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감으로도 좋겠다.
이런 걸 소재로 한 이야기도 재밌을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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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아이는 파란색, 여자 아이는 분홍색? 언제부터 그랬을까?
루즈벨트(F.D.R.) 전 미국 대통령의 세 살적 모습을 찍은 사진입니다. 하얀 치마에 깃털 달린 모자를 꼭 움켜쥔 손과 어깨까지 내려오는 단발보다 더 긴 머리, 애나멜가죽으로 댄 구두까지 지금 기준에서 보면 어여쁜 여자 아이 같습니다. 분명 지금 기준에서 보면 남자 아이에게 왜 저렇게 옷을 입혔을까 의아할 수 있지만, 사진이 찍힌 1884년 기준에서 보면 지극히 평범한,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옷차림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남자 아이든 여자 아이든 일고여덟 살 때까지 치마를 입혔고, 머리도 자르지 않았습니다. 사진 속 루즈벨트의 옷차림은 당시에는 아주 흔했던 중성적인(gender-neutral) 아이 옷차림입니다.
“지금 우리는 아이를 보고 한 눈에 성별을 구분해야만 하는 세상에 살고 있어요. 아직 머리숱이 거의 없는 아기의 머리에도 굳이 분홍색 헤어밴드를 씌우고, 사람들은 또 그걸 보고 아이가 여자 아이라고 짐작하잖아요.”
<분홍과 파랑: 여자 아이와 남자 아이를 분간해내는 미국(Pink and Blue: Telling the Girls From the Boys in America)>이란 책의 저자 메릴랜드대학교의 역사학자 파올레티(Jo B. Paoletti) 교수의 말입니다. 파올레티 교수는 30년 동안 아기와 어린이의 옷차림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루즈벨트의 사진이 찍힌 시점부터 오늘날까지 130여 년은 길다면 긴, 하지만 짧다면 짧은 기간인데, 그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걸까요? 우리는 언제부터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의 옷을 색깔별로 구분해서 입혔을까요?
파올레티 교수는 중성적인 옷차림의 소멸 과정을 살펴보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수세기 동안 아이들은 일곱 살 정도가 될 때까지 (남녀 가리지 않고) 하얀색 치마를 입었습니다. 여기에는 상당히 실용적인 이유가 있는데, 흰 옷감은 때가 타고 더러운 것이 묻어도 다시 표백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다 보니 하얀 옷을 입히지 않으면 부모들이 잘못이라고 느낄 정도로 오랫동안 어린이에겐 하얀 옷을 입히는 게 사실상의 규범이었습니다.”
성별에 따라 다른 색깔, 다른 종류의 옷을 입히는 건 하루아침에 나타난 트렌드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서서히 굳어진 관행이라고 보기도 어렵긴 합니다. 우선 19세기 중반쯤 사람들은 아이 옷에 색깔을 넣기 시작합니다. 분홍색, 파란색을 비롯해 여러 색깔이 선을 보였죠. 하지만 그저 옷 색깔이 다양해졌을 뿐,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도 특정 색상이 성별과 관련이 있다고 여겨진 건 아닙니다. 1918년, 지금으로 치면 일종의 어린이 패션 잡지라고 할 수 있는 <Earnshaw’s Infants’ Department>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분홍색은 남자 아이에게 어울리고, 파란색은 여자 아이에게 어울리는 색깔이다. 확실하고 더 힘찬 색깔로 여겨지는 분홍이 남자 아이에게 더 잘 어울리고, 여자 아이들은 연약하고 앙증맞은 색깔인 파랑을 입었을 때 더 예뻐 보이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파란색이 금발에 더 잘 어울리고 분홍색은 검은 머리에 더 잘 어울린다거나, 파란 옷은 눈이 파란 아이에게, 분홍색 옷은 눈이 갈색인 아이에게 입혀야 한다는 등 지금 기준과는 상당히 다른 설명들도 많습니다.
1927년 <타임>지가 미국의 주요 백화점에서 아이의 성별에 따라 어떤 색깔 옷을 권장하는지를 정리한 표를 보면 보스톤과 뉴욕, 클리블랜드, 시카고 등 많은 곳에서 남자 아이에게 권하는 옷은 분홍색이었습니다.
파올레티 교수는 소매업계와 의류 제조업체들이 소비자들의 기호를 고려하고 동시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194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아이의 성별에 따른 색깔이 정해지기 시작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니까 세계 2차대전이 끝나고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들은 이전 세대와는 달리 ‘남자답게’, 혹은 ‘여자답게’ 옷을 입으면서 자랐습니다. 여기서 남자답게, 여자답게는 남자 아이는 아빠처럼, 여자 아이는 엄마처럼 입는 것을 뜻합니다. 여자 아이들은 학교에 치마를 입고 가야만 했습니다. 아무 무늬도 없는 치마나 뛰어놀기 편한 말괄량이 스타일의 옷이라도 치마는 치마여야 했습니다.
1960년대 중반 들어 나타난 여성주의, 여성해방 운동의 영향으로 이른바 “여성스러운 옷”이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했고, 사람들은 다시 어린이들에게 중성적인 옷을 입히기 시작했습니다. 여자 아이도 남자 아이처럼, 혹은 옷 입은 것만 봐서는 성별을 알아차릴 수 없는 식으로 옷을 입기 시작했습니다. 1970년대 초반 몇몇 백화점의 아동복 코너에서는 분홍색 옷이 한동안 자취를 감췄습니다.
“당시 여성주의자들, 혹은 여성주의의 영향을 받은 사회 전체가 여성들이 보다 순종적으로 길들여지는 이유가 옷차림에 있다고 생각했어요. 여자 아이에게도 남자 아이처럼 옷을 입히면 이 아이가 자라서 더 자유롭고 적극적인 사람이 될 거라고 여겼죠. 성역할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 학습된다(nurture not nature)는 믿음이 널리 받아들여지던 시기였습니다.”
중성적인 옷차림은 1985년쯤까지 계속됐습니다. 파올레티 교수가 이를 연 단위로 정확히 기억하는 건 1982년에 그녀의 첫째 딸이 태어났고, 1986년에 둘째 아들이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온 매장에 갑자기 파란 옷이 깔린 건 아니에요. 정확히 말하면 풋볼을 들고 있는 테디베어 마네킹이 파란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 마네킹이 갑자기 매장 어디를 가나 눈에 띄었죠.”
이어 분홍색, 파란색 기저귀가 출시됐습니다.
이런 변화는 뱃속의 아기의 성별을 미리 알 수 있게 된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즉, 부모는 태어날 아이가 남자 아이일지 여자 아이일지를 알고 나서 미리 옷을 사두고 방을 꾸미게 된 것이죠. 항목과 특성을 보다 세분화할수록 물건을 더 많이 팔 수 있고 매출이 늘어나는 법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신발부터 아기 이불, 장난감, 보행기, 차량용 아기 의자에 이르기까지 분홍색이 대유행합니다. 첫째가 딸이면 온통 분홍색으로 물건들을 샀다가 둘째가 아들이면 다시 전부 다 파란색 물건을 사야 했지만, 여유가 있는 부모들은 개의치 않았습니다.
파올레티 교수는 또한 중성적인 옷차림이 여전히 유행하던 1980년대 초반에 어린 시절을 보낸 엄마들이 자신의 딸들에게는 중성적인 옷차림을 잘 입히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들이 다시 순종적인 여성상을 이상적으로 여기기 때문은 물론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여성주의자들과는 조금 이유가 다른데, 예를 들어 딸들이 외과 의사와 같은 여전히 남성이 많은 직업을 갖더라도 충분히 여성스러운 외과 의사로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어린이들의 소비, 정확히 말하면 유아용품, 어린이들의 물건에 대한 부모들의 소비가 크게 늘어난 것도 중요한 변화입니다. 아동발달을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아이들은 만 나이 3~4세 즈음 처음으로 성적 정체성을 인식하기 시작하고, 6~7살 때까지는 자신이 남자라는, 혹은 여자라는 의식이 확고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오늘날 아이들은 사회적으로 이미 정해진 ‘남자다운 것, 여자다운 것’에 끝없이 노출돼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 어린 아이들도 머리가 길고 치마를 입는 건 여자 아이들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어떻게 보면 그저 그렇다는 사실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겁니다.”
파올레티 교수는 책을 쓰는 내내 사회가 규정한 성적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이들의 부모들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아이의 성별에 맞춰 옷을 입혀야 할까요? 아니면 그런 데 아이들을 얽맬 게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원하는대로 옷을 입고 생각을 말하도록 놔둬야 할까요? 파올레티 교수는 이 지점에서 나름대로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중성적인 옷차림의 소멸이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남자 아이다운 것, 여자 아이다운 것을 명확하게 나눠버린 고정관념이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런 게 원래부터 정해져있던 것도 아니니까요. 중성적인 옷차림에 대한 수요가 다시 조금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중성적인 옷차림의 가치에 대해 다같이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좋겠어요. 우리 애는 사내 아인데 늘상 옷을 여자 아이처럼 입으려고 해서 걱정이라는 부모가 여전히 많잖아요. 그것이 결코 문제가 아닌데 말이죠. 패션 업계는 남자 옷, 여자 옷을 구분해서 팔면 매출이 늘어나서 좋을지 모르지만, 실제 세상은 그렇게 명백하게 남성성, 여성성을 분간할 수 있는 게 아니랍니다.” (Smithson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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