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가 좋다!

그냥 책 2017. 9. 12. 17:14

<불교가 좋다>(가와이 하야오, 니카자와 신이치. 동아시아) 읽으면서 밑줄 쫙!

처음부터 밑줄 쫙 그을 것을 후반부에서 시작을 한다. 한 번 더 읽으면서 앞 부분은 밑줄을 긋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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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자성(無自性)  

  본래의 '나'라는 것은 없다. 하지만 '나'는 모든 관계의 총화에 의해 규정된다. (중략)

  A의 존립에 B와 C와 D를 비롯한 전부가 관련되어 있는 전체와의 관련성을 무시해서는 어떤 물질의 존재

  도 생각할 수 없지요. 근대과학에서는 하나하나의 개체를 우선시합니다. '개체'를 명확히 하고 '개체'와 '개

  체'가 어떤 관계에 있는지 이해하려 하지요. 게다가 '개체'를 전부 인과관계에 의해 이해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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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럭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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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객

                                         _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마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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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2wLp3krIa_o

이 영상을 보면서 나는 <불교가 좋다>라는 책을 생각했다.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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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이 앞날을 비롯해 요즘 청소년이나 청년, 심지어 나. 아니, 우리 앞날을 고민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까 뭘 하며 살아야 할까 고민이 될 때가 있다. 다가올 미래는 낙관만 하기에는 좀 그렇기에... 대개 젊은이들에게 열정을 불태울 일을 찾아가라고 덤으로 높은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일을 찾으라고 쉽게들 말하곤 한다. 

개뻥!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는 친구들보다 10년 늦게 졸업(아니, 떼려쳤다)하고 사회 생활도 그러했다. 그때 고민을 하길, 보통의 행로로 사회에 나가서 뭘 하기에는 벌써 늦었으니 내가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을 만한 일을 찾으려 한 것 같다. 학창시절 운동을 했으니 거기에서 생긴 가치관, 삶의 방식 등을 모른 체할 수는 없었다. 그런 사회적인 가치 공동체적 가치를 조금이나마 실현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타인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일을 좇다 보면 자신도 어느새 바뀌어 있을 거라고 본다. 타인의 삶만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위험할 수도 있다. 암튼 이런 사람들의 모습을 모아보고 정리해 보는 일도 의미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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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보다는 타인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일을 좇아야 합니다

2015년 7월 13일  |  By:   |  칼럼  |  6개의 댓글

일반적인 사람은 인생의 1/3 이상을 직장에서 보냅니다. 따라서 가치 있고 보람찬 진로를 선택하는 것은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데 아주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는 건강한 사회와 경제를 만드는 데 일조합니다. 하지만 사회 초년생들을 대상으로 한 진로 상담은 여전히 실용적이지 않습니다. 실체를 알기 힘든 열정만을 따르라고 강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일반적으로 진로 선택에 대한 두 가지 조언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높은 연봉’, 둘째는 ‘열정을 가질 수 있는 분야’입니다. 열정을 가질 수 있으면서 물질적인 보상까지 얻을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라는 의미이죠.

하지만 이러한 조언의 문제는 대부분 사람은 어느 분야에서 자신들이 큰 열정을 느끼는지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운 좋게 열정이 느껴지는 분야가 있다고 할지라도 미래에도 이러한 열정이 지속할 수 있을지 쉽게 장담하기 힘들죠. 게다가 시간을 들여 곰곰이 생각하거나 탐색한다고 해서 쉽게 열정을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흔히 사람들은 열정이 우리의 마음속 어딘 가에 이미 가공된 상태로 잠재하고 있는 것처럼 얘기하지만, 열정은 ‘어딘가에 있는 것’이라기 보다 의미 있는 일에 이바지하면서 ‘점점 발달되는 것’에 가깝습니다. 청년 시절 스티브 잡스를 사로잡은 것은 컴퓨터가 아니라 오히려 불교였죠.

와튼 스쿨의 아담 그랜트(Adam Grant) 교수는 의미 없는 직업의 공통점은 타인의 삶에 아무런 이바지를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한 연구는 본인이 수행하는 일이 자신보다 타인의 삶에 크게 이바지할 경우 일에 대한 만족도가 훨씬 높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타인을 돕는 데서 느끼는 행복이 자신을 위한 일에서 느끼는 행복보다 훨씬 오래도록 지속된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되기도 했죠.

현실적으로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자신이 열정을 느끼는 분야에서만 일할 수는 없습니다. 더욱이 구성원 모두가 각자 어느 분야에서 열정을 느끼는지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타인의 삶에 이바지하는 삶은 모두가 추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한 행복은 직업에 대한 만족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사회 초년생들에게 무작정 열정을 강조하기보다는 오히려 타인의 삶에 이바지할 수 있는 진로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이유입니다. (Quar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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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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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한테 나도 이런 늬앙스로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맛있게 먹는 모습이 보기 좋았고, 나도 덩달아 맛있게 먹고 싶은 마음까지 들게 해서 좋았다. 어느 순간 애엄마가 그런 나를 제지하고 아이한테 단속을 하게 되자 나는 자연스레 그 흐름에 따라갔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지금 이대로 너가 좋다. 맛있게 먹는 네 모습이 보기 좋다고 해줘야겠다. 일부러 그러나 힘들게 아침이나 저녁을 굶으려고 할 때면 괜찮다고 해줘야겠다. 사실, 지금 뚱뚱하지도 않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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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자녀에게 뚱뚱하다고 말하지 마세요

2016년 8월 3일  |  By:   |  건강문화칼럼  |  댓글이 없습니다

당신의 자녀가 뚱뚱하다면 이 말을 그대로 자녀에게 하시겠습니까? 저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대놓고 “살 좀 빼라!”고 말을 하거나, 은근히 저칼로리 식단을 들이미는 제 모습은 상상하기가 어렵습니다. 지금 제 아이가 너무 어리기도 하지만, 제 평소 성격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저는 아마 호들갑스러운 애정 표현과 무한 긍정으로 딸을 당혹스럽게 하는 그런 엄마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실제로 그런 엄마가 되고 싶습니다. 그것이 반대쪽보다 낫다고 생각하니까요. 저는 세상으로 나아갈 아이가 사랑에 대해 높은 기대치를 갖는 편이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자신이 매력적이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는 것보다 낫다고 믿습니다. 내 자녀가 언젠가는 면전에서 대놓고 비판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더라도, “역시 난 그랬어…”라는 반응보다 “아니, 저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니!”라는 반응을 보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의견이란건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점도 분명히 알고 있기를 바라고요.

제가 유별난 엄마라서, 또는 개인적인 경험 때문에 이렇게 생각한다고 말씀하실 분도 있겠지만, 최근 미국에서는 어릴 때 부모로부터 “뚱뚱하다”는 말을 들은 여성이 커서 식이장애에 시달릴 가능성, 실제 몸무게에 관계없이 자신이 비만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나온 바 있습니다. 물론 일간지에 실리는 “연구 결과”들이 종종 그러하듯, 이 연구에도 논리적 오류가 있어보입니다. 우선, 식이장애를 유발한 것이 부정적인 코멘트가 아니었을 수도 있죠. 반대로 부정적인 코멘트를 쉽게 의식하고 기억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이 식이장애를 앓을 가능성이 높은 것은 아닐까요? 그저 쉽게 상처받는 타입이라서 말이죠.

어느 쪽이든, 아이를 가진 부모가 해야할 일은 분명합니다. 자녀에게 뚱뚱하다고 하지 마세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사실 누구에게든 뚱뚱하다고 말하는 건 무례한 일이죠. 친척이나 이웃, 직장동료, 지나가는 버스 기사에게도 하지 않을 말을 가장 아끼는 사람에게 한다니요.

어떤 이들은 자녀에게 “진실”을 말해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주장합니다. 살을 빼라고 하는 것은 자녀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 지적이라고요.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세요. 부모까지 나서서 지적하지 않아도, 뚱뚱한 사람들은 이미 자신이 뚱뚱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부모가 그 사실을 재확인시켜주는 것은 상처가 될 뿐이죠.

저는 뚱뚱한 10대 소녀였습니다. 맛없는 다이어트식으로 점철된 나날을 보냈죠. 늘 입는 커다란 검정 티셔츠를 어떻게든 예쁘게 꾸며보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카일리 미노그의 몸매를 꿈꾸며 그녀의 음악을 귀에 꽂고 사이클링 머신 위에서 보낸 시간, 조깅을 하면서 보낸 시간들은 또 얼마나 괴로웠던지요!

머리 속에는 늘 살을 빼야한다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어지간히 지루한 10대를 보냈나보다 여기시겠지만, 저의 10대는 그 누구보다도 화려했습니다. 책을 내고, 불법 도박에 손을 댔으며, 영화배우 제이슨 도노번과 토크쇼에 출연하기도 했죠. 이 모든 일이 벌어지는 동안에도 제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오직 하나였습니다. 턱선이 드러나는 얼굴과, 길고 가는 팔다리, 남들 앞에서 당당하게 수영복을 입을 수 있는 몸뚱아리였죠. 정말로 외롭고 고통스러운 나날들이었습니다. 도망칠 수도 없는 내 몸을 혐오하는 마음이라는 건 너무나도 이상하죠. 밤낮으로 울며 기도한 날들이 셀 수도 없습니다. 그 자체로도 끔찍한 경험을 더 끔찍하게 만들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바로 누군가에게서 뚱뚱하다는 말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37세에 담배를 끊으려했을 때도 저는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가까운 친구,나 애인에게건, 기차역에서 만난 낯선 사람에게건 흡연이 얼마나 더럽고 반사회적인 습관인지를 지적받는 일은 결코 금연에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괴감에 담배 한 대 생각이 간절해졌죠.

그러니 누군가의 약점을 건드리며 “네게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일이 실은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는 그만 두도록 합시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그런 말을 하는 나의 의도가 그렇게까지 선하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으니까요.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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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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