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노래한 시를 모아 보았다.
다음 시 모임에서 '시'를 노래한 시를 주제로 잡아서이기도 하다.
덧. 1
틈틈이 들어오는 시를 채우는 걸로!^^
덧. 2
'쉼보르스카'의 시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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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두의 시>
가두의 시
- 송경동
길거리 구둣방 손님 없는 틈에
무뎌진 손톱을 가죽 자르는 쪽가위로 자르고 있는
사내의 뭉툭한 손을 훔쳐본다
그의 손톱 밑에 검은 시(詩)가 있다
종로5가 봉제골목 헤매다
방 한칸이 부업방이고 집이고 놀이터인
미싱사 가족의 저녁식사를 넘겨본다
다락에서 내려온 아이가 베어먹은 노란 단무지 조각에
짜디짠 눈물의 시가 있다
해질녘 영등포역 앞
무슨 판촉행사 줄인가 싶어 기웃거린 텐트 안
시루 속 콩나물처럼 선 채로
국밥 한 그릇 뚝딱 말아먹는 노숙인들의 긴 행렬 속에
끝내 내가 서보지 못한 직립의 시가 있다
고등어 있어요 싼 고등어 있어요
저물녘 "떨이 떨이"를 외치는
재래시장 골목 간절한 외침 속에
내가 아직 질러보지 못한 절규의 시가 있다
그 길바닥의 시들이 사랑이다
2. <다시 시에 대하여>
다시 시에 대하여
- 김남주
시의 내용은 생활의 내용 내 시에는
흙과 노동이 빚어낸 생활의 얼굴이 없다
이제 그만 쓰자 시를 써야겠다는 생각도
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리자
가자 씨를 뿌리기 위해 대지를 갈아엎는 농부의 들녘으로
가자 뿌리를 내리기 위해 물과 싸우는 가뭄의 논 바닥으로
가자 추위를 막기 위해 북풍한설과 싸우는 농가의 집으로
내 시의 기반은 대지다
그 위를 찍어내리는 곡괭이와 삽의 노동이고
노동의 열매를 지키기 위한 피투성이의 싸움이다
대지 노동 투쟁...
생활의 이 기반에서 내가 발을 떼면
내 시는 깃털 하나 들어올리지 못한다
보라 노동과 인간의 대지에 쁘리를 내리고
생활의 적과 싸우는 이 사람들
피와 땀과 눈물로 빚어진 이 사람의 얼굴을
3. <칼날의 시>
칼날의 시
- 문정희
불 속에 사는 새가 있다
얼음 속에서 날개를 펼치는 물고기도 있다
하지만 나는 너를 어디에도 둘 수 없어
번개처럼 날카로운
칼날 위에 둔다
위태하게 대롱거리는
붉은 눈물방울
이대로 내 사랑 백 년만 가거라
4. <단어를 찾아서>
단어를 찾아서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솟구치는 말들을 한마디로 표현하고 싶었다.
있는 그대로의 생생함으로.
사전에서 훔쳐 일상적인 단어를 골랐다.
열심히 고민하고, 따져 보고, 헤아려 보지만
그 어느 것도 적절치 못하다.
가장 용감한 단어는 여전히 비겁하고,
가장 천박한 단어는 너무나 거룩하다.
가장 잔인한 단어는 지극히 자비롭고,
가장 적대적인 단어는 퍽이나 온건하다.
그 단어는 화산 같아야 한다.
격렬하게 솟구쳐 힘차게 분출되어야 한다.
무서운 신의 분노처럼
피 끓는 증오처럼.
나는 바란다. 그것이 하나의 단어로 표현되기를.
피로 흥건하게 물든 고문실 벽처럼
네 안에 무덤들이 똬리를 들지언정,
나는 정확하게, 분명하게 기술하고 싶다.
그들이 누구였는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지금 내가 듣고 쓰는 것, 그것으로 충분치 않다.
터무니없이 미약하다.
우리가 내뱉는 말에는 힘이 없다.
그 어떤 소리도 하찮은 신음에 불과하다.
온 힘을 다해 찾는다.
적절한 단어를 찾아 헤맨다.
그러나 찾을 수 없다.
도무지 찾을 수 없다.
5. <글자 속에 나를 구겨넣는다>
글자 속에 나를 구겨넣는다
- 이선영
나는 종이 위에 나를 한자 한자 새겨넣는다
나는 이리저리 흐트러진 나의 육체를 끌어모아 글자 속에 집어넣고 뚜껑을 꽉 닫는다
한글자 한글자 씌어질 때마다 한치 한치 오그라드는 내 육체는 수천 수만 가지 글자들로 다시 태어나고
새로 만들어지는 글자들마다에 나의 육체는 자신의 새로운 집을 짓는다
나는 수만 채의 집을 거느리고 산다,
나의 살점을 나누어 조금씩 떼내어서는 각 집의 관리인으로 둔 채
그런데 이즈음 내 육체는 "이 안은 왜 이리 어둡고 갑갑한가?"라고 말한다
나는 공들여 지은 내 집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늙어 눈이 어두워진 도장공처럼
나는 지금 끙끙대며 나를 글자 속에 구겨넣으려 안간힘쓴다
내 커진 몸집의 풍요를 맛본 내 육체가 더 이상 좁은 집에 살려 하지 않기에
6. <시를 쓰기 위하여>
시를 쓰기 위하여 _ 연필
- 김연신
연필을 깍는다.
시를 쓰기 위하여
연필이 뾰족하게 깎인다.
연필은 뾰족한 끝으로 내 배를 지그시 찌른다,
연필만 깎아서 시가 써지느냐고.
손가락을 깎으면 시가 써지느냐고 내가 묻는다.
연필은 대답도 없이 더 찌른다.
아픈 것이 손가락 열 개를 다 뾰족하게 깎는 것이 차라리 좋겠다.
연필은 아무 말도 없이 찌른다. 또 찌른다.
나를 덥석 안아서 연필깎이 속에 집어넣는다.
갑자기 날들이 낄낄 웃으며 돌아가고
머리통부터 나는 뾰족해진다.
나를 잡고 시를 쓸 그를 기다린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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