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독을 먹이는 기업, 당신이 절대 모르는 이유
[미완의 민주주의-그대의 목소리를 찾아라] 반다나 시바
그의 손이 엄마의 밥상을 지켜왔다는 것을 알지 못 했다. 그의 마음이 없었다면 엄마의 정성은 애당초 갈 길을 잃는다는 것을. 내 아이의 몸을 지켜낼 수도 없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 했다.
도심 한복판에서 농민이 물대포를 맞았다. 죽음에 이르렀다. 그리고 세상은 소란스러워졌다. 폭력시위, 물대포, 사망진단서, 의사의 양심, 외압... 참사를 혼동으로 몰아가는 단어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쌀값은 개 사룟값에도 못 미치고, 토종의 씨앗은 뿌리내릴 땅을 찾지 못하고, 거대 자본에 의해 휘둘리는 세상의 밥상은 GMO와 항생제로 물들고 있다는 것. 오늘도 농부들은 황급히 거둬들여야 할 들녘의 여문 곡식을 뒤로하고 아스팔트에서 한뎃잠을 잔다.
신자유주의 질서가 견고해져 오던 지난 30여 년 동안 거대 자본에 의해 잠식되어 가는 세계의 농업과 환경을 지키고자 인도 출신의 물리학자 반다나 시바는 반세계화 저항에 앞장서 왔다.
이 펀딩의 마지막 편에서는 그녀의 대담을 복기하며 주로 지구 민주주의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하지만, 한국 농민의 뜨거운 저항을 증언하는 그녀의 말에서 그만 옴짝 못할 울컥거림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농부의 정성이 가슴으로 사무쳐왔다.
- ▲ 반다나 시바 ⓒ 안희경
반다나 시바는 1993년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에 맞서 전 세계 농민의 저항을 조직한 이야기를 했다. 쌀개방에 맞서 함께 한 한국 농부에 대한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았다.
물러나 있던 나의 기억도 선명해졌다. 당시 트랙터와 경운기가 고속도로를 메웠고, 전국의 농민들이 여의도로 몰려들었다. WTO(세계무역기구)로 저항 상대는 바뀌었지만, 그 뒷배로 버티고 있는 거대 자본은 변하지 않았고, 농부들은 기나긴 저항을 이어갔다.
반다나는 십년 뒤 2003년 멕시코 칸쿤에서 벌어진 그 일도 토로했다. 한국 농부가 스스로 목숨을 버리며 세상을 향해 외친 경고, "FTA(자유무역협정)가 농민을 죽이고 있다". 반다나는 묻는다. "그래서, 지금 소비자인 우리네 밥상은 안전한가?"라고.
농민이 스러져간 거기, 그 처절한 저항의 역사 속에 백남기 어른도 있었던 것이다. 그가 산골 마을을 찾아 토종 씨앗을 얻고 작물을 키워온 일생과 아스팔트 농사를 지어온 농심은 한 곳을 향한다. 농부의 안전한 삶 그리고 그 농부의 손에 기대어 먹는 국민의 안전한 밥상이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모든 국가는 같은 길을 걸었다. 미국의 농부도 한국의 농부도 브라질의 농부도 모두 도시로 몰려들었다. 산업이 농부들을 도시로 부르기도 했고, 땅에서 쫓겨나도록 부추기기도 했다.
그 결과 세계 인구 70%가 도시에 산다. 도시로 몰려온 과거의 농부들은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 손으로 땅을 일궈 먹고 살던 능력, 모든 야생 동물들이 다 갖춘 자급 능력을 상실하고 만다. 살아갈 가능성은 오직 돈을 버는 데 있기에 인간 자체가 생산을 위한 단가 경쟁에 돌입한다.
농촌의 삶도 변하였다. 농업이 산업화되고, 식량이 투기자본에 잠식되면서 전 세계 농토는 시장 논리로 재편되었다. UN 식량농업기구(FAO)의 발표에 의하면 오늘날의 농업 생산량이라면 성인 기준 하루 2200칼로리로 120억 인구가 먹고 살 수 있다 한다.
두 배 가까이 인구가 늘어난다 해도 배고픈 사람이 생겨서는 안 될 양이다. 하지만 지금 5초 마다 10살 이하의 어린이가 배곯아 죽고 있다. 매일 5만7천 명이 죽는다. 식량이 제품이 됐고, 돈이 되었기에 벌어지는 살인이다.
기아 걱정 없는 우리네 밥상은 어떨까? 주요 식품 회사들이 GMO 콩을 수입한다. 된장 간장은 유전자 조작 씨앗이 잠식했다. 밭 한 뙈기 꾸릴 줄 모르는 도시 노동자들, 한 평의 땅이 있어도 시간이 없는 타임푸어 워킹푸어가 마주할 밥상은 점점 더 먹지 못할 것으로 차려지고 있다.
농업이 산업이 된 배경에는 세계대전이 있는데, 전쟁 기기를 만들던 회사들은 전쟁이 끝나고 팔 곳이 없자 농기계를 만들었다. 화약을 만들던 회사는 질소를 비료로 전환시켰다. 독가스를 만들던 기업을 대안을 찾기가 훨씬 쉬웠다. 제초제, 살충제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리고 그 회사들이 세계의 종자를 끌어모아 유전자 변형을 하여 특허를 내고 불임 종자를 만들어 제초제와 함께 팔고 있다. 세계의 농민과 농토가 그들의 이윤 속으로 빨려가도록 국가를 주무른다. 이제 식량은 부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가난 할수록 몸으로 더 많은 독소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식량 독재구조이다. 지구 전체를 시들게 하는 죽음의 순환인데, 자본은 이를 극렬히 외면하고 있다. 반다나 시바는 지구 민주주의를 제안한다. "살리는 경제", "살아나는 민주주의", "살아있는 의식"을 일으키자 한다. 죽음의 문화가 아닌 생명의 문화 속에 살길이 있기에.
반다나 시바와의 대담은 2012년 10월 31일 샌프란시스코, 세계화국제포럼 본부에서 가졌다. 4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녀의 지적이 더욱 구체적 실상이 되어버린 오늘이다.
"지금 당신이 뭘 먹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면, 이는 기업이 매일 백만불을 쓰며 전하는 메시지가 작동한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당신한테 독을 먹이지만 당신은 그 사실을 결코 알 수 없다' 이는 음식 독재입니다. 식량 독재죠. 음식 독재는 정치적 독재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요. 저는 독재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를 지지합니다.
식품은 생태적 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입니다. 지구의 자원에 대해 그 어떤 (인간의) 활동보다 훨씬 많은 폐해가 산업화된 농업에서부터 식품산업 구조 전반에까지 벌어지고 있어요. 지구의 75% 토양이 약화됐고, 75% 수자원이 파괴되었으며, 75% 생물종이 멸종했습니다. 기후 위기는 40% 증가했고요. 제일 먼저 우리는 소농과 친환경 농업을 살려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시대의 엄청난 환경 문제를 풀어갈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기본적인 권리는 바로 먹을 권리입니다. 먹지 않으면 우리는 살아갈 권리를 얻지 못하거든요. 십억의 인구가 먹을 권리를 빼았겼습니다. 지구에서 생산되는 식량 대부분이 음식이 아니라 상품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에요.
나는 알아요. 몇 년 전 일이죠. 한국 농민들과 한국인은 저항했습니다. 바로 호르몬 항생제를 주사한 소고기 수입을 막자고요. 한국인은 외쳤죠. "소고기 수입 반대! 우리에겐 우리의 좋은 소고기가 있다." (FTA)이해 당사자들은 부정했어요.
저는 자유무역으로 벌어진 모든 것을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제가 92년, 93년에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에 반대하는 전지구적인 저항을 조직했습니다. 50만 인도인이 한국 농민을 포함해 전세계 농민들과 함께 저항했습니다. (2003년) 칸쿤에서는 한국 농민이 목숨을 끊으며 외쳤죠. "자유무역이 농부를 죽이고 있다!"
그동안 27만 인도 농부들이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농부들은 점점 힘들어졌구요. 그럼 소비자는요? 우리는 좀 나아졌나요? 아니죠. 우린 이제 독을 먹고 사는 처지가 됐잖아요. 온갖 살충제 말입니다. 우리는 계속 더 나쁜 식품을 먹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농민들만 싸워서는 안 되는 시대가 됐어요. 소비자들만도 힘든 싸움입니다. 청년들의 문제도 그들만으론 안 됩니다. 우리 모두 함께 우리의 권리를 지키고 미래의 자유를 지켜내야 합니다.
모든 문제에는 씨앗과 뿌리가 있죠. 모든 해법에도 씨앗이 있구요. 씨앗이라는 단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생물학적인 의미로는 삶을 주죠. 또, 어떤 일의 바탕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우리가 직면하는 문제에는 근본 원인들이 있어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시작할 수 있는 근원적인 출발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씨앗 해방 캠페인'을 합니다. 왜냐하면, 거대 기업이 종자를 소유하고, 유전자를 조작해서, 특허로 묶고, 불임종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업들은 엄청난 이윤을 만들고, 그들만을 위한 제국을 창조하려고 지구의 인류와 모든 생명을 완전히 통제하려 합니다. 하지만 씨앗을 통해서 우리는 생명을 되찾고, 자유를 되찾을 겁니다. 이는 바로 25년 전에 제가 '나브다냐'를 시작한 이유지요. 올해부터 지구적인 시민 운동으로 전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자를 보존하고, 먹거리를 키워요. 유기농사를 짓습니다. 공정무역을 이뤄왔죠. 사람들이 와서 맛보고는 이런 말을 해요. 어릴 적 먹던 그 맛이라고.
제 책 중에 <지구민주주의>라고 있습니다. 지구에서 영감을 얻은 책이죠. 지구의 모든 생명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흙은 식물과 연결되어 있죠. 식물은 우리의 건강과 연결됩니다. 우리가 어떻게 농사 짓느냐에 따라 기후변화도 좌우됩니다. 기후변화는 우리가 식량을 갖느냐 마느냐를 결정하고요. 그러니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는 거죠.
제가 지구 민주주의를 말할 때, 이는 모든 생명의 민주주의를 뜻하는 겁니다. 지구는 하나의 가족이니까요. 또한 이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이기도 해요. 우리 삶에 뿌리내린 민주주의죠. 돈, 자본, 권력에 뿌리내린 것 말고요.
미국의 선거를 봐요, 아마 한국 선거도 그럴지 몰라요. 누가 더 돈을 많이 가졌냐에 따라 달라지는 선거잖아요. 민주주의란 국민이 국민을 위해 국민을 바탕으로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기업에 의해 그들을 위하고 그들 손으로 더 많은 돈을 벌도록 지구의 자원을 훔치게 하고 있습니다. 지구 민주주의는 바로 우리 모두의 연결이에요.
여성이 권한을 갖고, 배고픔을 없애고, 이 모든 것이 서로 안에 연결되어 생명의 피륙으로 짜여지는 것이죠. 이를 위한 하나의 핵심이 '살리는 경제'입니다. 지금까지는 죽이는 경제였어요. (두 번째 핵심,) '살아나는 민주주의', 지금까지 텅빈 민주주의가 됐죠. 우리를 대변해야 하는 정치인들은 오히려 우리와 단절되어 버렸으니까요. 그리고 (세 번째) '살아있는 의식'을 일으켜야 해요. 죽음의 문화가 아닌 생명의 문화 속에 있어야 합니다."
- 지금 당장 우리는 무얼 할 수 있을까요?
"씨앗을 지키는 겁니다!"
- ▲ 반다나 시바 ⓒ 안희경
촘스키 선생을 비롯해 모든 석학에게 늘 마지막으로 건넨 질문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때 보았던 그들의 얼굴을 기운 잃은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다. 석학들의 표정은 '그걸 왜 나한테 묻나요? 당신이 답인데...'라고 반문하는 듯했다. 그리고 직접 말했다.
"당신들이 그 답을 알고 있습니다."
창을 열어 밖을 바라보려고, 더 멀리 보려고 안경알만 닦아왔던 내게 석학들이 꺼내준 것은 거울이었다. 내 안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 결국 답은 내 안에 있고, 세계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답도 우리가 품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미완의 민주주의-그대의 목소리를 찾아라' 이 기획이 우리의 가치를 확인해보는 여정이 되길 바란다. 단 한 명이라도 그 석학의 지혜에 화답한다면, 세상은 한층 나아지리라 믿기에. 한 생명이 밝아지면, 세상은 그만큼 희망을 얻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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