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개중에 ‘새로운 책’은 그리 없다는 느낌입니다. 그래도 알마는 젊은 필자들이나 신진 필자의 등장을 심심치 않게 보여주셨는데, 『현시창』(임지선)은 놀랐고, 『검색되지 않을 자유』(임태훈), 『모서리에서의 사유』(최태섭)도 반가웠습니다. 『가장 사소한 구원』의 라종일, 김현진 조합도 의외였습니다.

 


정 — 2012년에 나온 『현시창』은 성기승 차장이 기획한 책이에요. 단행본 출판사의 의무 가운데 하나가 단행본 경험이 전무한 이들에게 필자로 데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현장형 논픽션 필자를 찾아내려 합니다. 최근에 몸으로 글을 생산하는 멋진 필자 한 분과 접촉하고 있는데, 이런 만남들이 흥분됩니다. 라종일 선생은 『가장 사소한 구원』을 하면서 새삼 글을 잘 쓰시는 분이란 걸 알았습니다. 세대를 달리하는 두 작가가 편히 주고받은 메일을 통해 일상의 관찰과 고민을 담아보자는 의도였는데, 넉넉한 글쓰기를 보여주셨습니다. 이것도 좀 팔리고 있어요.

 

김 — 『MB의 비용』(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엮음) 역시 잘 나가지요? 시기도 적절했고, 여기저기 노출도 많이 되었고요.

 

정 — 한 10만 부 나갔느냐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1만 8000부 찍었어요. 앞서 출간된 이명박 자서전에 기댄 기획이 아니라 오래전에 유종일 선생의 기획 아래 차분히 써 내려간 글입니다. <프레시안>에 오랫동안 연재되었고, 거기에 인포그래픽을 추가하고 꼭지별로 들어가는 말을 넣어 단행본다운 포스를 지니게 되었어요. MB의 과욕과 실정에 대한 배설 차원의 까발림이 아니라 사실에 기반한 분석과 비판이 담긴 책입니다. 판매부수 듣고는 많이들 놀라더라고요. 대한민국은 그렇게 훌륭한 사회가 아닙니다.(웃음) 좀더 널리 읽혔으면 하는 아쉬움과 함께 아직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어요.

 

김 — 21세기 대한민국 노동의 풍경을 취재한 르포르타주 『노동여지도』(박점규)도 고마운 책입니다. 책 제목도 좋은데요?

 

정 — <주간경향>에 연재한 원고를 묶은 책인데 그때 썼던 제목이에요. 꼭 필요한 책인데 너무 늦게 나온 감이 있죠. 출판이 사회와 연대하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 그래서 노동사를 간략히 정리해 꼭지별로 넣자는 의견이 나왔고, 연재 원고지만 단행본스러운 원고가 완성된 것입니다. 추가 원고와 지도 등 원고 보강에 힘을 썼어요. 노동절에 맞춰 내느라 저자 분도 편집자도 고생이 많았지요. 그 책도 2쇄를 찍었어요.

 

김 — 고종석 선생의 책들도 반응 좋지요? 알마 아니면 만들기 쉽지 않은 책 같은데요.

 

정 — 문화계의 중요한 필자로 그분의 글을 즐겨 읽는 독자였어요. 절필 선언 후 우연히 술자리에서 만나 글쓰기에 관한 책을 내자는 제안을 하게 됐고요. 절필한 분이라 가능한 방식을 고민하다 강연을 기획해 책으로 엮기로 한 것이지요. 수강료 부담이 적지 않았는데, 예상보다 많은 독자들이 신청했습니다. 거의 일주일 만에 정원을 다 채우고 미처 신청하지 못해 강의를 듣지 못한 분들도 꽤 있었어요. 강의로 수익을 내려는 의도는 아니었기에 강사료를 충분히 드릴 수 있었고, 출간에 따른 인세는 당연히 따로 보장해 드렸어요. 녹취를 풀어 문체를 다듬는 데 힘을 기울였습니다. 어찌하면 고종석 선생의 스타일을 실어 나를 수 있을지 고민했고 초기 작업이 만만치 않았어요. 고생 좀 했죠. 이후 필자의 첨삭 과정을 거쳐 책이 나왔습니다.

 

김 — 이런 경우 편집자에게 큰 역량이 필요하겠습니다.

 

정 — 편집자의 역할이 중요하지요. 역으로 뺄셈을 하듯이 책 출간 과정을 복기해보면, 편집자는 그 모든 과정에 관여하는 사람입니다. 쉽지 않지요.

 

알마는 어디로 계속 가고 있습니까

김 — 최근에 「선녀와 나무꾼」을 비튼 짧은 연극 한 편을 보게 되었습니다. 천당에서도 선녀가 늘어 정규직 자리를 구하기 어렵게 된 한 선녀가 나무꾼을 꼬셔 결혼(취업)에 성공합니다. 자식 둘을 낳고 근근이 살아가던 어느 날, 귀가한 나무꾼이 전업의 고민을 피력합니다. 사람들이 나무 대신 땅속에서 캐낸 ‘검은 돌’만 찾으니, 나무 캐서 어찌 먹고사느냐고. 무슨 까닭인지, 선녀는 나무꾼은 나무꾼이어야 한다고 독려합니다. ‘저렇게 산에 나무가 많은데 쓸모가 없어질 리 없다’고. 감동이지요! 다음 장면에서 나무꾼이 이번엔 ‘검은 물’이 쏟아진다는 소식을 전하는데도 선녀는 나무꾼을 격려하지요. 저는 여기까지 보고서는 나무꾼이 책 만드는 사람, 편집자로 동일시되어 잠시 낙담하였습니다. 각설하고, 책을 읽지 않는다는 인터넷 시대에 이렇게 돈 안 되는 일을 열심히 하는 알마의 믿음은 무엇입니까? 알마의 독자들은 누구입니까?

 

정 — 알마의 독자들은 연령으로 구분되지 않는 것 같아요. 책에 담긴 생각과 내용으로 다른 출판사의 목록과 차별된다고 생각하는데, 독자들의 호불호도 분명한 편입니다. 알마의 방향성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계속 늘려가려 합니다.

 

김 — 빅데이터로 산출해 해당 독자가 관심 가질만한 책의 출간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하는 시대입니다. 저도 그렇게 추천 받은 책들을 장바구니에 담아 둡니다. 종종 출판의 성공 사례를 운을 빌어 설명하곤 했는데, 이제 그런 축복은 드물어질 것 같습니다. 또한 책의 경쟁력 상실은 책 내용의 경량화로도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지대넓얕’(『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라는 솔직한 제목의 베스트셀러도 그렇고, <허핑턴포스트코리아>의 선전을 보면 이제 지식을 어떻게 편집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됩니다.

 

정 — 책은 앞으로 기호품이 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책을 읽거나, 아예 보지 않거나. ‘인문학’이니 ‘고전’이니 ‘책이 답’이라느니, 하는 동어반복은 이제 길을 잃었다고 봅니다. 이런 상상을 한 번 해봤는데요. 게임하는 아이들에게 이거 너무 중요한 것이니 꼭 해라, 하고 나서는 무조건 후기도 써야 한다고 하면 지레 도망가지 않을까요? 반면 책 읽는 건 금지시키는 겁니다. 어른이 되어야만 읽을 수 있는 거죠. 그 세계가 얼마나 궁금하겠어요. 일면 근사해 보이기도 하고 뭐가 저렇게 재미있어서 어른들은 책을 끼고 살까, 이런 상황이 오면 아이들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몰래 숨어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을 찾지 않을까요? 독서 환경이 바뀌어야만 하는 거죠. 그때까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라고 반문할 수 있을 텐데요. 책은 책다울 때 책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책만큼은 경량화가 답은 아닌 것 같아요. 역행이라 할지 모르겠는데, 알마는 절판된 훌륭한 책들을 재번역하고, 재출간하는 작업을 진행합니다. 당연히 돈 안 되는 일입니다. 책이 사라지는 시대에 책의 운명을 지키고 연장하는 사람들이 편집자입니다. 알마는 지난해에는 로버트 단턴의 『책과 혁명』과 엘리자베트 벡 게른스하임의 『모성애의 발명』을 새로이 다시 펴냈고, 다음 달에는 린 헌트의 『포르노그라피의 발명』을 재출간합니다. 계속 이런 작업들을 해나갈 겁니다.

 

김 — 생각난 김에, 저 ‘고색창연’한 이지누 선생의 책은 누가 읽나요?

 

정 — 가장 안타까운 책들이에요. 이지누 선생의 텍스트는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습니다. 저 같이 이지누라는 스타일에 대한 향수를 지닌 독자가 많지 않아요. 어떤 종이를 쓰든 이지누의 것으로 보이는 사진과 종이의 물성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가진 저자는 이제 거의 없을 겁니다. 사실 어디에서 만들어도 그렇게 나올 책들인데, 그 문체를 알아보는 독자에게 값진 책을 제공하는 것도 출판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 슬슬 예정된 시간이 다 되어 갑니다. 올해 준비 중인 책 몇 권 소개해주세요.

 

정 — 뉴턴에 대한 모든 것을 담은 ‘벽돌 책’을 몇 년째 준비 중인데, 하반기에는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빅히스토리 관련한 대작도 준비 중이고요. 그 정도만 공개하지요.

 

김 — 끝으로, 꼭 만들고 싶었던 책이 있다면?

 

정 — 사전류에 대한 로망이 있어요. 주제별, 테마별로 항목이 구성된 독특한 사전이요. 사라지는 사물의 세부 명칭을 도해로 해제하는 사전 같은 건 정말 만들어보고 싶죠. 지식의 변동과 언어의 소멸에 대한 아카이브가 필요한 시대가 오지 않을까 합니다.

 

김 — 처음이자 마지막 질문입니다. 많이 편찮으시다고 들었습니다만…?

 

정 — 담담하게 받아들이려고 노력 중입니다. 크게 아프면 세상이 달라 보일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아요.(웃음)

 

김 — 몇 년 전 한 인터뷰에서 ‘5년 안에 내부 일꾼들에게 회사를 넘겨주고 먼 여행을 떠나는 것’이 꿈이라고 말씀하셨지요?

 

 

정 — 회사를 잘 물려줄 준비를 하고 있어요. 나는 터를 보여주는 사람이니까요.

 

출판사를 찾아가는 즐거움 중 하나는, 서가에 꽂힌 그 출판사의 책들을 한눈에 일별 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공들여 만든 책들을 한꺼번에 훑으면서 이 출판사는 이런 지도를 그려 왔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의 안심이 좋다. 그 지도가 알아볼만한 형상일 경우 얼마나 반가운지. 게다가 두 시간 동안 두서없는 인터뷰를 진행하고 나오는 길에, 정혜인 대표는 알마 책 중 보고 싶은 책을 한 권 선사할 테니 골라보라고 하였다. 날카로운 질문 하나 준비하지 못했으니 ‘풍문으로 들었던’ 『크리티컬 매스』(백지연)는 밀쳐 두고, 『뮤지코필리아』를 꼽아 들었다. 책 표지에 실린 음악을 듣는 올리버 색스의 황홀한 표정에 끌렸다. 나는 그게 책에 흠씬 빠진 사람의 얼굴로 보였는데, 이 ‘비블리오필리아’의 이름이 혹시 알마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고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애칭이 알마alma라고 한다. 세상의 모든 책이 한데 모여 있었다는 인류 지성의 성소, 그 도서관은 번역과 출판일도 겸했다고 한다. 알마는 또한 스페인어로 영혼, 정신, 마음을 뜻한다고 한다. 아랍어로는 기르다, 양육하다의 의미. 다양한 뜻이 근사하다. 알마 출판사의 등장 이후 ‘알’ 자가 들어간 출판사들이 여럿 뒤를 이었다. 알랩, 알키, 알투스, 알비 등. 모두 특색 있는 책들을 내는 곳들이다. 엉뚱하지만, 앞으로 알마를 ‘알짜’ 출판사의 시작이라 부르련다.

 

강상중 교수는 최근 출간된 『마음의 힘』(사계절, 2015)에서 신자유주의라는 무지막지한 시장경제의 힘에 쓸려 미래에 대한 불안과 현재에 대한 고통만 남은 동시대인들을 근심한다. 그는 다른 삶을 상상할 용기를 잃은 병든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마음의 힘’을 키우자고 제안한다. 그가 제안하는 방법은 “인생의 어느 한 시기에 생산성이나 합리성 같은 것과는 인연이 없는 세계에 풍덩 뛰어드는” 모라토리엄(지불유예)이다. 마음의 체력을 기르기 위한 삶의 잠시 유예. 그게 바로 책읽기의 시간이 아닐까. 일단 읽기 시작하는 것. 읽다 보면 어디로든 움직이리라. 오늘 ‘알마 도서관’ 정혜인 대표와 나눈 이야기가 겹쳐 떠올랐다.

 

‘기획회의’ 393호 2015. 6. 5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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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경제학 

1. 

<월든>을 쓴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간소, 자립, 관대, 신뢰'라고 네 단어로 답했다 한다.

아마, 행복해지기 위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자기 자신이 혼자라는 사실과 또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사이의 균형 감각이며, 자신과 세상과의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는 것.'

이런 뜻일 게다. _ 쓰지 신이치


2. 

"어떤 문제를 일으켰을 때와 똑같은 마인드로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란 불가능하다." _ 아인슈타인


3.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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