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을 꿰매면서
박노해
이불 호청을 꿰매면서 속옷 빨래를 하면서 나는 부끄러움의 가슴을 친다. 똑같이 공장에서 돌아와 자정이 넘도록 설거지에 방청소에 고추장단지 뚜껑까지 마무리하는 아내에게 나는 그저 밥달라 물달라 옷달라 시켰었다. 동료들과 노조일을 하고부터 거만하고 전제적인 기업주의 짓거리가 대접받는 남편의 이름으로 아내에게 자행되고 있음을 아프게 직시한다. 명령하는 남자, 순종하는 여자라고 세상이 가르쳐 준 대로 아내를 야금야금 갉아먹으면서 나는 성실한 모범근로자였었다. 노조를 만들면서 저들의 칭찬과 모범표창이 고양이 꼬리에 매단 방울소리임을, 근로자를 가족처럼 사랑하는 보살핌이 허울좋은 솜사탕임을 똑똑히 깨달았다. 편리한 이론과 절대적 권위와 상식으로 포장된 몸서리쳐지는 이윤추구처럼 나 역시 아내를 착취하고 가정의 독재자가 되었었다. 투쟁이 깊어 갈수록 실천 속에서 나는 저들의 찌꺼기를 배설해 낸다. 노동자는 이윤 낳는 기계가 아닌 것처럼 아내는 나의 몸종이 아니고 평등하게 사랑하는 친구이며 부부라는 것을, 우리의 모든 관계는 신뢰와 존중과 민주주의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잔업 끝내고 돌아올 아내를 기다리며 이불홑청을 꿰매면서 아픈 각성의 바늘을 찌른다.
...............
욕이 아닌, 배설이 아닌, 비판의 글이 되고 살아있는 글이 되려면 나에서 출발하는 글이어야 한다고 하였다. 오도엽님께서 ^^
그러면서 인용한 박노해 시인의 '이불을 꿰매면서'라는 시를 달아놓았다.
저 바늘이 나를 찌르는 것 같다.
박노해 님의 시와 오도엽 님의 글을 보며, 서정홍 선생님의 '아무리 바빠도 아버지 노릇은 해야지요'가 자꾸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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