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는 '바람'을 노래한 시를 나누었다.

바람... 어찌 보면 우울과 번민과 아픔을 시원하게 날려줄 같다가도

현재를, 기쁨을, 신남을 순식간에 날려버릴 것 같은 그런 바람.

아니면 저 멀리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전해줄 메신저이거나.

뭐, 그런 '바람'을 

암튼 '바람'에는 참 많은 바람이 담겨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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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왜 등 뒤에서 불어오는가

 

_ 나희덕

 

바람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순간

눈이 멀 것만 같아

몸을 더 낮게 웅크리고 엎드려 있었다.

떠내려가기 직전의 나무뿌리처럼

모래 한 알을 붙잡고

오직 바람이 지나가기만 기다렸다.

그럴수록 바람은 더 세차게 등을 떠밀었다.

 

너를 날려버릴 거야

너를 날려버릴 거야

저 금 밖으로, 흙 밖으로

 

바람은 왜 등 뒤에서 불어오는가

수천의 입과 수천의 눈과 수천의 팔을 가진 바람은

 

나는 엉금엉금 기어서

누군가의 마른 종아리를 간신히 붙잡았다.

그 순간 눈을 떴다

 

내가 잡은 것은 뗏목이었다.

아니, 내가 흘러내리는 뗏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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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_ 포루그 파로흐자드

 

나의 작은 밤 안에,

바람은 나뭇잎들과 밀회를 즐기네

나의 작은 밤 안에

적막한 두려움이 있어

 

들어 보라

어둠이 바람에 날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나는 이방인처럼 이 행복을 바라보며

나 자신의 절망에 중독되어 간다

 

들어 보라

어둠이 바람에 날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지금 이 순간, 이 밤 안에

무엇인가 지나간다

그것은 고요에 이르지 못하는 붉은 달

끊임없이 추락의 공포에 떨며 지붕에 걸쳐 있다

조문객 행렬처럼 몰려드는 구름은

폭우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한 순간

그 다음엔 무

밤은 창 너머에서 소멸하고

대지는 또다시 숨을 멈추었다

이 창 너머 낯선 누군가가

그대와 나를 향하고 있다

 

,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푸르른 이여

불타는 기억처럼 그대의 손을

내 손에 얹어 달라

그대를 사랑하는 이 손에

생의 열기로 가득한 그대 입술을

사랑에 번민하는 내 입술의 애무에 맡겨 달라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바람 잘 날 없어라

 

_ 박노해

 

바람 잘 날 없어라

내 생의 길에

온 둥치가 흔들리고

뿌리마다 사무치고

 

아 언제나 그치나

한 고비 넘으면 또 한 고비

이렇게 살아야 하나

이렇게 싸워야 하나

 

바람 잘 날 없어라

울지 마, 살아 있다는 것이다

오늘 이 아픔 속에 외로움 속에

푸르게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다





추풍에 부치는 노래

 

_ 노천명

 

가을바람이 우수수 불어옵니다

신이 몰아오는 비인 마차 소리가 들립니다

웬일입니까

내 가슴이 써늘하게 샅샅이 얼어듭니다

 

인생은 짧다고 실없이 옮겨 본 노릇이

오늘 아침 이 말은 내 가슴에다

화살처럼 와서 박혔습니다

나는 아파서 몸을 추설 수가 없습니다

 

환혼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섭니다

하루하루가 금싸라기 같은 날들입니다

어쩌면 청춘은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었습니까

연인들이여 인색할 필요가 없습니다

 

적은 듯이 지나 버리는 생의 언덕에서

아름다운 꽃밭을 그대 만나거든

마음대로 앉아 노니다 가시오

남이야 뭐라든 상관할 것이 아닙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거든 밤을 도와 하게 하시오

총기(聰氣)는 늘 지니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금싸라기 같은 날들이 하루하루 없어집니다

이것을 잠가 둘 상아 궤짝도 아무것도

내가 알지 못합니다

 

낙엽이 내 창을 두드립니다

차 시간을 놓친 손님 모양 당황합니다

어쩌자고 신은 오늘이사 내게

청춘을 이렇든 찬란하게 펴 보이십니까



(친일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작품만으로 감상해 보고자 한다. 죽음을 앞둔 병상에서 쓴 시)





바람만이 아는 대답

 

_ 밥 딜런

 

사람은 얼마나 더 먼 길을 가야만

사람다워질까?

흰 비둘기는 얼마나 많은 바다를 건너야

모래밭에서 편안히 쉴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많은 포탄이 터져야만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끝날까?

친구여, 묻지 말아요

오직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얼마나 더 많은 세월이 흘러 가야만

산이 씻겨 바다로 갈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많은 세월이 흘러 가야만

사람들은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

사람들은 얼마나 더 외면을 하고

보지 못한 척할 수 있을까?

친구여, 묻지 말아요

오직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얼마나 더 많이 고개를 들어야

사람은 하늘을 볼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많은 귀를 가져야

세상 사람들의 울음을 들을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더 죽어야

너무 많이 죽었음을 깨닫게 될까?

친구여, 묻지 말아요

오직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바람이 불어오는 곳

 

_ 김광석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덜컹이는 기차에 기대어

너에게 편지를 쓴다

꿈에 보았던 그 길 그 길에 서 있네

 

설레임과 두려움으로 불안한 행복이지만

우리가 느끼며 바라볼 하늘과 사람들

힘겨운 날들도 있지만 새로운 꿈들을 위해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햇살이 눈부신 곳 그곳으로 가네

바람에 내 몸 맡기고 그곳으로 가네

출렁이는 파도에 흔들려도 수평선을 바라보며

햇살이 웃고 있는 곳 그곳으로 가네

 

나뭇잎이 손짓하는 곳 그곳으로 가네

휘파람 불며 걷다가 너를 생각해

너의 목소리가 그리워도 뒤돌아 볼 수는 없지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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