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나비_2013.10.29.]

쬐끔 친한 김상욱 샘 글. 


우리 그림책은 어디로 가야 하나



1. 그림책 발전의 배경


우리 그림책의 역사는 길지 않다. 넉넉하게 잡아도 20년 남짓. 그런데도 그 발전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이채롭고 또 경이롭다. 아름다운 그림책, 소중한 그림책, 뜻 깊은 그림책 등 하나하나 손에 꼽으라면 그 어떤 것이든 손가락이 부족할 지경이다. 무엇이 우리 그림책을 이다지 힘차게 밀어 올릴 수 있었을까? 그 힘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그림책을 수용할 수 있는 사회 경제적 배경의 성숙일 것이다. 일정 정도의 경제적 수준이 담보되고, 독자층이 광범위하게 형성될 만한 문화적 역량의 축적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근대 이후 '아동의 발견'에 버금가는 새로운 아동기의 발견이 이루어진 것이다. 물론 이 조건의 개화는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다.


이 눈부신 진전을 일구어온 가장 주요한 동력은 단연 그림책 자체가 안고 있는 힘이다. 글과 그림이 함께 어우러져 이야기를 빚어내는 것이 그림책이라면, 그림책 속에는 글이, 그림이, 이야기가 함께 있다. 더욱이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하나 똑 떼어내 분리하기 힘들 정도로 견고하고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마치 아이의 얼굴에서 엄마와 아빠의 얼굴을 떼어내기 힘든 것처럼. 아이의 얼굴에는 엄마와 아빠가 있고, 또 자신만의 얼굴이 있는 법이기에. 글과 그림, 이야기가 그림책에는 있다. 그러니 그림책에는 아이가 처음 세상과 마주하고, 세상을 껴안고, 세상을 담아두기에 적합한 모든 것들이 담겨 있는 셈이다. 


아이는 처음 세상을 본다. 그림은 아이가 처음 보는 세상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무엇을 중심에 두고 보아야 하는지도 알려준다. 무엇이 아름다운 것인지를 알려준다. 아이는 그림을 통해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가 아닌, 보는 법을 배우게 된다. 허공 속에 있는 엄마의 얼굴을 그저 이차원적인 평면이 아니라, 초점화를 통해 배경과 대상을 구분한다. 더욱이 대상을 고정된 상태로 붙잡아둠으로써 한결 정밀하게 탐사할 수 있게 한다. 시각적 문해력Visual Literacy과 함께 그림으로 담아낸 대상의 아름다움에 눈 뜨게 된다.


또 그림책에는 말이 있다. 글은 엄마나 아빠, 가까운 이의 입을 빌려 말이 된다. 소리가 되고, 울림이 되고, 리듬이 된다. 의사소통의 근간을 이루는 말은 높낮이와 길이, 셈과 여림의 강세 등의 반복 속에서 리듬을 타고 아이의 귀를 통해 마음속으로 울림을 건넨다. 더욱이 이 말은 생각을 불러들인다. 언어가 지닌 기호적 특성으로 말미암아 말은 대상을 즉각 떠올리게 만들며, 이 대상들이 조밀하게 얽혀 하나의 형상으로 자리 잡게 만든다. 또 다른 그림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다. 언어에 내재된 상상하는 즐거움이 마음속에 움을 틔운다.


글과 그림이 함께 어울려 빚어내는 이야기는 또 어떠한가? 이야기는 단순히 앞과 뒤가 연결되어 있는 사건이 아니라, 처음과 끝을 분절시킴으로써 경험을 완결된 하나의 의미로 고정시킨다. 시작과 끝을 설정함으로써 쉼 없이 이어지는 시간을 의미 있는 경험으로 붙들고, 그 경험을 통해 세상을 사는 이치를 깨우친다.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담겨 있는 그림책이 어찌 아름답고 소중하지 않으랴. 그러니 짧은 역사에도 아랑곳없이, 이처럼 수많은 작가와 독자를 한 자리에 불러 모아 함께 공력을 기울이게 만들고, 함께 글과 그림과 이야기의 힘을 나누어 가질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그러니 우리 그림책의 발전에 가장 큰 공은 의당 그림책 자체의 장르적 본질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여기에 또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우리 그림책을 있게 만든 1세대 그림책 작가들의 노고 또한 선명하다. 대체로 1세대 그림책의 작가군들, 류재수, 정승각, 이억배, 권윤덕, 정유정 등은 대부분 민중미술 운동과 직간접적으로 엮여 있었다. 그 경험들은 그림 작가의 개인적인 예술적 표현보다 대중과의 소통을 한층 더 중시하게 만든 동인이었으며, 이 소통에의 바람이 화폭 대신 출판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그 덕분에 우리 그림책은 그 어떤 장르보다 주제의 현실주의적 자질들이 탄탄하며, 화풍의 민족적 특성이 두드러진다. 이는 상대적으로 판타지에 대한 결핍을 초래하였고, 어린이를 타자화함으로써 계몽적 기획을 강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리 그림책의 성장을 위한 가장 힘차고 강건한 주춧돌을 마련했음은 높게 평가받아 마땅하다. 이후에 이어진 그림책이 예술적 표현의 자유분방함 속에서도 현실성과 민족성이 우회적으로 반영되어 있음도 이 때문이다.



2. 그림책의 장르적 특성


그림책은 그림책이다. 그 무엇도 아닌 그저 그림책이다. 그럼에도 그림책이란 통칭 장르를 하위 장르로 구분해 본다면, 정보 그림책과 이야기 그림책으로 나뉜다. 정보 그림책이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이야기 그림책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목적이다. 어쩌면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정보 그림책이라면 이야기 그림책은 어떤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야기 자체의 즐거움을 건네주는 것이 목적이다. 이른바 칸트의 ‘무목적성’이 이야기 그림책의 특성이다. 더러 ‘시 그림책’이란 용어로 그림책을 구분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시를 바탕으로 만든 그림책이지만, 그림책이 되는 순간, 시는 자취를 감추고 32쪽의 그림이 펼쳐내는 이야기로 전화된다. 그러니 우리가 탐구하는 그림책은 오로지 이야기 그림책만 우두커니 남아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장르는 비평가나 연구자의 필요에 따라 언제든 이합집산을 거듭하기 마련이다. 연구의 필요를 위해 거듭 새로운 장르는 만들어지고 지칭된다. 예컨대 판타지 그림책은 현실성을 넘어서는 요소나 장치, 플롯을 가질 경우의 작품들을 묶어 논의할 수 있다. <눈사람 아저씨>나 <사과가 쿵> 같은 작품들을 한꺼번에 묶어 논의할 수 있다. 심지어는 장르적 특성이 눈에 띄지 않더라도 '칼데콧 수상 그림책'이 설정될 수도 있다. 이에 대한 다양한 연구는 넘쳐나는 지경이다. 우리 그림책 논의에서도 다양한 공모제에 수상한 작품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도 있다. 그러니 이러저러하게 새로운 장르명칭을 끌어와 논의를 한층 선명하게 밝히는 것은 자연스럽고 또 당연하다. 그러나 여전히 '영유아그림책'이란 명칭은 지나치게 포괄적인 나머지 또렷하게 특정한 작품군들을 지칭하는 명칭은 아니다.


애초 그림책의 주된 독자는 영유아들이다. 그림책의 지평이 확장되면서 자연스럽게 그림책이 담아내는 경험의 세계가 확장되었기에 초등학생들뿐만 아니라 어른 독자들까지 함께 읽을 수 있는 그림책들도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더욱이 그림책이 지닌 표현의 영역 또한 독자와 조응하기보다 그림 작가의 개인적 예술 표현을 더욱 중시하게 됨으로써 특정한 연령층의 독자에 더 이상 초점을 맞추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그림책 고유의 독자는 단연 영유아들이다. 이는 그림책을 수용하는 연행의 방식을 미루어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영아의 경우 그림책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그림책이지, 혼자 힘으로 읽고 보는 방식으로 수용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적어도 경계의 확장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나 중심의 설정은 여전히 종요롭다. 다른 한편 영유아 그림책이란 경계의 설정을 망설이는 까닭은 의식적으로 독자를 설정하고 제한한다면, 그림책 표현의 경계는 점차 협소해지고 자칫 양식화될 우려가 적지 않다. 오히려 느슨한 넘나듦을 허용하는 정도의 선에서 중심을 명료하게 확인해 두는 정도로 영유아 그림책의 특성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요청되는 것은 영아 그림책이다. 유아의 그림책은 오히려 그림책 일반의 특성과 평가의 준거만으로 충분하다. 거듭 강조하건대 유아 그림책이야말로 그림책의 본령이기 때문이다.


반면 영아 그림책은 충분히 장르적 특성, 그 특성의 중심*을 살펴볼 수 있다. 영아의 경우, 인지의 발달보다 정서적 발달이 중요하다. 자신을 보살펴 줄 따사롭고 편안한 가족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요람과도 같은 따스함과 안락함이야말로 영아 그림책의 핵심적인 자질이다. 헝겊 인형과 늘 덮고 자던 담요의 역할을 그림책이 해야만 한다. 그림책을 통해서도 헝겊 인형과 같은, 담요와 같은, 손에서 놓고 싶지 않은 존재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부분은 C.Huck 외(2001)의 논의와 J.Rocklin(2001)의 논의를 바탕으로 필자가 보완한 내용이다. C. Huck, S.Helper, J.Hickman, B.Kiefer, Children's Literature in Elementary School, 2001, p.123. J.Rocklin, "Inside the Mind of Child", Opinion Papers, ED 458 602


그러자면 무엇보다 생활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이야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계몽의 목소리로 어른들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 생활 속의 단초들을 결합하고 연상해낼 수 있는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펼쳐져야 한다. 그러자면 이야기가 단순해야 함은 물론이다. 나아가 이야기는 예측 가능한 결말을 지녀야 한다. <맥스의 첫 번째 말>과 같은 의외의 상황 역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일상의 경험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림은 이야기와 짝을 이룬 채, 밝고 명료한 그림이 바람직하다. 명확한 테두리를 통해 대상이 뚜렷하게 지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반면 배경은 거의 없거나 두드러지지 않아야 한다. 이야기를 형성해 가는 글 또한 명확하고 자연스러운 언어여야 한다. 자칫 정밀한 묘사를 욕심내거나 서술에 치중할 경우 영아의 그림책은 친숙함에서 멀어지게 된다. 글은 반복을 강화해야 하며, 리듬과 라임을 가져야 한다. 우리말의 특성으로 말미암아 압운과 라임을 얻기가 쉽지 않다면, 호흡의 반복을 통한 율격을 갖추어야 하며, 어휘나 통사의 반복과 변형을 통해 리듬감을 한층 더 강화해야 한다. 리듬과 반복을 통해 영아들은 그림책의 세상이 인식할 수 있는, 통제 가능한 세상임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서사의 내적인 진행과 반복과 변형을 통한 예측가능성이야말로 아이들이 그림책을 대상화하지 않고 직접 참여하고 관여할 수 있는 세계로 만든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유머러스해야 한다. 그 웃음이 상황에 의해 빚어진 것이든, 말과 행동에 의해 빚어진 것이든 아이들은 책을 통해 웃을 수 있어야 한다. 이 웃음은 주로 아이들 자신보다 열등한 인물들의 어리석음을 통해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웃음이다.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에서 보듯 커다란 이웃집 개 한스에게 앙갚음을 하는 두더지의 우스꽝스러움이 그림책 전체를 웃음으로 밀어간다. 똥이 떨어지는 각양각색의 소리들 또한 즐거움을 건네주는 것 또한 인상적이다.


영아 그림책의 이들 특성과 달리 유아들을 위한 그림책은 그 어떤 제한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림책의 장르적 특성에 부응하기만 한다면 그림의 요소들과 글의 요소들, 그 둘이 결합되어 빚어내는 이야기의 요소들 모두가 허용되어야 한다. 다만 그림책 일반에 요구되는 한층 더 적절한 그림책의 요건들은 고전적인 모범들에 견주어 언제나 숙고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그림책은 짧아야 한다. 고전적인 그림책인 펼침면 16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쇄상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길어질 경우 집중적인 관심 또한 멀어질 우려가 있기에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32쪽에 만족해야 한다. 또한 그림책은 어린이가 주인공이어야 한다. 어른의 보살핌이 필요하지만, 그 보살핌은 원경에서 존재해야지 그림책의 전면에 등장할 필요가 없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엄마처럼. 물론 어른이 주인공일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어른은 아이 같은 어른이어야 하며, 독자인 어린이들이 동일시할 수 있을 만큼 소박하고 어리석어야 한다. 등장하는 동물들도 다르지 않다. 아이의 형상이나 성격적 특성들이 동물에게서도 확연하게 각인되어야 한다. 센닥의 괴물들이 ‘삼등신’의 형상을 갖추고 있는 것도 어린이보다 한층 더 어린이다운 외형을 통해 독자와 눈을 맞춘다. 또한 그림책은 서사가 지닌 갈등을 가능한 한 주인공인 어린이 스스로가 해결할 수 있어야 하며, 그 해결은 만족할 만한 느낌을 주어야 한다. 단순한 서사의 끝이 아니라, 완결이란 말 그대로의 의미에 부합해야 한다. 글과 그림의 조화가 빚어낸 아름다운 한 세상이 완벽하게 끝을 맺어야 한다. 물론 이 밖에도 그림책이 갖추어야 할 요건들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요건들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 그림책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셈이다.



3. 창작 그림책의 과제


우리 그림책이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는 적지 않다. 그 가운데 가장 큰 문제는 단연 서사의 결핍이다. 그림책의 본령인 이야기 자체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서사의 결핍 대부분은 글에서 비롯된다. 글은 명료한 시간의 축에서 전개되며, 그림은 정지된 순간을 묘사한다. 정지된 그림에 시간을 각인시키는 것은 장면과 장면의 연결을 통해서도 이루어지지만, 주요하게는 초점화된 글의 연쇄를 통해 이루어진다. 글은 초점과 초점을 연결하는 내용상의 결속성과 문장과 문장을 연결하는 형식상의 응집성을 통해 이야기를 빚어낸다. 


우리 그림책에 서사가 부족하다는 것은 대부분의 그림 작가들이 한두 편의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는 있겠지만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글 작가와 그림 작가, 그리고 편집자 등의 협응을 통해 작업하기보다 한 사람의 작가가 글과 그림을 모두 감당하려고 들기 때문에 초래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 결과 영아를 위한 그림책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글은 아주 빈약한 단어로 혹은 몇몇  문장으로 서사를 진행하기에 이른다. 그도 아니라면, <천하무적 고무 동력기>나 <우리 가족입니다>와 같은 일인칭의 대화체를 사용함으로써 그림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정보만을 글이 감당하고는 한다. 이들 문제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적어도 옛이야기 그림책에서 소용되는 분량의 글이 나와야만 서사는 한결 풍부해지고 유려해질 것이다. 그리고 글의 분량과 함께 요구되는 것은 반복과 변형 속에서 통사적 리듬과 같은 글의 음악적 자질들을 한층 더 강화되어야 하는 것도 또 다른 과제이다. 시적 리듬을 갖지 못한 채 정보만을 전달하고자 하는 글로는 서사의 결핍을 극복하기 어렵다.


그런데 서사의 결핍은 이야기성이 부족하다는 것으로 단순히 설명되지 않는다. 한층 면밀한 탐구가 필요하다. 그 원인 중의 하나는 주동적으로 서사를 꾸려가는 인물, 곧 그림책의 인물인 어린이가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힘센 수탉>에서 확인되듯, 그림책의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는 어린이가 없는 그림책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어린이가 없으면 어린이의 경험을 담을 수 없게 됨은 분명하다. 나아가 어린이가 형상화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 어린이가 지금의 어린이가 아닌 것도 문제다. 최근 가장 멋진 그림책의 하나라고 거론했던 <심부름 말>(김수정 글/백보현 그림, 상출판사)*의 어린이는 지금의 어린이가 아닌 옛날의 어린이를 탐구하고 있다. 작가들의 어린 시절을 경험의 내용으로 설정한 것이다. 물론 그림책이 시대를 넘어서는 보편성을 곡진하게 담아낼 수는 있다. 그러나 문학과 예술은, 그림책은 구체성, 직접성 속에 표현되는 것이기에 보편성은 상상력을 통해 얻어지지 경험 자체가 보편성을 저절로 갖지는 않는다. 작가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지금의 어린이가 아니다. 옛날 어린이일 뿐이다. 물론 어른들은 그 어린이를 통해 흔쾌히 스스로를 발견한다. 그러나 지금의 어린이들은 그 어린이를 통해 즉각적으로 스스로를 동일시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의 어린 독자들이 만나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 지금의 어린이일 것이다. 그러자면 경험 속 현실의 어린이와 어린이문학이 쉼없이 발견하는 상상의 어린이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또 어린이가 없고, 지금의 어린이가 없는 또 따른 이유는 작가들이 선택하는 서사가 어린이들이 듣고/보고 싶어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작가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로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예술적 작업이 많은 부분 계몽적인 기획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또한 서사를 빈약하게 만드는 동인임은 분명하다. 계몽성을 덜어내고 한층 더 현실에 착근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현실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옮겨오는 것만은 부족하다. 상상 속에서 은유와 상징을 최대한 증폭시킬 필요가 있다. 기계적인 재현인 아닌 상상적인 의장이 필요한 것이다.


* 졸고, “상상과 모험의 심부름말”, <시사인>, 2013.05.16. “나는 이 글작가와 그림작가의 따스하고도 놀라운 협응이 옛날 어린이를 만나는 지금의 어른이 아니라, 지금의 어린이를 만나는 또 다른 지금 어린이를 형상화할 수 있기를 바란다. 조금은 간절하게.” 


서사의 결핍과 함께 또 다른 문제는 표현의 양식이다. 작가는 어쩔 수 없이 개인의 양식 속에서 작업한다. 그러나 글이, 이야기가 무엇이든 동일한 양식으로 시종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밀도를 떨어뜨린다. 최숙희나 김영진의 그림과 같이 캐릭터로 안착한 개인적 양식화는 어쩔 수 없지만, 어떤 이야기이든 동일한 양식, 곧 기법, 재료, 인물 등이 반복될 때 너끈히 이야기를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모리스 센닥이 <토끼 아저씨와 멋진 생일 선물>에서는 인상주의적인 표현의 양식을, <한밤중 부엌에서>에서는 만화 컷과 같은 양식을,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서는 펜을 활용한 크로스해칭의 양식을 활용한 것은 작품에 부응하는 양식적 실험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권윤덕의 거듭 새로운 모색도 본받아야 할 것이다.


개인의 양식이 고착되는 것과 함께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예술적 자기 표현에 치중한 나머지 그림책의 본질적 표지의 하나인 단순성이 희석되고 있다는 점이다. 과도한 표현의 욕구가 단순성과 배치된다면, 어린이의 명료한 시선을 사로잡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 단순성은 서투름이 아니다. 무릇 뛰어난 화가의 그림들이 최대한의 단순화를 통해 시각적인 즐거움을 안겨준다는 것은 결코 서투르기 때문에 미소를 자아내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호안 미로, 레오 리오니, 에릭 칼, 존 버닝햄 등의 그림이 단순한 것은 마침내 도달한 단순함이지 비로소 시작하는 단순함은 결코 아닐 것이다. 가브리엘 샤넬이 “시간을 초월할 수 있는 비결은 단순화하고 덜어내어 오직 정수만을 남겨두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어린이를 사로잡는 비결은 단순화하고 덜어내어 오직 정수만을 남겨두는 것”이 아닐까.



4. 전망을 생각하며


그림책이 의당 갖추어야 할 자질과 우리 그림책이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를 살펴보았다. 문제라는 프레임으로 살폈기에 당연 한계를 집중적으로 조명하였다. 그럼에도 우리 그림책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다. 그림책을 사랑하는 독자들이 아주 많기 때문이다. 그림작가들 역시 다양한 경로를 통해 그림책에 입문하고, 또 더미를 구상하며 잠 못 이루는 밤이 많다. 


더욱이 북스타트와 같은 그림책과 어린이들을 중개하는 활동들이 점차 확장되고 있다. 10년 동안 북스타트는 어린 영유아를 위한 그림책을 정성껏 선정해 왔고, 또 독자와 직접 만날 수 있도록 통로를 마련해 왔다. 어린이도서연구회의 활동도 결코 만만치가 않다. 좋은 책을 좋은 독자와 마주치게 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여 왔음에랴. 그뿐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도 부모들은, 유치원 선생님들,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우리 아이들이 처음 만나는 책 그림책을 따뜻한 마음으로 쓰다듬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어찌 우리 그림책의 미래가 어두울 리가 있겠는가.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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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옴]

소수민족 신화기행 바로가기 ]

나비는 영혼이다.

온갖 빛깔의 꽃이 피는 귀한 단풍나무에서 나온 호접마마의 후손들은 나비를 영혼으로 여긴다. 그래서 먀오족(苗族) 사람들은 집으로 고운 나비 한 마리가 날아 들어오면 조상님이 배가 고파 찾아 오셨다고 여기고 상을 차려드린다. 다른 사람과 다툴 때 나비가 나타나면 조상님이 그 다툼을 못마땅해 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싸움을 그만둔다. 푸른 숲 한가운데에서 홀연히 꿈처럼 날아오르는 찬란한 나비, 꿈틀거리는 몸을 벗어버리고 가볍게 훌쩍 날아오르는 나비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영혼’을 의미한다.

먀오족의 성인식. 마을의 지도자 군위안량에 낫으로 머리카락을 잘라주고 있다.


그 호접마마가 알록달록한 빛깔의 알 열두 개를 낳는다. 창세의 신 푸팡(府方)이 커다란 할미새를 불러다가 알을 품으라고 했다. 먀오족의 신화에는 거인 신들이 많이 등장한다. 푸팡은 다리 관절이 아홉 개나 있고 팔이 여덟 쌍 있는 거인이다. 물고기 아홉 광주리, 찹쌀 떡 아홉 통을 먹는 힘센 그가 한데 붙어있던 하늘과 땅을 갈라놓았고, 거인신 양유(養優)는 산을 만들었으며 머리에 뿔이 있는 거인 슈뉴는 강을 만들었다.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 없어서 하늘과 땅이 흔들거릴 때 바오궁(寶公)과 슝궁(雄公), 쥐궁(且公)과 당궁(當公)이 머나먼 곳에서 온갖 고생 끝에 금과 은을 가져다가 녹여 금 기둥, 은 기둥을 만들어 하늘을 받쳤다.

은 장신구로 치장한 먀오족 여성들.

기둥은 만들었지만 해와 달이 없어 세상은 여전히 어두웠다. 신들은 고민했다. 어떤 모양으로 해와 달을 만들까? 돌을 강물에 던질 때 퍼져나가는 둥근 물결무늬가 너무나 아름답다고 생각한 그들은 그 무늬를 모델 삼아 해와 달을 만들었다. 거인 신들은 금으로 열두 개의 태양을, 은으로 열두 개의 달을 만들고 남은 부스러기로 별을 만들었다. 거인 신들이 왼쪽 어깨에 태양을, 오른쪽 어깨에 달을 지고, 소매에는 별을 넣고 허리에는 은하수를 차고 푸른 하늘로 올라가 해와 달을 제자리에 놓았다. 다른 버전에 의하면 하늘에 걸린 해와 달이 자꾸 흔들리니까 남은 부스러기로 별을 만들어 못처럼 하늘에 박아놓았다고 한다. 참으로 아름다운 상상력이다. 하지만 열두 개의 태양과 달이 질서를 무시하고 한꺼번에 떠오르니 활 잘 쏘는 신 쌍자(桑札)가 한 개의 태양과 달만 남기고 다 쏘아서 떨어뜨렸다.

한 개씩 남은 태양과 달은 겁이 나서 숨어버렸고 세상은 암흑천지가 되었다. 숨어있는 해와 달을 불러내기 위해 신들은 온갖 동물들을 보내지만 결국 수탉의 청랑한 목소리에 해와 달이 다시 나온다. 신들은 세상에 다시 빛을 가져다준 수탉의 공로를 기려 예쁜 빗을 하나 주었고, 수탉은 그것을 자랑스레 머리 위에 꽂고 다녔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보는 수탉의 붉은 볏이다.

먀오족의 창세신화에는 이렇게 많은 거인 신들이 등장한다. 서구의 신화에도 세상의 시작에는 거인 신들이 있다. 그 거인 신들의 신화가 피로 물들어 있다면 먀오족 신화의 거인 신들은 선량하기 이를 데 없다. 그들은 지금의 먀오족 사람들처럼 부지런하다. 금과 은을 운반해오기 위해 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고, 해와 달을 하늘로 운반하다가 실수로 해와 달을 물에 빠뜨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슬퍼하는 일이 없다. 언제나 유쾌하게 함께 힘을 합해 끊임없는 노력으로 마침내 창조의 거대한 작업을 마무리한다.

먀오족 여성들이 치마에 수놓는 3개의 선은 그들이 이주할 때 건너온 3개의 강을 의미한다. 역사를 옷에 기록하는 것이다.


한편 노란 알에서 나온 최초의 인간 장양(姜央)은 하얀 알에서 나온 우레신 뇌공(雷公·꺼우하오라고도 한다)과 끊임없이 다툰다. 먀오족의 오래된 노래는 열두 개의 알 이야기에서 홍수이야기로 이어진다.

열두 개의 알에 관한 노래 다 끝났네/ 이제 무얼 부를까/
다른 구연자가 와서 노래 이어 가네/ 홍수가 하늘까지 차오른 노래를 불러야지/

알에서 태어난 장양과 뇌공, 호랑이와 용 등은 누가 땅의 주인인가를 놓고 내기를 한다. 땅은 결국 꾀를 써서 승리한 장양의 차지가 되며 뇌공은 하늘로 올라간다. 그런데 뇌공이 하늘로 올라가면서 개 한 마리만 남기고 소와 말을 모조리 갖고 가버렸다. 세상에 남겨진 개 한 마리를 데리고 농사를 지으려니 농사가 잘될 리 없다. 화가 난 장양은 마침내 뇌공을 찾아간다.

“누렁이가 힘이 없어 논을 갈지 못해. 내게 너의 소를 빌려주면 논을 갈고 나서 돌려주지.”

하지만 장양은 논을 다 갈고 난 뒤에 소를 죽여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고기를 다 먹어버렸다. 소의 꼬리와 뿔만 남겨 논에 묻어두고 장양은 뇌공에게 달려가 슬픈 척 하며 말했다.

“뇌공아. 이를 어떡하지? 논이 질척이고 소는 무거워서 논을 다 갈고 나니 소가 그만 논에 빠져 묻혀버렸단다.”

구이저우성 동남부의 계단식 논.


뇌공은 그 와중에 녹색 비단옷을 챙겨 입고 상투를 잘 매만지고서 논으로 달려갔다. 그랬더니 정말 소의 꼬리와 뿔만 보이는 것이었다. 놀란 뇌공이 소의 꼬리를 잡아 당겨보고 나서 피가 묻어있지 않은 것을 보고 장양에게 속은 것을 알았다.

“네 이놈, 남의 소를 빌려다가 다 먹어버려? 내가 하늘로 돌아가 쇠망치와 도끼를 들고 돌아와 네 놈을 죽일 것이다.”

비단옷을 챙겨 입고 상투까지 틀고 왔는데 장양에게 속아 공연히 힘을 쓰느라 비단옷은 더럽혀지고 상투는 흐트러진 것이 생각할수록 분했다. 이렇게 시작된 그들의 싸움은 팽팽하게 이어진다. 뇌공이 마침내 장양에게 잡혔지만 장양이 외출 한 사이에 장양의 두 아이는 뇌공이 보여주는 현란한 마술에 정신을 빼앗겨 그가 원하는 물과 도끼를 가져다준다. 오누이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한 뇌공은 오누이에게 조롱박 씨앗을 준다.

“나를 살려줘서 고맙구나. 이 씨앗을 심어라. 이틀 후에 창고보다 큰 조롱박이 열릴 거야. 속을 파내고 그 안에 들어가렴. 큰 배가 되어 너희를 보호해 줄 거야.”

하늘로 돌아간 뇌공은 ‘하늘의 배꼽’을 열어 비를 퍼부어 홍수를 일으켰고 착한 오누이는 거대한 조롱박 속에 숨어 대홍수에서 살아남는다. 뇌공과 싸우러 하늘로 올라간 장양은 그곳에 남고, 오누이만 돌아와 우여곡절 끝에 혼인을 하게 된다. 마침내 먀오족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바사 먀오족 마을의 군위안량(滾元亮)이 바로 그 장양의 화신이다. 그의 키는 정말 작다. 군위안량이 어려서 키가 자라지 않자 어머니가 마을의 장로에게 그 이유를 물었고 장로는 귓속말로 어머니에게 말했다고 한다.

“이 아이는 장양의 화신이야.”

먀오족 여성의 치마에 나비 무늬의 자수가 새겨져 있다.

중국 국무원에서 유일하게 총을 지니고 다녀도 된다고 허락해주었다는 바사 먀오족 마을의 지도자 군위안량, 그가 지니고 다니는 총의 크기만큼 키가 자랐을 때 그는 이제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그런 그가 강렬한 지도력으로 마을을 이끈다. 숲 속의 통과 의례에서 오랜 전통에 따라 낫으로 머리를 밀어주는 그의 얼굴에서 단풍나무의 후손, 강인한 장양의 모습을 본다. 오랜 옛날, 동쪽에서 살던 먀오족의 인구가 늘어나고 농사 지을 땅이 부족하게 되자 그들은 좋은 땅을 찾아 서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들을 이끌었던 신화 속의 영웅이 바로 슝궁(雄公)이다. 그는 지혜로움과 용기로 부족을 이끌고 서쪽으로 온다.

좋은 곳은/ 하늘 저편에 있어요/
좋은 생활 하려면/ 산 저쪽으로 가야 해요/

살던 땅을 바라보며 눈물 짓는 이들을 이렇게 달래며 그는 목말라 하는 할머니에겐 찬물 한 모금, 힘들어하는 할아버지에겐 담배 잎 하나를 드리며 그들을 이끈다. 마침내 그들은 세 개의 강을 지난다. 강의근원에 금이 있는 누런 강, 강의 근원에 은이 있는 하얀 강이 나타난다. 사람들이 말한다.

“은이 있는 곳으로 가자. 은이 가장 귀해. 희고 예쁘잖아. 옷에 장식할 수 있는 은이 많은 곳으로 가자.”

“아니야. 금이 은보다 귀해. 누런 강물을 따라 금이 있는 곳으로 가자.”

그러나 슝궁이 말한다.

“금과 은은 다 파내면 끝이지요. 벼꽃 향기 가득한 강으로 갑시다.”

그들은 금과 은을 버리고 벼꽃 향기를 택했고, 그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욕심을 버린 조상들 덕분에 그 후손들은 지금도 구이저우성 동남쪽 벼꽃향기 아름다운 곳에서 자신들만의 세계를 이루고 있으니. 

〈김선자 중국신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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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옴]

구이저우(貴州)성. 중국이 우리에게 성큼 다가온 지금도 구이저우성이라는 이름은 무척이나 낯설다. 그도 그럴 것이 석유 같은 것이 엄청나게 묻혀있어 주목 받는 곳도 아니고 번쩍이는 대도시가 즐비한 화려한 곳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에는 중국 최대의 폭포인 황궈수(黃果樹)폭포가 있고 산둥성 취푸(曲阜)의 공자 사당만큼이나 멋진 건물을 가진 문묘(文廟)가 있다. 명나라 때 중원에서 내려온 군인들의 후손이 몇백년 동안 똑같은 풍습을 지닌 채로 단란하게 살아가는 모습도 볼 수 있지만 무엇보다 이곳에는 중국 소수민족 중에서도 단결력이 강하기로 유명한 먀오족(苗族)이 가장 많이 모여 산다. 그뿐인가, 구이저우성에는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길 갈피갈피에 통족, 이족, 토가족(土家族) 등 여러 민족들이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다. 소수민족에게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숨어있는 보석과 같은 곳이다.

구이저우성 공자사당 문묘의 용조각 기둥.


구이저우성의 성회인 구이양(貴陽)에서 동쪽으로 카이리(凱里)까지 가서 방향을 남쪽으로 틀어 고요하게 흐르는 두류강(都流江) 물줄기를 따라 내려가면 먀오족과 동족들이 사는 첸동남 지역으로 접어든다. 구이저우성은 간략하게 ‘첸(黔)’이라고 불린다. 그러니까 첸동남이란 구이저우성 동남부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그들의 삶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두류강 물줄기가 내려다보이는 아득한 산꼭대기에 먀오족의 마을들이 있다. 사람들이 찾아오기 힘든 높은 산꼭대기에 먀오족의 마을이 생긴 것은 청나라 때 먀오족이 기의를 일으켰을 때 그들을 토벌하려는 중앙정부의 군사들을 피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그들의 아픈 역사는 지금도 그들의 피 속에 여전히 남아있어 10여 년쯤 전에는 자신들이 조상이라고 여기는 ‘치우(蚩尤)’를 모욕한 자들과 일전불사의 의지를 불태웠던 적도 있다. 소수인 그들을 그렇게 당당하게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먀오족 사람들은 아득한 옛날 자신들이 머나먼 중원 땅에서 세 개의 큰 강을 건너 지금의 구이저우성으로 이주해왔다고 믿는다. 그들에게 전해지는 오랜 전설은 이렇다.

두류강 건너편으로 먀오족의 마을이 보인다.


“치우가 황제(黃帝)와 싸워서 졌어. 그래서 치우가 아들들에게 묘족을 이끌고 떠나라고 했지. 아들들은 혼수와 청수, 흑수를 건너 이곳으로 왔어. 우리 바사 사람들은 바로 치우 셋째 아들의 후손이야.”

구이저우성 동남부 충장현(從江縣) 근처 바사(沙) 먀오족 마을 노인의 말이다. 황제와 치우의 전쟁은 중국신화에서도 가장 유명한 전쟁이다. 중원의 신 황제와 동이의 신 치우가 탁록에서 맞붙었고, 그 치열한 전투에서 치우가 패하여 목이 잘린다. 그리고 치우의 손과 발을 묶었던 수갑과 차꼬에 묻은 피에서 이루지 못한 치우의 한처럼 붉디붉은 단풍나무가 자라난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단풍나무’를 잘 기억해두시라.

구이저우성에는 명나라때 중원에서 내려온 군인들의 후손이 그 시절의 풍습을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이마의 머리카락을 뽑은 여성을 매력적으로 여긴다.


바사 먀오족 마을은 충장현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 321번 국도가 마을 앞으로 지나간다. 그런데도 바사 사람들은 중국어를 하지 않는다. 마을의 대표자 노릇을 하는 군위안량(滾元亮)만이 중국어를 할 뿐, 다른 사람들은 그저 환한 미소로 자신들의 마음을 대신할 뿐이다.(이 마을은 중국 구이저우성의 인물 사진작가인 루셴이(盧現藝)의 강렬한 사진들로 세상에 알려졌다. 그는 2003년 7월에 프랑스 아를에서 열린 세계 사진전에 ‘바사 먀오족사람들’이라는 사진을 출품하여 상당히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지금도 베이징의 다산쯔 예술인 지역(大山子藝術區) 어디쯤에서는 아마 그 사진들이 전시되고 있을 것이다.)

마을은 숲속에 있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바사’라는 마을 이름이 ‘풀과 나무가 많은 곳’이라는 뜻임을 밝혀주는 돌 하나가 서있다. 바사 사람들에게 나무는 바로 생명이며 조상의 영혼이 머무는 곳이라고 적혀 있다. 아이가 태어나면 나무를 심고 사람이 죽어도 나무를 심는 곳, 나무가 없는 그들의 삶은 생각할 수도 없다. 오래된 나무일수록 신성이 깃들어 있다. 나무가 말라죽어도 그들은 그 나무가 저절로 쓰러질 때까지 절대로 베지 않는다.

바사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엄청나게 굵은 향장목(香樟木) 뿌리가 모셔져 있다. 앞에는 ‘나무의 신(樹神)’이라는 이름표가 붙어있다. 1976년 어떤 사람이 마오쩌둥기념관을 만드는 데 바치겠다며 다른 마을 청년들을 동원해 그 나무를 베었다. 나무가 쓰러질 때 비바람이 몰아쳤고 붉은 액체가 흘러나와 놀란 마을 사람들이 모두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빌었다고 한다. 그 사건에 대해서 듣고 난 뒤 당 중앙에서 그 나무의 뿌리를 원래 자리에 그대로 모셔두라고 허락하여 지금의 ‘신수정(神樹亭)’이 생긴 것이다. 나무에 신이 깃들어있다고 믿는 그들의 심리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그들의 모든 통과 의례는 숲속에서 행해지고 죽으면 숲에 묻히며, 그 숲에는 성스러운 단풍나무가 있다.

바사의 대표자 역할을 맡고 있는 군위안량의 뒷모습.

단풍나무는 그들의 생활에서도 주로 제의와 관련되어 있다. 먀오족 사람들의 큰 제사인 고장절에 희생물로 바쳐지는 소의 뿔을 묶는 나무도 단풍나무이며 조상들의 영혼이 깃들어있다고 여겨지는 북 역시 단풍나무로 만든다. 집을 지을 때에도 가운데 큰 기둥은 단풍나무로 세운다. 단풍나무에서 메이방이 태어났네
단풍나무에서 메이류가 태어났지
찬미하고
노래하네

지금도
아빠 엄마가 너와 나를 낳으시지
탄생에 대한 이야기,
들려줄 만한 것이라네
아득한 옛날을 생각해보세
단풍나무가 메이방메이류를 낳았어
어머니가 계셔야
너와 내가 있는 것,
어머니를 위한 노래를 불러야 하지.

메이방의 탄생을 노래해
메이류의 탄생을 노래해


먀오족 사람들이 자신들의 역사라고 여기는 ‘먀오족의 오래된 노래(苗族古歌)’에 들어있는 ‘단풍나무의 노래(楓木歌)’의 한 대목이다. ‘메이방메이류(妹榜妹留)’는 ‘호접마마’ 즉 ‘나비엄마’라는 뜻을 가진 여신이다. 그녀는 이렇게 단풍나무에서 태어났다.

메이방이 다 자랐네
메이류가 다 자랐어

이제 짝을 찾아 나서네
무슨 옷을 입었나?
무슨 치마를 걸쳤나? 방류가 짝을 찾아가네
꽃무늬 옷을 입고
꽃무늬 주름치마를 두르고
꽃무늬 옷 몸에 잘도 맞네
주름치마도 몸에 꼭 맞아

호접마마 방류
오얏나무 아래에서 짝을 찾아가네
누구와 함께 갈거나?
짝을 찾을까? 못 찾을까?

강물과 짝 이뤄볼까 했으나
강물은 너무 거칠어
짝이 되지 못했네
태양과 짝 이뤄볼까 했으나
짝이 되기 직전
검은 구름이 나타나 막았네

그들은 짝이 되지 못했네

호접마마 방류
누가 가장 아름다운가
누가 그와 함께 짝을 이룰까?

호접마마 방류
작은 물거품을 사랑했네
말도 할 줄 알고 노래도 할 줄 알아
생긴 것도 아름다우니
그와 함께 떠나

마침내 짝이 되었네

이렇게 그녀는 ‘작은 물거품’과 혼인하여 열두개의 알을 낳는다. 최초의 인간 장양(姜央)이 그 알 속에서 나왔다. 나머지 알에서는 우레신과 용, 뱀, 호랑이, 코끼리, 지네 그리고 착한 신과 나쁜 신들이 나왔다. 인간이라고 해서 자연계의 다른 것들보다 우월한 것이 아니다. 인간인 장양은 동물, 귀신과 마찬가지로 알에서 태어난다. 그 모든 것들을 품어주고 지켜주는 존재가 바로 어머니 여신, 호접마마이며 그 호접마마는 단풍나무에서 태어났다. 앞에서 치우의 영혼이 단풍나무로 변했다고 말한 것을 기억하자. 먀오족 사람들, 그들은 단풍나무의 후손이며 또한 치우의 후손이다. <다음 편으로 이어짐>

〈김선자〉

소수민족 신화기행 바로가기 ]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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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의 스토리텔링 22가지 법칙

 

 

1. 캐릭터가 목표를 ‘이루는 것’보다,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것’을 더 중요시 여겨라.

 

2. 작가로서가 아닌 관객의 입장에서 무엇을 더 재미있어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둘은 매우 다를 수 있다.

 

3. 스토리에 테마를 가지고 있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스토리를 다 쓸 때까지 그 스토리가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니 다 적었다면 이제 다시 적어라.

 

4. 어느 옛날 __가 있었다(캐릭터 소개). 매일 __(일상의 반복). 그러던 어느 날 __(사건의 시작)

   그것으로 하여 __(사건에 의한 사건). 그것으로 하여 __(사건에 의한 사건) 결국 __(결말).

 

5. 이야기를 단순화시키고 한 가지 요소에 집중해라. 캐릭터를 합치거나, 불필요한 요소는 빼버려 라. 

   처음에는 중요한 것들을 놓친다는 생각이 들 수 있어도 한층 자유로워짐을 느낄 수 있을 것 이다.

 

6. 주인공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반대의 것을 주어 힘들게 하라.

   캐릭터가 그것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를 생각하라.

 

7. 중간을 생각하기 전에 엔딩을 먼저 생각하라. 엔딩은 어렵다. 그러니 미리 해놓아라.

 

8. 완벽하지 않아도 좋으니 이야기를 끝마쳐라. 완벽하게 하고 싶겠지만 그냥 넘겨라. 다음에 잘 하면 된다.

 

9. 막혔을 땐 스토리의 다음 단계에 ‘일어나지 않을 일’의 리스트를 만들어라.

    이렇게 함으로써 막힌 것이 뚫릴 때가 많다.

 

10. 평소 좋아했던 이야기를 생각해 보라. 거기서 좋아하는 부분은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한다.

 

11. 일단 종이에 적기 시작하면 고칠 부분을 볼 수 있게 된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머릿속에만 두면 아무도 모를 것이다.

 

12. 머릿속에 떠오르는 가장 첫 번째 아이디어는 버려라. 그리고 두 번째도. 세 번째도. 네 번째도. 다섯 번째도…. 

    뻔한 아이디어는 버려라. 내 자신을 놀라게 하라.

 

13. 자기 입장이 뚜렷한 캐릭터를 만들어라. 

     스토리를 쓰면서는 소심하고 얌전한 캐릭터가 마음에 들지 몰라도 관객들에게는 독이 된다.

 

14. 왜? ‘이 스토리’를 전해야 하는지 생각하라. 나의 어떤 것이 담겨있는 스토리인가?

    이것이 스토리의 심장이라고 볼 수 있다.

 

15. 내가 주인공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떤 느낌을 받을까? 주인공의 진심을 느낄 수 있게 하라. 

    진심은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신뢰를 준다.

 

16. 관객들이 주인공을 응원해야 할 이유를 줘라.

    또 주인공이 실패하게 된다면 겪을 일들에 대해서도 표현하라.

 

17. 어떤 일이든지 낭비되지 않는다. 지금 쓸모가 없어도 그냥 넘어가라. 나중에 필요할 때가 있다.

 

18.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스토리를 쓸 때에는 새로운 것을 실험해 가면서 완성해 가야 한다. 

     이미 있는 것을 고치는 중이라면 그만 하라.

 

19. 캐릭터를 사건에 휘말리게 하는 '우연'은 좋은 것이다.

     캐릭터를 사건에서부터 빠져 나오게 하는 '우연'은 사기다.

 

20. 연습 : 내가 싫어하는 영화의 한 배경을 골라 나라면 ‘어떻게 고칠지’ 연구해 본다.

 

21. 상황이나 캐릭터의 성향을 확실히 한다. 그냥 ‘멋짐’은 안된다.

    ‘나는’ 왜 그렇게 느끼고 행동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22. 내 스토리의 본질은 무엇인가? 스토리를 간단하게 설명하면 무엇인가?

     이것을 알고 거기서 부터 시작한다.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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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에서 퍼옴]

"엄마가 말하길 제 꿈은 하버드대 편입이래요"
['사교육 중독', 이젠 빨간불·①] 대치동 학원가의 점심시간
기사입력 2012.02.17 10:48:00 | 최종수정 2012.02.17 10:48:00 | 이대희, 김윤나영 | eday@pressian.com
 
고등학생 네 명 중 한 명이 학습과 시험 스트레스로 자살 충동을 느낀다. 청소년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다. 학생 10만명당 5.2명이 자살한다. 지난 14일에도 한 청소년이 꽃다운 나이에 투신했다. 역시 학원에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장소는 학원 밀집가이자, 한국판 '맹모삼천지교'의 현주소로 불리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이었다. 

가장 생명력이 넘쳐날 아이들이 이토록 많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건, 우리 사회가 그만큼 병들었다는 증거다. 왜 아이들이 '폭력을 수반하는' 왕따놀이에 몰입할까. 왜 아이들이 잠을 설쳐가며 게임에 빠져들까. 단순히 '게임이 나쁘다'거나 '그 아이가 원래 이상했다'고 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조사에 따르면, 잠을 덜 자는 아이일수록 극단적인 행동을 할 확률이 높다. 한국의 십대 대부분은 충분한 잠을 자지 못한다. 원인은 사교육이다. 극단적인 경쟁으로 내모는 사교육이 아이들을 병들게 만든다. 그 실태를 짚어봤다. <편집자>
- '사교육 중독', 이젠 빨간불
<1> 대치동 학원가의 점심시간 : "엄마가 말하길 제 꿈은 하버드대 편입이래요"
<2> 미친 사교육, 비용만큼 효과 있나? : 세계에서 가장 머리 나쁜 한국 학생들?
<3> 가정 경제 파탄내는 사교육 : 아이들이 진학하면, 엄마는 '알바' 뛴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입구 사거리. '사교육 일번지' 강남에서도 사교육 핵심 도시다. 인근에만 입시학원 500여 곳이 밀집해 있다. 방학 중인 지난 16일 점심시간, 중심가에 나란히 늘어선 롯데리아, 크라제 버거, 버거킹의 내부 모습은 특이했다. 이 중 한 가게의 내부로 들어갔다. 손님의 절대다수가 어린 학생과 학부모였다.

허겁지겁 햄버거를 먹고 있는 A학생(14, 개포동)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A학생은 예술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영어, 수학, 과학, 바이올린 학원에 다닌다. 방학 중이지만 이 일정을 모두 소화하려면 아침잠을 잘 수 없다. 수업 일정은 아침 9시부터 밤 10시30분까지 빡빡하게 짜여 있다. 학원이 끝나도 쉴 수 없다. 밀린 과제가 많다. 학원에서 배우지 않는 중국어는 학습지로 공부하고, 역사 등의 과목은 자습한다. 예술고를 진학하기 위해서도 내신이 필요하기 때문이란다.

"오히려 방학이 더 바빠요. 새벽 3시쯤에 잠들어서 아침 8시에 일어나요. 이렇게 해도 숙제가 워낙 많아서 다 못 해요."

'놀고 싶지 않느냐'고 물어봤다. "아니"란다. 다른 학생들도 전부 그렇게 하는데, 자기 혼자 뒤처질 순 없지 않느냐고 그 학생은, 수줍게 웃으며 되물었다. "어제도 아빠가 '학생의 본분'에 대해 얘기하셨어요." A학생은 어머니의 전화를 받더니 "다음 학원에 가야 한다"며 총총히 자리를 떴다.

전쟁을 치르는 아이들

매장 안을 돌아보았다. 한편에선 아이들을 기다리는 어머니들이 바삐 뭔가를 얘기하고 있었다. 맞은편 자리에 패딩 점퍼를 입은 남자아이 셋이 막 햄버거를 들고 와 앉았다.

그 아이들에게 말을 건넸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예정이라는 아이들은 하루 절반 이상을 학원에 매여 있었다. B학생은 국어와 수학, 영어학원에 다니고 있다. 가장 어려운 과목은 수학이란다. 아직 고등학교 고복을 입지도 않은 학생이 고교 2학년 과정을 배우고 있었다. 역시 '놀고 싶지 않느냐'고 물었다. "가끔은 좀 쉬고 싶을 때가 있어요"라고 답했다. 그 순간이었다.

맞은편에서 기다리던 아이의 어머니가 조용히 다가와 아이에게 물었다. "숙제는 다 했니?" 더 이상 취재는 불가능했다. 아이는 "점심시간이 30분이라 빨리 올라가야 한다"고 속삭였다. 아이들은 고개를 숙이고 빠른 속도로 햄버거를 먹었다.

일대가 학원가라고 하지만 대낮에 돌아다녀서는 학생들을 찾기 힘들다. 하루 종일 학원 안에 붙어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마치 죄수처럼 짧은 시간을, 오직 밥을 먹기 위해 나왔다. 혼자 끼니를 때우는 아이들이 유난히 많았다. 개중엔 초등학생도 상당수였다.

"제 꿈은 하버드대 편입이래요"

이제 초등학교 6학년에 진학할 C 어린이. 곧바로 학원에 가야 하는 탓에 짧게 시간을 낼 수 있다고 답했다. 얘기 도중에도 그 아이는 연신 시계를 들여다봤다. 덩달아 기자의 마음도 조급해졌다.

C 어린이는 영어와 수학, 피아노, 그리고 종합학원까지 네 군데의 학원을 다닌다. 그마저도 일곱 군데에서 많이 줄인 편이다. 수학학원에서 내주는 숙제를 따라가기도 벅차서란다. 이렇게 해서 하루 총 10시간씩 수업을 듣는다. 특강이 있을 때는 시간이 더 늘어난다. 물론 특강료도 전부 과외비에 포함된다. 현재 영어는 중학교 과정, 수학은 수학경시대회 대비 과정을 배운다.

집으로 돌아오면 숙제를 해야 한다. 일찍 잠들면 밤 12시고, 보통 일주일에 사나흘은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잠든다.

C 어린이의 꿈은 의사다. 서울대 치과대학에 진학한 후 하버드 대학에 편입할 계획이란다. 엄마가 한국의 대학에 다니다가 중간에 편입할 수 있다고 알려줬단다.

"엄마가 스케줄을 짜줘요. 첫 학원에 엄마가 데려다주고, 그 다음엔 제가 옮겨 다녀요. 엄마가 학원에 도시락을 싸 올 때도 있어요."

C 어린이는 초등학교 2학년 때 강남으로 이사 왔다. 학원비가 버겁다고 가끔 엄마가 한숨을 쉰단다. 그래도 공부한 보람이 있어서 수학경시대회, 시의회 글짓기상 등에서 꾸준히 상을 탔다. '잠도 못자는데, 공부하기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아니"란다.

"힘들긴 한데요, 나중에 커서 재수하는 사람은 안 되고 싶어요. 친구들도 다 학원 다녀요. 영어, 수학학원은 안 다니는 애가 없어요. 국제중학교나 특수목적고등학교에 가고 싶은데 경쟁률이 높아서 잘 될지 모르겠어요."

아이는 해맑게 웃다 시계를 바라보더니 일어났다. 이제 다른 학원에 가야 한단다.

아이들을 괴물로 만들기

▲아이들이 왜 극단적인 방법을 택할까. '사교육 일번지' 강남 대치동의 한 학원. ⓒ연합
C 어린이의 사례는 이른바 '강남 학원족'의 가장 일반적인 유형이다. 대치동 일대 거주민은 대부분이 인근 아파트에서 전세로 사는 외부 입주민이다. 입주 목적은 오직 교육이다.

사교육시장에서 오래 몸담았던 이범 서울시교육청 정책보좌관은 대치동이 '뜨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풀었다.

"대치동 주민 대부분이 자녀가 초등학교 때 입주한다. 당연히 이들은 '강남식 교육관'에 동의한다. 부모 대부분이 고학력에 중산층 이상이다. 재벌처럼 자녀에게 물려줄 자산이 많지 않은 이들은 자신들이 성공한 방식 그대로, 자녀도 오직 '공부'로 성공하길 바란다. 그 열망이 아이들을 옥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기실 우리나라 학부모 대부분이 이 '강남형 교육', 즉 사교육에 의존하는 고강도 수험경쟁 체제에 합류한다. 부모의 재력에 따라 어머니가 아이들의 하루 일과를 온종일 감시 가능한지 여부, 아이가 수강하는 학원 수가 달라질 뿐이다. 맞벌이를 하지 않아도 될 여력이 있는 가정의 자녀는 '학원에 간다'고 말하곤 PC방으로 빠질 가능성이 줄어들고, 학원에서 내준 숙제를 밤을 새워서라도 해야 할 의무는 크다. 돈만 있다면, 대다수 부모가 이 방식의 자녀교육을 선택할 것이다.

이범 보좌관은 그러나 "사교육 효과는 크게 부풀려져 있다. 성공사례만 알려지지, 상당수 실패사례는 알려지지 않는다. (사교육에 다걸기하는 게) 결코 효율적인 공부 방법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중학생의 경우 하루 두 시간을 넘는 사교육은 성적 향상 효과가 미미하다는 한국개발연구원(KDI) 분석 결과도 있다.

그럼에도 아이들에 대한 과도한 채찍질이 중단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약간의 성적이라도 더 오를 수 있다면, 학부모들은 얼마든지 더 많은 사교육을 시킬 준비가 돼 있다. 자녀교육에 효율성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이번 대치동 고교생 자살사건에서처럼, 아이들이 상처입고 병든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경쟁은 멈출 수 없다.

대기업 연구원인 남편과 맞벌이를 하다, 자녀교육을 위해 전업주부가 된 박모 씨(39)는 "'내 자녀는 저렇게 키우지 말아야지'하다가도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내 아이를 학원으로 내몰고 있더라"며 "주부들의 모임에서 갖가지 정보가 오간다. 그 그룹에 끼면 '내 아이만 뒤처진다'는 불안감 때문에 학원에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가만히 있으면 무조건 밀려난다"고 언급했다.

전형적인 마이너스섬 게임이다. 사교육 경쟁이 과열될수록, 아이는 힘들어지고 가계 재정은 나빠진다. 이 게임에서는 누구도 이득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아주 작은 이익이라도 난다는 믿음이 학부모들의 사회를 지배하는 이상, 멈출 수 없다.

이범 보좌관은 "강남 일대에는 유난히 어머니들의 커피 모임이 많다. 그 그룹에 한번 들어가면, 불안함 때문에 학부모들의 경쟁심리가 증폭된다"며 "결국 조금이라도 더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라도 자녀를 내몰지 않을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런 마당에서 어떤 대책이 이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이범 보좌관은 "대학서열화로 인해 '자녀 교육을 목적으로 강남으로 이주했다, 막내까지 입시를 끝내면 빠져나가는' 선순환 구조가 확실하게 자리 잡았다. 비강남권도 그 정도가 다르지 방식은 비슷하다"며 "어떤 교육정책을 쓰든, 대학 서열화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사교육 열풍은 해결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 '협동', 경쟁보다 우월한 대안

☞ "평등 교육이 더 '실용'적이다" 
☞ "'혼자 똑똑한 사람'을 키우지 않는다"
☞ "'로마'만 배우는 역사 수업"

☞ "명문대? 우리 애가 대학에 갈까봐 걱정"
☞ 의사와 벽돌공이 비슷한 대접을 받는 사회
☞ "덴마크도 40년 전에는 '서열 의식'이 견고했다"

☞ 모두가 승리자 되는 복지제도
☞ "아이들은 숲 속에서 뛰노는 게 원칙"
☞ "노는 게 공부다"

☞ "충분히 놀아야 다부진 어른으로 자란다"
☞ 1등도, 꼴찌도 없는 교실
☞ "왜?"라는 물음에 익숙한 사회

☞ "19살 넘으면, 부모가 간섭할 수 없다"
☞ "세금 많아서 자랑스럽다"…"튼튼한 복지는 좋은 교육의 조건"
☞ "협동ㆍ배려ㆍ여유 vs 경쟁ㆍ욕심ㆍ긴장"

☞ "부모 잘 만나야 우등생 되는 사회…벗어나려면"
☞ "멀리 봐야 희망을 찾는다"
☞ "일등을 포기한 학교에서, 더 많이 배웠다"

☞ "차별, 더 강력한 차별이 필요하다"
☞ 국제학력평가 1위, 핀란드의 비결은?
☞ "경쟁? 100m 달리기 할 때만 들어본 단어입니다"

☞ "외운 것은 가장 낮은 수준의 지식일 뿐"
☞ 청소부에게 야단맞는 대학 교수
☞ "한국 학생들이 유난히 머리가 나쁜 걸까?"

☞ "일제고사, 교사 해직…한국은 놀랄 일 투성이"
☞ "교원노조는 좋은 교육 위한 동반자"
☞ "관리자는 '윗사람'이 아니다"

☞ "'피드백'이 교육을 살린다"
☞ "'사람값'이 비싼 사회를 찾아서"
☞ 새총과 PC방 : "문제는 사회안전망이다"

☞ 꼴찌 없는 교실, 이유는?
☞ "자율 선택 강조하는 평등교육"
☞ "직업교육이 더 자랑스럽다"

☞ "혼자서 잘 해내는 아이를 키운다"
☞ "수업시간에 잠자는 아이를 보기 어려운 이유"
☞ "관료주의 깨야 공교육 산다"

☞ "'기름밥' 잘 사는 꼴 못보는 그들, '룸살롱 여대생'엔…"
☞ "너, 대학 안 나와서 뭐 먹고 살래?"
☞ "서울대가 등록금 2000만 원 받는다고 정원 못 채울까"

☞ "복지는 약자만을 위한 것?"
☞ "'복지'는 정치다…누가 '복지'를 두려워하는가"
☞ "인구 많아서 북유럽식 복지 못한다고요?"

☞ "대학 졸업장 '강매'하는 나라, 행복하십니까?"
☞ "대학 진학률이 높아서 문제?…'최저임금'부터 올리자"
☞ "'시장의 포로' 대학 캠퍼스…술집 빼고 다들어왔다"

☞ 등록금 400만원, 대학교육 '원가'는 도대체 얼마?
☞ "한국의 대학, 이제 시장의 포로가 됐다"
☞ "비참해진 대학, 뭘 가르칠지 목표도 방향도 잃었다"

☞ 자살 또 자살, '공짜' 없는 카이스트는 지금…
☞ "교수 월급이 청소부보다 많아야 할 이유, 과연 있나?"
☞ "최저임금 인상이 산업경쟁력 높인다"

☞ "핀란드에는 공고·상고 학생이 더 많아요"
이건희 회장 손자에게도 '무상복지'가 필요한 이유
"'좌파'보다 국익에 무관심한 그들, '진짜 우파' 맞나?"
 
 
이대희, 김윤나영 (eday@pressian.com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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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에서 퍼옴]

"'사람값'이 비싼 사회를 찾아서"
[<프레시안> 창간 7주년 기획] '키워드로 읽는 북유럽' 연재에 앞서
기사입력 2008.09.29 09:26:00 | 최종수정 2008.09.29 09:26:00 | 헬싱키,스톡홀름,웁살라,오슬로,코펜하겐= 성현석 |mendrami@pressian.com
 
"봉고차가 따라오면, 조심해라."

어린 딸이 있는 부모들이 도시락 싸주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20여 년 전만해도, '인신매매단'이라는 흉흉한 단어를 신문 사회면에서 가끔씩 만나곤 했습니다. 물론, 언론의 사건 보도를 통해 접하는 경우보다 동네 미용실과 교실 뒷줄에서 이뤄지는 수군거림을 통해 들을 때가 더 많았지요. '봉고차'를 타고 다니는 인신매매단이 젊은 여성을 납치해서 윤락 행위를 시키거나, 남성을 납치해서 새우잡이 어선에 팔아넘긴다는 이야기입니다.

"'인신매매단'과 '새우잡이 어선'을 기억하시나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망망대해에 떠 있는 배 위에서 팔이 부서지도록 그물을 당기는 상상과 함께 소름이 돋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길 가는 사람을 납치해서 팔아넘기는 인신매매단에 관한 이야기는 잘 들리지 않습니다.

성매매가 사라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또 '새우잡이 어선'이 상징하는 '3D 업종'(Difficult, Dangerous, Dirty·어렵고, 위험하고, 더러운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처지 역시 여전합니다.

다만, 봉고차로 사람을 납치할 필요가 줄어들었을 따름입니다.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는 여성 가운데 상당수는 도저히 갚을 길 없는 빚과 생활고 때문에 스스로 찾아온 경우라고 합니다. 심지어 자녀의 사교육비를 마련하기 위해 성매매에 발을 들이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꺼리는 3D 업종에는 동남아시아 등에서 온 노동자들이 몰려 있습니다. 말이 잘 통하지 않는 한국에서 이들이 받는 열악한 대우는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신문 사회면에서 인신매매단 기사를 찾기 어려워진 배경입니다. 골목길에서 마주친 봉고차를 두려워 할 필요는 없어졌지만, 여전히 소름 돋는 현실입니다.

여전히 헐값에 사고팔리는 사람들

물론, 인신매매가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사고 팔리는 대상이 바뀌었습니다. 중국에는 탈북자를 상대로 한 인신매매 조직이 활개 치고 있습니다. 국내에도 이들과 연계된 조직이 있다고 합니다.

또 골목길에 주차한 '봉고차' 앞에서 괜히 움찔하게 했던 인신매매단 역시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부산 해양 경찰서는 올해 3월 장애인과 범죄 수배자들을 염전이나 새우잡이 어선 등에 팔아넘긴 인신매매단을 잡아들였습니다. 해경에 체포된 인신매매단은 2006년부터 대구, 부산, 마산 등에서 생활정보지 등에 월 200만~400만 원의 수입을 보장한다는 허위광고를 낸 뒤 이를 보고 찾아온 이들을 선원으로 팔아넘겼다고 합니다. 이렇게 팔려간 이들은 혹독한 강제노동에 시달렸고, 탈출을 시도했지만 대부분 실패했습니다.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장애인과 범죄수배자들이 주로 피해를 입었습니다.

해경이 파악한 피해자는 112명입니다. 그리고 인신매매단이 챙긴 돈은 1억 4000만 원 입니다. 한 명당 125만 원씩 받은 셈입니다.

이 사실을 접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씨가 사위에게 1200만 원 가량의 에르메스 핸드백을 선물 받았다는 보도를 접한 뒤였습니다. 핸드백 하나가 사람 열 명을 판 가격과 비슷한 셈입니다. '사람값이 참 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루 14시간 일하고, 2만원쯤 버는 75세 노인

물론, 끔찍한 범죄 사례를 일반화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하지만 범죄가 아닌 일상의 영역으로 시선을 돌려도 여전히 사람값은 형편없습니다.

지난 18일, 75세 고물 수집상 최두석 씨가 14시간 동안 일하고 번 돈이 2만 2000원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최 씨는 한 달에 60만~70만 원쯤 법니다. 13평 임대아파트에서 부인과 딸·손자와 함께 사는 최 씨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3년 전부터 고물을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최 씨는 아파트 관리비 월 2만 5000원을 내지 못해 임대아파트를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습니다. 지난 22일자 <경향신문> 1면 머리기사에 소개된 내용입니다.

칠순 노인이 하루 14시간 일한 대가가 고작 2만 원 조금 넘습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무가지를 주워 담는 노인들의 모습이 기사 위로 겹칩니다. 이들이 큰 쌀자루에 무가지를 가득 채우면, 1만 원~1만 8000원쯤 받는다고 합니다. 최근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면서 가격이 올라갔지만, 경쟁도 더 치열해졌습니다. 조직적으로 무가지를 싹쓸이하는 업자들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평범한 노인들은 자루 하나를 채우는 게 쉽지 않습니다. 무가지를 주워 담는 노인들의 형편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최근 지하철에서 만난 한 노인은 새벽 5시부터 5시간을 꼬박 일하고, 2000~4000원 정도 번다고 했습니다. 한 달에 25일 일하는 것으로 계산하면, 한 달에 5만~10만 원쯤 버는 셈입니다. 여기에 다른 부업을 통한 소득을 보탠다 해도, 월 소득이 80만 원을 넘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노동과 가사, 육아에 평생 시달린 노인들이 하루 종일 혹독하게 일해도 법에 보장된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대형 할인점에서 종일 인사만 하는 '88만원 세대'

그럼, 젊은이들의 사정은 다를까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88만원 세대'라는 표현이 익숙해진 지 오래입니다.

대도시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새로 문을 연 노래방이나 술집 앞에서 뙤약볕을 맞으며 춤을 추는 젊은 여성들을 흔히 보게 됩니다. 또 대형 할인점에서는 입구에 서서 하루 종일 인사만 하는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얼마를 받는지도 궁금하지만,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가 더 답답합니다.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는 일도 아니고, 스스로 즐기는 일도 아닙니다. 보람과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을 도무지 찾기 힘든 일을 굳이 하고 있습니다. '존엄 노동'과는 한참 거리가 멉니다.

이런 일을 왜 시킬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어차피 큰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값'이 워낙 싸기 때문이지요.

한때 유행하던 고구려 사극을 보면, 권력자가 말에 오르기 전에 말 앞에 엎드리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의 등을 디디고 권력자가 말에 오르는 것이지요. 사람의 가치가 기껏해야 디딤대 정도 취급당하던 시절이 담긴 장면입니다. 젊은이들이 종일 로보트처럼 인사만 하도록 시키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그 시절보다 얼마나 나아진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관련 주요 기사: "오늘 하루, 컴퓨터를 끄십시오" , '19禁'-"돈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이명박 발언 유감)

허드렛일을 약자에게 몰아주지 않는 사회

이런 답답함에 젖어 있을 무렵, 핀란드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호텔에서 자기 옷을 다리미로 직접 다려 입더라는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얼핏 사소한 일처럼 보이지만,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허드렛일을 사회적 약자에게 몰아주지 않는 문화에서 비롯된 행동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보람과 가치를 느끼기 힘든 일을 함부로 남에게 시키지 않는 사회는, 결국 '사람값'이 비싸기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사람이 흘리는 땀의 대가를 허투루 치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실제로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은 인건비가 무척 비쌉니다. 또 생산직과 육체노동자에 대한 경제적 보상이 강력합니다. 핀란드에서는 도로에 아스팔트를 까는 일이 상당한 고소득 직종으로 분류된다고 합니다.

물론, 그래서 치르는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똑같은 제품이나 서비스가, 사람의 손을 더 많이 거쳤다는 이유로 더 비싼 가격을 받는 일이 흔합니다.

이를테면, 핀란드와 스웨덴을 오가는 배편을 인터넷으로 예약한 경우와 안내원을 통해 예약한 경우가 비용이 다릅니다. 안내원을 통해 예약한 경우가 더 비싸지요. 얼핏 불합리해보이지만, 북유럽 사람들은 대체로 수긍하는 편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수고를 했고, 그에 대한 보상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보니까요. 이런 까닭에 북유럽 사회는 '살인적인 물가'로도 유명합니다.

"잉크 떨어지면 버리는 볼펜심처럼…"

이런 비용에도 불구하고, '사람값을 허투루 쳐주지 않는 사회'는 여전히 매력적이었습니다. 지난 8월 말부터 9월 중순까지 북유럽 국가들을 돌아다닌 것은 그래서였습니다. 지난해와 올해, 지켜봤던 몇 가지 장면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첫 번째는 용접봉에서 불꽃이 튀는 장면입니다. 그늘 속에서도 땀이 배는 한여름입니다만, 피부에는 오히려 소름이 돋습니다. 지난해 여름, 이랜드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모여 있던 농성장 풍경입니다. 당시 회사 측은 농성장으로 향하는 통로의 방화벽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쇠파이프를 대고, 용접했습니다. 150명의 노동자들이 있는 농성장은 거대한 감옥이 됐습니다. 폐쇄 공포증이 있는 몇몇은 종일 몸을 떨었고, 화장실에서 받아온 물로 목을 축이는 다른 노동자들은 찜통과 같은 열기 속에서 파김치처럼 시들어 버렸습니다.

농성하던 노동자들이 대단한 요구를 한 게 아니었습니다. 한 달에 80~100만 원 버는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었을 뿐입니다. 비정규직으로 일한 지 2년이 됐다는 이유만으로 일터를 떠나야하는 상황에 맞섰을 따름입니다. 자연스런 요구입니다. 그들은 사람이고, 잉크가 떨어지면 내다버리는 볼펜심과는 다르니까요.
▲ 지난해 여름, 이랜드 측은 계열 사업장인 킴스클럽 입구를 봉쇄했다. 안에서 농성하던 노동자들의 건강을 염려한 의료진의 출입도 통제됐다. ⓒ뉴코아 노조

웨이터 출신 국회의원과 택시 기사 허세욱

다른 장면은 밑줄이 빼곡한 신문 조각과 종이 출력물들입니다. 지난해 4월 한미 FTA를 반대한다는 구호를 외치며 분신한 고(故) 허세욱 씨가 남긴 유품입니다. 중학교를 중퇴한 뒤, 서울에 올라와 온갖 허드렛일을 전전했던 허 씨는 봉천동 철거촌에서 여성 활동가를 두들겨 패던 철거 용역을 보고 두려워 몸을 피한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느꼈던 부끄러움이 그를 늦깎이 사회 활동가로 거듭나게 했습니다. 120만 원에 조금 못 미치는 월급을 받는 택시 운전사로 살아가면서, 여러 사회단체에 꼬박꼬박 회비를 내고 각종 행사에 빠짐없이 참가하던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FTA 체결을 추진하다는 보도를 접하고, 관련 자료를 꼼꼼하게 읽기 시작합니다. 밑줄로 채워진 그의 유품은 이런 노력의 흔적이지요.(☞관련 기사 :허세욱 씨가 남긴 상자를 열며-"제 구실 못하는 언론이 부끄럽다")

이런 노력의 결과, 그가 느낀 것은 절망이었습니다. 한미FTA 체결 추진은 우리 사회가 덴마크나 스웨덴, 네덜란드, 스위스 등 다른 사회 경제 모델을 참고할 가능성을 접고 '미국식 모델'을 전적으로 따르기로 했다는 방증이었고, 우리보다 앞서 비슷한 결정을 내린 멕시코 등의 사례는 극심한 양극화와 사회적 약자의 인권 훼손이라는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민주화 세력을 자임한 정부가 이런 식의 방향 수정을 민주적 의견 수렴 없이 진행했다는데 절망한 그가 끝내 막다른 선택을 한 것이지요.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 당했을 당시, 민주노동당 동료 당원 일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섰던 그가 느꼈을 절망감을 짐작하는 게 어렵지 않습니다.(☞관련 기사 :"가방끈 짧다고 시대의 진실 모를까"-허세욱 씨의 삶 , "늘 따뜻했던 당신을 어찌 잊을까요")

한미FTA 관련 자료에 빽빽이 채워진 그의 밑줄 자국과 메모를 보면서, '가방끈'과 '사람값'이라는 낱말을 동시에 떠올렸습니다. 그토록 진지하게 공부했던 허 씨의 죽음이 사회 주류의 냉소적 무관심에 묻혔던 이유가 '짧은 가방끈' 때문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정규 교육을 많이 받지 않은 이들은 정치, 사회, 경제 영역의 공론장에 참여하기 힘든 사회. 아무리 진지한 생각을 담아 발언해도,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 가방끈이 짧으면, 사람값도 떨어지는 사회인 셈입니다.

스웨덴에서 만난 음식점 종업원(웨이터) 출신 국회의원이 당의 정책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보며 몹시 부러웠던 것은 그래서였습니다. 그 의원은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노동조합 활동을 하며 사회과학을 공부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이뤄진 배움에 대해 사회가 가치를 인정해 줬던 것입니다.
▲ 故 허세욱 씨가 남긴 한미FTA 관련 자료들. 허 씨의 집에는 FTA 관련 문서와 신문 스크랩이 수천 장 가량 보관돼 있었다. ⓒ프레시안


다리미질 하는 대통령과 코스콤 비정규직


또 다른 장면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컴퓨터에 연결된 랜선(Lan Cable)입니다. 정규직과 별 차이 없는 일을 하다, 갑작스레 거리로 내몰린 코스콤 비정규직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단지 비정규직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이들은 함께 일하고 수다 떨며 밥 먹었던 정규직 동료들에게서 혹독한 따돌림을 겪었습니다.
▲ 여의도 증권 거래소 앞에서 시위하고 있는 코스콤 비정규직. 코스콤은 증권거래소에 소속된 공기업으로 증권사들의 전산망을 관리하는 일을 한다. 정규직 평균 연봉은 공공기관 평균 연봉 3위에 해당하는 9200여 만 원이지만, 비정규직은 그들의 1/4~1/5 수준이다. ⓒ프레시안

정규직들은 비정규직을 향해 "억울하면, 시험 쳐서 들어올 것이지….", "랜선이나 깔던 것들이 무슨…" 등과 같은 말을 내뱉곤 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시험을 쳐서 합격했더라도, 남과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면 비슷한 대우를 받는 게 당연합니다. 코스콤 정규직들이 쏟아낸 말은 모든 사람이 나름의 고유한 가치를 인정받기보다, 시험 점수에 따라 서열 지워진 문화에서 비롯된 결과입니다. 이런 문화에선 모두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1등은 언제 1등에서 밀려날지 몰라서 불안합니다. 또 2등 이하는 1등이 아니라서 불행합니다. 꼴찌가 비참한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등수'를 따지지 않는 북유럽 국가들의 교육 제도를 보며, 부러웠던 이유입니다.

"랜선이나 깔던 것들…"이라는 말에서 드러나는 것은 허드렛일에 대한 강한 경멸감입니다. 코스콤에서는 비정규직이 정규직과 비슷한 일을 했으므로, 비정규직을 가리켜 "랜선이나 깔던"이라고 묘사하는 것은 우선 사실과 다릅니다.
▲ 타르야 할로넨(Tarja Kaarina Halonen) 핀란드 대통령. 지난 2000년 당선됐고, 2006년 선거에서 재선됐다. 핀란드 사회민주당 소속인 그녀는 노동조합 소속 변호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어린 시절 언어장애를 겪었으며, 지금도 그 영향이 남아 있다. 장애 경험은 그녀가 사회적 약자들이 겪는 문제에 더 민감해질 수 있는 계기로 작용했다. ⓒ핀란드 정부

하지만 이런 점을 접어놓고 따져 봐도, 랜선을 까는 일이 왜 경멸의 대상이 돼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모두가 귀찮고 번거로워 하는 일은 모든 이가 조금씩 나눠 맡는 게 바람직한 일입니다. 청소나 빨래, 설겆이 등을 부부가 나눠 해야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게 여의치 않아서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감사해 하는 게 마땅합니다. 경제적으로도 더 많은 보상을 하는 게 옳습니다.

직접 옷을 다리는 핀란드 대통령이 인상적이었던 이유입니다. 또 단순 노무직이 고소득 직업으로 분류되는 북유럽 사회에 직접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임금 격차 없애니까, 효율도 높아졌다"…연대임금제의 성공

북유럽 역시 처음부터 '사람값 제대로 쳐주는 사회'였던 것은 아닙니다. 불과 백년 전만해도, 스웨덴 노동자들은 교회에서 앞줄에 앉을 수 없었습니다. 귀족과 부유층을 위해 자리를 양보해야 했으니까요. 경제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빈민들은 나라 밖에서 살 길을 찾았습니다. 1850년부터 1920년 사이에 약 100만 명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북유럽 다른 나라들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 영화 '정복자 펠레' 포스터. 20세기 초반, 스웨덴 노동자들이 겪었던 비참한 생활이 잘 묘사돼 있는 영화다.

이랬던 사회가 '큰 차별 없이 두루 잘 사는 사회'로 거듭 난 것은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SAP, Sveriges Socialdemokratiska Arbetareparti. 스웨덴 사민당)과 스웨덴 노총(LO, Landsorganisationen)의 공이 큽니다. 특히 스웨덴 노총(LO) 소속 경제학자였던 괴스타 렌과 루돌프 마이드너가 내놓은 '연대임금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같은 일을 한다면, 어느 직장에 다니건 같은 임금을 받는 제도입니다. 이런 제도가 실시되면, 정규직과 비슷한 일을 하면서도 급여는 정규직의 20~25% 수준에 불과한 코스콤 비정규직과 같은 일은 생기지 않습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임금 격차도 없어집니다.

이렇게 되면 수익성이 낮은 기업은 경영 압박을 느낍니다. 높은 인건비 부담 때문에, 기업 경영자들은 다른 비용을 아끼고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려 애쓰게 됩니다. 신제품 개발과 경영 혁신으로 내모는 유인이 생기는 것이지요.

실제로 이 과정에 제대로 적응 못한 기업들이 대거 문을 닫았습니다. 이렇게 생겨난 실업자들을 보살피는 게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입니다. 이들이 받던 임금을 사회가 보전해주면서, 직업교육을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실업자들은 수익성이 높은 산업에 종사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을 배우게 됩니다. 그 비용은 정부가 부담합니다. 이 과정에서 효율이 낮은 기업은 도태되고, 노동자들은 수익성이 높은 지식과 기술을 습득합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먹을거리를 찾아 떠나는 이민 행렬이 항구를 메웠던 스웨덴이 20세기 중반을 지나며 풍요로운 나라로 도약할 수 있었던 비결로 '연대임금제'와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의 성공을 꼽습니다.

기업가를 '손쉬운 선택'에 내몰지 않으려면

'사람값'을 제대로 쳐줘서, 불필요한 일에 노동력이 낭비되지 않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대형 할인점에서 종일 인사만 하는 일 따위로 젊은이들을 소모시키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또 안정적인 평생교육을 통해 노동력의 가치를 고도화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북유럽 사회에서는 30~40대 대학 신입생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교육비를 국가가 부담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다른 제한 조건이 없다면, 기업가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연구개발과 경영 혁신을 도모하기보다 인건비를 줄이고 협력업체를 쥐어짜서 효율을 높이려들기 쉽습니다. 아무래도 쉽고 안전한 방법이니까요. 대신, 이렇게 떠넘겨진 비용을 짊어진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비참한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기업이 오래 생존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사람을 쥐어짜는 데는 결국 한계가 있으니까요.

북유럽 모델의 한계
▲ 1973년 언론과 인터뷰하는 루돌프 마이드너. 렌과 함께 '연대임금제'를 제시한 그는 '스웨덴 모델의 설계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연대임금제'가 도입될 때부터 그는 대기업에게 '초과 이윤'이 돌아가는 부작용을 염려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임노동자 기금'을 제안했으나 보수층의 반발과 사민당의 애매한 태도로 인해 실패했다. '임노동자 기금'의 실패는 스웨덴 모델이 우경화한 분기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arbark.se


물론,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에서 '연대임금제'가 늘 제대로 작동했던 것은 아닙니다. 전체 노동자의 대표와 전체 사용자의 대표가 진행하는 '중앙교섭제'가 연대임금제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를 지나며, '중앙교섭제'가 사실상 허물어졌습니다. 결국, 노동자들의 세전(稅前) 소득 격차는 다시 벌어졌습니다.

또 자본이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게 되면서, 강력한 노동조합에 바탕을 둔 북유럽 모델은 거대한 도전에 부딪힌 것도 사실입니다. 공장을 외국으로 옮기겠다는 대기업의 협박에 스웨덴 사민당이 굴복한 사례는 이제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연대임금제' 자체가 갖고 있는 한계도 있습니다.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정책은 수익성이 낮은 기업에게는 부담이지만, 수익성이 높은 기업에는 큰 혜택입니다. 이런 정책이 시행되지 않을 경우 지급할 임금보다 더 적은 임금을 지급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국가와 사회가 강력한 복지를 제공하는 까닭에, 사원 복지를 위해 비용을 지불할 필요도 없습니다. 대기업, 생산성이 높은 산업에 종사하는 기업들이 이런 식으로 '초과 이윤'을 거뒀고, 이들은 재벌로 성장했습니다.

이렇게 생겨난 재벌이 경제와 사회에 꼭 좋은 영향만 끼치지 않았으리라는 점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회·경제적 자산이 집중돼 있는 재벌을 어떻게 규제해야 하는지는 이들 나라나 한국 모두에게 숙제입니다.

에너지·자원 낭비하는 미국식 모델의 한계

하지만, 이런 숱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북유럽 모델은 여전히 주목할만합니다. 최근 불거진 금융 위기에서 드러나듯, 미국 중심의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도 한 이유입니다. 한국의 진로를 미국식 모델로 설정하면서, 한미FTA에 목을 매다시피 했던 한국 정부의 선택에 불안한 그림자가 드리워졌습니다. 이런 상황은 <엔트로피>, <육식의 종말> 등으로 널리 알려진 제레미 리프킨의 저서 <유러피언 드림>을 떠올리게 합니다. 실제로, 북유럽에서 만난 한 외교관도 이 책을 언급하더군요.

개인 사이의 무한 경쟁을 부추기는 미국식 모델에 비해, 상대적으로 공공성을 강조하는 유럽식 모델은 흔히 낡은 것으로 취급돼 왔습니다. 하지만 제레미 리프킨은 '삶의 질'을 중시하는 '유러피언 드림'이 눈 앞의 성취에만 몰두하는 '아메리칸 드림'을 곧 앞서리라고 전망합니다.

굳이 리프킨의 전망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에너지와 자원을 지나치게 많이 소비하는 미국식 모델의 한계는 분명합니다. 지구에 있는 에너지와 자원의 총량에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실제로 원자재 가격과 유가는 지속적으로 올라가는 추세입니다. 다만, 미국식 모델이 언제 근본적인 한계에 부딪힐지를 알기 힘들 따름입니다.

물론, 강력한 군사적 패권을 갖고 있는 미국은 '힘'으로 위기를 돌파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패권과 거리가 먼 한국이 미국식 모델을 마냥 따라가는 것은 위험해 보입니다.

"에너지와 자원은 덜 쓰면서, 문화와 지식은 더 쓰는 경제"


에너지와 자원을 덜 쓰면서, '삶의 질'을 높이는 모델을 찾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마침, 경제학자 우석훈은 최근 간행된 책 <괴물의 탄생>에서 "에너지와 자원은 덜 쓰면서, 문화와 지식은 더 쓰는 경제"를 대안으로 제시했습니다.


자연을 덜 파괴하면서, 평범한 사람들의 지식과 감수성을 최대한 계발하여 활용하는 것이 대안이라는 뜻입니다.


그러자면 우선 교육이 바뀌어야 합니다. 단순 암기 경쟁에서 벗어나 사고력과 감수성을 자유롭게 키울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시험 위주의 평가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지 못했던 학생이 의외로 뛰어나고 섬세한 사고력과 감수성을 갖고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따라서 시험 점수에 따라 학생을 줄 세우는 교육 방식은 "문화와 지식을 더 쓰는 경제"에 몹시 해롭습니다.

아울러 사람들의 창의성을 최대한 끌어내려면, 누구에게나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하는 복지 안전망이 필수적입니다. 미래가 불안한 상태에서 창의적 혁신을 도모하는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다들 안정만 쫓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경쟁을 완화하고 불필요한 권위를 허무는 게 필수적입니다. 경쟁은 시험 합격을 위한 지식 습득에만 유용할 따름입니다. 경쟁이 치열하고, 권위가 엄격한 공간에서 창의적인 지식이 싹트고, 문화적 감수성이 피어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수평적인 관계에서 서로 협동할 때, 창의적 아이디어가 더 많이 쏟아진다는 게 오히려 상식입니다.

한 시간강사의 죽음…월 소득 40만원대 지식인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문화와 지식을 더 쓰는 경제"와 거리가 멉니다. 역시 '사람값'과 관계가 있습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한국에서 활동하는 시간강사는 7만 2419명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주당 9시간 근무할 경우 연봉은 999만 원입니다. 이들의 임금 수준은 전임교원의 4분의 1이 채 안됩니다. 하지만 시간강사의 평균 강의시간은 주당 4.2시간입니다. 따라서 평균 연봉은 487만 5000원입니다. 시간강사들은 실제로 한달에 42만 6350원 번다는 뜻입니다. 사교육 등 다른 부업을 하지 않고서는 경제적 생존이 불가능합니다.

전체 대학 강의의 절반 가까이를 담당하고 있는 시간강사들은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않고 일합니다. 다음 학기 강의를 맡을 수 있는지에 대해 늘 불안해 하면서 지내야 합니다. 4대 보험조차 보장돼 있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단순 작업이나 육체노동을 하는 경우만 사람값이 너무 싼 게 아니었던 셈입니다. 지식 생산을 담당하는 경우 역시 '사람값'이 너무 쌉니다. 이래서는 "문화와 지식을 더 쓰는 경제"에 다가갈 수 없는 게 당연합니다.

올해 2월 한 시간강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국내 한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오래 일했던 한 모 씨입니다. 주변 사람들은 극도의 궁핍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했습니다. 미국의 한 모텔에서 자살할 당시, 그는 한국으로 돌아올 비행기 삯조차 없었다고 합니다. 또 정규직 전임교원들이 비정규직 시간강사인 그에게 취했던 권위적이고 모멸적인 태도 역시 죽음의 한 원인으로 꼽혔습니다. 한 씨가 남긴 유서에는 교수 사회의 비리와 파벌주의가 잘 담겨 있습니다.

자유로운 지성들의 공동체가 돼야 할 대학이 오히려, 앞장서서 '사람값'을 깎아내리고 있는 셈입니다. 수직적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에선 지식인들 역시 제 구실을 할 수 없습니다.

언제까지 자살로 사회적 메시지를 전해야 하나

'사람값을 제대로 쳐주는 사회'로 거듭나는 게 절실합니다. 대체로 미국보다는 유럽이 이런 사회에 가깝습니다. 과거와 많이 달라졌지만, 유럽 국가들 중에서도 북유럽 국가들이 그나마 이런 사회에 더 가깝습니다. 석유 등 화석연료에 덜 의존하면서, 재생가능 에너지를 활용하기 위한 노력에 가장 적극적인 사회 역시 아직까지는 북유럽 사회입니다. 생태주의자들의 활동 역시 가장 두드러집니다.

이렇게 보면, 한국의 진로를 모색하는데 유용한 힌트가 그나마 많이 담겨 있는 곳은 북유럽 사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등에서는 직업의 귀천을 따지는 문화가 거의 없습니다. 권위와 서열이 느슨한 것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문화입니다. 노르웨이에서 만난 젊은 보수당 국회의원은 의원실 전화를 직접 받고, 일정 관리와 자료 정리도 직접 한다고 했습니다.

코스콤 비정규직에게 쏟아졌던 "랜선이나 깔던" 따위의 말은 이런 문화 속에서 듣기 어렵습니다. 올해 2월 안타깝게 목숨을 끊은 시간강사 한 씨 역시 이런 문화 속에서라면, 학자로서의 삶을 이어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고등 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치·사회적 발언에서 소외되는 일도 거의 없습니다.

이런 사회에서라면, 고(故) 허세욱 씨의 삶도 비극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직장에서 쫒겨난 사람이,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리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하는 까닭에, 경영자들이 함부로 직원을 내쫒지 못합니다. 복지 안정망이 탄탄한 까닭에, 실업자는 직장에 다니던 시절과 비슷한 생활수준을 누리며, 새로운 일을 찾기 위한 교육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랜드 비정규직이 겪고 있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첫 번째 키워드…'협동'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를 거쳐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들 사회와 한국과의 차이를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무엇이 '사람값 제대로 쳐주는 사회'를 만드는 것일까."

답은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다만 이들 사회가 한국에 비해 조금 두드러진 특징들을 가로지르는 키워드 몇 개가 떠올랐을 따름입니다. 그래서 마련한 게 "키워드로 읽는 북유럽" 기획입니다.

첫 번째 키워드는 '협동' 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경쟁'에 내모는 한국과 달리, 이들 사회에서는 "경쟁은 아이들에게 해롭다"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경쟁을 자제하면서, 협동을 장려하는 게 교육의 주요 목표라는 뜻입니다.

오는 10월 1일 게재될 "키워드로 읽는 북유럽" 기획 첫 번째 기사는 '협동'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 관련 주요 기사 모음

○ 키워드로 읽는 북유럽

☞ 연재를 시작하며: "'사람값'이 비싼 사회를 찾아서"

첫 번째 키워드 : 협동

☞ "평등 교육이 더 '실용'적이다" (上)
☞ "'혼자 똑똑한 사람'을 키우지 않는다" (中)
☞ "'로마'만 배우는 역사 수업" (下)

두 번째 키워드 : 코뮌

☞ "가족 없이 늙어도, 당당하다" (上)
☞ "'착한 정부'는 '코뮌'에서 나온다" (中)
☞ "'인민의 집', 그들만의 천국?" (下)

세 번째 키워드 : 생태

☞ "산적이 100년 동안 다스리는 마을에서는…" (上)
☞ 'MB식 녹색성장'이 불안한 이유 (中)
☞ '친환경 기술'로 녹색성장?…"글쎄요" (下)

네 번째 키워드 : 민감

☞ "'강철신경'은 자랑이 아니다"
○ "덴마크에서 살아보니, 한국에서 살아보니"

- 직업과 학벌에 따른 차별이 없다

☞ "명문대? 우리 애가 대학에 갈까봐 걱정"
☞ 의사와 벽돌공이 비슷한 대접을 받는 사회
☞ "덴마크도 40년 전에는 '서열 의식'이 견고했다"
☞ 모두가 승리자 되는 복지제도
☞ 비정규직 임금이 정규직 임금보다 더 많은 나라

- '암기가 아닌 창의, 통제가 아닌 자율'을 장려하는 교육

☞ "아이들은 숲 속에서 뛰노는 게 원칙"
☞ "노는 게 공부다"
☞ "충분히 놀아야 다부진 어른으로 자란다"
☞ 1등도, 꼴찌도 없는 교실
☞ "왜?"라는 물음에 익숙한 사회
☞ "19살 넘으면, 부모가 간섭할 수 없다"

- "아기 돌보기, 사회가 책임진다"

☞ "출산율? 왜 떨어집니까"
☞ "직장인의 육아? 걱정 없어요"

- "덜 소비하는 풍요"

☞ "에너지 덜 쓰니, 삶의 질은 더 높아져"
☞ "개인주의를 보장하는 공동체 생활"
☞ '빚과 쓰레기'로부터의 자유
☞ "장관이 자전거로 출근하는 나라"
☞ "우리는 언제 '덴마크의 1979년'에 도달하려나"

- "낡고 초라한 아름다움"

☞ "수도 한 복판에 있는 300년 전 해군 병영"
☞ 인기 높은 헌 집
☞ "코펜하겐에 가면, 감자줄 주택에 들르세요"
☞ 도서관,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곳

- 덴마크 사회의 그림자

☞ "덴마크는 천국이 아니다"
☞ "덴마크 사회의 '관용'은 유럽인을 위한 것?"
- 한국에서 살아보니

☞ 고생도 훈장
☞ 피곤한 사람들
☞ 불우 이웃을 도웁시다?
☞ 청계산이여, 안녕
☞ "석유 안 나는 나라에서 기차를 홀대해서야…"

☞ "기억 속 푸른 하늘, 다시 볼 날은 언제쯤?"
☞ "침 뱉을 일 많아도, 길에서는 참읍시다"
☞ "아빠, 빨리 들어오세요"
☞ 메뉴판을 하나만 주는 식당
☞ 어른도 교복 입는 나라?

☞ "여자라서 못한다고요?"
☞ "단체행동, 꼭 따라해야 하나요?"
☞ 윗사람, 아랫사람
☞ 축 합격 ○○○?
☞ "'○○과장' 대신 '○○님' 어때요?"

☞ "사교육 광풍 대책, 정말 모르시나요?"
☞ "'1등 과천'이 아니라 '보통 과천'이 좋아요"
☞ "그동안 당신은 무엇을 했는가"
☞ 현수막 공화국
☞ "광장이 그립다"

☞ "외국 손님에게 옛 풍경을 보여주고 싶어요"
☞ "과천에는 품앗이가 있다"
○ 북유럽 사민주의 이모저모

☞ "복지는 약자만을 위한 것?"
☞ "연쇄살인범 강 씨가 스웨덴에서 태어났다면…" : 범죄율과 복지국가
☞ "'가문의 영광' 꿈꾸지 않아 행복한 사회" : 내가 겪어본 스웨덴
☞ 스웨덴 복지국가에 관한 오해
☞ 죽기살기식 노사관계를 벗어나려면 덴마크를 보자
☞ 새총과 PC방 : "문제는 사회안전망이다"
☞ "'복지'는 정치다…누가 '복지'를 두려워하는가"
☞ "인구 많아서 북유럽식 복지 못한다고요?"
○ 핀란드 교육 탐방

☞ "세금 많아서 자랑스럽다"…"튼튼한 복지는 좋은 교육의 조건"
☞ "협동ㆍ배려ㆍ여유 vs 경쟁ㆍ욕심ㆍ긴장"
☞ "부모 잘 만나야 우등생 되는 사회…벗어나려면"
☞ "멀리 봐야 희망을 찾는다"
☞ "한국 학생들이 유난히 머리가 나쁜 걸까?"
○ 핀란드 교육 관련 인터뷰

☞ 국제학력평가 1위, 핀란드의 비결은?
☞ "경쟁? 100m 달리기 할 때만 들어본 단어입니다"
☞ "일제고사, 교사 해직…한국은 놀랄 일 투성이"
☞ "교원노조는 좋은 교육 위한 동반자"
☞ "관리자는 '윗사람'이 아니다"
☞ "'피드백'이 교육을 살린다"
☞ "차별, 더 강력한 차별이 필요하다"
○ 핀란드 학교 탐방

☞ 꼴찌 없는 교실, 이유는?
☞ "자율 선택 강조하는 평등교육"
☞ "직업교육이 더 자랑스럽다"
☞ "혼자서 잘 해내는 아이를 키운다"
☞ "수업시간에 잠자는 아이를 보기 어려운 이유"
☞ "관료주의 깨야 공교육 산다"
○ 김명신의 '카르페디엠' : 북유럽 교육

☞<1> "당신은 펜을 들고, 친구는 카메라를 든 것처럼"
☞<2> "경쟁과 협력…누가 더 많이 웃고 살까"
☞<3> "한국 부모들, 심리학을 공부하세요"
☞<4> 백년대계를 바꾸는 열 가지 차이는?
☞<5> "지구 반대편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 스웨덴 학교 이야기

☞ "일등을 포기한 학교에서, 더 많이 배웠다"
☞ "외운 것은 가장 낮은 수준의 지식일 뿐"
☞ 청소부에게 야단맞는 대학 교수
☞ 사민주의 사회에서 이뤄지는 경쟁 실험
○ '대학의 교육 불가능'

☞ ① 
"학부생 인질 잡힌 대학원생 등록금,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 ②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 가난할수록 공부할 수 없는
☞ ③ '스펙 괴물'이 된 대학생의 시한부 인생
☞ ④ "접대 자리엔 인문학 전공자 노래 한 곡이 효과적?"

☞ ⑤ 누가 대학생과 대학을 욕하는가
○ '대학주식회사'의 그늘

"'시장의 포로' 대학 캠퍼스…술집 빼고 다들어왔다"
등록금 400만원, 대학교육 '원가'는 도대체 얼마?
"한국의 대학, 이제 시장의 포로가 됐다"
"비참해진 대학, 뭘 가르칠지 목표도 방향도 잃었다"
자살 또 자살, '공짜' 없는 카이스트는 지금…
○ '대학에 안 가도 존엄한 삶 누리는 사회'

☞ "'기름밥' 잘 사는 꼴 못보는 그들, '룸살롱 여대생'엔…"
☞ "너, 대학 안 나와서 뭐 먹고 살래?"
☞ "서울대가 등록금 2000만 원 받는다고 정원 못 채울까"
○ 보편적 복지와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이건희 회장 손자에게도 '무상복지'가 필요한 이유
"'좌파'보다 국익에 무관심한 그들, '진짜 우파' 맞나?"
 
 
헬싱키,스톡홀름,웁살라,오슬로,코펜하겐= 성현석 (mendrami@pressian.com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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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퍼옴]

[놀이가 밥이다]“놀이 결핍, 사회적 대화 물꼬 터지면 문제 쉽게 풀릴 수도”

ㆍ(12) 전문가 5인 좌담

아이들의 놀이에 관심을 쏟아온 전문가들과 할 말이 많은 현장 교사·공무원들이 지난 19일 오후 경향신문에 모였다. 경향신문 ‘놀이가 밥이다’ 기획을 마무리하며 열린 좌담이었다. 생후 6개월부터 초·중·고·대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이기도 한 다섯 사람은 아이들의 놀이현실과 공동체 붕괴 상황이 한계에 이르렀고,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문제의 원인도 해법도 공동체 전체의 의식 전환에서 찾아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먼저 나설 때엔 용기가 필요하지만,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이슈여서 사회적 대화의 물꼬가 터지면 생각보다 쉽게 풀릴 수 있는 문제라는 점에도 뜻을 같이했다.

아이들의 놀이에 관심을 쏟아온 전문가·교사·공무원 다섯 사람이 지난 19일 오후 경향신문 ‘놀이가 밥이다’ 기획을 마무리하는 좌담을 하기에 앞서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 경희궁 앞뜰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 2월25일 시작된 경향신문의 ‘놀이가 밥이다’ 기획이 한 달이 됐다.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나.

선우현 = 놀이의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시의적절한 기획이었다. ‘마실 문화’ ‘골목 문화’의 경험이 없는 젊은 부모들이 등장했다. 소위 ‘알파걸 시대’의 엄마들로, 아이들과 같이 입시경쟁에 뛰어든 세대의 부모들이다. 젊은 부모들은 ‘우리도 경쟁사회에서 살아왔다’ ‘놀이라도 줄여 유리한 고지를 점해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어 40대 이후 세대의 눈높이와 많이 다르다. 그 자신들이 놀이의 필요성을 별로 못 느끼는 세대인 것 같다.

문재현 = 놀이에 대한 인식이 현재 35살 정도를 전후해서 많이 다른 걸 볼 수 있다. 여러 가지로 분석할 수 있는데, 1990년대 초·중반 학창시절을 보낸 세대로, 대학 나온 부모들의 통제를 심하게 받기 시작한 세대다. 1990년대 초 특목고가 생기면서 사교육이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한편으론 컴퓨터게임도 많이 생기고 아이돌 문화가 만들어져 어른들과 문화적으로도 분리됐다. 예전엔 언니·형들이 놀이를 이끌어줬는데, 그런 것도 사라지고 놀이도 개인화되기 시작했다. 이런 일련의 변화가 있었는데, 문화적인 통찰이나 사회적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그냥 어물쩍 넘어갔다.

한희정 = 교사들도 놀아본 교사와 놀아본 적 없는 젊은 교사들로 확연히 나뉜다. 특히 외환위기(IMF) 이후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직업 선망이 높아지면서 교대 커트라인이 확 높아졌는데, 이후 세대의 문화는 완전 다르다. 젊은 교사들 중에는 외고·교대 등 탄탄대로를 거쳐 교직에 바로 들어온 이들이 있다. 이 친구들은 아이들을 아주 잘 가르치지만 교육과정이 다 끝난 2월에 아이들과 뭘 할지 몰라 정말 괴로워하더라. 

편해문 = 맞다. 놀 줄 모르는 교사들이 실제 많다. 교사들을 만나면 놀이가 아이들에게 필요한 게 아니고 교사·부모들에게 절실한 문제라고 얘기한다. 지금이 3월인데, 놀이를 통해 아이들과 관계를 맺지 못하면 1년 동안 어떻게 아이들과 잘 지낼 수 있겠나.


▲ 문재현 마을공동체교육연구소장
“놀이 회복 운동 통해 어른들 공동체도 살아나
놀이 자발성 발휘하도록 정부 ‘지시’ 아닌 ‘도움’을”


▲ 김기혜 김해 기적의 도서관 운영 담당 공무원
“사회 전체 놀이 부족 인식… 김해 ‘기적의 도서관’도
아이와 뭘 할지 모르는 부모들의 요구로 생겨나”


▲ 선우현 명지대 아동심리치료학과 교수
“아이·엄마 고립된 생활로 공동체와 어울리지 못해
친구를 경쟁자로 인식하고 학교도 공부 외 의미 없어”


- 놀이가 사라져가며 모든 교육주체들이 힘들어하는 것 같다.

선우현 = 핵가족화하면서 아이들 대부분이 유치원 갈 때까지 엄마와 단둘이 있는 경우가 많아졌다. 내 치료실에는 애도 엄마도 공동체에 잘 끼지 못한 경우가 많다. 언제부터인지 공동체 문화가 무너져 부쩍 개인주의·경쟁주의의 경향이 심화되고 있다는 걸 느낀다. 아이들이 친구를 친구라기보다는 경쟁자로 여기고, 학교도 공부하는 공간이지 그 이상의 의미가 없다는 식의 얘기를 많이 한다. 

문재현 = 예전엔 언니·오빠·할머니 등이 함께 아이를 돌봐줬지만, 지금은 엄마가 아이를 혼자 계속 돌봐야 하는 1 대 1 상황이다. 엄마들이 너무 힘들어졌다.

선우현 = 심리상담은 3~5월이 성수기다. 학교나 어린이집에서 교사 얘길 듣고 찾아오는 거다. 그런데, 놀이만 놓고 봤을 땐 아이가 또래들 사이에서 안전하게 놀 수만 있다면 병리적인 상황은 없다. 한 가지만 당부하고 싶다. 엄마와 아이가 단둘이만 있는 계속적인 고립 상황에만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요즘 엄마들 중엔 홈쇼핑으로 모든 걸 해결하고 집 밖으로는 아예 나올 생각을 안 하는 극도의 대인기피증 엄마들이 있다. 이런 경우가 위험하다. 좀 다른 얘기지만 아이들의 놀이에 부모가 개입하고 놀이를 조종하려 드는 엄마들이 많은 것도 문제다.

김기예 = 김해 기적의 도서관이 한 달에 한두 번 도서관 앞 뜰을 놀이터로 개방해 큰 호응을 받은 것도 결국은 각자 뿔뿔이 흩어져 있는 부모들의 절실한 요구 때문이었던 것 같다. 꼬박꼬박 나오는 한 아빠가 맞벌이하는 우리 가족에게 놀이터가 숨통이었다고 말했는데, 참 보람을 느꼈다. 혼자 있으면 아이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부모들이 모여 힘을 얻은 거다. 

문재현 = 아까 얘기했듯 놀이 자체를 경험해보지 못한 교사들이 등장하면서 교사들도 아이들과의 소통을 많이 힘들어한다. 교사가 주변 아이들 몇 명과 놀 수 있는 힘이 있으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주변으로 모이게 되는데, 교사가 주변 사람들과 놀 수 있는 마인드가 없으니 어려움이 따르는 거다.

선우현 = 교사도 힘들지만, 교사가 아이들을 못 놀게 통제하니 아이들도 괴롭다. 내게 상담받은 초등학교 고학년 여학생이 모래상자에 교실의 모습을 재현했는데, 모두가 다 복도 쪽 창가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었다. 교사가 쉬는 시간에 못 나가게 막아 다들 창문 쪽에 가서 밖을 내다보고 있다는 거다.

김기혜 = 교사들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도 이해가 간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다치면 다 교사에게 책임이 돌아오니까 그렇다.

문재현 = 그렇지만 실상은 잘 놀지 못하는 애들이 더 잘 다친다.

한희정 = 놀이의 수준이 다르다고 다 상담받고 치료받아야 한다고 얘기하는 분위기가 우려스럽다. 그런 아이들을 어린이집이나 학교에서 관심을 갖고 기다려주면 놀이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아질 것 같은데, 기다려주지 못한다. 또 다양한 아이들이 섞여 놀며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데, 아이들도 점점 더 비슷한 놀이수준, 비슷한 배경의 아이들과만 놀려고 하는 분위기가 있어 걱정이다.

- 그러나 문제가 꽉 막혀 있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성공의 경험을 좀 들려달라.

문재현 = 학교 단위로 교사 놀이연수와 평화샘 프로젝트 등을 진행하고 있다. 교사가 놀면서 스스로 행복하다는 경험을 해보면 그 다음의 변화는 금방이더라. 처음엔 놀고 나면 아이들이 산만해지지 않느냐, 사고나지 않느냐고 우려하던 교사들이 한번 즐겁게 놀며 교사들끼리, 또 아이들과 어울린 후로는 아이들과 접속되는 느낌이 든다면서 무척 좋아했다. 한번은 연세가 쉰이 넘으신 교사가 놀이연수를 받고 나서 남은 교사생활 동안 이렇게 아이들과 소통한다면 아이들에게 나쁘지 않은 선생님으로 기억될 것 같다며 울먹였는데, 참 가슴이 찡했다.

한희정 = 우리 학교는 놀이가 아이들과 학교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킨 극적인 변화의 경험이 있다. 처음 놀이시간을 도입하자고 할 때만 해도 교사들 의견이 반반이었다. 안전사고 나고 다칠 수도 있고, 수업 분위기를 해칠 수 있다는 의심도 만만치 않았다. 학급 자율로 놀이시간을 운영했는데, 열심히 운동장에 내보내는 교사도 있지만 놀잇감만 사 주고 교실에서 놀게 한 분들도 많았다. 그런데, 운동장에서 실컷 놀고 난 아이들이 3·4교시 수업을 집중해서 잘 듣는다는 긍정적인 얘기들이 나오고 그런 반들이 사고도 오히려 나지 않자, 정년이 얼마 안 남은 보수적인 교사들까지 5·6월부터는 아이들을 운동장으로 내보냈다. 놀이가 가진 힘을 목격하면서 학교 전체가 불과 몇 달 만에 변한 거다.

김기혜 = 사회 전체적으로도 아이들의 놀이 부족을 많이 염려하고, 놀이에 대한 인식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하는 것 같다. 도서관 앞마당에서 놀이터를 진행할 때 안내방송을 하는데, 지금은 큰 아이들부터 작은 아이들까지 참여하는 인원이 확 늘었다.

한희정 = 우리 학교는 학기 초에 집중적으로 아이들과 몸으로 부딪치며 소통하는 기간을 갖고 있다. 개학 첫날 집으로 가는 아이들이 하루 종일 놀았다고 다들 입이 찢어져 있었다. 새학기여서 긴장하며 학교에 왔는데, 하루를 즐겁게 보내면서 학교생활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 거다. 학교에선 3월 한 달이 행복해야 1년이 행복하다는 생각을 다들 가지고 있다. 


▲ 한희정 서울 유현초 교사(와글와글놀이터 담당)
“실컷 노는 아이들이 사고 덜 나고 집중력 좋아
지자체·학교, 안전 담보 안전공제회 등 지원해야”


▲ 편해문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 저자
아이와 주민이 참여하는 커뮤니티 놀이터 제안
공공 건축물이 주는 도움과 공동체 경험할 수 있어


-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문재현 = 가까운 동네부터 아이들을 제대로 양육하기 위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아이들의 양육을 돕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영아기 부모들을 위한 놀이지원 프로그램과 놀이터 만들기를 추진하고, 어린이집·유치원·학교에서도 놀이의 힘을 길러주고, 마음껏 놀도록 하는 어른들의 연대도 필요하다.

선우현 = 적극적으로 동감한다.

한희정 = 동네든 학교든 어느 곳이든 놀이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여기에 자발성을 강조하고 싶다. 가령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의사 없이 학교에 놀이를 강조하게 되면 교사들은 일을 떠맡게 되고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억지로 하게 되는 거다. 그건 안 하느니만 못하다. 학부모들이 놀이와 관련된 어떤 일을 해보겠다고 했을 때 방해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자세가 힘이 되는 거다.

문재현 = 맞다. 위에서 사업으로 내려오는 순간 실패한다. 정부나 기관에서 할 일은 놀이 수요자들의 자발성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만 하면 된다. 사실, 지방교육청 한 곳이 놀이활성화 프로그램을 내게 부탁했지만 거절한 적이 있다. 구성원들의 의견을 듣지 않고 얼마나 현장을 괴롭히는지 들었기 때문이다.

한희정 = 안전 문제도 얘기하고 싶다. 지자체나 학교에서 부모들을 다독이면서 가장 낮은 수준의 안전은 우리가 담보할 테니 마음껏 놀라는 자세가 필요하다. 학교가 너무 호들갑 떨면서 불안을 부추길 게 아니라 아이들은 다치면서 큰다는 점을 얘기하고, 안전공제회 등을 통해서 지원해줄 수 있는 만큼만 지원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편해문 = 놀이에 대해 여러 수요자들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사회적인 협의체를 제안한다. 국내 편의점 수는 2만7000개인데, 그 2배가 넘는 한국의 공공놀이터 6만여개는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커뮤니티에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정성스럽게 만들면 자연스럽게 모든 이들을 위한 공간이 된다. 현재 순천 지역에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모델 개념인 ‘기적의 놀이터’ 2곳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문재현 = 기적의 놀이터가 뭔지 좀 자세히 설명해달라.

편해문 = 기적의 놀이터는 한마디로 커뮤니티 놀이터다. 디자인부터 건축, 사용 후 관리까지 실제로 놀이터를 이용할 아이들과 주민들이 참여해 만들자는 거다. 그런 놀이터를 추진하는 지자체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런 놀이터 공공건축의 경험을 통해 아이들은 공공의 건축물이 공동체 모두의 삶에 어떻게 도움되는지 경험하게 되고, 또 그 공간을 통해 공동체도 살아난다.

문재현 = 동네를 기반으로 한 운동은 생각보다 빨리 진행될 수 있다. 몇 군데 동 단위, 아파트단지를 중심으로 공동체 운동을 해보니 몇 달이 안 걸린다. 옆 사람과 얘기 몇 마디 통하면 동네 일엔 진보·보수가 따로 없게 된다. 특히 놀이터 문제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다들 굉장히 재미있어 하는 주제다.

- 부모와 정부·학교에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편해문 = 아이들이 놀다가 다치고, 살다가 실패할 수 있게 부모가 거들어줬으면 좋겠다. 또 한 가지는 아이들을 키울 때 좀 인간적인 품위를 가지고 클 수 있도록 부모들이 터를 만들어주자는 거다. 품위 있는 부모는 아이들을 놀게 한다.

문재현 = 유럽의 귀족들도 얼마나 잘 노느냐가 제대로 교육받은 기준의 하나다. 또 하나 더하자면 놀이야말로 아이들에 대한 사랑의 시작이라는 생각을 가졌으면 한다.

한희정 = 실질적인 얘기를 당부하고 싶다. 학교에서 쉬는 시간, 점심시간의 쉴 시간은 제발 건드리지 말았으면 좋겠다. 쉬는 시간에 숙제하고 책 읽으라면서 아이들을 놀지 못하게 하는 것은 폭력이다. 학부모들도 아이들 학원 일정을 짤 때 하루에 2시간 정도는 좀 비워줬으면 좋겠다. 아이 때에 놀이에 흠뻑 젖는 경험이 없다면 어른들이 너무 잔인한 것 아닌가.

김기혜 = 다들 공무원들이 꽉 막혀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공무원도 사람이다. 스스로 감동하는 일이고, 주민들이 호응하는 일이면 공무원들도 자발적으로 움직인다. 아이들을 놀게 하자는 일에 누가 반대하겠나.

문재현 = 아이들의 놀이 회복 운동을 통해 어른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으면 한다. 이렇게 공동체가 살아나는 것이 CCTV 100개 설치하는 것보다 더 공동체가 안전해지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여러 곳에서 직접 경험했으면 좋겠다. 물론 주민들 간 소통의 환경은 지자체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줘야 한다.

<시리즈 끝>

<경향신문·참교육학부모회·서울 노원·도봉구청 공동기획>

<송현숙·김지원 기자 s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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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퍼옴]

[놀이가 밥이다]아빠·아이 뛰놀다 보면 다른 가족도 스스럼없이 챙겨

ㆍ김해 ‘기적의 놀이터’

경남 김해의 ‘김해 기적의 도서관’ 앞마당은 매달 셋째주 일요일마다 시끄러워진다. 지난해 1월부터 시작된 아빠들과 함께하는 ‘기적의 놀이터’ 때문이다. 아빠들은 딱지치기, 물놀이, 비눗방울놀이, 박스궁전 짓기, 연날리기 등을 하며 아이들과 놀았다. 도서관에서 육아 모임을 진행하다 놀이 전문가를 만난 게 ‘기적의 놀이터’가 출범한 계기였다.

1년을 함께 놀아본 아빠들은 올해부터 놀이전문가의 도움 없이 놀이터를 진행하고 있다. 아빠들은 매달 첫째주 화요일에 모여 ‘이번엔 뭘 하고 놀까?’ 궁리한다. 아빠들이 어릴 적 했던 놀이나,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놀이를 찾는다. 아빠들도 ‘내게도 동심이 살아있었구나’라고 깨닫는다고 했다. 

지난해 10월27일 경남 김해시에 있는 ‘김해 기적의 도서관’ 앞마당에서 부모들과 아이들이 어울려 상자쌓기 놀이를 하고 있다. | 기적의놀이터 제공


보통 육아와 자녀교육에서 몇 발자국 물러서 있기에 아이들에게도 아빠들과의 놀이는 특별하다. 활동적인 놀이가 많아지고 친구들을 사귀는 폭도 넓은 편이다. 초등학교 1학년 딸아이와 기적의 놀이터에서 노는 김주원씨는 “턱없이 부족한 놀이시간이지만, 그나마 이것이 아이들의 숨통을 터주는 시간”이라며 “아이들과 손잡고 놀다보면 내가 아이인지, 어른인지 분간이 안 간다”면서 웃었다.

아빠와의 놀이터는 자연스레 공동체 문화도 만들어 간다. 초등학교 2학년 아들과 함께 놀이터를 찾는 성언규씨는 “놀이터에 처음 온 아이와도 30분만 같이 놀다보면 서로 마음의 벽이 사라진다”며 “내가 다른 집 아이들을 챙기게 되니까 자연스레 우리 아이도 다른 집 아이들과 친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은엽 도서관 사서는 “부모와 아이들의 놀이를 통해 한 마을이 살아나고, 그 마을 속에서 아이들이 자란다”며 “놀이에 참여하는 아빠들이 아파트단지나 동네 주민센터에 더 많아지면 아이들은 더욱 잘 자라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곽희양 기자 hui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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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퍼옴]

[놀이가 밥이다]교육학 전공 학생 “놀이 복원 동참”… 박물관, 놀이 접목 프로그램 구상

ㆍ경향신문 ‘놀이가 밥이다’ 기획기사 호응과 움직임
ㆍ학부모 ‘놀이터 이모’ 지원 잇따라

경향신문의 ‘놀이가 밥이다’ 기획이 2월25일 시작된 후 각계의 응원과 호응이 줄을 잇고 있다. 

아이들의 건강한 놀이문화를 되살리는 데 동참하겠다는 대학생들이 있었고, 국립민속박물관은 박물관 교육프로그램에 ‘놀이가 밥’이라는 취지를 살리고 박물관을 놀이의 장으로 열어보겠다고 전해왔다. 방과 후 초등학교를 찾아 ‘놀이터 이모’로 활동하겠다는 학부모들의 약속도 이어졌다.

기획기사가 나간 지 이틀째인 지난달 27일 천진기 민속박물관장은 경향신문 교육팀에 전화를 해 왔다. 천 관장은 “평소에 어른이나 아이나 잘 노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생각해왔고, 앞으로 스스로 놀 줄 모르는 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며 “경향신문이 평소에 고민하던 문제들을 기사화해서 반가웠다”고 말했다. 천 관장은 “박물관 교육이 밥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린이박물관의 여러 프로그램이 있는데, 교육을 앞세우지 않고 경향신문 기획의 취지에 맞는 박물관교육을 구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지난 13일 ‘박물관과 놀이’를 주제로 세미나를 열고, 구체적인 놀이 접목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연세대 교육학과 2010학번 동기인 김유원·김나나·정은진씨는 “놀이문화 복원에 힘을 보태고 싶다”며 지난 14일 서울 노원구청에서 열린 학부모 공개강좌에 참석했다. 이들은 “우리는 어렸을 때 놀이터에서 마음껏 뛰어놀았는데, 요즘 아이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말을 들으면서 위기의식을 느끼던 차에, 경향신문을 보게 되어 무척 반가웠다”고 말했다. 이들은 “교육학을 공부하는 학생 입장에서도 정말 유익했다”며 “학부모와 교사, 마을공동체가 나서지 않는 학교가 있다면 아이들의 놀이에 정기적으로 참여해 봉사하고 싶다. 또 놀이의 힘을 눈으로 목격하고 싶다”고 전했다.

참교육학부모회가 주최한 놀이터 학부모 강좌에도 호응이 이어졌다. 놀이터 이모에 자원하는 학부모들의 문의가 많아졌고, 주말에라도 꼭 참여하고 싶다며 학교 친구를 연결해달라는 엄마도 있었다. 지난해 서울 동북지역 3개 초등학교에서 시작된 와글와글놀이터는 5~6개 학교에서 추가 개설을 준비 중이다.

사회 전반으로 놀이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서울 광진구청은 학부모 대상 놀이 강좌를 열어달라고 문의해 왔고, 성북구청에서는 관내 학교들을 대상으로 놀이터 공모사업을 펼치겠다고 전해 왔다. 노원구청은 학교놀이터 지원 예산을 올해 두 배로 늘리고, 정기적으로 동네 놀이터에서 노는 학부모들을 지원하기로 했다. 구로구청은 초등학생뿐 아니라 중학생 학부모 대상 놀이 강좌를 열기로 했다. 도봉구청도 와글와글놀이터를 주민제안사업으로 선정해 3명 이상의 놀이터 이모(삼촌)들이 집 근처 놀이터에서 동네 아이들과 와글와글놀이터를 열면 놀이용품과 다과비를 지원키로 했다. 서울시 마을지원센터는 놀이터를 마을의 구심점으로 삼아 공동체를 회복하겠다는 취지로 놀이터 소위원회를 구성했다.

<경향신문·참교육학부모회·서울 노원·도봉구청 공동기획>

<송현숙 기자 s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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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가 밥이다]공 뜨면 우르르… 아이들 단순한 놀이에 웃고 숨이 차도록 달려

ㆍ(11) 자발적·대안적 놀이찾기

특별히 놀이터나 프로그램이 필요하지 않았다.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학부모 모임 ‘행복한 우리들’은 놀이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다. 봄·여름·가을·겨울 가릴 것 없이 아이들과 함께 어디든 찾아가 놀았다. 볕이 따스할 때면 이화여대 캠퍼스에서 ‘돈까스’(땅에 원을 그리고 한 발로 원을 짚은 채 남은 발로 다른 사람들의 발등을 밟는 놀이)를 하고, 서강대 인근 재개발 예정지 골목길에서 ‘열발뛰기’를 하거나 뒷산을 탐험했다. 겨울엔 눈 쌓인 대신교회 건물 옥상에서 두꺼운 옷을 입은 채 손을 호호 불어가면서도 놀았다.

골목길에서 놀 때 처음 한두 번은 엄마들이 ‘보물찾기’하듯 골목 여기저기에 쪽지들을 숨겨놨다. 각 쪽지엔 ‘○○야 환영해’ 등 아이들을 향한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아이들은 상품이나 보상도 없는 보물찾기에 흠뻑 빠져 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돌 틈에서, 수풀에서 쪽지를 하나 발견할 때마다 환호성을 질렀다. 나중엔 이런 엄마들의 도움 없이도 아이들은 스스로 작은 나뭇가지로, 버려진 스티로폼 조각으로 훌륭한 놀이를 만들어 냈다.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 즐거운 놀이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놀이모임 ‘행복한 우리들’에서 뛰놀고 있는 아이들이 지난달 봄볕이 드는 이화여대 캠퍼스의 한 언덕에서 나무막대를 땅에 세우고 있다(위 사진). 지난해 여름엔 마포구의 한 재개발 예정지 골목길에서 열발뛰기 놀이를 하고(위에서 두번째), 가을엔 방과 후에 떨어진 낙엽을 갖고 놀았으며(위에서 세번째), 지난 겨울엔 눈 쌓인 대신교회 옥상에서 두꺼운 패딩점퍼를 입고 신나게 놀이기구를 탔다(아래 사진). | 행복한 우리들 제공


▲ 학부모 모임 ‘행복한 우리들’
못 노는 아이들 위해 사계절 놀이 품앗이 나서
대학 캠퍼스·골목길·옥상 등 놀 곳만 있으면 찾아가


수업이 끝난 학교도 훌륭한 놀이터가 됐다.

지난 12일 오후 서대문구에 있는 한 초등학교. 수업이 끝난 아이들이 가방을 휘두르며 달려간 곳은 운동장이었다. 공이 한번 날면 아이 15명이 우르르 같은 방향으로 뛰었다. 지극히 단순한 이 놀이에 아이들은 웃고, 숨이 턱에 차도록 달렸다. 한 무리의 아이들이 ‘런닝맨’ 놀이를 하자며 학교 안으로 들어가고, 여자아이 대여섯은 ‘겨울왕국’ 놀이를 한다며 역할을 나눈다. 조금씩 비가 흩날렸지만 아이들은 누구 하나 비 피할 생각 없이 놀거리를 찾아 뛰어다녔다.

‘행복한 우리들’은 뜻이 맞는 학부모들끼리 육아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함께 더 나은 방법을 찾아보자고 결성한 모임이다. 현재는 16명의 학부모가 아이들을 데리고 열심히 ‘놀러’다니는 중이다. 방과후에 학교에서 많이 놀지만, 장소는 딱히 제한을 두지 않고 동네를 누비고 있다.

아이들이 처음부터 잘 놀았던 것은 아니다. 양모씨(41)는 2010년 3월의 어느날을 기억한다. 두 아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몇 년 전부터 신축 공사를 위해 운동장에 컨테이너로 임시 교실을 짓고 수업했다. 하지만 공사가 끝나고 운동장이 다시 주어졌을 때도 아이들은 노는 법을 몰라 “뭐하고 놀아요?”라며 멀뚱멀뚱 서 있었다. 대부분 수업이 끝나면 기다리던 엄마와 함께 칼같이 집과 학원으로 향했다.

변화는 외아들을 키우는 학부모 김모씨(43)의 헌신에서 시작됐다. 김씨는 방과후에 오후 내내 학교를 지키며 ‘놀이모임’을 만들었다. 누구든 아이를 맡길 수 있었고, 한 명이라도 노는 아이가 있으면 어스름까지 손전등을 들고 운동장을 지켰다. 놀이모임에 아이를 보냈던 학부모 몇 명이 품앗이를 하면서 놀이모임은 커져갔다. 점차 ‘놀이’에 공감하는 엄마들이 늘었고, 학교에선 아이들이 방과후 늦게까지 뛰노는 풍경이 일상이 됐다.

1~6학년이 섞여 놀다보니 처음엔 싸움도 잦았다. 사소한 다툼이 ‘패싸움’으로 번지는 일도 있었고, 한 아이는 다투다가 텃밭에 있던 호미를 던지기도 했다. 하루에 한 번은 어른들이 나서서 아이들을 뜯어말려야 했다. 그러다 아이들은 자기들만의 ‘룰’을 만들기 시작했다. 어른들이 따로 규칙을 만들고 가르친 적도 없는데 아이들끼리 스스로 폭력 없이 문제를 풀어갔다. 그렇게 나이가 달라도 나란히 모래성을 쌓거나 축구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아이들 스스로 놀면서 갈등을 조율하고, 관계를 지속해가는 ‘놀이의 생태계’가 생긴 것이다. 양씨는 “이런 경험은 초등학교 때가 아니면 하기 힘들다”며 “어릴 때 다양한 갈등을 스스로 해결해본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나중에 커서도 성숙하게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김지원 기자 deepdeep@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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