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세상이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하게 하는 무속 신화. <원천강본풀이>
주인공(?) 오늘이 이야기를 통해 들여다보는 삶의 본질(?), 뭐 이런 걸 생각해 볼 수도 있겠......^^
어여어여 작업해서 책으로 나와랏!
그림은 웹툰 <묘진전>을 쓰고 그린, 젤리 빈 님이 그려주었다.
대개 신화 이야기들이 가부장적인 게 많아 불편한 느낌이 강하다. 여기에 젤리 빈의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글과는 다른 젤리 빈 만의 컷과 만화를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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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적막한 들에서 원천강으로 _원천강본풀이
_ 신동흔
먼 옛날에 적막한 들에 옥 같은 여자아이가 나타났다. 아이를 발견한 사람들이 물었다.
“너는 누구냐? 어디에서 왔으며, 이름은 무엇이냐?”
“저는 강림들에서 솟아나서 혼자 살았습니다. 성도 모르고 이름도 모릅니다.”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왔느냐?”
“학이 날아와서 한 날개를 깔아 주고 한 날개를 덮어 주며 먹을 것을 가져다 줘서 오늘까지 살아왔습니다.”
“네가 오늘 우리를 만났으니, 오늘을 낳은 날로 하고 이름을 오늘이라고 하자꾸나.”
세상으로 나온 오늘이가 이리저리 다니다가 박이왕의 어머니 백씨부인을 찾아가자 부인이 말했다.
“오늘아, 너의 부모님 나라가 어디인지 아느냐? 부모님 계신 곳은 원천강이다.”
“원천강은 어찌하면 갈 수 있습니까?”
“서천강 흰모래마을 별층당에 높이 앉아 글 읽는 도령을 찾아가 물으면 알 길이 있을 게다.”
오늘이는 바로 길을 나서서 흰모래마을 별층당을 찾아갔다. 저물 무렵에 별층당을 찾아 들어가자 청의동자가 나와서 누구냐고 물었다.
“저는 오늘이입니다. 부모를 찾아 원천강에 가고 있습니다. 도련님은 누구십니까?”
“저는 장상이입니다. 하늘의 명으로 여기서 늘 글을 읽고 있습니다.”
“원천강 가는 길을 알려 주십시오.”
“연화못 가에 연꽃나무한테 물어보면 알 길이 있을 것입니다. 원천강에 가시거든 왜 내가 늘 글만 읽어야 하고 성 밖으로 못 나가는지 알아봐 주십시오.”
“꼭 알아볼게요.”
오늘이가 다음 날 아침 일찍 길을 떠나 한참을 가다 보니 연화못 가에 연꽃나무가 보였다.
“연꽃나무님, 부모님을 찾아 원천강에 가는 길입니다. 어디로 가면 원천강을 갈 수 있나요?”
“원천강 길은 청수바닷가에서 뒹구는 큰뱀을 찾아가 물으면 알 수 있을 거예요. 원천강에 가거든 내 팔자를 좀 알아다 주세요. 나는 겨울에 움이 뿌리에 들고 정월이면 몸속에 들었다가 2월에 가지로 가서 3월이 되면 꽃이 피는데 맨 윗가지만 꽃이 피고 다른 가지는 피지 않으니 어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오늘이는 답을 알아보겠다고 약속하고 길을 떠나 청수바닷가를 찾아갔다. 바닷가에서 이리저리 구르는 큰 뱀을 만나서 원천강 가는 길을 묻자 뱀이 말했다.
“길 인도하기는 어렵지 않으나 내 부탁도 들어주오. 다른 뱀들은 야광주를 하나만 물고도 용이 되어 올라가는데 나는 세 개나 물고도 용이 못 되니 어쩌면 좋겠는지 알아봐 주오.”
오늘이가 응낙하자 큰 뱀은 오늘이를 등에 태우고 물로 들어가 청수바다를 건네주었다.
“가다 보면 별층당에서 글을 읽는 매일이라는 처녀가 있을 테니 길을 물어보구려.”
오늘이가 큰 뱀과 작별하고 길을 가다 보니 한 처녀가 별층당에 높이 앉아 글을 읽고 있었다. 오늘이가 다가가 인사하고 원천강 길을 묻자 매일이가 말했다.
“길을 한참 가다 보면 시녀 궁녀가 우물가에서 울고 있을 겁니다. 그들한테 말하면 소원을 이룰 거예요. 원천강에 가거든 내가 매일 여기서 글만 읽는 팔자가 어찌 된 일인지 알아봐 주세요.”
“네. 그럴게요.”
오늘이가 그날 밤을 지내고 일찍 길을 나서서 한참을 가다 보니 시녀 궁녀가 우물가에서 흐느껴 우는 것이 보였다.
“여기서 왜 이렇게 울고 계신가요?”
“우리는 하늘옥황 시녀로 죄를 지어 내려왔는데 이 우물물을 다 퍼내기 전에는 돌아갈 수가 없어요. 그런데 물을 푸려 해도 바가지에 큰 구멍이 나서 아무리 해도 퍼낼 수가 없습니다.”
오늘이는 시녀들에게 정당풀을 뜯어서 덩어리를 만들게 한 다음 그것으로 구멍을 막고 송진을 녹여 칠하고는 하늘에 정성껏 기원을 올렸다. 그렇게 하고 물을 푸자 물이 한 방울도 새지 않아서 금세 우물물이 말라붙었다.
“덕분에 저희가 살았습니다. 원천강에 간다고 하셨지요? 우리가 동행해 드리겠습니다.”
시녀들이 앞장서서 한참 동안 길을 가다 보니 멀리 낯선 별당이 보였다. 시녀들은 그곳을 가리킨 뒤 오늘이 앞길을 축복하고서 하늘로 올라갔다.
오늘이가 원천강에 가까이 가서 보니 주위에 높다랗게 만리장성이 둘러 있고 대문이 꽁꽁 닫혔는데 무서운 문지기가 지키고 있었다.
“저는 인간 세상에서 온 오늘이입니다. 이곳이 부모 나라라고 해서 찾아왔습니다. 들여보내 주세요.”
“여기는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야. 문을 열어 줄 수 없다.”
문지기가 냉정하게 가로막자 오늘이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오늘이는 문 앞에 쓰러져 통곡하기 시작했다.
오늘이는 백만 리 인간 세상 먼 곳에서
어린 처녀 혼자서 외로이
산과 물을 건너고 온 고생 겪으면서
부모 나라라고 이런 곳을 찾아왔는데
이렇게도 박정하게 하는구나.
이 문 안에 내 부모 있으련마는
이 문 앞에 나 여기 왔건마는
원천강 신인들은 너무 무정하다.
빈 들에 홀로 울던 처녀
산 넘고 물 건널 적에 외로운 처녀
부모 나라 문 앞에 외로운 처녀
부모는 다 보았나, 제 할 일 다하였나.
박정한 문지기야 무정한 신인들아.
그립던 어머님아 그립던 아버님아.
오늘이가 하염없이 흐느껴 울자 돌 같은 문지기 심장에도 동정심이 우러났다. 문지기가 안으로 들어가 그 사실을 알리자 원천강 신인들이 그렇지 않아도 울음소리를 들었다면서 아이를 들이게 했다. 오늘이가 꿈꾸는 듯 안으로 들어가자 신인들이 물었다.
“너는 무슨 이유로 이곳에 왔느냐?”
그때 오늘이가 학의 깃 속에서 살던 일부터 지금까지 지나온 일을 하나하나 이야기하자 신인들이 다가와 오늘이 손을 꼭 잡고서 말했다.
“기특하구나. 우리가 너의 부모로다. 너를 낳은 날에 옥황상제가 우리를 불러 원천강을 지키라 하니 어찌 거역할까. 할 수 없이 여기 있게 됐지만 항상 네가 하는 일을 보면서 너를 보호하고 있었노라.”
서로 정담을 나눈 뒤 부모는 오늘이를 이끌고 원천강 구경을 시켜 주었다. 만리장성 둘러싼 곳에 문들이 나란히 달려 있는데, 첫째 문을 여니 화창한 날씨에 봄꽃이 만발하고, 둘째 문을 열자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며, 다음 문을 여니 황금 들판에 나무 열매가 가득하고, 또 한 문을 여니까 세상이 눈으로 하얗게 덮여 있었다. 춘하추동 사시절이 그 안에 다 모여 있었다.
“이제 저는 왔던 길로 돌아가렵니다. 오면서 부탁받은 일이 많은데 어찌해야 할지 알려 주세요.”
오늘이가 장상이와 연꽃나무, 큰뱀, 매일이의 사연을 이야기하자 부모가 말했다.
“장상이와 매일이는 부부가 되면 만년 영화를 누릴 게야. 연꽃나무는 윗가지 꽃을 따서 처음 보는 사람한테 주면 다른 가지에도 꽃이 만발할 것이고, 큰 뱀은 야광주 두 개를 뱉어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주면 용이 될 수 있지. 너는 연꽃과 야광주를 가지면 신녀가 될 게야.”
오늘이는 돌아오는 길에 먼저 매일이를 만나서 원천강에서 들은 일을 말했다.
“하지만 장상이가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
“내가 데려다 드릴게요.”
매일이와 함께 길을 떠난 오늘이가 큰 뱀을 만나 원천강에서 들은 대로 말하자 뱀은 야광주 둘을 뱉어서 오늘이에게 주었다. 뱀은 곧바로 용이 되어 천둥소리를 내며 승천했다. 다시 연꽃나무를 만나서 답을 전해 주자, 연꽃나무는 윗가지 꽃을 꺾어 오늘이에게 주었다. 그러자 가지마다 고운 꽃이 피어나 고운 향기를 내뿜었다. 다음에 장상이한테로 가서 매일이와 서로 만나게 하니 두 사람은 부부가 되어 만년 영화를 누리게 되었다.
오늘이는 백씨부인을 만나 야광주 하나를 드린 뒤 옥황 신녀가 되어서 인간 세상 곳곳을 다니며 원천강 조화를 전해 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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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덧붙여 신동흔 샘이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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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천강본풀이>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가 근래 들어 큰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된 신화입니다. 한 폭의 그림 동화 느낌을 주는 아련한 이야기지요. 하지만 단순하고 소박한 이야기는 아니에요. 세상이란 어떠한 곳이며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일인지를 저 밑바탕으로부터 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신화입니다.
이야기 속 오늘이 모습에서 어떤 느낌을 받았을지 궁금합니다.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어린 소녀가 홀로 살았던 곳이 ‘적막한 들’이라는 사실이 마음을 싸하게 합니다. 부모도 친구도 없이 넓고 황량한 들판에서 혼자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세상에 자기가 왜 생겨났는지, 어디 가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두루 아득했을 거예요.
이 세상에서 무엇을 어찌해야 하는지 모르는 채 방황하는 존재는 오늘이만이 아니었어요. 벌을 서는 것처럼 책만 읽고 있는 장상이와 매일이도 슬픈 사람들이었지요. 꽃이 제대로 피어나지 않아서 고민하는 연꽃나무도, 아무리 애써도 용이 되지 못해 바닥을 구르는 큰뱀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가 없어 울고 있는 선녀들도 다 외롭고 힘든 존재였습니다. ‘나는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걸까?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지?’ 만약 여러분이 이런 고민을 해 본 적이 있다면 저들의 모습이 남의 일로 여겨지지 않을 거예요.
이들 가운데 오늘이는 좀 특별했어요. 다들 그 자리에 머물러 고민할 때에 오늘이는 답을 찾아 길을 떠나지요. 여기서 부모님을 찾아가는 일은 제 존재의 뿌리를 찾아가는 일과 같아요. 부모님이 있어야 자기가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쉽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오늘이는 마침내 부모님을 만납니다. 거기서 오늘이는 답을 찾은 걸까요? 적막한 들의 외로운 삶에서 벗어나게 된 걸까요?
이야기를 보면 장상이 매일이와 선녀, 연꽃나무, 큰뱀 등은 답을 찾아서 문제를 해결한 것 같은데 오늘이는 명확해 보이지 않아요. 부모님을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원천강을 구경했다는 내용뿐이지요. 그러고는 다시 돌아왔다고 해요. 고생 끝에 힘들게 만난 부모님인데 그렇게 금세 헤어지다니, 좀 이해가 안 가기도 합니다. “다시는 헤어지지 말아요!” 이러면서 매달리는 게 맞을 것 같은데 말이에요.
이야기로 돌아가서 오늘이와 부모가 만나는 장면을 보면, 부모님은 오늘이한테 이렇게 말합니다. “항상 네가 하는 일을 보면서 너를 보호하고 있었다”고요. 비록 몸이 곁에 없고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부모님은 늘 오늘이와 함께였다는 말이에요. 얼핏 보면 엉뚱한 말 같지만, 잘 생각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오늘이가 가진 것들, 그러니까 눈 코 입이나 팔다리, 감각과 판단력 같은 것이 다 부모한테서 온 것이지요. 그 힘으로 오늘이는 적막한 들에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고요. 오늘이를 보살폈다는 학은 오늘이가 부모한테 받은 능력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늘 부모님이 함께였다는 말, 꼭 맞지 않나요? 생각하면 부모님만이 아닙니다. 오늘이가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준 햇빛과 바람과 물과 열매와 풀……. 그 모든 것들이 늘 함께였지요. ‘적막한 들’이라고 했지만 이 세상은 ‘충만한 들’이고 ‘생명의 들’이었던 거예요.
그 이치가 장상이와 매일이, 연꽃나무와 큰뱀 등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눈앞의 자기 자신만 보고 있을 때 그들은 외로운 존재이고 세상은 적막한 곳이었지요. 하지만 옆에 있는 다른 생명과 마음을 나누고 삶을 나누자 그 자신 환하게 빛나는 존재가 되고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 됩니다. 사실은 그것이 본모습이었지요.
이야기는 이 모든 답이 있는 곳이 ‘원천강’이었다고 말합니다. 이름도 독특한데 그 풍경은 더욱 특별해요. 춘하추동 사계절이 한데 모여 있다니 정말로 신기합니다. 사계절이 함께 모인 모습이란 어떠할까요? 무지개떡처럼 나란히 모여 있을까요, 색색의 꽃다발처럼 어울려 있을까요, 아니면 한데 뒤섞여서 자꾸 변하고 있을까요? 할 수만 있다면 꼭 찾아가서 동영상으로 촬영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건 한 가지 비밀인데요. 원천강을 찾아가는 일은 정말로 불가능할까요? 사계절이 한데 모여 있다는 원천강은 어쩌면 이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지도 몰라요. 그것도 아주 가까운 곳에 말이에요. 한번 창밖의 들을 한번 내다보세요. 어때요. 거기 사계절이 함께 있지 않나요? 저 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겪으면서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씨를 맺고 땅에 묻히고 또 싹이 나고 꽃이 피는 역사를 펼쳐 냈으니 그 안에 사계절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우리의 몸과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안에 지난 사계절의 경험과 느낌과 추억이 다 깃들어 있으니 그 또한 하나의 원천강이라고 할 만합니다.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사계절의 준비도 우리 몸과 마음은 이미 하고 있는 중이지요. ‘나’에 갇힐 때 사람은 외롭고 무력하지만, ‘우리’를 향해 활짝 열릴 때 사람은 무한하고 영원한 존재가 됩니다. 고독한 소녀 오늘이와 하늘 선녀 오늘이의 차이이지요. 오늘이가 사람들한테 전해 준다는 원천강 조화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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