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이어지다 보니, 에어컨 생각이 간절하고, 그러자니 전기요금이 걱정되고, 또 그러자니 요금폭탄을 맞을까 두렵고.... 그래서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지고.... 

그렇다고 누진제를 없애야 하는 걸까? 아니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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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사태, 누진제가 아니라 기후위기와 싸워야 한다.


연일 폭염과 열대야가 지속되고 있다. 거의 모든 지역이 34도 안팎의 최고 기온을 보였고, 한 때 경남 창녕의 기온이 39.2도까지 치솟기도 했다. 이런 폭염이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 주말 동안 39도를 기록한 일본에서는 1,700여명이 응급차에 실려 갔다고 한다. 최근 유엔 산하 세계기상기구(WMO)는 이번 7월까지 14개월째 역사상 가장 무더운 달이 계속되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올해 2016년이 ‘인류역사상 가장 무더운 해’가 될 것이라고 했다. 누차 지적해온 것처럼, 근본적으로 온실가스 배출에 의한 기후변화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기후변화’는 너무 멀리 있다. 폭염과 무더위 속에서 당장 시원하게 에어컨이라도 틀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만 들린다. 그 마음은 이해한다. 언론들은 누진제 때문에 ‘요금폭탄’이 나온다고 연일 보도하고 있다. 이 참에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가 부당하다며 진행 중인 집단소송이 조명받고 있으며, 누진제를 대폭 완화 · 축소하자는 전기사업법 개정안 발의도 주목받고 있다. 국민의당도 누진제 축소를 검토하고 있다. 추상적인 기후변화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나 온실가스 감축 정책에 수반되는 고통을 감내하는 것보다는, 다들 한마디씩 거드는 누진제의 비판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 더 쉽고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폭염과 무더위 속에서 에어컨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쪽방촌 노인들은 더운 바람나는 선풍기조차 전기요금이 아까워 호사로 보이고, 실외 온도에 가깝게 치솟는 원룸 촌의 청년들은 에어컨 나오는 카페를 전전한다. 게다가 폭염에 실외에서 작업을 해야 하는 노동자들과 농민들은 에어컨은 고사하고 구급차가 더 가깝고, 오히려 에어컨을 설치하는 노동자들은 높은 난간에 매달리다 추락하고 있다. 폭염과 무더위의 영향과 대처수단이 계층별로 상이한 것이다. “누진제 때문에 에어컨도 맘대로 못 틀고…”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그래도 어느 정도 경제적 능력이 있어 선택권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라는 점을 잊지 말자.


그런데 에어컨 없는 사람들조차도 전기요금 누진제에 분노를 터뜨리는 이유가 있다. 부당함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산업용 전기요금은 ‘원가’ 이하로 공급되어 왔으며 지금도 가정용 전기요금보다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삼성전자를 비롯한 여러 대기업들은 수천억 원의 막대한 전기요금 특혜를 받아왔다. 최근 미국이 낮은 산업용 전기요금으로 국가가 보조금을 줬다며 한국 철강제품에 덤핑 판정을 내리면서 국제적인 논란거리로 비화되기까지 했다.


뿐만 아니라 산업용과 일반용(상업용) 전기요금은 가정용과 다르게 누진제 적용을 받지도 않는다. 주로 경제 발전과 활성화라는 명분으로 지속된 정책이다. 이런 제도들 때문에 가정 부문이 산업과 상업 부문의 전기요금을 보조하고 있다고 비판받아 왔다. 게다가 한전은 작년에 연료비 하락 등의 원인으로 10조 이상의 흑자를 기록하고 배당 잔치를 벌였다. 이러니 에어컨도 없이 선풍기로 버티면서 무더위를 나는 시민들은 기업들이 싼값에 전기 쓰면서 돈을 벌고 한전은 배당 잔치를 벌이는 것이 부당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녹색당은 많은 시민들이 전기요금에 대해서 느끼는 부당함이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비판과 분노의 방향이 어디로 향하는 것이 맞는지 면밀히 살펴야 한다. 그동안 특혜를 받아 왔으며 전기 소비량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산업용 전기요금을 바로 잡는 것이 우선이다. 정부는 산업용 전기요금이 가정용 전기요금보다 저렴한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이고, 기업은 틈만 나면 더 인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배전 비용이 적어 원가 자체가 가정용 요금보다 낮을 뿐 아니라 국가경쟁력을 위해서도 산업용 전기요금을 가능한 낮게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정부가 계산하는 ‘원가’에는 사용후 핵폐기물 처리, 저농도 방사능 누출 피해, 미세먼지에 의한 대기오염, 대규모 온실가스 배출, 초고압 송전탑에 의한 주민 피해 등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것이다. 이것부터 바로 잡아 원가를 재계산해야 부당한 전기요금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할 것이다. 당연히 대기업에 대한 전기요금 특혜를 철폐할 뿐만 아니라, 대규모 전력을 소비하는 기업들에게는 사회적, 환경적 파급효과를 고려하여 차등적인 고율의 요금을 부과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언론들이 연일 쏟아내는 ‘누진제 때리기’는 전기요금제도 개혁의 방향과 우선순위를 실종시킬 우려가 크다. 앞서 언급한 집단소송이나 전기사업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의 축소 및 폐지의 계층/계급적 효과가 어떤 것인지 제대로 분석되어 있지 않아서, 의도하지 않게 에너지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지금의 입장과 다르게 산업자원부는 2009년에 누진제 축소를 추진한 바 있다. 당시 안에 의하면, 누진제를 3단계로 축소할 경우 100kwh 이하 사용 가정은 53.3%의 요금 인상을 감내해야 하지만, 500kwh 이상 사용 가정은 단지 5.6%의 요금 인상만을 감당하도록 되어 있었다.물론 안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다르질 수 있다. 그러나 누진제의 폐지는 저소득층에 더 높은 전기요금 부담을 지우게 될 가능성이 높다. 누진제 축소 혹은 철폐를 주장하는 이들이 원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녹색당은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 개혁은 사회적 형평성과 에너지전환의 관점에서 검토해야 한다. 누진제는 전력 저소비 가정에 대한 고소비 가정의 가격 보조라는 연대 정신에 기초해서 개혁되어야 한다. 따라서 한 가정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필요전력’을 보장하도록 조정된 첫 번째 구간의 요금은 가능한 최소로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현행 제도의 첫 번째 구간인 100kwh가 불충분하다는 지적이 많이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가 ‘최소필요전력’인지 사회적 토론과 합의가 필요할 것이다. 예를 들어 에어컨 이용 전력은 최소필요전력에 들어가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다루어야 한다. 여기서 고려해야 할 원칙이 에너지전환이다. 전력사용이 계속 늘어난다면 우리는 핵위험와 미세먼지로부터, 그리고 기후변화와 에너지독재로부터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밀양 할매의 눈물을 타고 흐른 전기를 얼마나 써야 하나.


마지막으로 뜨거운 감자가 하나 남았다. 소위 ‘요금폭탄’ 문제다. 대략 3구간(201~300kwh)과 4구간(301~400kwh)에서 월평균 전력을 소비하는 가정들이 여름철 무더위에 에어컨 등을 가동하면서 6구간(500kwh 이상)에 진입하여 수십만원의 요금을 내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에너지정의행동의 분석에 의하면, 2014년 여름철(7-9월간) 6구간 이상의 전력을 소비하여 21만 7천여원 이상의 요금을 지불한 가정은 전체의 1.4%인 대략 32만 가구에 불과하다.


또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에 의하면, 유래없는 폭염을 경험했던 2012년 8월 6구간에 새롭게 진입한 가구는 전체의 4.2%인 90만 가구에 머물렀다. 당시 언론은 300kwh 초반대의 전력을 사용해 4만 7천원대의 요금을 내던 가구가 8월 한달간 772kwh의 전력을 사용하여 35만 6천원대의 요금을 냈다는 사례를 보도했다. 엄청난 요금임은 분명하다. 분석 결과 에어컨을 하루 6시간씩 매일같이 가동시켰을 것으로 추정된다. 불가피한 사정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앞선 2014년도 통계에 비추면 0.4%의 가구에 해당하는 사례가 된다.


우리가 소위 ‘요금폭탄’ 문제로 누진제도 전체를 뒤흔들어 대폭 축소하거나 폐지해야 할 일인지 신중히 고민해야 한다. 또한 폭염으로 인한 일시적 전기수요 증가 때문에 가정용 누진제 전체를 흔들면 결과적으로 월 2,000만원 이상의 전기요금을 내는 이재용씨 같은 사람만 이익을 보게 될 것이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전기사업법 수정안은 여름철 일시적 수요와 비용 부담 증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년 내내 적용되는 누진제 전체를 뒤흔드는 꼴로서, 목적과 수단이 부합하지도 않는다.(녹)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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