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트런드 러셀 [런던 통신]


립스틱을 발라도 되는 사람은 누구일까?

Who May Use Lipstick?



"무슨 멍청한 질문이냐!" 

독자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오늘날에는 당연히 모든 여성이 립스틱을 바른다." 

그러나 잠깐만 생각해 보면, 다른 이들에게는 보편적인 이런 관용이 일부 여성 집단에는 아직 미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떤 여성에게는 립스틱의 사용이 허락되고 어떤 여성에게는 그렇지 않은지 살펴보면 전통적인 윤리적 가치관을 흥미롭게 조명할 수 있을 것이다.


종교계의 여성 성직자들은 신도들 앞에선 당연히 정갈해야 하며, 남성의 마음을 끌려는 것으로 비칠 수 있는 치장을 해서는 안 된다. 그녀가 남캘리포니아 출신이 아닌 한은 말이다. 극기의 삶을 열심히 훈계하고 있는 동안 그들은 자신이 설교하는 대로 실천하지 않는다는 기색을 눈치채여선 안 된다.


사회복지사들도 립스틱을 바르면 안 된다. 그들에게 기금을 대는 숙녀들은 모두 립스틱을 바르고 있지만 말이다. 근무 중인 병원 간호사들도 자신이 돌보는 환자의 건강 말고는 어떤 데도 관심이 없는 듯이 보여야 한다. 근무 시간 중에 지나칠 정도로 아름답게 꾸몄다가는 수간호사에게 질책을 받을 게 뻔하다. 


이 기묘한 금기의 희생자 중에 가장 큰 집단은 바로 교사들이다. 미국 사정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영국에서는 매력 있게 보이려는 여교사는 누구든 뜨거운 봉변을 당하기 마련이다.


이런 제약의 철학적 기초를 잠깐 살펴보자. 첫째, 교사는 도덕적으로 바람직한 영향을 끼쳐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여기까지는 동의할 수 있다. 둘째, 어떤 여성도 남성에게 무심하거나 무심한 척하지 않고는 도덕적으로 바람직한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주장이 있다(모든 여성은 남성에게 무심하거나 무심한 척해야 도덕적으로 바람직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주장). 젊은 여성이 이런다면 그건 위선이거나 심리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상태일 것이다. 


물론 위선이란 인생에서 성공하기 위해 매우 필요한 덕목이며, 따라서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위선을 가르칠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견해를 두고 많이들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교사들에게 이런 제약을 강요하는 사람들이 위선을 요구하려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훌륭한 교사의 자질을 갖춘 여성들은 자신의 매력이라는 주제에 진정 무심해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내가 보기에 이 견해는 아주 심각하게 잘못되었다. 신체 건강에 문제가 있다면 또 모를까, 젊은 사람이 이성에게 무심할 수 있는 경우는 어느 정도 폭력적인 억압이 가해질 때뿐이다. 이러한 억압은 필연적으로 규율 위주의 엄격한 태도로 이어져 아이들의 행복하고 자발적인 발달에 아주 나쁜 영향을 주게 된다. 


성인들이 즐거운 시간을 가지려 하면 아무리 못마땅하더라도 일반적으로는 인정해 준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권위의 온 무게를 실어, 미덕이란 즐겁지 않은 것이라고 가르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게 하는 것이 미덕을 사랑하게 만드는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인가 보다. 교육 당국은 미덕이란 즐겁지 않은 것이란 점을 아이들에게 증명하기 위해서, 즐겁지 않으면서 동시에 미덕을 갖춘 교사들을 공급하고자 애쓰고 있다. 


나는, 가장 훌륭한 사람에 관해 견해가 좀 다르다. 나는 사람들이 유쾌하고 명랑하고 다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니오'보다는 '예'란 대답을 더 많이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에게 '아니오'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특히 아이들에게도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얻는다고 생각한다.


이런 까닭에 나는 어린 세대와 접촉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 일반적으로는 도덕 기준의 유지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즐거움을 범죄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1931. 9.14.)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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