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가 만만하면 사실 본능적으로 함부로 말하게 되지 않나 싶다. 함부로 하는 그 말에는 이 사회의 온갖 것들이 축적된 말인지도 모르겠고. 그런 점에서 어눌하고 느릿느릿하고 천천히 내뱉는 말들에는 남다른 사유가 들어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심지어 자신에게 하는 말일지라도 '생각'이라는 걸 하면서 조심스레 건넨다면 세상이 달라질지도 모르지.
늘 즉흥적으로 받아치지 못하고 뒤늦게 아쉬움이 남던 상황이 조금씩 떠오른다. 이젠 그런 상황을 굳이 아쉬워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ㅎㅎ
"넘 편하게 말하지 마. 조금은 조심스레 불편한 듯 말해. 그래야 상대가 보일 거 아냐."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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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연재 칼럼
[세상읽기] “말도 편하게 못하겠다”
후지이 다케시 /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지난주 에스엔에스(SNS)상에서 성균관대의 어떤 건물에 있는 남자화장실이 화제가 됐다. 소변기 바로 위에 소변보는 모습을 들여다보는 듯한 백인 여성의 상체 사진을 붙여놓은 게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보면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광경이어서 많은 이들이 당황하고 분노했지만, 그 반응에도 여러 층위가 있었다. 너무 일반화하면 안 되겠지만, 그 가운데서도 젠더에 따른 차이는 분명했던 것 같다. 남성들 가운데도 이에 불쾌감이나 수치심을 느끼는 사람은 많이 있었지만, 적지 않은 여성들처럼 공포심을 느낀 사람은 별로 없었다. 심지어 어떤 여성들은 이런 것을 보고도 웃어넘길 수 있는 그들이 부럽다고까지 했다. 우리의 일상을 구성하는 폭력에 대해 생각할 때, 이 감각의 차이는 결정적이다.
이런 폭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 화장실 문제는 그야말로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다. 이것이 논란이 됐을 때, 어떤 남성은 이런 문제에는 벌떼처럼 몰리면서 왜 이 사회의 부패나 부조리에 대해서는 반응을 안 하냐고 한탄했다.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 많은 촛불시민의 한 명일 그 사람과 나도 몇 마디를 나눠봤지만, 결국 그는 말 한마디 편하게 못하게 하는 분위기가 폭력적으로 느껴진다고 하면서 대화를 끝냈다. 실제로 이 화장실을 여러 번 써봤다는 그에게는 그 무심함이 지니는 폭력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더 폭력적인 것으로 비친 것이다.
사실 말도 편하게 못하겠다는 식의 말은 젠더를 비롯해 일상 속에서 작동하는 위계질서나 폭력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을 때 흔히 볼 수 있는 반응이다. 문단 내 성폭력을 고발하는 운동을 인민재판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비슷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말도 편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 폭력적인 상황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는 말도 편하게 못하는 상황이 예외적인 것이겠지만, 성폭력의 위협에 늘 노출되어 있는 여성들을 비롯해 흔히 ‘소수자’로 분류되는 이들에게는 말을 편하게 못하는 것이 일상이다. 그래서 그들은 말을 편하게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권력임을 잘 안다. 편하게 할 수 있는 말이란 자신이 구체적인 관계 속에서 생각해낸 말이 아니라 이 사회에서 이미 인정된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수자가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렇다고 그들이 결코 침묵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철학자 질 들뢰즈는 사유의 시작에 있는 것은 불법 침입, 폭력, 그리고 적이라고 말한다. 습관 속에 매몰되어 사유를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는 인간 존재가 사유를 시작하게 되는 것은 어떤 충격을 받았을 때뿐이라는 것이다. 말도 편하게 하지 못하는 폭력적인 경험이야말로 우리를 사유로 이끌어주며, 새로운 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말들은 거기서 생겨난다. ‘메갈’로 상징되는 여성들의 폭력적인 언어 사용은 단순히 남성들의 입을 막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사유할 수 있는 ‘불편한’ 상황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태극기 집회’에 나온 사람들은 정말 편하게 말을 한다. 그들이 내뱉는 말들은 그들의 말이라기보다 이 사회에 퇴적된 폭력들이 하는 말이다. 그리고 그 폭력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폭력이 만연한 이 사회를 바꾸기 위해 우리가 먼저 해야 할 것은 일상 속에서 불편하게 말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폭력의 존재를 느끼면서 긴장 속에서 한마디 한마디 조심스럽게 입에 올릴 때, 그만큼 우리는 새로운 사회로 다가갈 수 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85181.html#csidx154447f2a854bceb7f4a6f7b14d30d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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