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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12.05 나, 다니엘 블레이크 그리고 서울 뒷골목

일요일 모처럼 걷고 걷고 걸었다. 서울 골목골목을.


전날 집회에다 날마다 생겨나는 일들로 피로가 쌓이기는 했지만, 

일요일 오전, 좋아하는 벗과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보았다. 마음 한구석에 영화가 중심인지 함께하는 벗이 중심인지 모호하기는 하지만... 암튼!^^


장면 하나하나는 우리가 일상에서 겪을 법한 현실을 더하지도 빼지도 않은 채, 그대로를 담은 듯했다. 사실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은 조각난 파편들이기에 그 이어짐을 쉬이 알아차리기 힘든 것 같다. 조각난 현실 자체마저도 갈수록 버겁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는 '보리밭에 부는 바람'이 더 좋은 듯. 아직까지는)


지극히 현실을 그냥 보여주기만 하는 듯한데도, 제도화된 시스템이 한 인간의, 아니 인간의 자존감을 짓밟고 '기'마저 빼앗으며 삶을 포기하고 싶은 상황에 이르게 하는 모습을 읽어낼 수 있었다. 켄 로치 감독의 힘일까?영화를 보고 나서 쉬이 자리에서 일어나지지 않았다. 좀 많이 우울하기도 했고, 댄(다니엘 블레이크)의 죽음이 너무 가슴 아팠다. 


댄의 온정과 관심으로 삶을 버텨낸 케이티와 그의 두 아들딸이 현실을 잘 이겨낼까? 아니 이겨냈으면 하는 응원을 보내면서도 제2의 댄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서글픔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오후 약속은 땡땡이 치고 그저 걸었는지도...^^


벗의 소개로 본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라는 영화 속 시와 <나, 다니엘 블레이크> 속 댄의 대사가 유난히 연결되는 듯하여, 영화 끝나고 골목골목을 걸으며 함께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음이 위안이었다고나 할까?


함께 걸으며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은 그냥 바람과 함께 나누는 걸로!


암튼 두 영화는 다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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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시 한편~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 포루그 파로흐자드


나의 작은 밤 안에, 아,

바람은 나뭇잎들과 밀회를 즐기네

나의 작은 밤 안에

적막한 두려움이 있어


들어보라

어둠이 바람에 날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나는 이방인처럼 이 행복을 바라보며

나 자신의 절망에 중독되어 간다


들어 보라

어둠이 바람에 날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지금 이 순간, 이 밤 안에

무엇인가 지나간다

그것은 고요에 이르지 못하는 붉은 달

끊임없이 추락의 공포에 떨며 지붕에 걸쳐 있다

조문객 행렬처럼 몰려드는 구름은

폭우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한순간

그 다음엔 무

밤은 창 너머에서 소멸하고

대지는 또다시 숨을 멈추었다

이 창 너머 낯선 누군가가

그대와 나를 향하고 있다


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푸르른 이여

불타는 기억처럼 그대의 손을

내 손에 얹어 달라

그대를 사랑하는 이 손에

생의 열기로 가득한 그대 입술을

사랑에 번민하는 내 입술의 애무에 맡겨 달라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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