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그리고 깊게 우리와 지구를 바라보고, 그 안에서 나는 어디에 있을까....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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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지금 출판계의 화두는 ‘문명史’

중력파ㆍ인공지능 잇단 조명에

‘사피엔스’ 계기로 관심 높아져

베스트셀러 ‘총 균 쇠’는 물론

‘더 타임스 세계사’ 등 인기

“스토리텔링 측면에서 단연 압도적인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출판 위기라는 상황 속에서 특히나 눈 여겨 볼만한, 하나의 모델 같은 책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26일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김영사) 인기 비결을 이렇게 설명했다.

‘사피엔스’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하라리의 ‘글빨’이다. 새로운 정보, 대담한 이론 쪽보다는 적절한 비유, 유려한 문체, 간간이 섞여 든 유머가 더 빛나는 책이다. 후일담이지만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는 ‘사피엔스’가 국내에 소개된다는 소식을 듣고 이미 성공을 예감했다. 몇 년 전 이스라엘 방문 중 현지 미용실을 찾았는데 미용실 주인이 ‘사피엔스’를 재밌게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진입장벽이 낮은 책이다.

‘사피엔스’를 계기로 문명사 책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빅데이터, 중력파, 인공지능(AI) 같은 얘기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인류 문명 차원에서의 호기심이 폭발하고 있어서다.

문명사라면 누가 뭐래도 1순위로 꼽히는 책은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문학사상사)다. 1977년 미국에서 나왔으나 국내엔 1990년대에 소개됐다. 그 때만 해도 알음알음 알려진 수준이었는데, 2000년대 들어 서울대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대출된 책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판매가 늘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인간의 분투보다는 환경의 차이가 역사적 차이를 낳는데 더 큰 영향을 끼쳤다는 관점을 담고 있다. 지금까지 30만부 정도 팔렸다.

또 손꼽히는 역작으로는 세계적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의 ‘축의 시대’(교양인), 인지과학자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사이언스북스)가 있다. 암스트롱은 신화, 이성, 문명이 폭발하던 기원전 시기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고, 핑커는 인간 마음의 진화 과정을 통찰한 뒤 문명사적 책으로는 드물게 인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제시했다.

고고학자 이언 모리스의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글항아리)도 빼놓을 수 없다. 문명사가 대체로 문명간 우열 도식에 빠져들 위험을 피하기 위해 ‘동서양 문명에 별 차이가 없다’는 전제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무척 애쓴다면, 이 책은 제목에서 보듯 아예 지금 현재는 명백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까발리고 시작하는 독특한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모리스는 정통 고고학자이기에 고고학 자료가 아주 풍부하다.

이외에 ‘말 바퀴 언어’(에코리브르) ‘탄소문명’(까치) ‘시간의 지도’(심산) 등이 명작으로 꼽힌다. 이런 책들은 ‘사피엔스’와 같은 대중성은 조금 떨어지지만, 대개 몇 년간에 걸쳐 꾸준히 팔리면서 1만권 이상 나가는 스테디셀러로 분류된다.

이런 흐름은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100여명에 이르는 전문가들의 협업이 빛나는 ‘더 타임스 세계사’(예경), 캘리포니아 학파의 대표선수라 할 수 있는 케네스 포메란츠의 ‘대분기’(에코리브르)가 대표적이다.

대작만 있는 건 아니다. 얇은 책으로는 인공지능을 키워드로 과학과 인문학을 합친 ‘김대식의 인간 vs 기계’(동아시아), 대륙 문명 베헤모스와 해양 문명 리바이어던 간 대결로 세계사를 설명한 칼 슈미트의 ‘땅과 바다’(꾸리에), 지리적 차이의 영향력에 주목한 다이아몬드의 또 다른 책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나와 세계’(김영사) 등도 잇달아 나왔다.

‘더 타임스 세계사’를 낸 예경의 김지은 편집자는 “이런 책들은 한 권 분량으로 고대에서 현대까지 인간 문명의 모든 장면을 다 담아냈다는 점이 매력”이라면서 “출간 초기 주문량을 따라가지 못해 책이 없어 못 팔 정도였다”고 말했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는 “초창기와 달리 지금은 문명사 책이 어느 정도 소개된 단계여서 단순히 거시적 시각을 갖추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책만의 독특한 시각을 전달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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