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 모임에서는 '사랑'을 노래한 시들을 만나서 데려오기로 했다.
솔직히 설레고 떨리고 전기가 오는 것은 여전하다...^^
가장 먼저, 포루그 파로흐자드 시를 골랐다. 모임에서 읽을 때는 마지막에 읽을 거다. 끌리니까!
좀 다른 시선으로 사랑을 노래한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는 '진은영'의 시와 함께 읽어볼 만했다.
다 흥미로운 시 암튼!
-----
2. 일부 시를 빼고, 새로운 시를 넣었다. 훨씬 좋다.
3. 파블로 네루다의 <오늘 밤 나는 쓸 수 있다>를 또 추가한다. 다시 읽어주고 싶다!
-----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
_ 포루그 파로흐자드
오늘 밤 그대의 눈이 하늘에서
내 시에 별을 쏟아낸다
종이의 흰 침묵 속에
불꽃을 심는 나의 다섯 손가락
열정에 들뜬 나의 미친 시는
욕망의 상처가 부끄러워
또다시 자신의 단어들을 불태운다
불꽃의 끝없는 갈증
그렇다, 사랑의 시작이다
비록 그 길의 끝이 보이지 않아도
다시는 그 끝을 생각하지 않으리
이렇게 사랑한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아름답기에
왜 어둠을 두려워하는가
밤이 빛의 조각들로 가득한데
그 밤이 스쳐 지나가는 자리에
재스민 꽃 어지러운 향기 머물러 있는데
아, 그대로 두어라, 내가 영원히 그대 안에서 헤매도록
누구도 내 흔적을 다시는 찾지 못하도록
그대의 비 묻은 한숨과 타오르는 영혼이
내 노래의 온몸으로 퍼져 나가도록
아, 그대로 두어라, 이 열린 창을 통해
꿈의 포근한 날개 속에서 잠든 채
여러 날을 함께 여행하여
세상 끝으로 도망치도록
그대는 아는가, 내 삶에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나는 그대가 되리라, 그대가
영혼의 그림자까지 그대
삶이 수천 번 반복된다 해도 또다시 그대다, 또다시 그대
내 안에 숨어 있는 것, 그것은 바다
숨길 수 없는 비밀의 파도
그대에게 그 폭풍의 분노를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 나를 당신으로 넘쳐나게 하고 싶다
사막으로 걸어가고 싶다
산돌로 머리를 다듬고
파도에 몸을 문지르고 싶다
이제 나를 당신으로 넘쳐나게 하고 싶다
그대가 신기루처럼 내 안에서 부서지기 전에
그대 환영의 무릎에 머리를 누이고
그대 그림자까지 붙잡고 싶다
그렇다, 사랑의 시작이다
비록 그 길의 끝이 보이지 않아도
다시는 그 끝을 생각하지 않으리
이렇게 사랑한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아름답기에
오늘 밤 나는 쓸 수 있다
_파블로 네루다
오늘 밤 나는 쓸 수 있다 제일 슬픈 구절들을.
예컨대 이렇게 쓴다 "밤은 별들 총총하고
별들은 푸르고 멀리서 떨고 있다"
밤바람은 공중에서 선회하며 노래한다.
오늘 밤 나는 제일 슬픈 구절들을 쓸 수 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도 때로는 나를 사랑했다.
이런 밤이면 나는 그녀를 품에 안고 있었다.
끝없는 하늘 아래서 나는 연거푸 그녀와 키스했다.
그녀는 나를 사랑했고, 때때로 나도 그녀를 사랑했다.
누가 그녀의 그 크고 조용한 눈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오늘 밤 나는 제일 슬픈 구절들을 쓸 수 있다.
이제 그녀가 없다는 생각을 하며. 그녀를 잃었다는 느낌에 잠겨.
광막한 밤을 듣거니, 그녀 없어 더욱 광막하구나.
그리고 시가 영혼에 떨어진다 목장에 내리는 이슬처럼.
내 사랑이 그녀를 붙잡아 놓지 못한 게 뭐 어떠랴.
밤은 별들 총총하고 그녀는 내 옆에 없다.
그게 전부다. 멀리서 누가 노래하고 있다. 멀리서.
내 영혼은 그녀를 잃은 게 못마땅하다.
내 눈길은 그녀를 가까이 끌어 오려는 듯이 그녀를 찾는다.
내 가슴은 그녀를 찾고, 그녀는 내 곁에 없다.
같은 밤이 같은 나무를 희게 물들인다.
그때의 우리, 이제는 똑같지 않다.
나는 이제 그녀를 사랑하지 않고, 그건 그렇지만, 하지만 나는 얼마나 그녀를 사랑했던가.
내 목소리는 그녀의 귀에 가서 닿을 바람을 찾기도 했다.
다른 사람 거. 그녀는 다른 사람 게 되겠지. 내가 키스하기 전의 그녀처럼.
그녀의 목소리, 그 빛나는 몸. 그 무한한 두 눈.
나는 이제 그녀를 사랑하지 않고, 그건 그렇지만, 하지만 나는 그녀를 사랑하는지도 몰라.
사랑은 그다지도 짧고, 망각은 그렇게도 길다.
이윽고 밤이면 나는 그녀를 품에 안았으므로
내 영혼은 그녀를 잃은 게 못마땅하다.
비록 이게 그녀가 나한테 주는 마지막 고통일지라도
그리고 이게 그녀를 위해 쓰는 내 마지막 시일지라도.
사랑이 나가다
_ 이문재
손가락이 떨리고 있다
손을 잡았다 놓친 손
빈손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사랑이 나간 것이다
조금 전까지 어제였는데
내일로 넘어가버렸다
사랑을 놓친 손은
갑자기 잡을 것이 없어졌다
하나의 손잡이가 사라지자
방 안의 모든 손잡이들이 아득해졌다
캄캄한 새벽이 하얘졌다
눈이 하지 못한
입이 내놓지 못한 말
마음이 다가가지 못한 말들
다 하지 못해 손은 떨고 있다
예감보다 더 빨랐던 손이
사랑을 잃고 떨리고 있다
사랑은 손으로 왔다
손으로 손을 찾았던 사람
손으로 손을 기다렸던 사람
손은 손부터 부여잡았다
사랑은 눈이 아니다
가슴이 아니다
사랑은 손이다
손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손을 놓치면
오늘을 붙잡지 못한다
나를 붙잡지 못한다
낙 서
_ 박준
저도 끝이고 겨울도 끝이다 싶어
무작정 남해로 간 적이 있었는데요
거기는 벌써 봄이 와서
농어도 숭어도 꽃게도 제철이었습니다
혼자 회를 먹을 수는 없고
저는 밥집을 찾다
근처 여고 앞 분식집에 들어갔습니다
몸의 왼편은 겨울 같고
몸의 오른편은 봄 같던 아픈 여자와
늙은 남자가 빈 테이블을 지키고 있는 집
메뉴를 한참 보다가
김치찌개를 시킵니다
여자는 냄비에 물을 올리는 남자를 하나하나 지켜보고
저도 조금 불안한 눈빛으로 그들을 봅니다
남자는 돼지비계며 김치며 양파를 썰어넣다 말고
여자와 말다툼을 합니다
조미료를 그만 넣으라는 여자의 말과
더 넣어야지 맛이 난다는 남자의 말이 끓어넘칩니다
몇 번을 더 버티다
성화에 못 이긴 남자는
조미료 통을 닫았고요
금세 뚝배기를 비웁니다
저를 계속 보아오던 두 사람도
그제야 안심하는 눈빛입니다
휴지로 입을 닦다 말고는
아이들이 보고 싶다, 좋아한다, 사랑한다,
잔득 낙서해놓은 분식집 벽면에
봄날에는
‘사람의 눈빛이 제철’이라고
조그많게 적어놓았습니다
물빛 1
_ 마종기
내가 죽어서 물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끔 쓸쓸해집니다.
산골짝 도랑물에 섞여 흘러내릴 때,
그 작은 물소리를 들으면서
누가 내 목소리를 알아들을까요.
냇물에 섞인 나는 물이 되었다고 해도
처음에는 깨끗하지 않겠지요.
흐르면서 또 흐르면서, 생전에 지은 죄를
조금씩 씻어내고, 생전에 맺혀 있던 여한도 씻어내고,
외로웠던 저녁, 슬펐던
앙금들을 한 개씩 씻어내다 보면, 결국에는
욕심을 다 벗은 깨끗한 물이 될까요.
정말 깨끗한 물이 될 수 있다면
그때는 내가 당신을 부르겠습니다.
당신은 그 물 속에 당신을 비춰 보여주세요.
내 속소리를 귀담아 들어주세요.
나는 허황스러운 몸짓을 털어버리고 웃으면서,
당신과 오래 같이 살고 싶었다고
고백하겠습니다. 당신은 그제서야 처음으로
내 온 몸과 마음을 함께 가지게 될 것입니다.
누가 누구를 송두리째 가진다는 뜻을 알 것 같습니까.
부디 당신은 그 물을 떠서
손도 씻고 목도 축이세요. 당신의 피곤했던
한 세월의 목마름도 조금은 가져지겠지요.
그러면 나는 당신의 몸 안에서 당신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죽어서 물이 된 것이 전연
쓸쓸한 일이 아닌 것을 비로소 알게 될 것입니다.
그대가 없다면
_ 미겔 에르난데스
그대의 눈이 없다면 내 눈은 눈이 아닙니다
외로운 두 개의 개미집일 따름입니다
그대의 손이 없다면 내 손은
다만 고약한 가시다발일 뿐입니다
달콤한 종소리로 나를 가득 채우는
그대의 붉은 입술이 없다면
내 입술도 없습니다
그대가 없다면 나의 마음은
엉겅퀴 우거지고 회향잎마저 시드는
고난의 길입니다
그대 음성이 들리지 않는 내 귀는
어찌 될까요?
그대의 별이 없다면
나는 어느 곳을 향해 떠돌까요?
그대의 대꾸 없음에
내 목소리는 자꾸 약해집니다
바람결에 묻어오는 그대의 냄새를 좇아
잊혀진 그대의 흔적을 더듬어 봅니다
사랑은 그대에게서 시작되어
나에게서 끝납니다
'물소리*바람소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교]대념처경(大念處經)... 무슨 뜻이여? (0) | 2017.03.03 |
---|---|
인드라망 심심학교 (0) | 2017.02.24 |
꿈 이야기 셋 _ 버스를 운전하다 (0) | 2017.02.17 |
꿈 이야기 둘 _ 뱀 꿈 (0) | 2017.02.10 |
꿈 이야기 하나 _ 입 맞춘 꿈 (0) | 2017.0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