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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7.22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 갈등, 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갈등이 끊이지 않네요.

이 갈등으로 아이들을 비롯해 민간인 희생만 자꾸 늘어가고 있어요.

물론 일방적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많이 희생되고 있지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도대체 어떤 관계이고 어떤 역사를 갖고 있기에 이런 갈등이 끊이지 않을까요?

관련 글을 좀 퍼왔습니다.

출처 : 뉴스페퍼민트(http://newspeppermin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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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x)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분쟁 (1)

옮긴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무차별 보복 공세를 퍼붓고 있습니다. 가자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의 사상자 숫자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이곳에서는 피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걸까요? 지난 4월 Vox가 정리했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관계에 대한 모든 것을 소개합니다.

1. 이스라엘(Israel)과 팔레스타인(Palestine)은 어떤 나라인가? 왜 싸우는가?

지중해 동쪽 연안 국가인 이스라엘은 지구 상에 유일한 유대인의 국가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영토는 아랍인들이 살던 땅을 빼앗은 것입니다. 아랍인들은 지금의 이스라엘 땅을 팔레스타인이라 부릅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을 한 줄로 요약하면 같은 땅을 주고 자신의 영유권과 통치권을 주장하는 두 민족의 다툼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땅의 주인이 원래 자신이라는 양측의 주장 모두 역사적 근원을 갖고 있고, 둘 다 일리가 있습니다. 시시비비를 가려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결국 이 문제는 힘이 센 쪽이 이기는 폭력으로 비화했는데, 1차대전 이전 오스만제국 식민지였던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들이 나라를 세우고자 영국 정부를 압박했습니다. 아랍인들의 반발과 양쪽 모두에게 영토를 분배하려던 UN의 계획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고, 현재 이스라엘과 이웃들의 국경선은 대체로 1948년과 1967년 일어났던 중동 전쟁의 결과라고 보면 됩니다.

오늘날 팔레스타인이라 하면 크게 이스라엘 내 두 지역을 합쳐 일컫는 말입니다. 우선 요르단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요르단강 서안(West Bank)은 팔레스타인이 명목상 통치하고 있지만, 사실상 이스라엘의 지배를 받고 있는 곳입니다. 이스라엘은 이곳에 끊임없이 정착민을 이주시키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서서히 내쫓아 왔는데, 정착민들이 새로 터전을 잡을 때마다 이곳은 이스라엘군과 경비병력의 보호를 받습니다. 이스라엘 남서쪽, 이집트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가자지구(Gaza Strip)는 사정이 좀 다릅니다. 이곳은 이슬람 원리주의 정당이자 군대 조직까지 갖춘 하마스(Hamas)가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곳입니다. 이스라엘은 지상군을 가자지구에 상주시키지 않고 있지만, 가자지구를 오가는 모든 물자를 효과적으로 차단하며 이곳을 봉쇄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노선 차이로 좀처럼 손을 잡지 않던 하마스와 요르단강 서안의 파타(Fatah)가 2007년 이후 처음으로 단일 정부 구상을 논의하자 이스라엘이 즉각 이를 가로막고 나서기도 했습니다.

두 국가 해법(Two-state Solution)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끝내고 평화와 공존으로 나아갈 방안이라는 평가를 받는 해법입니다. 현재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대부분을 영토로 하는 팔레스타인을 새로운 독립국으로 인정해주고, 나머지 영토는 이스라엘 땅으로 하여 두 민족이 공존을 도모하는 것이죠. 아랍 민족이 살고 있던 땅을 영국이 식민지로 경영하던 곳에 원주민을 쫓아내고 세운 나라가 이스라엘이기 때문에 영구적인 평화 정착안으로서 두 국가 해법은 사실상 이스라엘이 건국될 때부터 있던 셈입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이를 어떻게 실행할지를 두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단 한 번도 실질적인 합의에 이른 적이 없습니다. 반대로 한 국가 해법(One-state Solution)은 둘 중 하나의 정부가 상대방을 함께 다스리는 것으로 평화적인 공존과는 거리가 먼 해법으로 평가됩니다. (V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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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x)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분쟁 (2)

2. 시온주의(Zionism)는 무엇인가?

시온주의는 유대인들의 삶을 규정하는 사상이자 종교입니다. 유대인들은 시온주의에 근거해 조상 대대로 살았던 땅 이스라엘에 유대인들의 국가를 세우는 걸 지상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신에 의해 선택받은 민족인 유대인들은 유대인 국가 이스라엘을 세우는 걸 신의 뜻이라고 믿고 실행에 옮겼지만, 그들이 선택한 땅은 유대인과 다른 신을 믿는 아랍인들이 팔레스타인이라 이름을 짓고 살고 있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다윗왕과 솔로몬왕에게서 유대민족의 뿌리를 찾는 유대인들이 “시온으로 돌아가자”는 열망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 건 근대 민족주의가 유럽을 휩쓸던 19세기부터입니다. 오스트리아 태생의 유대인 헤르즐(Theodor Herzl)은 유럽에서 점점 극심해지던 반유대주의(anti-Semitism)를 직접 겪으며 유대인들의 국가를 건설하지 않고는 유대인들이 살아남을 수 없다고 믿게 됐습니다. 언론인이었던 그는 신문에 글을 써 시온주의의 정당성과 지금의 이스라엘이 된 팔레스타인으로 유대인들이 집단 이주를 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헤르즐이 글을 쓰기 전 팔레스타인에 살던 유대인들은 약 2만 명이었는데, 히틀러가 독일에서 권력을 잡을 때쯤엔 16만여 명이 팔레스타인 땅에 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건국에는 이견을 보이지 않던 시온주의 내부에도 소위 좌파와 우파가 있습니다. 1970년대까지 이스라엘의 정치권력을 좌우했던 시온주의 좌파는 이스라엘이 점유한 땅 일부를 아랍 국가들에 돌려주고 평화협정을 맺는 이른바 땅과 평화의 맞교환(Land for Peace) 정책을 지지하고, 경제적으로는 큰 정부의 개입을 선호했습니다. 또한, 종교 색을 가급적 배제한 세속적 정부를 원했죠. 반면 현재 집권세력이라 할 수 있는 시온주의 우파는 땅과 평화의 맞교환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품고 있고, 정부보다는 시장에 경제를 맡기려는 쪽입니다. 종교 원리를 현실 정치에 인용하는 데도 훨씬 거부감이 덜합니다.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 국가들은 시온주의를 규탄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온주의는 선택받은 민족은 오직 유대인뿐이라는 원칙에 기반을 두고 있고, 이에 따라 전 세계 어디에 있는 유대인은 원하면 이스라엘 국적을 바로 얻을 수 있습니다. 이 권리는 유대인 말고는 누구도 누릴 수 없는 것이죠. 때문에 아랍인들은 시온주의를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땅에서 내쫓기 위한 계책이나 종교의 탈을 쓴 제국주의 내지 인종주의로 규정해 왔습니다. 아랍 국가들은 1975년 유엔 총회에서 “시온주의는 인종주의, 인종차별의 한 형태”라는 결의안을 이끌어내기도 했는데, 이 결의안은 1991년 폐지됩니다. (V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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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x)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분쟁 (3)

3. 이스라엘 건국 과정

19세기 말 유럽의 민족주의가 강화되면서 유럽에 있던 유대인들도 유대 민족의 나라를 세워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당시 전체 유대인의 90%가 유럽에 살고 있었는데, 이 가운데 수천, 수만 명이 1896 ~ 1948년 사이 유럽에서 점차 노골적으로 드러나던 반유대주의를 피해, 그리고 세속적 민족주의를 좇아 선택받은 땅으로 이주합니다. 그곳은 바로 당시 영국이 관할하고 있던 아랍의 팔레스타인 땅이었습니다. 아랍인들은 유대인들의 계속된 이주를 유럽의 또 다른 식민 침탈이라 여기며 격렬히 반대했습니다. 크고 작은 폭력이 잇따랐죠. 팔레스타인을 식민지로 경영했고, 유대인들에게 이스라엘 건국을 지지하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 결과적으로 이주를 부추긴 영국은 계속되는 폭력을 막을 방법을 찾지 못했고, 갓 결성된 UN이 나섰습니다.

UN은 팔레스타인 땅을 둘로 나눠 65만 명의 유대인을 한 쪽에, 그리고 인구가 유대인의 두 배 가까이 됐던 아랍인들을 다른 한 쪽에 배치하는 계획을 발표합니다. 유대인들은 이 계획을 받아들였지만, UN의 계획을 계속되는 유대인 이주와 식민 침탈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한 아랍인들은 계획을 거절했습니다. 이스라엘을 곱게 보지 않던 이집트와 요르단, 이라크, 그리고 시리아 등 주변국들은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민병대와 아랍 국가의 연합군을 물리칩니다. UN의 첫 분리안은 팔레스타인 영토의 56%를 이스라엘에 주는 것이었는데, 전쟁이 끝난 시점에 이스라엘은 요르단강 서안과 요르단이 통치하는 예루살렘 동쪽 일부, 이집트가 통치하는 가자지구 일부를 제외한 팔레스타인 영토의 77%를 장악합니다.

4. 나크바(Nakba)

1948년 전쟁으로 팔레스타인 인구 70만 명이 삶의 터전을 잃고 난민이 됐습니다. 나크바는 아랍어로 “재앙”이라는 뜻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가장 슬픈 역사의 한 장면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1948년 전쟁과 나크바를 이스라엘이 수년 동안 치밀하게 계획한 아랍 민족에 대한 인종청소라고 비난하는 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쟁이 불가피했던 측면을, 그리고 아랍 군대를 비난합니다. 팔레스타인 난민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나크바 때 난민 70만 명과 그들의 후손, 그리고 계속해서 이스라엘로부터 쫓겨나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이 불어나 이제는 700만 명으로 불어났습니다. 팔레스타인은 기본적으로 이들 난민들이 원래 자신들의 땅으로 돌아가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절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습니다. 현재 이스라엘의 인구는 약 800만 명인데 이 가운데 이미 아랍인들이 150만 명쯤 됩니다. 여기에 팔레스타인 난민 700만 명을 이스라엘에서 살 수 있도록 허락한다면, 유대인의 나라여야 하는 이스라엘은 유대인이 소수 민족이 되는 셈이죠. 유대민족 국가라는 위상이나 1인 1표를 원칙으로 하는 민주주의 둘 중 하나를 버려야 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권리에 관한 어떤 사항도 협상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자세를 고수해 왔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이 합의할 수 있는 한에서 난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방안이 오랫동안 협상 의제로 다뤄졌고, 난민에 대한 금전적인 지원을 확충하고 유대인들이 무차별적인 이주로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잠식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지만, 양측은 실천 방안을 두고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V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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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x)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분쟁 (4)

5. 요르단강 서안(West Bank)

고유명사 West Bank는 여느 강의 서쪽 편을 일컫는 말이 아니라 요르단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요르단강 서안의 팔레스타인 자치구를 일컫는 말입니다. 팔레스타인인 260만 명이 살고 있는 땅으로 여러모로 팔레스타인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곳이죠. 1967년 6일 전쟁 이후 이곳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는 이스라엘은 유대인 정착촌을 계속해서 확장해 왔습니다. 반면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여러 나라, 단체들은 이스라엘이 불법으로 땅을 점유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발포로 시작된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주변국가의 군대를 사실상 궤멸시키고 승리합니다. 특히 요르단으로부터 동예루살렘과 고대 유대인들의 유적이 많은 요르단강 서안을 빼앗은 건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현재 요르단강 서안에 사는 유대인 정착민들은 약 50만 명입니다. 이들은 대부분 (사실상의) 이스라엘 국경 가까이에 살고 있는데, 두 국가 해법안대로 협상이 이뤄진다면 이들 가운데 일부는 땅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반납하고 이스라엘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은 국경을 어디에 어떻게 그어야 할지를 두고 합의 다운 합의를 이뤄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6. 예루살렘 (Jerusalem)

유대인과 무슬림 모두에게 종교적 성지인 예루살렘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구의 경계선에 걸쳐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 예루살렘을 정신적 수도로 삼고 싶어하기 때문에 예루살렘 안에서 양측의 경계선을 어떻게 나누느냐 문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의 축소판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건국 후 처음 20년 동안 이스라엘은 서쪽을, 요르단은 고대도시 유적을 포함한 동예루살렘을 다스렸습니다. 특히 요르단은 성산(聖山, Temple Mount)을 다스리고 있었는데, 이곳에는 유대교 성지인 통곡의 벽(Western Wall)과 이슬람교 성지인 알 악사 사원(al-Aqsa Mosque), 바위의 돔(Dome of the Rock)이 모여 있습니다. 1967년 이전에는 통곡의 벽과 유대교 사원에 접근이 금지됐던 유대인들은 전쟁으로 아예 성산을 점령해버리고 예루살렘을 유대인들의 수도로 선포해버립니다. 동예루살렘을 정복한 건 명백한 국제법 위반으로 이스라엘을 물심양면 지지하는 미국조차도 예루살렘이 온전히 이스라엘 소유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유엔은 안보리 결의안 478호를 통해 이스라엘의 동예루살렘 합병을 비난하고 타협안을 도출할 것을 촉구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땅을 나눌지는 여기서도 역시 합의가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그러는 사이 유대인들은 꾸준히 예루살렘으로 이주해왔고, 현재 예루살렘 땅의 2/3는 유대인 주거구역이 됐습니다.


7. 가자 (Gaza)

이스라엘 남서쪽, 이집트와의 국경지대에 위치한 가자지구는 요르단강 서안과는 또 다른 팔레스타인 인구 밀집지역입니다. 동예루살렘을 요르단이 통치했던 것처럼 가자지구는 이집트가 통치해 왔는데, 역시 6일 전쟁 때 이스라엘이 점령했습니다. 가자지구에 점령군으로 상주하던 이스라엘군은 2005년에 철수했지만, 여전히 가자지구는 이스라엘 당국에 의해 거의 완벽하게 봉쇄되어 있습니다. 선거로 선출된 하마스는 이스라엘과 충돌이 있을 때마다 이스라엘을 향한 로켓 공격을 감행하는데, 이는 종종 팔레스타인을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스라엘 매파의 입지를 다져주는 계기가 됩니다. 하마스가 무기를 만드는 데 쓰일 만한 물자를 가능한한 가자지구로 들여보내지 않는 이스라엘의 봉쇄정책 때문에 가자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전기와 연료, 식량, 의약품 등 생필품이 만성적으로 부족합니다. (V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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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x)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분쟁 (5)

옮긴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무차별 보복 공세를 퍼붓고 있습니다. 가자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의 사상자 숫자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마스가 거대한 땅굴을 파고 이를 통해 이스라엘을 공격하려 했다는 주장과 이스라엘이 소형 강철 화살인 플레셰트탄(flechette)을 사용해 민간인들을 무차별 학살하려 했다는 증거도 나왔습니다. 정전이나 휴전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양측은 안타깝게도 총부리를 내려놓기보다는 갈수록 서로의 심장부를 겨누는 파멸의 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상자 숫자를 비롯한 속보는 우리 언론에도 상세히 소개되고 있습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을 짚어보고 싶습니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이곳에서는 피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걸까요? Vox가 지난 4월에 정리했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모든 것”에 최근 양측의 충돌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설명을 추가했습니다. 5편에서는 이 글을 소개합니다.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망자 숫자가 500명을 넘었습니다. 표면적으로 하마스를 포함한 팔레스타인의 무장단체들과 이스라엘의 이번 충돌은 지난달 10일 이스라엘 청년 3명이 납치, 살해된 사건에서 시작됐습니다. 요르단강 서안에서 정통 유대교 대학인 예시바에 갔던 청년 3명이 괴한에 납치됐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를 하마스의 소행이라고 보고 가자지구는 물론 요르단강 서안까지 팔레스타인 전역을 이 잡듯이 뒤졌습니다. 하지만 사라졌던 청년들은 지난달 30일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누군가에게 살해된 것이 명백했습니다. 나중에 나온 보도들을 종합해보면, 이스라엘 당국은 이미 청년들이 숨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 기회에 하마스 세력을 약화할 목적으로 대대적인 검거 작전을 펼쳤고, 공식적으로 시신이 발견된 이후로는 가자지구에 대대적인 폭격을 시작했습니다. 팔레스타인 무장세력들도 이스라엘 영토를 향해 로켓포를 쐈는데, 주목할 만한 사실은 하마스는 처음에는 공격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틀 뒤인 7월 2일, 16살 팔레스타인 청년 무하메드 아부 케디르(Muhammed Abu Khedir)가 예루살렘에 있는 자신의 집 근처에서 불에 타 숨진 채로 발견됩니다. 팔레스타인 경찰은 이스라엘인 6명을 용의자로 체포한 뒤, 이 사건을 이스라엘 청년들의 죽음에 대한 보복 살인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버즈피드의 프렌켈(Sheera Frenkel)은 용의자 가운데 한 명이 이스라엘의 극우 인종주의 훌리건(축구광)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스라엘의 극우 정치인들은 보복 살인을 옹호하며 반(反) 팔레스타인 정서를 부추겼습니다. 무하메드가 숨진 지 사흘 뒤인 7월 5일, 그의 미국인 사촌 동생인 타리크 아부 케디르(Tariq Abu Khedir)가 이스라엘 경찰에게 심하게 폭행당한 영상이 공개됩니다. 계속되는 가자지구 공습과 케디르 형제의 사건 등을 계기로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시위도 격렬해졌습니다.

하마스는 7월 8일,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포 공격을 감행합니다. 지난 2012년 말, 여드레 간의 전투 이후 처음이었죠.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는 기다렸다는듯이 가자지구를 향한 공세를 한층 강화했습니다. “하마스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7월 14일을 기점으로, 사상자 숫자는 이미 2012년 전투 때의 사상사 수를 넘어섰고, 이튿날인 15일, 이집트의 중재로 한시적인 정전이 성사되는 듯했으나, 하마스 내부 강경파가 이를 거부한 채 계속해서 로켓포 공격을 이어가 다시 전투가 속개됐습니다. (Vox)


8. 유대인 정착촌


1967년 6일 전쟁 이후 요르단강 서안을 군사력으로 장악한 이스라엘은 자국민들의 이주를 장려합니다. 원래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쫓아내고 유대인들이 점점 정착촌을 늘려갔는데, 종교나 정치적인 이유에서 온 사람도 있었고, 단지 이곳의 집값이 상대적으로 싸고 이스라엘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했기 때문에 이사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어쨌든 공격적으로 확장을 거듭한 유대인 정착촌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의 평화를 논의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현재 요르단강 서안 팔레스타인 땅 안에 있는 유대인 정착촌 130여 곳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국민은 모두 합해 50만 명인데, 이 가운데 75% 정도는 요르단강 서안 중에서도 이스라엘과 가까운 쪽에 있는 정착촌에 살고 있습니다. 원래 팔레스타인 땅이라고 해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합법적으로’ 와서 뿌리를 내리고 살기 시작하면서 원주민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점점 땅과 연관된 영유권을 잃었습니다. 정착촌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 가운데는 요르단강 서안이 오롯이 이스라엘 영토로 편입돼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스라엘 국민들의 믿음은 이스라엘 경찰들에게 시도때도 없이 불심검문을 당하고 유대인이 아니면 접근할 수도 없는 구역이 늘어나면서 점점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변호사들은 대부분 무력으로 점령한 땅에 자국민을 이주시키는 것을 금하는 제네바협약 4조를 이스라엘이 명백히 어겼다고 보고 있습니다.


15.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바라보는 세계의 여론

이슬람 국가들을 제외한 전체 국가들 가운데 83%가 이스라엘과 국교를 맺거나 이스라엘을 나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나라들은 이스라엘의 요르단강 서안 정복과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핍박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이스라엘보다 팔레스타인 편을 드는 의견이 대부분 훨씬 높습니다. 이스라엘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나라보다는 싫어하는 나라로 꼽힙니다. 요르단강 서안에 마구잡이로 유대인 정착촌을 설치해 팔레스타인인들을 쫓아낸 게 비난을 산 결정적인 원인입니다. 많은 변호사, 법률가들이 이스라엘의 요르단강 서안 점령을 제네바 협약과 국제법을 위반한 범법 행위라고 보고 있지만, 이스라엘과 친 이스라엘 성향 법률가들의 주장은 다릅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이 요르단강 서안을 불법 점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제네바 협약이 금지하고 있는 건 국민들의 강제 이주이지 유대인 정착촌에 모여드는 이스라엘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이주를 선택했기 때문에 유대인 정착촌이 제네바 협약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V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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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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