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6.11.21 친구 그리고 시
  2. 2010.07.20 배설의 글, 비판의 글

친구를 노래한 시


친구라는 게 참 묘하다. 어린 시절 친구들을 다시 만나면, 싱겁기만 하다. 

아니 늘상 만나는 아저씨 아줌마와 다르지 않다. 좀 편하기는 할지라도...

아니 그래서 편하지 않았다.

진짜 친구가 있는 걸까?

아마 친구 같은 존재를 친구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친구는 없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들 친구를 노래하는지도 몰라


덧 1.

'그 사람을 가졌는가'는 참 좋기는 한데, 언뜻언뜻 남성 중심적인 냄새가 배어 있는 듯한

대목이 눈에 들어온다. 남성들에게 친구는 어떤 느낌이고, 여성들에게 친구는 어떤 느낌일까?

다르기는 할 것이고, 사회적으로 다른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기도 하고....

어떤 게 진실일까? 틀 안과 밖의 경계를 들여다보기가 쉽질 않아!



덧 2.

간밤에 시 몇 편을 찾다가 박노해 시가 들어와서 몇 편 덧붙인다.


덧 3.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 몇 편을 만났다.

그는 1923년에 태어난 폴란드 시인이다. <끝과 시작>이라는 책에서...


덧 4. 

시 순서를 바꿨다. 함석헌 선생의 <그 사람들 가졌는가>를 맨 앞으로 모셔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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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을 가졌는가>
                              - 함석헌


만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不義)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며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함석헌·사회 운동가이며 종교사상가, 1901-1989)





<벗의 노래>
                       _정연복


홀로는 이슬 하나의
무게도 견디지 못할 것 같은
작고 여린 꽃잎들이

층층이 포개어지고 
동그랗게 모여 
이슬도, 바람도 너끈히 이긴다

하나의 우산 속에
다정히 밀착된
두 사람이

주룩주룩 소낙비를 뚫고
명랑하게 걸으며
사랑의 풍경을 짓는다

가파르게 깊은 계곡과
굽이굽이 능선이 만나서
산의 너른 품 이루어

벌레들과 새들과 짐승들
앉은뱅이 풀들과 우람한 나무들
그 모두의 안식처가 된다

나 홀로는 많이 외로웠을 생(生)
함께여서 행복한  

참 고마운 그대여,
나의 소중한 길벗이여


(정연복·시인, 1957-)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정말로 좋은 친구>


그들은 정말로 좋은 친구였다.

그들은 짓궂은 장난을 하며 놀기도 했지만,

또 전혀 놀지 않고도, 전혀 말하지 않고도 있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함께 있으면서

전혀 지루한 줄 몰랐기 때문이다.


(장자끄 상뻬의 <얼굴 빨개지는 아이>에서)




<첫 마음>

                     - 박노해


한 번은 다 바치고 다시

겨울나무로 서 있는 벗들에게


저마다 지닌

상처 깊은 곳에

맑은 빛이 숨어 있다.


첫 마음을 잃지 말자.


그리고 성공하자

참혹하게 아름다운 우리


첫 마음으로




<내가 나선 이유>

                     - 박노해


솔직히 나는 내 죄를 안다

나도 거품이었고 부실했다

나는 지금 누구도 탓하지 않고

내 일생을 바쳐 쌓아온 것들이

발 밑에서 허물어지는 것을 보고 있다


이건 분명 내 탓이다

나의 불찰이고 나의 무능이다

내가 지어 내가 받는 것임을 나는 잘 안다


그런데, 나는 이것이 슬프다

이것이 내 노여움이다


이 모든 걸 내 죄로 알고 받아들이는 게

너를 조금도 참회시킬 수도 변화시킬 수도 없다는 거다

너는 어제도 오늘도 그러한 것처럼

내일 다시 숱한 사람들을 들뜨게 하고 미치게 하고

한 순간 통째로 무너뜨리고 말 것이다

너희들이 떠넘긴 이 큰 죄와 고통이

고스란히 우리의 미래로 떠밀렸을 뿐이라는 것

그것이 나의 슬픔이고 나의 분노이다

그것이 내 탓이다 내 가슴을 치면서도

너를 향해 내가 나서는 이유이다




<나에게 던진 질문>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미소 짓고, 손을 건네는 행위,

그 본질은 무엇일까?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순간에도

홀로 고립되었다고 느낀 적은 없는지?

사람이 사람으로부터

알 수 없는 거리감을 느끼듯.

첫번째 심문에서 피고에게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내는

엄정한 법정에 끌려나온 듯.

과연 내가 타인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을까?

책을 펼쳤을 때 활자나 삽화가 아닌

그 내용에 진정 공감하듯이.

과연 내가 사람들의 진심을 헤아릴 수 있을까?

그럴듯하게 얼버무리면서

정작 답변은 회피하고,

손해라도 입을까 겁에 질려

솔직한 고백 대신 번지르르 농담이나 늘어놓는 주제에.

참다운 우정이 존재하지 않는

냉혹한 세상을 탓하기만 할 뿐.

우정도 사랑처럼

함께 만들어야 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혹독한 역경 속에서

발맞춰 걷기를 단념한 이들도 있으련만.

벗이 저지른 과오 중에

나로 인한 잘못은 없는 걸까?

함께 탄식하고, 충고를 해주는 이들도 있으련만.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도 전에

얼마나 많은 눈물이 메말라 버렸을까?

천년만년 번영을 기약하며

공공의 의무를 강조하는 동안,

단 일 분이면 충분할 순간의 눈물을

지나쳐 버리진 않았는지?

다른 이의 소중한 노력을

하찮게 여긴 적은 없었는지?

탁자 위에 놓인 유리컵 따위엔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법,

누군가의 부주의로 인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나기 전까지는.


사람에게 품고 있는 사람의 마음,

과연 생각처럼 단순하고 명확한 것이려나?

(<끝과 시작>_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시선집. 최성은 옮김)



Posted by 익은수박

이불을 꿰매면서

박노해

 

이불 호청을 꿰매면서 속옷 빨래를 하면서 나는 부끄러움의 가슴을 친다. 똑같이 공장에서 돌아와 자정이 넘도록 설거지에 방청소에 고추장단지 뚜껑까지 마무리하는 아내에게 나는 그저 밥달라 물달라 옷달라 시켰었다. 동료들과 노조일을 하고부터 거만하고 전제적인 기업주의 짓거리가 대접받는 남편의 이름으로 아내에게 자행되고 있음을 아프게 직시한다. 명령하는 남자, 순종하는 여자라고 세상이 가르쳐 준 대로 아내를 야금야금 갉아먹으면서 나는 성실한 모범근로자였었다. 노조를 만들면서 저들의 칭찬과 모범표창이 고양이 꼬리에 매단 방울소리임을, 근로자를 가족처럼 사랑하는 보살핌이 허울좋은 솜사탕임을 똑똑히 깨달았다. 편리한 이론과 절대적 권위와 상식으로 포장된 몸서리쳐지는 이윤추구처럼 나 역시 아내를 착취하고 가정의 독재자가 되었었다. 투쟁이 깊어 갈수록 실천 속에서 나는 저들의 찌꺼기를 배설해 낸다. 노동자는 이윤 낳는 기계가 아닌 것처럼 아내는 나의 몸종이 아니고 평등하게 사랑하는 친구이며 부부라는 것을, 우리의 모든 관계는 신뢰와 존중과 민주주의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잔업 끝내고 돌아올 아내를 기다리며 이불홑청을 꿰매면서 아픈 각성의 바늘을 찌른다.

  

...............

 

욕이 아닌, 배설이 아닌, 비판의 글이 되고 살아있는 글이 되려면 나에서 출발하는 글이어야 한다고 하였다. 오도엽님께서  ^^

그러면서 인용한 박노해 시인의 '이불을 꿰매면서'라는 시를 달아놓았다.

저 바늘이 나를 찌르는 것 같다.

박노해 님의 시와 오도엽 님의 글을 보며, 서정홍 선생님의 '아무리 바빠도 아버지 노릇은 해야지요'가 자꾸 떠오른다.

Posted by 익은수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