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선생을 기리며 관련 글을 읽고 찾고 하다가 만난 글.

여기 가져와 남겨두어 틈틈이 읽고자...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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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 공부 모임/ 2004년 11월 1일 월요일 오후 2시-5시

한국에서 이반 일리치를 가장 잘 말씀해 주실 수 있는 분인 김종철 선생님을 모시고 이반 일리치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날의 자리는 자유대학의 일리치 공부모임 사람들이 만들었고 자유대학의 다른 모임 친구들이 참여해 3시간동안 진행되었다. 김종철 선생님은 광주에 10월 31일 오셔서 운주사에서 강의를 하시고, 11월 1일 오후에 일리치 공부모임과의 대화, 저녁엔 빛고을생명평화학교 강의를 하셨다. 매우 피곤한 일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열정적인 강의와 사람들과의 만남을 보여주셨다.

서로 소개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20대 초반부터 40대 후반까지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참여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반 일리치의 삶과 사상에 대해 김종철 선생님이 전반적으로 이야기하시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이야기를 생각나는 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토막 토막으로....

○ 이반 일리히라고 번역해 나온 책들이 있는데 정확히 이반 일리치다. 이반 일리치는 독일 사람도 아니고, 친구들도 이반 일리치라고 부르고 본인이 자신을 이반 일리치라고 불러주길 원했다. 미토 출판사에서 적어도 이반 일리치 사상 전집을 내려 했다면 그 정도의 성실성과 조사는 있어야 했지 않을까. 그런 불성실성이 번역에도 그대로 전해진다. 사상가의 이름 하나 제대로 번역을 못하면서 책은 얼마나 제대로 번역을 했겠는가

○ 이반 일리치의 사상에 여러 평가가 존재한다. 이반 일리치 클럽의 제자들-사실 그는 어떤 사제관계도 맺은 적이 없지만, 그의 사상에 영향 받은 사람들을 그렇게 부를 수 있다면- 중 일부는 그의 사상이 쓸모가 없었다고 증언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 피터 버거는 " 20세기 현대사를 보는 관점을 일리치를 통해서 얻었다. 그러나 80년대에 들어서 그의 사상은 쓸데가 없었다. 그래서 거의 읽지 않았다"라고 말했고, 오래된 미래로 잘 알려진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80년대 이후의 일리치는 거의 도움이 안되었다고 말한다.

아마 그 이유는 이반 일리치 사상의 전반기-Deschooling society(학교없는사회), tools for conviviality(공생공락을 위한 도구, 성장을 멈춰라로 출판됨), limits to medicine(의학에 한계를 가해야 한다, 병원이 병을 만든다로 출판됨), energy and equity(에너지와 평등,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로 출판됨) 등의 팜플렛을 저술한 시기-엔 적어도 사회정치적 프로그램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 신뢰했다면, 후반기로 갈수록 사회정치적 프로그램의 가능성을 신뢰하지 않고 그런 프로그램이 별 의미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이반 일리치의 제자 중 한 사람인 독일 그린피스 의장을 지냈던 볼프강 작스의 경우 작년에 한국을 방문했었다. 그는 세계의 흐름에 실천적으로 어떻게든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런 흐름에서 리우 회의와 리우+10 회의에 적극 개입한 바 있다. 그의 화두는 ecology and justice, 생태적 가치와 사회적 정의를 조화시키는 문제였다. 그는 서구가 풍요에 시달리고 있다고 보았다. 여기서 시달린다는 표현은 매우 중요한 표현이다. 그는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사회가 되려면 당장 독일이 가진 부의 9/10를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말해 10%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풍요에 시달리지 않고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해선 그래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볼프강 작스가 브레멘의 일리치를 방문했을 때 일리치는 그의 제자이자 친구인 볼프강 작스에게 그렇게 말했다. "왜 쓸데없는 일을 하고 다니냐고". 아마 그린피스 일과 녹색당 일을 지칭하지 않았는가 생각한다

● 일리치의 팜플렛-그는 책을 근사하게 내려 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의 그것들을 팜플렛으로 불렀다. 그래서 그의 책들은 군더더기가 거의 없다. 거의 요약본이라 할 정도로..-들은 우리가 처한 현실을 근본의 자리에서 명쾌하게 해설해 준다. 너무 명쾌하고 너무 근본적이다 보니 현실의 표피적인 개혁 프로그램으로는 해결책을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답답해진다. 늘 묻듯이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라는 질문이 쇄도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일리치 사상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성급히 묻는다. 누군가 답을 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 일리치의 우정 이야기엔 고개가 갸웃해진다. 우정이 뭐가 어떻다는 말인가 하고 말이다. 일리치 후기 사상엔 우정(friendship)과 환대(hospitality)를 많이 강조한다. 김종철 선생님은 우정이 결국 세상을 구원할 열쇠라고까지 이야기한다. 늘 이 우정에 관한 이야기는 화두이다. 간디와 많은 사상가들에게서 이 우정 이야기는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그 날 김종철 선생님의 설명을 나름대로 이해하면 다음과 같다.

● subsistence, 자급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근근히 살아가는 모습을 이야기한다. 내 생각에 이런 근근히 살아가는 모습은 자본주의 밖의 사람들 - 예를 들어 자본주의 경쟁 시스템안에서 패배해 밀려났거나, 자본주의 시스템을 거부한 사람들 -이 보여주는 모습인데 이들은 서로에 상호의존하고 우정에 기반한 보살핌이 없이는 삶을 꾸려갈 수 없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우정이나 인정 같은 것은 믿을 수 없다고, 오로지 믿을 수 있는 것은 돈밖에 없다고, 그래서 열심히 돈을 벌어 잘 살면 된다고 말한다. 점점 우정이 파괴되고 공동체가 파괴된다. 그러나 그 자리에 남는 것은 피폐함 뿐이다.

● 중요한 것은 우정을 되살리는 것이다. 자본주의 시스템 밖에서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땅을 만들고, 그 땅을 선택한 사람들(자본주의의 부를 거부하고 자발적 가난을 선택한 사람들)이 우정과 보살핌에 기대고 상호의존하면서, 그 자본주의 바깥의 땅에서 살아남는 것이다. 그 삶이 얼마나 행복할 것이고 얼마나 자유로울 것인가, 또한 그런 근본적 삶과 도구, 운동이 기반이 되지 않고 어떻게 자본주의의 온갖 병폐를 치유할 수 있을 것인가?

○ 일리치는 자신을 역사가이자 시인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에겐 어떤 레테르도 정확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그를 사회학자라 하는데 그의 초기 저서들도 엄밀히 말하면 사회학적 저서라 부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근대가 만들어낸 분류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 사회 시스템, 인간적 규모에는 한계가 있어야 한다. 복잡하고 완벽한 시스템안에는 인간의 자리가 없다.(doing theology) 생명과학을 논하고 DNA를 논하는 것,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불경이다. 인간은 알 권리도 있지만 모를 권리도 있다. 침묵으로 대답해야 할 문제가 있는 것이다. 모를 권리가 있는 문제를 인정하지 않고 자꾸 알려고 하는 것이 자꾸 어떤 문제를 만들어낸다.

○ Tools for conviviality; 공생공락을 위한 도구가 세 가지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시와 자전거와 도서관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시인이고 시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 We are called to be poets. poetic ability; 근대사회로 오면서 이 시적 능력, 자율적 능력이 퇴화했다. 배움(leaning)이 교육(education)으로 대체되면서 시적 정서는 사라지기 시작했다. 자전거는 속도의 한계, 인간 교통 수단의 한계를 말하고, 도서관은 배움(learning)이 가능한 공간으로서 의미를 가지고 있다.

○ 제국주의가 식민지를 침략할 때 군대보다 더 무서운 게 바로 학교를 만드는 것이다. the transformation of learning into education; 배움의 교육으로의 변화, 이것이 근대교육의 실체이다. 시스템은 삶을 오염시키고 Education은 인류의 행복을 해치는 바이러스다.
 
○ 녹색평론에서 복지체제에 대해 거론하고 비판하는 이야기를 지금 다루어야 할지 여러모로 고민이다. 

○ 일리치는 경이로움(surprise)을 높이 평가했다.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움으로 가득차 있는가, 얼마나 인생은 시적인 것인가?, 복지시스템은 경이로움을 감소시키고 경이로움을 느끼는 능력을 감퇴시킨다. 녹색평론의 독자 중에 경북에서 양로원을 운영하는 분이 있다. 이 양로원에서 지역통화를 실험했는데 노인들의 삶에 생기와 활력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이런 경이로움이 복지시스템안에서는 존재하기 쉽지 않다.

어떤 영화감독이 스웨덴이 제일 형편없는 사회라고 했는데, 왜냐하면 그들이 영화작업을 예술이 아닌 사무 보듯이 했기 때문이었다. 9시에 출근하고 5시에 퇴근하고, 시스템만 있고 열정이 없다. 영화를 어떻게 그런 시스템으로 찍을 수 있는가? surprise, 경이로움이 없는 사회, 시적이지 않는 사회가 어떻게 아름다운 사회인가?
 
○ 쿠에르나바카에 있던 CIDOC의 여러 프로그램 중 스페인어 학교는 남미로 파견될 예비 선교사들의 스페인어 교육을 담당하면서 그들을 탈세뇌화하였다. 그들에게 일리치는 변해야 할 곳은 라틴아메리카가 아니라 미국이고, 미국의 풍요가 문제이고, 풍요에 시달리는 것이 문제라고 이야기했다. 그런 교육들은 교황청의 경계를 일으켰고 급기야 교황청 심문실로 호출되어 알 수 없는 고문을 당했고, 결국 일리치는 사제직을 반납했다. 그러나 그는 평생을 어머니 교회의 종으로 살았다.

○ conviviality는 subsistence, 근근히 생활을 영위하는 수준, 그러한 경제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는데 일리치 그룹은 이를 지극히 normal한 상태로 보고 이를 벗어날 때 불경이 발생한다고 본다. subsistence는 단순히 경제적 차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넓은 의미의 문화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 CIDOC이 십년이 되어가면서 안정화되었고 이에 따라 점점 관성적이 되면서 의욕과 열정이 떨어져갔다. 일리치는 해체를 결심했고 2년의 기간을 두고 직원들과 국제 정세와 CIDOC의 역할 등에 대한 세미나를 계속했다. 2년 동안 수입을 적립해 직원들에게 이를 나눠주고 CIDOC을 해체하였다. 어떤 일이던 안정상태(Security)가 되면 시스템화되고 인간의 의욕과 열정에 의해 일이 진행되기 어려워지는 위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 평화는 개발로부터 연결고리를 잘라야 가능한 것이다. 경제는 19세기까지 인간 생활의 다만 일부였을 뿐이었지만 그 이후부터는 전부가 되었다. 바로 homo economicus, 경제적 동물이 된 것이다. 경제, 돈이 전부가 된 세상에서 평화는 가능하지 않다. 세계화는 개발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세계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평화는 파괴될 것이다.

○ 일리치가 어느 집에 초대를 받았을 때, 식사를 하던 중 그 집 아이가 사투리와 슬럼가의 단어를 사용하였는데 그 때마다 부모들이 제지하였다. 그 모습을 보고 일리치는 그 집에는 교육만 있지 자유가 없다고 말했다. 1492년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찾아 떠난 뒤 Nebrija는 여왕에게 스페인어 문법 사전을 편찬하는 데 돈을 투자하라고 꼬시면서, 그 문법사전이 신대륙 발견보다 더 많은 이익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사전이 만들어졌고, 당연히 이 사전은 도시 귀족들의 말을 표준말로 해서 만들어졌다. 이후 subsistence culture는 무너지기 시작했고 개발과 세계화로 이어졌다.

○ 일리치는 80년대 이후 중세에 많은 관심을 가졌고 근대가 만들어지는 역사적 근원을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를 느꼈다. 이 때 나온 책이 텍스트의 포도밭에서 라는 것인데 이것은 빅토르의 휴의 학습론을 분석한 책이다. 이 책에서 일리치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면서 독서가 monastic reading(소리내 읽은 육체적 경험과 함께 읽기)에서 scholastic reading(묵독, 시각적 읽기, 학자적 읽기)으로 변질되었다고 말한다. 책이란 원래 포도를 한알 한알 따서 음미하듯이 한 자 한 자 음미하면서 읽어야 하는데 때문에 소리내어 함께 읽는 일이 중요하다. 독서란 과거의 지혜에 대해서 귀를 기울이는 것이고 때문에 서울에선 일리치 '읽기'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 일리치는 기독교의 타락을 강조하는데, 초기 기독교 가정엔 세 가지의 보물이 늘 구비되어 있었다. 그것은 양초와 담요와 마른 빵인데, 모르는 손님이나 여행자가 왔을 때 그가 문지방을 넘어 방으로 갈 수 있도록 길을 밝힐 양초와 배고픔을 달랠 수 있는 마른 빵과 따뜻하게 잠잘 수 있도록 담요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교회가 그 기능을 빼앗아감으로써 기독교 가정은 더 이상 그런 역할을 할 필요가 없고 점차 귀찮은 일이 되어갔다. hospitality; 환대가 사라진 것이다. 산업사회를 넘어서는 길을 모색함에 있어 이 자발적 환대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현재 비산업사회 일부에서 틈새로 남아있는 이 환대를 어떻게 되살릴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 hope against hope

[출처] 광주 이반 일리치 읽기모임에서 김종철 선생을 초대하여 만남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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