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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12.18 애완동물(pet)을 길러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까닭

공감하는 글이다.

나도 두 냥이를 기르지만, 늘 한편으로는 시골에 가서 풀어놓고 서로 자유로운 관계를 유지하며 먹이를 주는 사이가 되고 싶다. 가정사로 일부러 둘을 데려오기는 했지만, 본 마음은 조심스러웠다.

동물도 생명이고 감정이 있는데, 사람이 '기른다'는 상황이 모순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늘 있다.

 

친구들과 해볼 토론 주제로서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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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 많은 동물 윤리학자들이 애완동물(pet)을 길러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이유 

 

2020년 12월 11일

(가디언, Linda Rodriguez McRobb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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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카 피어스가 애완동물 기르기에 문제의식을 느낀 것은 락앤락 속에 든 새끼쥐들을 보았을 때입니다. 그녀는 미국의 애완동물 체인인 펫스마트에서 딸이 기르는 도마뱀의 먹이로 귀뚜라미를 사고 있었습니다. 플라스틱 통 안에서 찍찍대던 쥐들은 아마 애완동물로, 아니면 뱀의 먹이로 팔렸을 것입니다. 어느 쪽인지는 묻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생명윤리학자로써 분명한 문제의식을 느꼈지요.

 

“쥐에겐 공감능력이 있습니다. 어미쥐로부터 강제로 떼내어진 새끼쥐들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있습니다. 이들이 심각한 스트레스를 경험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지요.” 그녀는 말을 이었습니다. “뺨을 때리는 행동을 생각해보세요. 동물의 빰을 때리는 것이 과연 올바른 행동일까요?”

 

피어스는 애완동물 기르기를 반대할 목적으로 2015년에 책 “당신 개는 살쪘어요(Run, Spot, Run)”를 썼습니다. 고양이와 개의 사료가 되는 동물들과 순종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문제들을 감수하는 사육장, 비닐백이나 종이상자에 포장돼 팔리는 금붕어와 귀뚜라미 등의 애완동물을 기르는 행위는 동물이 가진 자기결정권을 무시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들을 기르는 이유는 순전히 우리가 원해서이며, 그들이 무엇을 먹을지, 어디에 살지, 어떻게 생활할지, 어떻게 보일지 그리고 심지어 이들의 성기를 제거할지 말지도 우리가 결정하니까요.

 

동물을 물건처럼 여기는 것은 새로운 흐름이거나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인간은 오랫동안 육식을 해왔고 동물의 가죽으로 옷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자신의 애완동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생각하면 여기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영국의 애완동물 산업 시장은 15조원에 달하며 2016년 미국인이 애완동물을 위해 쓴 돈은 70조원이 넘습니다. 올해 초 영국에서 이루어진 한 조사에서 자신의 애완동물을 배우자보다 더 사랑한다고 답한 사람은 12%, 아이들보다 더 사랑한다고 답한 사람은 9%, 가장 친한 친구보다 더 사랑한다고 답한 사람은 24%였습니다. 다른 조사에서는 애완동물을 소유한 영국인의 90%가 이들을 자신의 가족으로 여긴다고 답했으며 16%는 2011년 인구총조사에서 이들을 가족의 일원으로 포함시켰습니다.

 

“윤리적인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애완동물을 사람처럼 여깁니다. 동물을 가족의 일원으로 생각하고, 가장 친한 친구라 여기며, 수백만 달러에도 팔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웨스턴캐롤리나 대학의 심리학자이며,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연구하는 인간동물학(anthrozoology)을 만든 이들 중의 한 명인 할 헤르조그의 말입니다. 또한, 최근 연구들은 상대적으로 “단순한” 금붕어와 같은 동물조차 우리가 한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음을 보이고 있습니다. (2013년 뉴욕타임스에는 뇌과학자 그레고리 번스의 “개도 사람처럼 생각한다”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우리가 동물에게 더 많은 권리를 부여할수록 우리는 그들의 삶에 우리가 관여할 권리가 없다는 논리적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헤르조그의 말입니다.

 

그럼 앞으로 50년이나 100년 뒤에는 애완동물을 가질 수 없게 되는 것일까요? 서커스처럼 동물을 학대하는 산업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동물권리 운동가들은 올해 링링브라더스 서커스의 해산을 매우 중요한 승리로 생각합니다. 또 동물원에 대해서도 이를 없애거나 적어도 사람들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2006년에서 2016년 사이에 절대채식주의자(vegan)를 자임한 사람의 수는 350% 증가했습니다.

 

애완동물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둥물은 가축이었고, 사람들은 이들을 감정적인 대상으로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1698년 영국 도싯 지방의 한 농부는 일기장에 이렇게 썼습니다. “기름을 얻기 위해 늙은 개 큐온을 죽였다. 11파운드의 기름이 나왔다.” 그러나 19세기와 20세기, 도시 생활이 늘어나면서 보통 사람들은 가축을 기르지 않게 된 반면, 소득의 증가와 함께 애완동물을 기르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애완동물을 지극히 사랑하던 사람들조차 동물의 삶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지는 않았습니다. “당신 개는 살쪘어요”에는 1877년 뉴욕시가 762마리의 유기견을 철제 상자에 넣어 크레인을 이용해 이스트 강에 익사시킨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중에 수의사가 된 철학자 버나드 롤린은 1960년대에만 하더라도 개 주인들은 휴가 기간에 개를 어딘가에 맡기는 대신 휴가를 떠나기 전 개를 죽인후 휴가를 다녀와서 새로운 개를 사곤 했다고 말합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그러는 편이 더 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점점 더 많은 국가가 동물의 법적 권리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2015년 뉴질랜드 정부는 퀘벡 정부가 한 것처럼 동물은 의식이 있는(sentient) 존재이며, 따라서 그들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고 선언했습니다. (뉴질랜드 정부는 최근 “주머니쥐 잡기 운동(war on possum)”을 벌였는데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는 모르겠군요.) 영국은 아직 애완동물을 소유물로 인정하지만, 2006년 입법된 동물복지법(Animal Welfare Act)은 애완동물 소유주가 기본적인 수준의 보호를 반드시 제공해야 함을 명시했습니다. 미국에서도 애완동물은 소유물이지만, 푸에르토리코, 워신턴 D.C.와 함께 32개 주는 가정폭력금지 조항에 애완동물에 대한 폭력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2001년 로드아일랜드주는 애완동물 소유주를 “보호자(guardian)”로 명명하게 했으며 몇몇 동물권리 옹호자들은 이를 커다란 진전으로 묘사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실제로 바뀐 것은 이름 뿐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성숙함을 찬양하기에는 이릅니다. 미국에서 매년 안락사되는 보호소의 동물 수는 150만 마리(67만 마리의 개와 86만 마리의 고양이를 포함한)에 이릅니다. 영국에서 안락사되는 유기견의 수는 3,463마리로 훨씬 적지만, 동물학대예방왕립협회(RSPCA)는 동물학대 건수가 2016년 하루 400건이었으며 매년 5%씩 증가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자기 개를 차에 넣고 수의사에게 가서 ‘나는 이 개를 원치 않습니다. 죽여주세요.’라든지 유기견 보호소에 가서 ‘이 개를 더 이상 데리고 있을 수 없어요. 다른 주인을 찾아주세요.’라고 말해도 될까요?” 동물권의 지지자이며 뉴저지에 위치한 럿거스 로스쿨의 교수인 개리 프란시온의 말입니다. “만약 그렇게 해도 된다면, 그가 그럴 권리를 가졌다면, 그 개는 여전히 그 사람의 소유물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동물들이 자신이 애완동물로서 행복한지를 우리에게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전보다 동물의 의견이 더 많이 반영되고 있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합니다. 그저 우리 인간의 생각을 그들의 생각에 투영하는 것일 뿐입니다.” 피어스는 “부모(parents)”의 재치있는 말과 함께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는 수많은 애완동물을 가리키며 말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인간화함으로써 사실상 그들을 보이지 않게 만들고 있는지 모릅니다.”

 

동물을 소유하는 데 도덕적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이제 문제는 이 거대한 산업을 어떻게 멈출 것인가입니다. 헤르조그는 2010년 펴낸 “우리가 사랑하고, 미워하고, 먹는 것(Some We Love, Some We Hate, Some We Eat)”에서 동물 권리 운동가들의 동기가 감정적인지 지적인지를 조사했습니다. 그는 운동가 중 한 명이 “매우 매우 논리적”이었다고 말합니다. 그 운동가는 절대채식주의자가 된 후, 가죽 신발도 신지 않았고 자신의 여자친구 또한 자신과 같은 채식주의자가 되도록 설득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기르던 앵무새를 풀어주었습니다.

 

“그는 슬픈 눈빛으로 그 일을 회상했습니다. 자신이 앵무새를 야외로 데려가 날아가도록 해 주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 새가 야생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분명히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죽었을 겁니다. 나는 그 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그렇게 했던 것 같아요.’”

 

피어스와 프란시온은 애완동물을 소유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두 사람 모두 애완동물이 있습니다. 피어스는 개 두 마리와 고양이 한 마리를 기르고 있고, 프란시온은 유기견 여섯 마리를 기르고 있습니다. 적어도 아직은 애완동물 소유를 둘러싼 담론이 이론적이라는 것입니다. 애완동물은 존재하며, 이들을 버리는 것은 더 큰 피해를 준다는 것이지요. 프란시온은 또한 많은 이들이 동물을 잘 보살피는 행동이야말로 동물을 바르게 대하는 방법으로 생각하며, 사실은 그 반대라는 것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합니다.

 

동물복지 전문가로 펫 채리티의 대표이며 전 RSPCA 수장이었던 팀 워스도 여기에 동의합니다. “오늘날의 현실은 시장의 힘과 인간의 본성에 의해 결정된 것입니다. … 수천만 가정에서 애완동물을 기르는 것이 현실이지요. 문제는 어떻게 그들에게 적절한, 올바른 보호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인가입니다.”

 

하지만 애완동물 소유의 짧은 역사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이 있다면, 바로 동물에 대한 인간의 태도가 아주 쉽게 바뀔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애완동물과의 관계는 계속 바뀌어 왔습니다. 길게 보면, 나는 애완동물을 기르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유행으로 지나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로봇이 그 자리를 차지할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소수의 사람들만 계속 애완동물을 기를 수도 있습니다. 유행은 계속 바뀝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애완동물을 인간처럼 생각하게 될수록, 그들을 기르는 것이 비윤리적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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