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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12.05 나에게로 온 '시를 노래한 시'

시를 노래한 시를 모아 보았다.

다음 시 모임에서 '시'를 노래한 시를 주제로 잡아서이기도 하다.



덧. 1

틈틈이 들어오는 시를 채우는 걸로!^^


덧. 2

'쉼보르스카'의 시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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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두의 시>


가두의 시

                        - 송경동


길거리 구둣방 손님 없는 틈에

무뎌진 손톱을  가죽 자르는 쪽가위로 자르고 있는

사내의 뭉툭한 손을 훔쳐본다

그의 손톱 밑에 검은 시()가 있다


종로5가 봉제골목 헤매다

방 한칸이 부업방이고 집이고 놀이터인

미싱사 가족의 저녁식사를 넘겨본다

다락에서 내려온 아이가 베어먹은 노란 단무지 조각에

짜디짠 눈물의 시가 있다


해질녘 영등포역 앞

무슨 판촉행사 줄인가 싶어 기웃거린 텐트 안

시루 속 콩나물처럼 선 채로

국밥 한 그릇 뚝딱 말아먹는 노숙인들의 긴 행렬 속에

끝내 내가 서보지 못한 직립의 시가 있다


고등어 있어요 싼 고등어 있어요

저물녘 "떨이 떨이"를 외치는

재래시장 골목 간절한 외침 속에

내가 아직 질러보지 못한 절규의 시가 있다

그 길바닥의 시들이 사랑이다



2. <다시 시에 대하여>


다시 시에 대하여

                                      - 김남주


시의 내용은 생활의 내용 내 시에는

흙과 노동이 빚어낸 생활의 얼굴이 없다

이제 그만 쓰자 시를 써야겠다는 생각도

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리자

가자 씨를 뿌리기 위해 대지를 갈아엎는 농부의 들녘으로

가자 뿌리를 내리기 위해 물과 싸우는 가뭄의 논 바닥으로

가자 추위를 막기 위해 북풍한설과 싸우는 농가의 집으로

내 시의 기반은 대지다

그 위를 찍어내리는 곡괭이와 삽의 노동이고

노동의 열매를 지키기 위한 피투성이의 싸움이다

대지 노동 투쟁...

생활의 이 기반에서 내가 발을 떼면

내 시는 깃털 하나 들어올리지 못한다

보라 노동과 인간의 대지에 쁘리를 내리고

생활의 적과 싸우는 이 사람들

피와 땀과 눈물로 빚어진 이 사람의 얼굴을



3. <칼날의 시>


칼날의 시

                         - 문정희


불 속에 사는 새가 있다

얼음 속에서 날개를 펼치는 물고기도 있다

하지만 나는 너를 어디에도 둘 수 없어

번개처럼 날카로운

칼날 위에 둔다

위태하게 대롱거리는

붉은 눈물방울

이대로 내 사랑 백 년만 가거라




4. <단어를 찾아서>


단어를 찾아서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솟구치는 말들을 한마디로 표현하고 싶었다.

있는 그대로의 생생함으로.

사전에서 훔쳐 일상적인 단어를 골랐다.

열심히 고민하고, 따져 보고, 헤아려 보지만

그 어느 것도 적절치 못하다.


가장 용감한 단어는 여전히 비겁하고,

가장 천박한 단어는 너무나 거룩하다.

가장 잔인한 단어는 지극히 자비롭고,

가장 적대적인 단어는 퍽이나 온건하다.


그 단어는 화산 같아야 한다.

격렬하게 솟구쳐 힘차게 분출되어야 한다.

무서운 신의 분노처럼

피 끓는 증오처럼.


나는 바란다. 그것이 하나의 단어로 표현되기를.

피로 흥건하게 물든 고문실 벽처럼

네 안에 무덤들이 똬리를 들지언정,

나는 정확하게, 분명하게 기술하고 싶다.


그들이 누구였는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지금 내가 듣고 쓰는 것, 그것으로 충분치 않다.

터무니없이 미약하다.


우리가 내뱉는 말에는 힘이 없다.

그 어떤 소리도 하찮은 신음에 불과하다.

온 힘을 다해 찾는다.

적절한 단어를 찾아 헤맨다.

그러나 찾을 수 없다.

도무지 찾을 수 없다.




5. <글자 속에 나를 구겨넣는다>


글자 속에 나를 구겨넣는다

                                         - 이선영


나는 종이 위에 나를 한자 한자 새겨넣는다

나는 이리저리 흐트러진 나의 육체를 끌어모아 글자 속에 집어넣고 뚜껑을 꽉 닫는다

한글자 한글자 씌어질 때마다 한치 한치 오그라드는 내 육체는 수천 수만 가지 글자들로 다시 태어나고

새로 만들어지는 글자들마다에 나의 육체는 자신의 새로운 집을 짓는다

나는 수만 채의 집을 거느리고 산다,

나의 살점을 나누어 조금씩 떼내어서는 각 집의 관리인으로 둔 채

그런데 이즈음 내 육체는 "이 안은 왜 이리 어둡고 갑갑한가?"라고 말한다

나는 공들여 지은 내 집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늙어 눈이 어두워진 도장공처럼

나는 지금 끙끙대며 나를 글자 속에 구겨넣으려 안간힘쓴다

내 커진 몸집의 풍요를 맛본 내 육체가 더 이상 좁은 집에 살려 하지 않기에




6. <시를 쓰기 위하여>


시를 쓰기 위하여 _ 연필


                                      - 김연신


연필을 깍는다.

시를 쓰기 위하여

연필이 뾰족하게 깎인다.

연필은 뾰족한 끝으로 내 배를 지그시 찌른다,

연필만 깎아서 시가 써지느냐고.

손가락을 깎으면 시가 써지느냐고 내가 묻는다.

연필은 대답도 없이 더 찌른다.

아픈 것이 손가락 열 개를 다 뾰족하게 깎는 것이 차라리 좋겠다.

연필은 아무 말도 없이 찌른다. 또 찌른다.

나를 덥석 안아서 연필깎이 속에 집어넣는다.

갑자기 날들이 낄낄 웃으며 돌아가고 

머리통부터 나는 뾰족해진다.


나를 잡고 시를 쓸 그를 기다린다.




7.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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