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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3.20 매미가 땅속에서 소수(素數) 기간만큼 버티다 나오는 까닭은?

늦은 밤, 며칠 남행길에 오를 팅구랑 한 시간 가까이 통화했다. 긴 통화였지만 금세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매미 울음소리 얘기까지 하게 됐다. 문득 이들은 왜 그토록 울어댈까? 이렇게 울게 한 자연의 이치는 뭘까 주고받았다. 마치 꽃이 짧은 기간 온몸을 벗어젖히듯 활짝 핀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고 나눈 기억이 난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자세히 알아보고 알려주기로 했다. 사람 사이에 이야기가, 이야깃거리가 있다는 건 관계를 이어주는 힘이 아닐까 싶다.

재미난 이야기, 무엇보다 옛이야기를 더 많이 읽어보고 싶어진다. 그래야... 좋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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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가 땅속에서 소수(素數) 기간만큼 버티다 나오는 까닭은?


과학향기
“맴 맴, 찌∼르르르.”

무더운 여름날 애틋하게 우는 매미의 울음소리가 경적을 울리는 듯 요란하다. 매미가 세상 밖으로 나와 온 숲을 메아리치며 울어대는 이유는 짝짓기 위해서다. 수컷 매미는 암컷을 유인하기 위해 복부에 발달한 발음기관으로 소리를 내서 운다. 전에는 주로 낮에 활동했지만 최근 ‘신세대 매미’는 낮밤 없이 구애한다. 도시의 불빛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올 여름 매미의 소음으로 가장 걱정되는 곳은 미국의 중서부 지역이다. 미국 중서부에는 17년마다 수십억 마리의 어마어마한 매미 떼가 기습한다. 올해가 바로 17년째 땅속에서 꿈틀대던 매미 떼가 땅 위로 올라오는 해다. 17년마다 올라온다고 해서 ‘17년 매미’라고 부른다. 수컷 매미 한 마리가 내는 소리는 믹서기 소음에 맞먹는 70∼90dB(데시벨, 소리 크기의 단위). 수십억 마리가 단체로 울어대는 소리는 가히 공포영화를 방불케 한다. 17년 전인 1990년에 시카고에 등장한 매미 떼는 유서 깊은 음악제마저 취소시키는 등 큰 소동을 일으켰다. 매미의 비밀을 살펴보자.

여름에 세상 밖으로 쏟아지듯 나온 매미는 달콤한 사랑을 한 달 정도 나눈 뒤 생을 마감한다. 수컷은 암컷과 짝짓기를 한 뒤 죽고, 암컷은 알을 낳고 죽는다. 적당한 나뭇가지를 하나 선택한 뒤 가지에 작은 구멍을 만들어 암컷이 그 속에 알을 낳으면, 몇 주일 지나 알은 애벌레로 부화한 뒤 먹이를 찾아 땅으로 내려와 땅속 40cm 정도에 구멍을 파고 자리를 잡는다. 그곳에서 나무뿌리의 액을 빨아 먹으면서 오랫동안 애벌레로 지낸다.

지구에는 3000여 종의 매미가 서식한다. 주로 아프리카의 사하라사막 북쪽과 아시아 온대지역에 많이 분포한다. 우리나라에 많은 참매미와 유자매미는 5년을 주기로 지상에 나온다. 우리나라 매미 유충에 비해 17년 매미가 땅 속에서 보내는 시간은 매우 길다. 놀라운 사실은 정확히 17년을 채운다는 사실이다. 빨리 자란 애벌레라도 절대 먼저 땅 위로 올라오는 법이 없다.


미국의 남부에는 13년을 주기로 성충이 되는 ‘13년 매미’와 7년을 주기로 하는 ‘7년 매미’도 있다. 오랜 시간마다 한 번 등장하는 주기 매미들만 살고 있어서 미국 사람들은 매미 소리에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이들의 기간이 정확히 13년, 17년이기 때문에 다음에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5년, 7년, 13년, 17년의 주기를 보니 어떤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이들 숫자는 모두 소수(素數)다. 여기서 소수란, ‘1과 자기 자신으로 나누어지는 수’를 뜻한다. 매미에게 14, 15, 16, 18 주기는 없다. 매미는 왜 소수를 주기로 등장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할까?

매미의 이 전략은 종족 보존을 위해서다. 매미가 13년, 17년이라는 정확한 주기를 지키는 것은 일종의 인해전술이다. 매미의 천적은 너무나 많다. 새, 다람쥐, 거북, 거미, 고양이, 개 심지어 물고기까지 매미를 잡아먹는다. 이들 천적에 맞선 대응은 ‘남겨진 자의 생존’이라는 방식이다. 비록 천적에게 잡혀먹더라도 수십억 마리나 되는 매미를 한꺼번에 다 잡아먹을 수 없다는 계산에서 인고의 세월을 견디다 모든 매미가 물밀듯 동시에 세상에 등장하는 것이다.

또 천적으로부터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성장 패턴을 천적의 성장 패턴과 달리해야 했다. 13년, 17년 같은 소수를 주기로 하면 천적과 마주칠 기회가 적어진다. 예를 들어 매미의 주기가 5년이고 천적의 주기가 2년이면 천적과 만날 기회는 10년 마다 온다. 매미의 주기가 17년이고 천적의 주기가 3년이라면 51년이 돼야 만날 수 있다. 주기가 소수인 중요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주기가 짧았다가 점점 길어져 현재의 17년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매미처럼 처음에는 주기가 3년이었다가 천적과 만나자 5년, 7년으로 주기를 늘렸을 것이다. 그것도 부족해지자 다시 13년, 17년으로 주기를 늘렸을 가능성이 높다. 아마 17년이라는 숫자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게 된다면 19년 매미가 나오게 될 것이다. 결국 천적의 수명이 몇 년이건 간에 소수로 이루어진 성장 사이클이 안전장치로 놓인다.

자연의 신비는 늘 우리를 경탄케 만든다.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는 말처럼 매미의 인내가 보상받을 때가 됐다. 미국 중서부 지역에서 곧 시작될 17년 매미의 구애소리는 시끄럽겠지만 앞으로 2024년 여름이 돼야 다시 들을 수 있다. 17년을 기다려야 하는 미국 매미에 비해 자주 나올 수 있는 우리나라 매미들은 행운인 것 같다. (글 :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과학향기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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