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고양이'를 다룬 시를 모아 얘기를 나누었다.

그 가운데 담아주고 싶은 시를 여기 모아 둔다.

필사도 할 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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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 2:00의 고양이 핑크

                                                                            김선우


 구두 상자에 들어가 잠자는 고양이 (감싸줄 발등을 미리 아는 것처럼)

 택배 상자에 들어가 꿈구는 고양이 (무너진 성에 막 도착한 아치형 다락처럼)

 세면대 속에 들어가 둥글게 몸을 말고 싱긋 웃는 고양이 (장자 혹은 당당히 빌어먹는 디오게네스풍으로)

 고양이가 탐하는 조그만 집에 대해 생각해.

 몸 하나만 딱 간수하는 조그만 집 속의 고양이 잠을 생각해.

 노랑 나비잠 쪽으로 꼬리 끝을 살짝 걸친 듯한 고양이식 낙관에 대해

 여러 마리가 한배에서 자랐어도 완벽하게 홀로 사랑받고 있다는 듯

 품고 있는 자의 품에 온전하게 품길 줄 아는 재능에 대해 생각해.

 세기 초를 걷는 듯한 고양이 걸음의 도도함에 대해

 사람의 품에 안겨 있는 순간에도 혼자일 수 있는 능력에 대해 생각해.

 오늘 내 발바닥은 고양이 핑크를 꾹꾹 학습하네.

 슬퍼도 무기력해지지 않는 고양이 핑크

 기뻐도 교만하지 않는 고양이 핑크

 조그만 비닐봉지에 들어가 사색하는 고양이 (다디단 얼굴로)

 이 세계의 꿈을 저 세계의 현실로 배달하는 중인 듯한

 고양이 핑크엔 유리천장이 없지.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양이에게 살해당하는 고양이는 없네




발톱

                                                                                                             박준


 중국 서점에 있던 붉은 벽돌집에는 벽마다 죽죽 그어진 세로균열도 오래되었다 그 집 옥탑에서 내가 살았다 3층에서는 필리핀 사람들이 주말마다 모여 밥을 해먹었다 건물 2층에는 학교를 그만둔 아이들이 모이는 당구장이 있었고 더 오래전에는 중절수술을 값싸게 한다는 산부인과가 있었다 동짓달이 가까워지면 동네 고양이들이 반지하 보일러실에서 몸을 풀었다 먹다 남은 생선전 같은 것을 들고 지하로 내려가면 어이들은 그새 창밖으로 튀어나가고 아비도 없이 자란 울음들이 눈을 막 떠서는 내 발목을 하얗게 할퀴어왔다




아홉 마리 고양이 사이를

                                              강효수

 

아홉 마리 고양이 사이를

왕이 되어 순시하듯 걷노라

보라, 저 우러러보며 경배하는 눈빛을

들으라, 애원하며 찬양하는 간절한 노랫소리를

나의 눈빛과 입술은 교만해지고

급격하게 모가지에 디스크가 오도다

긴 수염 없음을 통탄하도다

거만을 잉태한 만삭의 배 밑으로 나는

금화를 뿌리듯 사료를 뿌리노라

꽃을 뿌리듯 사료를 뿌리노라

, 그러나 나는 다시 후회하노라

저 부드러운 거짓의 교태를

저 배부른 위선자의 교만함을

어허, 감히 앞길에 벌러덩 누워 등을 긁도다

어딜, 비비도다 감히 툭툭 치도다

올라타도다 갸우뚱거리다 꼬집고 할퀴도다

깨무는도다 깨무는도다 아프다 해도

소용없도다

무관심하도다 불러도 대답 없도다

침대 위에 가랑이 사이에 겨드랑이 밑에

식탁 위에 신발 속에 바퀴 밑에 자빠져 자도다

황망하도다 황망하도다

나는 도망가도다 밖으로 밖으로 도망가도

세상은 다 그렇도다




고양이 죽이기

                                             김기택


그림자처럼 검고 발자국 소리 없는 물체 하나가

갑자기 도로로 뛰어들었다.

급히 차를 잡아당겼지만

속도는 강제로 브레이크를 밀고 나아갔다.

차는 작은 돌멩이 하나 밟는 것만큼도 덜컹거리지 않았으나

무언가 부드러운 것이 타이어에 스며든 것 같았다.

얼른 백밀러를 보니 도로 한가운데에

털목도리 같은 것이 떨어져 있었다.

야생동물들을 잡아먹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호랑이나 사자의 이빨과 발톱이 아니라

잇몸처럼 부드러운 타이어라는 걸 알 리 없는 어린 고양이였다.

승차감 좋은 승용차 타이어의 완충장치는

물컹거리는 뭉개집을 표 나지 않게 삼켜버렸던 것이다.

씹지 않아도 혀에서 살살 녹는다는

어느 소문난 고깃집의 생갈비처럼 부드러운 육질의 느낌이

잠깐 타이어를 통해 내 몸으로 올라왔다.

부드럽게 터진 죽음을 뚫고 

그 느낌은 내 몸 구석구석을 핥으며

쫄깃쫄깃한 맛을 오랫동안 음미하고 있었다.

음각무늬 속에 낀 핏자국으로 입맛을 다시며

타이어는 식욕을 마처 채우려는 듯 더 속도를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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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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