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옴]

구이저우(貴州)성. 중국이 우리에게 성큼 다가온 지금도 구이저우성이라는 이름은 무척이나 낯설다. 그도 그럴 것이 석유 같은 것이 엄청나게 묻혀있어 주목 받는 곳도 아니고 번쩍이는 대도시가 즐비한 화려한 곳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에는 중국 최대의 폭포인 황궈수(黃果樹)폭포가 있고 산둥성 취푸(曲阜)의 공자 사당만큼이나 멋진 건물을 가진 문묘(文廟)가 있다. 명나라 때 중원에서 내려온 군인들의 후손이 몇백년 동안 똑같은 풍습을 지닌 채로 단란하게 살아가는 모습도 볼 수 있지만 무엇보다 이곳에는 중국 소수민족 중에서도 단결력이 강하기로 유명한 먀오족(苗族)이 가장 많이 모여 산다. 그뿐인가, 구이저우성에는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길 갈피갈피에 통족, 이족, 토가족(土家族) 등 여러 민족들이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다. 소수민족에게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숨어있는 보석과 같은 곳이다.

구이저우성 공자사당 문묘의 용조각 기둥.


구이저우성의 성회인 구이양(貴陽)에서 동쪽으로 카이리(凱里)까지 가서 방향을 남쪽으로 틀어 고요하게 흐르는 두류강(都流江) 물줄기를 따라 내려가면 먀오족과 동족들이 사는 첸동남 지역으로 접어든다. 구이저우성은 간략하게 ‘첸(黔)’이라고 불린다. 그러니까 첸동남이란 구이저우성 동남부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그들의 삶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두류강 물줄기가 내려다보이는 아득한 산꼭대기에 먀오족의 마을들이 있다. 사람들이 찾아오기 힘든 높은 산꼭대기에 먀오족의 마을이 생긴 것은 청나라 때 먀오족이 기의를 일으켰을 때 그들을 토벌하려는 중앙정부의 군사들을 피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그들의 아픈 역사는 지금도 그들의 피 속에 여전히 남아있어 10여 년쯤 전에는 자신들이 조상이라고 여기는 ‘치우(蚩尤)’를 모욕한 자들과 일전불사의 의지를 불태웠던 적도 있다. 소수인 그들을 그렇게 당당하게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먀오족 사람들은 아득한 옛날 자신들이 머나먼 중원 땅에서 세 개의 큰 강을 건너 지금의 구이저우성으로 이주해왔다고 믿는다. 그들에게 전해지는 오랜 전설은 이렇다.

두류강 건너편으로 먀오족의 마을이 보인다.


“치우가 황제(黃帝)와 싸워서 졌어. 그래서 치우가 아들들에게 묘족을 이끌고 떠나라고 했지. 아들들은 혼수와 청수, 흑수를 건너 이곳으로 왔어. 우리 바사 사람들은 바로 치우 셋째 아들의 후손이야.”

구이저우성 동남부 충장현(從江縣) 근처 바사(沙) 먀오족 마을 노인의 말이다. 황제와 치우의 전쟁은 중국신화에서도 가장 유명한 전쟁이다. 중원의 신 황제와 동이의 신 치우가 탁록에서 맞붙었고, 그 치열한 전투에서 치우가 패하여 목이 잘린다. 그리고 치우의 손과 발을 묶었던 수갑과 차꼬에 묻은 피에서 이루지 못한 치우의 한처럼 붉디붉은 단풍나무가 자라난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단풍나무’를 잘 기억해두시라.

구이저우성에는 명나라때 중원에서 내려온 군인들의 후손이 그 시절의 풍습을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이마의 머리카락을 뽑은 여성을 매력적으로 여긴다.


바사 먀오족 마을은 충장현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 321번 국도가 마을 앞으로 지나간다. 그런데도 바사 사람들은 중국어를 하지 않는다. 마을의 대표자 노릇을 하는 군위안량(滾元亮)만이 중국어를 할 뿐, 다른 사람들은 그저 환한 미소로 자신들의 마음을 대신할 뿐이다.(이 마을은 중국 구이저우성의 인물 사진작가인 루셴이(盧現藝)의 강렬한 사진들로 세상에 알려졌다. 그는 2003년 7월에 프랑스 아를에서 열린 세계 사진전에 ‘바사 먀오족사람들’이라는 사진을 출품하여 상당히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지금도 베이징의 다산쯔 예술인 지역(大山子藝術區) 어디쯤에서는 아마 그 사진들이 전시되고 있을 것이다.)

마을은 숲속에 있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바사’라는 마을 이름이 ‘풀과 나무가 많은 곳’이라는 뜻임을 밝혀주는 돌 하나가 서있다. 바사 사람들에게 나무는 바로 생명이며 조상의 영혼이 머무는 곳이라고 적혀 있다. 아이가 태어나면 나무를 심고 사람이 죽어도 나무를 심는 곳, 나무가 없는 그들의 삶은 생각할 수도 없다. 오래된 나무일수록 신성이 깃들어 있다. 나무가 말라죽어도 그들은 그 나무가 저절로 쓰러질 때까지 절대로 베지 않는다.

바사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엄청나게 굵은 향장목(香樟木) 뿌리가 모셔져 있다. 앞에는 ‘나무의 신(樹神)’이라는 이름표가 붙어있다. 1976년 어떤 사람이 마오쩌둥기념관을 만드는 데 바치겠다며 다른 마을 청년들을 동원해 그 나무를 베었다. 나무가 쓰러질 때 비바람이 몰아쳤고 붉은 액체가 흘러나와 놀란 마을 사람들이 모두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빌었다고 한다. 그 사건에 대해서 듣고 난 뒤 당 중앙에서 그 나무의 뿌리를 원래 자리에 그대로 모셔두라고 허락하여 지금의 ‘신수정(神樹亭)’이 생긴 것이다. 나무에 신이 깃들어있다고 믿는 그들의 심리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그들의 모든 통과 의례는 숲속에서 행해지고 죽으면 숲에 묻히며, 그 숲에는 성스러운 단풍나무가 있다.

바사의 대표자 역할을 맡고 있는 군위안량의 뒷모습.

단풍나무는 그들의 생활에서도 주로 제의와 관련되어 있다. 먀오족 사람들의 큰 제사인 고장절에 희생물로 바쳐지는 소의 뿔을 묶는 나무도 단풍나무이며 조상들의 영혼이 깃들어있다고 여겨지는 북 역시 단풍나무로 만든다. 집을 지을 때에도 가운데 큰 기둥은 단풍나무로 세운다. 단풍나무에서 메이방이 태어났네
단풍나무에서 메이류가 태어났지
찬미하고
노래하네

지금도
아빠 엄마가 너와 나를 낳으시지
탄생에 대한 이야기,
들려줄 만한 것이라네
아득한 옛날을 생각해보세
단풍나무가 메이방메이류를 낳았어
어머니가 계셔야
너와 내가 있는 것,
어머니를 위한 노래를 불러야 하지.

메이방의 탄생을 노래해
메이류의 탄생을 노래해


먀오족 사람들이 자신들의 역사라고 여기는 ‘먀오족의 오래된 노래(苗族古歌)’에 들어있는 ‘단풍나무의 노래(楓木歌)’의 한 대목이다. ‘메이방메이류(妹榜妹留)’는 ‘호접마마’ 즉 ‘나비엄마’라는 뜻을 가진 여신이다. 그녀는 이렇게 단풍나무에서 태어났다.

메이방이 다 자랐네
메이류가 다 자랐어

이제 짝을 찾아 나서네
무슨 옷을 입었나?
무슨 치마를 걸쳤나? 방류가 짝을 찾아가네
꽃무늬 옷을 입고
꽃무늬 주름치마를 두르고
꽃무늬 옷 몸에 잘도 맞네
주름치마도 몸에 꼭 맞아

호접마마 방류
오얏나무 아래에서 짝을 찾아가네
누구와 함께 갈거나?
짝을 찾을까? 못 찾을까?

강물과 짝 이뤄볼까 했으나
강물은 너무 거칠어
짝이 되지 못했네
태양과 짝 이뤄볼까 했으나
짝이 되기 직전
검은 구름이 나타나 막았네

그들은 짝이 되지 못했네

호접마마 방류
누가 가장 아름다운가
누가 그와 함께 짝을 이룰까?

호접마마 방류
작은 물거품을 사랑했네
말도 할 줄 알고 노래도 할 줄 알아
생긴 것도 아름다우니
그와 함께 떠나

마침내 짝이 되었네

이렇게 그녀는 ‘작은 물거품’과 혼인하여 열두개의 알을 낳는다. 최초의 인간 장양(姜央)이 그 알 속에서 나왔다. 나머지 알에서는 우레신과 용, 뱀, 호랑이, 코끼리, 지네 그리고 착한 신과 나쁜 신들이 나왔다. 인간이라고 해서 자연계의 다른 것들보다 우월한 것이 아니다. 인간인 장양은 동물, 귀신과 마찬가지로 알에서 태어난다. 그 모든 것들을 품어주고 지켜주는 존재가 바로 어머니 여신, 호접마마이며 그 호접마마는 단풍나무에서 태어났다. 앞에서 치우의 영혼이 단풍나무로 변했다고 말한 것을 기억하자. 먀오족 사람들, 그들은 단풍나무의 후손이며 또한 치우의 후손이다. <다음 편으로 이어짐>

〈김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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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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